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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書/孟子

公孫丑 <下> 第11章

by 柳川 2020. 5. 6.

第11章

 

孟子去齊宿於晝,  有欲爲王留行者坐而言, 不應隱几而臥,  客不悅曰, 「弟子齊宿而後敢言, 夫子臥而不聽, 請勿復敢見矣。」  曰, 「坐。 我明語子。昔者 魯繆公無人乎子思之側, 則不能安子思, 泄柳申詳無人乎繆公之側 則不能安其身。子爲長者慮而不及子思, 子絶長者乎? 長者絶子乎?」

 

 

맹자가 제나라를 떠나 주(晝)에서 묵었는데, 왕을 위해 맹자가 떠나는 것을 만류하고자 하는 자가 무릎을 꿇고 말하는데, 맹자가 대꾸하지 않고 평상에 기대어 눕자, 객이 불쾌히 여기며 말했다.

“제자가 재계하고 하룻밤을 보낸 뒤에 감히 여쭙거늘 선생님께선 누워서 듣지도 않는데 감히 다시 뵐 수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않으시오. 내가 그대에게 분명히 말해 주겠습니다. 옛날 노나라 목공은 자사의 곁에 사람이 없으면 자사를 편안하게 할 수 없었으며, 설류와 신상은 목공의 곁에 사람이 없으면 자신들을 편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대가 연장자인 나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은 자사를 염려하는 것만큼에는 미치지 못하는데, 그대가 연장자인 나를 끊은 것입니까? 연장자인 내가 그대를 끊은 것입니까?"

 

 

○晝 齊西南近邑也.  隱 憑也. 客坐而言, 孟子不應而臥也.

○齊宿 齊戒越宿也. 繆公 尊禮子思, 常使人候伺, 道達誠意於其側, 乃能安而留之也. 泄柳 魯人, 申詳子張之子也, 繆公 尊之不如子思. 然 二子義不苟容, 非有賢者在其君之左右, 維持調護之, 則亦不能安其身矣.

○長者 孟子自稱也. 言齊王不使子來, 而子 自欲爲王留我, 是所以爲我謀者 不及繆公留子思之事, 而先絶我也. 我之臥而不應 豈爲先絶子乎!

 

 

○晝는 제나라 서남에 가까운 고을이라. 은(隱)은 기댐이라. 객이 (꿇어)앉아서 말하거늘 맹자가 응하지 않고 누우시니라.

○제숙(齊宿)은 제계월숙(齊戒越宿)이라. 목공이 자사를 예로 높여서 항상 사람으로 하여금 살피게 하야 성의가 그 (자사) 곁에 도달하여야 이에 능히 편안히 해서 (자사를) 머무르게 하였음이라. 설류는 노나라 사람이오, 신상은 자장의 아들이니 목공이 (그들에 대한) 높임을 자사와 같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나 두 사람은 의리가 구차하게 용납하지 아니하고 賢者가 (그) 인군의 좌우에 있어서 (그들에 대해 왕에게) 뜻을 지켜주고 조정하여 옹호해주지 아니하면 (또한) 능히 그 몸을 편안히 못했음이라.

○장자는 맹자가 스스로 일컬음이라. ‘제나라 임금이 자네로 하여금 오게 하지 아니하고 자네가 스스로 왕을 위해서 나를 머무르게 하고자 함이니 이는 (써한 바) 나를 위하여 도모함이 목공이 자사를 머무르게 한 일에 미치지 못해서 먼저 나를 끊음이라. 내가 누워서 응하지 않음이 어찌 (내가) 먼저 그대를 끊음이 되겠는가?’를 말하심이라.

 

 

[해설]

 

노나라의 목공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를 존경했다. 그러나 자사는 자신의 정치철학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떠나려 하였다. 이에 목공은 늘 賢者를 자사에게 보내 자사의 의견을 들어 정사에 반영하겠다는 말을 전함으로써 자사를 머무르게 하였다.

반면에 노목공은 설류와 신상에 대해서는 자사같이 존중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목공의 측근에 있는 賢者가 늘 목공에게 권해서 만류하게 해주어야 안심하고 머무를 수 있었다. 맹자 역시 자신의 정치철학이 제왕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아 떠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맹자의 말은 제왕이 맹자를 끊은 것이지 맹자 자신이 먼저 제왕을 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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