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都古高句麗所都也。控帶山河, 氣像秀異, 自古奇人異士多出焉。睿王時有俊才, 姓鄭者忘其名。
垂髫時送友人詩云,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千里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作波。
又作詩云,
桃李無言兮, 蝶自徘徊。
梧桐蕭洒兮, 鳳凰來儀。
無情物引有情物,
况是人不交相親。
君自遠方來此邑,
不期相會是良因。
七月八月天氣凉,
同衾共枕未盈旬。
我若陳雷膠漆信,
君今棄我如敗茵。
父母在兮不遠遊,
欲從不得心悠悠。
簷前巢燕有雌雄,
池上鴛鴦成雙浮。
何人驅此鳥,
使我解離愁。
其後赴上都擢高第, 出入省闥, 謇謇有古諍臣風。嘗扈從長源亭題詩云,
風送客帆雲片片,
露凝宮瓦玉鱗鱗。
綠楊閉戶八九屋,
明月倚樓三兩人。
其語飄逸出塵皆類此。
及作東山齋眞靜先生祭文, 上亦命作東山齋記, 作表云,
鶴背登眞, 乘白雲於杳漠。
螭頭紀事, 披紫詔之丁寧。
又云,
年踰七十, 不離中壽之徒。
功滿三千, 必被上淸之召。
又云, 「而出入先生之門, 其來久矣, 况對揚天子之命, 無所辭焉。」
至今皆膾炙不已焉。
姓鄭者忘其名 : 鄭知常 詩選에 같은 시들이 있다. 아마 묘청의 난에 연루되어 성명을 거론하는 것을 피한 듯 함.
垂髫 : 나이가 어린 사내아이. 아이의 땋아 늘어뜨린 머리
陳雷膠漆 : 後漢시대의 陳重과 雷義의 우정을 말함. <後漢書 獨行傳>
後漢陳重字景公 豫章宜春人. 少與鄱陽雷義爲友. 義字仲公. 太守擧重孝廉 重以讓義. 太守不聽. 義明年擧孝廉 俱在郞署. 後俱拜尙書郞. 義代同時人受罪 以此黜退 重見義去亦以病免. 義後擧茂才 讓於重不應命. 鄕里爲之語曰 膠漆自謂堅 不如陳與雷. 三府同時俱辟 竝至御史.
謇 : 떠듬거릴 건. 떠듬거리다. 어렵다. 힘듦. 아 ! 감탄의 발어사. 직언하는 모양.
謇謇 : 余固知謇謇之爲患兮<離騷經> 難於言也, 直詞進諫. 飄逸 : 뛰어나게 훌륭하다.
東山齋 : 고려 전기 문신 郭輿. 丁寧 : 眞正. 거짓이 없이 진실하게. 또는 틀림없이 꼭. 中壽 : 70 또는 80살.
上淸 : 하늘. 玉淸 · 太淸과 아울러 道家의 三淸의 하나.
螭頭 : 뿔 없는 용의 모양을 새긴 형상. 비석의 머리나 궁전의 섬돌, 돌기둥에 많이 새긴다. 성문 위의 빗물이 흘러내리도록 성벽에 끼운, 이
무기나 용의 머리 모양으로 조각하여 구유처럼 홈을 낸 돌. 여기에서는 비석을 가르킨 듯하다.
서도(平壤)는 옛날 고구려가 도읍으로 삼은 곳이다. 산과 강이 띠처럼 둘러쳐져 있고, 기상이 빼어나, 옛날부터 기인이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예종(睿王) 때 아주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성씨는 정(鄭)인데 그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어렸을 때 벗에게 보낸 시가 있다.
비가 그치니 긴 제방에 푸른색이 짙어졌는데
그대 천길 먼 곳으로 보내니 슬픈 노래 나오네.
대동강 물 언제나 마를까?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보태져 물결을 일으키리라.
또, 시를 지었다.
복숭아 꽃 오얏 꽃은 말이 없어도, 나비 스스로 넘나든다.
오동나무 선명하니, 봉황이 날아와 앉도다.
무정한 사물도 유정한 사물을 이끄는데,
하물며 사람이 사귀었으니 친하게 지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대 먼 곳에서 이 마을에 와서,
기약도 없이 만나 좋은 인연이 되었도다.
7월, 8월 서늘한 때에,
한 이불, 한 벼게로 며칠 밤을 보냈도다.
나에게는 진중(陳重)과 뇌의(雷義)같은 우정과 믿음이 있는데,
그대는 지금 나를 해진 자리처럼 버리려 하네.
부모가 계시므로 멀리 가지 못해,
따라가고 싶어도 갈 수 없어 마음 서글프도다.
처마 밑 제비집에 암컷과 수컷이 있고,
연못 위에는 원앙이 짝을 이뤄 떠논다.
누가 이 새들을 쫒아버리고,
내 이별의 시름을 씻어줄건가.
그 후에 도읍에 올라 와 좋은 성적으로 급제하여 대궐에 드나들게 되었는데 곧은 말로 직간하는 모습이 옛 간언하는 신하의 풍모가 있었다. 일찌기 왕을 호종하여 이궁(離宮)인 장원정에 가서 시를 지었다.
바람타고 가는 돛단배 구름처럼 가볍고,
궁궐 기와에 맺힌 이슬은 옥으로 빚은 비늘이로다.
푸른 버드나무가에 문 닫힌 집 여덟 아홉채.
달 밝은데 누각에 기대고 있는 두세사람.
그 문구가 뛰어나 속세를 벗어남이 모두 이와 같았다.
동산재 진정선생의 제문을 지었는데, 왕께서 동산제기를 지으라고 하니 지어 보였다.
학의 등에 올라 신선이 되어,
아득히 멀리 있는 흰 구름에 오르네.
이두에 이 일을 적었는데
자조를 펼쳐보니 진정이로다.
또 이르기를,
나이가 일흔이 넘었어도 중수의 무리를 떠나지 못했고,
공이 삼천에 달했으니 상청의 부름을 받으리라.
또 이르기를,
"선생 문하에 출입하였다면 그 내력이 오래인데, 하물며 천자의 명을 면전에서 드날리니 사양할 까닭이 없도다."라 하였는데 지금까지 모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그치지 않는다.
☞ 鄭知常의 長源亭 (이 글에는 2, 3련만 인용되어있어 전편을 옮긴다.)
岧嶢雙闕枕江濱, 높이 솟은 궁의 누관은 강둑을 베고
淸夜都無一點塵。 맑은 밤 티끌 한점도 일지 않네.
風送客帆雲片片, 바람타고 가는 돛단배 구름처럼 가볍고,
露凝宮瓦玉鱗鱗。 궁궐 기와에 맺힌 이슬은 옥으로 빚은 비늘이로다.
綠楊閉戶八九屋, 푸른 버드나무가에 문 닫힌 집 여덟 아홉채.
明月捲簾三兩人。 달 밝은데 누각에 기대고 있는 두세사람.
縹緲蓬萊在何許, 아득한 봉래산은 어디쯤에 있는가.
夢闌黃鳥囀靑春。 꿈을 깨니 꾀꼬리가 봄을 노래하고 있네.
雙闕 : 궁궐, 祠廟, 陵墓등의 앞 양쪽 높은 대 위에 세웠던 누관(樓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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