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21章
哀公問社於宰我, 宰我對曰, 「夏后氏以松, 殷人以栢。周人以栗, 曰使民戰栗。」
子聞之曰, 「成事不說, 遂事不諫, 旣往勿咎。」
애공이 사직(신주)을 재아에게 물으니 재아가 대답했다.
"하후씨는 소나무를 심었고 은나라 사람들은 잣나무를 심었습니다. 주나라 사람들은 밤나무를 심었는데 백성들로 하여금 두렵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공자가 듣고 말했다.
"성사된 일을 말하지 않으며, 벌어진 일은 간하지 않고, 지나간 일은 허물하지 않겠다."
○宰我孔子弟子, 名予. 三代之社不同者, 古者立社, 各樹其土之所宜木, 以爲主也. 戰栗恐懼貌. 宰我又言周所以用栗之意如此, 豈以古者戮人於社. 故附會其說與.
○遂事謂事雖未成, 而勢不能已者. 孔子以宰我所對, 非立社之本意, 又啓時君殺伐之心而其言, 已出不可復求. 故歷言此, 以深責之, 欲使謹其後也.
○尹氏曰, 古者各以所宜木, 名其社非取義於木也, 宰我不知而妄對. 故夫子責之.
○재아는 공자 제자이니 이름은 여라. 삼대의 사가 같지 아니한 것은 옛 적에 사직을 세움에 각각 그 흙에 마땅한 나무를 심어서 써 신주를 삼았음이라. 전율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는 모양이라. 재아가 또 주나라가 써 밤나무를 쓴 뜻이 이와 같다 함을 말하니 어찌 써 옛적에 사람을 사직에서 죽였으리오. 그러므로 그 말을 부회(牽强附會 : 이치에 닿지 않는 사실을 억지로 끌어다 맞춤)함인저!
○수사는 일이 비록 이루지는 못했으나 세가 능히 그치지 않음이라. 공자가 써 재아가 대답한 바는 사직을 세운 본뜻이 아니고 또 당시 인군이 살벌하는 마음을 열어주고 그 말(사직을 세운 것이 백성을 전율케 하는 것)이 이미 나갔으니 가히 다시 구하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차례로 이것을 말씀하심은 (재아를) 깊이 꾸짖어서 써 그 뒤에는 삼가도록 하고자 하심이라.
○윤씨 가로대 옛적에 각기 마땅한 바 나무로써 그 사직을 이름한 것은 나무의 의를 취함이 아니어늘(그 나라, 그 토질에 마땅한 나무로써 한 것이어늘) 나 재아가 아지 못하고 망령되이 대답함이라. 그러므로 공자가 꾸짖으셨느니라.
第22章
子曰, 「管仲之器小哉。」 或曰, 「管仲儉乎?」 曰,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 「然則管仲, 知禮乎?」 曰, 「邦君樹塞門, 管氏亦樹塞門,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管氏亦有反坫, 管氏而知禮, 孰不知禮。」
坫 : 경계 점. 경계. 대. 음식, 술잔, 홀따위를 얹어두는 대. 反坫 : 중국 주나라 때, 제후들의 회견에서 헌수한 술잔을 되돌려 놓던 대
공자가 말했다. "관중의 그릇이 작았도다."
어떤 자가 물었다. "관중은 검소했습니까?"
공자가 답했다.
"관중은 삼귀의 대(臺)를 쌓았으며, 관의 일을 겸하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하다 할수 있겠는가."
또 물었다. "그렇다면 관중은 예를 알았습니까?"
이에 공자가 대답했다.
"나라 인군이 색문을 세우는데 관중도 색문을 세웠으며, 나라 인군이 두 인군이 교제함에 반점(술잔 놓는 자리)를 두는데 관중이 또한 반점을 두었으니 관중이 예를 안다면 누가 예를 모른다 하겠는가?"
○管仲齊大夫, 名夷吾, 相桓公覇諸侯. 器小 言其不知聖賢大學之道. 故局量褊淺, 規模卑狹, 不能正身修德以致主於王道.
○관중은 제나라 대부이니 이름은 이오요, 환공을 도와 제후를 제패하니라. 그릇이 적음은 그 성현 대학의 도를 아지 못함을 말함이라. 그러므로 국량이 좁고 천박하고 규모가 낮고 좁아 몸을 바로하고 덕을 닦아서 써 왕도의 주를 이루지 못함을 말씀함이라.
或曰, 「管仲儉乎?」 曰, 「管氏 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
어떤 자가 물었다. "관중은 검소했습니까?"
공자가 답했다.
"관중은 삼귀의 대(臺)를 쌓았으며, 관의 일을 겸하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하다 할수 있겠는가."
○或人 蓋疑器小之爲儉. 三歸 臺名, 事見說苑. 攝 兼也. 家臣不能具官, 一人常兼數事, 管仲不然, 皆言其侈.
○혹인이 대개 그릇이 적은 것이 검소한가하고 의심함이라. 삼귀는 (一娶三姓) 대 이름이니 『설원』에 나타나니라. 섭은 겸함이라. 가신이 능히 벼슬을 갖추지 못하여 한 사람이 항상 두어 가지 일을 겸했거늘 관중이 그러하지 아니하니 다 그 사치하다고 말함이라.
桓公立仲父,致大夫曰:「善吾者入門而右,不善吾者入門而左.」 有中門而立者,桓公問焉. 對曰:「管子之知,可與謀天下,其强可與取天下. 君恃其信乎?內政委焉;外事斷焉. 驅民而歸之,是亦可奪也.」 桓公曰:「善.」 乃謂管仲:「政則卒歸於子矣,政之所不及,唯子是匡.」 管仲故築三歸之臺,以自傷於民. <說苑 卷第11. 善說>
「然則管仲, 知禮乎?」 曰, 「邦君樹塞門, 管氏亦樹塞門,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管氏亦有反坫, 管氏而知禮, 孰不知禮。」
또 물었다. "그렇다면 관중은 예를 알았습니까?"
이에 공자가 대답했다.
"나라 인군이 색문을 세우는데 관중도 색문을 세웠으며, 나라 인군이 두 인군이 교제함에 반점를 두는데 관중이 또한 반점을 두었으니 관중이 예를 안다면 누가 예를 모른다 하겠는가?"
○或人又疑不儉爲知禮. 屛謂之樹塞, 猶蔽也. 設屛於門, 以蔽內外也. 好謂好會. 坫 在兩楹之間, 獻酬飮畢則反爵於其上, 此皆諸侯之禮, 而管仲僭之, 不知禮.
○愚謂孔子譏管仲之器小, 其旨深矣. 或人不知而疑其儉. 故斥其奢以明其非儉, 或又疑其知禮. 故 又斥其僭, 以明其不知禮, 蓋雖不復明言小器之所以然, 而其所以小者, 於此亦可見矣.
故程子曰, 奢而犯禮, 其器之小可知, 蓋器大則自知禮而無此失矣, 此言當深味也. 蘇氏曰, 自修身正家以及於國, 則其本深, 其及者遠, 是謂大器.
楊雄所謂大器, 猶規矩準繩, 先自治而後治人者 是也. 管仲三歸反坫, 桓公內嬖六人, 而覇天下, 其本固已淺矣. 管仲死, 桓公 薨, 天下不復宗齊.
楊氏曰, 夫子大管仲之功, 而小其器, 蓋非王佐之才, 雖能合諸侯正天下, 其器不足稱也. 道學不明, 而王覇之略, 混爲一途. 故 聞管仲之器小, 則疑其爲儉, 以不儉告之, 則又疑其知禮, 蓋世方以詭遇爲功而不知爲之範, 則不悟其小 宜矣.
○어떤 사람이 또한 검소하지 아니함이 예를 아는가하고 의심함이라. 병풍을 수색이라 이르니 가림과 같으니, 병풍을 문에 설치하여서 써 안팎을 가림이라. 호는 좋게 모임을 이름이라. 점은 두 기둥 사이에 있으니 술잔을 들이고 다 마시면 술잔을 그 위에 돌려놓으니 이것은 모두가 제후의 예요, 관중이 참람하게 함은 예를 아지 못함이라.
○우는 가로대 공자가 관중의 그릇이 작다고 기롱하시니 그 뜻이 깊거늘, 혹인이 아지 못하고 그 검소함을 의심함이라. 그러므로 그 사치함을 배척함으로써 그 검소하지 않음을 밝히셨거늘, 혹이 또 그 예를 아는가 하고 의심함이라. 그러므로 또 참람함을 배척함으로써 그 예를 아지 못함을 밝히셨으니 대개 비록 다시는 소기의 소이연을 밝혀서 말씀하지 않았으나 그 써한 바 작다는 것을 이에 또한 가히 보니라.
그러므로 정자 가라사대 사치하고 예를 범하면 그 그릇의 작음을 가히 아니 대개 그릇이 크면 스스로 예를 알아 이런 실수가 없으리니, 이 말씀은 마땅히 깊이 맛을 들여야 할 것이니라. 소씨 가로대 몸을 닦고 가정을 바루게 함으로써 나라에 미친다면 그 기본이 깊고 그 미침이 머나니 이 대기라 이르니라.
양웅이 이른바 대기는 규구준승(자로 재고, 먹줄로 튕기는 것으로 모가 나고, 한계가 있음을 이름)과 같아 먼저 스스로 다스리고 뒤에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이것이라. 관중은 삼귀 반점을 하고, 환공은 안으로 여섯 사람의 애첩을 두고 천하를 제패하니 그 기본이 진실로 이미 천박함이라. 관중이 죽고 환공이 죽으니 천하가 다시는 제나라를 종주국으로 하지 않았느니라.
양씨 가로대 부자가 관중의 공을 크다하고 그 그릇이 작다하시니, 대개 왕을 돕는 재주가 아니면 비록 능히 제후를 합하고 천하를 바루었다 하더라도 그 그릇은 족히 일컫지(칭찬하지) 못함이라. 도학이 밝지 못하고 왕패의 간략함이 혼돈되어 한 길이 됨이라. 그러므로 관중의 그릇이 작다고 들으면 곧 그 검소하여서인가 의심하고, 검소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면 곧 또한 그 예를 아는가 하고 의심하니 대개 세상이 바야흐로 궤우(속임수, 『맹자』滕文公章句下 제1장 해설 참고하세요.)로써 공을 삼고 법으로 하는 것을 아지 못하니 곧 그 작다함을 깨닫지 못함이 마땅하니라.
☞ 論語에 관중을 언급한 글이 또 있다.
憲問 第 6章에,
問管仲, 曰, 「人也奪伯氏騈邑三百, 飯疏食沒齒, 無怨言。」
憲問 第17章 ~ 第19章에,
子路曰, 「桓公殺公子紏,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未仁乎 !」 子曰, 「桓公九合諸侯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
子貢曰, 「管仲非仁者與 ! 桓公殺公子紏, 不能死, 又相之。」
子曰, 「管仲相桓公覇諸侯, 一匡天下, 民到于今受其賜, 微管仲吾其被髮左衽矣。豈若匹夫匹婦之爲諒也, 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
☞ 孔子家語에서는 管仲을 감싸는 장면이 나온다.
子路問於孔子曰: “管仲之爲人何如?” 子曰: “仁也” 子路曰: “昔管仲說襄公, 公不受, 是不辯也; 欲立公子糾而不能, 是不智也; 齊襄立無常, 鮑叔牙曰, '君使民慢亂將作矣.' 奉公子小白出奔莒. 公孫無知殺襄公, 管夷吾召忽奉公子糾奔魯, 齊人殺無知,魯伐齊納子糾, 小白自莒先入, 是爲桓公. 公乃殺子糾. 召忽死之也. 家殘於齊, 而無憂色, 是不慈也; 桎梏而居檻車, 無慚心, 是無醜也; 言無恥惡之心. 事所射之君, 是不貞也; 召忽死之, 管仲不死, 是不忠也. 仁人之道, 固若是乎?”
孔子曰: “管仲說襄公, 襄公不受, 公之闇也; 欲立子糾而不能, 不遇時也; 家殘於齊而無憂色, 是知權命也; 桎梏而無慚心, 自裁審也; 事所射之君, 通於變也; 不死子糾, 量輕重也. 夫子糾未成君, 管仲未成臣, 管仲才度義, 管仲不死束縛, 而立功名, 未可非也召忽雖死, 過與取仁, 未足多也” <孔子家語 致思 7.>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管仲의 사람됨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仁하다.” 자로가 물었다. “예전에 관중이 齊 襄公에게 유세하였는데도 양공이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이는 말재주가 없는 것입니다. 公子 糾를 왕으로 세우려고 하였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이는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집안이 제나라에서 망했는데도 근심하는 낯빛이 없었으니 이는 자애롭지 못한 것입니다. 차꼬를 찬 채 檻車에 갇혀 있었는데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었으니 이는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자신이 쏘아서 죽이려던 임금을 섬겼으니 이는 貞操가 없는 것입니다. 召忽은 죽었는데 관중은 죽지 않았으니 이는 不忠한 것입니다. 仁人의 道가 참으로 이와 같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관중이 양공에게 유세하였는데도 양공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양공이 사리에 어두웠기 때문이고, 공자 규를 왕으로 세우려고 하였으나 그렇게 못한 것은 때를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이고, 집안이 제나라에서 망했는데도 근심하는 낯빛이 없었던 것은 時命을 헤아릴 줄 알았기 때문이고, 차꼬를 찬 상태에서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스스로 헤아리고 살폈기 때문이고, 자신이 쏘아서 죽이려던 임금을 섬긴 것은 변화에 통달하였기 때문이고, 공자 규를 따라 죽지 않은 것은 生死의 경중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당시 공자 규가 임금이 되지 않았고 관중도 신하가 되지 않았으니 관중은 다만 무엇이 의에 맞는지를 헤아린 것이다.그리하여 관중은 죽지 않고 속박을 받으면서도 功名을 세웠으니 이는 비난할 수 없다. 소홀이 비록 죽었으나 그것을 가지고 인을 얻었다고 지나치게 칭찬할 것은 못 된다.”
第23章
子語魯大師樂曰, 「樂其可知也。始作翕如也, 從之純如也, 皦如也, 繹如也, 以成。」
공자 노나라 태사에게 음악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음악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시작할 때에는 여러 음이 합해지고 울려 퍼질 때에는 서로 화합해지면서 각각의 음이 또렷이 드러나고 곡조가 이어지면서 한 곡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曒 : 옥돌흴 교. 옥돌의 흰 빛, 희다. 밝다. 또렷함. 맑다. 깨끗함.
繹 : 궁구할 역/풀 석. 궁구하다. 실을 뽑아내다. 이치를 헤아림. 늘어놓다. 잇달다. 뜻이 통하다. 실마리. 길다. 큼. 가득함. 기뻐하다.
○語 告也. 大師 樂官名. 時音樂廢缺. 故孔子敎之. 翕 合也. 從 放也. 純 和也. 曒 明也. 繹 相續不絶也. 成 樂之一終也.
○謝氏曰, 五音六律 不具, 不足以言樂. 翕如 言其合也. 五音合矣, 淸濁高下, 如五味之相濟而後 和. 故曰, 純如. 合而和矣, 欲其無相奪倫. 故曰, 皦如. 然 豈宮自宮而商自商乎. 不相反而相連, 如貫珠可也. 故曰繹如也以成.
○어는 가르침이라. 태사는 악관의 이름이라. 당시에 음악이 폐하고 이지러졌느니라. 그러므로 공자가 가르치셨느니라. 흡은 합함이오, 종은 (소리가) 놓아짐(밖으로 나가는 것)이오, 순은 화함이오, 교는 밝음이오, 역은 서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음이오, 성은 음악의 1장이 끝남이라.
○사씨 가로대 오음 육률이 갖추어지지 아니하면 족히 써 음악이라 말하지 못하니라. 흡여는 그 합함을 말함이니 오음이 합하면 청탁고하가 다섯 가지의 맛이 서로 만나서 (맛을 이룬) 뒤에 (맛이) 화해짐과 같음니라. 그러므로 가로대 순여(화해졌다)라 함이라. 합하고 화하면 그 윤리를 서로 빼앗으려 함이 없고자 함이라. 그러므로 교여(분명해졌다)하다 함이라. 그러나 어찌 궁이 스스로 궁이고 상이 스스로 상이랴, 서로 반대가 되지 아니하고 서로 이어짐이 구슬을 꿴 것과 같음이 옳음이라. 그러므로 가로대 그대로 이어져서 써 (음악이) 이루어짐이라.
第24章
儀封人請見曰, 「君子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從者見之, 出曰, 「二三子何患於喪乎。天下之無道也, 久矣。天將以夫子爲木鐸。」
의(儀)라는 고을의 관문을 지키는 자가 공자를 만나고자 청하여 말했다.
"군자가 이곳에 오시면 내가 만나보지 못한 적이 없습니다."
종자가 뵙게 하자 공자를 뵙고 나와서 말했다.
"여러분은 어찌 벼슬을 잃었다고 근심하십니까? 천하에 도가 없어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하늘이 장차 선생님을 목탁으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儀 衛邑, 封人 掌封疆之官, 蓋賢而隱於下位者也. 君子謂當時賢者, 至此皆得見之, 自言其平日, 不見絶於賢者而求以自通也. 見之謂通使得見. 喪謂失位去國, 禮曰, 喪欲速貧 是也. 木鐸 金口木舌, 施政敎時, 所振以警衆者也. 言亂極當治, 天必將使夫子, 得位設敎, 不久失位也. 封人一見夫子而遽以是稱之, 其得於觀感之間者 深矣.
或曰木鐸所以徇于道路, 言天使夫子失位, 周流四方, 以行其敎, 如木鐸之徇于道路也.
○의는 위나라 읍이라. 봉인은 봉강(봉토의 국경)을 맡은 벼슬이니 대개 어질고 아래 지위에 은거한 자라. 군자는 당시 어진 자를 이름이니 이에 이름에 다 얻어 보는 것은 스스로 그 보통 날에 어진 자 보는 것을 끊지 아니하고 구하여 써 스스로 통함을 말함이라. 현지는 부리는 이를 통하여 얻어 만나보도록 이름이라. 상은 벼슬자리를 잃고 나라를 떠남을 이름이니 『예기』에 상욕속빈(잃거든 빨리 가난하고자 함 곧 기왕 벼슬 자리를 잃을 바에는 얼른 내놓고 떠나라)이 이것이라. 목탁은 쇠로 입을 만들고 나무로 혓바닥을 만든 것이니 정교(정치나 교육)을 베풀 때에 흔들어서 대중들을 일깨우는 것이라. 난은 극하고 마땅히 다스려야 함에 하늘이 반드시 앞으로 부자로 하여금 위를 얻게 하고 가르침을 베풀게 하시니 위를 잃음이 오래하지 아니함을 말함이라. 봉인이 한번 부자를 뵙고 문득 이로써 일컬으니 그 보고 느끼는 사이에서 얻어진 것이 깊도다.
혹이 가로대 목탁은 써한 바 도로에 따르는 것이니(『서경』에 보면 해마다 정월이 되면 풍물치고 다니듯 목탁을 치고 다니면 사람들이 그 뒤를 죽 따라다니는 풍습이 있는데 올 한해도 서로 잘해나가자는 뜻이라고 한다.), 하늘이 부자로 하여금 벼슬자리를 잃게 하여 사방을 주류하여 써 그 가르침을 행하는 것을, 목탁치면서 도로를 따라다니는 것과 같다고 하니라.
☞喪欲速貧
有子問於曾子曰, 「聞喪於夫子乎?」 曰, 「聞之矣. 喪欲速貧, 死欲速朽.」 有子曰, 「是非君子之言也.」 曾子曰, 「參也, 與子游聞之.」 有子曰, 「然, 然則夫子有爲言之也.」 曾子以斯言告於子游, 子游曰, 「甚哉! 有子之言似夫子也. 昔者夫子居於宋, 見桓司馬自爲石槨, 三年而不成, 夫子曰, 『若是其靡也! 死不如速朽之愈也.』 死之欲速朽, 爲桓司馬言之也. 南宮敬叔反魯, 必載寶而朝. 夫子曰, 『若是其貨也, 喪不如速貧之愈也.』 喪之欲速貧, 爲敬叔言之也.」 曾子以子游之言告於有子, 有子曰, 「然. 吾固曰非夫子之言也.」 <禮記檀弓>
有子가 曾子에게 물었다 "喪位(失位去國)에 대해 공자에게 들은 바 있는가?" "들었다. 벼슬을 잃으면 속히 가난해야 하고, 죽으면 속히 주검이 썩어야 한다고 하였다." 유자가 다시 말하였다. "이는 군자다운 말씀이 아니다." " 나는 자유에게서 들었노라." "그런가? 그렇다면 공자가 그 무엇인가 이유가 있어서 그처럼 말씀하신 것일 것이다." 증자가 이 말을 자유에게 말하자, "유자의 말이 매우 공자의 말씀과 같다, 옛적에 공자가 송나라에 머무실 때 桓司馬가 스스로 석곽을 만들었는데, 3년이 되도록 석곽이 완성되지 않자 공자는 이를 보고서 말씀하시길 '이처럼 석곽이 화려하다니! 죽으면 주검이 빨리 가난해지는 것만 못하다' 라고 하셨다. 죽으면 빨리 썩어야 한다는 말은 환사마의 석곽을 두고 한 말이다. 그리고 남궁경숙이 魯나라에 돌아올 때마다 보배를 싣고 조문하였다. 공자는 이를 보고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이 재물을 쓰다니 벼슬을 잃으면 빨리 가난해지는 것만 못하다' 라고 하니 벼슬을 잃었을 때 빨리 가난해 져야 한다고 말한 것은 남궁경숙 때문에 한 말이다."
증자가 자유의 말을 유자에게 전하니 유자가 말하기를 "그렇다 나는 참으로 공자다운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라고 하였다.
第25章
子謂韶盡美矣, 又盡善也。 謂武盡美矣, 未盡善也。
공자께서 순임금의 음악인 소(韶)에 대해서 지극히 아름다우면서도 지극히 선하다고 말씀하셨다.
또, 무왕의 음악인 무(武)에 대해서는 지극히 아름다웠으나 지극히 선하지는 못했다고 말씀하셨다.
[본문 해설]
옛날 음악과 관련해서는 『맹자』양혜왕 하편 제4장을 참고要.
○韶舜樂, 武 武王樂. 美者聲容之盛, 善者美之實也. 舜 紹堯致治, 武王 伐紂救民, 其功一也. 故其樂皆盡美. 然舜之德性之也. 又以揖遜而有天下, 武王之德反之也. 又以征誅而得天下. 故 其實有不同者.
○程子曰成湯放桀, 惟有慙德, 武王亦然. 故未盡善, 堯舜湯武 其揆一也, 伐征非其所欲, 所遇之時然爾.
○소는 순임금의 음악이오, 무는 무왕의 음악이라. 미라는 것은 소리의 모양이 성대함이오, 선이라는 것은 미의 견실함이라. 순임금은 요를 이어서 다스림을 이루시고 무왕은 주를 베고 백성을 구하셨으니 그 공은 하나라. 그러므로 그 음악이 다 지극히 아름다우니라. 그러나 순임금의 덕은 성품 그대로이고 또한 읍손함(겸양하고 손순함)으로써 천하를 두시고, 무왕의 덕은 그와 반대이고 또한 정벌하고 베어서 써 천하를 얻음이라. 그러므로 그 실은 같지 아니함이 있느니라.
○정자 가라사대 탕임금이 걸을 내치심에 오직 부끄러운 덕을 두시니 무왕도 또한 그러하니라. 그러므로 선을 다하지 못하였으나 요순탕무는 그 법은 하나이니 정벌은 그 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오, 만난 바의 때가 그러했느니라.
第26章
子曰, 「居上不寬, 爲禮不敬,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
공자가 말씀하셨다.
"윗 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못하고, 예를 행함에 있어 공경하지 않으며, 상에 임해서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으로 그를 관찰하겠는가?"
○居上 主於愛人. 故 以寬爲本, 爲禮以敬爲本, 臨喪 以哀爲本, 旣無其本, 則以何者 而觀其所行之得失哉
○위에 거함은 사람 사랑함을 주로 삼음이라. 그러므로 너그러움으로써 근본을 삼고, 예를 위함은 공경으로써 근본을 삼고, 초상에 임함은 슬픔으로써 근본을 삼으니 이미 그 근본이 없으면 곧 무엇으로써 그 행하는 바의 득실을 보리오(아예 볼 가치조차 없노라).
'四書 > 論語' 카테고리의 다른 글
里仁。第 1章. 里仁爲美, ~ 第 5章. 富與貴, (0) | 2020.01.04 |
---|---|
里仁。第四。本文 (0) | 2020.01.04 |
八佾。第16章. 禘自旣灌而往者 ~ 第20章. 關雎樂而不淫, (0) | 2020.01.03 |
八佾。第11章. 或問禘之說, ~ 第15章. 子入大廟, (0) | 2020.01.03 |
八佾。第 6章. 季氏旅於泰山, ~ 第10章. 禘自旣灌而往者, (0) | 2020.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