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風
將仲子
將仲子兮, 중자시여,
無踰我里, 우리마을로 넘어오지 마오.
無折我樹杞, 우리집 버들도 꺾지 마오.
豈敢愛之? 어찌 감히 아까워 하리까.
畏我父母。 부모님이 두려워서 라오.
仲可懷也, 중자님이 그립지만
父母之言, 부모님 말씀
亦可畏也。 역시 두렵다오.
將仲子兮, 중자시여,
無踰我墻, 우리집 담장 넘어오지 마오.
無折我樹桑, 우리집 뽕나무도 꺾지 마오.
豈敢愛之? 어찌 감히 아까워 하리까.
畏我諸兄。 우리 오빠들이 두려워서라오.
仲可懷也, 중자님이 그립지만
諸兄之言, 오빠들 말씀
亦可畏也。 역시 두렵다오.
將仲子兮, 중자시여,
無踰我園, 우리집 뜰로 넘어오지 마오.
無折我樹檀, 우리집 박달나무도 꺾지 마오.
豈敢愛之? 어찌 감히 아까워 하리까.
畏人之多言。 사람들 말 많은 것이 두려워서라오.
仲可懷也, 중자님이 그립지만
人之多言, 사람들 말 많은 것
亦可畏也。 역시 두렵다오.
[註]
나무를 꺾으면 소리가 나므로, 나무를 꺾어서 상대방을 불러낸다. 그러므로 나무를 꺾지 말라는 것은 나를 불러내지 말라는 뜻이다.
將仲子兮,無踰我里,無折我樹杞,豈敢愛之?畏我父母。仲可懷也,父母之言,亦可畏也。
장중자혜, 무유아리, 무절아수기, 기감애지? 외아부모。 중가회야, 부모지언, 역가외야。
청컨대 중자는 내 마을을 넘지 말고 내가 심은 버드나무를 꺾지 말지어다. 어찌 감히 사랑하리오. 우리 부모가 두려워서니라. 중을 가히 그리워하나 부모의 말이 또한 가히 두려우니라.
○賦也. 將 請也. 仲子 男子之字也. 我 女子自我也. 里 二十五家所居也. 杞 柳屬也. 生水傍. 樹如柳, 葉麁而白色. 理微赤, 蓋里之
地域溝樹也.
○莆田鄭氏曰 此淫奔者之辭.
麁 : 麤. 거칠 추.
○부라. 장은 청함이라. 중자는 남자의 자라. 아는 여자 스스로라. 리는 25가가 거처하는 곳이라. 기는 버들 등속이니 물가에서 나서 나무는 버드나무와 같고, 잎사귀는 굵고 흰빛이며 결은 조금 붉은 빛이 있으니, 대개 마을의 땅 경계의 도랑에 심음이라.
○포전정씨 가로대 이것은 음분한 자의 말이라.
[참고1]
毛詩序에서 將仲子는 莊公을 풍자한 시라고 하면서, 그 어머니 때문에 동생을 해치지 못하고, 동생인 숙이 도를 잃었음에도 공이 제어하지 못했으며, 제중이 간했음에서 공이 듣지 않았으니, 작은 것을 참지 못하여 대란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將仲子 刺莊公也, 不勝其母以害其弟, 弟叔失道而公弗制, 祭仲諫而公弗聽, 小不忍 以致大亂焉.
곧 시 속의 仲子는 동생인 叔段을, 부모는 어머니의 武姜을, 제형은 公族을 말한다.
참고로 이와 관련된 고사가 『史記』 鄭世家에 실려 있어 소개한다. 다음 편의 叔于田, 大叔于田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武公 10년에 신후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그 부인된 이가 武姜이다. 무강은 태자인 寤生을 난산하자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뒤에 작은 아들인 숙단을 순산하자 그를 사랑했다. 27년에 무공이 병들자 부인이 청하여 숙단을 태자로 삼으려 했으나 공이 듣지 않았다. 그 해에 무공이 죽고 오생이 位에 올랐으니 이가 莊公이다. 장공 원년에 아우인 단을 京땅에 봉하고 太叔이라 불렀다. 祭仲이 “京땅은 국중보다 크니 뭇사람에게 봉해서는 안 된다.”고 했으나 장공은 “어머니인 무강이 하고자 한 것으로 나는 감히 빼앗지 못한다.”고 했다. 단은 경땅에 부임하여 갑병을 훈련시켜 그 어머니인 무강과 함께 정땅을 칠 모의를 하였다. 장공 22년에 단은 정땅을 습격하고 무강이 안에서 응하였다. 장공이 군사를 풀어 단을 치려고 하자 단은 달아났다. 경땅을 정벌하자 경땅 사람들이 단을 배반하니 단은 언땅으로 달아났다. 언땅이 무너지자 단은 공땅으로 도망갔다. 이에 장공은 그 어머니인 무강을 영성으로 옮기게 하고 맹세하면서 말하기를, “황천에 이르지 아니하고서는 서로 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뉘우치고 어머니를 생각하였다. 영곡의 고숙이 공에게 폐백을 받치자 공이 음식을 하사하니, 고숙이 말하기를, “신은 어머니가 있사오니 청컨대 군주께서 하사하신 음식을 신의 어머니에게 하사하소서!”라고 했다. 장공이 “내가 심히 어머니를 그리워하나 내 어찌 맹세를 등지겠는가? 어찌하면 좋을까?”라고 하자, 고숙이 “땅을 파서 황천에 이르면 서로 볼 수 있습니다.”고 했다. 장공은 고숙의 말대로 땅을 파서 어머니를 만났다.
武公十年 娶申侯女, 爲夫人曰武姜. 生太子寤生 生之難 及生, 夫人弗愛. 後 生少子叔段 段生易 夫人愛之. 二十七年 武公疾, 夫人請公 欲立段爲太子, 公弗聽. 是歲 武公卒 寤生立是爲莊公. 莊公元年 封弟段於京 號太叔. 祭仲 曰京大於國, 非所以封庶也. 莊公曰武姜欲之, 我弗敢奪也. 段至京 繕治甲兵, 與其母武姜 謀襲鄭. 二十二年 段果襲鄭 武姜爲內應. 莊公發兵伐段, 段走伐京, 京人畔段, 段出走鄢. 鄢潰 段出奔共. 於是 莊公 遷其母武姜於城潁, 誓言曰不至黃泉, 毋相見也 居歲餘 已悔思母. 潁谷之考叔有獻於公 公賜食. 考叔曰臣有母 請君食賜臣母. 莊公曰我甚思母, 惡負盟 柰何. 考叔曰穿地至黃泉, 則相見矣. 於是遂從之見母.
[참고2]
杞나무에 대해 『說文』에서는 枸杞(구기)라 했고, 『爾雅』 釋木편에서는 枸檵(구계)라 했고, 『廣韻』에서는 枸杞라 하고, 봄에는 天精子, 여름에는 枸杞葉, 가을에는 却老枝, 겨울에는 地骨根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本草』에서는 一名 仙人杖이라 하고, 뿌리의 이름을 地骨皮라 했다. 또 嚴粲이 쓴 『詩緝』을 보면 詩에서 세 가지 杞나무가 나오는데, 위 鄭風 將仲子편의 “無折我樹杞”의 杞는 柳屬이고, 小雅 南山有臺편의 “南山有杞”와 湛露편의 “在彼杞棘”의 杞는 山木이라 했고, 四牡편의 “集于苞杞”, 杕杜편과 北山편의 “言采其杞”와 四月편 “隰有杞桋”는 枸杞라고 했다. 한편 嚴氏說에 따르면, 『주역』 姤卦의 “以杞包瓜”와 『孟子』의 杞柳는 柳屬이다.
將仲子兮,無踰我墻,無折我樹桑,豈敢愛之? 畏我諸兄。仲可懷也,諸兄之言,亦可畏也。
장중자혜, 무유아장, 무절아수상, 기감애지? 외아제형。 중가회야, 제형지언, 역가외야。
청컨대 중자는 내 담을 넘지 말고 내가 심은 뽕나무를 꺾지 말지어다. 어찌 감히 사랑하리오. 우리 모든 형들이 두려워서니라. 중을 가히 그리워하나 형들의 말이 또한 가히 두려우니라.
○賦也. 墻 垣也. 古者 樹墻下以桑.
○부라. 장은 담장이라. 옛날에는 담장 아래에 뽕나무를 심었느니라.
將仲子兮,無踰我園,無折我樹檀,豈敢愛之? 畏人之多言。仲可懷也,人之多言,亦可畏也。
장중자혜, 무유아원, 무절아수단, 기감애지? 외인지다언。 중가회야, 인지다언, 역가외야。
청컨대 중자는 내 뜰을 넘지 말고 내가 심은 박달나무를 꺾지 말지어다. 어찌 감히 사랑하리오. 사람들의 많은 말이 두려워서니라. 중을 가히 그리워하나 사람들의 많은 말이 또한 가히 두려우니라.
○賦也. 園者 圃之藩, 其內可種木也. 檀 皮靑滑澤. 材彊韌, 可爲車. (將仲子三章)
○부라. 원이라는 것은 남새밭의 울타리이니 그 안에 나무를 심느니라. 단은 껍질이 푸르고 매끄러우며 윤택하고, 재목이 강인하여 가히 수레를 만드니라. (장중자3장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