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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書/論語

憲問。第 6章. 羿善射, 奡盪舟, ~ 第10章. 或問子産,

by 柳川 2020. 1. 11.

第 6章

 

南宮适問於孔子曰,  「羿善射, 奡盪舟, 俱不得其死, 然禹稷躬稼而有天下。」 夫子不答, 南宮适出, 子曰, 「君子哉。若人! 尙德哉。若人!」

 

 

남궁괄(南宮适 : 南用)이 공자에게 물었다.

“예(羿)는 활쏘기를 잘하였고 오(奡)는 육지에서 배를 끌 만큼 힘이 세었지만 모두 제명에 죽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禹)와 직(稷)은 몸소 농사를 지었으나 나중에는 천하를 소유했습니다.”

공자께서 대답하지 않다가 남궁괄이 나가자 말씀하셨다.

“이 사람은 참으로 군자로다. 이 사람은 진실로 덕을 숭상하는구나!”

 

 

适 : 빠를 괄.     奡 : 오만할 오. 오만하다. 남을 깔봄. 힘이 세다. 헌걸참.   

盪 : 씻을 탕. 씻다. 흔들리는 모양. 깨끗이 하다. 밀다. 움직이다. 흔들거리다. 어루만지다. 비틀거리다. 찢다. 빠르다. 녹아내리다. 놓다. 

 

 

○南宮适 卽南用也. 羿 有窮之君, 善射滅夏后相, 而篡其位, 其臣寒浞 又殺羿而代之. 奡 春秋傳 作澆, 浞之子也. 力能陸地行舟, 後爲夏后少康所誅. 禹平水土, 曁稷播種, 身親稼穡之事, 禹受舜禪而有天下, 稷之後至周武王, 亦有天下. 适之意 蓋以羿奡 比當世之有權力者, 而以禹稷比孔子也. 故 孔子不答. 然 适之言如此, 可謂君子之人, 有尙德之心矣. 不可以不與. 故 俟其出而贊美之.

 

○남궁괄은 곧 남용이라(하루에 세 번씩 시경 백규장을 외우면서 그 시에 있는 대로 말을 삼갔다. 사람 됨됨이가 근실하여 공자가 사위를 삼았다). 예는 유궁의 인군이니 활을 잘 쏘아 하후상을 멸하고 그 자리를 빼앗더니, 그 신하 한촉이 또 예를 죽이고 대신하니라. 오는 춘추전에 요라고 지었으니 촉의 자식이라. 힘이 능히 육지에 배를 밀고 다니더니 뒤에 하후인 소강 에게 죽임을 당했느니라. 우는 물과 땅을 잘 다스리고, 및 직은 파종하여 몸소 심고 거두는 일을 하더니 우임금은 순임금에게 임금 자리를 받아 천하를 두시고 직의 후예는 주나라 무왕의 이르러 또한 천하를 두셨느니라. 괄의 뜻은 대개 예와 오로 당세의 권력자와 비교하고, 우와 직으로 공자와 비교함이라. 그러므로 공자가 대답하지 아니하셨으나 그러나 괄의 말이 이와 같다면 가히 군자의 사람이라 이를만하고 덕을 숭상하는 마음이 있음이라. 가히 써 허여하지 아니치 못하니라. 그러므로 그 나가기를 기다려서 찬미하시니라. 

 

浞 : 젖을 착/이름 촉. 젖다. 젖은 모양. 담그다. 넉넉하다. 흡족함.     

澆 : 물댈 요(교). 물을 대다. 물을 줌, 엷다. 경박함. 엷게 하다. 경박하게 하다. 물결이 맴돌다, 맴도는 물결. 

曁 : 및 기/성 글. 및, 함께. 미치다. 이름. 다다름. 칠하다. 굳센 모양. 姓.

 

 

 

 

 

第 7章

 

子曰, 「君子而不仁者有矣夫, 未有小人而仁者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로서 인(仁)하지 못한 경우는 있어도 소인으로서 인(仁)한 경우는 없다.”

 

 

○謝氏曰, 君子志於仁矣. 然 毫忽之間心不在焉, 則未免爲不仁也.

 

○사씨 가로대 군자가 인에 뜻을 두었으나 그러나 잠깐 사이에 마음이 있지 아니하면 불인을 면치 못하니라.

 

 

[해설]

 

군자는 인에 뜻을 두니, 바로 인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다만 인의 도리는 지극히 크지만 터럭만큼이라도 차질이 있으면 곧바로 불인(不仁)이 된다. 이는 현자에게 완전무결을 요구하는 말이며, 배우는 자에게 날로 새로워지고 극진히 공부하도록 깨우치는 말이지, 군자가 으레 불인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때문에 ‘의(矣)’ 자 아래에 ‘부(夫)’ 자를 쓴 것이다. 만약 ‘의’ 자만 썼다면 오로지 단정 짓는 표현인데 ‘부’ 자를 이어 쓴 것은 더러 있을 수도 있다는 표현이다. 소인의 경우 곧바로 ‘야(也)’ 자를 써서 단정했다.  <讀書箚義>

 

 

 

 

 

第 8章

 

子曰, 「愛之能勿勞乎, 忠焉能勿誨乎。」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고생을 시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임금에게 충성한다면 깨우쳐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蘇氏曰, 愛而勿勞 禽犢之愛也, 忠而勿誨 婦寺之忠也, 愛而知勞之 則其爲愛也深矣, 忠而誨之 則其爲忠也大矣.

 

○소씨 가로대 사랑하면서 수고롭지 않으면 새나 송아지의 사랑이오, 충성만 하고 가르침이 없으면 지어미나 내시의 충성이니, 사랑하면서 수고로움을 알면 그 사랑함이 깊어지고, 충성하면서 가르치면 그 충성됨이 커지니라.

 

 

[해설]

 

어리석은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할 때 안일하게 함으로써 자식의 성품을 망치니, 이보다 자애롭지 못한 경우가 없다. 못난 사람이 임금에게 충성할 때 영합하여 임금의 악을 부추기니, 이보다 심하게 임금을 해치는 경우는 없다. <讀書箚義>

 

 

 

 

第 9章

 

子曰, 「爲命裨諶草創之, 世叔討論之, 行人子羽修飾之, 東里子産 潤色之。」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정(鄭)나라는 외교 문서를 작성할 때, 비심(裨諶)이 초고를 작성하고, 세숙(世叔)이 검토해서 의견을 제시하고, 외교 업무를 관장하는 자우(子羽)가 수정하고, 동리(東里)에 사는 자산(子産)이 윤색을 가하였다.”

 

 

[해설]

 

사명을 작성할 적에 네 사람이 각자의 장점을 가지고 함께 참여하니, 네 사람 모두 너그러운 도량을 지니고 한마음으로 나라를 위하는 인물들이다. 역시나 오늘날과 같은 속된 말세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분들이니, 비록 혼연히 완성된 성인은 아니더라도 편벽되고 사사로운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럴 수 없다. 아무리 시골 사람이라도 이런 의리를 지닌 자가 있다면, 작은 마을에서 충신(忠信)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한집안의 가장 노릇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裨諶以下四人 皆鄭大夫. 草 略也, 創 造也, 謂造爲草藁也. 世叔游吉也, 春秋傳 作子大叔. 討 尋究也. 論講議也. 行人 掌使(시)之官, 子羽 公孫揮也. 修飾 謂增損之. 東里地名, 子産所居也. 潤色 謂加以文采也. 鄭國之爲辭命, 必更此四賢之手而成, 詳審精密, 各盡所長, 是以應對諸侯 鮮有敗事. 孔子言此蓋善之也.

 

○비심 이하 4인은 다 정나라 대부라. 초는 간략함이오, 창은 지음이니 초고를 지어 만듦을 이름이라. 세숙은 유길이니 춘추전에 자대숙으로 지었느니라. 토는 찾아내고 연구하는 것이고, 논은 강의하고 의논함이라. 행인은 시(사신으로 임금의 명을 받아 외교함)를 맡은 벼슬이라. 자우는 공손위라. 수식은 붙이고 떼어냄이라. 동리는 땅 이름이니 자산이 거하는 곳이라. 윤색은 문채로써 더함을 이름이라. 정나라가 사명을 만듦에 반드시 이 네 어진 이의 손으로 고쳐 이루어 상세히 살피고 정밀하여 각각의 장점을 다하니 이로써 제후를 응대하는 데에 패하는 일이 적었더니라. 공자가 이 말을 하심은 대개 선하게 여기시니라.

 

 

 

 

 

第10章

 

或問子産, 子曰, 「惠人也。」  問子西, 曰, 「彼哉。彼哉。」  問管仲, 曰, 「人也奪伯氏騈邑三百, 飯疏食沒齒, 無怨言。」

 

 

어떤 사람이 자산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혜로운 사람이다.”

자서(子西)에 대해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사람, 그 사람 말이냐?”

관중(管仲)에 대해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백씨의 식읍인 병읍(騈邑) 300호를 빼앗았는데, 백씨는 거친 밥을 먹으며 곤궁하게 일생을 마치면서도 관중을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

 

 

[해설]

 

子山에 대한 설명은 맹자에 언급되어 있다.

 

子産聽鄭國之政, 以其乘輿濟人於溱洧,  孟子曰, 「惠而不知爲政。歲十一月徒杠成, 十二月輿梁成, 民未病涉也。君子平其政, 行辟人可也, 焉得人人而濟之。故 爲政者每人而悅之, 日亦不足矣。」 <孟子 離婁下 第2.>

 

(孟子)曰, 「否。昔者有饋生魚鄭子産, 子産使校人畜之池,  校人烹之,  反命曰, 『始舍之圉焉, 少則洋洋焉, 攸然而逝。』  子産曰, 『得其所哉! 得其所哉!』  校人出曰, 『孰謂子産智? 予旣烹而食之。曰, '得其所哉! 得其所哉!'  故 君子可欺以其方, 難罔以非其道, 彼以愛兄之道來故, 誠信而喜之, 奚僞焉。」  <孟子 萬章上 第2.>

 

 

 

○子産之政 不專於寬, 然 其心則一以愛人爲主. 故 孔子以爲惠人, 蓋擧其重而言也.

 

○자산의 정사가 너그러운 데에만 오로지 하지 아니했으나 그러나 그 마음인즉 한결같이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주장을 삼았느니라. 그러므로 공자가 써 혜인이라 하시니 대개 그 중한 것을 들어서 말씀하심이라.

 

 

問子西, 曰, 「彼哉。彼哉。」 

 

자서(子西)에 대해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사람, 그 사람 말이냐?”

 

 

[해설]

 

‘彼哉彼哉’는 저 사람이여를 더 낮춰 ‘저것이야 뭐’하는 투다.

 

 

○子西 楚公子申, 能遜楚國, 立昭王而改紀其政, 亦賢大夫也. 然 不能革其僭王之號, 昭王欲用孔子, 又沮止之, 其後卒召白公 以致禍亂, 則其爲人可知矣. 彼哉者 外之之詞.

 

○자서는 초나라 공자 신이니 능히 초나라를 사양하여 소왕을 세우고 그 정사의 기강을 고치니 또한 어진 대부라. 그러나 능히 그 참람한 왕의 호칭을 고치지 못하고, 소왕이 공자를 쓰려고 하거늘 또한 그것을 막더니, 그 후에 마침내 백공을 불러서 써 화란을 이르게 했으니 그 사람됨을 가히 알리라. 피재라는 것은 바깥으로 한(외면한) 말이라.

 

 

問管仲, 曰, 「人也奪伯氏騈邑三百, 飯疏食沒齒, 無怨言。」

 

관중(管仲)에 대해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백씨의 식읍인 병읍(騈邑) 300호를 빼앗았는데, 백씨는 거친 밥을 먹으며 곤궁하게 일생을 마치면서도 관중을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

 

 

○人也 猶言此人也. 伯氏 齊大夫. 騈邑 地名. 齒 年也. 蓋桓公 奪伯氏之邑以與管仲, 伯氏自知己罪, 而心服管仲之功. 故 窮約而終身, 而無怨言, 荀卿所謂與之書社三百, 而富人 莫之敢拒者卽此事也. 

○或問管仲子産孰優, 曰管仲之德 不勝其才, 子産之才 不勝其德. 然 於聖人之學 則槪乎其未有聞也.

 

○인야는 이 사람이라고 말한 것과 같음이라. 백씨는 제나라 대부라. 병읍은 땅이름이라. 치는 나이라. 대개 환공이 백씨의 읍을 빼앗아 써 관중에게 준대 백씨가 스스로 자기의 죄를 알고 마음으로 관중의 공에 굴복했느니라. 그러므로 궁하고 간략하게 살면서 몸을 마치되 원망하는 말이 없으니 순경이 이른바 서사(戶口) 삼백을 준 것이고, 부자가 감히 항거를 못했다(상대가 되지 못했다, 곧 관중을 부자로 만들어준 것이 그 누구와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 곧 이 일이라. 

○혹이 관중과 자산이 누가 나은가하고 물은대 (주자) 가로대 관중의 덕은 그 (자산의) 재주를 이기지 못하고 자산의 재주는 그 (관중의) 덕을 이기지 못하니라. 그러나 성인의 배움에는 곧 대개 그 들음이 있지 않으니라(성인의 학문에는 관중과 자산과 같은 사람에게서 크게 배울 것이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