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11章
或問禘之說, 子曰, 「不知也。 知其說者之於天下也, 其如示諸斯乎 !」 指其掌。
어떤 사람이 체제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자 하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아지 못한다. 그 설명을 아는 자는 천하를 보는데 있어 여기에서 보는 것과 같이 핳 것이다." 그리고 그 손바닥을 가리켰다.
[본문 해설]
어떤 사람이 큰 제사 지내는 법을 묻자 공자는 알면서도 모른다고 대답한 것은 일반의 보통 사람이 그 큰 제사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나 하겠으며, 설명해줘 보았자 어디에 쓰겠는가 하는 뜻이 담겨있다. 체라는 제사는 왕만이 지낼 수 있는 제사로, 만약 큰 제사에 관하여 안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손바닥 뒤집는 것과 같이(如反掌) 쉽게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先王報本追遠之意, 莫深於禘, 非仁孝誠敬之至, 不足以與此, 非或人之所及也. 而不王不禘之法, 又魯之所當諱者. 故以不知答之. 示與視同. 指其掌 弟子記夫子言此而自指其掌, 言其明且易也. 蓋知禘之說, 則理無不明, 誠無不格, 而治天下不難矣, 聖人於此, 豈眞有所不知也哉.
○선왕이 보본추원(근본을 갚고 먼 곳을 추억하는 것, 곧 제사지내는 뜻)한 뜻이 체보다 깊은 것이 없으니 어질고 효도하고 정성스럽고 공경하는 지극함이 아니면 족히 써 이에 참여하지 못하니, 혹인이 미칠 바가 아니오, 왕이 아닌데 큰 제사를 지내지 않는 법은 또 노나라가 마땅히 꺼리는 바라(예가 아닌데 나라에서 주공의 제사를 지내기에 서로가 입에 담는 것을 꺼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지 못한다는 것으로써 대답하시니라. 시는 ‘볼 시’와 더불어 같으니라. 그 손바닥을 가리킴은 제자가 부자가 이를 말씀하시면서 스스로 그 손바닥을 가리킴을 기록한 것이니, 그 밝고 또 쉬움을 말씀하심이라. 대개 큰 제사의 설명을 알면 곧 이치가 밝지 않음이 없고 정성이 지극하지 아니함이 없어 천하를 다스림이 어렵지 아니하니 성인이 이에 어찌 참으로 아지 못하는 바가 있으시리오.
第12章
祭如在, 祭神如神在。子曰, 「吾不與祭, 如不祭。」
제사를 지낼 때에는 계신 것 같이 하시며, 신에게 제사지낼 때에는 신이 있는 것 같이 지낸다.
공자가 말했다.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아니하면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
○程子曰, 祭 祭先祖也, 祭神 祭外神也, 祭先主於孝, 祭神主於敬. 愚謂此門人記孔子祭祀之誠意.
○又記孔子之言, 以明之. 言己當祭之時, 或有故不得與, 而使他人攝之, 則不得致其如在之誠. 故 雖已祭而此心缺然, 如未嘗祭也.
○范氏曰, 君子之祭七日戒, 三日齊, 必見所祭者, 誠之至也. 是故郊則天神格, 廟則人鬼享, 皆由己以致之也. 有其誠, 則有其神, 無其誠則無其神, 可不謹乎! 吾不與祭如不祭, 誠爲實, 禮爲虛也.
○정자 가라사대 제는 선조를 제사지냄이오, 제신은 바깥 신을 제사지냄이니, 조상을 제사 지냄은 효도가 주가 되고 신을 제사지냄은 공경이 주가 되니라. 우가 이르기를 이것은 문인이 공자가 제사지내는 성의를 기록한 것이니라.
○또 공자의 말씀을 기록하여 써 밝힘이라. 말하건대 자기가 제사지내야 할 때를 당하여 혹 유고하여 얻어 참여하지 못하고 타인으로 하여금 대리한다면 곧 그 여재의 정성(『중용』 제16장 해설 참조)을 이루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비록 이미 제사를 지냈더라도 이 마음이 이지러져 일찍이 제사지내지 아니함과 같으니라.
○범씨 가로대 군자가 제사를 지냄에 칠일동안 경계하고, 삼일 동안 재계하여 반드시 제사를 보는 것 같이 하는 것은 정성의 지극함이라. 이런 까닭으로 교제인즉 천신이 이르고 묘제인즉 사람 귀신이 흠향하나니 다 자기로 말미암아 써 이름이라. 그 정성을 두면 그 신이 있고 그 정성이 없으면 그 신이 없으니 가히 삼가지 아니하랴.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아니하면 제사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는 것은 정성이 실제가 됨이오, 예는 허가 됨이라.
第13章
王孫賈問曰, 「與其媚於奧, 寧媚於竈, 何謂也?」 子曰, 「不然. 獲罪於天 無所禱也。」
왕손가가 물었다. "아랫목 귀신에 아첨하는 것보다 차라리 부엌 귀신에게 아첨한다 하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렇지 아니하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
[본문 해설]
아랫목 귀신과 부엌 귀신은 다섯 가지 제사(五祀)의 하나를 이른다. 부엌에서 제를 시작하여 아랫목에서 끝내는데, 『禮記』月令을 보면 “정월에는 방문앞에서 지내고, 4월에는 부엌에서 지내고, 辰戌丑未月인 중앙달에는 가운데 처마에서 지내고, 7월에는 문에서 지내고, 10월에는 길에서 지낸다(孟春之月其祀戶, 孟夏祀竈, 中央祀中霤, 孟秋祀門, 孟冬祀行.)” 하였다. 여기서 아랫목 귀신인 奧는 윗자리를 뜻하고 부엌 귀신인 竈는 아랫자리를 뜻한다. 아첨하려면(잘되게 하려고 빌려면) 차라리 낮은 자리에서 하는 것이 낫다. 다시 말해 아랫목 귀신은 임금이고, 부엌 귀신은 신하, 대부를 이른다.
○王孫賈衛大夫. 媚 親順也, 室西南隅 爲奧, 竈者 五祀之一, 夏所祭也. 凡祭五祀 皆先設主, 而祭於其所然後, 迎尸而祭於奧, 略如祭宗廟之儀. 如祀竈則設主於竈陘, 祭畢而更設饌於奧, 以迎尸也. 故時俗之語, 因以奧有常尊, 而非祭之主, 竈雖卑賤, 而當時用事, 喩自結於君, 不如阿附權臣也. 賈衛之權臣. 故 以此諷孔子.
竈 : 부엌 조. 陘 : 부뚜막 형
○왕손가는 위나라 대부라. 미는 친하고 순함이라. (남향집의 경우) 집 서남쪽 모퉁이가 아랫목이 됨이라. 조라는 것은 오사의 하나이니 여름에 지내는 것이라. 무릇 다섯 제사를 지냄에 다 먼저 신주를 베풀고, 그 곳에서 제사를 지낸 연후에 시동을 맞이하여 아랫목에서 제사를 지내니 대략 종묘에 제사지내는 의식과 같음이라. 부엌 제사와 같이 할진댄 곧 신주를 부뚜막에 베풀고 제사를 다하고 다시 아랫목에 제수를 베풀어서 써 시동을 맞이하니라. 그러므로 당시 풍속의 말에 인하여 아랫목으로써 항상 높음이 되나 제의 주장이 아니고 부엌이 비록 비천하나 당시에 일을 썼으니 스스로 인군에게 결탁함이 권신에게 아부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가는 위나라 권신이라. 그러므로 이로써 공자를 풍간함이라(공자로 하여금 벼슬자리를 얻으려면 헛되이 왕에게 나아가 부탁하지 말고 권신인 가에게 아부하라는 뜻이다).
○天 卽理也. 其尊無對, 非奧竈之可比也. 逆理則獲罪於天矣, 豈媚於奧竈, 所能禱而免乎. 言但當順理, 非特不當媚竈, 亦不可媚於奧也.
謝氏曰, 聖人之言遜而不迫, 使王孫賈而知此意, 不爲無益, 使其不知, 亦非所以取禍.
○천은 곧 이치라. 그 높이가 상대함이 없으니 아랫목과 부엌이 가히 견주지 못하니라. 이치를 거스리면 죄를 하늘에 얻을 것이니 어찌 아랫목과 부엌에 아첨하여 능히 빌어서 면하는 바가 있으랴. 다만 마땅히 이치에 순종할 것이오, 특별히 부엌에 아첨하는 것이 당치 않을 뿐만 아니오, 또한 가히 아랫목에 아첨하는 것도 아니됨을 말씀함이라.
사씨 가로대 성인의 말씀이 손순하고 박절하지 아니하여 왕손가로 하여금 이 뜻을 알면 유익함이 없을 뿐만이 아니오, 하여금 그 아지 못하더라도 또한 써 화를 취할 바가 아니니라.
第14章
子曰, 「周監於二代。郁郁乎文哉 ! 吾從周。」
공자가 말했다. "주나라는 夏商 2대를 거울 삼았다. 그 문화가 찬란하도다 ! 내 주나라를 따르리라."
○監 視也. 二代夏商也. 言其視二代之禮而損益之. 郁郁 文盛貌.
○尹氏曰, 三代之禮至周大備, 夫子美其文而從之.
○감은 봄이라. 2대는 하나라 상나라라. 그 2대의 예를 보고 손익(손과 익은 주역의 괘명이기도 하고, 공자가 춘추 등 글을 쓴 것도 덜 건 덜고, 취할 것은 취해 보탠다는 뜻)함을 말함이라. 욱욱은 문채가 성대한 모양이라.
○윤씨 가로대 3대의 예는 주나라에 이르러 크게 갖추어졌으니 공자께서 그 무늬를 아름답게 여기시고 따르셨느니라.
第15章
子入大廟, 每事問, 或曰, 「孰謂鄹人之子知禮乎? 入大廟每事問?」 子聞之曰, 「是禮也。」
공자가 태묘에 들어가서 매사를 묻자 어떤 자가 물었다.
"누가 추나라 사람의 자식이 예를 안다 했는가? 태묘에 들어와 매사를 묻기만 하는가?"
공자가 듣고 말했다. "이것이 예이다."
鄹 : 추나라 추.
○大廟 魯周公廟. 此蓋孔子始仕之時, 入而助祭也. 鄹 魯邑名, 孔子父叔梁紇, 嘗爲其邑大夫. 孔子自少, 以知禮聞. 故 或人 因此而譏之. 孔子言是禮者, 敬謹之至, 乃所以爲禮也.
○尹氏曰, 禮者敬而已矣. 雖知亦問, 謹之至也, 其爲敬莫大於此, 謂之不知禮者, 豈足以知孔子哉리오
○태묘는 노나라 주공의 사당이라. 이는 대개 공자가 처음 벼슬하실 때에 들어가 제를 도우심이라. 추는 노나라 읍명이니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이 일찍이 그 읍의 대부가 되니라. 공자가 젊어서부터 써 예를 안다고 소문이 남이라. 그러므로 혹인이 이로 인하여 기롱함이라. 공자가 이것이 예라고 말씀하신 것은 공경하고 삼감의 지극함이 이에 써 예가 되는 바이라.
○윤씨 가로대 예라는 것은 공경할 따름이라. 비록 알아도 또한 물음은 삼감의 지극함이니 그 공경함이 이보다 큰 것이 없거늘 예를 아지 못한다고 이르는 자는 어찌 족히 써 공자를 알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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