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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書/孟子

滕文公 <下> 第 5章

by 柳川 2020. 5. 6.

第 5章

 

萬章問曰, 「宋小國也。今將行王政, 齊楚惡而伐之, 則如之何?」 孟子曰, 「湯居亳, 與葛爲鄰, 葛伯放而不祀。湯使人問之曰, 『何爲不祀?』 曰, 『無以供犧牲也。』  湯使遣之牛羊, 葛伯食之, 又不以祀。 湯又使人問之曰, 『何爲不祀?』  曰, 『無以供粢盛也。』  湯使亳衆往爲之耕, 老弱饋食。葛伯帥其民, 要其有酒食黍稻者, 奪之, 不授者殺之。有童子以黍肉餉, 殺而奪之, 書曰, 『葛伯仇餉。』 此之謂也。爲其殺是童子而征之, 四海之內皆曰, 『非富天下也, 爲匹夫匹婦, 復讐也。』 湯始征自葛載, 十一征而無敵於天下。東面而征西夷怨, 南面而征北狄怨, 曰, 『奚爲後我?』  民之望之若大旱之望雨也, 歸市者弗止, 芸者不變, 誅其君弔其民, 如時雨降。 民大悅, 書曰, 『徯我后, 后來其無罰?』 

有攸不爲臣, 東征綏厥士女, 匪厥玄黃, 紹我周王見休, 惟臣附于大邑周, 其君子實玄黃于匪, 以迎其君子, 其小人簞食壺漿, 以迎其小人, 救民於水火之中, 取其殘而已矣。太誓曰, 『我武惟揚, 侵于之疆, 則取于殘, 殺伐用張, 于湯有光。』  不行王政云爾, 苟行王政, 四海之內皆擧首而望之, 欲以爲君, 齊楚雖大何畏焉!  」

 

 

 

만장이 물었다. "송나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지금 왕도정치를 행하려고 하는데 제나라와 초나라가 미워하여 송나라를 치려고 한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맹자가 말했다. "탕왕이 박에서 지낼 때, 갈나라와 인접해 있었는데 갈나라의 왕이 함부로 행동하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탕왕이 사람을 시켜 물었다. '어째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가?'  그러자 '제사에 제물로 바칠 짐승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여 탕왕이 소와 양을 보냈는데 갈나라 왕은 그 짐승들을 잡아 먹고는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탕왕이 또 사람을 시켜 물었다. '왜 제사를 지내지 않는가?' '제사에 바칠 곡식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탕왕이 박의 사람들을 시켜 갈나라에 가서 농사를 짓도록 하였는데 노약자들이 밥을 내다 먹였다. 갈나라 왕은 그 백성들을 이끌고 길목을 지켜 술과 음식, 곡물을 빼앗고 주지 않는 자는 죽였다. 어떤 동자가 기장과 고기를 보내자 갈나라 왕이 그를 죽이고 모두 빼앗았는데 서경에 '갈나라 왕이 먹이는 자를 원수로 여겼다.'하는 것은 이를 말한 것이다. 갈나라 왕이 이 동자를 죽인 것때문에  갈나라를 치니 나라 안의 사람들 모두가, '천하를 부유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을 위해 복수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탕왕이 비로소 갈로부터 정벌을 시작하여, 열 한 나라를 치자 천하에 적이 없었다. 동쪽을 향해 치면 서쪽 오랑캐가 원망하고 남쪽을 향하여 치면 북적이 원망하여 '어째서 우리는 뒤에 치는가?' 라고 하였다. 백성이 탕왕에게 바라는 것이 큰 가뭄에 비를 기다리듯 하였고, 시장에 가는 자가 그치지 않고 김매는 자가 변함이 없었으며 그 임금을 죽이고 백성을 위로하니 때 맞게 비오는 것 같았다.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여 서경에 '우리 왕을 기다렸는데 왕이 오시면 벌이 없겠는가?' 라고 하였다. 

(주나라 무왕은) 신하가 되지 않는 바가 있어, 동쪽을 쳐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였는데, 검은 비단, 황색 비단을 광주리에 담아 우리 주나라 왕을 알현하여 아름다움을 보고 큰 읍인 주나라에 가담하여 신하가 되니, 군자는 광주리에 검은 비단과 황색비단을 담아 예물로 하여 군자를 맞이하였으며, 소인은 그릇에 먹을 것을 담고 병에 마실 것을 넣어 소인을 맞이하니 재난에서 백성을 구하고 잔학했던 자들을 취하였을 뿐이었다. 태서에 '내가 무력을 떨쳐 그 나라를 침공하여 잔인한 자들을 잡아 죽이고 정벌을 이루었으니 탕왕보다 더 빛나도다.' 라고 하였으니, 왕정을 행한다고 하지 않을 뿐이지 진실로 왕정을 행한다면,  나라 안에서 모두 머리를 들고 우러러보며 인군을 삼으려 할 것인데 제나라와 초나라가 비록 크다 할지라라도 어찌 두려워하겠는가!"

 

 

○萬章 孟子弟子. 宋王偃 嘗滅滕伐薛, 敗齊楚魏之兵, 欲覇天下, 疑卽此時也.

 

○만장은 맹자 제자라. 송나라 왕 언이 일찍이 등나라를 멸하고 설나라를 치고 제나라 초나라 위나라의 군사를 패하여 천하를 패하고자 했다 하니 의심컨대 곧 이때인 듯하노라

 

 

孟子曰, 「湯居亳, 與葛爲鄰, 葛伯放而不祀。湯使人問之曰, 『何爲不祀?』 曰, 『無以供犧牲也。』  湯使遣之牛羊, 葛伯食之, 又不以祀。 湯又使人問之曰, 『何爲不祀?』  曰, 『無以供粢盛也。』  湯使亳衆往爲之耕, 老弱饋食。葛伯帥其民, 要其有酒食黍稻者, 奪之, 不授者殺之。有童子以黍肉餉, 殺而奪之, 書曰, 『葛伯仇餉。』 此之謂也。

 

 

맹자가 말했다.

"탕왕이 박에서 지낼 때, 갈나라와 인접해 있었는데 갈나라의 왕이 함부로 행동하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탕왕이 사람을 시켜 물었다. '어째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가?'  그러자 '제사에 제물로 바칠 짐승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여 탕왕이 소와 양을 보냈는데 갈나라 왕은 그 짐승들을 잡아 먹고는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탕왕이 또 사람을 시켜 물었다. '왜 제사를 지내지 않는가?' '제사에 바칠 곡식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탕왕이 박의 사람들을 시켜 갈나라에 가서 농사를 짓도록 하였는데 노약자들이 밥을 내다 먹였다. 

갈나라 왕은 그 백성들을 이끌고 길목을 지켜 술과 음식, 곡물을 빼앗고 주지 않는 자는 죽였다. 어떤 동자가 기장과 고기를 보내자 갈나라 왕이 그를 죽이고 모두 빼앗았는데 서경에 '갈나라 왕은 먹이는 자를 원수로 여겼다.'하는 것은 이를 말한 것이다. 

 

亳 : 땅이름 박. 땅 이름. 은(殷)의 탕왕(湯王)이 도읍한 곳.     

餉 : 건량 향(상). 건량, 도시락. 군량. 세금. 식경(食頃). 밥 한 끼 먹을 정도의 짧은 시간. 보내다. 양식, 음식이나 물건을 보냄.

 

 

○葛 國名. 伯 爵也. 放而不祀, 放縱無道 不祀先祖也. 亳衆 湯之民, 其民 葛民也. 授 與也. 餉 亦饋也. 書 商書仲虺之誥也. 仇餉 言與餉者 爲仇也.

 

○갈은 나라 이름이라. 백은 벼슬이라. 방탕하여 제사지내지 아니함은 방종무도하여 선조를 제사지내지 않음이라. 박의 무리는 탕임금의 백성이오, 그 백성은 갈나라 백성이라. 수는 줌이라. 향은 또한 먹임이라. 서는 상서 중훼의 고라. 구향은 먹이는 자와 더불어 원수가 됨을 말함이라.

 

 

 

爲其殺是童子而征之, 四海之內皆曰, 「非富天下也, 爲匹夫匹婦, 復讐也。」

 

 

갈나라 왕이 이 동자를 죽인 것때문에  갈나라를 치니 나라 안의 사람들 모두가, '천하를 부유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을 위해 복수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非富天下, 言湯之心 非以天下爲富而欲得之也.

 

○천하를 부하게 함이 아니라는 것은 탕임금의 마음이 천하로써 부를 해서 얻고자 함이 아님을 말함이라.

 

 

 

湯始征自葛載, 十一征而無敵於天下。東面而征西夷怨, 南面而征北狄怨, 曰, 『奚爲後我?』  民之望之若大旱之望雨也, 歸市者弗止, 芸者不變, 誅其君弔其民, 如時雨降。 民大悅, 書曰, 『徯我后, 后來其無罰?』

 

 

탕왕이 비로소 갈로부터 정벌을 시작하여, 열 한 나라를 치자 천하에 적이 없었다. 동쪽을 향해 치면 서쪽 오랑캐가 원망하고 남쪽을 향하여 치면 북적이 원망하여 '어째서 우리는 뒤에 치는가?' 라고 하였다. 백성이 탕왕에게 바라는 것이 큰 가뭄에 비를 기다리듯 하였고, 시장에 가는 자가 그치지 않고 김매는 자가 변함이 없었으며 그 임금을 죽이고 백성을 위로하니 때 맞게 비오는 것 같았다.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여 서경에 '우리 왕을 기다렸는데 왕이 오시면 벌이 없겠는가?' 라고 하였다. 

 

芸 : 운향 운/재주 예. 운향(藝香). 향초(香草)의 한 가지. 채소 이름. 궁궁이. 성(盛)한 모양. 많은 모양. 김매다. 단풍들다. 藝의 略字.

徯 : 샛길 혜. 샛길, 좁은 길. 기다리다. 위태하다.

 

 

☞ 이 구절은 梁惠王 <下> 第11章에 이미 나왔던 구절로 몇 글자만 다를 뿐 내용은 동일하다.

 

書曰, 『湯一征自葛始, 天下信之, 東面而征, 西夷怨, 南面而征, 北狄怨, 曰, ‘奚爲後我 ?'』  民望之, 若大旱之望雲霓也, 歸市者 不止, 耕者 不變, 誅其君而弔其民, 若時雨降。 民大悅, 書曰, 『徯我后, 后來其蘇。』

 

 

○載 亦始也. 十一征 所征 十一國也. 餘 已見前篇.

 

○재는 또한 시작함이라. 십일정은 정벌하는 바가 11국이라. 여는 이미 전편에 나타남이라.

 

 

 

有攸不爲臣, 東征綏厥士女, 匪厥玄黃, 紹我周王見休, 惟臣附于大邑周, 其君子實玄黃于匪, 以迎其君子, 其小人簞食壺漿, 以迎其小人, 救民於水火之中, 取其殘而已矣。

 

 

신하가 되지 않는 바가 있어, 동쪽을 쳐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였는데, 검은 비단, 황색 비단을 광주리에 담아 우리 주나라 왕을 알현하여 아름다움을 보고 큰 읍인 주나라에 가담하여 신하가 되니, 군자는 광주리에 검은 비단과 황색비단을 담아 예물로 하여 군자를 맞이하였으며, 소인은 그릇에 먹을 것을 담고 병에 마실 것을 넣어 소인을 맞이하니 재난에서 백성을 구하고 잔학했던 자들을 취하였을 뿐이었다. 태서에 '내가 무력을 떨쳐 그 나라를 침공하여 잔인한 자들을 잡아 죽이고 가로대 우리 무력을 오직 떨쳐서 저의 국경을 침노해서 곧 잔악함을 취해서 살벌(죽일 것은 죽이고, 칠 것은 치는 것)을 써 베푸니 탕임금보다 빛남이 있다 하니라.

 

 

匪 :  대상자. 폐백을 담던 상자.   紹 : 잇다. 돕다. 소개(알선)하다. 받다. 노끈. [초]느슨하다. 헐겁다.   實 : 담다. 

 

 

○按周書武成篇, 載武王之言, 孟子約其文如此. 然 其辭特與今書文不類, 今姑依此文解之. 有所不爲臣 謂助紂爲惡, 而不爲周臣者. 匪 與篚同. 玄黃 幣也. 紹 繼也, 猶言事也. 言其士女以匪盛玄黃之幣, 迎武王而事之也. 商人而曰我周王 猶商書所謂我后也. 休 美也. 言武王 能順天休命, 而事之者皆見休也. 臣附 歸服也. 孟子又釋其意, 言商人聞周師之來, 各以其類相迎者, 以武王能救民於水火之中, 取其殘民者誅之, 而不爲暴虐耳. 君子謂在位之人, 小人 謂細民也.

 

○주서 무성편을 상고하건대 무왕의 말을 실었거늘 맹자가 그 글을 간략히 함이 이와 같으니라. 그러나 그 말이 특히 지금 서전과 더불어 같지 아니하니 이제 잠시 이 글에 의지해서 해석하노라. 신하되지 않는 바가 있다는 것은 주를 도와 악함을 하고 주나라 신하가 되지 않음을 이르노라. 匪는 篚(대광주리 비)와 더불어 같음이라. 현황은 폐백이라. 소는 이음이니 섬김을 말함과 같으니라. 말하되 그 선비와 여자들이 광주리로써 현황의 폐백을 담아서 무왕을 맞이하여 섬김이라. 상나라 사람이 가로대 우리 주나라 임금이 상서에 이른바 우리 임금(我后)이라고 함과 같으니라. 휴는 아름다움이라. 말하되 무왕이 능히 하늘에 순하고 명을 아름답게 하사 섬기는 자들이 다 아름다움을 봄이라. 신부는 돌아가 복종함이라. 맹자가 또 그 뜻을 해석하시고 상나라 사람이 주나라 군사의 옴을 듣고 각각 그 유로써 서로 맞이함은 무왕으로써 능히 백성을 수화의 가운데서 구원하여 그 백성을 잔학하게 하는 자를 취해서 베임이오 포학함이 아님을 말함이라. 군자는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을 이름이오 소인은 세민(영세민)을 이름이라.

 

 

 

太誓曰, 『我武惟揚, 侵于之疆, 則取于殘, 殺伐用張, 于湯有光。』

 

 

태서에 '내가 무력을 떨쳐 그 나라를 침공하여 잔인한 자들을 잡아 죽이고 정벌을 이루었으니 탕왕보다 더 빛나도다.' 라고 하였으니, 

 

 

○太誓 周書也, 今書文亦小異. 言武王威武奮揚, 侵彼紂之疆界, 取其殘賊, 以殺伐之功, 因以張大, 比於湯之伐桀, 又有光焉. 引此 以證上文取其殘之義.

 

○태서는 주서니 이제 서경글과 또한 조금 다르니라. 무왕이 위엄과 무력을 떨치고 드날려서 저 주의 강계를 침노하고 그 잔적을 취해서 살벌의 공이 인하여 써 장대해졌으니 탕임금이 걸을 정벌함에 비유함에 또한 빛남이 있다 하니라. 이를 이끌어서 써 윗글에 그 잔악한 것을 취한다는 뜻을 증명하심이라.

 

 

 

不行王政云爾, 苟行王政, 四海之內皆擧首而望之, 欲以爲君, 齊楚雖大何畏焉!

 

 

왕정을 행한다고 하지 않을 뿐이지 진실로 왕정을 행한다면,  나라 안에서 모두 머리를 들고 우러러보며 인군을 삼으려 할 것인데 제나라와 초나라가 비록 크다 할지라라도 어찌 두려워하겠는가!"

 

 

○宋 實不能行王政, 後果爲齊所滅, 王偃 走死.

○尹氏曰, 爲國者能自治而得民心, 則天下皆將歸往之, 恨其征伐之不早也, 尙何彊國之足畏哉! 苟不自治, 而以彊弱之勢言之, 是可畏而已矣.

 

○송나라가 실은 능히 왕정을 행하지 못하더니 뒤에 과연 제나라의 멸하는 바가 되어 왕언이 도망치다 죽다.

○윤씨 가로대 나라를 하는 자가 능히 스스로 다스리고 민심을 얻으면 곧 천하가 다 장차 돌아가서 그 정벌의 일찍 아니함을 한하리니 오히려 어찌 강한 나라가 족히 두려우리오. 진실로 스스로 다스리지 아니하고 강약의 형세로써 말한다면 이는 가히 두려울 따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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