詠貧士詩七首
一.
萬族各有託,孤雲獨無依。 만물은 제각기 기댈 곳이 있건만, 외로운 구름 의지할 곳이 없네.
曖曖空中滅,何時見餘暉。 공중에 희미하게 떠있다가 스러지니 어느 때에 노을을 보리오.
朝霞開宿霧,衆鳥相與飛。 아침 놀에 밤안개 걷히면 뭇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른다.
遲遲出林翮,未夕復來歸。 느긋하게 숲을 나온 새는 석양이 되지 않았는데도 다시 돌아온다.
量力守故轍,豈不寒與饑。 역량 헤아려 옛 법도 지키니 어찌 춥고 배고프지 않겠는가.
知音苟不存,已矣何所悲。 알아주는 이도 없는데, 그만 두자. 하소연해서 어쩔 것인가.
知音 : 伯牙絶絃의 故事에서 온 말로 자기를 알아주는 참다운 벗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伯牙善鼓琴, 鍾子期善聽. 伯牙鼓琴, 志在高山, 鍾子期曰, 善哉. 峨峨兮若泰山. 志在流水. 鍾子期曰, 善哉. 洋洋兮若江河. 伯牙所念, 鍾子期必得之. 子期死, 伯牙謂世再無知音, 乃破琴絶絃, 終身不復鼓. <列子 湯問>
伯牙鼓琴, 鍾子期聽之, 方鼓琴而志在泰山. 鍾子期曰, 善哉乎鼓琴, 巍巍乎若泰山. 少時而志在流水, 鍾子期曰, 善哉鼓琴, 洋洋乎若流水. 鍾子期死, 伯牙摔琴絶絃, 終身不復鼓琴, 以爲世無足復爲鼓琴者. <呂氏春秋 本味>
二.
淒厲歲云暮,擁褐曝前軒。 한 해가 저무는데 처량한 마음으로 솜옷으로 감싸고 집앞에서 햇볕을 쬐노라.
南圃無遺秀,枯條盈北園。 남쪽 들에는 이삭도 남아있지 않고 마른 나무가지는 북쪽 뜰에 가득하다.
傾壺絶餘瀝,闚灶不見煙。 술병을 기울이니 술이 떨어졌고 주방을 엿보니 연기가 보이지 않는다.
詩書塞座外,日昃不遑研。 시서가 쌓여 밖을 막아 해가 기울어도 볼 겨를이 없다.
閒居非陳厄,竊有慍見言。 한가로이 지내며 고초 겪는 것도 아닌데, 은근히 말속에 노여움이 드러난다.
何以慰吾懷,賴古多此賢。 무엇으로 내 마음 위로할거나. 기대노니 옛날에도 이러한 현인이 많았으리라.
曝 : 쬘 폭. 闚 : 엿볼 규. 엿보다. 얼핏 봄. 조사하다. 검사함. 꾀다. 유인함. 灶 : 부엌 조. 竈의 俗字.
☞ 陳厄
孔子遭難陳蔡之境,絶糧,弟子皆有饑色,孔子歌兩柱之間. 子路入見曰:「夫子之歌,禮乎?」 孔子不應,曲終而曰:「由,君子好樂爲無驕也,小人好樂爲無 也,其誰知之?子不我知而從我者乎?」 子路不悅,援干而舞,三終而出. 及至七日,孔子脩樂不休,子路 見曰:「夫子之脩樂,時乎?」 孔子不應,樂終而曰:「由,昔者齊桓 心生于 ,句踐 心生於會稽,晉文 心生於驪氏,故居不幽,則思不遠,身不約則智不廣,庸知而不遇之.」 於是興。 <說苑 卷第17. 雜言>
三.
榮叟老帶索,欣然方彈琴。 영계기는 늙어서도 새끼줄을 허리띠 삼고 기쁘게 거문고를 뜯었도다.
原生納決履,淸歌暢商音。 원헌은 찢겨진 신발을 신고서도 맑은 목소리로 거침없이 슬픈 상가를 불렀도다.
重華去我久,貧士世相尋。 순임금은 우리를 떠난지 오래고 가난한 선비는 대를 이어왔노라.
弊襟不掩肘,藜羹常乏斟。 옷깃이 해져 팔꿈치도 가리지 못하고 명아주 국조차도 항상 들이키기에 모자랐네.
豈忘襲輕裘,苟得非所欽。 어찌 가벼운 갓옷 입는 것을 잊겠는가. 구차하게 얻으려고 굽히지 않을 뿐이네.
賜也徒能辨,乃不見吾心。 자공(子貢)은 부질없이 따지기를 잘했어도 내 마음을 보지는 못했도다.
榮叟 : 榮啓期. 飮酒詩 二.에도 영계기를 언급했다. 「九十行帶索」
孔子遊於太山, 見榮啓期行乎郕之野, 鹿裘帶索, 鼓琴而歌。 孔子問曰, 「先生所以樂 何也?」 對曰, 「吾樂甚多. 天生萬物, 唯人爲貴, 而吾得爲人, 是一樂也. 男女之別, 男尊女卑, 故以男爲貴. 吾旣得爲男矣. 是二樂也. 人生有不見日月, 不免襁褓者, 吾旣已行年九十五矣. 是三樂也. 貧者士之常也, 死者人之終也. 處常得終, 當何憂哉!」 孔子曰, 「善乎! 能自寬者也。」 <列子 天瑞-7, 孔子家語 第四卷 15篇 六本13.>
☞ 原生 : 原憲.
原憲居魯,環堵之室,茨以蒿萊,蓬戶甕牖,桷桑而無樞,上漏下濕,匡坐而絃歌。子貢乘肥馬,衣輕裘,中紺而表素,軒不容巷,而往見之。原憲楮冠黎杖而應門,正冠則纓絶,振襟則肘見,納履則踵決。
子貢曰:「嘻!先生何病也!」
原憲仰而應之曰:「憲聞之:無財之謂貧,學而不能行之謂病。憲、貧也,非病也。若夫希世而行,比周而友,學以爲人,敎以爲己,仁義之匿,車馬之飾,衣裘之麗,憲不忍爲之也。」
子貢逡巡,面有慚色,不辭而去。原憲乃徐步曳杖,歌商頌而反,聲淪於天地,如出金石。天子不得而臣也,諸侯不得而友也。故養身者忘家,養志者忘身,身且不愛,孰能忝之。
詩曰:「我心匪石,不可轉也;我心匪席,不可卷也。」<莊子 讓王章> 論語 憲問 1. 參照
商 : 商歌 : 悲凉的歌. 商聲凄凉悲切, 故稱. 后亦以'商歌'比喩自荐求官. [荐 : 천거할 천.] 甯戚의 故事에 나온다.
商은 商歌(가을의 노래), 商風(가을 바람)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을을 뜻함. 商歌는 扣角歌, 牛角歌, 飯牛歌라고도 부른다.
重華 : 舜임금을 부르는 호칭. 重瞳이라고도 하는데 순임금이 눈동자가 둘이었다 함. 賜 : 공자의 제자 子貢.
四.
安貧守賤者,自古有黔婁。 가난했어도 편안하고 낮은 신분에도 자신을 지킨 자는 옛부터 검루가 있었네.
好爵吾不縈,厚饋吾不酬。 좋은 벼슬도 멀리 해 얽히지 않았고 후한 선물도 멀리 해 응대하지도 않았다.
一旦壽命盡,蔽覆仍不周。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이불로 몸을 다 가리지도 못하였다.
豈不知其極,非道故無憂。 어찌 지선(至善)의 도(道)를 몰랐으랴, 도가 아니었으므로 괴로움도 없었노라.
從來將千載,未復見斯儔。 그 후 천년이 지났어도 그 같은 사람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도다.
朝與仁義生,夕死復何求。 아침부터 인의와 더불어 살았는데 저녁에 죽는다 해도 또 무엇을 바랄 것인가.
黔婁 : 魯나라의 선비.
昔先生君嘗欲授之政,以爲國相,辭而不爲,是有餘貴也。君嘗賜之粟三十鍾,先生辭而不受,是有餘富也。彼先生者,甘天下之淡味,安天下之卑位。不戚戚於貧賤,不忻忻於富貴。求仁而得仁,求義而得義。其諡爲康,不亦宜乎! <劉向 列女傳 賢明傳 魯黔婁妻>
吾 : 소원하다. 멀리하는 모양. 覆 : 덮을 부/뒤집힐 복. 옷, 의복. 덮개, 덮는 물건. ☞ 覆 → 服으로 된 詩가 많다.
儔 : 짝 주. 짝. 동배(同輩). 동아리. 누구, 누군가.
五.
袁安困積雪,邈然不可干。 원안은 빈곤 속에 눈이 쌓였어도 초연하여 개의치 않았도다.
阮公見錢入,即日棄其官。 완공은 돈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 날로 관직을 버렸노라.
芻槁有常溫,採莒足朝餐。 꼴과 짚은 항상 온기가 있었고 감자를 캐면 아침식사로 족했다.
豈不實辛苦,所懼非饑寒。 어찌 고초가 없었겠는가? 두려운 바는 배고픔과 추위가 아니었도다.
貧富常交戰,道勝無戚顔。 빈부는 항상 대립하여도 도가 승리하니 슬픈 기색은 없노라.
至德冠邦閭,淸節映西關。 지극한 덕으로 나라를 덮고, 밝은 법도로 서쪽 관문을 비추리라.
袁安
字는 소공(邵公), 後漢 汝南 妝陽人. 汝南先賢傳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원안이 낙양에 머물고 있을 때 大雪을 만났는데 낙양령이 몸소 순시를 나가 살펴보니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눈을 치우면서 걸식을 다녔지만, 원안의 집 문 밖에 이르렀으나 눈이 여전히 쌓여 있어 사람의 다닌 행적이 없었다. 원안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낙양령은 사람들을 시켜 눈을 치우고 그의 집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원안이 허기에 지쳐 누워있었다. 어째서 나가서 음식을 구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대설로 기아에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구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낙양령이 원안을 현자라고 여겨 효렴(孝廉)으로 천거했다.
阮公: 자세한 인적사항은 미상이다. 西關 : 관문 밖 오랑캐.
六.
仲蔚愛窮居,遶宅生蒿蓬。 장중울은 곤궁한 생활을 즐겨 그의 집은 잡초에 묻혔었다네.
翳然絶交游,賦詩頗能工。 몸을 숨겨 세상과 교류를 끊었어도 시와 부는 매우 뛰어났으며.
擧世無知者,止有一劉龔。 세상에서 알아주는 이 없었어도 오직 유공이 있었네.
此士胡獨然,實由罕所同。 이러한 선비가 어찌 외롭겠는가. 뜻을 같이 하는 자가 드물었기 때문이네.
介焉安其業,所樂非窮通。 외로이 자신의 일에 편안했으니 깊이 생각한 끝에 즐기는 바가 아니겠는가.
人事固已拙,聊得長相從。 사람의 일이란 본래 그렇고 그런 것, 그저 서로 가까이 하며 지낼 뿐이네.
仲蔚 :
後漢의 隱者 장중울(張仲蔚). 박학다식하고 시부(詩賦)에 능했는데, 어려서부터 같은 고을의 위경경(魏景卿)과 함께 몸을 숨기고 벼슬하지 않았으므로, 늘 궁핍하여 그가 사는 집에는 사람이 묻힐 정도로 쑥대가 우거졌다고 한다. 후에 이 고사로 인해 빈한한 선비나 그가 사는 곳을 가리켜 ‘중울봉호(仲蔚蓬蒿)’라는 성어가 생겨나기까지 하였다.
遶 : 두를 요. 焉 : 然.
劉龔 : 자는 맹공(孟公)이고 유향(劉向)의 아들로, 西漢의 儒學者로 周禮를 정리한 劉歆(BC.50~AD.23)의 조카. 장중울과 친구사였다 함.
七.
昔在黃子廉,彈冠佐名州。 옛날 황자렴은 벼슬 길에 올라 이름있는 고을을 다스렸노라.
一朝辭吏歸,淸貧略難儔。 하루아침에 벼슬을 사임하고 돌아왔는데 청빈으로는 거의 비할 자가 없었도다.
年饑感仁妻,泣涕向我流。 흉년이 들자 어진 아내도 한 때의 굶주림에 눈물을 흘렸도다.
丈夫雖有志,固爲兒女憂。 장부가 뜻을 세웠어도 본디 처자식을 위하여 근심하는 법이로다.
惠孫一晤歎,腆贈竟莫酬。 현손이 한번 만나보고 탄식하고 후한 선물을 보냈더라도 끝내 받지 않았으리라.
誰云固窮難,邈哉此前脩。 누가 진실로 가난을 추구한다고 하는가? 아득하도다. 이같은 先人의 수행(修行)이!
黃子廉 : 東漢 유학자로 南陽太守 역임. 재임중 청렴하고 솔선수범을 보여 말에게 물을 먹일 때마다 물값으로 동전을 물속에 던져
넣었다는 일화가 있음.
彈冠 : 관을 턴다는 뜻으로 관리가 될 준비를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입사(入仕)하다.
向 : 접때. 이전에. 과거를 나타내는 부사. 我 : 굶주리다.
晤 : 밝을 오. 밝다. 사리에 밝음. 총명함. 만나다. 마음을 터놓다. 허물 없이 사귐.
惠孫 : 춘추시대 초기 衛 武公의 아들.
腆 : 두터울 전. 두텁다. 후함. 많이 차리다. 음식을 많이 차림. 좋다. 착함. 이르다. 도착함. 주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