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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古文學/破閑集

卷下 1. 雞林舊俗 擇男子美風姿者

by 柳川 2020. 10. 23.

雞林舊俗, 擇男子美風姿者, 以珠翠飾之, 名曰花郞, 國人皆奉之。其徒至三千餘人, 若原嘗春陵之養士, 取其潁脫不羣者, 爵之朝, 惟四仙門徒最盛, 得立碑。我太祖龍興, 以爲古國遺風尙不贊矣, 冬月設八關盛會, 選良家子四人, 被霓衣列舞于庭。

郭待制東珣 代作賀表云, 「自伏羲氏之王天下, 莫高太祖之三韓。邈姑射山之有神人, 苑是月城之四子。」

又云, 「桃花流水杳然去, 誰眞跡之難尋, 古家遺俗猶有存, 信皇天之未喪。」

又云, 「匪高之庭, 得詣百獸率舞之列, 凡周之士, 皆歌小子有造之章。」

 

東珣卽郭處士猶子也, 少有才名。時處士入處大內山呼亭, 東珣往謁淸談從容, 會日晩留宿焉。苔夜半月色

練, 上步至山呼亭, 處士命東珣出拜。上曰, 「是何人耶?」 對曰, 「臣兄子某。久不得面, 今幸得叙契闊,

及將還 而金鑰已下。死罪死罪。」 上曰, 「朕亦聞之久矣。」 處士獻壽口占云, 「月影偏尋天子座。」 命

珣續之, 卽跪奏云, 「露花還濕侍臣衣。」 上大加稱賞曰, 「有才如是, 雖明皇豈忍放耶?」 是夕入直金門。

 

原嘗春陵 : 戰國時代 趙平原君、齊孟嘗君、楚春申君、魏信陵君.

潁脫不羣 : 潁脫, 穎脫而出,  不羣, 卓爾不群의 준말. 두각을 나타냄. 뛰어남.      珣 : 옥그릇 순.

 

☞藐姑射山  [莊子 內篇 逍遙遊 06]
   肩吾問於連叔曰:「吾聞言於接輿,大而無當,往而不反。吾驚怖其言,猶河漢而無極也,大有逕庭,不近人情焉。」
   連叔曰:「其言謂何哉?」曰:「藐姑射之山,有神人居焉,肌膚若冰雪,淖約若處子,不食五穀,吸風飲露。乘雲氣,御飛龍,而

   遊乎四海之外。其神凝,使物不疵癘而年穀熟。吾以是狂而不信也。」
   連叔曰:「然,瞽者無以與乎文章之觀,聾者無以與乎鍾鼓之聲。豈唯形骸有聾盲哉?夫知亦有之。是其言也,猶時女也。之人也,

   之德也,將旁礡萬物,以為一世蘄乎亂,孰弊弊焉以天下為事!之人也,物莫之傷,大浸稽天而不溺,大旱、金石流、土山焦而不

   熱。是其塵垢粃糠,將猶陶鑄堯、舜者也,孰肯以物為事!宋人資章甫而適諸越,越人斷髮文身,無所用之。堯治天下之民,平海

   內之政,往見四子, 藐姑射之山,汾水之陽,窅然喪其天下焉。」 

   ○마지막 구절에 요임금이 네 사람의 신인을 만나기 위해 막고야산을 갔다는 내용이 있다.

 

匪高之庭 : 匪高之庭 : 고려 정종의 御諱가 堯이므로 「堯」자를 기피하여 高자를 썼음. 그러나 百獸率舞는 舜임금 때의 일이다.

百獸率舞 : 於是蘷行樂, 祖考至, 群后相讓, 鳥獸翔舞, 簫韶九成, 鳳皇來儀, 百獸率舞, 百官信諧. 帝用此作歌曰:「陟天之命, 維時維幾.」

              乃歌曰:「股肱喜哉, 元首起哉, 百工熙哉!」   <史記, 夏本記>

猶子 : 조카. 형제자매의 아들이나 딸.            契闊 :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소식이 끊어짐.

小子有造 : 大雅 文王之什 思齊

              肆成人有德,小子有造。              그러므로 어른들은 덕이 있고  아이들은 행하였도다.

              古人之無斁,譽髦斯士。              옛사람이 싫어하지 않아 선비들을 명예롭고 훌륭하게 하였다.

 

鑰 : 자물쇠 약. 자물쇠, 빗장. 문에 빗장을 걸어 문단속하는 일. 마음의 단속. 鎭守하는 일. 닫다. 잠금. 깨닫다. 각성. 

口占 : 바로 그 자리에서 시를 지어 읊음. 

明皇 : 唐나라 玄宗을 말함. 다음의 고사가 있음.

        王維가 禁中에서 입직할 때 孟浩然을 불러 놀다가 갑자기 明皇이 이르자 상 밑에 숨었는데, 명황이 불러내어 시를 읊게 하니,

        「不才明主棄, 多病故人疎.(재주 없어 밝은 임금 이 몸 버리고, 병이 잦으니 옛 벗도 멀어지네.)」라 하여, 명황이 「卿不求我, 我豈棄

        卿?(그대가 나를 찾지 않은 것이지, 내가 어찌 그대를 버리겠는가?)」이라 하였다.

 

 

 

계림(雞林 : 新羅)의 옛 풍속에 풍채가 아름다운 남자를 가려, 보석으로 장식하고, 이름을 화랑이라고 하며, 백성들이 모두 그들을 받들었다. 그 무리가 3천여 명에 이르러,  중국 전국시대의 평원군, 맹상군, 춘신군, 신릉군이 선비들을 양성했듯, 뛰어난 자들을 뽑아 조정에서 벼슬까지 주었는데 유독 사선(四仙)의 문도가 가장 번성하여, 비를 세우기까지 하였다.

우리 태조께서 새 왕조를 여셨으나, 옛 나라의 남은 풍속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시어, 겨울 달에 팔관회를 개최하고, 양가의 자제 4명을 선발하여, 화려한 옷을 입혀 뜰에서 열지어 춤추게 하였다.

 

대제(待制) 곽동순(郭東珣)이, 대표로 하례하는 표문을 지어 올렸다.

"복희씨가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 된 이후, 태조의 삼한통일보다 더 높은 것이 없고, 막고야산(邈姑山)에 신인이 있다 하였는데, 우리나라(苑)에는 월성의 네 사람이 있습니다."

또, "복사꽃이 아득하게 멀리 물에 떠내려가고,  참된 발자취는 찾기 어렵다지만, 옛 집안의 유풍이 아직 존속하고 있으니, 진실로 하늘이 옛 집을 망치지 않았도다."라 하고,

또, "순임금의 뜰이 아니지만, 뭇 짐승들이 다 같이 춤추며 대열지어 이르고, 주위에 운집한 선비들이, 모두 소자유조의 장(小子有造章[大雅/文王之什/思齊])을 노래하도다."라고 하였다.

 

동순은 바로 처사 곽여(郭璵)의 조카로, 어려서부터 재주가 있다고 이름이 났다. 당시 처사가 궁궐의 산호정에서 거처하고 있었는데, 동순이 찾아가 뵙고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교롭게도 날이 저물어 그곳에서 묵게 되었다. 밤이 깊어 달빛이 마치 흰 비단을 펴놓은 것같이 아름다워, 임금님의 발걸음이 산호정에까지 이르렀는데, 처사가 동순에게 명하여 나아가 절을 올리게 하였다.

주상이 물으셨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신의 조카입니다. 오랫동안 만나보지 못하였다가, 오늘 다행히 만나 서로 격조한 회포를 풀다가, 돌아가려 하였으나, 궁궐 문이 이미 닫혀서 가지 못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주상께서, "짐 또한 그의 소문을 들은지 오래로다."하니,

 

처사는 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며 술잔을 올리고 바로 시를 지어 바쳤다.

"달빛은 오로지 천자의 자리만을 찾는다네." 라 하고, 동순에게 명하여 시를 잇게 하자, 바로 무릎을 꿇고 아뢰어 올렸다. "이슬 머금은 꽃이 임금 곁에 시립한 신하의 옷을 적시는구나."

주상께서 크게 칭찬하시고 상까지 내리시며 말씀하셨다.

"재주가 이와 같으니, 명황이라 할지라도 어찌 차마 내쫓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날 저녁으로 바로 궁궐[門]에 들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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