紫薇雞林壽翁, 文章峻秀獨步一時, 素有人倫鑑識。常出按南州到完山, 見一小吏名崔鉤。鐵面嚴冷, 爲人沉黙木訥, 有遠到器局。携至京師養之如己子, 訓以書史及綴述之規, 斐然有成, 詞與筆俱遒勁。及冠應擧中丙第, 遊石渠入金馬, 嘗謇謇匪躬, 欲以循國家之急。
嘗和友人詠柳詩云,
西子眉長工作黛,
小蠻腰細不勝嬌。
又未開牡丹,
倚墻窺宋玉,
隔壁挑相如。
詞語流麗皆此類。
紫薇 : 中書省.
壽翁 : 최해(崔瀣1287~1340). 최치원의 후예로 충렬왕때 과거에 급제. 재주가 빼어나고 뜻이 높았으나 뜻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윗사
람을 소홀히 대하여 언행이 거침없어 크게 쓰이지 못함. 저서로 東人之文(25권의 시선집), 문집인 拙藁가 전한다.
鐵面 : 쇠의 빛깔처럼 검붉은 얼굴. 器局 : 사람의 도량이나 재능. 木訥 : 소박하고 말주변이 없다.
遒 : 굳셀 주. 굳세다. 용맹함. 굳다. 견고함. 다그치다. 바쁘다. 급함. 모이다. 끝나다. 마침. 가다. 돌아다님. 달라들어 잡는 모양.
石渠 : 장서각. 金馬 : 學士들이 待詔하는 金馬門의 약칭으로 翰林院. 西子 : 西施.
小蠻 : 孟棨의 《本事詩∙事感》에 다음 구절이 있다. ‘白尙書嬉人樊素善歌, 妓人小蠻善舞, 嘗爲詩曰, 櫻桃樊素口, 楊柳小蠻腰.'
宋玉 : <宋玉 好色賦>에 다음의 문구가 있다. 臣里之美者, 莫若臣東家之子, 東家之子, 窺臣三年.
宋玉(BC298 ~ 222)은 楚나라 시인이었으며 굴원의 제자였다고 한다. 楚辭 가운데 〈九辯〉·〈招魂〉은 그가 지은 것이라고 하며 문사
가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용모가 매우 출중했다고 하며 巫山之夢의 출처인 高唐賦를 지었다.
相如 : 司馬相如와 卓文君의 故事.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及飲卓氏,弄琴,文君竊從戶窺之,心悅而好之,恐不得當也。既罷,相如乃使人重賜文君侍者通殷勤。文君夜亡奔相如,相如乃與
馳歸成都。
중서성에 있는 계림 사람 수옹은 문장이 뛰어나 한 때 독보적이었는데, 평소 사람을 선별하고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다.
일찍이 남쪽 고을의 안찰사로 나가 완산에 도착하여 한 하급관리를 만났는데 이름이 최구라 하였다. 검붉은 얼굴에 엄격하고 냉정하며 과묵하고 소박하여 훗날 큰 그릇이 될것으로 보였다.
그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자식처럼 키우면서 서사와 글 짓는 법을 가르치니 그 성과가 훌륭하여 글과 글씨체가 모두 힘이 있었다. 성년이 되자 과거에 응시하여 병과에 급제하여 장서각에서 일하다가 한림원에 들어갔는데 항상 강직하여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나라의 위급함을 돌보려 하였다.
일찍이 벗들이 버드나무를 읊은 시에 화답하여 글을 지었다.
서시는 눈썹이 길어 눈썹 그리는 일에 능하고,
소만은 허리가 가늘어 교태를 이기지 못하네.
또 아직 피지 않은 모란을 보고 글을 지었다.,
담장에 기대어 송옥을 엿보고,
벽을 사이에 두고 상여와 통하네.
글자와 문장의 유창함과 아름다움이 모두 이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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