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中國歷史와文學/史記列傳

史記 卷八O. 樂毅列傳

by 柳川 2019. 6. 2.

                                        樂毅列傳


, . , , . , , . , , .


, , . , . , , . , , , , . 使, . , , , .

, , , 西, , , , . , . . , . . :「, , , . , .」使, 使, . , . , , 使, . , 西. , , . 西, , . , . , . , , , , . , 使.


, , , . , . , , , , :「. , , , . , .」, , 使, . , , 西. , . .

, , , , , , , .

使, , . 使, :「, , , , ! , , . 使, , , . , , . , ?」

, , , , , . 使, , , .
祿,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使. , . , , . , . , . , . , , , , , . , , 使.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使, , . , . , . , .

, , :「, , , , , . , , 退. , .  . , , . , , . , .」

, . .

, , , . , . 使. , , . .

, , :「?」:「.」, . , . , , . , , .

, . , , . , , , , . 西, .


악의()에게는 악양()이라는 선조가 있었다. 악양은 위()나라 문후()의 장군으로 중산()을 정벌하여 취했고, 위 문후는 악양을 영수()에 봉했다. 악양이 죽자, 영수에 장사를 지냈고, 그 후손들이 그곳에 살았다.

중산은 나라를 회복했지만, 조() 무령왕() 때에 이르러 다시 중산을 멸망시켰다. 그리고 악씨의 후손으로 악의가 있었다.

악의는 유능하고 병법을 좋아하여 조나라 사람이 그를 천거했다. 무령왕 때 사구()의 정변이 터지자 조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갔다. 연() 소왕()은 자지()의 난을 당하여 연나라가 제()나라에 크게 패했고, 이 때문에 연 소왕은 제나라에 원한을 품고 단 하루도 제나라에 대한 보복을 잊은 적이 없다는 소문을 들었다.

연나라는 나라가 작고 먼 구석진 곳에 있어 (제나라를) 제압할 힘이 없었다. 이에 몸을 낮추고 인재를 존중했는데 먼저 곽외()를 예우하여 유능한 인재를 초빙하려 했다. 악의는 이 무렵 위() 소왕()을 위하여 연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연왕이 손님의 예로 그를 우대했다. 악의는 사양했지만 끝내 몸을 맡겨 신하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연 소왕은 아경()로 삼고 오랫동안 기다렸다.



당시 제 민왕()이 강력하여 남쪽으로 중구()에서 초나라의 재상 당말()을 패배시키고 서쪽으로 삼진()을 관진()에서 무너뜨린 다음 마침내 삼진과 함께 진()나라를 격파했으며, 조나라를 도와 중산을 멸망시키고 송()나라를 격파하여 땅을 1천 리 넘게 넓혔다.

진() 소왕()과 ‘제()’의 호칭을 두고 다투었으나 다시 ‘왕’이란 칭호로 돌아오자, 제후들이 모두 진나라를 배반하고 제나라에 복종했다. 민왕은 교만해졌고 백성들은 견뎌내지 못했다. 이에 연 소왕은 (악의에게) 제나라를 정벌하는 일을 물었다. 악의는 답은 이랬다.

“제나라는 패주국의 후대로 땅은 넓고 사람은 많아 혼자 공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왕께서 기어이 제나라를 치시겠다면 조나라와 초나라 그리고 위나라와 함께 하느니만 못합니다.”

이에 악의에게 조 혜문왕()과 맹약을 맺게 하고, 별도로 사람을 보내 초나라, 위나라와 연합하게 한 다음 조나라를 통해서 제나라를 토벌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진나라를 설득하게 했다. 제 민왕의 교만과 포악함을 미워하던 제후들은 모두 다투어 합종하여 연나라와 함께 제나라를 토벌하고자 했다.

악의가 돌아와 보고하자, 연 소왕은 군대를 총동원하고 악의를 상장군으로 삼았다. 조 혜문왕은 상국()의 도장을 악의에게 주었다. 악의는 이에 조나라, 초나라, 한나라, 위나라, 연나라의 군대를 함께 통솔하여 제나라를 공격하여 제수() 서쪽에서 제나라를 격파했다. 제후의 군대는 철수하여 돌아갔으나 연나라의 군대와 악의는 계속 뒤쫓아 (제나라의 도성) 임치()에 이르렀다.

제 민왕은 제수 서쪽에서 패하자 달아나 거()를 지키고 있었다. 악의는 홀로 남아 제나라를 돌며 공격했고 제나라는 모두 성을 거점으로 수비에 들어갔다. 악의는 임치로 공격해 들어가서 제나라의 보물과 제기 등을 모두 취하여 연나라로 보냈다. 연 소왕은 크게 기뻐하며 몸소 제수로 가서 군대를 위로하여 상을 내리고 잔치를 베푸는 한편 악의를 창국()에 봉하여 창국군()으로 불렀다. 이어 연 소왕은 제나라에서 노획한 것들을 거두어 연나라로 돌아왔고, 악의에게 다시 군대로 함락되지 않은 제나라의 성들을 평정하게 했다.

악의가 제나라에 남아 전투를 벌인 지 5년 동안 제나라의 70여 개 성을 함락시켜 군현으로 삼아 연나라에 소속시켰으나 거()와 즉묵()만은 굴복시키지 못했다.

그 때 연 소왕이 죽고, 아들 연 혜왕()이 즉위했다. 혜왕은 태자로 있을 때부터 악의를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혜왕이) 즉위하자 제나라의 전단이 이를 듣고는 첩자를 연나라에 풀어 다음과 같이 이간질했다.

“제나라의 성으로 함락되지 않은 것은 두 개 뿐이다. 그런데 일찌감치 이 두 성을 함락시키지 않은 것은 듣자하니 악의가 연나라의 새 왕과 사이가 좋지 않아 군대를 제나라에 남겨 놓고 제나라의 왕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나라는 오로지 다른 장수가 오면 어쩌나 겁을 먹고 있을 뿐이다.”

당시 연 혜왕은 일찍부터 악의를 의심하고 있었는데 제나라의 반간책을 듣고는 바로 기겁()으로 장수를 대체하고 악의를 불러들였다. 악의는 연 혜왕가 사이가 좋지 않아 교체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서쪽 조나라에 투항했다. 조나라는 악의를 관진()에 봉하여 망제군()이라 불렀다. 악의를 높임으로써 연나라와 제나라를 흔들고자 한 것이다.



제나라의 장수 전단()이 그 뒤 기겁()과 싸우면서 아니나 다를까 연나라의 군대를 속이고 끝내 즉묵에서 기겁을 격파했다. 이어 잇따라 연나라을 내몰아 북으로 황하에 이름으로써 제나라의 성들을 모두 수복하고, 양왕()을 거에서 맞아들여 임치로 들어왔다.

연 혜왕은 기겁으로 악의를 교체함으로써 군이 패하고 장수가 죽고 제나라를 잃은 것을 후회했다. 또 악의가 조나라에 투항한 것을 원망하는 한편 조나라가 악의를 기용하여 연나라가 피폐해진 틈을 타서 연나라를 치려는 것이 두려웠다. 연 혜왕은 이에 사람을 보내 악의를 꾸짖는 한편 이렇게 사죄했다.

“선왕께서는 나라를 들어 장군에게 맡기셨고, 장군은 연나라를 위하여 제나라를 격파함으로써 선왕의 원한을 갚고 천하를 모두 떨게 했습니다. 그러니 과인이 어찌 단 하루도 장군의 공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선왕께서 신하들을 버리시어(세상을 떠나) 과인이 새로 즉위하였으나 곁에 있는 자들이 과인을 잘못 이끌었습니다. 과인이 기겁으로 장군을 대체한 것은 장군이 밖에서 오랫동안 고생하기에 장군을 불러 쉬게 하면서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려 한 것입니다. 장군이 이를 잘못 알아들음으로써 과인과 틈이 생겨 결국 연을 버리고 조나라에 귀순한 것입니다. 장군은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을 하든 괜찮겠지만 선왕께서 장군에게 베풀어주신 호의는 어떻게 갚으려 하십니까?”

악의는 연 혜왕에게 답신을 보내 이렇게 말했다.

“신이 불초하여 왕명을 받들고 좌우 대신들의 마음을 따를 수 없는 것은 선왕의 영명함에 손상이 가고 족하의 의리를 해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나라로 달아났던 것입니다. 지금 족하께서 사람을 보내 신을 나무라시매 신은 (족하를) 모시는 자들이 선왕께서 신을 총애하신 까닭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거나 또 선왕을 섬긴 신의 마음을 제대로 밝혀지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감히 이렇게 글로써 대답하고자 합니다.

신은 ‘어질고 성스러운 군주는 녹봉이나 벼슬로 사사로운 관계를 맺지 않으며 공이 많은 사람에게 상을 내리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맡긴다.’고 들었습니다. 따라서 능력을 살펴 벼슬을 주는 사람이 성공하는 군주이고, 행동을 따져 친교를 맺는 사람이 명성을 세우는 선비입니다. 신이 가만히 선왕의 행동을 살펴보니 세상 다른 군주와는 남다른 마음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신은) 일부러 위나라의 사신으로 가서 몸소 연나라를 살폈습니다. 이에 선왕께서는 (신을) 지나치게 높은 자리에 천거하여 빈객의 반열에 넣고 신하들의 윗자리에 세워주셨으며 원로들과 상의도 없이 아경 ()으로 삼으셨습니다. 신은 자신의 능력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채 (선왕의) 명령과 가르침을 받들어도 큰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 여겨 명을 받들어 사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선왕께서는 신에게 ‘내게는 제나라에 대해 깊게 쌓인 원한이 있어 약한 힘도 헤아리지 않고 제나라에 대한 일을 나의 일로 여기고자 하오’라고 하셨습니다. 신은 ‘저 제나라는 패국의 후예로서 수도 없이 싸워 승리했습니다. 군대는 훈련이 잘 되어 있고, 전투에 능숙합니다. 왕께서 제나라를 토벌하고자 하신다면 반드시 천하와 함께 도모해야 합니다. 천하와 함께 도모하려면 조나라와의 동맹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또 회수() 북쪽과 송()나라의 땅은 초나라와 위나라가 욕심내는 곳이니 조나라가 허락하여 4국이 연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한다면 제나라를 대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왕께서는 그렇다고 여기시어 부절을 갖추어 신을 남쪽 조나라에 사신으로 보냈습니다. (신은) 돌아와 보고 드리고 군을 일으켜 제나라를 공격했습니다. 하늘의 의지와 선조들의 영령이 보우하사 황하 북쪽의 땅이 선왕을 따랐고 곧장 제수까지 치고 나갔습니다. 이어 제수의 군대가 명을 받아 제나라를 쳐서 제나라를 대파했습니다. 날래고 날카로운 군사들이 제나라의 도성으로 곧장 쳐들어가니 제왕은 낭패가 되어 거로 달아나 겨우 목숨만 건졌습니다. (제나라의) 보물과 수레, 무기, 진귀한 기물들은 모두 연나라로 가져갔습니다. 제나라의 기물들을 영대()에 진열했는데, 대려()는 원영()에 늘어놓았고 옛날 (연나라의) 정()은 역실()에 되돌려 놓았으며 계구()에다가는 문수()의 대나무를 옮겨 심으니 오패() 이래로 그 공이 선왕을 따를 사람은 없었습니다. 선왕께서는 매우 만족하시고 땅을 떼어 신을 봉해주시니 작은 제후에 버금갈 정도였습니다. 신은 자신의 능력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채 (선왕의) 명령과 가르침을 받들어도 큰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 여겨 명을 받들어 사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신이 듣기에 ‘영명한 군주는 세운 공을 사라지지 않게 하기에 춘추()에 남게 되고, 멀리 내다보는 인재는 이룬 명성을 훼손되지 않게 하기에 후세에까지 칭찬을 듣는다.’고 했습니다. 선왕께서 원수와 치욕을 갚고, 만승의 나라를 없애고, 800년 동안 내려오는 보물과 기물들을 거두어들인 것이 이와 같았고, 신하들을 버리시는 날까지 그 유풍이 쇠퇴하지 않았던 것이 이와 같았습니다. 정치를 맡아 일을 처리하는 신하들은 법령을 정비하고 왕실의 종친들을 단속하는 등 백성에까지 그 혜택이 미친 것은 모두 후대의 교훈이 될 것입니다.

신이 듣기에 ‘일을 잘 한다고 해서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시작이 좋다고 해서 끝도 꼭 좋은 것은 아니다’고 합니다. 옛날 오자서()의 말을 합려()가 들었기에 오왕의 족적이 멀리 영()에까지 미쳤습니다. 그러나 부차()는 그렇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에 말가죽을 내려 강에다 내던졌던 것입니다. 오왕(부차)은 오자서의 의견으로는 공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오자서를 강에 던지고도 후회하지 않았으며, 오자서는 두 군주의 도량이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강에 던져지도록 생각을 바꾸지 않았던 것입니다.

화를 당하지 않고 공을 세워 선왕의 뜻을 밝히는 것이 신의 가장 큰 바램입니다. 치욕과 비방을 당해 선왕의 명성을 추락시키는 것은 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예측하지 못한 죄를 당했는데 요행을 바라는 것은 의리상 감히 할 수 없습니다.

신은 ‘옛날 군자는 사귐을 끊어도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며, 충신은 나라를 떠나도 그 명예를 깨끗하게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신이 불초하긴 합니다만 여러 차례 군자의 가르침을 받들었습니다. (왕을) 모시는 가까운 자들의 말만 들으시고 멀리 있는 신의 언행을 살피지 못하실까 두려워 감히 글을 올리는 것이오니 왕께서는 유념해주십시오!”

이에 연왕은 다시 악의의 아들 악간()을 창국군()으로 삼았고, 악의는 다시 연나라를 오가게 되니 연나라와 조나라는 (악의를) 객경으로 삼았다. 악의는 조나라에서 죽었다.


<악간>
악간이 연나라에 머문 지 30년이 넘었을 때 연왕 희()가 그 재상 율복()의 계책에 따라 조나라를 공격하고자 창국군 악간에게 의견을 물었다. 악간은 “조나라는 사방으로 전투를 할 수 있는 나라로 그 인민은 싸움에 익숙하니 정벌은 안 됩니다”라고 했다. 연왕은 듣지 않고 기어이 조나라를 공격했다. 조나라는 염파()에게 이를 맞아 공격하게 하여 율복의 군대를 호()에서 대파하고 율복을 사로잡았다. 악승()은 대()에서 경진()을 패배시켰다. 악간은 악승과 친척이라 악간은 조나라로 달아났고, 조나라는 이에 연나라를 포위했다. 연나라는 땅을 많이 떼어 조나라에 주어 강화했고, 조나라는 이에 군대를 해산하여 돌아갔다.

연왕은 악간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악간이 조나라로 달아나자 악간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주왕() 때 기자()는 기용되지 못했지만 주왕의 심기를 건드리면서까지 쉼 없이 직언하여 주왕이 자신의 말을 들길 바랐습니다. 상용()도 기용되지 못하고 몸까지 치욕을 당했지만 그가 바뀌기를 바랐습니다. 민심이 흩어지고 죄수들이 감옥에서 뛰쳐나오고서야 두 사람은 은퇴했습니다. 그래서 주왕은 걸왕처럼 포악하다는 죄를 얻게 되었고, 두 사람은 충성스럽고 성스럽다는 명성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들이 끝까지 (나라와 백성을)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과인이 어리석지만 주왕처럼 포악하지는 않습니다. 연나라의 인민이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은나라의 인민들만큼 심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집에 일이 있는데 서로 다 털어놓지 못하고 이웃에다 일러바치다니! 과인은 이 두 가지를 그대가 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악간은 연나라가 자신의 계책을 듣지 않은 것을 원망하여 끝내 조나라에 머물렀다. 조나라는 악승을 무양군()에 봉했다.

그 이듬해, 악승과 염파는 조나라를 위해서 연나라를 포위했다. 연나라은 후한 예물로 화의를 청하자 포위를 풀었다.

5년 뒤에 조 효성왕()이 죽었다. 양왕()은 악승으로 염파를 대신하게 했다. 염파는 악승을 진()나라가 조나라를 멸망시켰다.

그 뒤 20여 년에 고제()가 조나라를 지나다가 “악의에게 후손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악숙()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고조는 그를 악경()에 봉하고 화성군()이라고 불렀다. 화성군은 악의의 손자이다. 그리고 악씨의 종족으로 악하공(), 악신공()이 있었는데, 조나라가 진나라에 멸망하자 제나라의 고밀()로 망명했다. 악신공은 황제()와 노자()의 학설에 정통해 제나라에서 이름을 날리면서 좋은 스승으로 칭송받았다.


<사마천의 논평>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일찍이 제나라의 괴통()과 주보언()은 악의()의 ‘연왕에 드리는 답장’을 읽고는 책을 덮고 울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악신공은 황제와 노자를 배웠다. 그의 원래 스승은 하상장인()이라 하는데 어디 출신인지 알지 못한다.

하상장인은 안기생()을 가르쳤고, 안기생은 모흡공()을 가르쳤고, 모흡공은 악하공을 가르쳤다. 악하공은 악신공을 가르쳤고, 악신공은 갑공()을 가르쳤다. 갑공은 제나라의 고밀()과 교서(西)에서 가르치며 조상국(, 조참)의 스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