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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書/孟子

滕文公 <下> 第 1章

by 柳川 2020. 5. 6.

第 1章

 

陳代曰, 「不見諸侯宜若小然。今一見之, 大則以王, 小則以覇, 且志曰, 『枉尺而直尋。』 宜若可爲也。」

孟子曰, 「昔齊景公田, 招虞人以旌不至將殺之。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 孔子奚取焉? 取非其招不往也, 如不待其招而往 何哉? 且夫枉尺而直尋者, 以利言也, 如以利則枉尋直尺而利, 亦可爲與。昔者趙簡子使王良與嬖奚乘, 終日而不獲一禽, 嬖奚反命曰, 『天下之賤工也。』 或以告王良, 良曰, 『請復之。』 彊而後可。 一朝而獲十禽, 嬖奚反命曰, 『天下之良工也。』  簡子曰, 『我使掌與女乘。』  謂王良, 良不可曰, 『吾爲之範我馳驅, 終日不獲一,  爲之詭遇, 一朝而獲十。詩云, '不失其馳, 舍矢如破。'  我不貫與小人乘, 請辭。』  御者且羞與射者比,  比而得禽獸, 雖若丘陵弗爲也, 如枉道而從彼 何也?  且子過矣。枉己者, 未有能直人者也。」

 

 

진대가 말했다.

"제후를 만나 보지 아니하신 것은 정말 작은 일인 것 같습니다. 지금 제후를 한번 만나 보시면 크게는 왕이 되실 것이고 작아도 패자가 될 것입니다. 또 지(志)에 '한 자를 굽히고 여덟 자를 편다.'고 했는데 정말로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옛날 제나라 경공이 사냥할 때, 깃발을 사용하여 사냥꾼을 불렀는데도 오지 않자 사냥꾼을 죽이려고 하였다. 뜻 있는 선비는 역경에 처해지는 것을 잊지 않고 용사는 목숨을 잃을 것을 잊지 않는 것인데, 공자는 어떤 입장을 취하셨던가?  제대로 부른 것이 아니면 가지 않는 입장을 취하셨는데, 제대로 부르기를 기다라지 않고 갔다면 어찌되었겠는가?  또 한 자를 굽히고 여덟 자를 편다는 것은 이로움을 말하는 것인데,  이로움으로 말한다면 여덟 자를 굽히고 한자를 펴서 유리하면 또한 할수 있는 것인가.

옛날 조간자가 왕량으로 하여금 총애하는 신하 해(奚)와 함께 수레를 타게 하였는데, 종일토록 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총신 해가 돌아가 '천하에 천박한 수레꾼이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어떤 자가 그 말을 왕랑에게 알리자 왕랑이 '다시 하겠습니다.' 라 하고는  애쓴 후에야 가능했습니다. 하루 아침에 열 마리의 새를 잡자 총신 해는 돌아가 '천하에 훌륭한 수레꾼입니다.' 라고 복명하였습니다.  간자가 '내가 그로 하여금 너와 함께 수레를 타도록 하겠다.' 고 하고는 왕랑에게 말하자 왕랑은 안된다고 하면서 '내가 그를 태우고 법도에 따라 수레를 몰자 종일토록 새 한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그를 태우고 법도를 벗어나 수레를 몰자 하루 아침에 열마리의 새를 잡았습니다. 시에 「말 모는 법 잃지 않고, 활을 쏘니 허공을 가르는 것 같도다.」 라 하였습니다. 나는 소인과 함께 수레를 타는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사양하고자 합니다.' 라고 하였다.  말 모는 자가 활 쏘는 자와 비교되는 것조차 수치스럽게 여기고, 가까이 하여 짐승들을 잡는 것이 비록 구릉같이 많다 해도 하지 않았는데, 도를 굽혀 저 자를 따른다면 어찌 되겠는가?  또 그대도 지나치다. 자신을 굽혀서 남을 바르게 할 수 있는 자는 아직 없었다." 

 

 

 

○陳代 孟子弟子也. 小 謂小節也. 枉 屈也, 直 伸也. 八尺曰尋. 枉尺直尋 猶屈己一見諸侯, 而可以致王覇, 所屈者小, 所伸者大也.

 

○진대는 맹자 제자라. 소는 작은 절개를 이름이라. 왕은 굴함이오 직은 폄이라. 여덟 자를 가로대 심이라. 왕척직심은 몸을 굴하여 한번 제후를 보아 가히 써 왕과 패를 이룸과 같으니 굴하는 바는 작고 펴는 바는 큼이라.

 

 

 

孟子曰, 「昔齊景公田, 招虞人以旌不至將殺之。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 孔子奚取焉? 取非其招不往也, 如不待其招而往 何哉?

 

 

맹자가 대답했다. "옛날 제나라 경공이 사냥할 때, 깃발을 사용하여 사냥꾼을 불렀는데도 오지 않자 사냥꾼을 죽이려고 하였다. 뜻 있는 선비는 역경에 처해지는 것을 잊지 않고 용사는 목숨을 잃을 것을 잊지 않는 것인데, 공자는 어떤 입장을 취하셨던가?  제대로 부른 것이 아니면 가지 않는 입장을 취하셨는데, 제대로 부르기를 기다라지 않고 갔다면 어찌되었겠는가?

 

 

[해설]

 

제경공과 사냥꾼에 관한 얘기는 『춘추좌씨전』에 나온다. 경공이 사냥꾼을 부를 때 대부를 부르는 깃발로 부르기에 가지 않았더니 경공이 사냥꾼을 죽이려 하였다. 그러자 사냥꾼이 말하기를 자기를 부르는 피관(皮冠)을 보지 못했기에 감히 나가지 못했노라고 하였다. 공자가 이에 대해 “美之. 志士 固窮不忘在溝壑, 勇士 輕生不忘喪其元, 虞人 可謂志士勇士矣."고 칭찬하셨다.

 

 

○田 獵也. 虞人 守園囿之吏也. 招大夫以旌, 招虞人以皮冠. 元 首也. 志士 固窮 常念死無棺槨, 棄溝壑而不恨, 勇士輕生, 常念戰鬪而死, 喪其首而不顧也. 此二句乃孔子歎美虞人之言. 夫虞人 招之不以其物, 尙守死而不往, 況君子豈可不待其招, 而自往見之邪. 此以上告之以不可往見之意.

 

○전은 사냥함이라. 우인은 원유를 지키는 아전이라. (임금이) 대부를 부름에는 깃발로써 하고 사냥꾼을 부름에는 가죽관으로써 하니라. 원은 머리라. 지사는 궁할수록 견고해져 항상 죽어도 관곽이 없을 것을 생각하여 구학에 버려져도 한하지 아니하고 용사는 삶을 가벼이 여겨 항상 전투하여 죽어서 그 머리가 상함을 생각하여 돌아보지 않음이라. 이 두 글귀는 이에 공자가 사냥꾼을 탄미하신 말씀이라. 무릇 사냥꾼은 부르는데 그 물건으로써 아니하는데도 오히려 죽음을 지키고 가지 않았거든 하물며 군자가 어찌 가히 그 부름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가서 보랴. 이로써 위는 가히 가서 보지 않는 뜻으로써 고하심이라.

 

 

 

且夫枉尺而直尋者, 以利言也, 如以利則枉尋直尺而利, 亦可爲與。

 

 

또 한 자를 굽히고 여덟 자를 편다는 것은 이로움을 말하는 것인데,  이로움으로 말한다면 여덟 자를 굽히고 한자를 펴서 유리하면 또한 할수 있는 것인가. 

 

 

○此以下 正其所稱枉尺直尋之非. 夫所謂枉小而所伸者大 則爲之者計其利耳, 一有計利之心, 則雖枉多伸少而有利, 亦將爲之邪, 甚言其不可也.

 

○이로써 아래는 그 일컬은 바 왕척직심의 그릇됨을 바룸이라. 무릇 이른바 적은 것을 굽혀서 펴는 바가 크기 때문에 하는 것은 그 이를 계산함이니, 하나라도 이를 계산하는 마음이 있다면 곧 비록 많음을 굽히고 적음을 펴서 이로움이 있더라도 또한 장차 하랴 하시니, 그 불가함을 심하게 말씀하심이라.

 

 

 

昔者趙簡子使王良與嬖奚乘, 終日而不獲一禽, 嬖奚反命曰, 『天下之賤工也。』 或以告王良, 良曰, 『請復之。』 彊而後可。 一朝而獲十禽, 嬖奚反命曰, 『天下之良工也。』  簡子曰, 『我使掌與女乘。』  謂王良, 良不可曰, 『吾爲之範我馳驅, 終日不獲一,  爲之詭遇, 一朝而獲十。詩云, '不失其馳, 舍矢如破。' 我不貫與小人乘, 請辭。』

 

 

옛날 조간자가 왕량으로 하여금 총애하는 신하 해(奚)와 함께 수레를 타게 하였는데, 종일토록 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총신 해가 돌아가 '천하에 천박한 수레꾼이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어떤 자가 그 말을 왕랑에게 알리자 왕랑이 '다시 하겠습니다.' 라 하고는  애쓴 후에야 가능했습니다. 하루 아침에 열 마리의 새를 잡자 총신 해는 돌아가 '천하에 훌륭한 수레꾼입니다.' 라고 복명하였습니다.  간자가 '내가 그로 하여금 너와 함께 수레를 타도록 하겠다.' 고 하고는 왕랑에게 말하자 왕랑은 안된다고 하면서 '내가 그를 태우고 법도에 따라 수레를 몰자 종일토록 새 한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그를 태우고 법도를 벗어나 수레를 몰자 하루 아침에 열마리의 새를 잡았습니다. 시에 「말 모는 법 잃지 않고, 활을 쏘니 허공을 가르는 것 같도다.」 라 하였습니다. 나는 소인과 함께 수레를 타는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사양하고자 합니다.' 라고 하였다.   

 

 

○趙簡子 晉大夫趙鞅也. 王良 善御者也. 嬖奚 簡子幸臣. 與之乘 爲之御也. 復之 再乘也. 彊而後可 嬖奚不肯, 彊之而後 肯也. 一朝 自晨至食時也. 掌 專主也. 範 法度也. 詭遇 不正而與禽遇也. 言奚不善射 以法馳驅則不獲, 廢法詭遇而後 中也.

詩 小雅車攻之篇. 言御者不失其馳驅之法, 而射者 發矢皆中而力, 今嬖奚不能也. 貫 習也.

 

○조간자는 진나라 대부 조앙이라. 왕량은 말 몰기를 잘하는 자라. 폐해는 조간자의 가까운 신하라. 여지승은 위하여 말 몰음이라. 부지는 다시 탐이라. 강요한 뒤에 가하다는 것은 폐해가 즐기지 않다가 강요한 뒤에 즐김이라. 일조는 새벽으로부터 아침 식사 때까지라. 장은 오로지 주관함이라. 범은 법도라. 궤우는 부정하게 새와 더불어 만나게 함이라. 말하되 해가 활을 잘 쏘지 못하여 치구법으로써 하면 곧 잡지 못하고 법을 폐하고 궤우로 한 후에 맞춤이라. 시는 「소아 거공」편이라. 말하되 말 모는 자는 그 치구법을 잃지 않고 활을 쏘는 자는 화살을 발함에 다 맞추는데 힘을 써야 하거늘 이제 폐해가 능치 못함이라. 관은 익힘이라. 

 

 

小雅/彤弓之什/車攻

 

四黃旣駕,兩驂不猗。                네필의 황색말에 멍에를 매니, 두 참마가 어긋나지 않네.

不失其馳,舍矢如破。                말 모는 법 잃지 않고, 활을 쏘니 허공을 가르는 것 같도다.   

 

 

 

御者且羞與射者比, 比而得禽獸, 雖若丘陵弗爲也, 如枉道而從彼 何也?  且子過矣。枉己者, 未有能直人者也。」

 

 

말 모는 자가 활 쏘는 자와 비교되는 것조차 수치스럽게 여기고, 가까이 하여 짐승들을 잡는 것이 비록 구릉같이 많다 해도 하지 않았는데, 도를 굽혀 저 자를 따른다면 어찌 되겠는가?  또 그대도 지나치다. 자신을 굽혀서 남을 바르게 할 수 있는 자는 아직 없었다." 

 

 

○比 阿黨也. 若丘陵 言多也.

○或曰, 居今之世, 出處去就 不必一一中節, 欲其一一中節 則道不得行矣. 楊氏曰, 何其不自重也? 枉己其能直人乎! 古之人 寧道之不行, 而不輕其去就, 是以 孔孟雖在春秋戰國時, 而進必以正, 以至終不得行而死也, 使不恤其去就, 而可以行道, 孔孟當先爲之矣, 孔孟 豈不欲道之行哉!

 

○비는 아첨하는 무리라. 언덕 같다는 것은 많음을 말함이라.

○혹자 가로대 이제의 세상을 거하여 출처 거취(나가서 벼슬하기도 하고 들어와 거처하기도 하고 벼슬 자리를 떠나기도 하고 다시 벼슬에 나아가기도 하고)를 반드시 하나하나 절도에 맞추지 아니하나니 그 하나하나를 중절하고자 한다면 곧 도가 얻어 행하지 못하느니라. 양씨 가로대 어찌 그 스스로 중하지 않으리오. 몸을 굽힘이 그 능히 사람을 곧게 하랴. 옛적의 사람이 차라리 도가 행하지 못할지언정 그 거취를 가벼이 여기지 아니하니 이로써 공자와 맹자가 비록 춘추전국의 때에 있으셨어도 나아가는데 반드시 바름으로써 하야 써 마침내 얻어 행하지 못하고 죽는데 이르시니 하여금 그 거취를 아끼지 아니하고 가히 써 도를 행한다면 공맹이 마땅히 먼저 하셨으리니 공맹이 어찌 도를 행하고자 아니하셨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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