實生龍蛇. 그 안에는 용과 뱀이 사는 법이네
女戎禍晉, 여융의 화 진나라서 일어났을 때
其兆齒牙. 참소하는 데서 조짐 싹이 텄다네
彼女戎者, 여융의 화 일어나게 했던 여자는
艾封人之子耶. 그건 바로 애봉인의 딸이었다네.
東溟集
17세기 우리나라의 문학사(文學史)와 사상사(思想史)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는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1597~1673)의 詩文集.
명종조의 권신인 정순붕의 고손. 동명이 살았던 시대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등이 이어지던 국난기(國難期)와 그 이후의 북벌운동(北伐運動)이 벌어졌던 우리 민족의 시련기였던 만큼, 《동명집》은 그 당시 우리 역사를 증언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동명집은 3회에 걸쳐 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초판(自撰本)은 전해진 것이 없고 중판본은 남구만에 의하여 간행된 <동명선생집>으로 이를 초간본이라(11권 3책 또는 11권 4책)한다. 세 번째 문집은 초간본이 간행된 지 24년 뒤인 1711년(숙종37) 남구만의 교정을 거쳐 동명의 후손인 정수곤(鄭壽崑) 등에 의해 총 26권 8책으로 간행되었다. 여기에는 악부(樂府)와 시(詩) 및 초간본에는 빠져 있던 문(文), 중요 저술 가운데 하나인 〈시풍(詩諷)〉이 수록되어 있다. 이어서 부록(附錄)의 형태로 동명의 동생인 정성경(鄭星卿)의 《옥호자유고(玉壺子遺稿)》, 정인경(鄭麟卿)의 《남악유고(南嶽遺稿)》 및 동명에 대한 만사(輓詞), 제문(祭文), 언행록(言行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것을 흔히 중간본 《동명집》이라고 한다.
14세인 1610년(광해군2) 별시 초시(別試初試), 15세에 사마 초시(司馬初試)에 입격하고 이후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문인으로 들어가 큰 기대를 받았다. 동명은 독서에 심취하여 다양한 서책을 읽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사기(史記)》는 중요한 애독서였으며, 이때의 독서 경험이 그의 일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20세에 〈검부(劍賦)〉를 지어 문학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으며, 가행(歌行)과 악부(樂府)의 작품으로도 이름을 떨쳤다.
33세인 1629년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1632년에 북평사(北評事)가 되어 관북 지방을 순행하면서 많은 변새시(邊塞詩)를 지어 당대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으나 광해조가 혼탁하다 하여 벼슬을 하지 않다가 인조반정 후 벼슬에 나가 효종때 예조참판을 끝으로 세상을 마쳤다.
[주-D001] 진 헌공(晉獻公)은 …… 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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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희(驪姬)는 진 헌공의 총희(寵姬)이다. 헌공이 여희를 총애한 나머지 태자 신생(申生)을 폐하고 그녀의 소생인 해제(奚齊)를 세우려고 하였는데, 여희가 신생을 모함한 결과 신생이 끝내 자결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아들 중이(重耳)와 이오(夷吾)가 망명하였으며, 결국에는 헌공이 죽은 뒤 해제도 살해되었다. 이 일로 인해 진나라는 오랫동안 어지러워졌다. 《史記 卷39 晉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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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2] 여융설(女戎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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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융은 여인으로 말미암아서 일어나는 재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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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3] 오왕(吳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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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의 소주에 “어떤 본에는 오(吳)라고만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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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4] 비유공(非有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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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이 이 〈여융설〉을 지으면서 만들어 낸 가상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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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5] 말희(妺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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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夏)나라 걸왕(桀王)의 총희(寵姬)이다. 걸왕이 말희를 총애하여 그가 원하는 것은 모두 들어주었는데, 경궁(瓊宮)과 요대(瑤臺)를 만들고, 고기 산과 고기포 숲을 만들었으며, 배를 띄울 만큼 큰 술 연못을 만들어 놓고 말희와 즐기다가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史略 卷1 夏后氏, 殷成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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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6] 상(商)나라에 ……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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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기(妲己)는 상(商)나라 주왕(紂王)의 총희이다. 주왕이 달기를 총애하여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를 걸어서 숲을 만들어 놓고는 밤새도록 잔치를 벌이면서 즐겼으며, 황음(荒淫)을 하다가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史略 卷1 夏后氏, 殷成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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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7] 포락(炮烙)의 형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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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紂王)이 만든 잔혹한 형벌로, 구리 기둥에 기름을 바른 다음 그 아래에 숯불을 피워 달구어 놓고 죄수가 맨발로 기둥을 오르다가 숯불에 떨어져 죽도록 하는 형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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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8] 미미(靡靡)의 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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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이 만든 음탕한 음악으로, 《예기(禮記)》에 “주(紂)는 음악을 ‘북쪽 변두리의 음탕한 소리[北鄙靡靡之聲]’로 만들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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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9] 무왕(武王)이 …… 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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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목서(牧誓)〉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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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10] 주(周)나라에 ……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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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사(褒姒)는 주나라 유왕(幽王)의 총희이다. 유왕이 포사에게 혹하여, 여간해서는 웃지 않는 포사를 한번 웃기기 위하여 거짓으로 여산(驪山)에 봉화(烽火)를 올렸다. 사방의 제후(諸侯)들이 참으로 난리가 난 줄 알고 군사를 거느리고 구원하러 왔다가 헛걸음을 하자, 그제서야 포사가 웃었다. 그 뒤에 정작 외적이 침입하였을 적에는 봉화를 올려도 제후들이 믿지 않고 군사를 보내오지 않아 국도(國都)가 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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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11] 위(衛)나라에서 ……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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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시대 위나라 선공(宣公)이 그 아들 급(伋)을 위하여 제(齊)나라 여인 선강(宣姜)을 맞이하였다가, 미색(美色)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는 자신이 차지하고 싶어서 하수(河水) 가에 신대(新臺)라는 누대를 짓고 그를 맞이하여 수(壽)를 낳았다. 선공이 선강의 소생을 후계자로 삼고자 하는 욕심에 당시 태자로 있던 급(伋)을 죽이려고 계략을 꾸몄다. 급에게 백모(白旄)의 부절(符節)을 들고서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한 뒤에, 도적을 국경에 매복시켰다가 부절을 든 사람을 죽이게 한 것이다. 수(壽)가 그런 계획을 사전에 알고는 급에게 가지 말라고 권하였으나, 급이 듣지 않으니, 수가 몰래 부절을 훔쳐 먼저 국경에 도착해서 급 대신에 자신이 죽었다. 그 뒤에 선공이 죽고 어린 혜공(惠公)이 즉위하였는데, 그의 서형(庶兄)인 공자 완(頑)이 적모(嫡母)인 선강과 간통하였으며, 혜공의 뒤를 이은 의공(懿公) 때 나라가 적(狄)에게 망하였다. 《史記 卷37 衛康叔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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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12] 진(晉)나라에서 ……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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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희(驪姬)는 진 헌공(晉獻公)의 총희이다. 진 헌공이 처음에 제강(齊姜)과 간음하여 태자 신생(申生)을 낳고, 융(戎)의 두 여인을 맞아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를 낳고, 다시 여희를 얻어 해제(奚齊)를 낳았다. 여희가 헌공의 총애를 믿고 제 아들을 세우려고 신생을 죽이고 중이와 이오를 추방한 다음, 순식(荀息)을 시켜 해제에게 전위(傳位)하도록 하였다. 해제가 임금 자리에 오르자 대부로 있던 이극(里克)이 해제와 순식 및 여희의 여동생이 낳은 탁자(卓子)를 죽이고서, 진(秦)나라에 있던 이오를 맞이해 와 임금으로 즉위시키니, 이 사람이 혜공(惠公)이다. 혜공이 죽은 뒤에 그의 아들인 어(圉)가 진(秦)나라에 볼모로 가 있던 중 도망쳐 와 임금 자리에 즉위하여 회공(懷公)이 되었다. 이 일로 인해 진(秦)나라에서 화를 내자, 당시 19년 동안이나 국외로 떠돌고 있던 중이(重耳)가 진(秦)나라 군대를 앞세우고 귀국하여 회공을 죽이고 임금 자리에 올라 진나라를 안정시켰다. 이가 바로 춘추오패(春秋五覇) 가운데 하나인 진 문공(晉文公)이다. 《史記 卷39 晉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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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13] 진(陳)나라에서 ……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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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희(夏姬)는 정(鄭)나라 출신의 미인으로, 처음에 진(陳)나라 대부 어숙(御叔)의 아내가 되었으나 행실이 부정하여 진 영공(陳靈公) 및 그의 신하인 공녕(孔寧)ㆍ의행보(儀行父) 등과 간음하였는데, 이들 세 사람이 조정에서 하희와 더불어 술을 마시다가 하희의 아들 징서(徵舒)를 앞에 놓고 심한 농담을 하였다. 이에 징서가 분노하여 영공을 활로 쏘아 죽였다. 초 장왕(楚莊王)이 이를 빌미로 진나라로 쳐들어가 하씨 일족을 죽였다. 그러면서도 초 장왕은 하희의 미모에 혹하여 하희를 맞아들이려 했는데, 대부 무신(巫臣)이 간해서 맞아들이지 못하고는 하희를 연윤(連尹)인 양로(襄老)에게 주었다. 양로가 죽은 뒤에 하희는 정나라로 돌아갔다. 초나라 장왕이 죽은 뒤에 공왕(共王)이 즉위하여 무신을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는데, 무신은 온 가족과 재산을 다 가지고 떠나가, 정(鄭)나라에 이르러 하희를 데리고 진(晉)나라로 도망갔다. 《春秋左氏傳 宣公9年, 成公2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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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14] 설야(洩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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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영공(陳靈公)의 음란한 행동을 간하다가 죽은 진나라의 대부인데, 이에 대해 공자가 “《시경》 〈대아(大雅)〉에 ‘사벽(邪辟)한 사람이 많은 세상에는 자기의 법을 세울 것이 없다.[民之多辟 無自立辟]’라고 한 말이 설야 같은 경우를 두고 한 말이다.”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宣公9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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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15] 제(齊)나라에서 ……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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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강(棠姜)은 춘추 시대 제나라 당공(棠公)의 아내이다. 제나라의 대부인 최저(崔杼)가 당공이 죽어 조문하러 갔을 때, 당강을 보고 혹하여 아내로 삼았다. 제 장공(齊莊公)도 당강의 미모에 혹하여 밀통하였는데, 이를 안 최저가 격노하여 자신의 집으로 장공을 초대하여 주연을 베풀고는, 부하들을 시켜 활을 쏘아 죽였다. 최저는 장공을 시해한 뒤 장공의 이복동생인 공자 저구(杵臼)를 추대해 임금으로 삼았다. 이 사람이 바로 제 경공(齊景公)이다. 《春秋左氏傳 襄公25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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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16] 초(楚)나라에서 ……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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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녀(秦女)는 진(秦)나라 여자이다. 초 평왕(楚平王)이 태자인 건(建)의 아내로 삼기 위하여 진녀를 맞아 왔는데, 간신인 비무기(費無忌)가 평왕에게 진녀를 취하라고 부추기니, 평왕이 취하였다. 비무기는 태자가 즉위한 뒤에 자신을 죽일 것이 두려워서 다시 태자를 참소하였다. 이에 태자태부(太子太傅)로 있던 오사(伍奢)가 평왕에게 간하였으나 평왕은 오히려 노하여 오사와 그의 큰아들 오상(伍尙)을 죽였다. 작은아들인 오원(伍員), 즉 오자서(伍子胥)는 오(吳)나라로 망명하였다. 그로부터 9년 후 오자서가 오왕 합려(闔廬)를 도와 초나라의 도읍 영(郢)으로 쳐들어와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꺼내어 300대나 매질해 원한을 풀었다. 이때 친구인 신포서(申包胥)가 너무 심하게 한다고 꾸짖고는, 진(秦)나라에 가서 군사를 요청하였는데, 진왕이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신포서가 담장에 기대어 서서 음식도 먹지 않고 밤낮으로 7일 동안 통곡을 하자, 진왕이 감격하여 초나라를 구제해 주었다. 《史記 卷66 伍子胥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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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17] 진 문공(晉文公)이 …… 멀리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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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위(南威)는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미녀이다. 진 문공이 남위를 얻고 3일 동안 정사를 게을리하다가 마침내 그를 멀리하면서 “후세에 반드시 여색으로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戰國策 魏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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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18] 은(殷)나라가 …… 있도다〔殷鑑不遠 在夏后之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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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 〈대아(大雅) 탕(蕩)〉에 나온다. 이 시는 은나라의 후손은 의당 하(夏)나라가 멸망하게 된 원인을 거울삼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을 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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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19] 부초(夫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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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越)나라가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패한 곳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애공(哀公) 1년 조에 “오왕 부차가 월을 부초에서 패배시켰다.[吳王夫差 敗越于夫椒]”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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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20] 취리(檇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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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에는 ‘携李’로 되어 있는데, 《춘추좌씨전》 정공(定公) 14년 조에 의거해 바로잡았다. 취리는 월나라가 오나라를 격퇴시켰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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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21] 태화(太華)ㆍ이궐(伊闕)ㆍ양장(羊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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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는 중국의 오악(五岳) 가운데 하나로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화산(華山)을 말한다. 이궐은 옛날 주(周)나라의 관새(關塞)로,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낙양시(洛陽市)에 있다. 양장은 산서성(山西省) 태항산(太行山)에 있는 험난한 고개인 양장판(羊腸坂)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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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22] 옛사람의 ……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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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학이(學而)〉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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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23] 난은 …… 것이다〔亂匪降自天 生自婦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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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 〈대아(大雅) 첨앙(瞻卬)〉에 나온다. 이 시는 주공(周公)의 후손으로 대부(大夫)가 된 범백(凡伯)이 무도한 유왕(幽王)을 풍자한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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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24] 애봉인(艾封人)의 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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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헌공(晉獻公)의 총희인 여희(驪姬)를 가리킨다. 진 헌공이 진 목공(秦穆公)과 함께 여융(驪戎)을 정벌하고서 미녀 한 명과 옥환(玉環) 두 개를 얻었는데, 진 헌공은 미녀를 취하고 진 목공은 옥환을 취하였다. 그 미녀는 바로 여융국의 애(艾) 땅에 봉해진 사람의 딸이었으며, 진(晉)나라로 들어온 뒤에는 헌공의 총애를 독차지해 화를 일으켰다. 《莊子 齊物論》
출처 : 장달수의 한국학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