珠崖二義
二義者, 珠崖令之後妻及前妻之女也。女名初年十三。 珠崖多珠。繼母連大珠以爲繫臂。及令死當送喪, 法內珠入於關者死, 繼母棄其繫臂珠。其子男年九歲, 好而取之, 置之母鏡奩中, 皆莫之知。遂奉喪歸至海關, 關候士吏搜索, 得珠十枚於繼母鏡奩中。吏曰, 「嘻! 此値法無可柰何, 誰當坐者?」 初在左右, 顧心恐母去置鏡奩中, 乃曰, 「初當坐之。」 吏曰, 「其狀何如?」
두 의로운 사람은 주애(珠崖)고을 수령의 후처(後妻)와 전처(前妻)의 딸이다. 딸의 이름은 초(初)인데 나이가 13살이었다.
주애고을에서는 진주가 많이 나왔다. 계모는 큰 진주를 이어 팔찌를 만들어 차고 다녔다. 수령이 죽자 장례를 치렀는데,
당시 그 고을의 법에 진주를 지니고 관문에 들어서는 자에게는 사형에 처한다는 것을 생각한 계모가 진주팔찌를 풀어서 모두 버렸다. 그녀의 아들이 아홉살이었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호기심에 모두 주워서 모친의 거울상자에 넣어 두었으나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이윽고 상을 마치고 돌아 오던 중 바닷가에 있는 관문에 이르자 관문을 지키고 있던 관리들이 짐을 수색한 끝에 모친의 거울상자 안에서 진주 10개를 찾아냈다.
관리가, "어! 이것을 지니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어찌할 수가 없는데 누가 한 짓인가?"하고 물었다.
그 때 초(初)가 곁에 있었는데 초가 마음속으로 두려워 하면서 어머니가 버리려다 거울상자 속에 숨겨두었나 하고 생각하고는, "제가 한 짓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관리가, "어쩐 일인지 말해보라."하고 다그쳤다.
對曰, 「君不幸, 夫人解繫臂棄之, 初心惜之, 取而置夫人鏡奩中, 夫人不知也。」 繼母聞之, 遽疾行問初。初曰, 「夫人所棄珠, 初復取之, 置夫人奩中, 初當坐之。」 母意亦以初爲實然憐之, 乃因謂吏曰, 「願且待, 幸無劾兒. 兒誠不知也. 此珠妾之繫臂也. 君不幸妾解去之, 而置奩中, 迫奉喪道遠與弱小俱, 忽然忘之, 妾當坐之。」 初固曰, 「實初取之。」 繼母又曰, 「兒但讓耳, 實妾取之。」 因涕泣不能自禁。
초가 대답하였다.
"아버지가 불행을 당하시어 어머니께서는 진주로 만든 팔찌를 풀어 버리셨는데, 제가 마음 속으로 버리는 것이 아까워 모두 주워서 어머니의 거울상자속에 넣어두었는데 어머니는 모르십니다."
계모가 그 말을 듣고 급하게 달려가 초에게 무슨 일인지 물으니 초가 대답했다.
"어머니가 버리셨던 진주를 제가 다시 주워서 어머니의 화장품상자 안에 두었으니 제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합니다."
계모의 뜻으로는 초가 실제로 저지른 일이라 여겼으나 초를 가엽게 여겨 관리에게 말하였다.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그 아이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그 아이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이 진주는 제가 팔찌를 만들어 차던 것인데 남편이 불행을 당하자 제가 팔찌를 풀어 버리려다가 화장품 상자에 넣어 두었던 것인데 장례를 치르며 허둥대다가 돌아오는 길은 멀고 아이들과 함께 오다가 제가 진주를 넣어 둔 것을 깜빡 잊었습니다. 제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합니다."
그러자 초가 완강히 주장하여 말하였다. "실제로 제가 주은 것입니다."
계모는, "이 아이의 말은 단지 양보하는 것일 뿐입니다. 사실 제가 주운 것입니다." 라 말하며 우는데 흐르는 눈물을 금치 못한다.
女亦曰, 「夫人哀初之孤, 欲强活初耳, 夫人實不知也。」 又因哭泣, 泣下交頸, 送葬者盡哭哀動傍人, 莫不爲酸鼻揮涕。關吏執筆書劾, 不能就一字, 關候垂泣。終日不能忍決. 乃曰, 「母子有義如此, 吾寧坐之? 不忍加文, 且又相讓, 安知孰是?」 遂棄珠而遣之。旣去. 後乃知男獨取之也.
君子謂, 二義慈孝.
論語曰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若繼母與假女推讓爭死, 哀感傍人, 可謂直耳.
頌曰, 珠崖夫人, 甚有母恩, 假繼相讓, 維女亦賢, 納珠於關, 各自伏愆, 二義如此, 爲世所傳.
초가 또 말하였다. "어머니는 제가 고아라고 애처럽게 여기시고 굳이 저를 살리려고 저러실 뿐이며 어머니께서는 사실 모르시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또 울부짖는데 흐르는 눈물에 목이 메인다. 장례식에 따라 갔던 자들 모두 곡하며 슬퍼하니 주변 사람들이 감동하여 콧날이 시큰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관을 지키는 관리가 조사한 사실을 기록하려다 한 자도 쓸 수가 없었고 모두 눈물만 흘렸다. 해가 다 가도록 차마 죄를 가릴 수가 없어,
"어머니와 딸이 이와 같이 의로운데 내가 어찌 처벌할 수 있겠는가! 차마 보고문서를 작성하지도 못하고 있는데 또 서로 자기 잘못이라 다투니 누가 잘못인지 어찌 알수 있겠는가!"라 말하고는 진주를 버리고 그들을 내보냈다.
그들이 가고 난 후 남자 아이가 혼자 저지른 짓임을 알게 되었다.
군자는, "두 의로운 여인은 계모로서 딸을 사랑했고 딸은 계모에게 효를 다하였다."고 하였다.
논어에, "아버지는 자식을 위하여 숨기고, 자식은 아버지를 위하여 숨기니 곧음이 그 가운데에 있다.(子路 第18章)"라 하였는데, 계모와 전처 딸이 다투어 죽을 죄를 자신이 범하였다고 양보하여 주위 사람들이 애석해하게 하고 감동시켰다면 곧음이 있다고 할만하다.
송에, "주애고을 수령의 부인은 어머니로서의 사랑이 매우 깊었고 전처의 딸과 계모의 서로 사양한 것으로 보아 딸 또한 현명하다 할 것이다. 관문에서 진주를 지닌 사실이 적발되자 각각 자신의 죄라고 주장하므로써 두 사람의 의로움이 이와 같음이 세상에 전해졌다.
郃陽友娣
友娣者, 郃陽邑任延壽之妻也. 字季兒有三子, 季兒兄季宗與延壽爭葬父事, 延壽與其友田建陰殺季宗, 建獨坐死, 延壽會赦, 乃以告季兒. 季兒曰, 「嘻! 獨今乃語我乎?」 遂振衣欲去, 問曰, 「所與共殺吾兄者爲誰?」 延壽曰, 「田建, 田建已死, 獨我當坐之, 汝殺我而已。」 季兒曰, 「殺夫不義, 事兄之讎亦不義.」 延壽曰. 「吾不敢留汝, 願以車馬及家中財物盡以送汝, 聽汝所之.」
우애가 깊은 여동생(娣)은 합양읍(郃陽邑)에 사는 임연수(任延壽)라는 사람의 아내이다. 자(字)는 계아(季兒)라 하였는데 세 아들을 두었다. 계아의 오빠 계종(季宗)은 연수와 함께 부친의 장례 일로 다투었는데, 연수가 친구인 전건(田建)과 함께 음모를 꾸며 계종을 살해하였으나, 결국 범행이 밝혀져 전건이 홀로 사형을 당하고 연수는 공교롭게도 풀려났는데 계아에게 사실대로 고하였다.
그러자 계아가, "아! 어찌 지금에 와서야 내게 말하는 것이오?"하고는 떨쳐 일어나 나가려다가 물었다.
"우리 오빠를 함께 죽인 자가 누구입니까?"
연수가, "전건인데 전건은 범행이 발각되어 사형을 당하였으니 나도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데 당신이 나를 죽이면 될뿐이오."하고 대답하였다.
계아가, "남편을 죽이는 것은 불의(不義)이며, 오빠를 죽인 원수를 남편으로 섬기는 것 또한 불의로다."하고 뇌까리니,
연수가 말하였다.
"나는 감히 당신을 붙잡을 수 없소, 거마(車馬)와 집안의 재물을 모두 당신에게 줄 것이니 당신이 가는 곳을 알려주시기바라오."
季兒曰, 「吾當安之, 兄死而讎不報, 與子同枕席而使殺吾兄, 內不能和夫家, 又縱兄之仇, 何面目以生, 而戴天履地乎?」 延壽慚而去, 不敢見季兒。季兒乃告其大女曰, 「汝父殺吾兄, 義不可以留, 又終不復嫁矣。吾去汝而死, 善視汝兩弟。」 遂以繈自經而死. 馮翊王讓聞之, 大其義, 令縣復其三子而表其墓。
君子謂, 友娣善復兄仇. 詩曰, 「不僭不賊, 鮮不爲則.」 季兒可以爲則矣。
頌曰, 季兒樹義, 夫殺其兄, 欲復兄讎, 義不可行, 不留不去, 遂以自殃, 馮翊表墓, 嘉其義明。
계아가, "나는 어디든 가겠지만, 오빠가 죽었으나 원수를 갚지 못하고, 그대와 잠자리를 함께 하면서 오빠를 죽게 하였으니, 안으로는 시댁과 화합할 수도 없고, 또 오빠를 죽인 원수를 따랐으니 무슨 얼굴로 살아 하늘을 이고 땅을 딛겠는가!"
하고 부르짖으니 연수는 부끄러워 하며 나가는데 감히 계아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계아는 큰 딸에게 사건 내막을 알리고 뒷일을 당부했다.
"네 아버지가 내 오빠를 죽였으니 의(義)로 보아 여기서 머물러 살 수 없으며 또 재가할 수도 없다. 나는 너희들을 떠나 죽을 것이니 네 두 동생들을 잘 보살펴 주어라." 그리고는 밧줄로 스스로 목매어 죽고 말았다.
풍익(馮翊)의 왕양(王讓)이 그 일을 듣고 그 뜻을 크게 여겨 현에 명을 내려 그녀의 세 자식들을 안심시키고 그 묘에 석표(石表 : 죽은이의 덕을 기려 묘 앞에 세우는 돌기둥)을 세워 기렸다.
군자는, "우애있는 여동생은 오빠의 원수에게 복수를 잘 하였다."고 하였다.
시에, "어긋남이 없고 해침이 없으면 본보기가 되지 않음이 드물것이로다.(大雅/蕩之什/抑)"라 하였는데 계아가 좋은 본보기가 될수 있을 것이다.
송에, "계아는 의를 세워 남편이 오빠를 죽였음을 알고 원수를 갚으려 하였으나 의로써 실행하지 못하고 머물지도 않으며 떠나지도 않고 마침내 자결한 바, 풍익에서 묘앞에 석표를 세우고 그녀가 의를 밝힌 행실을 가상히 여겼다.
京師節女
京師節女者, 長安大昌里人之妻也. 其夫有仇人, 欲報其夫, 而無道徑, 聞其妻之仁孝有義, 乃劫其妻之父, 使要其女爲中譎, 父呼其女告之。女計念, 「不聽之則殺父不孝, 聽之則殺夫不義。不孝不義, 雖生不可以行於世。」 欲以身當之。乃且許諾曰, 「旦日在樓上新沐東首臥則是矣. 妾請開戶牖待之。」 還其家。
경사(京師)의 절의(節義)있는 여인은 장안(長安)의 대창(大昌)고을에 사는 사람의 아내이다. 그 남편을 원수로 여겨 죽이려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남편에게 복수를 하여 하였으나 방도가 없었는데 그의 아내가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의(義)롭다는 말을 듣고 그 여인의 부친을 겁박하여, 그녀가 중간에서 역할을 해주도록 요구하게 하였는데, 그 부친이 그 여인을 불러 그 사정을 알렸다.
여인이 헤아려 생각하기를, "그 말을 듣지 않으면 부친이 죽을 것이니 불효가 될 것이고, 그 말을 들으면 남편이 죽으니 불효가 될 것이다. 불효와 불의는 살면서 세상에서 행할 수 없는 것이다."하고는, 자신이 남편을 대신하리라 했다.
그리하여 허락하며 말했다.
"내일 새벽 누상에서 머리를 감고 머리를 동쪽으로 하여 누워 있는 자가 바로 제 남편입니다. 제가 창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乃告其夫使臥他所, 因自沐居樓上, 東首開戶牖而臥。夜半仇家果至, 斷頭持去。明而視之, 乃其妻之頭也。仇人哀痛之, 以爲有義, 遂釋不殺其夫.
君子謂, 節女仁孝厚於恩義也。夫重仁義輕死亡, 行之高者也.
論語曰, 君子殺身以成仁, 無求生以害仁, 此之謂也.
頌曰, 京師節女, 夫讎劫父, 要女間之, 不敢不許, 期處旣成, 乃易其所, 殺身成仁, 義冠天下.
그리고는 남편에게 다른 곳에서 자도록 하고 자신은 머리를 감고 누상에서 동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창문을 열어놓고 누웠다. 한밤중에 원수를 갚으려는 자가 과연 집에 들어 와 머리를 잘라 가지고 나갔다. 날이 밝아진 뒤 가져온 머리를 보니 바로 그 여인의 머리였다. 복수한 사람이 그 여인의 머리를 가져온 자신의 행동을 애통해 하고는 그 여인의 행실에 의가 있다 생각하고 마침내 그 남편을 죽이려던 생각을 버렸다.
군자는, "절의 있는 여인은 어질고 효심이 있었으며 은혜와 의를 지킴에 두터웠다. 무릇 인의를 중히 여기고 죽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행실의 고귀함을 말한 것이다.
논어에, "군자는 몸을 죽여서 인(仁)을 이룸이 있으며, 삶을 구하면서 인(仁)을 해침이 없다(衛靈公 第15. 8章)'라 함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송에, "경사의 절의있는 여인은 남편을 원수로 알고 있는 자가 원수를 갚으려고 여인의 부친을 겁박하여 그녀가 중간에서 원수갚는 일을 돕도록 요구하게 하였는데, 감히 승락을 하기도 어렵고 거부하기도 어려워 남편이 자는 장소를 알려 주어 성공시키겠다 악속하고는 남편과 자는 장소를 바꿔 자신의 몸을 죽여 인을 이루었으니 의를 지킴에 천하의 으뜸이 되었다."고 하였다.
'中國歷史와文學 > 列女傳(劉向)' 카테고리의 다른 글
辨通傳/齊傷槐女, 楚野辨女, 阿谷處女 (0) | 2020.07.27 |
---|---|
辨通傳/齊管妾婧, 楚江乙母, 晉弓工妻 (0) | 2020.07.23 |
節義傳/周主忠妾, 魏節乳母, 梁節姑姊 (0) | 2020.07.22 |
節義傳/代趙夫人, 齊義繼母, 魯秋潔婦 (0) | 2020.07.21 |
節義傳/楚昭越姬, 蓋將之妻, 魯義姑姊 (0) | 2020.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