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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古文學/散文, 小說

麴先生傳

by 柳川 2021. 12. 21.

                                                               麴先生傳

 

 

                                                                                                                                   李 奎報

 

 

麴聖字中之, 酒泉郡人也。少爲徐邈所愛,  邈名而字之。遠祖本溫人, 恒力農自給, 鄭伐周獲以歸, 故其子孫或布於鄭。曾祖史失其名, 祖牟徙酒泉因家焉, 遂爲酒泉郡人。至父醝始仕爲平原督郵, 娶司農卿穀氏女生聖。聖自爲兒時, 已有沉深局量, 客詣父目愛曰, 「此兒心器當汪汪若萬頃之波, 澄之不淸, 撓之不濁, 與卿談不若與阿聖樂。」

 

 

醝 : 술 차. 술. 백주, 흰 빛깔나는 술. 곡식이름.        平原督郵 : 맛없는 술 또는 탁주의 은어,

 

 

 

국성(麴聖)의 자는 중지(中之)이며, 주천군(酒泉郡)의 사람이다. 어려서 서막(徐邈)으로부터 사랑을 받아, 서막이 이름과 자를 지어 주었다.  그의 먼 조상은 온(溫) 땅 사람으로 항상 힘써 농사지어 자급(自給)하였는데, 정(鄭) 나라가 주(周) 나라를 칠 때에 포로로 잡혀왔기 때문에 그 자손이 혹 정 나라에 퍼져 있다.  증조(曾祖)는 역사 기록에 그 이름이 빠졌는데, 조부 모(牟)가 주천(酒泉)으로 이사하여 살았기 때문에 마침내 주천군 사람이 되었다.  부친 차(醝)에 이르러 비로소 벼슬을 하여 평원독우(平原督郵)가 되었고 사농경(司農卿) 곡씨(穀氏)의 딸과 결혼하여 성(聖)을 낳았다. 

성은 어렸을 때부터 이미 깊은 국량(局量 : 도량과 재능)이 있었는데, 손님이 그 부친을 보러 왔다가 그를 보고 사랑하여 말했다.

"이 아이의 심기(心器)가 넓고 깊은 것이 만경창파와 같으며, 맑게 하려고 해도 맑아지지 않고 흔들어도 탁해지지 않으니, 그대와 이야기 하는 것 보다 성과 더불어 즐기는 것만 못하네."

 

 

 

 

及長與中山劉伶 · 潯陽陶潛爲友。二人甞謂曰, 「一日不見此子, 鄙吝萌矣。」 每見移日忘疲, 輒心醉而歸。州辟糟丘掾, 未及就, 又徵爲靑州從事。公卿交口薦進。上令待詔公車。居無何召見, 目送曰, 「此酒泉麴生耶? 朕飮香名久矣。」 先是大史奏『酒旗星大有光。』 未幾聖至, 帝亦以是益奇焉。卽拜爲主客郞中, 尋轉爲國子祭酒, 兼禮儀使。凡掌朝會宴饗, 宗廟蒸甞, 酌獻之禮, 無不稱旨。上器之擢置喉舌, 待以優禮, 每入謁, 命舁而升殿, 呼麴先生而不名。上心有不懌, 及聖入見, 上始大笑, 凡見愛皆此類也。性醞藉日親近, 與上無小忤, 由是益貴幸, 從上遊宴無節。子酷䤖醳, 倚父寵頗橫恣。中書令毛穎上䟽劾奏曰, 「倖臣擅寵天下所病。今麴聖以斗筲之用, 幸登朝級, 位列三品(酒有三品)。 內深賊喜中傷人, 故萬人呶號, 疾首痛心, 此非醫國之忠臣, 乃實毒民之賊夫。聖之三子。憑恃父寵。橫行放肆。爲人所苦。請陛下幷賜死以塞衆口。」

 

 

劉伶(221 ~ 300) : 중국 삼국시대 魏 · 西晉의 시인으로, 자는 伯倫, 竹林七賢중 한 사람, <世說新語>에 따르면 신장이 약 140cm로

      작았다. 죽림칠현 중 가장 술을 즐겼으며, 이와 관련된 수많은 일화로 유명하다. 저서로 <酒德頌>이 있다.

靑州從事 : 좋은 술을 일컫는 은어.            交口 : 입을 모아 말하다. 말을 주고받다대화하다. 말다툼하다언쟁하다입씨름하다.

居無何 : 시간상으로 있은지 얼마 안됨. 이윽고.      目送 : 목송하다. 눈으로 전송하다. 눈으로 뒤쫓다.

國子祭酒(국자좨주) : ◆제주(祭酒); <명사> 제사에 쓰는 술.      ◆좨주(祭酒); <동사> 제사에서 술을 지우는 행위.

                            ◆좨주(祭酒); <고유명사> 벼슬(성균관좨주) 이름.

舁 : 마주들 여.    䤖 : 계명주 포. 단술. 감주.       醳 : 진한 술 역. 진한 술. 쓴 술. 오래 묵은 술.        䟽 : 疎      毛穎 : 붓. 

筲 : 대그릇 소(삭). 대그릇. 둥구미. 밥통  말등 적은 분량을 뜻함또는평범한 사람을 이름. 수저통.

斗筲之用 : 斗筲之人. 평범한 사람. 보잘 것 없는 사람(존재)              呶 : 지껄일 노. 

 

 

 

성이 장성하자 중산의 유령(劉伶)과 심양의 도잠(陶潛 : 도연명)과 벗이 되었다.

두사람은 항상 말했다. "하루라도 이 사람을 보지 않으면 천박함과 인색함이 생긴다."

만날 때마다 며칠동안의 피로를 잊고 항상 마음이 취해서 돌아갔다.  고을에서 조구연(糟丘掾)으로 초빙하였으나 미처 나아가기도 전에 또 불러 청주종사(靑州從事)를 삼았다.

공경들이 이구동성으로 천거하니 위에서 영을 내려 공거(公車 : 兵車)에서 조칙(詔勅)을 기다리게 했다.

이윽고 위에서 불러 보고 주시하며 말했다. "이 자가 주천의 국생인가? 짐이 향기로운 이름을 들은지 오래 되었도다."

이에 앞서 태사가 '주기성이 크게 빛을 발합니다.' 라고 아뢰었었는데 알마 지나지 않아 성이 이르니 황제가 이를 더욱 기이하게 여겼다. 

즉시 주객랑중을 제수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국자좨주(國子祭酒)로 옮기고 예의사(禮儀使)를 겸하게 하였다. 

모든 조정의 모임과 잔치, 종묘의 제사에서 술을 따라 올리는 예를 맡았는데 뜻에 맞지 않음이 없었다. 위에서 그를 중히 여기고 후설(喉舌)에 발탁하고 후한 예로 대접하여, 항상 조정에 들어와 알현할 때 교자를 타고 전에 오르도록 명하고 국선생이라 부르며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 또 위에서 마음이 불쾌하여 있다가도 성이 들어가 뵈면 위에서 비로소 크게 웃으니 사랑을 받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 

성품이 너그러워 나날이 친근해지면서도 위에 거스르는 일이 없었으며 이로 인하여 더욱 총애를 받아 임금을 따라 유흥을 즐길 때면 절도가 없었다. 아들로 혹(酷), 포(䤖), 역(醳)이 있었는데 그 아비의 총애를 믿고 매우 방자하게 굴었다. 

이에 중서령 모영(毛穎)이 상소를 올려 탄핵하였다. 

"행신이 총애를 독차지하는 것은 천하가 병폐로 여기는 바이온데 지금 국성(麴聖)이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요행히 벼슬에 올라 지위가 삼품의 반열에 올랐습니다(술에는 세 품계가 있다).  안으로는 매우 모질고 남을 중상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만인이 지껄이고 고함치며 두통을 앓고 마음 아파합니다. 이는 나라의 병을 고치는 충신이 아니며 실로 백성을 해치는 적당인 것입니다. 성의 세 아들은 아비의 총애를 믿고 함부로 행동하고 방자한 행실로 남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모두에게 죽음을 내리시어 사람들의 입을 막으소서."

 

 

 

 

書奏子酷等, 卽日飮酖自殺, 聖坐廢爲庶人。鴟夷子亦甞善聖, 故亦墮車自死。初鴟夷子以滑稽見幸, 與麴聖相友, 每上出入,  託於屬車。鴟夷子甞困卧, 聖戱曰, 「卿腹雖大, 空洞何有?" 答曰, 「足容卿輩數百。」 其相戱謔如此。聖旣免, 齊郡鬲州間, 盜賊群起。上欲命討. 難其人復起聖爲元帥, 聖持軍嚴, 與士卒同甘苦, 灌愁城一戰而拔, 築長樂阪而還, 帝以功封爲湘東侯。二年上䟽乞退曰, 「臣本瓮牖之子, 少貧賤爲人轉賣。偶逢聖主虛心優納, 拯於沉溺, 容若江湖。有忝洪造, 無潤國體, 前以不謹, 退安鄕里, 雖薄露之垂盡, 幸餘滴之得存, 敢欣日月之明。更發醯雞之覆。且器盈則覆, 物之常理。今臣遇痟渴之病, 命迫浮漚, 庶一吐兪音, 使退保餘生。」 帝優詔不允, 遣中使賷松桂菖蒲等藥物, 就其第省病。聖累表固辭, 上不得已許之。遂歸老故鄕, 以壽終。弟賢官至二千石, 子䣧酘?醂服桃花汁學仙, 族子?䤍醶。皆籍屬萍氏云。史臣曰, 「麴氏世本農家, 聖以醇德淸才, 作王心腹, 斟酌國政, 有沃帝心, 幾致大平, 旣醉之功盛哉 !  及其泰寵。幾亂國經。雖禍及於子。無憾。然晚節知足自退。能以壽終。易曰見幾而作。聖庶幾焉。

 

 

書奏 : 신하가 왕에게 글을 올리거나 면전에서 아뢰는 것을 이르던 말.    鴟夷 : 술을 담는 가죽부대.      卧 : 臥 

痟 : 두통 소. 두통. 소갈증.      漚 : 담글 구. 담그다. 향기가 짙은 모양. 거품. 갈매기.  賷 : 가져올 재/휴대물 자. 齎와 同.

䣧 : 술빛 익/ 달 대. 색주(色酒).   酘 : 두번빚은 술 두.    ? : 막걸리 앙.   醂 : 복숭아 절임 림. 복숭아 절임. 감을 우리다. 

? : 술이름 추.   䤍 : 골마지 만(미).  골마지(간장, 술, 김치 따위의 물기 있는 식품의 표면에 생기는 곰팡이 같은 흰색의 물질).

醶 : 초 엄(람)/짠맛 함. 

 

 

 

 

상소가 있자 국성의 아들 혹(酷)등은 즉일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였고 국성은 직위를 빼앗기고 서인이 되었다.  치이자(鴟夷子) 또한 일찌기 성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때문에 수레에서 떨어져 자살하였다.  애초에 치이자는 우수갯말을 잘하여 총애를 받고 국성과 벗이 되어 항상 위에서 출입할 때마다 수행인들이 타는 수레에 의탁하였다.  

치이자가 일찍이 피곤하여 누워있자 성이 희롱하여 물었다. "그대 배는 크지만 텅 비어있으니 무엇이 있는가?" 

치이자가 대답했다. "그대같은 무리는 족히 수백을 담을 수 있다네."

서로 희롱하고 농담하는 모습이 이와 같았다.

국성이 파면당하자 제(齊 : 臍) 군과 격(鬲 : 膈) 고을 사이에 도적무리가 일어났다.  위에서 토벌을 명하려고 하였으나 적임자를 찾기 어려워 다시 국성을 기용하여 원수로 삼았는데, 성이 군사를 다스리는 것이 엄하고  사졸들과 고락을 함께 하며, 수성(愁城)에 물을 대고 한번 싸움에 승리를 거두고 장락판(長樂阪)을 쌓고 돌아오니, 황제가 그 공으로 상동후(湘洞侯)를 제수하였다. 

2년(동국이상국전집에는 1년) 후 상소를 올려 퇴직을 청하였다. "신은 본래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어려서는 빈천하여 사람을 전전하며 팔려다녔습니다.  우연히 성주를 만났는데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후하게 받아주시고 타락의 늪에서 건져 주셨으며 강호(江湖)와 같은 넓은 마음으로 포용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홍조(큰 은혜)를 욕되게 하고 국체(國體 : 나라의 체면)에 도움을 주지 못하였으며, 앞서 삼가하지 못하므로써 향리에 물러나 편안히 있을 때 엷은 이슬이라 할지라도 내린 것이 다 말랐으나 다행히도 남은 물방울이 있어 감히 일월의 밝음을 기뻐하고 다시 벌레가 있는 덮개를 열었습니다. 또 그릇이 가득 차면 넘치는 것은 만물의 떳떳한 이치입니다. 지금 신은 우연히 소갈병을 얻어 목숨이 떠도는 거품처럼 급박하오니 한번 윤허를 내리시어 물러나 여생을 보전하게 하소서."

황제가 도타운 마음으로 조서를 내려 허락하지 않고, 내관을 보내 송계(松桂), 창포(菖蒲)등 약재를 가지고 그의 집으로 가서 병을 살피게 하였다.  성이 누차에 걸쳐 굳이 사직을 청하자 위에서 어쩔 수 없이 허락하였으며 마침내 노령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가 수명을 마쳤다.  

동생 현(賢)은 관직이 이천석에 이르렀으며, 아들 익(䣧), 두(酘), 앙(?), 림(醂)은 복숭아 즙을 먹고 신선이 되는 길을 배웠으며, 족자(族子)인  추(?), 만(䤍), 엄(醶)은 모두 호적이 평씨(萍氏)에 속했다.

 

사신(史臣)이 말했다.

"국씨는 대대로 본시 농가였다. 국성이 순박한 덕과 맑은 재주로 임금의 심복이 되어 국정을 짐작하고 황제의 마음을 기름지게 하여 거의 태평성대에 이르게 하고 취하게 한 공이 있으니 장하도다!  그가 크게 총애를 받게 되자 나라의 기강을 거의 어지럽게 하였으니 그 아들에게 화가 미쳤다 하더라도 유감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령에 이르러 스스로 물러날 줄 알았으니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역에서 말하기를 '조짐을 보고 일어난다.'고 하였는데 국성에 거의 가깝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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