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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古文學/散文, 小說

麴醇傳

by 柳川 2021. 12. 19.

                                                       麴醇傳

 

 

 

                                                                                                                   林  椿

 

 

麴醇字子厚, 其先隴西人也。九十代祖牟, 佐后稷粒蒸民有功焉。 『詩』所謂『貽我來牟。』 是也。

牟始隱不仕曰, 「吾必耕而後食矣。」 乃居畎畝。上聞其有後, 詔以安車徵之, 下郡縣所在敦遣。命下臣親造其廬, 遂定交杵臼之間, 而和光同塵矣。薰蒸漸漬, 有醞籍之羨。牟乃喜曰: 「成我者朋友也, 豈不信然。」  旣而以淸德聞, 乃表旌其閭焉。從上祀圓丘, 以功封中山侯, 食邑一萬戶, 食實封五千戶, 賜姓爲麴氏。五世孫輔成王, 以社稷爲己任, 致大平旣醉之盛。康王卽位, 漸見疎忌, 使之禁錮, 著於誥令。是以後世無顯著者, 皆藏匿於民間。至魏初, 醇父酎, 知名於世。與尙書郞徐邈, 偏汲引於朝. 每說酎不離口。時有白上者, 「邈與酎私交, 漸長亂階矣。」 上怒召邈詰之, 邈頓首謝曰, 「臣之從酎, 以其有聖人之德, 時復中之耳。」 上乃責之。及晉受禪, 知將亂無仕進意, 與劉伶ㆍ阮籍之徒, 爲竹林遊, 以終其身焉。

 

 

醇 : 진한술 순. 진한 술. 순수하다. 변함이 없다. 자세하다. 순박하다.   漬 : 담글 지. 담그다. 물에 담금. 스미다. 뱀. 물들이다. 옮다. 전염됨.

 

貽我來牟 : 詩經 周頌/思文에 나오는 문구.

思文后稷,克配彼天。                문덕하신 후직, 하늘과 능히 짝하셨도다.

立我烝民,莫匪爾極。                우리 뭇 백성을 먹이심이 그대의 지극하심이 아님이 없도다.

貽我來牟,帝命率育,                우리에게 보리를 주니 상제가 두루 기르도록 명하셨다.

無此疆爾界,陳常于時夏。          지경과 경계를 없애고 이 나라에 떳떳함을 베풀었도다.

 

和光同塵 : 빛을 감추고 티끌 속에 섞여 있다는 뜻으로자기의 뛰어난 지덕(智德) 나타내지 않고 세속을 따름을 이르는 .

      道沖而用之, 或不盈. 淵兮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湛兮似或存, 吾不知誰之子, 象帝王之先. <老子 第4章 無源>

      知者不言, 言者不知.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老子 第56章 玄德) 

 

醞 : 빚을 온. 빚다. 술을 빚음. 조화(調和)하다. 너그럽다온화(溫和). 술밑.

圓丘 :  천자가 하늘에 올리는 제사를 말한다. 전통시대의 우주관은 평평한 땅위에 둥근 반원이 땅 위를 덮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하늘에 지내는 제사를 원구라 하였다.

禁錮 : 가두는 것. 즉 시중에 유포되는 것을 금하는 것이니 금주령을 뜻함.     酎 : 전국술 주.   빚은 진한 . 순주(醇酒). 술을 빚다.

徐邈 : 《魏書》에 “徐邈의 字는 景山이다. 魏에 벼슬하여 尙書郞이 되었다. 당시에 술을 금하였는데 서막이 몰래 마시고 몹시 취하였다.

        趙達이 따져 물으니 서막은 ‘中聖人’이라고 대답하였다. 조달이 이 사실을 아뢰자, 太祖(曹操)는 서막이 성인으로 자처한 것으로

        알고 크게 노하였는데, 鮮于輔가 앞으로 나와 ‘취객은 맑은 술을 성인이라 하고 탁한 술을 현인이라고 하니, 서막이 성인(청주)에

        취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하였다.

        李白의 月下獨酌 2首에 「已聞淸比聖, 復道濁如賢.」라는 文句가 있다. 서막의 고사가 이 구절에 인용되어 쓰인 것. 

 

 

국순은 자가 자후(子厚)이며 그 선조는 농서인이다.  구십대 조상은 모(牟)인데 후직을 도와 많은 백성들을 먹인 공이 있다.  시에 이른바 '우리에게 보리를 주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모는 처음에 은거하고 벼슬을 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나는 반드시 농사를 지은 후에 밥을 먹겠다."

그리고는 들판에서 살았다. 위에서 그에게 후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조서를 내려 안거(安車)를 보내 그를 초빙하고, 군현에 명을 내려 그가 있는 곳에 후하게 예물을 보내게 하였다.  그리고 신하에게 명을 내려 친히 그의 집에 가서 공이와 절구사이에서 교분을 맺고 속세에서 지내게 하였다. 증기로 쪄서 사람들에게 점점 스며들게 하니 사람들의 마음을 너그럽게 하였다.

모가 기뻐하며 말했다. "나를 이루게 하는 자는 벗이라고 하였는데 어찌 그렇지 않은가!"

이윽고 맑은 덕이 알려지자 마을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였다. 모는 황제를 따라 원구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그 공으로 모를 중산후에 봉하고 식읍으로 일만호, 식실봉으로 오천 호를 내리고 성을 국씨(麴氏)로 하사하였다. 

5세손이 성왕(成王)을 보필하여 사직을 자신의 임무로 삼으니 태평성대에 이르러 이윽고 취한 자들이 많아졌다. 

강왕이 즉위하여 점차 그를 멀리하고 싫어하여 그에게 금고형(금주령을 내림)에 처하고 고령(誥令 : 榜)으로 알렸다. 그리하여 그 후손중에 유명한 자가 없었고, 모두 백성들 사이에 숨게 되었다. 위(魏)나라 초에 순의 아비 주(酎)가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그는 상서랑 서막(徐邈)과 친해졌는데 그를 조정으로 끌어들여 항상 말할 때마다 주가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당시 어떤 자가 위에 이뢰었다. "서막은 주와 사사로이 사귀어 점차 어지러움의 단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위에서 노하여 서막을 불러 꾸짖으니 서막은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신이 주를 따른 것은 그에게 성인의 덕이 있기 때문이며, 때때로 그 덕을 마셨을 뿐입니다."

위에서 그를 꾸짖었다. 

진(晉)나라가 일어서자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을 알고 벼슬로 나갈 뜻이 없어 유령(劉伶) · 완적(阮籍)듸 무리와 죽림에서 노닐다가 생을 마쳤다. 

 

 

 

 

醇器度弘深, 汪汪若萬頃陂水. 澄之而不淸, 擾之而不濁。其風味, 傾於一時, 頗以氣加人。嘗詣葉法師, 談論彌日, 一座爲之絶倒, 遂知名, 號爲麴處士。自公卿大夫神仙方士, 至於廝兒, 牧竪夷狄, 外國之人, 飮其香名者, 皆羨慕之。每有盛集, 醇不至, 咸愀然曰, 「無麴處士不樂。」 其爲時所愛重如此。

太尉山濤有鑑識, 嘗見之曰, 「何物老嫗, 生此寧馨兒。 然誤天下蒼生者, 未必非此人也。」

公府辟爲靑州從事。以鬲上非所部, 改調爲平原督郵。久之歎曰, 「吾不爲五斗米折腰, 向鄕里小兒, 當立談樽俎之間耳。」

 

 

汪 : 넓을 왕. 넓다깊고 넓고 . 많다넉넉함흥건함. 못, 웅덩이, 바다.     澄 : 맑을 징. 맑다. 물이 깨끗함. 맑게 하다. 

寧響兒 : ‘이와 같은 아이’ → 감탄사로 쓰이는 말이었는데, 후에는 아이를 칭찬 하는 말로 쓰임.  寧響 : 이와 같은, 그같은.

      진서(晉書)에 나오는 말.  왕연(王衍)이란 자가 있었는데 아름답고 풍채가 단정했다. 그가 젊은 시절에 산도(山濤)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가 떠날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아낙네가 이러한 아이를 낳았단 말인가. 그러나 천하 창생을 그르칠 자가 꼭

      이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는 못하겠다."     

      「何物老媼, 生寧馨兒. 然誤天下蒼生者 未必非此人也.」<晉書 卷43. 王衍傳>

山濤 : 산도(山濤, 205년 ~ 283년)는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와 서진의 문인으로, 자는 巨源, 河內郡 懷縣人.

      竹林七賢중 一人,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읜 후 가난한 생활을 하였다. 위나라 말에 선조랑(選曹朗)을 지냈으며, 이후 이부상서로

      승진하자 자신의 후임으로 같은 죽림칠현 중 한 사람인 혜강(嵆康)을 추천하였으나, 혜강은 산도가 사마씨(司馬氏)를 섬기는 것을

      질책하면서 절교서를 보냈다. 

靑州從事 : 좋은 술을 일컫는 은어.                 平原督郵 : 맛없는  또는 탁주의 은어              嵆 : 산이름 혜. 

 

 

국순은 재능과 도량이 매우 크고 깊어, 만경창파와 같이 넓고 컸으며, 맑게 해도 맑아지지 않고 흔들어도 탁해지지 않았다. 그 풍미는 잠시 기울이면(술잔을 기울이면) 사람에게 자못 기운을 더하여 주었다.  국순이 일찍이 섭법사(葉法師)에게 가서 하루종일 담론하였는데 자리를 함께한 사람들을 모두 쓰러지게 하니 마침내 그 이름이 알려져 그를 국처사(麴處士)라고 불렀다.

공경대부와  신선, 방사(方士 : 道士)로부터 하인, 목동, 이적, 외국사람들까지 국순의 향기로운 평판을 마신 자라면 모두 그를 흠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성대한 모임이 있을 때마다 순이 가지 않으면 모두 정색(正色)하고 말했다.

"국처사가 없으니 즐겁지 않다."

그 당시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 그와 같았다.

태위(太尉) 산도(山濤)가 감별하여 아는 능력이 있었는데 그를 만나보고 말했다."어느 할멈이 이같은 아이를 낳았는가. 그러나 천하 사람들을 그르칠 자는 반드시 이 사람이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공부(公府)에서 그를 불러 청주종사(靑州從事)를 삼았다.  그러나 위(上)가 막히기 때문에 다스리지 못하여 고쳐서 평원독우(平原督郵)로 삼았다.

국순이 한참 지나 탄식했다. "내가 쌀 다섯말을 위해 향리의 어린아이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 마땅히 술통과 도마 사이에 서서 담론할 뿐이다."

 

 

 

 

時有善相者曰, 「君紫氣浮面, 後必貴亨以千鍾矣, 宜待善價而沽之。」 陳後主之時, 以良家子, 拜主客員外郞。上乃器異之, 將有大用意, 因以金甌覆而選之, 擢遷光祿大夫禮賓卿, 進爵爲公。凡君臣會議, 上必使醇斟酌之。其進退酬酢, 從容中於意. 上深納之曰, 「卿所謂直哉惟淸, 啓乃心沃朕心者也。」 醇得用事, 其交賢, 接賓, 養老賜酺, 祀神, 祗祭宗廟, 醇優主之。上嘗夜宴, 唯與宮人得侍, 雖近臣不得預。自是之後, 上以沈酗廢政, 醇乃以箝其口而不能言。故禮法之士, 疾之如讐, 上每保護之。醇又好聚斂營資産, 時論鄙焉。上問曰, 「卿有何癖 ?」 對曰, 「昔杜預有傳癖, 王濟有馬癖, 臣有錢癖。」

上大笑, 注意益深。

 

 

金甌 : 당 현종(唐玄宗)은 재상을 임명할 때마다 반드시 먼저 어필(御筆)로 그 성명을 써서 책상 위에 올려놓는데, 하루는 최림(崔琳) 등의 이름을 손수 써서 금 사발〔金甌〕로 덮어 놓았다가, 이윽고 태자가 들어가자, 현종이 이르기를 “이것이 재상의 이름이다. 네 생각에는 누구일 것 같으냐? 알아맞히면 술을 내리겠노라.” 하므로, 태자가 말하기를 “최림, 노종원(盧從愿)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니, 현종이 그렇다고 말하고, 태자에게 술을 내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성명이 금 사발에 들어가는 것은 재상에 임명되는 것을 뜻한다. <新唐書 卷109 崔義玄列傳>

酺 : 잔치 포. 잔치, 연회. 신령 이름. 재앙을 내리는 신령. 주식을 하사하다. 그 주식.    酗 : 주정할 후.   沈酗 : 술에 녹초가 되다. 

箝 : 재갈먹일 겸. 재갈먹이다. 끼우다. 항쇄(項鎖). .

 

 

 

 

당시 관상을 잘 보는 자가 있었는데 국순에게 말했다. "그대는 얼굴에 자줏빛 기운이 떠 있으니 훗날 반드시 귀해져 천종의 복록을 누리게 될 것이니 마땅히 좋은 가격을 기다렸다가 팔아야 할 것이다."

진(陳)나라 후주(後主) 때, 양가집 아들들에게 주객원외랑(主客員外郞)을 제수하였다. 위에서 그의 도량이 특이한 것을 알고 장차 크게 쓸 뜻으로 (그의 이름 위에) 금으로 된 사발을 덮고는 그를 뽑아 광록대부 예빈경(光祿大夫禮賓卿)으로 발탁하고 나아가 작위(爵位 : 酌位)를 공(公)으로 삼았다.  군신의 회의가 있을 때에는 위에서 반드시 국순으로 하여금 짐작하게 하였다.  그가 나아가고 물러가며 응대하는 것이 조용해 뜻에 맞았다. 

위에서 깊이 받아들이고 말했다. "경이야 말로 바르도다! 오직 맑아 마음을 열어 짐의 마음을 기름지게 하는구나!"

국순이 권세를 얻어 일을 맡게 되자 그는 현자와 교분을 맺고 빈객을 접대하며, 노인을 봉양하며 술과 음식을 내리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종묘에 제사지내는 일을 모두 주관하였다.  위에서 밤에 주연을 열 때마다 항상 오직 궁인들과 더불어 모실 수 있었으며 비록 가까운 신하라 할지라도 참여할 수 없었다. 이로부터 위에서는 주색에 빠져 정사를 폐하니  국순은 입에 재갈을 먹인 듯 하여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예법을 아는 선비들은 그를 원수처럼 미워하였으나 위에서는 항상 그를 보호했다.

국순은 또 돈을 거둬들여 재산 늘리는 것을 좋아하니 당시 여론은 그를 천박하다고 하였다. 

위에서 물었다. "경에게는 무슨 버릇이 있는가?"

국순이 대답했다. "옛날 두예(杜預)는 좌전(左傳)에 몰입하는 버릇이 있었고, 왕제(王濟)는 말을 좋아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저에게는 돈을 좋아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위에서 크게 웃으며 국순에게 마음을 더욱 깊게 쏟았다. 

 

 

 

嘗入秦對于上前, 醇素有口臭。上惡之曰, 「卿年老氣渴, 不堪吾用耶。」 醇遂免冠謝曰, 「臣受爵不讓, 恐有斯亡之患。乞賜臣歸于私第, 則臣知止足之分矣。」 上命左右扶出焉, 旣歸暴病渴一夕而卒。無子, 族弟淸, 後仕唐, 官至內供奉, 子孫復盛於中國焉。

史臣曰, 「麴氏之先, 有功于民. 以淸白遺子孫。若鬯之在周, 馨德格于皇天。可謂有祖風矣。醇以甁之智, 起於甕牖, 早中金甌之選, 立談樽俎, 不能獻可替否, 而迷亂王室, 顚而不扶, 卒取笑於天下。巨源之言, 有足信矣。」

 

 

甕牖 : 옹기로 된 창. 즉 가난한 집.       

獻可替否 : 신하가 임금에게 옳은 일을 권하고 악한 일을 못하게 한다는 뜻으로, 임금을 보좌하는 도리를 이르는 말

 

 

 

일찍이 윗전에 들어가 면전에서 아뢰는데 국순이 평소에 입에서 냄새가 났었다. 

위에서 그것을 싫어해 말했다. "그대는 늙어 기가 고갈되었으니 내가 쓰려 해도 감당치 못하겠구나." 

순이 마침내 관을 벗고 사죄하며 말했다. "제가 벼슬을 받고 물러나지 않으면 몸을 망칠까 두렵습니다. 바라건대 신이 사저로 돌아가도록 은혜를 베푸신다면 신은 다만 분수를 지키는 것으로 족하나이다."

위에서 좌우에 명하여 그를 부축하여 나가게 하였는데 집에 돌아가자 갑자기 병이 들어 하룻밤 사이에 죽었다.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고 집안의 동생인 청(淸)이 후에 당나라 조정에 출사하여 관직이 내공봉(內供奉)에 이르렀으며 자손이 다시 중국에서 번성하였다. 

 

사신(史臣)이 말했다. "국씨의 선조는 백성에게 공이 있었고 청렴결백의 기풍을 자손들에게 남겼다.  울창주가 주나라에 있던 것처럼 향기로운 덕이 하늘에 이르렀으니 조상의 기풍이 있었다고 할만하였다.  국순이 설병(挈甁 : 손에 쥐는 작은 병)의 지혜로 가난한 집에서 일어나 일찍이 금구에 간택되어 술통과 도마사이에 서서 담론하였으면서도 임금에게 옳은 일을 권하고 나쁜 일을 못하게 하는 도리를 하지 못하고 왕실을 미혹에 빠뜨리고 어지럽혀 넘어지는 것도 붙잡지 못해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거원(山濤의 字)의 말이 족히 믿을만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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