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鮑女宗
女宗者,宋鮑蘇之妻也。養姑甚謹。鮑蘇仕衛三年,而娶外妻,女宗養姑愈敬。因往來者請問其夫,賂遺外妻甚厚。女宗姒謂曰:「可以去矣。」女宗曰:「何故?」姒曰:「夫人旣有所好,子何留乎?」女宗曰:「婦人一醮不改,夫死不嫁,執麻枲,治絲繭,織紝組紃,以供衣服,以事夫室,澈漠酒醴,羞饋食以事舅姑。
以專一爲貞,以善從爲順。貞順,婦人之至行也。豈以專夫室之愛爲善哉!若其以淫意爲心,而扼夫室之好,吾未知其善也。
鮑 : 절인 어물 포. 절인 어물. 전복. 피혁공(皮革工). 醮 : 초례 초. 초례, 혼례. 제사지내다. 시집가다. 다하다. 바닥남. 여위다.
羞 : 부끄러울 수. 드리다. 음식을 올림. 음식물. 육포. 澈 : 물 맑을 철. 물이 맑다. 물이 마르다. 물이 다함.
漠 : 사막 막. 사막. 넓다. 조용하다. 마음이 편안하다. 쓸쓸하다. 정해지다. 안정됨. 무성하다. 맑다. 어둡다. 도모하다. 계책.
여종(女宗)은 송(宋)나라 포소(鮑蘇)의 아내이다. 시어머니를 극진(極盡)히 모셨다. 포소는 위(衛)나라에 가서 벼슬을 한지 3년이 지났는데 그곳에서 소실을 얻어 살았으나 여종은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시어머니를 부양하며 더욱 공경스럽게 하였다. 오가는 자가 있어 남편의 소식을 들으니 소실에게 재물을 너무 많이 탕진한다 하였다.
여종의 언니가, "떠나는 것이 좋겠다."하니 여종이 물었다.
"무엇때문에요?"
언니가 대답한다. "남편되는 사람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네가 왜 머물러 있겠느냐?"
여종이 대답했다.
"여인이 한번 초례를 올리면 개가하지 않으며 지아비가 죽는다 해도 개가하지 않고 삼과 모시를 다루고, 고치에서 실을 뽑아 비단을 짜고 끈을 꼬아 의복을 만들어 입히며 시댁을 섬기고, 맑은 물로 술을 빚고 음식을 만들어 시부모를 섬깁니다. 오로지 한결같음이 정조이며 잘 따르는 것이 순종이라 생각합니다. 정조와 순종은 부인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입니다. 어찌 시댁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것만 좋다 하겠습니까! 만약 음탕한 뜻으로 마음을 삼고 시댁을 억누르는 것을 좋아한다면 나는 선(善)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夫禮,天子十二,諸侯九,卿大夫三,士二。今吾夫誠士也。有二,不亦宜乎!且婦人有七見去, 夫無一去義。七去之道,妒正爲首, 淫僻竊盜,長舌驕侮,無子惡病,皆在其後。吾姒不敎吾以居室之禮,而反欲使吾爲見棄之行,將安所用此!」遂不聽,事姑愈謹。宋公聞之,表其閭,號曰女宗。
君子謂女宗謙而知禮。
詩云:「令儀令色,小心翼翼,故訓是式,威儀是力。」此之謂也。
頌曰:宋鮑女宗,好禮知理。夫有外妻,不爲變己。稱引婦道,不聽其姒。宋公賢之,表其閭里。
예경(禮經)에 천자는 12명, 제후는 9명, 경대부는 3명, 선비는 2명의 여자를 거느립니다. 지금 나의 남편은 참된 선비이니 여인 2명을 거느린다 해도 어찌 마땅하지 않다 하겠습니까! 또 여인에게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이 있는데 나에게는 남편을 떠나야 할 한가지 사유도 없습니다. 칠거지악의 법도에 투기는 바로 맨 앞에 있으며, 음란함과 도둑질, 수다스러움과 교만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것, 자식이 없거나 나쁜 병에 걸린 것등 모두 투기의 뒤에 있습니다. 나는 언니가 아내의 법도를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나로 하여금 그 행실을 버리도록 하려 하시니 어찌 그 말을 따르겠습니까!"
마침내 언니의 말을 듣지 않고 시어머니를 더욱 정중히 모셨다. 송나라 군주가 그녀에 관한 일을 듣고 그 마을에 표석(表石)을 세우고 그녀를 여종(女宗)이라 호를 내렸다.
군자는, "여종은 겸손하고 예를 알았다."고 했다.
시에, "아름다운 몸가짐과 아름다운 표정, 조심하고 공경스러워, 옛 가르침을 본받아 몸가짐에 힘썼도다.(大雅/蕩之什/蒸民)라 함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송에, "송나라 포소의 아내 여종은 예를 좋아하고 도리를 알았다. 남편이 외지에서 첩을 얻었어도 변하지 않고 여인의 법도를 행하므로써 언니의 말을 듣지 않았다. 송나라 군주가 그녀를 어질다 여겨 그 마을에 표석을 세워 표창하였다."고 했다.
晉趙衰妻
晉趙衰妻者,晉文公之女也。號趙姬。初文公爲公子時,與趙衰奔狄。狄人入其二女叔隗季隗於公子,公以叔隗妻趙衰,生盾。及反國,文公以其女趙姬妻趙衰。生原、同、屛、括、樓、嬰。趙姬請迎盾與其母而納之,趙衰辭而不敢。姬曰:「不可。夫得寵而忘舊,舍義。好新而嫚故,無恩。與人勤於隘厄,富貴而不顧,無禮。君棄此三者,何以使人!雖妾亦無以侍執巾櫛。詩不云:『乎采葑采菲,無以下體,德音莫違,及爾同死。』與人同寒苦,雖有小過,猶與之同死而不去,況於安新忘舊乎!又曰:『讌爾新婚,不我屑以。』蓋傷之也。君其逆之,無以新廢舊。」
逆 : 맞이하다. 불러오다.
진(晉)나라 조최(趙衰)의 아내는 진문공(晉文公)의 딸로 조희(趙姬)라 부른다. 애초 문공이 공자시절 조최와 함께 적(狄)
땅으로 달아났다. 적나라 사람이 그의 두 딸인 숙외(叔隗)와 계외(季隗)를 公子에게 바쳤는데 공자는 숙외를 조최의 아내로 삼게 하였고 돈(盾)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공자가 돌아와 즉위하여 문공이 되어 딸 조희(趙姬)를 조최에게 출가시켰다. 조희는 원(原), 동(同), 병(屛), 괄(括), 루(樓), 영(嬰)을 낳았다. 조희는 적(狄)땅에 두고 온 아들 돈과 그 어머니를 맞아들이자고 권했으나 조최는 사양하고 감히 행하지 못했다.
그러자 조희가 말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새로운 사랑의 대상이 생겼다고 지난 일을 잊음은 의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새로운 상대를 좋아하여 옛 사람을 가볍게 여기고 업신여김은 은혜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곤궁하게 지낼 때 함께 고생하던 사람을 부귀를 얻은 후 돌아보지 않는 것은 예를 버린 것입니다. 그대가 이 세 가지를 버리고 무엇으로 남을 부릴 수 있으리오!
그러시다면 저라 할지라도 또한 그대를 남편으로 모실 수가 없습니다.
시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무를 캐는데 뿌리만 다가 아니로다. 언약을 어기지만 않았다면 함께 해로하였을 것이로다.(國風/邶風/谷風)』 다른 사람과 고생을 함께 했다면 비록 작은 잘못이 있다 해도 차라리 그와 함께 죽을지언정 떠나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새로운 사람에게 안주하여 옛사람을 저버리다니요! 시에 또 말하기를, 『그대 신혼이 즐거워 나는 안중에 없구나.(國風/邶風/谷風)』라 한 것은 모두 그 행동에 상처를 받아 말한 것입니다. 그대는 그들을 맞이해 와서 새로운 사람으로 인하여 옛정을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趙衰許諾,乃逆叔隗與盾來。姬以盾爲賢,請立爲嫡子,使三子下之。以叔隗爲內婦,姬親下之。及盾爲正卿,思趙姬之讓恩,請以姬之中子屛、括爲公族大夫。曰:「君,姬氏之愛子也。微君姬氏,則臣狄人也,何以至此!」 成公許之。屛、括遂以其族爲公族大夫。
君子謂趙姬恭而有讓。
詩曰:「溫溫恭人,維德之基。」趙姬之謂也。
頌曰:趙衰姬氏,制行分明,身雖尊貴,不妒偏房,躬事叔隗,子盾爲嗣,君子美之,厥行孔備。
마침내 조최가 허락하여 숙외와 돈을 맞이해 왔다. 조희는 돈이 어질다 하여 조최에게 청하여 적자로 삼게 하고 세 아들을 그 아래에 두게 하였다. 숙외를 안방마님으로 모시고 조희는 그 아래가 되었다.
돈이 정경(正卿)이 되자 조희가 자신의 모자에게 양보한 은혜를 생각하고 조희의 가운데 아들 병과 괄을 공족대부로 청 하였다.
그리고, "자네들은 희씨(姬氏)의 사랑하는 아들들이다. 그대들 모친이신 희씨가 아니었다면 나는 적나라 사람으로서 어찌 이에 이르렀겠는가!"라 말했다.
진(晉)나라 성공(成公)이 허락하여 병과 괄은 마침내 그 일족을 관장하는 공족대부가 되었다.
군자는, "조희는 공손하고 사양할 줄 알았다."고 하였다.
시에, "온화하고 공손한 사람은 오로지 덕의 터전이로다.(大雅/蕩之什/抑)"라 한 것은 조희를 말한 것이다.
송에, "조최의 부인 희씨는 법도와 행실이 분명하여 신분이 존귀한데도 불구하고 측실을 투기하지 않고 몸소 숙외를 섬기고 그 아들 돈으로 하여금 후사를 잇게하니 군자가 그녀를 아름답게 여기고 그 행실에 매우 흡족하다."고 하였다.
陶荅子妻
陶大夫荅子之妻也。荅子治陶三年,名譽不興,家富三倍。其妻數諫不用。居五年,從車百乘歸休。宗人擊牛而賀之,其妻獨抱兒而泣。姑怒曰:「何其不祥也!」婦曰:「夫子能薄而官大,是謂嬰害。無功而家昌,是謂積殃。昔楚令尹子文之治國也,家貧國富,君敬民戴,故福結於子孫,名垂於後世。今夫子不然。貪富務大,不顧後害。妾聞南山有玄豹,霧雨七日而不下食者,何也?欲以澤其毛而成文章也。故藏而遠害。
嬰害 : 거듭해서 당하는 禍.
도(陶)땅의 대부 답자(荅子)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이다. 답자가 도를 다스린지 3년이 되었는데 명예는 얻지 못하고 집안의 재산이 세배나 늘었다. 아내가 거듭 간하여도 답자는 듣지 않았다. 5년이 지나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수레가 100승이나 뒤따랐다. 친척들이 소를 잡아 축하해 주었지만 그의 아내는 홀로 아이를 안고 울었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노하여 꾸짖었다. "어찌 상서롭지 못하게 그러느냐!"
며느리가 대답했다.
"남편이 능력이 부족한데도 관직이 높으니 이를 영해(嬰害)라 합니다. 공이 없으면서도 집안이 번창하였으니 적앙(積殃 : 재앙이 거듭됨)이라 합니다. 옛날 초(楚)나라 영윤 자문(子文)이 나라를 다스렸는데 자문의 집은 가난해도 나라는 부유하였으니 군주가 존경하고 백성이 받들었으며 그러므로 복이 그 자손에까지 이어지고 명예를 후세에 드리웠습니다.
지금 남편은 그렇지 못합니다. 부를 탐하여 크게 힘을 쓰면서도 뒤에 닥쳐올 재앙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제가 듣기로 남산에 검은 표범이 있는데 7일동안이나 비가 내려 먹을 것을 잡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 털의 윤택을 유지하고 무늬를 다스리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을 간직하여 해로움을 피한 것입니다.
犬彘不擇食以肥其身,坐而須死耳。今夫子治陶,家富國貧,君不敬,民不戴,敗亡之徵見矣。願與少子俱脫。」姑怒,遂棄之。處期年,荅子之家果夷誅。唯其母老以免,婦乃與少子歸養姑,終卒天年。
君子謂荅子妻能以義易利,雖違禮求去,終以全身復禮,可謂遠識矣。
詩曰:「百爾所思,不如我所之。」此之謂也。
頌曰:荅子治陶,家富三倍,妻諫不聽,知其不改,獨泣姑怒,送厥母家,荅子逢禍,復歸養姑。
개나 돼지는 먹을 것을 가리지 않으며 그 몸을 살찌우다가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뿐입니다. 지금 남편이 도 땅을 다스리면서 집안은 부유해졌으나 나라는 가난하니 임금은 삼가하여 대하지 않으며 백성은 받들지 않으니 이는 패망의 징조(徵兆)를 드러낸 것입니다. 원컨대 저는 이 어린 것을 데리고 집을 나갈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노하여 결국 며느리를 내쫓았다. 1년이 지나자 과연 답자의 집안이 주살당했다. 오직 그 어머니만 늙어서 화를 면했는데 답자의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 시어머니를 봉양하니 시어머니는 마침내 천수(天壽)를 누렸다.
군자는, "답자의 아내는 능히 의로써 이(利)를 바꾸었고 비록 예에 어긋나게 삶을 찾아 집을 나갔더라도 마침내 몸을 온전(穩全)히 하여 예로 돌아왔으니 먼 앞날을 내다보았다고 할만 하다." 했다.
시에, "그대들 백방으로 생각해도 내가 가는 것만 못하다네.(國風 鄘風 載馳)" 라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송에, "답자가 도를 다스려 집안의 재산이 3배가 늘었는데 아내는 충고를 해도 듣지 않는 것을 보고 고치지 못할 것을 알았으며 홀로 울고 있다가 시어머니의 노여움을 사 친정으로 쫓겨 났었으나 답자가 화를 당하자 다시 돌아와 시어머니를 봉양하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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