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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古文學/歷史 史實及說話

調信說話

by 柳川 2016. 11. 13.

                                                         調信說話

 

 

昔新羅爲京師時 有世逵寺(今興敎寺也)之莊舍 在溟州捺李郡(按地理志 溟州無捺李郡 唯有捺城郡 本捺生郡 今寧越 又牛首州領縣有捺靈郡 本捺己郡 今剛州 牛首州今春州 今言捺李郡 未知孰是)。

本寺遺(遣)僧調信爲知莊。信到莊上 悅(太)守金昕公之女, 惑之深。屢就洛山大悲前 潛祈得幸。方數年其女已有配矣。又往堂前怨大悲之不遂已, 哀泣至日暮。情思倦憊 俄成假寢, 忽夢金氏娘容豫入門, 粲然啓齒而謂曰, 兒早識上人於半面, 心乎愛矣 未嘗暫忘, 迫於父母之命, 强從人矣。今願爲同穴之友, 來爾 信乃顚喜 同歸鄕里。

 

昕 : 새벽 흔. 새벽, 아침. 해뜰무렵. 밝은모양. 처마.           

 
옛날 신라가 수도였을 때 세규사(世逵寺) 지금의 흥교사(興敎寺)이다.의 장사(莊舍)가 명주내리군(㮈李郡) 지(地理志)에 의하면 명주에는 내리군은 없고,  다만 내성군(㮈城郡)이 있을 뿐인데, [이것은] 본래 내생군(㮈生郡)으로 지금의 영월(寧越)이다.  또 우수주(牛首州)註1 영내의 고을에 내령군(㮈靈郡)이 있는데, 본래는 내이군(㮈已郡)으로 지금의 강주(剛州)이다. 우수주는 지금의 춘주(春州)이다. 여기서 내리군이라고 하는 것이 어느 것인지 알 수 없다.에 있었다.
본사에서 승려 조신(調信)을 보내 장사의 관리인으로 삼았다. 조신이 장사에 와 있는 동안 태수(太守) 김흔(金昕)註2공의 딸을 좋아하여 깊이 매혹되어 있었다. [그는] 낙산사의 관음보살 앞에 여러 번 나아가 희망한 바를 얻도록 몰래 빌었다. 그 사이 수년이 지났을 때  김흔의 딸은 이미 짝이 생겨 출가하였다.
[조신은] 또 불당 앞에 가서 관음보살이 [자기의 소원을] 이루어주지 않음을 원망하여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었다. 상념에 지쳐 깜빡 선잠이 들었는데 문득 꿈에 김씨의 딸이 기쁜 모습으로 들어서며 환하게 웃고 말했다. 
“제가 일찌기 스님을 잠깐 뵙고 알게 되었고 마음으로 사랑하여 잠시도 잊지 못하였으나 부모의 명에 못이겨 어쩔 없이 다른 사람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대사님과 죽어서] 한 무덤에 묻힐 반려가 되고자 이렇게 왔습니다.”
조신은 대단히 기뻐하며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

 

 

 

計活四十餘霜, 有兒息五, 家徒四壁 藜藿不給。遂乃落魄, 扶携糊其口於四方。 如是十年 周流草野, 懸鶉百結, 亦不掩體。適過溟州蟹縣嶺, 大兒十五歲者忽餧死, 痛哭收瘞於道。從率餘四口, 到羽曲縣(今羽縣也) 結茅於路傍而舍。夫婦老且病 飢不能興。十歲女兒巡乞, 乃爲里獒所噬 號痛臥於前, 父母爲之歔欷, 泣下數行。

 

藜藿 : 명아주 잎과 콩잎이라는 뜻으로, 변변치 못한 거친 음식을 이르는 말.

懸鶉 : 낡고 헤진 옷. 옷이 해어져서 너덜너덜한 것이 메추리의 꽁지깃이 빠진 것과 같다는 뜻으로 이르는 말이다. 누더기.

餧 : 먹일 위. 먹이다. 밥. 음식물. 주리다. 기아(餧死 : 굶어죽다). 생선이 썩다.

瘞 : 묻을 예. 묻다. 무덤.   獒 : 개 오.    噬 : 씹을 서. 씹다. 물어뜯음. 깨뭄. 미치다. 이름.

歔欷 : 한숨을 짓다. 한숨을 쉼. (中)흐느끼다. 

歔 : 흐느낄 허. 흐느끼다. 훌/적훌/적 움, 두려워하다. 콧김을 내쉬다.    欷 : 흐느낄 희. 흐느끼다. 한숨쉬다. 두려워하다.

 

 

어언간 사십 여년이 지나 자녀 다섯을 두었다. 집은 다만 네 벽 뿐이요. 나물죽으로도 끼니를 잇지 못하였다. 마침내 실의에 찬 두 사람은 서로 부축하며 사방을 떠돌아 다니며 입에 풀칠을 하였다. 이와 같이 10년 동안 두루 초야를 떠도니 옷은 누더기로 몸조차 가리지 못했다. 

명주 해현령(蟹峴嶺)을 지나는데  십오 세 된 큰 아이가 홀연히 굶어 죽었다. 통곡하며 [주검을] 거두어 길에 묻었다. 남은 네 자녀를 거느리고 [두 부부는] 우곡현 羽曲縣 지금의 우현(羽縣)이다.에 이르러 길가에 띠풀을 엮어 집을 지어 살았다. 부부가 늙고 병들어 굶주려서 거동조차 어려웠다. 열 살 짜리 딸 아이가 돌아다니며 구걸하다가  마을 개에게 물려 앞에 누워 아픔을 호소하니, 부모는 한숨을 쉬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婦乃[皺]澁拭涕, 倉卒而語曰, "予之始遇君也. 色美年芳 衣袴稠鮮。 一味之甘 得與子分之, 數尺之煖 得子共之 出處五十年, 情鐘莫逆 恩愛稠繆 可謂厚緣。自比年來 衰病歲益深 飢寒日益迫, 傍舍壺漿人不容乞 千門之耻 重似丘山。兒寒兒飢 未遑計補, 何暇有愛悅夫婦之心哉!

 

皺 : 주름 추. 주름잡히다. 주름. 마른대추. 오그라들다.

澁 : 떫을 삽. 떫다. 껄끄럽다. 말하기를 어려워 하다. 말을 더듬음. 나아가기 어렵다. 막히다.

拭 : 닦을 식/씻을 식.

 

 

부인이 차마 말을 못하고  눈물만 훔치다가  갑자기 말했다. 

“내가 당신과 처음 만났을 때는 한창때라 아름답고 옷차림도 훌륭했습니다. 하나라도 맛 좋은 음식은 당신과 나누어 먹고, 좁아도 온기를 당신과 함께 하며 산지 50년, [그 동안] 진실로 거리낌 없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으니 가히 두운 인연이라 하겠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근년에 와서 노쇠와 병고가 해가 거듭될수록 심해지고 추위와 배고픔은 날이 갈수록 더 절박해지며 [한 칸의] 곁방살이 한 병의 마실 것도 사람들이 용납하여 주지 않아, 수많은 집 문 앞에서 당하는 그 수모는 산더미같이 무겁기만 합니다. 
아이들은 추위에 떨고 굶주림에 지쳤어도 잠시나마 면하게 할 계책이 없으니  어느 틈에 사랑함이 있어 부부의 즐거움을 누릴 마음이 나겠습니까!

 

 

紅顔巧笑 草上之露, 約束芝蘭 柳恕飄風。君有我而爲累 我爲君爲足憂。細思昔日之歡  適爲憂患所階。君乎予乎 奚至此極? 與其衆鳥之同餧 焉知隻鸞之有鏡。寒弃炎附 情所不堪, 然而行止非人  離合有數, 請從此辭。"

信聞之大喜 各分二兒將行 女曰, "我向桑梓 君其南矣。"

方分手進途而形開。殘燈翳吐 夜色將闌。

 

弃 : 棄의 古字

桑梓(상자) : 조상 무덤 있는 고향이나 고향 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시경() 小雅 · 小弁》 나오는 말로,

                  잠()  쓰이는 뽕나무 기구() 만드는 쓰이는 가래나무 심어 자손에게 조상 생각하게 했다는 데에

                  유래하였다.

形開 : 잠에서 깨어남.     分手 : 함께 있다가 헤어지다.

 
한창나이의 고운 웃음은 풀잎에 맺힌 이슬 같고 지란(芝蘭)의 고결한 가약은 회오리바람에 날리는 버들가지 같습니다. 당신에게는 제가 부담이 되고 저는 당신을 위하려 해도 근심만 더할 뿐입니다. 지난 날의 즐거움을 곰곰이 생각보니, 바로 우환에 접어드는 길이었습니다. 당신과 제가 어찌하여 이 지경이 되었는지요? 뭇새가 함께 굶어죽는 보다는 차라리 짝 잃은 난새가 거울을 향하여 짝을 부르는 것만 같지 못할 것입니다. 어려울 때 버리고, 성할 때 이 하는 일은 인정으로 차마 할 바가 아니지만, 행하고 그치고 하는 것은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헤어지고 만나는 것도 운수에 있는 것이니 청컨대 내 말을 좇아 헤어지기로 합시다.” 조신이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각각 아이 둘씩을 데리고 가려는데 아내가 말했다. 
“저는 고향으로 가겠습니다. 당신은 남쪽으로 가시지요.”
막 헤어져 길을 가려는데 잠에서 깨어났다. 쇠잔한 등불은 가물거리고 밤이 새려고 하였다.

 

 

及旦鬢髮盡白 惘惘然殊無人世意 。已壓勞生 如飫百年辛苦。貪染之心 洒然氷釋。於是慚對聖容 懺滌無已。 歸撥蟹峴所埋兒塚 乃石彌勒也。灌洗奉安于隣寺。 還京師莊任 傾私財 創淨土寺 懃修白業。後莫知所終。 

 

 

惘 : 멍할 망. 멍하다. 심심하다. 황급하다. 멍한 모양.

飫 : 포식할 어. 포식하다. 실컷 먹음. 서서 하는 주연. 편안히 먹다. 편안한 식사. 주다. 하사함.

 

 

새벽이 되어서 보니 [하룻밤 사이에] 머리카락이 모두 하얗게 세어 있었다. 멍하여 더 이상 인간 세상에 뜻이 없었다. 세상살이의 괴로움에 이미 염증이 난 것이 마치 백 년의 쓰라림을 겪고 난 것 같았다. 탐욕에 쩌든 마음도 깨끗이 얼녹듯 사라져버렸다. [관음보살의] 거룩한 모습을 대하고 부끄럽게 여겨 참회하여 마지 않았다. 
해현으로 가 [꿈속에서] 큰 아이를 파묻었던 자리를 파보았더니 돌미륵이 나왔다. 깨끗이 씻어서 이웃 절에 봉안하였다. 서울로 돌아가 장사관리의 책임을 그만 두고 사재를 털어 정토사(淨土寺)를 세우고, 열심히 수양하며 착한 일하였다. 그 뒤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 알 수 없다.
 

議曰 讀此傳 掩卷而追繹之 何必信師之夢爲然。今皆知其人世之爲樂, 欣欣然役役然 特未覺爾 乃作詞誡之曰, 

 

快適須臾意已閑、 

暗從愁裏老蒼顔。 

不須更待黃粱熟、  

方悟勞生一夢間。 

治身藏否先誠意、  

鰥夢蛾眉賊夢藏。 

何以秋來淸夜夢、  

時時合眼到淸凉。 

 

논하여 말한다. 이 [조신의] 전기를 읽고 나서 책을 덮고 곰곰이 궁리해보니, 어찌 반드시 조신스님의 꿈만 그렇겠는가? 현재도 모든 사람들이 인간세상이 즐거운 줄만 알고 기뻐 날뛰며 애쓰고 있으니, [이는] 오로지 깨닫지 못한까닭이다.
이에 시를 지어 경계한다.
 
즐거움도 순간, 마음은 이미 한가로운데,
근심 속에 나도 모르게 늙어버렸구나
조밥 익기 기다릴 것도 없이註3
내 고달픈 삶도 한 바탕 꿈이로다.
몸을 다스리는데  잘잘못은 참된 마음이 먼저인데
홀아비는 여인을, 도둑은 재물을 꿈꾼다.
어찌하면 가을날 맑은 밤의 꿈이 올까
때때로 눈감고 청량(淸凉)에 이르네.

 

                                                                                                       [三國遺事 卷第三. 塔像 第四]

지금의 강원도 춘천 일대이다.
註 2
태종무열왕이 9세손으로, 증조부는 이찬 주원(周元)이고, 할아버지는 시중을 지낸 소판 종기(宗基)이며, 아버지
는 시중을 지낸 파진찬 장여(璋如)이다. 
822년 당나라에 건너가 숙위하고 1년 뒤에 귀국하였는데, 이때 당나라의 목종으로부터 벼슬을 받기도 하였다. 
839년에는 대장군이 되어 군사 10만을 거느리고 김양 등이 지휘하는 김우징의 군사를 대구에서 방어하다가 실
패하여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그 뒤 소백산으로 들어가 승려들과 함께 지내다가 849년 8얼 27일 47세로 죽었다.

 

註 3
≪枕中記≫에 보면, 중국 당나라 때 노생(盧生)이란 젊은이가 한단(邯鄲) 땅 어느 주막에서 도사 여옹(呂翁)의 
베개를 빌어 베고 잠이 들었다. 그는 꿈속에서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80세 까지 살았다. 그러나 꿈에서 깨
어보니 아까 주인이 짓던 좁쌀밥이 채 익지도 않았더라는 것이니, 부귀와 공명이 덧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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