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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歷史와文學/列國志

第三七回. 介子推守志焚綿上, 太叔帶怙寵入宮中.

by 柳川 2021. 3. 22.

第三七回. 介子推守志焚綿上, 太叔帶怙寵入宮中.

 

 

話說晉文公在王城,誅了呂省郤芮,向秦穆公再拜稱謝。因以親迎夫人之禮,請逆懷嬴歸國。穆公曰:「弱女已失身子圉,恐不敢辱君之宗廟,得備嬪嬙之數足矣。」 文公曰:「秦晉世好,非此不足以主宗祀。舅其勿辭!且重耳之出,國人莫知,今以大婚爲名,不亦美乎?」 穆公大喜,乃邀文公復至雍都,盛飾輜軿,以懷嬴等五人歸之。又親送其女,至於河上,以精兵三千護送,謂之「紀綱之僕」。(今人稱管家爲紀綱,蓋始於此。)文公同懷嬴等濟河,趙衰諸臣,早備法駕於河口,迎接夫婦升車。百官扈從,旌旗蔽日,鼓樂喧天,好不鬧熱!昔時宮中夜遁,如入土之龜,縮頭縮尾;今番河上榮歸,如出岡之鳳,雙宿雙飛。正所謂「彼一時,此一時」也。文公至絳,國人無不額手稱慶。百官朝賀,自不必說。遂立懷嬴爲夫人。

 

紀綱之僕 : 나라의 기강을 잡을 수 있는 종. 국가를 잘 다스릴 만한 신하.   

        최고로 훈련되어 군율(軍律)과 근본이 꽉 잡힌 정예 용사를 의미. 여기서의 복(僕)은 종이 아니라 병사·용사 등으로 풀이됨.

        진목공(秦穆公)이 주유천하(周遊天下) 끝에 진(秦)나라에 도달한 진(晉) 공자 중이(重耳)를 극진히 예대(禮待)하고 딸 회영

        (懷寧)과 혼인시킨 후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 마침내 제후위를 획득하게 한 후 회영과 함께 귀국할 때 최고 정예 부대 3천

        명을 주어 호위하게 했다고 함. 여기서 유래된 기강(紀綱)이라는 말은 이후 집안이나 나라를 바로잡는 근본 도리를 뜻하는

          말로 널리 사용되게 됨.           <네이버 지식백과>

額手 : 이마에 손을 댐. 곧 경의(敬意)를 표함.

 

 

 

당진의 문공은 왕성에서 여생과 극예를 죽이고 나서 섬진의 목공에게 두 번 절하고 칭사했다.  또 회영을 예로써 친히 맞이해 함께 귀국하고자 청했다.

목공이 말했다.

"과인의 아이는 이미 자어에게 출가한 자라 군주의 종묘에 욕을 끼칠까 두렵습니다. 빈(嬪)이나 궁녀로 거두어도 족하다 하겠습니다."

문공이 대답했다.

"섬진과 당진은 대를 이어 교분을 맺어왔는데 그 일은 종사를 주관하기에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장인께서는 사양하지 마십시오. 또 제가 나라밖으로 나온 일은 국인들이 알지 못합니다. 이제 혼례를 크게 치루어 명분으로 삼는다면 그 또한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목공이 크게 기뻐하고 문공을 도읍인 옹으로 불러 부인용 수레를 성대하게 치장하고 회영과 다섯 명의 잉첩을 데리고 돌아가게 하였다. 

또 회영을 황하 강변까지 전송을 나가 강변에 도착하자 정예군 3천 명으로 하여금 호송하게 하고 그들을 '기강지복(紀綱之僕)'이라 했다.   - 지금 사람들이 집안을 다스리는 자를 기강이라 하였는데 모두 이에서 비롯되었다.- 문공은 회영등과 함께 황하를 건넜는데 조최등 신하들은 하구에 법가를 미리 준비하였다가 부부를 영접하여 수레에 오르게 하였다. 백관들이 호종하게 되니 깃발이 해를 가리고 북소리가 하늘에 닿았으니 그 열기가 어찌 대단하지 않았겠는가!  옛날 궁안에서 밤에 도망칠 때에는 땅 위에 나온 자라가 머리와 꼬리를 움추린 것 같았는데 이번에 황하를 건너 돌아가는 모습은 그 기세가 당당하여 산등성이에 봉황이 출현하여 머물다가 비상하는 모습같았다. 

바로 이른바 '그때는 그때요,  이때는 이때다.'라 하는 것이다. 

문공이 도읍인 강(絳)에 이르자 국인들로서 이마에 손을 대며 경의를 표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백관의 조하를 받고 마침내 회영을 부인으로 삼았다.

 

 

 

當初晉獻公嫁女伯姬之時,使郭偃卜卦,其繇云:「世作甥舅,三定我君。」 伯姬爲秦穆公夫人,穆公女懷嬴,又爲晉文公夫人,豈不是「世作甥舅?」 穆公先送夷吾歸國,又送重耳歸國,今日文公避難而出,又虧穆公誘誅呂郤,重整山河,豈不是「三定我君」?又穆公曾夢寶夫人,引之遊於天闕,謁見上帝,遙聞殿上呼穆公之名曰:「任好聽旨,汝平晉亂!」 如是者再。穆公先平里克之亂,復平呂郤之亂,一筮一夢,無不應驗。

詩云:

萬物榮枯皆有定,

浮生碌碌空奔忙;

笑彼愚人不安命,

强覓冬雷和夏霜。

 

 

 

처음 당진의 헌공이 딸 백희를 시집보낼 때 태복(太卜) 곽언(郭偃)으로 하여금 점을 치게 하였더니 그 점괘는 다음과 같았다.

"대대로 사위와 장인이 되고 우리나라의 군주를 세 번 세우게 될 것이다."

백희가 섬진 목공의 부인이 되었고 목공의 딸 회영은 당진 문공의 부인이 되었으니 어찌 그 일이 '대를 이어 장인과 사위가 되는 일이 아닌가?'  목공은 앞서 이오(夷吾)를 귀국시켜 군주가 되게 하였고  또 중이를 귀국시켜 군주로 옹립시켰으나  금일 문공이 난을 피해 출국한 후 목공이 여생과 극예를 유인해 죽이므로써  당진의 산하(山河)를 거듭 안정시켰으니 어찌 우리나라의 군주를 세 번 세운 것이 아니겠는가?

또 목공은 일찍이 꿈 속에서 보부인(寶夫人)의 안내로 천상의 대궐에 들어가서 상제를 알현하였는데 전각 위에서 목공의 이름을 부르며 하는 말을 들었다.

"임호(任好)는 내 뜻을 받들어 당진의 난을 평정하라!"

이와 같은 말이 반복되었었다. 목공은 앞서 이극의 난을 평정했고 또 여생과 극예의 난을 다스렸으니 한 점괘와  한 꿈이 증험을 보볐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두고 지은 시가 있다.

 

만물의 영고성쇠는 모두 정해져 있는데,

덧없는 인생 하찮은 일에 부질없이 바쁘기만 하구나.

우습구나! 저 어리석은 사람들, 목숨이 어찌될지도 모르고,

억지로 겨울에 번개를 찾고 여름에 서리를 찾으려 하는가?

 

 

 

文公追恨呂郤二人,欲盡誅其黨。趙衰諫曰:「惠懷以嚴刻失人心,君宜更之以寬。」 文公從其言,乃頒行大赦。呂郤之黨甚眾,雖見赦文,猶不自安,訛言日起,文公心以爲憂。忽一日侵晨,小吏頭須叩宮門求見。文公方解髮而沐,聞之怒曰:「此人竊吾庫藏,致寡人行資缺乏,乞食曹衛。今日尙何見爲?」 閽人如命辭之。頭須曰:「主公得無方沐乎?」 閽者驚曰:「汝何以知之?」 頭須曰:「夫沐者,俯首曲躬,其心必覆;心覆則出言顚倒,宜我之求見而不得也。且主公能容勃鞮,得免呂郤之難;今獨不能容頭須耶?頭須此來,有安晉國之策。君必拒之,頭須從此逃矣。」 閽人遽以其言告於文公,文公曰:「是吾過也!」 亟索冠帶裝束,召頭須入見。頭須叩頭請罪訖,然後言曰:「主公知呂郤之黨幾何?」 文公蹙眉而言曰:「眾甚。」 頭須奏曰:「此輩自知罪重,雖奉赦猶在懷疑,主公當思所以安之。」 文公曰:「安之何策?」 頭須奏曰:「臣竊主公之財,使主公饑餓。臣之獲罪,國人盡知。若主公出遊而用臣爲御,使擧國之人,聞且見之,皆知主公之不念舊惡,而群疑盡釋矣。」 文公曰:「善。」 乃託言巡城,用頭須爲御。呂郤之黨見之,皆私語曰:「頭須竊君之藏,今且仍舊錄用,況他人乎?」 自是訛言頓息。文公仍用頭須掌庫藏之事。因有恁般容人之量,所以能安定晉國。

 

 

 

문공은 여생과 극예 두 사람에게 한이 맺혀 그들을 따랐던 무리를 모조리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자 조최가 간했다.

"혜공과 회공은 엄격하고 모질어 인심을 잃었습니다. 주군께서는 관대함으로 고쳐야 마땅합니다."

문공이 그 말에 좇아 크게 사면을 행했다.  여생과 극예의 무리가 너무 많아 사면령을 보고도 스스로 불안함을 느끼고 매일 헛소문을 퍼뜨렸는데 문공이 매우 괴로워했다.  어느날 새벽에 갑자기 하급관리였던 두수(頭須)가 궁문을 두드려 알현을 청했다.

문공은 그때 막 머리를 풀고 목욕을 하려던 참인데 그 말을 듣고 노하여 말했다.

"이 자는 내 물건을 도둑질한 자로 과인은 그 때문에 여행경비가 떨어져 조(曹)나라와 위(衛)나라 사이에서 먹을 것을 구걸해야만 했다. 오늘은 무슨 일로 보자고 하는 것인가?"

문지기에게 명을 내려 거절하게 했다.

두수가 물었다.

"주공께서는 방금 목욕하던 중이 아니었습니까?"

문지기가 놀라서 물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두수가 대답했다.

"목욕하는 사람은 머리를 숙이고 몸을 구부리니 그 마음도 반드시 뒤집어집니다. 마음이 뒤집어지게 되면 하시는 말씀도 거꾸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알현을 청해도 만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 주공께서는 발제를 받아들이시어 여생과 극예의 난을 면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찌 두수를 용납하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당진을 평안히 할 계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군께서 반드시 거부하시겠다면 저는 이곳에서 도망쳐버리겠습니다."

문지기가 급히 그 말을 문공에게 전하자 문공이 말했다.

"이것은 내 잘못이로다."

그리고는 급히 의관을 바로하고 두수를 불러 만났다. 

두수는 머리를 조아리며 죄를 청한 후 말했다.

"주군께서는 여생과 극예의 무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문공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매우 많다."

두수가 아뢰었다.

"그 무리들은 스스로 자신의 죄가 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 사면령을 받든다 해도 오히려 의심하고 있을 것이니 주군께서는 마땅히 그들을 안심시킬 방도를 생각하셔야 할 것입니다."

문공이 물었다.

"그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무슨 대책이 있는가?"

두수가 아뢰었다.

"신이 주공의 재물을 훔쳐 주공께서 굶주리시게 되었습니다. 신이 죄를 지은 일은 국인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만약 주공께서 나들이를 하실 때 신을 마부로 쓰신다면 모든 국인들이 듣고 보게 될 것이며, 모두 주공께서는 옛날의 죄를 불문에 부치신다는 것을 알고 모두 의혹을 풀게 될 것입니다."

문공은 "좋다." 하고는 성안을 순시한다는 핑계로 두수를 마부로 기용하였다. 

여생과 극예의 무리들이 그 모습을 보고 모두 은밀하게 말했다.

"두수는 주군의 물건을 훔쳤던 자인데도 지금 또 옛날의 그 자리에 기용하였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이야 어찌 하겠는가?"

그로부터 헛소문이 갑자기 사라졌다. 문공은 두수에게 부고를 관리하는 일을 맡겼다. 문공의 이러한 용인술로 당진은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文公先爲公子時,已娶過二妻。初娶徐嬴早卒。再娶偪姞,生一子一女,子名驩,女曰伯姬。逼姞亦薨於蒲城。文公出亡時,子女俱幼,棄之於蒲,亦是頭須收留,寄養於蒲民遂氏之家,歲給粟帛無缺。一日,乘間言於文公。文公大驚曰:「寡人以爲死於兵刃久矣,今猶在乎?何不早言?」 頭須奏曰:「臣聞『母以子貴,子以母貴。』君周遊列國,所至送女,生育已繁。公子雖在,未卜君意何如?是以不敢遽白耳。」  文公曰:「汝如不言,寡人幾負不慈之名!」 即命頭須往蒲,厚賜遂氏,迎其子女以歸,使懷嬴母之。遂立驩爲太子,以伯姬賜與趙衰爲妻,謂之趙姬。

 

偪 : 핍박할 핍/나라 이름 복. 핍박하다(逼迫--), 죄다, 강박하다. 접근하다(接近--), 육박하다. 좁다. 행전.    姞 : 성 길. 성. 삼기다.

 

 

 

문공은 앞서 공자 시절 이미 두 사람의 아내를 얻었었다. 처음의 아내는 서영(徐嬴)인데 일찍 죽었고, 두번째 아내 복길(偪姞)을 취하여 1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의 이름은 환(驩)이라 했으며, 딸은 백희(伯姬)라 하였다. 복길도 역시 포성에서 죽었는데 문공이 망명을 떠날 때 자녀들이 모두 어려서 포땅에 버려두었었는데 두수가 거두어 머물면서 포읍의 백성인 수씨(遂氏)의 집에 맡겨 키우게 하였으며 해마다 양식과 비단을 공급하며 부족함이 없게 하였다.  하루는 틈을 타 문공에게 그 사실을 고했다.

문공이 크게 놀라 말했다.

"과인은 병사들의 칼을 맞아 죽은 것으로 생각한지 오래 되었는데 지금 아직도 살아 있다는 말인가? 어찌 진즉 말하지 않았는가?"

두수가 아뢰었다.

"신이 듣기에 '모친은 자식때문에 귀해지고, 자식은 모친때문에 귀해진다.'고 하였습니다. 주군께서 열국을 주유하시면서 이르시는 곳마다  여인들을 맞이하시어 낳아 기르는 일이 잦았는데  공자가 살아 있었다 해도 주군의 뜻이 어떠할지 헤아리지 못해 감히 일찍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문공이 말했다.

"네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과인은 거의 자애롭지 못한 이름을 갖게 될 뻔 했구나."

바로 두수에게 명하여 포읍으로 가서 수씨에게 후하게 사례하고 자녀를 맞이해오도록 하여 회영이 모친이 되게 하였다.  마침내 환을 태자로 삼고 백희는 조최에게 시집보내니 조희(趙姬)라 불리었다. 

 

 

  

翟君聞晉侯嗣位,遣使稱賀,送季隗歸晉。文公問季隗之年,對曰:「別來八載,今三十有二矣。」 文公戲曰:「猶幸不及二十五年也。」 齊孝公亦遣使送姜氏於晉,晉侯謝其玉成之美。姜氏曰:「妾非不貪夫婦之樂,所以勸駕者,正爲今日耳。」 文公將齊翟二姬平昔賢德,述於懷嬴。懷嬴稱讚不已,固請讓夫人之位於二姬。於是更定宮中之位,立齊女爲夫人,翟女次之,懷嬴又次之。趙姬聞季隗之歸,亦勸其夫趙衰,迎接叔隗母子。衰辭曰:「蒙主公賜婚,不敢復念翟女也!」 趙姬曰:「此世俗薄德之語,非妾所願聞也。妾雖貴,然叔隗先配,且有子矣,豈可憐新而棄舊乎?」 趙衰口雖唯唯,意猶未決。趙姬乃入宮奏於文公曰:「妾夫不迎叔隗,欲以不賢之名遺妾,望父侯作主!」 文公乃使人至翟,迎叔隗母子以歸。趙姬以內子之位讓翟女,趙衰又不可。趙姬曰:「彼長而妾幼,彼先而妾後,長幼先後之序,不可亂也。且聞子盾,齒已長矣,而又有才,自當立爲嫡子。妾居偏房,理所當然。若必不從,妾惟有退居宮中耳!」 衰不得已,以姬言奏於文公。文公曰:「吾女能推讓如此,雖周太姙莫能過也!」 遂宣叔隗母子入朝,立叔隗爲內子,立盾爲嫡子。叔隗亦固辭,文公喻以趙姬之意,乃拜受謝恩而出。盾時年十七歲,生得氣宇軒昻,擧動有則,通詩書,精射御,趙衰甚愛之。後趙姬生三子,曰同,曰括,曰嬰,其才皆不及盾。此是後話。

史官敘趙姬之賢德,讚云:

陰性好閉,不嫉則妒,

惑夫逞驕,篡嫡敢怒。

褒進申絀,服懽臼怖,

理顯勢窮,誤人自誤。

貴而自賤,高而自卑,

同括下盾,隗壓於姬。

謙謙令德,君子所師,

文公之女,成季之妻。

 

 

 

적(翟)나라 군주는 중이가 당진의 군주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자를 보내 칭하(稱賀)하며 계외를 당진으로 보냈다. 

문공이 계외에게 나이를 묻자 계외가 대답했다.

"이별한지 8년이 되었으니 지금 32살이 되었습니다."

문공이 희롱조로 말했다.

"다행하게도 25년은 되지않았군!"

제(齊)나라 효공(孝公)도 사자를 보내며 강씨를 당진으로 보냈는데 문공은 강씨를 만나자 그녀의 아름다운 행실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강씨가 대답했다.

"제가 부부간의 즐거움을 탐하지 않고 수레에 모시고 가기를 권하였기 때문에 바로 오늘이 있게 되었습니다."

문공이 제나라와 적나라에서 온 두 여인이 행한 옛날부터의 어진 덕행을 회영에게 설명하자 회영이 칭찬을 금치 못하고 굳이 부인의 지위를 두 여인에게 양보하였다. 그리하여 궁중에서의 지위를 다시 정했는데 제녀(齊女)를 부인으로 삼고 적녀(翟女)를 다음으로 하며 회명을 또 그 다음으로 정했다. 조희는 계외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 남편 조최에게 권하여 숙외(叔隗)의 모자를 맞이해오게 하였다.

조최가 사양하며 말했다.

"주공의 은덕으로 혼인을 했는데 감히 또 적나라에 두고 온 여인을 생각할 수 있겠소?"

조희가 말했다.

"그 말씀은 세속의 야박한 말이라 저는 듣고싶지 않은 말입니다. 저는 비록 귀한 몸이지만 숙외는 먼저 배우자가 된 사람이고 또 자식까지 두었는데 어찌 새로운 사람을 아름답게 여기고 옛 사람을 버리려 하십니까?" 

조최는 입으로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으나 뜻을 차마 결정하지 못했다. 

조희가 마침내 궁으로 들어가 문공에게 아뢰었다.

"제 남편이 숙외를 맞이해 오지 않고 저에게 어질지 못한 여인이라는 누명을 쓰게 합니다. 바라건대 아버님께서 주도해 주십시오!"

마침내 문공은 적나라에 사람을 보내 숙외의 모자를 맞이해 오도록 했다.  조희는 부인의 지위를 숙외에게 양보하려고 하자 조최가 듣지 않았다.

조희가 말했다.

"그분은 나이가 많은데 저는 어리고, 그분은 먼저 남편을 모셨으나 저는 뒤에 모셨으니 나이로 선후의 차례를 정하는 것이라 어지러운 일이 될 수 없습니다. 또 그 아들 돈(盾)은 나이가 이미 많고 재주가 있으니 적자로 세우는 것이 마땅합니다. 저는 구석방에서 지내는 것이 이치상 당연한 일입니다. 만약에 제 말을 따르지 못하시겠다면 저는 궁중으로 물러나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조최는 어쩔 수 없이 조희의 말을 문공에게 이뢰었다. 

그 말을 들은 문공이 말했다. 

"내 딸이 이처럼 양보할 수 있다니, 주나라 문왕의 모친인 태임도 이보다 나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침내 조서를 내려 숙외의 모자를 입조케 하여 숙외를 부인으로 삼고 조돈을 적자로 세우게 했다. 속외도 강경하게 사양했으나 문공이 조희의 뜻을 설명하자 절하며 은혜를 받아들이고 궁을 나갔다. 조돈은 당시 17살이었는데 기우가 헌앙하고 거동에 법도가 있었으며 시서에 정통했고 활쏘기에도 능해 조최가 매우 사랑했다.  후에 조희도 세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동(同), 괄(括), 영(嬰)이라 했는데 재주가 조돈에 미치지 못했다. 이것은 후일의 이야기이다. 

사관이 조희의 어진 덕행을 글로 써서 칭찬했다

 

여자는 성격이 폐쇄적이라, 미워하지 않으면 투기를 하게 되고,

남편을 미혹시키면 교만해지며, 적자의 자리를 빼앗기면 분노한다.

포사는 신후를 쫒아내고, 백복을 낳아 기뻐했으나 태자 의구(宜臼)를 두려워 했도다.

이치가 드러나 형세가 궁해지자, 남을 그르치더니 자신도 그르쳤도다.

 

귀하면서도 스스로 천한 길을 택하고, 지위가 높으면서도 스스로 낮은 자리에 앉으며,

자신의 아들 공과 괄도 숙외의 아들 돈의 아래에 두고, 숙외도 자신보다 위에 두었도다.

겸양하고 겸양하는 아름다운 덕은 군자들의 사표(師表)가 되었으니,

문공의 딸이오, 성계(=조최의 자)의 아내로다.

 

 

 

再說晉文公欲行復國之賞,乃大會群臣,分爲三等:以從亡爲首功,送款者次之,迎降者又次之。三等之中,又各別其勞之輕重,而上下其賞。第一等從亡中,以趙衰狐偃爲最;其他狐毛、胥臣、魏犨、狐射姑、先軫、顚頡,以次而敘。第二等送款者,以欒枝郤溱爲最,其他士會、舟之僑、孫伯糾、祁滿等,以次而敘。第三等迎降者,郤步揚、韓簡爲最;其他梁繇靡,家僕徒、郤乞、先蔑、屠擊等,以次而敘。無采地者賜地,有采地者益封。別以白璧五雙賜狐偃曰:「向者投璧於河,以此爲報。」 又念狐突冤死,立廟於晉陽之馬鞍山,後人因名其山曰狐突山。又出詔令於國門:「倘有遺下功勞未敘者,許其自言。」 小臣壺叔進曰:「臣自蒲城相從主公,奔走四方,足踵俱裂。居則侍寢食,出則戒車馬,未嘗頃刻離左右也。今主公行從亡之賞,而不及於臣,意者臣有罪乎?」 文公曰:「汝來前,寡人爲汝明之。夫導我以仁義,使我肺俯開通者,此受上賞;輔我以謀議,使我不辱諸侯者,此受次賞;冒矢石,犯鋒鏑,以身衛寡人者,此復受次賞。故上賞賞德,其次賞才,又其次賞功。若夫奔走之勞,匹夫之力,又在其次。三賞之後,行且及汝矣。」 壺叔愧服而退。文公乃大出金帛,遍賞輿儓僕隸之輩,受賞者無不感悅。惟魏犨顚頡二人,自恃才勇,見趙衰狐偃都是文臣,以辭令爲事,其賞卻在己上,心中不悅,口內稍有怨言。文公念其功勞,全不計較。

 

鏑 : 화살촉 적. 화살촉. 우는 . 명전(鳴箭). 효시(嚆矢).        儓 : 하인 대. 하인. 집사. 심부름꾼. 가신. 농부. 어리석다.

 

 

 

한편 당진의 문공은 나라를 되찾은데 대한 포상을 실시하고자 신하들과 대대적인 모임을 갖고 세 등급으로 분류했다. 함께 망명한 자들을 으뜸의 공으로 하고 국내에 있으면서 도움을 보인 자들을 다음으로 하고 귀국 후  맞이하여 항복한 자들을 다음으로 하였다.  

제 1등급은 함께 망명했던 자들 중 조최(趙衰), 호언(狐偃)을 으뜸으로 하고 나머지 호모(狐毛)、서신(胥臣)、위주(魏犨)、호사고(狐射姑)、선진(先軫)、전힐(顚頡)을 다음 등급으로 했다. 제 2등급으로 국내에서 도움을 보인 자들 중 난지(欒枝), 극진(郤溱)을 으뜸으로 하고 나머지 사회(士會)、주지교(舟之僑)、손백규(孫伯糾)、기만(祁滿)등을 다음 등급으로 했다.  제 3등급의 문공을 맞이한 후 항복한 자들 중 극보양(郤步揚)、한간(韓簡)을 으뜸으로 하고 나머지 양요미(梁繇靡),가복도(家僕徒)、극걸(郤乞)、선멸(先蔑)、도격(屠擊)등을 다음 등급으로 했다.

이들 중 채지(采地)가 없는 자들에게는 채지를 내리고 채지가 있는 자들에게는 녹봉을 더 해주었다. 

따로 백벽 5쌍을 호언에게 하사하면서 말했다.

"지난 번에 황하에 버렸던 백벽을 이것으로 갚습니다."

또 호돌이 원통하게 죽은 일을 떠올리고 진양(晉陽)의  마안산(馬鞍山)에 사당을 세웠는데 후세 사람들이 이로 인하여 산 이름을 호돌산(狐突山)이라 불렀다. 

또 명을 내려 도성 성문에 조령(詔令)을 걸게 하였다. 

"자신의 공이 누락되어 등급을 받지 못한 자가 있으면 스스로 고하기 바란다."

하급 관리인 호숙(壺叔)이 진언했다.

"신은 포성에서부터 주공을 따라 사방을 유랑하며 발이 모두 부르텄습니다. 머무를 때는 침식을 수발했으며 나가실 때에는 거마를 돌보면서 잠시라도 곁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주공께서는 함께 망명했던 자들을 포상하셨는데 신에게는 상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신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입니까?"

문공이 대답했다.

"너는 앞으로 나오라. 과인이 너에게 그 이유를 밝히리라. 무릇 나를 인의(仁義)로 인도하여 그의 말이 나의 폐부를 찌른 자들은 으뜸이 되는 상을 받았고, 나를 도와 계책을 논의하며 나로 하여금 제후들에게 욕을 당하지 않게 한 자들은 그 다음의 상을 받았으며, 시석을 무릅쓰며 날카로운 화살촉을 거스르며 몸으로 나를 지킨 자는 그 다움 상을 받았다. 그러므로 으뜸의 상을 받은 자들은 그 덕행을 포상한 것이고  그 다음의 상을 받은 자들은 그 재주를 포상한 것이며  또 그 다음은 그가 세운 공을 포상한 것이다.  나를 따라다닌 노고는 필부의 노력이라,  또 그 다음이 될 것이다.  세 부류에 대한 포상을 마친 후 너에게도 상이 돌아가게 될 것이다."

호숙은 부끄러워하며 승복하고 물러갔다.  문공은 금과 비단을 크게 내놓고 하인, 심부름꾼이나 노비등의 무리에게도 두루 상을 내렸고 상을 받은 자들은 모두 감격하고 기뻐했다.  오직 위주와 전힐 두 사람은 스스로 재주와 용력을 믿고 조최와 호언이 모두 문신으로 말하는 것으로 일삼는 자들인데 자신들보다 높은 상을 받은데 대해 블쾌한 마음을 가지고 원망하는 말을 자주 하고 다녔다. 문공은 그동안 그들의 공로를 생각하고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又有介子推,原是從亡人數,他爲人狷介無比,因濟河之時,見狐偃有居功之語,心懷鄙薄,恥居其列,自隨班朝賀一次以後,託病居家,甘守淸貧,躬自織屨,以侍奉其老母。晉侯大會群臣,論功行賞,不見子推,偶爾忘懷,竟置不問了。鄰人解張,見子推無賞,心懷不平;又見國門之上,懸有詔令:「倘有遺下功勞未敘,許其自言。」 特地叩子推之門,報此消息。子推笑而不答。老母在廚下聞之,謂子推曰:「汝效勞十九年,且曾割股救君,勞苦不小。今日何不自言?亦可冀數鍾之粟米,共朝夕之饔飱,豈不勝於織屨乎?」 子推對曰:「獻公之子九人,惟主公最賢。惠懷不德,天奪其助,以國屬於主公。諸臣不知天意,爭據其功,吾方恥之!吾寧終身織屨,不敢貪天之功以爲己力也!」 老母曰:「汝雖不求祿,亦宜入朝一見,庶不沒汝割股之勞。」 子推曰:「孩兒旣無求於君,何以見爲?」 老母曰:「汝能爲廉士,吾豈不能爲廉士之母?吾母子當隱於深山,毋溷於市井中也。」 子推大喜曰:「孩兒素愛綿上,高山深谷,今當歸此。」 乃負其母奔綿上,結廬於深谷之中,草衣木食,將終其身焉。鄰舍無知其去跡者。惟解張知之,乃作書夜懸於朝門。文公設朝,近臣收得此書,獻於文公。

文公讀之,其詞曰:

有龍矯矯,悲失其所;

數蛇從之,周流天下。

龍飢乏食,一蛇割股;

龍返於淵,安其壤土。

數蛇入穴,皆有寧宇;

一蛇無穴,號於中野!

 

狷 : 성급할 견. 성급하다. 견개하다(狷介 : 고집이 세고 지조가 굳다). 뜻이 굳다.     居功 : 공이 있다고 자처하다.

效勞 : 진력(盡力)하다. 힘쓰다. 충성을 다하다. (충실하게) 복무하다.         

溷 : 어지러울 혼.  어지럽다. 울적하다. 섞이다 . 흐려지다. 물이 흐린 모양. 더러워지다. 욕보이다. 뒷간. 울적하다.

矯矯 : 날래고 사나운 모양.

 

 

 

또 개자추(介子推)란 자가 있었는데 원래 문공을 따라 망명을 했던 자로서 그 사람됨이 비할 바 없이 강직했는데, 황하를 건널 때 호언이 공이 있다고 자처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비열하고 천박하다는 생각을 품고 그와 같은 대열에 있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다. 스스로 조회에 참석하여 1차 하례를 마친 이후 병을 핑계대고 집에서 머물며 청빈함을 달게 여기고 몸소 신을 짜서 노모를 봉양했다.  당진의 군주가 신하들과 대대적인 모임을 갖고 논공행사를 할 때 개자추가 보이지 않았으나 뜻하지 않게 잊고 찾지도 않았다.

이웃에 사는 해장(解張)이라는 사람이 개자추가 아무런 포상도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공평치 못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으며 도성 문에 걸린 조령(詔令)을 보았다.

"자신의 공이 누락되어 등급을 받지 못한 자가 있으면 스스로 고하기 바란다."

특별히 개자추의 집 대문을 두드려 그 소식을 알렸으나 개자추는 웃으며 대답하지도 않았다. 

노모가 주방아래에 있다가 개자추에게 물었다. 

"너는 19년동안 충성을 다했고 또 허벅다리 살을 베어 주군을 기아에서 구원한 적도 있어 노고가 적지 않다.  지금 왜 스스로 말을 하지 않느냐? 또 수 종(鍾 : 용량의 단위)의 양식이라도 받게 되어 조석으로 밥을 지어먹는다면 신을 짜서 생활하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

그러자 개자추가 대답했다.

"헌공의 아들 9명중 오직 주공이 가장 어질었습니다. 혜공과 회공은 덕이 없어 하늘이 그들로부터 나라를 빼앗아 주공에게 주었습니다.  신하들이 하늘의 뜻을 모르고 자신들의 공을 다투니 제가 치욕스러워졌습니다.  저는 종신토록 신을 짜서 살 망정 감히 하늘의 공을 탐하여 제 공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노모가 말했다.

"네가 봉록을 구하지 않더라도 조정에 들어가 주군을 한 번 만나본다면 네가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주군을 구한 공로를 잊지 않게 할 수는 있지 않겠느냐?"

개자추가 물었다.

"제가 이미 주군께 구할 것이 없는데 무엇때문에 알현합니까?"

노모가 대답했다.

"네가 청렴한 선비가 될 수 있는데 내가 어찌 청렴한 선비의 어미가 될 수 없겠느냐? 우리 모자는  깊은 산 속에서 은거하는 것이 마땅하다. 어미가 저자거리에 사는 것도 어지럽다."

개자추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제가 평소에 면상산(綿上山)을 좋아했는데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습니다. 지금 그곳으로 가시지요."

마침내 노모를 업고 면상산으로 달려가 깊은 골짜기 안에 오두막집을 짓고 풀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열매를 먹으며 생을 마치려고 했다. 이웃집에 사는 자들은 그의 종적을 알 길이 없었다. 

오직 해장만이 그 사실을 알고 글을 써서 밤중에 조문에 걸었다.  문공이 조회를 열자 가까운 신하가 그 서찰을 수거해 문공에게 바쳤다. 

문공이 읽어보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날랜 용 한마리가 슬프게도 머물 곳을 잃었는데,

여러 마리의 뱀이 그 용을 따라 천하를 주유했도다.

용이 굶주리자 뱀 한 마리가 허벅지까지 베어 먹였는데,

용이 연못에 돌아오자  편안히 지내게 되었도다.

여러 뱀은 굴을 찾아 들어가 모두 편안한 집을 가졌으나,

한 마리의 뱀만이 굴이 없어 들에서 울부짖는구나!

 

 

 

文公覽畢,大驚曰:「此介子推之怨詞也!昔寡人過衛乏食,子推割股以進。今寡人大賞功臣,而獨遺子推,寡人之過何辭?」 即使人往召子推,子推已不在矣。文公拘其鄰舍,詰問子推去處:「有能言者,寡人並官之。」 解張進曰:「此書亦非子推之書,乃小人所代也。子推恥於求賞,負其母隱於綿上深谷之中。小人恐其功勞泯沒,是以懸書代爲白之。」 文公曰:「若非汝懸書,寡人幾忘子推之功矣!」 遂拜解張爲下大夫,即日駕車,用解張爲前導,親往綿山,訪求子推。只見峰巒疊疊,草樹萋萋,流水潺潺,行雲片片,林鳥群噪,山谷應聲,竟不得子推蹤跡。正是:「只在此山中,雲深不知處。」左右拘得農夫數人到來,文公親自問之。農夫曰:「數日前,曾有人見一漢子,負一老嫗,息於此山之足,汲水飮之,復負之登山而去。今則不知所之也。」 文公命停車於山下,使人遍訪,數日不得。文公面有慍色,謂解張曰:「子推何恨寡人之深耶?吾聞子推甚孝,若擧火焚林,必當負其母而出矣。」 魏犨進曰:「從亡之日,眾人皆有功勞,豈獨子推哉?今子推隱身以要君,逗遛車駕,虛費時日。待其避火而出,臣當羞之!」 乃使軍士於山前山後,周圍放火,火烈風猛,延燒數里,三日方息。子推終不肯出,子母相抱,死於枯柳之下。軍士尋得其駭骨。文公見之,爲之流涕。命葬於綿山之下,立祠祀之。環山一境之田,皆作祠田,使農夫掌其歲祀。「改綿山曰介山,以志寡人之過!」 後世於綿上立縣,謂之介休,言介子推休息於此也。焚林之日,乃三月五日淸明之候。國人思慕子推,以其死於火,不忍擧火,爲之冷食一月。後漸減至三日。至今太原、上黨、西河、雁門各處、每歲冬至後一百五日,預作乾糒,以冷水食之,謂之「禁火」,亦曰「禁煙」。因以淸明前一日爲寒食節,遇節,家家揷柳於門,以招子推之魂,或設野祭,焚紙錢,皆爲子推也。

胡曾有詩云:

羈絏從游十九年,

天涯奔走備顚連;

食君刳股心何赤?

辭祿焚軀志甚堅!

綿上煙高標氣節,

介山祠壯表忠賢。

只今禁火悲寒食,

勝卻年年掛紙錢。

 

噪 : 떠들썩할 조. 떠들썩하다. 떠들다. 지저귀다.               

只在此山中, 雲深不知處。:  賈島의 「訪道子不遇」의 시구. 

一境 : 어떤 경계 안 지역의 전부.           絏 : 맬 설. 매다. 묶다. 고삐. 소매.

顚連 : 몹시 가난하여 어찌할 수가 없음.                  刳 : 가를 고. 가르다. 쪼갬. 뻐갬. 파다. 파냄. 덜어 .

 

 

 

문공이 읽기를 마치자 크게 놀라며 말했다.

"이것은 개자추가 과인을 원망하는 글이다. 옛날 과인이 위(衛)나라를 지나갈 때 자추가 자신의 허벅지를 베어 요리해서 과인에게 올렸었도다.  지금 과인이 공신들에게 크게 포상하면서 자추만 빠뜨렸는데 과인의 잘못을 무어라 변명하겠는가?"

즉시 사람을 보내 개자추를 불러오게 했으나 개자추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문공이 이웃에 사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개자추의 간 곳을 물었다.

"개자추가 간 곳을 말해줄 수 있는 자에게는 과인이 개자추와 아울러 벼슬을 내리겠노라."

해장이 진언했다.

"이 글은 자추가 쓴 글이 아니라 소인이 대신해서 쓴 글입니다. 자추는 상을 받으려고 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으며 그 모친을 업고 면상산의 깊은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 은거했습니다. 소인은 그의 공로가 묻힐까 두려워 글을 대신 써서 조문에 걸어놓아 알린 것입니다."

문공이 말했다.

"네가 걸어놓은 글이 아니었다면 과인은 아마 자추의 공을 잊었을 것이다."

마침내 해장에게 하대부를 제수하고 당일로 거가에 올라 해장을 앞세우고 친히 면상산으로 가서 자추를 찾았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라고는 봉우리가 첩첩이 솟아 있고, 초목이 우거졌으며, 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조각구름이 흐르는 가운데 숲속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산골짜기에 메아리가 되어 들려올 뿐 끝내 자추의 종적을 알 수가 없었다. 

바로 다음의 말과 같았다.

"단지 이 산중에 있을 뿐인데 구름이 깊어 있는 곳을 알 수 없노라!"

좌우에서 농부 몇 명을 데려오자 문공이 직접 물었다.

농부가 대답했다.

"며칠 전 한 사내가 한 노파를 업고 나타나 이 산기슭에서 휴식을 취하며 물을 떠다가 마시게 하고는 다시 노파를 업고 산으로 올라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문공이 산 밑에 수레를 세우게 하고는 사람을 시켜 두루 찾아보게 하였으나 며칠이 지나도 찾지 못했다. 

문공이 얼굴에 노여운 기색을 띄고 해장에게 말했다.

"자추가 어찌 과인에게 한을 깊이 품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듣기로 자추는 매우 효성스럽다고 하던데 만약 숲에 불을 지르면 반드시 모친을 업고 나오지 않겠는가?"

위주가 진언했다. "주군을 따라 망명했던 시절 여러 사람이 공을 세웠는데 어찌 개자추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지금 자추는 몸을 숨기고 주군을 책망하며 어가를 멈추게 하고 며칠씩이나 허비하게 하고 있습니다.  불을 지르고 그가 나오기를 기다려 망신을 주겠습니다."

그리고는 군사들을 시켜 산 앞 뒤로 가게 한 다음,  산을 둘러싸고 불을 지르게 하자 맹렬한 불길이 바람을 타고 더욱 사나워져 연이어 수리를 태우다가 3일이 되어 꺼졌다.  개자추는 끝내 산에서 나오지 않았고 모자가 서로 부등켜 안은 채 불에 탄 버드나무 아래에서 죽었다. 

군사들이 그 시신을 찾았다.

문공이 보고 눈물을 흘리며 명을 내려 면상산 아래에 장례를 치르게 하고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면상산을 에워싸고 있는 땅을 모두 사당에 딸린 사전(祠田)으로 하여 농부에게 해마다 제사지내는 일을 관장하도록 했다. 

그리고 또 명을 내렸다.

"면산을 개산(介山)으로 고쳐 부르게 하여 과인의 잘못을 기억하게 하라!" 

후세에 면상에 현을 설치하고 개휴(介休)라 하였는데 개자추가 이곳에소 휴식을 취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숲에 불을 질렀던 날이 바로 3월 5일 청명이라는 절후에 해당하는 날이었다. 국인들이 개자추가 불에 타죽은 것을 추모하여 차마 불을 피우지 못하고 한 달 동안 찬 음식을 먹었다. 후에 점점 줄어 3일이 되었다. 지금은 태원(太原), 상당(上黨), 서하(西河), 안문(雁門) 각 곳에 해마다 동지 후 105일이 되면 미리 건량을 만들어 냉수와 함께 먹으며 금화(禁火) 또는 금연(禁煙)이라 했다.  그리하여 청명절 하루 전 날을 한식절로 삼고 그 절기가 되면 가가호호 문에다 버드나무를 꽂아 개자추의 혼을 불렀으며,  어떤 사람은 들에다 제단을 설치하고 종이 돈을 태웠는데 모두 개자추때문이었다. 

호증선생이 시를 지었다.

 

고삐 잡고 문공을 따라 천하를 주유한 지 19년,

외로운 문공따라 망명중에 고초도 많았도다.

허벅지를 베어 군주에게 먹인 마음 얼마나 붉었을까?

봉록도 사양하고 몸을 불태웠으니 그 뜻이 얼마나 굳센가!

 

면상산에 높이 오른 연기는 기개와 절의를 드러낸 것,

개산의 사당이 장려한 것은 충의와 현명함을 나타낸 것이로다. 

지금도 불 지피는 것을 금하고 한식을 슬퍼하나니, 

오히려 해마다 지전을 불사르는 것보다는 낫도다.

 

 

 

文公旣定君臣之賞,大修國政,擧善任能,省刑薄歛,通商禮賓,拯寡救乏,國中大治。周襄王使太宰周公孔,及內使叔興,賜文公以侯伯之命。文公待之有加禮。叔興歸見襄王,言:「晉侯必伯諸侯,不可不善也。」 襄王自此疏齊而親晉,不在話下。

 

 

 

문공이 신하들에 대한 포상을 마치자 대대적인 국정 쇄신에 들어가 선행을 한 사람을 천거하게 하고 능력있는 자들을 임용하였으며 형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덜어주었으며 상거래를 통하게 하고 국빈을 예로써 대접하였으며, 과부를 시집보내고 굶주린 자를 구제해주니 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주양왕이 태재 주공 공(周公 孔)과 내사(內使) 숙흥(叔興)을 사자로 보내 문공에게  제후의 직을 하사한다는 명을 전하게 했다. 문공은 사자들을 후하게 예로써 대접했다. 

숙흥이 돌아가 양왕에게 복명했다.

"당진의 군주는 반드시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될 것입니다. 좋은 관계를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

양왕은 이로부터 제(齊)나라와는 소원해지고 당진과는 가까이 지내게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是時鄭文公臣服於楚,不通中國,恃强凌弱,怪滑伯事衛不事鄭,乃興師伐之。滑伯懼而請成。鄭師方退,滑仍舊事衛,不肯服鄭。鄭文公大怒,命公子士洩爲將,堵兪彌副之,再起大軍伐滑。衛文公與周方睦,訴鄭於周。周襄王使大夫游孫伯伯服至鄭,爲滑求解。未至,鄭文公聞之,怒曰:「鄭衛一體也,王何厚於衛,而薄於鄭耶?」 命拘游孫伯伯服於境上,俟破滑凱旋,方可釋之。孫伯被拘,其左右奔回,訴知周襄王。襄王罵曰:「鄭捷欺朕太甚,朕必報之!」 問群臣:「誰能爲朕問罪於鄭者?」 大夫頹叔桃子二人進曰:「鄭自先王兵敗,益無忌憚。今又挾荊蠻爲重,虐執王臣。若興兵問罪,難保必勝。以臣之愚,必借兵於翟,方可伸威。」 大夫富辰連聲曰:「不可,不可!古人云:『疏不間親。』鄭雖無道,乃子友之後,於天子兄弟也。武公著東遷之勞,厲公平子頹之亂,其德均不可忘。翟乃戎狄豺狼,非我同類。用異類而蔑同姓,修小怨而置大德,臣見其害,未見其利也。」 頹叔桃子曰:「昔武王伐商,九夷俱來助戰,何必同姓?東山之征,實因管蔡。鄭之橫逆,猶管蔡也。翟之事周,未嘗失禮。以順誅逆,不亦可乎?」 襄王曰:「二卿之言是也。」 乃使頹叔桃子如翟,諭以伐鄭之事。翟君欣然奉命,假以出獵爲名,突入鄭地,攻破櫟城,以兵戍之。遣使同二大夫告捷於周。周襄王曰:「翟有功於朕,朕今中宮新喪,欲以翟爲婚姻何如?」 頹叔桃子曰:「臣聞翟人之歌曰:『前叔隗,後叔隗,如珠比玉生光輝。』言翟有二女,皆名叔隗,並有殊色。前叔隗乃咎如國之女,已嫁晉侯。後叔隗乃翟君所生,今尙未聘,王可求之。」 襄王大喜,復命頹叔桃子往翟求婚。翟人送叔隗至周,襄王欲立爲繼后。富辰又諫曰:「王以翟爲有功,勞之可也。今以天子之尊,下配夷女。翟恃其功,加以姻親,必有窺伺之患矣。」 襄王不聽,遂以叔隗主中宮之政。

 

洩 : 샐 설/퍼질 예. 새다. 비밀이 흘러 나오다. 폭포. 성의 하나. [예] 퍼지다. 훨훨 날다. 나는 모양.

疏不間親 :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이 사이가 좋은 사람을 멀어지게 하지 못한다는 말.

 

 

 

이때 정(鄭)나라 문공(文公)은 초(楚)나라에 신하로 복종하고 중국의 제후국들과는 내왕하지 않았으며 초나라의 강함을 믿고 약소국을 능멸하였다. 활백(滑伯 : 활나라 군주)이 위(衛)나라를 섬기고 정나라를 섬기지 않는 것을 괘씸하게 여겨 군대를 일으켜 활나라를 쳤다.

활백이 두려워 화의를 청하자 정나라 군대가 물러났는데 활나라에서는 전에 위나라를 섬겼기 때문에 정나라에 굴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정문공이 크게 노하여 공자 사예(士洩)를 장수로 삼고 도유미(堵兪彌)를 부장으로 삼아 다시 대군을 일으켜 활나라를 쳤다. 위 문공과 주나라는 화목하게 잘 지냈기 때문에 정나라의 침공사실을 주나라에 고했다.  주 양왕은 대부 유손백(游孫伯)과 백복(伯服)을 정나라에 보내 활나라를 위해 화해시키려고 했다. 

두 사람이 정나라에 도착하기도 전에 정문공은 그 소식을 듣고 노하여 말했다.

"정나라와 위나라는 근본이 같은데 왕은 어찌 위나라에는 후하게 대하고 정나라를 박대하는가?"

그리고 명을 내려 유손백과 백복을 국경에서 사로잡은 후 활나라를 깨뜨리고 개선하기를 기다려 풀어주려고 하였다. 손백이 사로잡히자 좌우에 도망쳐 돌아가 주양왕에게 알리도록 하였다.

주양왕이 꾸짖으며 말했다. 

"정나라 첩(捷)이 짐을 업신여기는 것이 너무 심하구나, 내가 반드시 보복하리라!"

그리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누가 짐을 위해 정나라에 죄를 물을 수 있겠는가?"

대부 퇴숙(頹叔)과 도자(桃子) 두 사람이 진언했다.

"정백은 선왕의 군대가 패한 이후 더욱 거리낌이 없어졌습니다.  이제 또 형만(荊蠻 : 楚)을 중히 여기고 천자의 신하를 경시하고 사로 잡아 가두고 있습니다.  군대를 일으켜 죄를 물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적(翟)나라에 구원병을 청한다면 위엄을 떨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대부 부신(富辰)이 연이어 소리치며 말했다.

"불가합니다. 불가합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소불간친(疏不間親)'이라 했습니다. 정나라가 비록 무도하다 할지라도 정백(鄭伯) 우(友)의 후손이며 천자와 형제간입니다.  또 정 무공(鄭武公 : 掘突)은 낙양으로 동천할 때 세운 공로가 있고, 여공(厲公 : 突)은 공자 퇴(頹)의 난을 평정한 공이 있어 그 덕을 모두 잊어서는 안됩니다. 적(翟)은 바로 융적(戎狄)이며 시랑(豺狼)같은 무리라 우리와 같은 부류가 아닙니다. 다른 부류의 무리를 기용하고 같은 성(同姓)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작은 원한을 다스린다고 큰 은혜를 버리는 것이며 신이 보기에 해로움은 있어도 이로움은 없을 것입니다."

퇴숙과 도자가 말했다.

"옛날 무왕께서 상나라를 치실 때 구이(九夷)가 모두 와서 도왔는데 하필이면 같은 성씨라야만 합니까?  동산을 정벌한 것은 관숙과 채숙이 난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정나라에서 거스르는 것은 관숙과 채숙의 난과 같습니다. 적(翟)나라에서는 주나라를 섬기면서 예를 잃은 적이 없습니다. 순종하는 자들로 거스르는 자들을 치는 것이니 또한 좋지 않습니까?"

주 양왕이 말했다.

"두 대부의 말이 옳도다."

마침내 퇴숙과 도자를 적나라로 보내 정나라를 치는 일을 설득하게 했다. 적나라에서는 흔연히 명을 받들어 사냥을 나간다는 명분을 가장하고 정나라 땅으로 짓쳐들어가 역성(櫟城)을 깨뜨리고 병사들로 하여금 지키게 했다.  사자를 두 대부에게 딸려보내 주양왕에게 승리 소식을 전하게 하니 주양왕이 말했다. 

"적나라에서 짐에게 공을 세웠도다. 짐은 지금 중궁이 죽어 적나라의 여인과 혼인을 하고자 하는데 어떻소?"

퇴숙과 도자가 말했다.

"신들이 듣기로 적나라 사람들이 노래하기를 '앞에도 숙외(叔隗)요, 뒤에도 숙외인데 이 옥은 진주처럼 빛나네.' 라 하였습니다.  적나라 군주에게 두 딸이 있는데 모두 이름이 숙외(叔隗)이며 두 사람 다 매우 아름답습니다. 앞의 숙외는 바로 구여국(咎如國) 군주의 딸인데 이미 당진의 문공에게 출가했습니다. 후 숙외는 바로 적나라 군주의 소생인데 아직 출가하지 않아 왕께서 구혼하실 수 있습니다."

양왕이 크게 기뻐하고 다시 퇴숙과 도자를 적나라에 보내 구혼하게 하였다. 

적나라 군주가 숙외를 주나라에 보내 양왕이 계후(繼后)로 삼고자 했다.

부신이 또 간했다.

"왕께서 적나라에서 공을 세운 일을 위로하시는 것은 좋습니다.  지금 천자께서는 존귀하신데 오랑캐 여인을 배필로 맞이하시어 스스로를 낮추시려고 하십니다.  적나라에서는 그들이 세운 공이 있는데다가 혼인한 것을 믿고 반드시 기회를 엿보아 난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양왕이 듣지 않고 마침내 숙외를 중궁의 주인으로 맞이해 궁을 다스리게 하였다. 

 

 

  

說起那叔隗,雖有韶顔,素無閨德。在本國專好馳馬射箭,翟君每出獵,必自請隨行,日與將士每馳逐原野,全無拘束。今日嫁與周王,居於深宮,如籠中之鳥,檻內之獸,甚不自在。一日,請於襄王曰:「妾幼習射獵,吾父未嘗禁也。今鬱鬱宮中,四肢懈倦,將有痿痺之疾。王何不擧大狩,使妾觀之?」 襄王寵愛方新,言無不從。遂命太史擇日,大集車徒,較獵於北邙山。有司張幕於山腰,襄王與隗后坐而觀之。襄王欲悅隗后之意,出令曰:「日中爲期,得三十禽者,賞軘車三乘,得二十禽者,賞以䡴車二乘,得十禽者,賞以轈車一乘,不踰十禽者,無賞。」一時王子王孫及大小將士,擊狐伐兔,無不各逞其能,以邀厚賞。打圍良久,太史奏, 「日已中矣。」 襄王傳令撤回,諸將各獻所獲之禽,或一十,或二十,惟有一位貴人,所獻逾三十之外。那貴人生得儀容俊偉,一表人物,乃襄王之庶弟,名曰帶,國人皆稱曰太叔,爵封甘公。因先年奪嫡不遂,又召戎師以伐周,事敗出奔齊國,後來惠后再三在襄王面前辯解求恕,大夫富辰,亦勸襄王兄弟修好,襄王不得已,召而復之。今日在打圍中,施逞精神,拔了個頭籌。襄王大喜,即賜軘車如數。其餘計獲多少,各有賜賚。隗后坐於王側,見甘公帶才貌不凡,射藝出眾,誇奬不迭。問之襄王,知是金枝玉葉,十分心愛。遂言於襄王曰:「天色尙早,妾意欲自打一圍,以健筋骨,幸吾王降旨!」襄王本意欲取悅隗后,怎好不准其奏,即命將士重整圍場。隗后解下繡袍,(原來袍內,預穿就窄袖短衫。)罩上異樣黃金鎖子輕細之甲。腰繫五綵純絲繡帶。用玄色輕綃六尺,周圍抹額,籠蔽鳳筓,以防塵土。腰懸箭箙,手執朱弓。妝束得好不齊整!

有詩爲證:

花般綽約玉般肌,

幻出戎裝態更奇;

仕女班中誇武藝,

將軍隊裏擅嬌姿。

 

痿痺 : 손과 발이 저리어 제대로 쓰지 못함.                                 痿 : 저릴 위. 저리다. 마비되다. 각기병. 앉은뱅이.   

痺 : 저릴 비. 저리다. 마비되다. 왜소하다. 낮다. 암메추라기.                           軘 : 돈거 돈. 돈거.     

䡴 : 병거 충/기 당. 병거. 기(). 수레 휘장. 막. 장막.         轈 : 병거 초(소). 병거. 망보는 수레. 망루(望樓)를 설치하여 적을 망보는 수레.

奪嫡不遂 : 주 혜왕이 태자 정을 폐하고 대를 세자로 세우려 했던 일. 

召戎師以伐周 : 왕자 대(帶)가  이(伊)와 낙(雒) 지방의 융(戎)족으로 하여금 경사에 쳐들어오게 하고 자신은 안에서 내응하려고 하였던 일. 

罩 : 보쌈 조. 보쌈(: 대나무나 가시나무로 결어서 만든 고기를 잡는 그물). 가리(물고기를 잡는 기구). (연기등이) 끼다. 덮다. 뛰어넘다. 

鎖子甲 : 철사(鐵絲)로써 작은 고리[小環]를 만들어 서로 꿴 것. <세종실록(世宗實錄) 제133권>

般 : (中) ~ 같은.  ~과 같은 모양(종류)의.  ~ 과 같은 정도의.                    綽約 : 몸이 가냘프고 아름다움. 맵시있고 아름답다. 

 

 

 

그 숙외를 말하자면 얼굴은 아름다워도 평소 부덕(婦德)이라고는 없는 여인이었다.  본국인 적(翟)에 있을 때에는 오로지 말달리며 활 쏘기만을 좋아하였다.  적나라 군주가 사냥을 나갈 때마다  반드시 스스로 따라가기를 청하였으며,  매일 장사(將士)들과 초원을 누비는 것에 전혀 구애받지 않았다. 이제 주나라 왕에게 출가하였지만 깊은 궁에서 지내는 것은 조롱 속에 갖힌 새나 우리에 갖힌 짐승같은데 어찌 마음대로 지낼 수 있겠는가?

하루는 양왕에게 청했다.

"첩은 어려서부터 활쏘며 사냥하는 것을 익혔는데 우리 부친께서는 금한 적이 없으셨습니다. 지금 답답한 궁안에 있다보니 사지가 게을러져 마비가 될 것 같습니다. 왕께서는 어찌 큰 사냥대회를 열어 제가 구경하게 하지 않으십니까?"

양왕은 새로운 왕비를 총애하는지라 그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태사에게 택일을 명하고 수레를 크게 집합시켜 북망산(北邙山)에서 사냥대회를 열었다. 관리들에게 산허리에 장막을 치게 하고 양왕은 외후(隗后)와 함께 앉아서 구경했다. 

양왕은 외후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려고 명을 내렸다.

"정오가 될 때까지 짐승 30마리를 잡는 자에게는 돈거 3대, 20마리를 잡는 자에게는 충거(䡴車 : 兵車의 일종) 2승,  10마리를 잡는 자에게는 초거 1승을 상으로 준다. 10승을 넘기지 못한 자에게는 상이 없다."

그러자 한 순간에 왕자와 왕손, 대소 장사에 이르기까지 여우를 공격하고 토끼를 쫒아 각자가 그 능력을 뽐내면서 후한 상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한참 동안 사냥을 했는데 태사가 아뢰었다. "해가 이미 중앙에 와 있어 정오가 되었습니다."

양왕이 전령을 보내 사냥을 마치게 하자 장수들이 각 잡은 짐승을 바쳤는데 어떤 자는 열 마리, 어떤 자는 20마리였으나 오직 한 귀인만이 바친 것이 30마리가 넘었다.  그 귀인은 용모가 수려하고 당당한 체격이었는데 바로 양왕의 서제(庶弟)로 이름은 대(帶)이고 국인들이 모두 태숙(太叔)이라고 불렀으며 작위는 감공(甘公)이었다. 지난 날 적자의 지위를 빼앗으려다가 이루지 못했고, 또 융(戎)의 군대를 불러들여 주나라를 쳤다가 패하게 되자 제(齊)나라로 도망쳤으나 후에 혜후(惠后)가 양왕의 면전에서 재삼 변호하며 용서를 구하였고 대부 부신(富辰)도 양왕에게 형제간의 화해를 권하여 양왕이 부득이하게 그를 불러 복귀시켰었다. 오늘 사냥터에서  정신을 집중하여 실력을 발휘한 끝에 일등상을 받게 된 것이다. 양왕이 크게 기뻐하며 돈거(軘車)를 약속한대로 하사하고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사냥한 짐승의 수량에 따라 각각 상을 내렸다.  외후가 왕의 곁에 앉아 감공 대의 모습을 보니 재주와 용모가 평범하지 않고 활솜씨도 출중하여 칭찬해 마지않았다. 양왕에게 그에 대해 물어보니 바로 금지옥엽인 왕의 동생이라 마음 속으로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양왕에게 말했다.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 첩도 직접 사냥을 하여 근골을 단련시키고 싶습니다. 왕께서도 허락해 주소서!"

양왕의 본래 뜻은 외후를 기쁘게 해 주려던 것이었는데 어찌 그녀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겠는가?  즉시 장사들에게 명을 내려 사냥터를 다시 정리하게 했다. 외후는 수놓인 웃옷을 벗었다. - 원래 것옷 안에 미리 소매가 좁은 짧은 저고리를 입었었다.- 그 위에 이상한 모양의 가볍고 얇은 황금쇄자갑을 입었다. 허리에는 오색 비단의 순사(純絲)로 수놓은 허리띠를 두르고 검은색 얇은 비단 6척으로 이마를 둘러 봉황비녀를 가려 먼지를 막았다. 또 허리에 전통을 걸고 손에는 붉은 활을 들었다. 그녀의 몸단장은 단정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의 모습을 읊은 시가 있다.

 

꽃같은 용모 옥같은 피부,

환상적인 융족의 치장한 모습은 기이하도다.

궁녀들 속에서 무예를 뽐내더니,

장군들의 대열 속에서 멋대로 교태를 흘리네.

 

 

 

隗后這回裝束,別是一般丰采,喜得襄王微微含笑。左右駕戎輅以待。隗后曰:「車行不如騎迅。妾隨行諸婢,凡翟國來的,俱慣馳馬。請於王前試之。」 襄王命多選良馬,鞴勒停當。侍婢陪騎者,約有數人。隗后方欲跨馬,襄王曰:「且慢。」 遂問同姓諸卿中:「誰人善騎?保護王后下場。」 甘公帶奏曰:「臣當效勞。」 這一差,正暗合了隗后之意。侍婢簇擁隗后,做一隊兒騎馬先行。甘公帶隨後跨著名駒趕上,不離左右。隗后要在太叔面前,施逞精神。太叔亦要在隗后面前,誇張手段。未試弓箭,且試跑馬。隗后將馬連鞭幾下,那馬騰空一般去了。太叔亦躍馬而前。轉過山腰,剛剛兩騎馬,討個並頭。隗后將絲韁勒住,誇奬甘公曰:「久慕王子大才,今始見之!」 太叔馬上欠身曰:「臣乃學騎耳,不及王后萬分之一!」 隗后曰:「太叔明早可到太后宮中問安,妾有話講。」 言猶未畢,侍女數騎俱到,隗后以目送情,甘公輕輕點頭,各勒馬而回。恰好山坡下,趕出一群麋鹿來,太叔左射麋,右射鹿,俱中之。隗后亦射中一鹿。眾人喝采一番。隗后復跑馬至於山腰,襄王出幕相迎曰:「王后辛苦!」 隗后以所射之鹿,拜獻襄王。太叔亦以一麋一鹿呈獻。襄王大悅。眾將及軍士,又馳射一番,方纔撤圍。御庖將野味,烹調以進,襄王頒賜群臣,歡飲而散。

 

鞴 : 말채비할 비/앞턱 가로장 싸개 복/풀무 배/전동 보.   

剛剛 : 방금. 금방. 막. 지금. 딱. 꼭. 마침맞게. 공교롭게. 겨우. 가까스로. 간신히.      野味 : 사냥한 짐승.

 

 

 

외후가 이번에 단장한 모습은 일반 여인들의 모습과는 달라서 양왕을 기쁘게 해 살짝 미소를 머금게 했다.

좌우에서 융로(戎輅)를 대기시켰더니 외후가 말했다.

"수레를 타는 것은 말타는 것만큼 빠르지 못합니다. 첩을 수행하는 시비들은 모두 적국(翟國)에서 온 자들로 모두 말타기에 익숙합니다. 왕 앞에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양왕이 명을 내려 좋은 말을 선별하여 말을 탈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말을 타고 수행하는 시비들이 몇 사람 되었다. 

외후가 막 말에 오르려고 하는데 양왕이 말했다.

"잠시 기다려라!"

그리고 왕족들에게 물었다.

"누가 말을 잘 타는가? 왕후가 사냥하는 동안 보호해 주기 바란다."

감공 대가 아뢰었다.

"신이 힘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이 한 사람이 선정된 것은 바로 외후가 마음 속으로 은밀히 바라던 바였다. 시비들이 외후를 둘러싸고 일대를 이루어 먼저 달려갔다. 감공 대가 명마에 올라 뒤쫒아 가며 좌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외후는 태숙의 눈앞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했다.  태숙도 외후의 눈앞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온갖 수단을 다 부렸다. 활을 쏘아보지도 않았는데 말을 달려보고 싶었다. 외후가 말에 몇 차례 채찍질을 하자 그 말은 허공을 솟구치듯 하더니 앞으로 달려나갔다. 태숙도 말을 나는 듯이 달려 앞으로 나갔다. 산허리를 돌아 마침내 두 말이 머리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외후가 실로 꼬아 만든 고삐를 당겨 말을 세우고 감공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오랫동안 왕자님의 큰 재주를 흠모해 왔는데 이제야 비로소 보게 되었습니다."

태숙이 말 위에서 몸을 굽히며 말했다.

"신은 겨우 말타는 법을 배웠을 뿐입니다. 왕후의 말타는 솜씨에는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외후가 말했다.

"태숙께서는 내일 아침 일찍 태후궁에 문안 드리러 오십시오. 제가 할 말이 있습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시녀들이 모두 도착하였다. 외후가 추파를 던지자 감공은 가볍게 머리를 끄덕여 인사하고는 각자 말머리를 돌려 돌아갔다.  때마침 산비탈 아래에 한 무리의 사슴과 노루떼가 나타나 태숙은 좌측의 노루를 쏘고 우측의 사슴을 쏘았는데 모두 명중했다. 외후도 활을 쏘아 사슴 한 마리를 잡았는데 사람들이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외후가 다시 말을 박차 산허리에 도착하자 양왕이 막사에서 나가 맞이하며 말했다.

"왕후는 매우 수고했소."

외후는 양왕에게 절하고 잡은 사슴을 바쳤으며 태숙도 노루 한 마리와 사슴 한 마리를 바치니 양왕이 크게 기뻐했다. 장수들과 군사들이 모두 한바탕 말을 달리며 사냥을 하고는  사냥터의 포위망을 풀었다. 궁중의 요리사가 사냥한 짐승을 요리해 바치니 양왕이 군신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모두 즐겁게 먹고 마시고는 해산했다.

 

 

 

次日,甘公帶入朝謝賜,遂至惠后宮中問安。其時隗后已先在矣。隗后預將賄賂,買囑隨行宮侍,遂與太叔眉來眼去,兩下意會,託言起身,遂私合於側室之中。男貪女愛,極其眷戀之情,臨別兩不相舍。隗后囑咐大叔:「不時入宮相會。」 大叔曰:「恐王見疑。」 隗后曰:「妾自能周旋,不必慮也!」 惠后宮人,頗知其事,只因太叔是太后的愛子,況且事體重大,不敢多口。惠后心上,亦自覺著,反吩咐宮人:「閒話少說。」 隗后的宮侍,已自遍受賞賜,做了一路,爲之耳目。太叔連宵達旦,潛住宮中,只瞞得襄王一人。

史官有詩嘆曰:

太叔無兄何有嫂?

襄王愛弟不防妻。

一朝射獵成私約,

始悔中宮女是夷!

 

又有詩譏襄王不該召太叔回來,自惹其禍。詩云:

    

明知篡逆性難悛,

便不行誅也絶親。

引虎入門誰不噬?

襄王眞是夢中人!

 

 

 

다음날 감공은 조정에 들어가 양왕에게 상품을 하사한 일에 감사를 드리고 혜후의 궁중으로 가서 문안드렸다. 그때 외후는 이미 먼저 와 있었다. 외후는 미리 뇌물을 써서 수행하는 궁녀들을 매수 하였으며 태숙에게 추파를 던졌다. 두 사람은 뜻이 합쳐지자 돌아간다고 핑계대고 몸을 일으켜 은밀히 옆방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탐하고 여자는 사랑하니 간절한 마음이 극에 달해 차마 헤어지지 못했다. 

외후가 태숙에게 당부했다.

"아무 때고 궁에 들어 와 만납시다."

태숙이 말했다.

"왕이 의심할까 두렵습니다. 

외후가 말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염려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혜후의 궁인들은 그 일을 매우 잘 알고 있었지만 태숙은 태후가 사랑하는 아들인데 하물며 사안이 중대한 일이라 감히 입에 올릴 수 없었다.

혜후도 마음에 눈치를 채었지만 궁인들에게 분부했다. "쓸데없는 말은 삼가해라."

외후의 시비들은 이미 두루 뇌물을 받았기 때문에 오로지 눈과 귀가 될 뿐이었다. 태숙은 연이어 밤부터 아침까지 궁중에 은밀히 머무르고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은 양왕 한 사람 뿐이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탄식했다.

 

태숙에게 형이 없는데 어찌 형이 있으랴?

양왕은 동생을 사랑했어도 아내를 간수하지 못했도다.

하루 아침에 사냥터에서 밀약이 이루어지니,

비로소 중궁에 오랑캐 여인을 들인 일이 한이 되는구나!

 

또 양왕이 태숙을 불러들여 스스로 재앙을 야기한 일이 온당치 못했음을 기롱하여 시를 지었다.

 

찬역을 했던 자의 본성은 바뀌기 어려운 것은 분명한데,

바로 죽이지도 않고 형제의 정을 끊지도 않았도다.

범을 문 안으로 끌어들였으니 누군들 물지 않으랴?

양왕은 참으로 꿈속을 헤멘 자였도다.

 

 

 

 

大凡做好事的心,一日小一日;做歹事的膽,一日大一日,甘公帶與隗后私通,走得路熟,做得事慣,漸漸不避耳目,不顧利害,自然敗露出來。那隗后少年貪慾,襄王雖則寵愛,五旬之人,到底年力不相當了,不時在別寢休息。太叔用些賄,使些勢,那把守宮門的,無過是內侍之輩,都想道:「太叔是太后的愛子,周王一旦晏駕,就是太叔爲王了,落得他些賞賜,管他甚帳?」 以此不分早晚,出入自如。

 

歹 : 몹쓸 대/부서진 뼈 알. 악하다. 나쁜일. 나쁘다.         無 : 비록 ~ 하더라도.        晏駕 : 임금의 죽음.         自如 : 자유자재로. 

 

 

무릇 좋은 일을 하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적어지고 나쁜 일을 하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커지는 법이라 감공과 외후의 사통은 길이 갈수록 익숙해지며 일은 거듭될수록 숙련되듯 점점 이목도 피하지 않게 되고 이해득실도 돌아보지 않게 되어 자연히 발각되게 되었다.

외후는 젊은 나이라 성욕이 넘쳤는데 양왕이 외후를 사랑한다 해도 50대의 나이라 도저히 당해낼 수 없어 때로는 다른 침실에서 휴식을 취했다. 태숙은 약간의 뇌물을 쓰기도 하고 약간의 권세도 부려 궁문을 드나들게 되니 그가 통과해도 내시의 무리들은 모두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말하기도 했다.

"태숙은 태후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주왕이 하루아침에 죽게라도 된다면 태숙이 왕이 될 것이다. 그가 조금씩 뿌리는 재물을 받으면서 어찌 장막 뒤의 일을 신경쓰겠는가?"

이리하여 아침 저녁을 가리지 않고 출입을 마음대로 하였다. 

  

 

 

卻說宮婢中有個小東,頗有幾分顔色,善於音律。太叔一夕歡宴之際,使小東吹玉簫,太叔歌而和之。是夕開懷暢飮,醉後不覺狂蕩,便按住小東求歡。小東懼怕隗后,解衣脫身,太叔大怒,拔劍趕逐,欲尋小東殺之。小東竟奔襄王別寢,叩門哭訴,說太叔如此恁般:「如今見在宮中。」 襄王大怒,取了牀頭寶劍,趨至中宮,要殺太叔。

 

 

한편 궁녀 중에 소동(小東)이라는 궁녀가 있었는데 얼굴이 그런대로 꽤 아름다웠고 음률에도 밝았다. 어느날 저녁 태숙이 술자리를 즐기는데 소공에게 옥피리를 불게하고 스스로 노래를 불러 화답했다.  그 저녁에 가슴을 풀어 헤치고 실컷 술을 마시고는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었는데  바로 소동을 억눌러 범하려고 했다. 소동은 외후가 두려워 옷을 벗겠다고 하고는 도망쳤는데 태숙이 대로하여 칼을 뽑아들고 뒤쫒아 소동을 죽이려고 하였다. 소동은 마침내 양왕의 침실로 도망쳐 문을 두드리고는 울면서 하소연하고는 태숙의 일을 모두 일러바쳤다.

"지금 태숙이 궁안에 있습니다." 

양왕이 대로하여 침상 머리맡의 검을 뽑아들고 중궁으로 달려가 태숙을 죽이려고 하였다.

 

 

 

畢竟性命如何,且看下回分解。

 

결국 태숙의 생명은 어찌 될 것인가? 다음 회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