慵諷
李 奎報
居士有慵病, 語於客曰, 「世倐忽而猶慵寓, 身微眇而猶慵持。有宅一區, 草穢而慵莫理。有書千卷, 蠹生而慵莫披, 頭蓬慵掃, 體疥慵醫。慵與人嬉笑, 慵與人趨馳, 口慵語, 足慵步, 目慵顧, 踏地觸事, 無一不慵。若此之病, 胡?而攻?」 客無以對, 退而圖所以解其慵者, 歷旬日而復詣曰, 「間闊不面, 不勝眷戀, 願承英眄。」
倐 : 갑자기 숙. 倏의 俗字. 갑자기. 문득. 잠깐. 언뜻. 빛. 빛나다.
眇 : 애꾸눈 묘. 애꾸눈. 짝눈.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다. 희미하다. 작다. 가늘다. 천하다. 멀다. 높다. 넓다. 다하다. 눈이 귀여운 모양.
蠹 : 좀 두. 좀. 책, 옷 따위를 해치는 해충. 좀먹다. 나무굼벵이. 해치다. 쐐기. 볕에 쬐다.
嬉 : 즐길 희. 즐기다. 기쁨. 놀다. 어울려 장난함. 아름답다.
거사(居士)에게 게으른 병이 있어 이것을 객(客)에게 말했다.
“세상은 빠르게 흘러가는데 나는 게으름뱅이로 살아가고 스스로 미미한 존재임에도 게으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집이 하나 있지만 풀과 잡초가 자라고 있는데도 게을러 뽑지도 않고, 책이 천 권이나 있는데 좀이 생겨도 게을러서 펴보지 아니하며, 머리가 헝클어져도 게을러서 빗지 않으며, 몸에 병이 있지만 게을러 치료도 받지 않습니다.
남과 더불어 놀며 웃는 일에도 게으르고, 남과 더불어 서로 왕래하는 것도 게으르며, 또 입으로 말하는 것이 마음 내키지 않고, 눈으로 보는 것도 싫고, 땅을 밟거나 일을 당해도 게으르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와 같은 병을 무슨 방법으로 다스리겠습니까?"
객은 대답도 없이 물러갔다가 그 게으름을 낫게 해 주려고 10일이 지나 다시 와서 말했다.
"한동안 격조하여 얼굴을 보지 못했더니 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만나러 왔습니다."
居士復以慵之病, 不喜相見, 固請而見之曰, 「僕久不聞居士之軟笑微言, 今者暮春之辰, 鳥鳴于園, 風日駘蕩, 雜花綺繁。僕有美酒玉蛆浮動, 其香也滿室, 其氣也撲甕, 獨酌不仁, 非君誰共? 家有侍兒, 善爲鄭聲, 旣工吹笙, 又擊胡箏, 不忍獨聽, 叶韻 亦以待先生。然恐先生之憚其枉駕也。其無意於暫行乎?」
駘 : 둔마 태. 둔마. 둔하다. 어리석음. 벗다. 말이 재갈을 벗음. 밟다. 넓다. 들피지다. 여위고 지침. 한가로운 모양.
蛆 : 구더기 저. 구더기. 지네. 노래기. 술찌꺼기. 술 위에 뜨는 쌀알. 쏘다. 벌레가 쏨. 玉蛆 : 밥알.
箏 : 쟁 쟁. 쟁. 풍경(風磬). 거문고 비슷한, 13줄의 악기.
叶韻 : 어떤 운(韻)의 문자가 다른 운에도 통용되는 것을 말한 것. 여기서는 원문(原文)에 운으로 쓰인 청(聽)자가 앞, 뒤의 쟁(箏)ㆍ생
(生)과 같은 운통이 아니므로 협운이라고 한 것임.
枉駕 : 남이 자기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는 것을 높여 이르는 말. 枉臨. 枉顧. 來駕. 辱臨. 來臨. 枉屈.
거사는 또 게으른 병때문에 만나기를 싫어하였으나 굳이 청해 만나서 말했다.
"내가 오랫동안 거사의 부드러운 웃음과 심오한 말씀을 듣지 못하였는데 지금은 늦은 봄이라 새가 뜰에서 울고 바람도 훈훈하게 불어 온갖 꽃들이 만발했습니다. 나에게 맛좋은 술이 있는데 밥알이 둥둥 떠다니고 그 향이 방안을 가득 채우며 그 기운이 술동이에 꽉 차 있으니 혼자 마시는 것은 마땅치 못할 것이라 그대가 아니면 누구와 함께 마시겠습니까? 집안에 시동이 있는데 정나라 음악을 잘 연주하고 생황을 잘 불며 호쟁도 잘 타서 차마 혼자 듣기가 민망하여 선생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선생이 제 집에 가기를 꺼리실까 두렵습니다. 잠시 갈 마음이 없습니까?"
居士欣然拂衣而起曰, 「子以老夫不謂耄且衰, 欲以甘口之藥, 希代之姿, 慰其欝欝之思, 老夫亦何敢固辭?」 於是束腰以帶, 猶恐其晚, 納踵於履, 猶恐其遲, 汲汲然出而將歸矣。客忽然有慵態, 口亦慵而似不能對。俄復飜然告曰, 「子旣頷吾請, 似不可改。然先生昔言之慵也, 今之言也緊, 昔顧之慵也, 今之顧也謹, 昔步之慵也, 今之步也迅。豈先生之慵病? 從此而欲盡乎。然伐性之斧, 色爲甚, 腐膓之藥, 酒之謂。先生獨於此, 不覺慵之自㢮, 其趨之也如歸市。吾恐先生由此而之焉, 至損性敗身而後已。僕慵見先生之如此, 蹙然與先生慵話, 蹙然與先生慵坐。意者, 先生之慵病, 無柰移於我哉?」
飜然 : 불현듯. 蹙然 : 근심하는 모양. 불안한 모양.
거사가 기뻐하며 옷자락을 떨쳐 일어나 말했다.
“그대가 노부를 노쇠했다고 여기지 않고, 맛좋은 술과 세상에 드문 자색(姿色)으로 답답한 마음을 위로하려고 하는데, 내가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
서둘러 허리띠를 매면서도 지체될까 걱정하고, 신을 신으면서도 더딜까 염려하여 서둘러 나서서 가려고 하였다.
객이 갑자기 마음이 내키지 않는 모습으로 대답할 수 없는 듯이 말을 하지 않았다.
잠시후 불현듯 말했다. "선생님께서 이미 이 청을 승낙하였으니, 바꿀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전에는 말씀하시는 것을 싫어하셨는데 지금은 말씀이 급하시고, 전에는 돌아보는 것도 게으르셨는데 지금은 돌아보시는 것이 조심스러우며, 전에는 걸음을 마음내키지 않은 듯 하셨으나 지금은 걸음이 빠르십니다. 어찌 선생님께 게으른 병이 있다 하겠습니까? 이제부터는 게으름이 다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품을 해치는 도끼로서는 색이 심하며, 내장을 상하게 하는 약은 술이라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어찌 이에 이르러 깨닫지도 모르는 사이에 게으름이 스스로 이완되고 마치 저자에 가시는 것처럼 서두르시고 계십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이렇게 가신다면 본성을 훼손하고 몸을 망치게 될까 두렵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이러한 모습을 보는 것이 마음 내키지 않고 조심스러워 선생님과 말하는 것도 마음이 내키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선생님과 더불어 앉아 있는 것도 마음내키지 않습니다. 생각하건대 선생님의 게으름병이 어찌 제게 옮은 것이 없다 하겠습니까?"
居士赧然泚顙而謝曰, 「善矣。子之諷吾慵也。吾曩語子以病慵。今聞子之一言, 急於影從, 不覺慵之去之無蹤也。始知嗜欲之於人, 其移心也迅, 其入耳也順。繇此而之焉, 其禍人身也疾且敏, 固不可不愼也。吾將移此之心, 入於仁義之廬, 去其慵而務其劬。予謂何如。子其姑須無以嘲吾也。」
赧 : 얼굴 붉힐 란. 얼굴을 붉히다. 무안해함. 부끄러워함. 두려워하다.
泚 : 맑을 차. 맑다. 강 이름. 물이 맑음. 선명한 모양. 땀이 나는 모양. 적시다. 강이름.
嗜欲 : 향락을 탐내는 것. (음식이나 남녀 관계 등의) 정도를 넘어선 욕망.
거사는 얼굴을 붉히며 이마에 땀이 나는 듯한 모습으로 사과했다.
"그대가 내 게으름을 풍자한 모습이 훌륭합니다. 내가 종전에 그대에게 내 게으름병을 말했습니다. 지금 그대의 말을 듣고보니 그림자가 사람을 따르는 것보다 더 빠르게 나도 모르게 게으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비로소 기욕(嗜欲 : 향락을 탐냄)이 사람에게 마음을 빠르게 움직이게 하며 귀에 들어가는 것을 순하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때 기욕이 사람의 몸에 해를 끼치는 것이 빠르고 기민하니 진실로 삼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이 마음을 인의의 집안으로 옮겨 게으름을 버리고 인의에 힘쓰려고 하는데 그대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그대는 잠시 기다리고 나를 비웃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