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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書/孟子

離婁 <下> 第11章 ~ 第20章

by 柳川 2020. 5. 6.

第11章  

 

孟子曰, 「大人者 言不必信, 行不必果, 惟義所在。」

 

 

맹자가 말했다.

"대인은 말하더라도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행동하더라도 결과를 필요로 하지 않고,  오직 의로움이 있는 바로써 한다."

 

 

[해설]

 

윗글을 잘못 이해하면, 대인이란 말을 함에 굳이 믿음을 둘 필요가 없고, 행동을 함에도 굳이 결과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사람처럼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말에 맞추기 위해 급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무슨 일을 하면 꼭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그것이 잘못된 말이라면 과감히 취소할 수 있어야 하고, 잘못된 결과가 나올 것 같으면 바로 그 행동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대인이란 항상 의로운 바에 언행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중용』에서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지나침이 있으면 허물이 되기에 삼가라(庸言之謹)고 하였으며, 말은 행실을 돌아보고 행실은 말을 돌아보라(言顧行 行顧言)고 하였다.

 

 

○必 猶期也. 大人言行 不先期於信果, 但義之所在, 則必從之, 卒亦未嘗不信果也.

○尹氏曰, 主於義則信果在其中矣, 主於信果 則未必合義. 王勉曰, 若不合於義, 而不信不果, 則妄人爾.

 

○필은 기약과 같음이라. 대인의 언행은 먼저 믿음과 결과를 기약하지 아니하고 다만 의가 있는 바이면 곧 반드시 따르나니 마침내 또한 일찍이 믿음과 결과함이 있지 않음이 아니니라.

○ 윤씨 가로대 의에 주장하면 곧 믿음과 결과가 그 가운데에 있고 믿음과 결과에 주장하면 곧 반드시 의를 합함이 아니니라. 왕면이 가로대 만약에 의에 합하지 아니하고 미더움이 없고 결과가 없다면 곧 망령된 사람이니라.

 

 

 

 

 

第12章

 

孟子曰, 「大人者不失其赤子之心者也。」

 

 

맹자가 말했다. "대인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자이다." 

 

 

○大人之心 通達萬變, 赤子之心 則純一無僞而已. 然 大人之所以爲大人, 正以其不爲物誘, 而有以全其純一, 無僞之本然. 是以 擴而充之則無所不知, 無所不能 而極其大也.

 

○대인의 마음은 온갖 변화를 통달하고 어린아이의 마음은 곧 순일하여 거짓이 없을 뿐이라. 그러나 대인의 써 대인된 바는 바로 써 그 물건의 꾀임을 두지 않아서 써 온전히 그 순일하고 거짓이 없는 본연을 둠이라. 이로써 넓히고 채운면 곧 아지 못하는 바가 없고 능치 모하는 바가 없어서 그 큼을 다함이라.

 

 

 

 

 

第13章

 

孟子曰, 「養生者不足以當大事, 惟送死可以當大事。」

 

 

맹자가 말했다.

"살아계신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큰 일이라 하기에는 부족하고, 오직 돌아가신 부모님을 보내드리는 것만이 큰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해설]

 

맹자 당시에 冠婚喪祭라는 人倫之大事에 대한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가운데서 죽은 이에 대한 喪事, 더욱 부모상이야말로 사람으로서 치루어야 할 가장 큰 대사라고 보았다. 살아생전에 섬기기를 다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기에 굳이 대사라 하지 않고, 죽음은 변고이기에 마땅히 가장 큰 일이라 한 것이다. 「공손추장구하」제7장을 보면 맹자가 모친상을 치룬 대목이 잘 나타난다. 당시에 묵자 등은 유가의 후한 장례절차에 대해 비난을 가하며 검소하게 치루자는 박장설(薄葬說)을 주장하고 있다. 「등문공장구상」제5장 참조.

맹자 가라사대 살아있는 자를 기름(봉양함)이 족히 써 큰 일에 해당하지 아니고, 오직 죽음을 보내는 일이라야 가히 써 큰 일에 해당하니라.

 

○事生固當愛敬. 然 亦人道之常耳. 至於送死, 則人道之大變, 孝子之事親, 舍是 無以用其力矣. 故 尤以爲大事而必誠必信, 不使少有後日之悔也.

 

○산 자 섬김은 진실로 마땅히 사랑과 공경이라. 그러나 또한 인도의 떳떳함이오, 죽은 자를 보냄에 이르러서는 곧 인도의 큰 변고이니 효자의 어버이 섬김에 이를 버리면 써 그 힘을 씀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더욱 서 큰 일이 되니 마땅히 정성스럽고 마땅히 믿음으로 하여 조금이라도 훗날의 후회함을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第14章

 

孟子曰, 「君子深造之以道, 欲其自得之也。自得之則居之安, 居之安則資之深, 資之深則取之左右 逢其原。故 君子欲其自得之也。」

 

 

맹자가 말했다.

"군자가 도로써 깊이 나아가는 것은 스스로 깨우쳐 터득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터득하면 지내는 것이 편안하고, 지내는 것이 편안하면 자뢰(스스로 힘입음. 바탕함)함이 깊어지고 자뢰함이 깊어지면 좌우에서 취하여 그 근원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스스로 깨우쳐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造 詣也, 深造之者 進而不已之意. 道則其進爲之方也. 資 猶藉也. 左右 身之兩旁, 言至近而非一處也. 逢 猶値也. 原 本也. 水之來處也. 言君子務於深造, 而必以其道者, 欲其有所持循, 以俟夫黙識心通, 自然而得之於己也. 自得於己則所以處之者, 安固而不搖, 處之安固, 則所藉者 深遠而無盡, 所藉者深則日用之間, 取之至近, 無所往而不値其所資之本也.

○程子曰, 學不言而自得者, 乃自得也, 有安排布置者, 皆非自得也. 然 必潛心積慮, 優遊厭飫於其間然後, 可以有得, 若急迫求之 則是私己而已. 終不足以得之也.

 

○조는 나아감이니 깊이 나아간다는 것은 나아가고 그치지 않는다는 뜻이라. 도는 곧 그 나아가는 방법이라. 자는 자뢰함과 같음이라. 좌우는 몸의 양 곁이니 지극히 가까우면서도 한 곳이 아님을 말함이라. 봉은 만남과 같음이라. 원은 근본이니 물이 나오는 곳이라. 말하건대 군자가 깊이 나아감에 힘써서 반드시 그 도로써 하는 것은, 그 잡고 따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서 써 묵묵히 알고 마음으로 통함을 기다려 스스로 그러해서 몸에 얻어짐이라. 스스로 몸에 얻어진다면 곧 써 처하는 바가 편안하고 견고하여 흔들리지 아니하고, 처함이 편안하고 견고하면 곧 자뢰하는 바가 깊고 멀어 다함이 없고, 자뢰한 바가 깊으면 곧 날마다 쓰는 사이에 취함이 지극히 가까워져 가는 곳마다 그 자뢰하는 근본을 만나지 않음이 없느니라.

○ 정자 가라사대 배움은 말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얻는 것이 이에 자득함이니 안배하고 베풀어 둠이 있는 것은 다 자득이 아니니라. 그러나 반드시 마음을 담그고 생각을 쌓아서 그 사이에 우유(한가로운 모양)하고 염어(흡족함)한 뒤에야 가히 써 득함이 있으니, 만약에 급박하게 구한다면 곧 이는 私己일 뿐이라. 마침내 족히 써 얻지 못할 것이니라.

 

優遊 : 편안하고 한가롭게 지냄.

厭飫 : 흡족함. 곧 음식을 배불리 먹는다는 뜻으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공부하여 풍부한 지식과 실천적 경험을 쌓는다는 의미이다.

 

 

☞ 參考

 

이 第14章은 참으로 난해하고 해석이 어렵다. 朱子의 注도 억지스러운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으며 오랫동안 論亂이 되어왔던 구절 중 하나이다.

 

 

 

 

 

第15章

 

孟子曰, 「博學而詳說之, 將以反說約也。」

 

 

맹자가 말했다. "넓게 배우고 상세히 말하는 것은 장차 돌이켜 핵심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言所以博學於文, 而詳說其理者, 非欲以誇多而鬪靡也. 欲其融會貫通, 有以反而說到至約之地耳. 蓋承上章之意, 而言學非欲其徒博, 而亦不可以徑約也.

 

○써한 바 글을 넓게 배우고 그 이치를 상세히 말하는 것은 써 자랑을 많이 하고 화려함을 다투고자 함이 아니고 그 융회하고 관통하여 써 돌이켜 지극히 요약한 곳에 이름을 설명하고자 함이라. 대개 윗 장의 뜻을 이어 배움은 그 한갓 넓히고자 함이 아니요, 또한 가히 써 바로 요약함이 아니니라.

 

靡 : 곱다. 아름다움.          融會 : 자세히 이해함. 녹아서 하나로 모이다.       徑 : 바로, 곧바로.

 

 

 

 

 

第16章

 

孟子曰, 「以善服人者, 未有能服人者也。以善養人然後, 能服天下, 天下不心服, 而王者未之有也。」

 

 

맹자가 말했다. 

"선으로 남을 복종시키려는 사람은 남을 복종시킬 수 없다. 선으로 남을 기른 후에야 천하 사람들을 복종시킬 수 있으며 천하 사람들이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데 왕이 된 자는 없었다."

 

 

○服人者 欲以取勝於人, 養人者 欲其同歸於善, 蓋心之公私小異, 而人之向背頓殊, 學者於此 不可以不審也.

 

○사람을 복종케 하는 자는 남에게 써 이김을 취하려 함이오, 사람을 기르는 자는 그 선에 함께 돌아가고자 함이니, 대개 마음의 공사가 조금 다르고 사람의 향배가 크게 다르니, 배우는 자 이에 가히 써 살피지 않음이 없느니라.

 

 

 

 

 

第17章

 

孟子曰, 「言無實不祥, 不祥之實, 蔽賢者當之。」

 

 

맹자가 말했다.

"말이 실체가 없으면 상서롭지 않으며, 상서롭지 않는 것의 실체는 현명함을 가리는 것이 해당된다."

 

 

[해설]

 

‘言無實不祥’에 대한 해석은 아래 주에서 볼 수 있듯이 ‘無有實不祥’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필자의 해석처럼 ‘言而無實者 不祥’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뒷 문장의 ‘不祥之實’에서 實은 명사로 쓰였기에 ‘言無實不祥’의 實 또한 명사로 해석함이 더 정확한 뜻이 될 듯하다. 만약에 전자처럼 해석한다면 말이란 본래 모두가 상서롭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기에 경계해야 한다. 참고로 『주역』「계사상전」7장에서 風澤中孚괘 九二효에 대한 공자의 설명을 통해 말의 善(實)함과 善(實)하지 못함에 따른 파장을 다음과 구분하고 있다.

 

 

“子曰 「君子居其室, 出其言善, 則千里之外應之, 況其邇者乎! 居其室 出其言不善, 則千里之外 違之, 況其邇者乎! 言出乎身, 加乎民, 行發乎邇, 見(현)乎遠, 言行 君子之樞機, 樞機之發, 榮辱之主也. 言行君子之所以動天地也. 加不愼乎!”

 

공자 말씀하시길 “군자가 자기 집에 거해서 그 말을 냄에 선하면 천리 밖에서 응하나니 하물며 그 가까운 데서랴! 자기 집에 거해서 그 말을 냄에 불선하면 천리 밖에서 어기나니, 하물며 그 가까운 데서랴! 말이 몸에서 나와 백성에게 더하며, 행실이 가까운 데서 발해 먼 곳에서 나타나니, 언행은 군자의 추기(지도리와 기틀)이니 추기의 발함이 영예와 욕됨의 주가 되느니라. 언행은 군자가 이로써 천지를 움직이는 바니 가히 삼가지 아니하랴!

 

 

○或曰, 天下之言無有實不祥者, 惟蔽賢爲不祥之實, 或曰, 言而無實者不祥. 故 蔽賢爲不祥之實. 二說不同, 未知孰是. 疑或有闕文焉.

 

○혹 이르기를 천하의 말이 실지로 상서롭지 아니함이 없으니 오직 어짊을 가림이 상서롭지 아니함의 실지로 된다 하고, 혹 가로대 말함에 실지가 없은 것이 상서롭지 아니함이라. 그러므로 어짊을 가림이 상서롭지 아니함의 실지가 된다 하니, 두 가지 설이 같지 아니하여 누가 옳은지 아지 못하니라. 의심컨대 혹 빠진 글이 있는 듯하니라.

 

 

 

 

第18章

 

徐子曰, 「仲尼亟稱於水曰, 『水哉。水哉!』 何取於水也?」 孟子曰, 「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 是之取爾。苟爲無本, 七八月之間雨集, 溝澮皆盈, 其涸也可立而待也。 故 聲聞過情, 君子恥之。」

 

 

서자가 말했다. "중니(공자)께서 자주 물을 일컬어, '물이여! 물이여!' 하셨는데 물에서 무엇을 취하셨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원천에서 물이 솟아 밤낮을 쉬지 않고 흘러 웅덩이를 채운 후, 나아가 사해에 이르는데 근본이 있는 것은 이와 같다. 이것을 취하신 것이다. 근본이 없게 된다면, 칠팔월 사이에 비가 집중되어 구덩이와 도랑에 모두 물이 가득 차더라도 그것이 마르기를 서서 기다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명성이 실상보다 지나치는 것을 군자는 부끄럽게 여긴다."" 

 

 

[해설]

 

윗글에서 공자가 물에 대해서 말했다는 내용은 『논어』자한편 제16장에 나오는 대목이다.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공자 냇가 위에서 서서 가라사대 가는 것은 이것과 같음인저, 낮밤을 그치지 않는도다)”

무릇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이자 도의 본연을 말한 것이다. 주역에서 말하는 ‘君子 自强不息’이나 중용에서 말하고 있는 ‘小德 川流, 大德 敦化.’의 개념과도 같다. 물의 덕과 관련해서는 老子 도덕경 제8장 「易性」에서 가장 잘 표현하고 있음도 참고로 알아두자.

 

上善若水。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夫唯不爭。故無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의 선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자신을 위해 다투지 아니하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비천한 곳에 처헤 있다. 그러므로 물의 성질은 도에 가깝다. (물의 특성을 닮은 성인은) 몸을 (비천한)땅에 두고, 마음을 최선의 못에 두고, 최선의 인을 베풀며, 최선의 실천적인 말을 하고, 최선의 다스림으로 바로잡고, 최선의 효능으로 일하며, 언제나 최선의 때에 따라 움직인다.

오직  (물이나 성인은)다투지 않는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느니라.

 

 

○亟 數也. 水哉水哉 歎美之辭.

 

○극은 자주(삭)라. 水哉水哉는 아름다움을 감탄하는 말(탄미사)이라.

 

 

 

孟子曰, 「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 是之取爾。

 

 

맹자가 대답했다.

"원천에서 물이 솟아 올라 밤낮을 쉬지 않고 흘러 웅덩이를 채운 후에 나아가 사해에 이르는데 근본이 있는 것은 이와 같다. 이것을 취하신 것이다. 

 

 

混混 : 많이 흐르는 모양.     

科 : 조목 과. 과정, 조목, 품등, 정도, 밑동, 벼뿌리. 규정, 법조문. 과거, 구덩이. 공허하다. 맨머리. 모자등을 쓰지 않음. 떨기로 나다. 무성함. 

 

 

○原泉 有原之水也. 混混 湧出之貌. 不舍晝夜 言常出不竭也. 盈 滿也. 科 坎也. 言其進以漸也. 放 至也. 言水有原本, 不已而漸進, 以至于海, 如人有實行, 則亦不已而漸進, 以至于極也.

 

○원천은 근원이 있는 물이라. 혼혼은 용솟음쳐 나오는 모양이라. 밤낮을 그치지 않음은 항상 나오서 마르치 않음을 말함이라. 영은 가득참이오, 과는 구덩이이니 그 나아감을 써 점차함이라. 방은 이름이라. 물이 근원이 있어 그치지 아니하고 점차 나아가 써 바다에 이르니, 사람이 실제 행실이 있을 것 같으면 곧 또한 그치지 아니하고 점차 나아가 써 지극함에 이름을 말씀하심이라.

 

 

 

苟爲無本, 七八月之間雨集, 溝澮皆盈, 其涸也可立而待也。 故 聲聞過情, 君子恥之。

 

 

근본이 없게 된다면, 칠팔월 사이에 비가 집중되어 구덩이와 도랑에 모두 물이 가득 차더라도 그것이 마르기를 서서 기다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명성이 실상보다 지나치는 것을 군자는 부끄럽게 여긴다."

 

 

澮 : 봇도랑 회(괴).  봇도랑. 시내. 깊고 평평한 모양. 물 이름.

 

 

○集 聚. 澮 田間水道也. 涸 乾也. 如人無實行而暴得虛譽, 不能長久也. 聲聞 名譽也. 情 實也. 恥者 恥其實而將不繼也. 林氏曰, 徐子之爲人, 必有躐等干譽之病. 故 孟子以是答之.

○鄒氏曰, 孔子之稱水, 其旨微矣, 孟子獨取此者, 自徐子之所急者, 言之也. 孔子嘗以聞達 告子張矣, 達者 有本之謂也, 聞 則無本之謂也. 然則學者其可以不務本乎!

 

○집은 모임이라. 회는 밭 사이의 물길이라. 학은 마름이라. 만일에 사람이 실제 행함이 없이 갑자기 빈 명예를 얻으면 능히 오래하지 못하니라. 성문은 명예라. 정은 실제라. 부끄럽다는 것은 그 실제함이 없어 장차 계속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함이라. 임씨 가로대 서자의 사람됨이 반드시 등급을 건너뛰고 명예를 주장하는 병이 있음이라. 그러므로 맹자가 이로써 대답하시니라.

○추씨 가로대 공자의 물을 일컬음은 그 뜻이 은미하거늘 맹자가 홀로(유독) 이를 취함은 서자의 급한 바부터 말씀하심이라. 공자가 일찍이 문과 달로써 자장에게 알려주시니, 달은 뿌리가 있음을 말함이오, 문은 뿌리가 없음을 말함이라. 그러한즉 배우는 자 그 가히 써 근본에 힘쓰지 아니하랴.

 

 

[해설]

 

聞達에 대해서는 論語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子張 問, 「士何如斯可謂之達矣?」 子曰, 「何哉? 爾所謂達者。」子張對曰, 「在邦必聞, 在家必聞。」 子曰, 「是聞也, 非達也。夫達也者, 質直而好義, 察言而觀色, 慮以下人, 在邦必達, 在家必達。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在邦必聞, 在家必聞。」

 

자장이 물었다. “선비가 어떠해야 통달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물었다. "어떠한 것인고? 네가 이른바 달이여(무슨 달인가)?"  자장이 대답했다. "나라에서 반드시 들리며 집에서 반드시 들림이니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이것은 문이라, 달이 아니니라. 통달이란 질박하고 정직하면서 의(義)를 좋아하며, 남의 말을 살피고 표정을 잘 관찰하여, 항상 배려하면서 남에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그리하면 나라에 있어서도 반드시 통달이 되며, 집안에 있어서도 반드시 통달이 되는 것이다.  문(聞)이란 겉으로만 인(仁)한 척하고 실제 행실은 어긋나며 인자(仁者)로 자처하면서 의심하지 않는 것이니,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명성이 나며, 집안에 있어도 반드시 명성이 난다.”    <論語 顔淵 第20章>

 

 

 

 

 

第19章

 

孟子曰, 「人之所以異於禽獸者幾希, 庶民去之, 君子存之。舜明於庶物, 察於人倫, 由仁義行。 非行仁義也。」

 

 

맹자가 말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거의 드문데, 서민은 그것을 버리고 군자는 보존한다.  순임금은 뭇 사물에 밝았고  인륜을 살펴 인의를 좇아 행하였다. 인의를 행한 것이 아니었다."

 

 

○幾希 少也. 庶 衆也. 人物之生, 同得天地之理, 以爲性, 同得天地之氣, 以爲形, 其不同者 獨人於其間得形氣之正, 而能有以全其性, 爲少異耳. 雖曰少異, 然 人物之所以分, 實在於此, 衆人 不知此而去之, 則名雖爲人, 而實無以異於禽獸, 君子知此而存之, 是以 戰兢惕厲, 而卒能有以全其所受之正也.

 

惕 : 두려워할 척. 두려워하다. 삼가다. 놀라다. 근심하다. 빠르다. 사랑하는 모양. 

 

○기희는 적음이라. 서는 무리라. 사람과 물건의 생함이 천지의 이치를 같이 얻어 써 性이 되고, 천지의 기를 같이 얻어 써 형체가 되니 그 같지 않은 것은 오직 사람만이 그 사이에 형기의 바름을 얻어 능히 써 그 性을 온전히 있게 함이 조금 다름이라. 비록 조금 다르다고 말하나 그러나 사람과 물건의 써 나뉘는 바는 실지로 이에 있으니 뭇사람들은 이를 아지 못하고 버리면 곧 이름은 비록 사람이 되나 실지는 써 금수와 다름이 없음이오, 군자는 이를 알고 보존하니라. 이로써 전전긍긍하며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마침내 그 받은 바의 바름을 써 온전히 있게 하니라.

 

☞  參考 - 戰兢惕厲

 

시경에 「戰戰兢兢, 如履薄冰」이 나오는데  論語 泰伯 3章에서 이를 인용하였다.

 

詩經/小雅/小旻之什/小旻

 

不敢暴虎,不敢馮河。                감히 범을 때려잡으려 하지 말고, 감히 개천을 걸어 건너지 말라.

人知其一,莫知其他。                사람이 하나를 알아도 다른 것은 알지 못하도다.

戰戰兢兢,如臨深淵,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깊은 연못가에 있는 것 같이 하고,

如履薄冰。                              엷은 얼음위를 밟고 가는 것 같이 하라.

 

 

論語 泰伯 3章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啓予手。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

 

증자가 병이 들자 제자를 불러 말했다.

"내 발을 열며, 내 손을 열라. 시에 이르길 '전전긍긍하고 깊은 못에 임하는 것같이 하면 얇은 얼음을 밟는 것같이 한다.' 하니  지금에야 내 (불효를) 면함을 알았노라, 제자들아!"           

 

     

 

舜明於庶物, 察於人倫, 由仁義行。 非行仁義也。

 

순임금은 뭇 사물에 밝았고  인륜을 살펴 인의를 좇아 행하였다. 인의를 행한 것이 아니었다. 

 

 

○物 事物也. 明則有以識其理也. 人倫 說見前篇. 察則有以盡其理之詳也. 物理 固非度外, 而人倫 尤切於身. 故 其知之有詳略之異, 在舜則皆生而知之也. 由仁義行, 非行仁義 則仁義已根於心, 而所行皆從此出, 非以仁義爲美而後 勉强行之, 所謂安而行之也. 此則聖人之事 不待存之而無不存矣.

○尹氏曰, 存之者 君子也, 存者 聖人也. 君子所存, 存天理也, 由仁義行 存者能之.

 

○물은 사물이라. 명은 곧 그 이치를 써 앎이 있음이라. 인륜은 설명이 전편에 나타나니라. 자세함은 곧 그 이치의 상세함을 써 다함이 있음이라. 사물의 이치의 이치는 진실로 도외가 아니로대 인륜이 더욱 몸에 간절함이라. 그러므로 그 안다는 것은 상세하고 간략한 차이가 있으니 순임금에 있다는 것은 곧 다 나면서 아는 것이라. 인의로 말미암아 행함이요 인의를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인의가 이미 마음에 뿌리하여 행하는 바가 다 이를 좇아서 나옴이오, 인의로써 아름답게 한 후에 힘써서 어거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니 이른바 편안히 행함이라. 이것은 곧 성인의 일이니 존함을 기다리지 아니해도 존하지 아니함은 없느니라.

○윤씨 가로대 존하게 함은 군자요, 존함은 성인이라. 군자가 존하는 바는 천리를 존함이니 인의로 말미암아 행함은 존자만이 능하게 하니라.

 

 

[해설]

 

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 及其知之一也。 或安而行之, 或利而行之, 或勉强而行之, 及其成功一也。

 

혹 날 때부터 알며 혹 배워서 알며 혹 곤해서 아느니 그 앎에 이르러서는 한 가지이니라. 혹 편안하면서 행해지며 혹 이롭게 하여 행하며 혹 힘써서 행하나니 그 성공에 이르러서는 한 가지이니라.    <中庸 20章>

 

 

☞ 參考

 

앎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공자나 노자 같은 성인처럼 날 때부터 저절로 그 이치를 아는 사람이 있는 반면(生而知之), 현인은 성인처럼 저절로 알지는 못하나 열심히 공부하여 알고(學而知之), 또 현인처럼 재주가 훌륭하지 못하나 투철한 사람은 열심히 애쓰고 갖은 고초를 감내하며 이치를 알아가는(困而知之) 방법이 있는데 결국에 가서 아는 것은 모두가 한 가지로 같을 뿐이다.

『주역』계사상전 제12장에 “神而明之, 存乎其人, 黙而成之, 不言而信, 存乎德行.(신비스러워 밝히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있고, 묵묵해서 이루며 말을 아니 해도 믿음은 덕행에 있느니라)”고 하였다. 알면 그대로 실행해야 하는데 나면서부터 저절로 안 사람은 곧 묵묵히 이루며 말을 하지 않아도 덕행을 행하듯이 편안하게 행하고, 열심히 배워서 안 사람은 이롭게 하는 가운데 행하고, 어려움을 감내하며 안 사람은 힘써서 행하니 곧, 安而行之(用)는 生而知之(體)와 같고 利而行之(用)는 學而知之(體)와 같으며, 勉强而行之(用)는 困而知之(體)와 같다.

윗글 역시 體用의 이치로 설명하였는데, 지적인 것은 체가 되고, 공을 이루는 것은 용으로 하였으나 모두가 한 가지임을 밝혔다.

 

 

 

 

 

第20章

 

孟子曰, 「禹惡旨酒而好善言。湯執中立賢無方。文王視民如傷, 望道而未之見。武王不泄邇, 不忘遠。周公思兼三王以施四事, 其有不合者, 仰而思之, 夜以繼日, 幸而得之, 坐以待旦。」

 

 

맹자가 말했다. "우임금은 맛좋은 술을 싫어하고 선한 말은 좋아했다. 탕임금은 중용을 지켜 어진 이를 세우며 그 유파를 묻지 않았다. 문왕은 백성들을 다친 사람처럼 보살폈고, 도를 기다리며 아직 보지 못한 것처럼 하였다. 무왕은 가까이 있는 사람을 친압하지 않았고, 멀리 있는 자를 잊지 않았다. 주공은 세 왕의 일을 아울러 네 가지 일을 베풀고 합당하지 않은 일이 있으면 하늘을 우러러 생각하고 밤낮으로 하며 다행히도 답을 얻으면 앉아서 아침을 기다렸다." 

 

 

○戰國策曰, 儀狄作酒, 禹飮而甘之曰, '後世 必有以酒亡其國者.' 遂疏儀狄, 而絶旨酒. 書曰, '禹拜昌言.'

 

○전국책에 가로대 의적(黃帝의 딸)이 술을 만들었거늘 우임금이 마시고 맛있다며 가라사대 후세에 반드시 술로써 그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 있으리라 하시고 마침내 의적을 소원히 하시고 맛있는 술을 끊었다 하니라. 서경에 가로대 우임금은 창언(善言)에 절하였다 하니라.

 

 

☞禹拜昌言

 

禹:夏禹,傳說中的遠古帝王。昌言:美言,善言。夏禹聽到善言,就給人下拜。表示樂于吸取別人的優点。

語本《書.虞書 益稷 第1.》:

帝曰, 「來。禹, 汝亦昌言。」 禹拜曰, 「都! 帝, 予何言? 予思日孜孜。」 臯陶曰, 「吁! 如何?」 禹曰, 「洪水滔天, 浩浩懷山襄陵, 下民昏墊, 予乘四載, 隨山刊木, 曁益 奏庶鮮食, 予決九川, 距四海, 濬畎澮距川, 曁稷播, 奏庶艱食鮮食, 懋遷有無化居, 烝民乃粒, 萬邦作乂。」 臯陶曰, 「兪。師汝昌言。」

 

 

 

湯執中立賢無方。

 

탕임금은 중용을 지켜 어진 이를 세우며 그 유파를 묻지 않았다.

 

 

○執 謂守而不失. 中者 無過不及之名. 方 猶類也, 立賢無方, 惟賢則立之於位, 不問其類也.

 

○집은 지켜서 잃지 않음을 잃음이라. 중이란 것은 과불급이 없음의 이름이라. 방은 유와 같으니 어진 이를 세우되 방소없이 함은 오직 어진 이이면 그를 벼슬자리에 세우고 그 유를 묻지 않음이라.

 

 

 

文王視民如傷, 望道而未之見。

 

 

문왕은 백성들을 다친 사람처럼 보살폈고, 도를 기다리며 아직 보지 못한 것처럼 하였다.

 

 

○民已安矣, 而視之猶若有傷, 道已至矣, 而望之猶若未見, 聖人之愛民深而求道切 如此, 不自滿足 終日乾乾之心也.

 

○백성이 이미 편안하되 보기를 다친 것이 있는 것처럼 하고 도가 이미 지극하도되 아직 보지 못한 것처럼 하시니 성인의 백성 사랑함이 깊고, 도를 구하기를 간절함이 이와 같으니 스스로 만족하지 아니하여 종일토록 굳세고 굳센 마음이니라.

 

乾乾 : 자강불식하는 모양,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양.

 

 

[해설]

 

‘終日乾乾之心’은 『주역』九三효에 대해 周公이 ‘君子終日乾乾, 夕惕若厲, 无咎.’(군자가 날이 마치도록 굳세고 굳세어서 저녁에 두려워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은 없으리라)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쓴 말이다. 이에 대해 공자는 『주역』 重天乾 文言傳에서 “君子進德修業, 忠信所以進德也, 修辭立其誠 所以居業也. 知至至之, 可與幾也, 知終終之, 可與存義也. 是故 居上位而不驕, 在下位而不憂, 故 乾乾因其時而惕, 雖危 无咎矣.”(군자가 덕에 나아가며 업을 닦나니 충성되고 미덥게 함이 덕에 나아가는 바요, 말을 닦고 그 정성을 세움이 업에 거하는 바라. 이를 줄을 알고 이르나니 더불어 기미할 수 있으며, 마칠 줄을 아고 마치니 더불어 의리를 보존할 수 있으니 이런 까닭에 높은 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아니하며 낮은 자리에 있어도 근심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굳세고 굳세게 해서 그 때로 인하여 두려워하면 비록 위태하나 허물이 없으리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구삼효는 바로 은나라 말에서 주나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문왕의 언행을 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武王不泄邇, 不忘遠。

 

 

무왕은 가까이 있는 사람을 친압하지 않았고, 멀리 있는 자를 잊지 않았다.

 

 

○泄 狎也. 邇者 人所易狎而不泄, 遠者 人所易忘而不忘, 德之盛 仁之至也.

 

○설은 친압함이라. 가까운 자는 사람이 쉽게 친압하는 바임에도 친압하지 않으셨고, 먼 자는 사람이 쉽게 잊어버리는 바임에도 잊지 않으셨으니, 덕의 성대함이오, 인의 지극함이라.

 

 

 

周公思兼三王以施四事, 其有不合者, 仰而思之, 夜以繼日, 幸而得之, 坐以待旦。

 

 

주공은 세 왕의 일을 아울러 네 가지 일을 베풀고 합당하지 않은 일이 있으면 하늘을 우러러 생각하고 밤낮으로 하며 다행히도 답을 얻으면 앉아서 아침을 기다렸다."

 

 

○三王 禹也湯也文武也, 四事 上四條之事也. 時異勢殊故, 其事或有所不合, 思而得之, 則其理初不異矣. 坐以待旦 急於行也.

○此 承上章言舜, 因歷敍群聖以繼之, 而各擧其一事, 以見其憂勤惕厲之意, 蓋天理之所以常存, 而人心之所以不死也.

程子曰, 孟子所稱, 各因其一事而言, 非謂武王 不能執中立賢, 湯 却泄邇忘遠也, 人謂各擧其盛, 亦非也. 聖人 亦無不盛.

 

○삼왕은 우임금, 탕임금, 문왕과 무왕이오, 사사는 위 네 가지 일이라. 때가 다르고 세가 다른 고로 그 일이 혹 합하지 아니한 바가 있으나 생각하여 얻으면 곧 그 이치가 애초 다르지 않음이라. 앉아서 써 아침을 기다림은 행함에 급함이라.

○이는 윗 장 순임금을 말한 것을 이어서 인하여 여러 성인을 차례로 서술하여 서 잇고 각 그 한 가지 일을 들어서 써 그 근심과 부지런함과 두려워함의 뜻을 나타내니, 대개 천리가 써 떳떳이 존하는 바요 인심이 써 죽지 아니하는 바라. 정자 가라사대 맹자가 칭한 바는 각각 그 한 가지 일을 인하여 말씀하심이니, 무왕이 능히 중을 잡아 어진 이를 세우지 못하고, 탕임금이 도리어 가까운 이를 친압하고 먼 자를 잊었다는 것을 이름이 아니니라. 사람들이 이르기를 각기 그 성함을 들었다 하나 이 또한 그릇됨이라. 성인은 또한 성하지 아니함이 없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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