此篇, 皆論古今人物賢否得失, 蓋格物窮理之一端也。 凡二十七章, 胡氏以爲疑多子貢之徒 所記云。
이 편은 모두 고금의 인물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과 얻고 잃음을 논한 것으로 대개 격물과 궁리의 한 단서라 할것이다. 모두 27장이며 호씨는 '아마도 자공의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 많은 듯하다.' 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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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1章
子謂公冶長可妻也。 雖在縲絏之中, 非其罪也。 以其子妻之。 子謂南容邦有道不廢, 邦無道免於刑戮。以其兄之子 妻之。
공자가 공야장에 대해서, '사위 삼을 만하다. 비록 옥에 갇혀 있으나 그의 죄가 아니다.' 라 하시고 그의 딸을 시집보내셨다.
공자가 남용에 대해서,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버려지지 않을 것이며, 나라에 도가 없어도 형벌을 면할 것이다.' 라 하시고, 그 형의 딸을 시집보내셨다.
縲 : 검은 끈 루(류) 絏 : 맬 설. 縲絏 : 옛날에는 포승줄은 검은 줄로 썼기에 포승줄의 의미로 쓰인다.
縲絏之中이라고 하면 곧 옥에 갇혀 있음을 뜻한다.
○公冶長 孔子弟子. 妻 爲之妻也. 縲 黑索也. 絏 攣也. 古者獄中 以黑索 拘攣罪人. 長之爲人 無所考而夫子稱其可妻, 其必有以取之矣. 又言其人雖嘗陷於縲絏之中, 而非其罪, 則固無害於可妻也. 夫有罪無罪 在我而已, 豈以自外至者爲榮辱哉.
○공야장은 공자 제자라. 처는 위하여 시집을 보냄이라. 루는 검은 노끈(흑색)이라. 설은 묶음이라. 옛적에 옥중에 검은 끈으로써 죄인을 구연(구속)함이라. 공야장의 사람됨은 상고할 바가 없으나 부자가 그 가히 사위삼을 만하다고 칭찬하셨으니 그 반드시 취할 데가 있느니라. 또 말씀하시길 그 사람이 비록 일찍이 누설의 가운데 있으나 그 죄가 아니니 진실로 가히 사위를 삼는데 해가 없다고 하시니, 무릇 죄가 있고 죄가 없음은 내게 있을 뿐이니 어찌 밖으로부터 이르는 것으로써 영욕이 되리오.
子謂南容 邦有道不廢, 邦無道 免於刑戮, 以其兄之子 妻之.
공자가 남용에 대해서,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버려지지 않을 것이며, 나라에 도가 없어도 형벌을 면할 것이다.' 라 하시고, 그 형의 딸을 시집보내셨다.
○南容 孔子弟子, 居南宮, 名 縚, 又名 适, 字 子容, 諡 敬叔, 孟懿子之兄也. 不廢 言必見用也. 以其謹於言行. 故 能見用於治朝, 免禍於亂世也. 事又見第十一篇.
○或曰, 公冶長之賢 不及南容. 故 聖人以其子妻長, 而以兄子妻容, 蓋厚於兄而薄於己也. 程子曰. 此以己之私心, 窺聖人也. 凡人避嫌者 皆內不足也, 聖人自至公, 何避嫌之有. 況嫁女 必量其才而求配, 尤不當有所避也. 若孔子之事 則其年之長幼, 時之先後 皆不可知, 惟以爲避嫌, 則大不可, 避嫌之事, 賢者且不爲, 況聖人乎.
縚 : 실끈 도 适 : 빠를 괄
○남용은 공자 제자니 남궁에 살고 이름은 도요, 또 이름은 괄이오, 자는 자용이오, 시호는 경숙이니 맹의자의 형이라. 불폐는 반드시 쓰임 당함(등용)을 말함이라. 써 그 언행을 삼감이라. 그러므로 능히 치조에서는 쓰일 것이고 난세에는 화를 면할 것이라. 일이 또 제11편에 나타나니라(시경 백규장을 날마다 세 번씩 읽었다는 내용).
○혹이 가로대 공야장의 어짊이 남용에게 미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성인이 그 자식으로써 공야장에게 시집보내고 형의 자식으로써 시집을 보내셨으니 대개 형에게 후하고 자기에게 박하게 하셨다한대 정자 가라사대 이는 자기의 사사로운 마음으로써 성인을 엿봄이라(지공무사한 성인이 후박을 생각해서 한 것이 아님에서 소인이 제멋대로 해석한 말이다). 무릇 사람이 혐의를 피하려는 것은 다 안이 부족해서이니 성인이 스스로 지극히 공변되시거늘 어찌 혐의를 피함이 있으시리오. 하물며 딸을 시집보냄은 반드시 그 재주를 헤아려 배필을 구하니 더욱 마땅히 피할 바가 아니니라. 공자 같은 일은 곧 그 나이의 장유와 때의 선후는 다 가히 알지 못하거니와 오직 써 혐의를 피한다는 것은 곧 크게 옳지 못하니, 혐의를 피하는 일은 현자도 또한 하지 않거든 하물며 성인이야!
第 2章
子謂子賤, 「君子哉。若人! 魯無君子者, 斯焉取斯。」
공자가 자천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이 사람은 군자로다 ! 노나라에 군자다운 사람이 없었다면,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와 같은 덕을 취했겠는가!"
[해설]
유향의 설원에 다음 구절이 나온다. 孔子家語에서도 같은 글이 나오는데 같이 보기로 한다.
孔子弟子有孔蔑者,與宓子賤皆仕,孔子往過孔蔑,問之曰, 「自子之仕者,何得何亡?」 孔蔑曰, 「自吾仕者未有所得,而有所亡者三,曰:王事若襲,學焉得習,以是學不得明也,所亡者一也. 奉祿少, 不足及親戚,親戚益疏矣,所亡者二也. 公事多急,不得弔死視病,是以朋友益疏矣,所亡者三也.」
孔子不說,而復往見子賤曰, 「自子之仕,何得何亡也?」 子賤曰, 「自吾之仕,未有所亡而所得者三:始誦之文,今履而行之,是學日益明也,所得者一也. 奉祿雖少, 得及親戚,是以親戚益親也,所得者二也. 公事雖急,夜勤,弔死視病,是以朋友益親也,所得者三也.」 孔子謂子賤曰, 「君子哉若人!君子哉若人!魯無君子也,斯焉取斯?」 <說苑 卷第七 政理>
공자 兄의 아들이자 제자인 孔蔑은 복자천과 함께 벼슬하고 있었다. 공자가 공멸이 있는 곳을 방문하여 물었다.
"너는 벼슬에 나간 이후,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느냐?"
공멸이 대답했다. "저는 벼슬하면서부터 아직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이 세가지가 있습니다, 공무가 겹친 듯 많아, 배운 것을 복습하려 해도, 이로써 배운 것을 밝힐 수 없으니. 이것이 잃은 것중에 하나입니다, 받는 봉록이 적어 친척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여 더욱 소원해졌으니, 이것이 잃은 것 중에 둘입니다. 공무의 일이 많고 급해, 조문도 문병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이때문에, 붕우와의 관계가 더욱 소원해졌으니, 이것이 잃은 것 중에 셋입니다."
공자가 듣고 불쾌하여, 다시 복자천에게 가서 보고 물었다. "너는 벼슬하면서부터 무엇을 잃고 무엇을 잃었느냐?"
복자천이 대답하였다.
"저는 벼슬하면서부터 아직 잃은 것은 없고 얻은 것이 세가지입니다. 처음에 외웠던 글을 지금은 다니면서 실제 행합니다. 이래서 배운 것이 날로 더욱 밝아지니. 이것이 얻은 것 중에 하나입니다. 봉록이 비록 적지만, 친척과 함께 어울릴 수 있어, 이로써 친척과 더욱 친밀해졌으니, 이것이 얻은 것 중에 둘입니다. 공무가 비록 급하지만 야근하고 상가집에 조문하고 문병을 합니다. 이때문에, 벗들과의 관계가 더욱 친밀하여졌으니, 이것이 얻은 것 중에 셋입니다."
공자가 복자천에게 말했다.
" 군자로구나, 이 사람이! 군자로구나, 이 사람이! 노나라에 군자가 없었더라면 어디서 이런 德을 취하였겠는가!"
孔子兄子有孔篾者, 與宓子賤偕仕, 孔子往過孔篾, 而問之曰: “自汝之仕, 何得何亡?” 對曰: “未有所得, 而所亡者三, 王事若龍, 學焉得習, 是學不得明也; 俸祿少饘粥, 不及親戚, 是以骨肉益疏也; 公事多急, 不得弔死問疾, 是朋友之道闕也. 其所亡者三, 卽謂此也”
孔子不悅, 往過子賤, 問如孔篾對曰: “自來仕者無所亡, 其有所得者三, 始誦之, 今得而行之, 是學益明也; 俸祿所供, 被及親戚, 是骨肉益親也; 雖有公事, 而兼以弔死問疾, 是朋友篤也.” 孔子喟然謂子賤曰: “君子哉! 若人. 魯無君子者, 則子賤焉取此!” <孔子家語 子路初見 4.>
○子賤 孔子弟子, 姓 宓, 名 不齊. 上斯斯 此人, 下斯斯 此德. 子賤 蓋能尊賢取友, 以成其德者. 故 夫子旣歎其賢, 而又言若魯無君子則此人何所取以成此德乎. 因以見魯之多賢也.
○蘇氏曰, 稱人之善, 必本其父兄師友, 厚之至也.
宓 : 성 복. 성. 편안하다. 몰래, 비밀히.
○자천은 공자 제자니 성은 복이오, 이름은 부제라. 위 斯의 斯는 이 사람이오, 아래 斯의 斯는 이 덕이라. 자천은 대개 어진 이를 높이고 벗을 취하여 써 그 덕을 이룸이라. 그러므로 부자가 이미 그 어짊을 탄식하시고 또 말씀하시길 만약 노나라에 군자가 없으면 이 사람이 어느 곳에서 써 취하여 이러한 덕을 이루었겠느냐 하시니, 인하여 써 노나라에 어진 이가 많다 함을 보여주심이라.
○소씨 가로대 사람의 선을 일컬음에 반드시 그 부형과 선생과 벗을 근본으로 함은 후함이 지극하심이라.
第 3章
子貢問曰, 「賜也, 何如?」 子曰, 「女 器也。」 曰, 「何器也?」 曰, 「瑚璉也。」
자공이 물었다. "저는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셨다. "너는 그릇이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어떤 그릇입니까?"
공자가 대답하셨다. "호련(기장을 담는 제기)이로다."
○器者 有用之成材. 夏曰瑚, 商曰璉, 周曰簠簋, 皆宗廟盛黍稷之器, 而飾以玉, 器之貴重而華美者也. 子貢見孔子以君子許子賤. 故以己爲問, 而孔子告之以此, 然則子貢, 雖未至於不器, 其亦器之貴者歟.
簠 : 제기 보. 바깥은 네모지고 담는 안은 둥근 제기. 簋 : 제기 궤
○그릇이라는 것은 유용하게 이루어진 재목이라. 하나라에서는 호라 이르고, 상나라에서는 련이라 이르고, 주나라에서는 보궤라 이르니, 다 종묘에서 서직을 담는 그릇이고 옥으로써 꾸몄으니, 그릇이 귀중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자공이 공자께서 군자로써 자천을 허여하심을 봄이라. 그러므로 자기로써 물으니 공자가 이로써 가르쳐주시니 그런즉 자공이 비록 그릇이 아닌 데에는(君子不器) 이르지 못하나 그 또한 그릇의 귀한 것인저!
第 4章
或曰, 「雍也仁而不佞。」 子曰, 「焉用佞? 禦人以口給, 屢憎於人, 不知其仁, 焉用佞。」
어떤 자가 말했다. "염옹은 어질지만 말재주가 없다."
공자가 말씀하셨다.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는가? 말재간으로 남에게 응대하면 남으로부터 자주 미움을 받게 될터인데, 염옹이 어진지는 모르겠지만 말재주를 어디에 쓸 것인가?"
○雍 孔子弟子, 姓 冉, 字 仲弓. 佞 口才也. 仲弓爲人 重厚簡黙, 而時人以佞爲賢. 故美其優於德而病其短於才也.
○옹은 공자 제자니 성은 염이오, 자는 중궁이라. 녕은 말재주라. 중궁의 사람됨이 중후하고 간결하고 묵묵하여 당시 사람들이 말재주로써 어짊을 삼았느니라. 그러므로 그 덕의 넉넉함을 아름답다 하면서도 그 재주의 짧음을 병으로 하니라.
子曰, 「焉用佞? 禦人以口給, 屢憎於人, 不知其仁, 焉用佞。」
공자가 말씀하셨다.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는가? 말재간으로 남에게 응대하면 남으로부터 자주 미움을 받게 될터인데, 염옹이 어진지는 모르겠지만 말재주를 어디에 쓸 것인가?"
○禦 當也, 猶應答也. 給 辦也. 憎 惡也. 言何用佞乎. 佞人 所以應答人者, 但以口取辦而無情實, 徒多爲人所憎惡爾, 我雖未知仲弓之仁. 然 其不佞 乃所以爲賢, 不足以爲病也. 再言焉用佞, 所以深曉之.
○或 疑仲弓之賢, 而夫子不許其仁 何也. 曰仁道至大, 非全體而不息者, 不足以當之, 如顔子亞聖, 猶不能無違於三月之後, 況仲弓 雖賢, 不及顔子, 聖人 固不得而輕許之也.
○어는 당함이니 응답과 같음이라. 급은 변론함이라. 증은 미워함이라. 어찌 말재주를 쓰랴! 말재주있는 사람이 써한 바 남한테 응답하는 자는 다만 입으로써 변론을 취하여 참되고 실제가 없어 한갓 사람의 미워하는 바가 됨이 많으니 내가 비록 중궁의 인을 아지 못하나 그러나 그 말재주가 아님은 이에 써한 바 어짊이 되고, 족히 써 병이 됨은 아니라 말씀하시고, 거듭 어찌 말재주를 쓰리오 하고 말씀하심은 써한 바 깊이 깨닫게 하심이라.
○혹이 의심하여 중궁의 어짊으로 부자가 그 인을 허여하지 아니함은 어째서인고? 가라사대 어진 도가 지극히 커서 전체를 가지고 쉬지 않는 자가 아니면 족히 써 당하지 못하니, 안자 같은 아성으로도 오히려 능히 석 달 뒤까지 어김이 없지 아니했거든(석 달 뒤에는 다소 어김이 있거든) 하물며 중궁이 비록 어질기는 하나 안자에게 미치지 못하니, 성인이 진실로 얻어 가벼이 허여하지 않으심이라.
第 5章
子使漆雕開仕, 對曰, 「吾斯之未能信。」 子說。
공자가 칠조개로 하여금 벼슬을 하도록 하시자 칠조개가 대답했다.
"제가 벼슬로 나아감에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공자께서 기뻐하셨다.
○漆雕開 孔子弟子, 字 子若. 斯 指此理而言, 信 謂眞知其如此而無豪髮之疑也. 開自言未能如此, 未可以治人。 故 子悅其篤志.
○程子曰, 漆雕開 已見大意. 故 夫子悅之. 又曰古人 見道分明. 故 其言 如此. 謝氏曰, 開之學 無可考. 然 聖人使之仕, 必其材 可以仕矣, 至於心術之微, 則一毫不自得, 不害其爲未信. 此 聖人所不能知, 而開自知之, 其材 可以仕, 而其器 不安於小成, 他日所就 其可量乎. 夫子所以說之也.
○칠조개는 공자 제자니 자는 자약이라. 사는 이(정치) 이치를 가리켜 말함이오, 신은 참으로 그 이와 같음을 알아서 터럭 끝만큼이라도 의심이 없음을 말함이라. 칠조개가 스스로 능히 이와 같지 못하니 가히 써 사람을 다스리지 못한다고 말함이라. 그러므로 공자가 그 돈독한 뜻을 기뻐하시니라.
○정자 가라사대 칠조개는 이미 (공자의) 큰 뜻을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부자가 기뻐하심이라. 또 가라사대 옛 사람이 도를 보는데 분명함이라. 그러므로 그 말이 이와 같으니라. 사씨 가로대 칠조개의 학문은 가히 상고하지 못하나 그러나 성인이 벼슬하라 하시니 반드시 그 재질이 가히 써 벼슬을 할 수 있거니와 심술의 은미한 데에 이르러서는 곧 한 터럭이라도 스스로 얻지 못한다면 그 믿지 못함에(자신이 없다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음이라. 이는 성인이 능히 아지 못하신 것이거늘 칠조개가 스스로 아니 그 재질(재주)이 가히 써 벼슬할 만하되 그 그릇이 조금 이루는 데에 편안하지 못하니, 다른 날에 성취하는 바를 그 가히 헤아림인저! 부자가 써 기뻐하신 바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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