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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歷史와文學/列女傳(劉向)

孼嬖傳/晉獻驪姬, 魯宣繆姜, 陳女夏姬

by 柳川 2020. 8. 4.

晉獻驪姬

 

驪姬者驪戎之女, 晉獻公之夫人也。獻公娶於齊, 生秦穆夫人及太子申生。又娶二女於戎, 生公子重耳夷吾。獻公伐驪戎克之, 獲驪姬以歸, 生奚齊, 其娣生卓子。驪姬嬖於獻公, 齊姜先死, 公乃立驪姬以爲夫人。驪姬欲立奚齊, 乃與弟謀曰, 「一朝不朝, 其閒用刀。逐太子與二公子而可閒也。」 於是驪姬乃說公曰, 「曲沃君之宗邑也。蒲與二屈, 君之境也。不可以無主。宗邑無主, 則民不畏, 邊境無主則開寇心。夫寇生其心, 民嫚其政, 國之患也。若使太子主曲沃, 二公子主蒲與二屈, 則可以威民而懼寇矣。」 遂使太子居曲沃, 重耳居蒲, 夷吾居二屈。獻驪姬旣遠太子。  

 

嫚 : 업신여길 만. 업신여기다. 깔봄. 교만하다. 문란케 하다.

 

 

여희(驪姬)는 여융(驪戎)족의 여인으로 진(晉)나라 헌공(獻公)의 부인이다.  애초에 헌공은 제(齊)나라에서 부인을 맞이했는데 진(秦)나라 목부인(穆夫人)과 태자 신생(申生)을 낳았다. 또 융(戎)에서 두 여인을 맞이하여 공자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를 낳았다. 헌공은 여융을 정벌하여 승리하고 여희를 잡아 귀국하였는데, 여희에게서 해제(奚齊)를 낳았고 여희의 동생에게서 탁자(卓子)를 낳았다. 여희는 헌공으로부터 총애를 받았으며 제강(齊姜)이 먼저 죽자 헌공은 여희를 세워 부인으로 삼았다. 여희는 해제를 태자로 세우려고 그 동생과 모의하였다.

"일단 아침에 조회를 참석치 않고 칼을 쓸 틈을 보아야겠다. 태자와 두 공자를 쫒아낼 틈을 노리는 것이 좋겠다."

이리하여 여희는 헌공에게 말하였다.

"곡옥(曲沃)은 주군의 종읍(宗邑 : 조상의 사당이 있는 고을)입니다.  포(蒲)읍과 이굴(二屈)은 주군 나라의 국경에 있습니다. 주인이 없을 수 없습니다. 종읍에 다스리는 자가 없으면 백성이 두려워 하지 않으며, 변경을 다스리는 자가 없으면 외적이 마음을 놓게 될 것입니다. 외적이 마음을 놓으면 백성이 정치를 깔보게 되니 나라의 근심이 됩니다.

태자로 하여금 곡옥을 다스리게 하고 두 공자가 포와 이굴을 지키게 한다면 백성들에게 위엄이 서고 외적들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헌공은 태자로 하여금 곡옥에 머물게 하고 중이는 포에 머물며 이오는 이굴에 머물게 하였다. 그리하여 헌공과 여희는 태자와 멀어졌다.

 

 

 

 

乃夜泣, 公問其故, 對曰, 「吾聞申生爲人, 甚好仁而强, 甚寬惠而慈於民。今謂君惑於我, 必亂國, 無乃以國民之故, 行强於君, 君未終命而歿, 君其柰何? 胡不殺我, 無以一妾亂百姓。」 公曰, 「惠其民而不惠其父乎?」 驪姬曰, 「爲民與爲父異, 夫殺君利民, 民孰不戴? 苟父利而得寵, 除亂而衆說, 孰不欲焉? 雖其愛君, 欲不勝也。若紂有良子, 而先殺紂, 毋章其惡, 鈞死也, 毋必假手於武王以廢其祀。自吾先君武公兼翼, 而楚穆弑成, 此皆爲民而不顧親, 君不早圖, 禍且及矣。」 

 

武公兼翼 : 曲沃武公伐晉侯緡, 滅之, 盡以其宝器賂獻于周釐王. 釐王命曲沃武公為晉君, 列為諸侯, 於是盡併晉地而有之.(史記 晉世家)

楚穆弑成 : 冬十月, (太子)商臣以宮衛兵囲成王. 成王請食熊蹯而死, 不聴. 丁未, 成王自絞殺. 商臣代立, 是為穆王.(史記 楚世家)

              그러나 '(成王)三十五年, 晉公子重耳過楚, 成王以諸侯客礼饗, 而厚送之於秦.'의 구절로 볼때 劉向의 年代에 대한 착오인듯 함.

 

 

어느 날 밤에 여희가 울고 있어 공이 그 까닭을 물으니 여희가 대답한다.

"제가 듣기로 신생은 사람됨이 어질고 강한 것을 매우 좋아하며 매우 관대하여 은혜를 베풀고 백성을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태자는 지금 군주께서 저에게 현혹되시어 반드시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이라 하였다고 하는데 백성들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군주를 거스르게 되면 군주께서는 천명을 다하지 못하고 세상을 마치게 될 것이니 군주께서는 어쩌시겠습니까?  어찌 저를 죽이지 않아 저 한 사람때문에 백성을 어지럽게 하는 것을 막지 않으십니까."  

그 말을 듣고 헌공이 묻는다.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푼다면 아비에게도 은혜를 베풀지 않겠는가?" 

여희가 답한다.

"백성을 위하는 것과 부친을 위하는 것은 다릅니다. 군주를 죽여 백성을 위한다면 백성들 누가 받들지 않겠습니까?  정작 부친을 이롭게 하여 총애를 받을 수 있다 해도, 혼란을 제거하여 백성을 기쁘게 한다면 누가 하지 않으려 하겠습니까? 군왕을 사랑할지라도 그 욕구를 이겨낼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주왕(紂王)에게 훌륭한 아들이 있어 앞서서 주왕을 살해했다면 그 악행(惡行)을 드러내지 않고 다같이 죽었을 것이며, 반드시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손을 빌어 은(殷)나라의 제사도 없애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선왕이신 곡옥(曲沃)에 웅거하시던 무공(武公)께서 당시 진(晉)나라 수도인 익(翼)을 쳐 병합하고, 초(楚)나라 목왕(穆王)이 부친인 성왕(成王)을 시해한 것 모두가 백성을 위하여 부친(및 친족)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군주께서 빨리 도모하지 않으시면 화가 미칠 것입니다."

 

 

 

公懼曰, 「柰何而可?」 驪姬曰, 「君何不老而授之政? 彼得政而治之, 殆將釋君乎?」 公曰, 「不可。吾將圖之。」 由此疑太子。驪姬乃使人以公命告太子曰, 「君夢見齊姜. 亟往祀焉。」 申生祭於曲沃, 歸福於絳。公田不在, 驪姬受福。寘鴆於酒, 施毒於脯, 公至召申生將胙, 驪姬曰, 「自外來, 不可不試也。」 覆酒於地, 地墳。申生恐而出。驪姬與犬, 犬死, 飮小臣, 小臣死之。驪姬乃仰天叩心而泣, 見申生哭曰, 「嗟乎! 子之國子何遲爲君? 

有父恩忍之, 況國人乎! 弑父以求利, 孰利之?」 

 

 

헌공이 겁이 나서 묻는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여희가 또 묻는다. "군주께서는 어찌 늙었음을 들어 정사를 넘겨주지 않으십니까? 태자가 정사를 잡아 다스리게 되면 군주께서는 위태로움에서 벗어나시지 않겠습니까?"

왕은, "그럴 수는 없다. 내가 대책을 세워보겠다."라고 대답했다. 이로부터 태자를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여희는 사람을 시켜 헌공의 명이라 하고 태자에게 알렸다.

"군주의 꿈에 태자의 모친인 제강(齊姜)이 나타났으니 빨리 가서 모친에게 제사를 지내십시오."

신생은 곡옥으로 가서 제사를 지내고 제사지낸 술과 고기를 가지고 강(絳)으로 돌아왔다.

그때 헌공은 사냥을 나가 부재중이라 여희가 술과 고기를 받았다. 그리고는 술에 짐독(鴆毒)을 타고 고기에는 독을 발라 두었다.

헌공이 사냥에서 돌아오자 신생을 불렀는데 그때 주방에서 술과 고기를 바쳐 올려 헌공이 들려고 하자  여희가 말했다.

"밖에서 들어온 음식을 드실 때에는 먼저 시험해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고 술을 땅에 부으니 땅이 부풀어 올랐다.

그 것을 본 신생이 겁에 질려 뛰쳐 나갔다.

여희가 고기를 개에게 주니 개가 죽고, 어린 환관에게 주었더니 어린 환관도 죽었다.

여희는 하늘을 올려다 보며 가슴을 치며 울부짖다가 신생을 보고 통곡하며 말했다.

"아아! 나라는 태자의 나라가 될 것인데 태자는 어찌 군주가 돌아가실때까지 기다리시지 않는가? 부모의 은혜가 있음에도 잔인하게 그러한 짓을 하는데 하물며 백성들에게 있어서랴! 부친을 시해하여 이득을 얻으려 하는데 누가 이득을 주겠는가!"

 

 

 

獻公使人謂太子曰, 「爾其圖之?」 太傅里克曰, 「太子入自明可以生, 不則不可以生。」 太子曰, 「吾君老矣。入而自明, 則驪姬死, 吾君不安。」 遂自經於新城廟。公遂殺少傅杜原款, 使閹楚刺重耳, 重耳奔狄. 使賈華刺夷吾, 夷吾奔梁。盡逐群公子, 乃立奚齊。獻公卒.  奚齊立, 里克殺之, 卓子立, 又殺之, 乃戮驪姬, 鞭而殺之。於是秦立夷吾, 是爲惠公。惠公死, 子圉立, 是爲懷公。晉人殺懷公於高梁. 立重耳, 是爲文公, 亂及五世然後定. 

詩曰, 「婦有長舌, 惟厲之階。」 又曰, 「哲婦傾城。」 此之謂也. 

頌曰, 驪姬繼母, 惑亂晉獻, 謀譖太子, 毒酒爲權, 果弑申生, 公子出奔, 身又伏辜, 五世亂昏.

 

卓子 : 사기에는 도자(悼子)로 되어 있다. (史記 晉世家)

 

 

헌공이 사람을 보내 태자 신생에게 물었다.

"네가 한 짓이냐?"

그러자 태부(太傅) 이극(里克)이 태자에게 말했다.

"태자께서 입조하시어 스스로 결백을 밝히시면 살 수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태자는, "내 부친이신 군주께서는 연로하십니다. 만약 입조하여 스스로 무고함을 밝힌다면 여희가 죽게 될 것인데 그러면 아버님이신 군주께서 평안치 못할 것입니다."하고는 신성(新城)의 사당에서 스스로 목매어 죽고 말았다.

이에 헌공은 소부(少傅) 두원관(杜原款)을 죽이고는 내시 초(楚)를 시켜 중이(重耳)를 죽이게 하였는데 중이는 적(狄)으로 도주하였고, 가화(賈華)를 시켜 이오(夷五)를 죽이게 하니 이오는 양(梁)나라로 도주하였다.

공자들을 모두 쫒아낸 다음 해제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 헌공이 죽자 해제가 등극하였으나 이극(里克)이 해제를 죽이고 탁자(卓子)를 세웠는데 탁자도 죽이고 여희에게는 죄를 물어 매질하여 죽였다.

이리하여 진(秦)나라에서 양나라에 있던 이오를 귀국시켜 옹립하였는데 이 사람이 바로 혜공(惠公)이다. 혜공이 죽자 태자 어(圉)가 즉위했는데 이 사람이 회공(懷公)이다.

진(晉)나라 사람들이 고량(高梁)에서 회공을 살해하고 중이(重耳)를 옹립하니 이 사람이 문공(文公)이다.

이리하여 진나라에서는 어지러움이 5대에 걸쳐 지속되다가 안정되었다. 

시에, "지어미가 말이 많으니 오로지 재앙만 쌓이노라." 또, "지어미가 성을 기울게 하였도다.(大雅/蕩之什/瞻卬)"라 한 것은 이를 말한 것이다.

송에, "여희는 계모가 되자 진나라 헌공을 미혹하고 어지럽혀 태자를 참소하고 술에 독을 타 책략을 쓰므로써 결국 태자를 죽게 하고 공자들을 외국으로 도망치게 한 바, 자신은 벌을 받았고 나라를 5대에 걸쳐 어지럽게 하였다."고 하였다.

 

 

 

 

魯宣繆姜

 

繆姜者齊侯之女, 魯宣公之夫人, 成公母也。聰慧而行亂, 故謚曰繆。成公幼, 繆姜通於叔孫宣伯。名喬如, 喬如與繆姜謀去季孟而擅魯國。晉楚戰于鄢陵, 出佐晉, 將行, 姜告公必逐季孟, 是背君也。公辭以晉難, 請反聽命。又貨晉大夫, 使執季孫行父而止之許, 殺仲孫蔑, 以魯士晉爲內臣。魯人不順喬如, 明而逐之, 喬如奔齊。魯遂擯繆姜於東宮. 始往繆姜使筮之, 艮之六。曰, 「是謂艮之隨, 隨其出也。君必速出。」 

 

晉難 : 晉侯가 魯나라에게 出兵해 晉軍과 聯合하여 鄭나라를 討伐하자고 請한 일을 이른다.(春秋左氏傳 魯成公 下)

 

 

목강(繆姜)은 제(齊)나라 제후의 딸이며 노(魯)나라 선공(宣公)의 부인이고 성공(成公)의 모친이다.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나 행실이 난잡하였으므로  시호(諡號)를 목(繆)이라 하였다. 애초에 성공이 어렸을 때, 목강은 숙손선백(叔孫宣伯)과 정을 통하였다.  그의 이름은 교여(喬如)인데 교여는 목강과 모의하여 계문자(季文子)와 맹헌자(孟獻子)를 제거하고 국정을 마음대로 하려고 하였다.  진(晉)나라와 초(楚)나라가 언릉(鄢陵)에서 싸웠는데 성공(成公)이 진(晉)나라를 도와 떠나려 하는데 목강이 성공에게 반드시 계문자와 맹헌자를 쫒아내라 하면서 이들이 군주를 배반할 것이라 하였다. 성공이 진난(晉難)을 고하며 돌아와 명을 듣겠다고 하였다. 또 진나라 대부에게 뇌물을 바쳐 계손행보(季孫行父 : 季文子)를 잡아 허(許)에 감금하며 중손멸(仲孫蔑 : 孟獻子)을 죽이게 하고는 노나라의 신하들을 진나라의 신하로 예속시키려 하였다. 

노나라 사람들이 교여를 따르지 않고 그 죄상을 밝히고 쫒아내니 교여는 제나라로 도주하였다. 노나라에서는 목강을 배척하고 동궁에 유폐하였는데 목강이 처음 동궁에 갔을 때 점을 치니 간괘(艮卦) 6이 나왔다. 

사관(史官)이 말하였다.

"간괘는 수(隨)를 말하는데 수는 떠나는 것입니다. 부인은 여기에서 빨리 나가시게 될 것입니다."

 

 

姜曰, 「亡. 是於周易曰, 『元亨利貞无咎。』 善之長也. 嘉之會也. 義之和也, 事之幹也, 終故不可誣也。是以雖隨无咎, 今我婦人而與於亂, 固在下位。而有不仁, 不可謂元. 不靖國家, 不可謂亨. 而害身, 不可謂利. 棄位而放, 不可謂貞。有四德者, 隨而無咎, 我皆無之, 豈隨也哉! 我則取惡, 能無咎乎? 必死於此, 不得出矣。」 卒薨於東宮。

君子曰, 惜哉繆姜! 雖有聰慧之質, 終不得掩其淫亂之罪。

詩曰, 「士之耽兮, 猶可說也。女之耽兮, 不可說也。」 之謂也。

頌曰, 繆姜淫泆, 宣伯是阻, 謀逐季孟, 欲使專魯, 旣廢見擯, 心意摧下, 後雖善言, 終不能補。

 

 

 

목강이 답했다.
"그럴 수 없소. 이것은 주역(周易)에서 말하는 것인데, '수(隨)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이며 허물이 없는 것이다' 하였소. 원(元)은 선(善)의 장(長)이요, 형(亨)은 가(嘉)의 회(會)이며, 이(利)는 의(義)의 화(和)이고, 정(貞)은 사(事)의 간(幹)이니 그러므로 이를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오. 이에 수(隨)에서 말하는 허물이 없다 할지라도, 지금 나는 여인으로서 난잡한 행실을 따랐으니, 참으로 천박한 신분에 있는 사람이오. 어질지 못하니 원(元)이라 할 수 없고, 나라를 평안하게 하지 못했으니 형(亨)을 말할 수 없으며, 자신을 해치는 일을 저질렀으니 이(利)를 말할 수 없고, 지위를 잊고 방자했으니 정(貞)을 말할 수 없소. 또 네가지 덕이 있으면, 수(隨)에도 허물이 없다 할 것이나, 나에게는 모두 없으니 어찌 수(隨)라 하리오!

나는 악(惡)을 취했는데 허물이 없다 할 수 있겠소? 반드시 여기에서 죽을 것이며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오."

마침내 목강은 동궁에서 죽었다.

군자는, "애석하도다. 목강이여! 비록 총명하고 지혜로운 자질이 있었어도 끝내 그녀의 음란한 죄를 가릴 수 없었도다."라 하였다.

시에, "사내가 여인을 탐하면 말할수 있겠지만, 여인이 사내를 탐하는 것은 말할 수 없다네.(國風/衛風/氓)"라 했는데 이를 말하는 것이다.

송에, "목강이 음탕하여 선백을 취했으며 그와 모의하여 계문자와 맹헌자를 축출하고 노나라를 마음대로 하려 하였으나 폐위되고 배척을 당하니 마음이 꺾여 후에는 좋은 말을 하였으나 끝내 도움이 될 수 없었다."고 하였다. 

 

 

 

 

 

陳女夏姬

 

陳女夏姬者, 陳大夫夏徵舒之母, 御叔之妻也。其狀美好無匹, 內挾伎術, 蓋老而復壯者。三爲王后, 七爲夫人, 公侯爭之. 莫不迷惑失意。夏姬之子徵舒爲大夫, 公孫寧儀行父與陳靈公皆通於夏姬, 或衣其衣, 或裴其幡, 以戱於朝。泄冶見之, 謂曰, 「君有不善, 子宜掩之. 今自子率君而爲之。不待幽閒於朝廷, 以戱士民, 

謂爾何?」 二人以告靈公, 靈公曰, 「衆人知之, 吾不善無害也。泄冶知之, 寡人恥焉。」 

使人徵賊泄冶而殺之。 

 

 

진(陳)나라 여인 하희(夏姬 : 鄭나라 穆公의 딸)는 진나라의 대부 하징서(夏徵舒)의 모친이며, 하어숙(夏御叔)의 아내이다. 아름다움이 비할 바 없었고,  방중술(房中術)을 터득하고, 몸이 늙어도 다시 젊어지는 비법을 익혔었다.  세번 왕후가 되었고 일곱번 부인이 되었는데 공후(公侯)들이 다투어 그녀를 취하려 하였으며 그녀에게 미혹되어 정신을 잃지 않은 자가 없었다.

하희의 아들 징서가 대부가 되었는데, 공손녕(公孫寧)과 의행보(儀行父)가  진(陳)나라 영공(靈公)과 더불어 모두 하희와 정을 통하면서,  어떤 때는 하의의 속옷을 입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녀의 수건을 걸치고 조정에서 서로 희롱하였다.

설야(泄冶)가 그 모습을 보고 공손녕과 의행보에게 말하였다.

"군주가 옳지 않은 행동을 하면 그대들이 마땅히 그치게 하여야 함에도, 지금 그대들부터 임금을 따라 함께 행하고 있소. 조정에서 물러나 조용히 명을 기다리지 않고 백성을 희롱하고 있으니 그대들은 뭐라 하겠소?"

두 사람이 영공에게 고하니 영공이 말했다.

"많은 사람이 알아도 과인에게 좋은 일도 해되는 일도 없으나 설야가 알았으니 과인의 수치로다."

그리고는 사람을 시켜 설야를 역적으로 몰아 죽였다.

 

 

 

 

靈公與二子飮於夏氏召徵舒也。公戱二子曰, 「徵舒似汝。」 子亦曰, 「不若其似公也。」 徵舒疾此言。靈公罷酒出, 舒伏弩廐門, 射殺靈公。公孫寧儀行父皆奔楚, 靈公太子午奔晉。其明年楚莊王擧兵, 誅徵舒定陳國立午, 是爲成公。莊王見夏姬美好將納之. 申公巫臣諫曰, 「不可。王討罪也。而納夏姬, 是貪色也。貪色爲淫, 淫爲大罰, 願王圖之。」 王從之,  使壞後垣而出之. 將軍子反見美, 又欲取之, 巫臣諫曰, 「是不祥人也. 殺御叔弑靈公, 戮夏南出孔儀, 喪陳國。天下多美婦人, 何必取是!」 子反乃止。 

 

 

 

영공과 공손녕, 의행보 두 사람이 하희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하징서를 불렀다.

영공이 두 사람에게 희롱하여 말했다. "징서가 그대를 닮았노라."

그러니 두 사람도 영공에게 말한다. "그가 공을 더 닮았습니다."

하징서는 그 말을 듣고 매우 괴로워 했다. 영공이 술자리를 파하고 나가자, 하징서가 마굿간 문 뒤에서 활을 가지고 잠복해 있다가, 영공을 활로 쏴 죽였다. 이에 공손녕과 의행보는 모두 초(楚)나라로 도주했고 영공의 태자 오(午)는 진(晉)나라로 도망갔다. 다음 해에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군대를 일으켜 하징서를 주살하고 진(陳)나라를 평정한 후 태자 오(午)를 옹립시키니 이 사람이 성공(成公)이다.

장왕이 하희의 미모를 보고 거두려고 하니 신공무신(申公巫臣)이 간하여 아뢴다.

"안됩니다. 대왕께서는 죄지은 자를 토벌하셨습니다. 그러나 하희를 거두신다면 이는 미색(美色)을 탐하는 것입니다. 미색을 탐하면 음란하게 되고 음란하게 되면 큰 죄를 짓게 되니 대왕께서는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이에 장왕은 하희를 거두려는 생각을 거두고 뒷 담장을 허물고 하희를 탈출하게 했다.

장군 자반이 하희의 아름다움을 보고 취하려 하니 무신이 또 말린다.

"이 사람은 상서롭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어숙을 죽게 하고 진(陳)나라 영공(靈公)을 시해하게 하였으며, 하남(夏南 : 징서의 字)을 죽게 하고 공손녕, 의행보를 축출하게 했으며 진나라를 망하게 하였습니다. 천하에 아름다운 여인이 많은데 하필 이 여자를 취하려 합니까!"

이에 자반도 하희를 취하려던 마음을 거두었다.

 

 

 

莊王以夏姬與連尹襄老, 襄老死於邲, 亡其尸。其子黑要又通於夏姬。巫臣見夏姬, 謂曰, 「子歸我將聘汝。」 及恭王卽位, 巫臣聘於齊, 盡與其室俱至鄭。使人召夏姬曰, 「尸可得也。」 夏姬從之。巫臣使介歸幣於楚, 而與夏姬奔晉,  大夫子反怨之, 遂與子重滅巫臣之族, 而分其室。 

詩云, 「乃如之人兮, 懷昏姻也。大無信也, 不知命也!」 嬖色殞命也。

頌曰, 夏姬好美, 滅國破陳, 走二大夫, 殺子之身, 殆誤楚莊, 敗亂巫臣, 子反悔懼, 申公族分。

 

 

장왕이 하희를 연윤양로(連尹襄老)에게 주었는데, 양로는 장왕을 따라 전장에 나가 필(邲)에서 전사했으나 그 시신을 찾아오지 못했다.  양로의 아들 흑요(黑要)가 부친 양로가 전장에 나간 틈을 이용하여 하희와 정을 통했다.(그래서 흑요는 부친의 시신을 찾아올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열국지 5부. 초장왕> )

하희가 흑요와 정을 통한 사실이 시중에 알려지자 부끄러움을 느끼고 친정인 정(鄭)나라로 돌아가려 하였는데 무신이 하희를 만나 말하였다.

"그대가 정나라로 돌아가면 내가 그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소."

초나라에서 장왕이 죽고 그 태자인 심(審)이 즉위하여 공왕(恭王)이 되자 무신은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 틈을 이용하여 그 가족을 모두 데리고 정(鄭)나라로 갔다. 

그리고 사람을 시켜 하희를 불러, "양로의 시신을 찾을 수 있소."라고 말하니 하희는 무신의 말을 따랐다.

무신은 시종(侍從)을 시켜 제나라에 가지고 가려던 예물을 모두 초나라에 돌려 보내고는 하희와 함께 진(晉)나라로 도망갔다. 그 소식을 들은 대부 자반(子反)이 그에게 원한을 품고 자중(子重)과 함께 무신의 일족을 멸하고는 부인들을 나눠 가졌다.

시에, "이와 같은 사람은 혼인만을 생각한다네. 대체로 믿음이 없으면 하늘의 이치를 모르는 것이라.(國風/鄘風/蝃蝀)"라 하였는데 미인을 총애하면 죽는다는 것을 말한다.

송에, "하희의 아름다움은 진나라를 멸망하게 하고, 두 사람의 대부를 도망치게 하였으며, 아들을 죽게 하고, 초나라 장왕을 거의 그르칠 뻔 하게 하였으며 무신을 망치고 어지럽히므로써 자반이 후회하고 경계하여 무신의 일족을 분해시켰다."

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