勸酒十四首〈并序〉
予分秩東都,居多暇日。閒來輒飲,醉後輒吟,若無詞章,不成謠詠。每發一意,則成一篇,凡十四篇,皆主於酒,聊以自勸,故以何處難忘酒、不如來飲酒命篇。 <白氏長慶集 巻二十七>
내가 동도(洛陽)에 분질이 되어, 살면서 한가로운 날이 많았다. 한가하면 곧 술을 마시고 취하면 곧 시를 읊었으니 만약 시가(詩歌)가 없으면 노래를 부르지 못할 것이다. 매번 생각이 날 때 한 편을 만들었는데 모두 14편이 되었다. 모두 주로 술에 관한 것으로 자작하며 즐기던 것이어서 ‘하처난망주(何處難忘酒)’와 '불여래음주(不如來飲酒)'로 이름 지었다.
分秩 : 벼슬이름으로 보임. 太和三年夏, 樂天始得請爲太子賓客, 分秩於洛下, 息躬於池上. <白居易 池上篇并序 中>
其一.
何處難忘酒、 어딜 가던 술 생각 잊기 어렵네.
長安喜氣新。 장안에서 새로운 기운을 즐기노라.
初登高第日、 처음 과거에 올라
乍作好官人。 잠깐 동안 좋은 관리가 되었었다.
省壁明張牓、 중서성 벽에는 합격 방문 붙었고
朝衣穩稱身。 조복은 몸에 꼭 들어맞았다.
此時無一盞、 이럴 때 한 잔 술이 없다면
爭奈帝城春。 서울의 봄을 어찌 보내랴
其二.
何處難忘酒、 어디서나 술 생각 잊기 어렵네.
天涯話舊情。 낯선 곳에서 옛 친구와 정을 나누네.
靑雲俱不達、 모두 청운의 꿈은 이루지 못하고
白髮遞相驚。 백발만 내려앉아 서로 놀랐다.
二十年前別、 이십 년 전 헤어져
三千里外行。 삼천 리 밖을 돌아다녔구나.
此時無一盞、 이럴 때 한 잔 술이 없다면
何以敍平生。 어찌 평생을 말하겠는가.
天涯 : 하늘 끝, 아득히 먼 곳. 아득하게 멀리 떨어진 낯선 곳을 이르는 말.
遞 : 번갈아, 교대로, 두르다. 둘러쌈.
其三.
何處難忘酒、 어디서나 술 생각 잊기 어렵네.
朱門羨少年。 부잣집 사람들 젊음을 부러워할 때로다
春分花發後、 춘분날 온갖 꽃 활짝 피었고
寒食月明前。 한식날 달도 밝구나
小院廻羅綺、 작은 정원에 비단옷 입은 여인들 배회하고
深房理管絃。 깊은 방 안에서는 음악소리 들리는구나.
此時無一盞、 이럴 때 한 잔의 술도 없이
爭過艶陽天。 어찌 이 좋은 날을 보내랴 !
朱門 : 지위가 높은 벼슬아치의 집. 붉은 칠을 한 대문. 귀족 부호의 집을 뜻함
其四.
何處難忘酒、 어디서 술 생각 잊을까.
霜庭老病翁。 서리 내린 뜰에 늙고 병든 노인.
闇聲啼蟋蟀、 귀뚜라미 우는 소리 음산하고
乾葉落梧桐。 마른 잎 오동나무에서 진다.
鬢爲愁先白、 귀밑 머리 수심에 먼저 희어지고
顔因醉暫紅。 얼굴은 취기에 잠깐 새에 붉어지네
此時無一盞、 이럴 때 한 잔의 술이 없다면
何計奈秋風。 이 가을바람을 어찌하랴
其五.
何處難忘酒、 어디서나 술 생각 잊기 어렵네.
軍功第一高。 전공이 제일 높았도다.
還鄕隨露布、 고향에 돌아갈 때 승리소식 이어지고,
半路授旌旄。 거리는 깃발로 덮였도다.
玉柱剝蔥手、 거문고 발에 고운 손 다 벗겨지고
金章爛椹袍。 금빛 문장이 도포보다 찬란하구나
此時無一盞、 이럴 때 한 잔의 술이 없다면
何以騁雄豪。 무엇으로 영웅호걸의 기백을 떨칠까!
露布 : 격문(檄文). 군대의 승리의 소식. 蔥手 : 섬섬옥수. 고운 손.
椹 : 모탕 침/ 오디 심. 모탕. 나무 팰 때 밑에 괴는 나무. 과녁. 다듬잇 돌. 오디, 뽕나무 열매. 버섯.
其六.
何處難忘酒、 어디서나 술 생각 잊기 어렵네.
靑門送別多。 동문에는 송별연도 많다
斂襟收涕淚、 옷깃을 걷으며 눈물을 거두니
簇馬聽笙歌。 늘어선 말들도 생황 소리를 듣는다.
煙樹灞陵岸、 파릉 언덕 안개서린 나무들
風塵長樂坡。 장락궁 언덕에 바람에 날리는 먼지.
此時無一盞、 이럴 때 한 잔의 술도 없이,
爭奈去留何。 어찌 이별하랴
靑門 : 진(秦) 나라 동릉후(東陵侯) 소평(邵平)이 진 나라가 망한 뒤 포의(布衣)의 신분이 되어 장안성(長安城) 동쪽 청문(靑門) 밖에서
오이를 심어 가꾸며 은거했는데, 그 오이가 맛이 좋기로 유명하여 당시 사람들로부터 동릉과(東陵瓜)라고 일컬어지기까지 했
던 데서 온 말이다. 청문은 곧 동문의 별칭.
簇 : 조릿대 족/모일 주/살촉 촉(즉). 조릿대. 가는 대. 세죽(細竹). 모이다. 떨기짐. 화살촉. 灞 : 물이름 파.
其七.
何處難忘酒、 어디서나 술 생각 잊기 어렵네.
逐臣歸故園。 내쫓긴 신하 고향으로 돌아간다.
赦書逢驛騎、 사면 조서 역참에서 받으니,
賀客出都門。 하객들 도성문을 나온다.
半面瘴煙色、 얼굴은 병색이 완연하고,
滿衫鄕淚痕。 저고리는 고향생각에 흘린 눈물자국뿐이다.
此時無一盞、 이럴 때 한 잔의 술도 없다면,
何物可招魂。 무엇으로 마음을 다잡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