祈父之什
祈父
祈父!予,王之爪牙。 기보여 ! 내 왕의 좌우에서 일하네.
胡轉予于恤?靡所止居。 어찌 나를 옮겨 근심스럽게 하는가? 머물 곳이 없네.
祈父!予,王之爪士。 기보여 ! 내 왕의 좌우에서 일하네.
胡轉予于恤?靡所底止。 어찌 나를 옮겨 근심스럽게 하는가? 갈 곳이 없네.
祈父!亶不聰。 기보여 ! 참으로 총명치 못하도다.
胡轉予于恤?有母之尸饔。 어찌 나를 옮겨 근심스럽게 하는가? 모친께서 밥 짓게 되었네.
[註]
祈父!予,王之爪牙。胡轉予于恤?靡所止居。
기보! 여, 왕지조아。 호전여우휼? 미소지거。
기보여, 내가 왕의 손톱과 어금니가 되거늘 어찌 나를 근심스러운 곳에 구르게 하여 머물러 살 곳을 없게 하는고.
○賦也. 祈父 司馬也, 職掌封圻之兵甲. 故 以爲號 酒誥 曰圻父薄違 是也. 予 六軍之士也, 或曰司右虎賁之屬也. 爪牙 鳥獸所用 以爲威者
也. 恤 憂也.
○軍士怨於久役. 故 呼祈父而告之, 曰予乃王之爪牙, 汝何轉我於憂恤之地, 使我無所止居乎.
○부라. 기보는 사마니, 직책이 봉기(국경)의 병기와 갑옷을 맡았으므로 이로써 불렀으니, (『서경』) 주고편에, ‘기보가 명을 어기는 자를 멀
리 쫓아냈다’는 것이 이것이라. 여는 육군의 군사이니, 어떤 이는 사우, 호분의 등속이라 하니라. 손톱과 어금니는 새와 짐승이 써서 위협을
삼는 것이라. 휼은 근심이라.
○군사가 오래도록 부역함을 원망함이라. 그러므로 기보를 부르면서 고하여 말하기를, ‘내가 이에 왕의 손톱과 어금니가 되거늘 네가 어찌
나를 걱정하고 근심스런 땅을 굴러다니게 하여 나로 하여금 그쳐 머물게 하는 바가 없게 하는가.’ 하니라.
圻 경기(京畿) 기, 지경 기, 圻와 祈는 畿로 통함. 薄 칠 박
[참고] 司右(사우), 虎賁(호분), 五兵(오병)
虎賁은 『書經』 周書 立政편과 顧命편에 나온다. 『周禮』에서는 ‘虎賁氏’라고 하는데, 왕의 최측근 신하로 주석에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蕫氏曰司馬之屬 有司右虎奔旅賁, 皆奉事王之左右者也. 故 司右曰凡國之用力之士, 能用五兵者屬焉. 虎賁曰掌先後王而趨以卒伍, 旅奔曰
掌執戈盾夾王車 此所謂爪牙者也.(동씨 가로대, “사마에 속하는 것에는 사우 호분 여분이 있으니 모두 왕의 좌우에서 받들어 섬기는 자들이라.
그러므로 사우는 무릇 국가의 힘쓰는 군사이니 능히 ‘오병’을 쓰는 붙이라 하고, 호분은 왕의 앞뒤를 맡아서 대오를 지어 따른다하고, 여분은
창과 방패를 들고 왕의 수레 옆을 맡는다하니, 이것이 이른바 조아라.”)”
참고로 五兵은 다섯 가지 병기를 말하는 것으로 『춘추좌전』 昭公 27년조에 보이는데, 車兵五兵과 步兵五兵이 있다. 車兵의 五兵은 과(戈,
길면서 끝이 갈라진 창), 수(殳, 몽둥이), 극(戟, 나무 줄기의 가지처럼 생긴 창), 이모(夷矛, 長二丈四尺), 추모(酋矛, 長二丈)로 모두 수레 위에서
싸울 수 있는 병기이고, 步兵의 五兵은 弓矢(활과 화살), 殳, 矛(길면서 끝이 뾰족한 창), 戈, 戟이다. 전국시대 이후로는 병기의 종류가 많아져
五兵은 단지 병기를 대표하는 말로 쓰일 뿐이다.
祈父!予,王之爪士。胡轉予于恤?靡所底止。
기보! 여 왕지조사。 호전여우휼? 미소지지。
기보여, 나는 왕의 손톱 같은 군사이거늘 어찌 나를 근심스러운 곳에 구르게 하여 이르러 그칠 곳이 없게 하는고.
○賦也. 爪士 爪牙之士也. 底 至也.
○부라. 조사는 손톱과 어금니가 되는 선비라. 지는 이름이라.
祈父!亶不聰。胡轉予于恤?有母之尸饔。
기보! 단불총。 호전여우휼? 유모지시옹。
기보여, 진실로 총명하지 못하도다. 어찌 나를 근심스러운 곳에 구르게 하여 어머니가 밥 짓는 것을 도맡아 하게 하는고.
○賦也. 亶 誠. 尸 主也. 饔 熟食也. 言不得奉養而使母 反主勞苦之事也.
○東萊呂氏曰越句踐 伐吳, 有父母耆老而無昆弟者 皆遣歸, 魏公子無忌 救趙, 亦令獨子無兄弟者 歸養, 則古者 有親老而無兄弟, 其當免征
役, 必有成法. 故 責司馬之不聰, 其意 謂此法 人皆聞之, 汝獨不聞乎. 乃驅吾從戎, 使吾親 不免薪水之勞也. 責司馬者 不敢斥王也.
(祈父三章)
○부라. 단은 ‘진실로’이고, 시는 주장함이라. 옹은 밥을 익힘이라. 봉양을 하지 못하고 어머니로 하여금 도리어 노고의 일을 맡아 하게 함이
라.
○동래 여씨는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칠 때에 부모가 늙고 형제가 없는 자는 모두 보내서 집으로 돌아가게 했고, 위나라 공자 무기가 조나
라를 구원함에 또한 독자로 형제가 없는 자로 하여금 돌아가 봉양케 하니 곧 옛적에 어버이가 늙고 형제가 없으면 그 마땅히 정역을 면하
게 함이 반드시 법을 이뤄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사마의 귀 밝지 못함을 책망했으니 그 뜻은 ‘이 법을 사람들이 모두 듣고 있거늘 너 홀로
듣지 못하는가. 이에 나를 몰아서 군사를 따르게 하여 내 어버이로 하여금 나무하고 물 긷고 하는 수고로움을 면치 못하게 하는가.’라. (왕
을 책망하지 않고) 사마를 꾸짖음은 감히 왕을 배척하지 못함이라.”고 하니라. (기보3장이라.)
祈父三章 章 四句
序에 以爲刺宣王之詩라하고 說者 又以爲宣王三十九年에 戰于千畝할새 王師敗績于姜氏之戎. . 故 軍士怨而作此詩. 東萊呂氏曰太子晉이 諫靈
王之詞에 曰自我先王厲宣幽平으로 而貪天禍하여 至于今未弭라하니 宣王은 中興之主也어늘 至與幽厲竝數之하니 其詞雖過나 觀是詩所刺컨대 則子
晉之言이 豈無所自歟아 但今考之詩文컨대 未有以見其必爲宣王耳니 下篇放此라
(毛詩)서에 “선왕을 나무란 시라.” 하고, 설명하는 자가 또 “선왕 39년에 천묘에서 싸울 때에 왕의 군사가 강씨의 군사에게 패적했음으로 군
사가 원망하여 이 시를 지었다.”고 하니라. 동래 여씨는 “태자 진이 영왕에게 간하는 말에 우리 선왕인 여왕 선왕 유왕 평왕으로부터 하늘의
화를 불러들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치지 않는다 하니 선왕은 중흥한 군주이거늘 유왕과 여왕과 더불어 아울러 세었으니 그 말이 비록 지나
치나 이 시의 나무람을 보건대 태자 진의 말이 어찌 말미암은 바가 없으랴. 다만 이제 시문을 상고해보건대 그 반드시 선왕이란 것을 발견하
지 못했으니 하편도 이와 같다.”고 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