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元曉大聖, 混迹屠沽中, 嘗撫玩曲項葫蘆, 歌舞於市, 名之曰無㝵。 是後好事者, 綴金鈴於上, 垂彩帛於下以爲飾, 拊擊進退皆中音節。乃摘取經論偈頌, 號曰無㝵歌, 至於田翁亦效之以爲戱。
無㝵智國嘗題云,
此物久將無用用,
昔人還以不名名。
近有山人貫休作偈云,
揮雙袖所以斷二障,
三擧足所以越三界。
皆以眞理比之。
僕亦見其舞作讚。
復若秋蟬, 頸如夏鼈。
其曲可以從人, 其虛可以容物。
不見窒於密石, 勿見笑於葵壺。
韓湘以之藏世界, 莊叟以之泛江湖。
孰爲之名, 小性居士。
孰爲之讚, 隴西駝李。
葫 : 마늘 호. 마늘. 호리병박. 줄풀의 열매. 풀이름.
㝵 : 礙, 碍는 俗字. 거리낄 애/푸른돌 의. 거리끼다. 방해함. 가로막다. 저지함. 한정하다. 걸다.
☞ 無用用 : 無用之用
匠石之齊, 至於曲轅, 見櫟社樹. 其大蔽數千牛, 絜之百圍, 其高臨山, 十仞而後有枝. 其可以爲舟者旁十數. 觀者如市, 匠伯不顧, 遂行不輟. 弟子厭觀之, 走及匠石, 曰, 自吾執斧斤以隨夫子, 未嘗見材如此其美也. 先生不肯視, 行不輟, 何邪. 曰, 已矣, 勿言之矣. 散木也. 以爲舟則沈, 以爲棺槨則速腐, 以爲器則速毁. 以爲門戶則液樠, 以爲柱則蠹. 是不材之木也. 無所可用, 故能若是之壽.
山木, 自寇也; 膏火, 自煎也. 桂可食, 故伐之; 漆可用, 故割之. 人皆知有用之用, 而莫知無用之用也. <莊子 內篇 人間世>
二障 : 진리를 깨치고자 하는 데 방해가 되는 두 가지의 장애. 보통 마음을 괴롭히는 장애나 욕망인 내장(內障)과 외부로부터의 방해인 외
장(外障)을 이른다. 《유식론(唯識論)》에서는 마음을 어지럽히는 번뇌장(煩惱障)과 진리를 감추고 있는 소지장(所知障)을, 《구사론
(俱舍論)》에서는 번뇌장과 해탈을 방해하는 해탈장(解脫障)을, 《원각경(圓覺經)》에서는 이장(理障)과 사장(事障)을, 《금강반야바라
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에서는 번뇌장과 삼매장(三昧障)을 이른다.
三界 : 불교에서 삼계는 부처의 지위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 거주하는 欲界, 色界, 無色界를 말함.
삼계는 十法界 · 三千大千世界 등과 함께 불교의 세계관 또는 우주론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欲界는 욕계삼욕으로 불리는 식욕·성욕·수면욕 등의 욕망을 가진 중생들이 사는 세계를 말한다. 色界는 욕계의 위에 있는 세계로서
천인이 거주하는 곳을 말한다. 이 세계는 선정의 깊이에 따라 4가지로 나뉘는데, 사선천 또는 사정려처라 불린다. 無色界는 물질을
싫어하며 벗어나고자 사무색정을 닦은 사람이 죽은 뒤에 태어나는 천계를 말한다. 이 세계는 4가지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비상비
비상처는 삼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이기 때문에 유정천이라고도 한다.
삼계는 이처럼 여러 세계로 분류되고 각각의 세계에 따라 수명이나 고통의 정도가 다르지만 모두 윤회의 과정에 있는 고해라는 점
에서는 동일하다.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는 것은 윤회를 벗어나는 것으로서 삼계를 모두 초월하여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復若秋蟬 : 다른 글을 보면 復 → 腹으로 되어 있는 자료도 있다. 문맥상으로도 腹이 맞는 것 같아 原文은 그대로 둔채 腹으로 해석한다.
韓湘 : 중국 도가의 신화에 나오는 8선 가운데 한 사람. 韓愈의 조카로 8선가운데 한 사람인 呂洞賓의 인도로 도교에 입문하였다고 함.
韓湘以之藏世界 : 여동빈과 황룡선사(黃龍禪師)와 선문답중 다음 구절이 있다.
「粒粟中藏世界, 半升金當內煮山川」 한알의 조 알갱이 속에 세계가 감춰져 있고, 반 되 들이 솥으로 산천을 삶는다.
莊叟以之泛江湖。
惠子謂莊子曰:「魏王貽我以大瓠之種,我樹之成,而實五石。以盛水漿,其堅不能自舉也。剖之以為瓢,則瓠落無所容。非不呺然大也,吾為其無用而掊之。」 莊子曰:「夫子固拙於用大矣,宋人有善為不龜手之藥者,世世以洴澼洸為事。客聞之,請買其方百金。聚族而謀曰:『我世世為洴澼洸,不過數金;今一朝而鬻技百金,請與之。』客得之,以說吳王。越有難,吳王使之將,冬與越人水戰,大敗越人,裂地而封之。能不龜手一也,或以封,或不免於洴澼洸,則所用之異也。今子有五石之瓠,何不慮以為大樽而浮乎江湖?而憂其瓠落無所容,則夫子猶有蓬之心也夫!」 <莊子 逍遙遊>
예전에 원효대성이, 백정과 술장수 사이에 섞여 살면서, 일찍이 목이 굽은 조롱박을 어루만지며 저자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었는데, 이름을 「무애」라고 하였다. 이후에 호사가들이, 금으로 만든 방울을 위에 매달고, 아래쪽에는 무늬 비단을 늘어뜨려 장식하고, 두드리면서 앞뒤로 움직이니, 모두 음절에 맞았다. 이에 경론에서 요점을 뽑아 게송을 지었는데, 「무애가」라 불렀으며 늙은 농부들까지도 또한 이를 본받아 놀이로 삼았다.
무애지국사가 일찍이 글을 지었다.
이 물건은 오랫동안 쓸 일이 없더니 이제 쓰게 되었고,
옛 사람이 이름을 짓지 않았는데 이제 이름이 생겼구나.
근래 또 산인(山人) 관휴라는 사람이 게송을 지었다.
두 소매를 휘두르는 것은 두 장에를 끊었기 때문이고,
발을 세번 드는 것은 삼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모두 진리로써 그 춤을 비유한 것이다.
나도 그 춤을 보고 찬(讚)을 지었다.
배는 가을 매미같고,
목은 여름 자라같다.
목이 굽으니 사람을 따를 수 있고,
배가 비어있어 사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
밀석으로 막히지 않고
규호로 비웃음을 당하지 않는다.
한상은 그것으로 세상을 감추고,
장자는 그것으로 강호에 띄웠다.
누가 그 이름을 지었는가? 소성거사로다.
누가 찬을 지었는가? 농서의 타이로다.
☞八月二十日 題楞迦山 元曉房 幷序 - 高麗 李奎報(1168-1241)
邊山一名楞迦, 昔元曉所居方丈, 至今猶存。有一老比丘, 獨居修眞, 無侍者, 無鼎鐺炊爨之具, 日於蘇來寺趁一齋而已。
循山度危梯 疊足行線路 上有百仞巓 曉聖曾結宇
靈蹤杳何處 遺影留鵝素 茶泉貯寒玉 酌飮味如乳
此地舊無水 釋子難栖住 曉公一來寄 甘液湧嚴竇
吾師繼高蹲 短葛此來寓 環顧八尺房 唯有一雙履
亦無侍居者 獨坐度朝暮 小性復生世 敢不拜僂傴 [曉師俗號小性居士]
변산의 다른 이름은 능가산이다. 옛날 원효가 살던 절이었는데 지금도 아직 남아 있다.
어떤 늙은 비구 하나가 홀로 살면서 도를 닦고 있다. 시종도 없고 솥이나 차를 달이는 도구도 없다.
매일 소래사에 가서 한 끼 밥을 먹을 뿐이다.
산을 돌아 험한 사다리를 건너고, 한 걸음 한 걸음 좁은 길을 따라 나아가니,
위에는 백길 절벽이 있다. 원효성사가 일찍이 집을 얽어 살던 곳이다.
신령한 자취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고, 남은 그림자만 비단 그림에 머물러 있다.
찻물을 긷는 우물에는 차고 옥 같은 물이 고여 있어, 떠서 마시니 맛이 우유 같다.
이곳은 옛날에는 물이 없어서 스님들이 머물 수 없었으나,
원효성사가 한번 와서 머문 뒤에는 달고 시원한 물이 바위틈에서 솟아난다.
우리 스님께서는 높은 자취를 이어받아, 거친 옷을 걸치고 이곳에 와 머무신 것이다.
둘러보니 8자 방에는 오직 신발 한 쌍만이 있고,
역시 사는 사람이 없이 홀로 놓여서 세월만 보내고 있다.
소성거사가 다시 세상에 나온다면 감히 허리를 굽혀 절하지 않겠는가
[원효성사의 속세 이름이 소성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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