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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書/論語

衛靈公。第11章. 人無遠慮, ~ 第15章. 不曰如之何,

by 柳川 2020. 1. 14.

 

第11章

 

子曰, 「人無遠慮, 必有近憂。」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멀리 훗날을 염려하여 준비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이 근심이 닥치게 된다.”

 

 

[해설]

 

주역 12번째괘인 天地否괘 九五爻에 “그 망할까 망할까 하여야 더부룩한 뽕나무에 맨다(其亡其亡, 繫于苞桑)”고 한 내용에 대해 계사하전 제5장에서 공자는 “위태할까 하는 자는 그 위를 편안히 하는 것이오, 망할까 하는 자는 그 존함을 보존하는 자요, 어지러울까 하는 자는 그 다스림을 두는 것이니, 이런 까닭에 군자가 편안하되 위태함을 잊지 아니하며, 존하되 망함을 잊지 아니하며, 다스리되 어지러워짐을 잊지 않느니라. 이로써 몸이 편안하여 국가를 보존할 수 있다(子曰, 危者 安其位者也. 亡者 保其存者也. 亂者 有其治者也. 是故 君子安而不忘危, 存而不忘亡, 治而不忘亂.. 是以身安而國家 可保也.)”고 하였다. 이렇듯이 훗날을 염려하여 현재 열심히 준비해두지 않으면, 멀리 갈 것도 없이 가까운 데서부터 근심이 생겨난다.

 

 

蘇氏曰, 人之所履者, 容足之外, 皆爲無用之地, 而不可廢也. 故 慮不在千里之外, 則患在几席之下矣.

 

소씨 가로대 사람의 밟는 것이 발을 용납하는 밖에는(발로 디딜 수 있는 외에는) 다 쓸데없는 땅이 되더라도 가히 폐할 수 없음이라. 그러므로 염려를 천리 밖에 두지 않으면 근심이 책상 아래(자신이 앉아 있는 바로 밑에) 있느니라.

 

 

 

 

 

第12章

 

子曰, 「已矣乎 ! 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젠 그만이구나! 나는 여색을 좋아하듯 덕을 좋아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已矣乎 歎其終不得而見之也.

 

이의호는 그 마침내 얻어 보지 못함을 탄식함이라.

 

☞ 子罕 第17章과 중복.

 

 

 

 

第13章

 

子曰, 「臧文仲 其竊位者與。知柳下惠之賢而不與立也。」

 

 

공자가 말씀하셨다.

“장문중은 아마도 벼슬자리를 훔친 자일 것이다. 유하혜(柳下惠)가 현자인줄 알면서도 천거하여 함께 조정에 서지 않았다.”

 

 

竊位 言不稱其位而有愧於心, 如盜得而陰擧之也. 柳下惠 魯大夫展獲, 字 禽, 食邑柳下, 諡曰惠. 與立謂與之並立於朝.

范氏曰, 臧文仲 爲政於魯, 若不知賢 是不明也. 知而不擧 是蔽賢也, 不明之罪小, 蔽賢之罪大. 故 孔子以爲不仁, 又以爲竊位.

 

 

절위는 그 지위가 맞지 않아 마음에 부끄러움을 두어 도둑질하여 얻어서 가만히 웅거하는 것과 같음이라. 유하혜는 노나라 대부 전획이니 자는 금이고, 유하에서 식읍하니 시호는 가로대 혜라. 여립은 더불어 아울러 조정에 섬을 이름이라. 범씨 가로대 장문중이 노나라에서 정사를 하는데, 만약 어진 이를 알지 못하면 이는 밝지 못하고, 알면서 천거하지 아니하면 이는 어진 이를 가림이니 불명의 죄는 적고 폐현의 죄는 큼이라. 그러므로 공자가 써 어질지 못하다 하시고 또 위를 도적질했다 하시니라.

 

 

 

 

 

第14章

 

子曰, 「躬自厚而薄責於人, 則遠怨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을 책망하는 데 엄격하고 남을 책망하는 데 관대하면 원망이 멀어질 것이다.”

 

 

責己厚故 身益修, 責人薄故 人易從, 所以人不得而怨之.

 

자기를 책하는데 후한 고로 몸이 더욱 닦아지고 남을 책하는데 박한 고로 남이 쉽게 따르니 써한 바 사람이 얻어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第15章

 

子曰, 「不曰, 『如之何, 如之何』者,  吾末如之何也已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할까?  어찌할까?’ 하면서 충분히 생각하고 힘쓰지 않는 자는 나도 어쩔 수가 없다.”

 

 

[해설]

 

‘어찌할까’를 거듭 말씀한 것은 눈 깜빡할 사이에도 마음속으로 잊은 적이 없고 감히 나태하지 않다는 뜻이다. 옛 성인이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날마다 부지런히 힘쓸 것을 생각하며,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하고 잠을 자지 않고 아침을 기다리며 밥 먹을 겨를도 없는 것이 모두 ‘어찌할까, 어찌할까.’라는 의미이다. 공자가 큰 허물은 이제 없게 할 수 있다는 말과 증자의 이제야 근심을 면하게 되었다는 말은 ‘어찌할까’의 최종적인 공부의 경지이다. 《주역》에 “망할까, 망할까〔其亡其亡〕”라는 말도 ‘어찌할까.’라는 의미와 같다. 몸을 수양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경우에도 만일 ‘어찌할까, 어찌할까.’라고 하면서 애쓰지 않으면 혼란과 멸망이 즉시 들이닥칠 것이다.

 

 

如之何如之何者 熟思而審處之辭也, 不如是而妄行, 雖聖人亦無如之何矣.

 

어찌할까 어찌할까 하는 것은 생각을 깊이하고 처신을 살펴하는 말이니 이와 같이 아니하고 망령되이 행하면 비록 성인이라도 또한 어찌할 수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