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35章
孟子曰, 「養心莫善於寡欲。其爲人也 寡欲, 雖有不存焉者 寡矣, 其爲人也 多欲, 雖有存焉者 寡矣。」
맹자가 말했다.
"마음을 수양하는데에는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그 사람됨이 욕심이 적다면 본 마음에 없다 할지라도 적을 것이며, 그 사람됨이 욕심이 많으면 본 마음에 있어도 적을 것이다."
○欲如口鼻耳目四支之欲, 雖人之所不能無, 然 多而不節, 未有不失其本心者, 學者所當深戒也. 程子曰, 所欲不必沉溺, 只有所向, 便是欲.
○욕은 입 ․ 코 ․ 귀 ․ 눈 ․ 사지가 하고자 하는 것과 같으니 비록 사람이 능하지 못한 바가 없으나 그러나 많고도 절제하지 아니하면 그 본심을 잃지 아니함이 있지 아니하니, 배우는 자 마땅히 깊이 경계하는 바이라. 정자 가라사대 하고자 하는 바는 반드시 빠지는 것이 아니오, 다만 향하는 바가 있으면 바로 이 욕심이라.
第36章
曾晳嗜羊棗, 而曾子不忍食羊棗。公孫丑問曰, 「膾炙與羊棗 孰美?」 孟子曰, 「膾炙哉。」 公孫丑曰, 「然則 曾子何爲食膾炙, 而不食羊棗?」 曰, 「膾炙所同也, 羊棗所獨也。諱名不諱姓, 姓所同也, 名所獨也。」
증자의 부친인 증석은 생전에 양조를 좋아했었는데, 증자가 부친 생각에 차마 양조를 먹지 못하였다.
공손추가 물었다. "회와 불고기, 양조중 어느 것이 맛이 좋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회와 불고기이다."
공손추가 물었다. "그렇다면 증자는 어찌하여 회와 불고기를 먹으면서 양조를 먹지 않습니까?"
"회와 불고기는 똑같이 좋아하는 것이고, 양조는 증자의 부친이 홀로 좋아하는 것이다. 이름을 함께 쓰는 것은 꺼리고 성을 함께 쓰는 것은 꺼리지 않는데, 성은 함께 쓰는 것이지만 이름은 홀로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羊棗實小黑而圓, 又謂之羊矢棗. 曾子以父嗜之, 父沒之後, 食必思親故 不忍食也.
○양조는 열매가 작고 검으며 둥그니, 또한 이르기를 양시조라 하니라. 증자가 써 아버지가 그것을 좋아하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먹음에 반드시 아버지를 생각하는 고로 차마 먹지 못하니라.
公孫丑問曰, 「膾炙與羊棗 孰美?」 孟子曰, 「膾炙哉。」 公孫丑曰, 「然則 曾子何爲食膾炙, 而不食羊棗?」 曰, 「膾炙所同也, 羊棗所獨也。諱名不諱姓, 姓所同也, 名所獨也。」
공손추가 물었다. "회와 불고기, 양조중 어느 것이 맛이 좋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회와 불고기이다."
공손추가 물었다. "그렇다면 증자는 어찌하여 회와 불고기를 먹으면서 양조를 먹지 않습니까?"
"회와 불고기는 똑같이 좋아하는 것이고, 양조는 증자의 부친이 홀로 좋아하는 것이다. 이름을 함께 쓰는 것은 꺼리고 성을 함께 쓰는 것은 꺼리지 않는데, 성은 함께 쓰는 것이지만 이름은 홀로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설]
살아생전에 증자의 아버지 증석은 양조를 유별나게 좋아했다. 효성이 지극했던 증자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났고, 특히 양조를 보면 아버지가 더욱 그리워져 차마 먹지를 못한 것이다. 회나 불고기는 모두가 함께 다같이 즐겨 먹었기에 별 생각없이 먹을 수 있지만, 양조는 증석이 워낙 좋아했던 것이라 차마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맹자는 이 일을 아름답게 여겨 여기에 적어 놓았다. 예전 사람들은 또한 사람의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혼자만의 독특한 것이기에 함부로 부르지 않고 호를 별도로 지어 부르거나 흔히 金家, 朴家 혹은 金氏, 朴氏 등의 성으로 불렀다. 더욱이 君師父의 이름은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기에 諱라 하여 부르기를 꺼렸는데, 위에서 맹자는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은 굳이 예로써 절제하지 아니하고 독특한 것은 예로써 절제해야 함을 강조한 내용이라 볼 수 있다.
○肉聶而切之 爲膾, 炙 炙肉.
○고기를 저며 썬 것이 회가 되고, 자는 구운 고기(적육)라.
聶 : 소곤거릴 섭/저밀 접. 저미다. 고기 따위를 엷게 뜸.
第37章
萬章問曰, 「孔子在陳曰, 『盍歸乎來。吾黨之士狂簡進取, 不忘其初。』 孔子在陳, 何思魯之狂士?」
孟子曰, 「孔子不得中道而與之, 必也狂獧乎。 狂者進取, 獧者有所不爲也。孔子豈不欲中道哉! 不可必得故, 思其次也。」 「敢問, 何如斯可謂狂矣?」 曰, 「與琴張曾晳牧皮者, 孔子之所謂狂矣。」 「何以謂之狂也?」
曰, 「其志嘐嘐然曰, 『古之人, 古之人!』 夷考其行, 而不掩焉者也。狂者又不可得, 欲得不屑不潔之士而與之, 是獧也, 是又其次也。孔子曰, 『過我門而不入我室, 我不憾焉者, 其惟鄕原乎! 鄕原德之賊也。』」
曰, 「何如斯可謂之鄕原矣?」 曰, 「『何以是嘐嘐也, 言不顧行, 行不顧言, 則曰, '古之人, 古之人!'』, 『行何爲踽踽涼涼! 生斯世也, 爲斯世也 善斯可矣。』 閹然媚於世也者, 是鄕原也。」
萬章曰, 「一鄕皆稱原人焉, 無所往而不爲原人, 孔子以爲德之賊 何哉?」 曰, 「非之無擧也, 刺之無刺也, 同乎流俗, 合乎汙世, 居之似忠信, 行之似廉潔, 衆皆悅之, 自以爲是而不可與入堯舜之道。故曰德之賊也。孔子曰, 『惡似而非者, 惡莠恐其亂苗也, 惡佞恐其亂義也, 惡利口恐其亂信也, 惡鄭聲 恐其亂樂也, 惡紫恐其亂朱也, 惡鄕原恐其亂德也。』 君子反經而已矣, 經正則庶民興, 庶民興斯無邪慝矣。」
만장이 물었다.
"공자가 진나라에 계실 때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우리 문하의 선비들이 뜻이 크고 간략하면서 진취적이나 초심을 잃지 않노라.' 라고 하셨는데 공자가 진에 계시면서 어찌 노나라의 진취적인 선비를 생각하셨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공자는 '중도의 인재를 얻어 함께할 수 없다면 반드시 광자와 견자를 얻어 함께 하겠다. 광자는 진취적이며 견자는 하지 않는 일이 있었다.' 고 하셨는데, 공자가 어찌 중도의 인재를 얻으려고 하지 않으셨겠는가! 반드시 얻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 다음을 생각하신 것이다."
만장이 물었다. "감히 묻습니다. 어찌 하여야 광이라 합니까?"
"금장과 증석과 목피같은 자들이 공자의 이른바 광에 해당하는 자들이었다."
"어찌하여 그들을 광이라고 합니까?"
"그 뜻이 커서 '옛 사람이여, 옛 사람이여!' 라고 하지만, 평소에 그 행실을 살펴보면 행실이 말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광자를 또 얻을 수 없다면 불결한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선비를 얻어서 함께 하려고 하였는데 이것이 견이며 이것은 또한 그 다음의 것이다. 공자는 '내 집 문앞을 지나가면서 우리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내가 서운해 하지 않는 자는 오로지 향원 뿐이다. 향원은 덕을 해치는 자이다.' 라고 하셨다."
"어찌하여야 그를 향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어찌 이렇게 큰 소리로 말을 하고는 행실을 돌아보지 않고, 행동을 하고는 말을 돌이키지 않으면서 「옛 사람이여, 옛 사람이여!」 라고 하는가' 라고 하고, '어찌 외롭고 쓸쓸히 행하는가?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이 세상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면 된다.' 고 하면서 슬그머니 세상에 아부하는 자가 바로 향원이다."
만장이 물었다. "한 고을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일컫는다면 가는 곳마다 좋은 사람이 되지 않음이 없을터인데 공자가 덕을 해치는 자라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비난하려 해도 들추어낼 것이 없고, 풍자하려고 해도 풍자할 것이 없으며, 세속의 흐름을 함께 하고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며, 충성스럽고 믿음이 있는 것처럼 살고, 청렴결백한 것 처럼 행동하며, 대중이 모두 기뻐하면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만 요순의 도에 함께 들어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덕을 해치는 자라고 한 것이다.
공자는, '비슷하지만 아닌 것을 싫어하지만, 가라지를 싫어하는 것은 새싹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며, 아첨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의를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고, 말을 잘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신의를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며, 정나라의 음악을 싫어하는 것은 바른 음악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고, 간색인 자주색을 싫어하는 것은 순색인 붉은 색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며, 향원을 싫어하는 것은 덕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다.' 라고 하셨다. 군자는 떳떳한 도를 회복할 뿐이며, 떳떳한 도가 바르다면 서민들이 선을 행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고, 서민들이 선을 행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면 사특함이 없게 된다."
○盍 何不也. 狂簡 謂志大而略於事. 進取 謂求望高遠. 不忘其初 謂不能改其舊也. 此語 與論語小異.
○합은 ‘어찌 못하랴’이라. 광간은 뜻은 크나 일에 생략함을 이름이라. 진취는 높고 먼 것을 구하고 바람을 이름이오, 불망기초는 그 옛 것을 능히 고치지 못함을 이름이라. 이 말은 『논어』와는 조금 다르니라.
[해설]
위 대문에 대하여 주자가 『논어』와는 조금 다르다고 한 것은 『논어』公冶長(第21章)에 다음과 같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자가 진나라에 계실 때 말씀하셨다. "돌아가야겠다. 돌아가야겠다 ! 나의 제자들이 과격하고 단순하여, 찬란하게 문리를 이루었으나 그것을 다듬을 줄을 모르는구나."
子在陳曰, 「歸與! 歸與! 吾黨之小子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
孟子曰, 「孔子『不得中道而與之, 必也狂獧乎。 狂者進取, 獧者有所不爲也。』 孔子豈不欲中道哉! 不可必得故, 思其次也。」
맹자가 대답했다. "공자는 '중도의 인재를 얻어 함께할 수 없다면 반드시 광자와 견자를 얻어 함께 하겠다. 광자는 진취적이며 견자는 하지 않는 일이 있었다.' 고 하셨는데, 공자가 어찌 중도의 인재를 얻으려고 하지 않으셨겠는가! 반드시 얻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 다음을 생각하신 것이다."
獧 : 견개할 견/뛸 환. 견개(狷介)하다. 절개가 매우 굳음.
○不得中道至有所不爲, 據論語, 亦孔子之言, 然則孔子字下 當有曰字. 論語道作行, 獧作狷. 有所不爲者, 知耻自好, 不爲不善之人也. 孔子豈不欲中道以下 孟子言也.
○‘不得中道’로부터 ‘有所不爲’까지는 『논어』를 근거해보건대 또한 공자의 말씀이니(『논어』子路편), 그러하다면 공자라는 글자 아래에 마땅히 曰자가 있어야 하니라. 『논어』에 ‘道’는 ‘行’으로 지었고, ‘獧’은 ‘狷’으로 지었느니라. 하지 않는 바가 있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알아 스스로 좋아하여 불선을 하지 아니하는 사람이라. '孔子 豈不欲中道' 이하는 맹자의 말씀이라.
「敢問, 何如斯可謂狂矣?」
감히 묻습니다. 어찌 하여야 광이라 합니까?
○萬章問.
○만장이 물음이라.
曰, 「與琴張曾晳牧皮者, 孔子之所謂狂矣。」
"금장과 증석과 목피같은 자들이 공자의 이른바 광에 해당하는 자들이었다."
○琴張 名牢, 字子張. 子桑戶死, 琴張臨其喪而歌, 事見莊子, 雖未必盡, 然 要必有近似者. 曾晳 見前篇. 季武子死, 曾晳倚其門而歌, 事見壇弓, 又言志異乎三子者之撰, 事見論語, 牧皮 未詳.
○금장은 이름이 뇌요, 자는 자장이라. 자상호가 죽음에 금장이 그 상에 임해서 노래하니 일이 『장자』(大宗師)에 나타나니 비록 반드시 다하지 못함이라. 그러나 요컨대 반드시 비슷한 점이 있느니라. 증석은 전편(離婁章句上 제19장)에 나타나니라. 계무자가 죽거늘 증석이 그 문에 기대어 노래부르니 일이 『예기』 단궁(하편)에 나타남이오, 또한 말하기를 뜻이 세 사람이 가진 것과 다르다 하니 일이 『논어』(先進 第25章)에 나타나니라. 목피는 자세하지 않느니라.
子桑戶、孟子反、子琴張相與友,曰:「孰能相與於無相與,相爲於無相爲?孰能登天遊霧,撓挑無極,相忘以生,無所終窮?」 三人相視而笑,莫逆於心,遂相與友。莫然有間,而子桑戶死。未葬, 孔子聞之,使子貢往侍事焉。或編曲,或鼓琴,相和而歌曰:「嗟來桑戶乎!嗟來桑戶乎!而已反其眞,而我猶爲人猗!」 子貢趨而進,曰:「敢問臨尸而歌,禮乎?」 二人相視而笑,曰:「是惡知禮意!」 子貢反,以告孔子,曰:「彼何人者邪?修行無有,而外其形骸,臨尸而歌,顔色不變,無以命之,彼何人者邪?」
孔子曰:「彼,遊方之外者也;而丘,遊方之內者也。內外不相及,而丘使汝往弔之,丘則陋矣。彼方與造物者爲人,而遊乎天地之一氣,彼以生爲附贅縣疣,以死爲決疣潰癰。夫若然者,又惡知死生先後之所在!假於異物,託於同體;忘其肝膽,遺其耳目,反覆終始,不知端倪;芒然彷徨乎塵埃(垢)之外,逍遙乎無為之業。彼又惡能憒憒然為世俗之禮,以觀眾人之耳目哉!」 <莊子 內篇 大宗師 (4)>
자상호, 맹자반, 자금장이 서로 벗이 되고자 말했다. "누가 서로 사귀지 않는 데에서 사귈 수 있고, 서로 돕지 않는 데에서 도울 것인가? 누가 능히 하늘에 올라 안개속에서 노닐고 한없이 넓은 세계에서 뛰놀며 서로 삶을 잊고 끝남이 없는 경지에 들 수 있겠는가?"
세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웃고는 마음에 거스름이 없어 마침내 서로 벗이 되었다. 한동안 아무일 없이 지내다가 자상호가 죽었다.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았는데 공자가 그 소식을 듣고 자장이 가서 일을 돌봐주도록 하였다. 한 사람은 악곡을 짓고 또 한 사람은 거문고를 타며, 서로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 상호여! 아, 상호여! 그대는 이미 참된 세계로 돌아갔는데 우리는 아직 사람으로 남아 있구나! 아-! "
자공이 서둘러 가서 물었다. "감히 묻습니다. 시신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예입니까?"
두 사람이 서로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 사람이 어찌 예의 의미를 알까?"
자공이 돌아와 공자에게 고하며 물었다. "그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수행도 전혀 없는 듯 시신조차 도외시 하고 시신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얼굴 빛도 변하지 않으니 무어라 이름 붙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들은 세상 밖의 사람들이며, 나는 세상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안과 밖이 서로 상관하지 않는데 내가 너로 하여금 가서 조문하게 한 것은 내가 생각이 얕았다. 그들은 지금 조물주와 더불어 천지간에서 노닐면서, 저들은 삶을 쓸데없는 혹이나 사마귀로 여기며, 죽음을 따버린 부스럼이나 터져버린 종기쯤으로 여긴다. 그와 같은 자들이 어찌 죽음과 삶의 선후가 있음을 알것인가. 그들은 사람을 다른 물체를 빌어다가 같은 하나의 육체를 만들었다고 보므로, 간과 쓸개도 잊고 귀와 눈의 감각조차 잊으며 끝과 시작을 반복하면서 그 발단을 모르고, 멍하니 세상 밖을 방황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일에 소요한다. 그들이 어찌 번거롭게 세속의 예를 행하여, 많은 사람들의 이목에 드러내게 하겠는가!"
撓 ; 휠 뇨/돌 효. 휘다. 구부러짐. 어지럽게 하다. 휘저어 뒤섞임. 비뚤다. 바르지 않음. 약하다. 약하게 함. 꺾이다. 패함. 돌다. 휘돌림.
疣 : 사마귀 우. 사마귀. 피부에 낟알만하게 도도록이 돋은 군살. = 肬 : 사마귀 우, 붓다. 부어오름.
附贅縣疣 : 附와 縣은 같은 뜻이고, 疣는 肬와 같다. 贅와 疣는 모두 사마귀 종류. 王叔岷은 《衆經音義》를 인용하여 “작은 것을 肬라 하고 큰 것을 贅라 한다[小曰肬 大曰贅].”고 풀이했다. 附贅縣疣는 〈第8篇 騈拇〉편에도 보인다.
? : 부스럼 환. 부스럼. 헌 데.
倪 : 어린이 예. 어린이, 소아. 가, 끝. 端倪. 흘겨보다. 곁눈질. 더하다.
憒 : 심란할 궤. 심란하다. 마음이 어지러움. 어둡다. 어리석음.
☞彼方且與造物者爲人
바야흐로 조물자와 벗이 됨. 方且는 ‘바야흐로 막 ~하다’의 뜻. 人은 벗. 爲人에 대해서 王引之는 “爲偶와 같다[猶爲偶].”고 풀이했고, 林希逸도 같은 견해. 이에 대한 고증은 王叔岷의 《莊子校詮》에 자세하다. 〈應帝王〉편에는 ‘方將與造物者爲人’으로 나오며, 〈天運〉편에는 ‘與化爲人’으로, 《淮南子》 〈原道訓〉에는 ‘與造化者爲人’으로 나온다. 朴世堂은 “조물자와 벗이 된다는 것은 하늘과 같은 무리가 된다고 말한 것과 같다[與造物爲人 猶言與天爲徒].”고 하여 앞의 ‘與天爲徒’와 같은 의미로 풀이하였다.
「何以謂之狂也?」
어찌하여 그들을 광이라고 합니까?
○萬章問.
○만장이 물음이라.
曰, 「其志嘐嘐然曰, 『古之人, 古之人!』 夷考其行, 而不掩焉者也。」
"그 뜻이 커서 '옛 사람이여, 옛 사람이여!' 라고 하지만, 평소에 그 행실을 살펴보면 행실이 말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嘐 : 뜻클 효/닭 울 교, 뜻이 크다. 말의 내용 따위가 큼. 큰소리 침. 소리. 닭 우는 소리, 새 우는 소리, 쥐가 쏘는 소리 따위.
夷 : 평소. 보통.
○嘐嘐 志大言大也. 重言古之人, 見其動輒稱之, 不一稱而已也. 夷 平也. 掩 覆也. 言平考其行, 則不能覆其言也. 程子曰, 曾晳言志而夫子與之, 蓋與聖人之志同, 便是堯舜氣象也. 特行有不掩焉耳, 此所謂狂也.
○효효는 뜻이 크고 말이 큼이라. 옛 사람을 거듭 말함은 그 번번이 칭함이오 한번을 칭할 뿐이 아님을 나타냄이라. 이는 편안함이라. 엄은 덮음이라. 평소에 그 행함을 살펴보면 능히 그 말을 덮지 못함을 말함이라. 정자 가라사대 증석이 뜻을 말함에 부자께서 허락하시니 대개 더불어 성인의 뜻과 같으니 바야흐로 요순의 기상이라. 특히 행함에 가리지 못함이 있을 뿐이니 이 이른바 과격하다 하니라.
動輒 : 번번이, 언제나.
狂者又不可得, 欲得不屑不潔之士而與之, 是獧也, 是又其次也。
광자를 또 얻을 수 없다면 불결한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선비를 얻어서 함께 하려고 하였는데 이것이 견이며 이것은 또한 그 다음의 것이다.
屑 : 달갑게 여기다. 마음에 두다.
○此 因上文所引, 遂解所以思得獧者之意. 狂有志者也, 獧 有守者也, 有志者 能進於道, 有守者 不失其身. 屑 潔也.
○이는 위 글에 인용한 바로 인하여, 마침내 써 견자를 얻을 생각을 하신 바의 뜻을 해석함이라. 광은 뜻이 있는 자요, 견은 지킴이 있는 자이니, 뜻이 있는 자는 도에 능히 나아가고 지킴이 있는 자는 그 몸을 잃지 않느니라. 설은 깨끗함이라.
孔子曰, 『過我門而不入我室, 我不憾焉者, 其惟鄕原乎! 鄕原德之賊也。』」 曰, 「何如斯可謂之鄕原矣?」
공자는 '내 집 문앞을 지나가면서 우리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내가 서운해 하지 않는 자는 오로지 향원 뿐이다. 향원은 덕을 해치는 자이다.' 라고 하셨다."
"어찌하여야 그를 향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憾 : 한할 감(함)/근심힐 담. 한하다. 원한을 품음. 한. 원한. 근심하다. 마음이 불안함.
○鄕原 非有識者. 原 與愿同. 荀子原慤字 皆讀作愿, 謂謹愿之人也. 故 鄕里所謂愿人 謂之鄕原. 孔子以其似德而非德故, 以爲德之賊,, 過門不入而不恨之, 以其不見親就 爲幸, 深惡而痛絶之也. 萬章 又引孔子之言而問也.
○향원은 유식한 자가 아니라. 원은 愿과 더불어 같으니라. 순자가 原慤이란 글자를 다 원으로 읽으니, 삼가고 공손한 사람을 이름이라. 그러므로 향리의 이른바 공손한 사람을 향원이라 이르니라. 공자가 그 비슷한 덕으로써 덕하지 아니하는 까닭으로 써 덕의 적이 된다 하시니, 문을 지나면서 들어오지 아니하여도 한하지 않는 것은 써 그 친히 찾아와 보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김이니, 깊이 미워하고 통렬히 끊음이라. 만장이 또한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물음이라.
愿 : 삼강 원. 삼가다. 공손함. 성실하다. 질박함. 慤 : 삼갈 각. 삼가다. 바르다. 성실함. 정성. 성실한 마음. 순박하다. 질박함.
曰, 「『何以是嘐嘐也, 言不顧行, 行不顧言, 則曰, '古之人, 古之人!'』, 『行何爲踽踽涼涼! 生斯世也, 爲斯世也 善斯可矣。』 閹然媚於世也者, 是鄕原也。」
맹자가 말했다.
"'어찌 이렇게 큰 소리로 말을 하고는 행실을 돌아보지 않고, 행동을 하고는 말을 돌이키지 않으면서 「옛 사람이여, 옛 사람이여!」 라고 하는가' 라고 하고, '어찌 외롭고 쓸쓸히 행하는가? 이 세상에 태어났으나 이 세상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면 된다.' 고 하면서 슬그머니 세상에 아부하는 자가 바로 향원이다."
踽 : 홀로 갈 우(구). 홀로가다. 외로이 가는 모양. 성기게 가는 모양. 곱사등이. 구루(傴僂). 閹 : 환관 엄, 내시. 환관. 가리다. 덮음.
○踽踽 獨行不進之貌. 凉凉 薄也, 不見親厚於人也. 鄕原譏狂者曰, 何用如此嘐嘐然, 行不掩其言, 而徒每事必稱古人邪, 又譏狷者曰, 何必如此踽踽凉凉, 無所親厚哉. 人旣生於此世, 則但當爲此世之人, 使當世之人 皆以爲善則可矣. 此鄕原之志也, 閹如奄人之奄, 閉藏之意也. 媚 求悅於人也. 孟子言, 此深自閉藏, 以求親媚於世, 是鄕原之行也.
○우우는 홀로 가서 나아가지 못하는 모양이라. 량량은 박함이니 다른 사람에게 친하고 후함을 받지 못함이라. 향원이 광자를 나무라며 가로대 어찌 써 이와 같이 크고 커서 행함이 그 말을 가리지 못하고, 한갓 매사에 반드시 옛 사람을 칭하는고 하며, 또 광자를 나무라며 가로대 어찌 꼭 이와 같이 외롭고 쓸쓸하여 친후한 바가 없는가. 사람이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다만 마땅히 이 세상의 사람이 되어 당세의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가 써 선하게 하면 가하다 하니 이는 향원의 뜻이라. 엄은 엄인(內侍)의 엄과 같으니 닫고 감추는 뜻이라. 미는 다른 사람에게서 기쁨을 구함이라. 맹자가 이것은 깊이 스스로 닫고 감추어 써 세상에 친하고 아첨하기를 구하니 이것이 향원의 행함이라고 말씀하심이라.
萬章曰, 「一鄕皆稱原人焉, 無所往而不爲原人, 孔子以爲德之賊 何哉?」
만장이 물었다. "한 고을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일컫는다면 가는 곳마다 좋은 사람이 되지 않음이 없을터인데 공자가 덕을 해치는 자라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原 亦謹厚之稱, 而孔子以爲德之賊故, 萬章疑之.
○원은 또한 근후함의 일컬음이거늘 공자가 써 덕의 적이라 하는 고로 만장이 의심하니라.
曰, 「非之無擧也, 刺之無刺也, 同乎流俗, 合乎汙世, 居之似忠信, 行之似廉潔, 衆皆悅之, 自以爲是而不可與入堯舜之道。故曰德之賊也。」
"비난하려 해도 들추어낼 것이 없고, 풍자하려고 해도 풍자할 것이 없으며, 세속의 흐름을 함께 하고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며, 충성스럽고 믿음이 있는 것처럼 살고, 청렴결백한 것 처럼 행동하며, 대중이 모두 기뻐하면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만 요순의 도에 함께 들어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덕을 해치는 자라고 한 것이다."
○呂侍講曰, 言此等之人, 欲非之則無可擧, 欲刺之則無可刺也. 流俗者, 風俗頹靡, 如水之下流, 衆莫不然也. 汙 濁也. 非忠信而似忠信, 非廉潔而似廉潔.
○여시강이 가로대 이러한 등급의 사람은 비난하고자 하면 가히 들 것이 없고 풍자하려 하면 가히 풍자할 것이 없음을 말씀함이라. 유속이라는 것은 풍속의 무너짐이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 같이 모든 사람이 그러하지 아니함이 없음이라. 오는 흐림이라. 충신이 아니면서 충신인 듯하고 청렴결백하지 않으면서 청렴결백한 듯함이라.
孔子曰, 『惡似而非者, 惡莠恐其亂苗也, 惡佞恐其亂義也, 惡利口恐其亂信也, 惡鄭聲 恐其亂樂也, 惡紫恐其亂朱也, 惡鄕原恐其亂德也。』
공자는, '비슷하지만 아닌 것을 싫어하지만, 가라지를 싫어하는 것은 새싹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며, 아첨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의를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고, 말을 잘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신의를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며, 정나라의 음악을 싫어하는 것은 바른 음악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고, 간색인 자주색을 싫어하는 것은 순색인 붉은 색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며, 향원을 싫어하는 것은 덕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다.' 라고 하셨다.
○孟子又引孔子之言以明之. 莠似苗之草也. 佞 才智之稱, 其言 似義而非義也. 利口 多言而不實者也. 鄭聲 淫樂也, 樂 正樂也. 紫 間色, 朱 正色也. 鄕原 不狂不獧, 人皆以爲善, 有似乎中道而實非也. 故 恐其亂德.
○맹자가 또한 공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써 밝히셨느니라. 유는 (곡식의) 싹과 비슷한 풀이라. 녕은 재주와 지혜를 일컬음이니 그 말이 의로운 듯하나 의가 아니니라. 이구는 말만 많고 알맹이가 없는 것이라. 정성은 음란한 음악이오, 악은 바른 음악이라. 자는 간색이오, 주는 정색이라. 향원은 과격하지도 않고 성급하지도 않아 사람들이 다 써 선하다 하니 중도에 비슷하면서도 알맹이는 아니니라. 그러므로 그 덕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라.
君子反經而已矣, 經正則庶民興, 庶民興斯無邪慝矣。
군자는 떳떳한 도를 회복할 뿐이며, 떳떳한 도가 바르다면 서민들이 선을 행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고, 서민들이 선을 행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면 사특함이 없게 된다."
○反 復也. 經 常也. 萬世不易之常道也. 興 興起於善也. 邪慝 如鄕原之屬 是也. 世衰道微, 大經 不正故, 人人得爲異說, 以濟其私, 而邪慝幷起, 不可勝正. 君子於此 亦復其常道而已, 常道旣復, 則民興於善, 而是非明白, 無所回互, 雖有邪慝, 不足以惑之矣.
○尹氏曰, 君子取夫狂狷者, 蓋以狂者志大, 而可與進道, 狷者 有所不爲, 而可與有爲也. 所惡於鄕原, 而欲痛絶之者, 爲其似是而非, 惑人之深也, 絶之之術 無他焉. 亦曰反經而已矣.
○반은 회복함이라. 경은 떳떳함이니 만세 불역의 상도라. 흥은 선에 일어남이라. 사특은 향원과 같은 등속이 이것이라. 세상이 쇠하고 도가 미미하여 대경이 바루어지지 못한 고로 사람마다 시러곰 다른 말을 하여 써 그 사욕을 이루어 사특이 아울러 일어나니 가히 이기어 바루어지지 못하니라. 군자가 이에 또한 그 상도를 회복할 뿐이니 상도가 이미 회복되었으면 백성이 선에 일어나 시비가 명백하여 서로 도는 바(감추고 숨기는 바)가 없어 비록 사특함이 있으나 족히 써 혹하게 하지 못하니라.
○윤씨 가로대 군자가 무릇 과격하고 성급한 자를 취함은 대개 써 과격한 자는 뜻이 커서 가히 더불어 도를 나아가고, 성급한 자는 하지 아니하는 바가 있어서 가히 더불어 하옴이 있음이라. 향원을 미워하여 통렬히 끊고자 하는 바는 그 옳은 것 같으면서도 그릇되어 사람을 혹함이 깊으니 끊는 기술이 다른 것이 없느니라. 또한 가로대 상도를 돌이킬 뿐이니라.
第38章
孟子曰, 「由堯舜至於湯, 五百有餘歲, 若禹皐陶則見而知之, 若湯則聞而知之。由湯至於文王, 五百有餘歲, 若伊尹萊朱則見而知之, 若文王則聞而知之。由文王至於孔子, 五百有餘歲, 若太公望散宜生則見而知之, 若孔子則聞而知之。由孔子而來至於今, 百有餘歲, 去聖人之世, 若此其未遠也, 近聖人之居, 若此其甚也, 然而無有乎爾, 則亦無有乎爾。」
맹자가 말했다.
"요순으로부터 탕에 이르기까지 오백여년인데, 우왕과 고요는 요순의 도를 보아서 알고, 탕왕은 들어서 알았다. 탕왕으로부터 문왕에 이르기까지 오백여년인데, 이윤과 으로 말미암아 문왕에 이르름이 오백여년이니, 이윤과 래주는 탕왕의 도를 보고서 알았고, 문왕은 들어서 알았다.
○趙氏曰, 五百歲而聖人出 天道之常. 然 亦有遲速, 不能正五百年故, 言有餘也. 尹氏曰,知 謂知其道也.
○조씨 가로대 오백년에 성인이 나옴은 천도의 떳떳함이라. 그러나 또한 더디고 빠름이 있어서 바로 오백년이 될 수 없는 고로 나머지가 있다고 말씀함이라. 윤씨 가로대 지는 그 도를 앎을 이름이라.
由湯至於文王, 五百有餘歲, 若伊尹萊朱則見而知之, 若文王則聞而知之。
탕왕으로부터 문왕에 이르기까지 오백여년인데, 이윤과 으로 말미암아 문왕에 이르름이 오백여년이니, 이윤과 래주는 탕왕의 도를 보고서 알았고, 문왕은 들어서 알았다.
○趙氏曰, 萊朱 湯賢臣 或曰, 卽仲虺也, 爲湯左相.
○조씨 가로대 내주는 탕의 어진 신하라. 혹이 가로대 바로 중훼라 하니 탕의 좌상이 되었느니라.
由文王至於孔子, 五百有餘歲, 若太公望散宜生則見而知之, 若孔子則聞而知之。
문왕으로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 오백여년인데 태공망과 산의생은 문왕의 도를 보고서 알았고, 공자는 들어서 알았다.
○散 氏, 宜生 名, 文王賢臣也, 子貢曰, 文武之道, 未墜於地 在人, 賢者 識其大者, 不賢者 識其小者, 莫不有文武之道焉, 夫子焉不學. 此所謂聞而知之也.
○산은 성씨요, 의생은 이름이니 문왕의 어진 신하라. 자공이 가로대 문무의 도가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사람에게 있으니, 현자는 그 큰 것을 기억하고, 어질지 못한 자는 그 작은 것을 기억하여 문무의 도가 있지 아니함이 없으니, 부자가 어찌 배우지 않으셨으리오(『논어』子張편) 하니 이는 이른바 들어서 아는 것이니라. (識 : 기억할 지)
由孔子而來至於今, 百有餘歲, 去聖人之世, 若此其未遠也, 近聖人之居, 若此其甚也, 然而無有乎爾, 則亦無有乎爾。
공자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100여년이 지났는데 말미암아 옴으로 지금에 이르름이 백여년이니, 성인의 세대와의 거리가 이와 같이 멀지 않으며, 성인이 살던 곳과 이와 같이 가깝다. 그러나 아무도 없으니 또한 아무도 없겠구나."
○林氏曰, 孟子言, 孔子至今時未遠, 鄒魯相去又近. 然而已無有見而知之者矣, 則五百餘歲之後, 又豈復有聞而知之者乎! 愚按此言, 雖若不敢自謂己得其傳, 而憂後世遂失其傳. 然 乃所以自見其有不得辭者, 而又以見夫天理民彛, 不可泯滅, 百世之下, 必將有神會而心得之者耳. 故 於篇終, 歷序群聖之統, 而終之以此, 所以明其傳之有在, 而又以俟後聖於無窮也, 其旨深哉.
○有宋元豊八年, 河南程顥 伯淳卒, 潞公文彦博, 題其墓曰明道先生, 而其弟頤正叔, 序之曰, 周公沒, 聖人之道不行, 孟軻死聖人之學 不傳, 道不行. 百世 無善治, 學不傳千載無眞儒, 無善治 士猶得以明夫善治之道, 以淑諸人以傳諸後, 無眞儒 則天下貿貿焉, 莫之所之, 人欲肆而天理滅矣. 先生生乎 千四百年之後, 得不傳之學於遺經, 以興起斯文爲己任, 辨異端 闢邪說, 使聖人之道, 煥然復明於世, 蓋自孟子之後, 一人而已. 然 學者於道不知所向, 則孰知斯人之爲功, 不知所至, 則孰知斯名之稱情也哉.
○임씨 가로대 맹자가 말씀하심은 공자로부터 지금 때에 이르름이 멀지 아니하고, 추나라와 노나라의 서로 거리가 또한 가까우니라. 그러나 이미 보고서 아는 자가 없으니 그렇다면 오백여년 후에 또 어찌 다시 듣고 아는 자 있겠는가. 우가 이 말씀을 상고해보건대 비록 감히 스스로 이미 그 전함을 얻었다고 이르지 못하여 후세에 마침내 그 전함을 잃을까 근심하심이라. 그러나 이에 써한 바 스스로 그 얻어 사양하지 아니하는 것이 있음을 보인 것이오, 또한 써 무릇 천리와 민이가 가히 없어지지 아니하니 백세의 뒤에 반드시 장차 정신으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얻는 자 있을 것임을 보임이라. 그러므로 편의 끝에 차례로 여러 성인의 계통을 서술하시고 이로써 마치시니 써한 바 그 전함이 있음을 밝힌 것이오, 또한 써 후세의 성인을 무궁히 기다리셨으니 그 뜻이 깊도다.
○송나라 원풍 8년(1085년)에 하남의 정호 백순이 죽으니 노공 문언박이 그 묘에 쓰기를 명도(도를 밝힌) 선생이라 하니 그 아우인 이 정숙이 서하기를, 주공이 몰함에 성인의 도가 행해지지 못하고, 맹가가 죽음에 성인의 학문이 전해지지 못하니 도가 행해지지 못함이라. 백세에 선한 정치가 없었고 학문이 전해지지 못함이 천년에, 진유가 없으니, 선한 정치가 없더라도 선비가 오히려 얻어서 써 무릇 선한 정치의 도를 밝혀서 써 남에게 사숙하여 후세에 전하거니와, 진유가 없으면 천하가 어둡고 어두워져 가는 곳을 알지 못하여 인욕이 극에 달해 천리가 멸하리라. 선생이 1천4백년 뒤에 태어나심에 전하지 아니하는 학문을 버려진 경전에서 얻어서 써 사문을 일으킴을 자신의 소임으로 삼으사 이단을 분별하고, 사설을 물리쳐서 성인의 도로 하여금 환하게 다시 세상에 밝히시니 대개 맹자의 뒤로부터 한 사람 뿐이니라. 그러나 배우는 자가 도에 대하여 향하는 바를 알지 못한다면 누가 이 분의 공됨을 알 것이며, 이르는 바를 알지 못한다면 누가 이 이름(明道先生)의 일컫는 정을 알리오!
顥 : 클 호, 크다. 머리털이 흰 모양. 빛나는 모양. 하늘에 떠도는 호기. 하늘(顥天). 貿 : 바뀌다. 갈마듦. 흐트러지다. 눈이 어두운 모양.
潞 : 물이름 로 彦 : 선비 언. 선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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