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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古文學/破閑集

卷上 11. 碧蘿老人

by 柳川 2019. 5. 4.

碧蘿老人, 嘗以睡居士所畵墨竹小屛贈僕。題白傳詩一句於後云, 

 

管領好風烟,

欺凌凡草木。

 

筆跡尤奇妙, 僕嘗學之, 遇紙素屛幛無不揮灑。 自以謂得其髣髴, 故作詩云,

 

餘波猶及碧琅玕, 

自恐前身文笑笑。 

 

然僕誠不工, 僅得形似耳。 堂兄千林堂頭, 以紙屛求之, 僕伹寫一枝, 橫愕四幅, 而不及葉。有一

畵史見之曰, 「此枝節非庸流所能, 有東山墨戱風骨。」 迴安八九葉於其間, 便有蕭然氣勢。

昔播岳得樂廣之旨, 緝成名筆, 鄭國之令東里猶潤色之。 今視竹也, 亦彫啄之餘盤薄之巧, 相資

而成, 脗然若出於鐪錘之一手, 可謂凝神矣。

有讚之者曰, 「乾坤一氣, 胡越同心, 衆妙之極, 無跡可尋。」

 

 

幛 : 포백 장. 포백(布帛, 베와 비단). 만장(挽章). 가리다. 가리어 덮다.

揮灑 :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다, 소탈하다. 돈을 물 쓰듯 하다. (눈물이나 물 따위를) 뿌리다.

琅 : 옥이름 랑. 옥이름. 푸른 산호, 금석소리. 문고리. 긴 쇠사슬. 방자하다. 맹랑함. 물결.

玕 : 옥돌 간.  琅玕 : 중국에서 나는, 짙은 녹색 또는 청록색의 반투명한 비취(翡翠)를 이르는 말. 장식용으로 많이 쓰인다.

恐 :  아마, 추측건대.  伹 : 둔할 저/다만 단. 둔하다. 옹졸하다. [단]다만, 오직, 그러나, 그렇지만, 기탄없이, 거리낌없이. 다만~ 한다면.

 

播岳 : 潘岳. 옛날 악광(樂廣 : 晋人)은 청담(淸談)은 잘하였지만 문장력이 좋지 못하여 반악(潘岳 : 字 安仁, 문장가)에게 글을 부탁하

        면서 먼저 2백 마디로 자기의 뜻을 써 달라 하였는데 반악은 그의 뜻대로 그것을 정리하여 명문장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당시

        사람들은, "만일 악광이 반악의 문장을 빌지 아니하고, 반악이 악광의 뜻에 의지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이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평했다 한다.

東里 : 子産을 말함. 東里는 정나라 城中의 마을 이름인데 子産이 동리에 살아서 자산의 호가 됨. 

脗 : 맞을 문. 맞다. 꼭 맞음.                          鐪 : 부레그릇 로.  부레그릇. 부레를 끓이는 그릇. 아교그릇. 칼 자루.

錘 : 저울추 추/드리울 수. 저울추. 무게의 단위 12냥쭝. 마치. 달군 쇠붙이를 두드려 물건을 만드는 연장. 드리우다. 현수(懸垂)함.

胡越同心 : 北胡와 南越이 한마음이 된다는 뜻,  北宋 學者 邵康節의 詩. 「胡越同心日, 夫妻反目時。人間無大小, 得失在須斯。」

 

 

 

벽라노인이 일찍이 수거사가 묵죽을 그린 작은 병풍을 나에게 주셨다. 후에 백전의 시 한 구를 적었다.

 

좋은 바람과 안개를 거느리고,

뭇 초목을 업신여기는구나.

 

필적이 매우 기묘하여 내가 한때 배우느라 종이나 흰 병풍을 보면 붓을 휘두르지 않을 때가 없었다. 후에 스스로 비슷하다 하고 시를 지었다.

 

여파가 푸른 낭간(대나무)에 이른 것 같으니,

내 자신 전생이 혹시 문소소인가?

 

그러나 나는 참으로 재주가 없어 모양을 비슷하게 그릴 수 있을 뿐이었다. 사촌형인 천림이 주지스님이었는데 종이병풍에 대나무 한 가지를 그려달라 부탁하여 나는 단 한가지만 그렸는데 가로로 창졸간에 네 폭에 걸쳤으나 잎을 그리지 못하였다. 

어떤 서화가가 보고 말했다. 

"이 가지와 마디는 평범한 부류의 사람이 능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동산이 묵화를 즐기는 풍채와 골격이 있습니다."

이에 그 사이에 8,9잎을 그려넣으니 곧 쓸쓸한 기세가 있게 되었다.  

 

옛날 반악은 악광의 뜻을 얻어 명필이 되었고 정나라의 법령은 동리가 다듬어 빛을 낸 것이다. 지금 대나무 그림을 보니 조탁의 여유와 반박의 기교가 서로 도와 이룬 것이니 장인의 솜씨를 내보인 것과 꼭 맞아 정신을 집중시킨 것이라 할만 하다. 

그것을 찬한 자가 있었는데, 

"하늘과 땅의 기운이 하나가 되고 호나라와 월나라가 한 마음이 되었는데 뭇 오묘함의 극치는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고 하였다.  

 
 

☞  邵康節의  예언

 

소강절(1011~1077)은 중국 宋代의 유학자이자 詩人으로 중국 송대의 유명한 학자였습니다. 소강절은 젊어서 과거에 급제하여 20대에 벌써 상서의 지위에 올랐으며, 문장이 빼어나고, 시(詩)를 잘 지었을 뿐 아니라 주역(周易)에 아주 밝았고, 학문이 높아 전국적으로 이름난 사람 이었다 합니다.

 

그런데, 공부 하느라고 20대 후반에 가서야 겨우 장가를 가게 되었는데, 어느날 결혼 후 신부와 첫날밤을 맞구선 너무 긴장한 탓인지 새벽 일찍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아직 닭은 울지 않고, 밖으로 나갈수도 없고 해서 심심하던 차에  산가치를 뽑아 자신의 점을 치게 되었습니다. 신혼 첫날 비록 하룻밤을 잤지만, 과연 자신의 아이가 잉태했을까 궁금했던 것입니다.

 

점을 친 결과 아들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 이었지만 그러나 아직 닭은 울지 않고, 날이 샐려면 멀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의 평생 운수를 점쳐보게 되었는데 아들은 자기보다는 못해도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살 팔자 였습니다.

그러면, 이 아들이 낳을 내 맏손자는 어떤 운명을 타고 살아 갈까가 궁금 해졌습니다. 그 아이도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이렇게 한대 한대 점쳐 내려 가다가 5대손에 이르렀는데, 5대손은 중년에 이르러 역적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할 수 있는 운명이라는 점괘(占卦)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점을 쳐보는 가운데 어느듯 날은 새고, 그 날 이후로 소강절은 평생 그 일을 고민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합니다. 세월이 흘러 드디어 소강절도 늙어서 임종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아들, 손자, 며느리, 손부 등을 모아 놓고 유언하는 자리에서 맏 며느리에게 비단으로 싼 함(函)을 하나 내어 주면서,

"앞으로 살아가다가 집안에 무슨 큰 일이 생기거든 이 보자기를 풀어 보거라. 만약 너의 대에 큰 일이 생기지 않거든 네 맏 며느리 에게 물려 주고, 그 맏며느리 대에 아무 일이 없으면 또 다음 대의 맏며느리에게 물려주고 하여, 대대로 이 函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유언은 실행되었습니다. 맏 며느리 에게서 다음 맏 며느리에게로 函은 전달되었습니다. 그런데, 5대 손부 에게 와서 정말 큰 일이 일어 나고야 말았습니다. 그 남편이 느닷없이 역적 누명을 덮어쓰고 감옥에 하옥되었던 것입니다. 역적은 滅門之禍(멸문지화)를 입을 것이 뻔하므로 집안이 아예 망해버릴 순간이었습니다. 백방으로 구명할 길을 찾았으나 방법이 없었습니다.

 

밤새 끙끙 앓던 5대 손부는 새벽녘에 갑자기 시어머니의 유언이 생각났습니다. 급히 벽장을 열어 函을 꺼내어 비단 보자기를 풀어보니, 

거기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지금 잠시도 지체하지 말고 이 函을 형조 상서에게 전하라." 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손부는 급히 집사를 불러 의관을 갖추게 한후에 함(函)을 들려 형조 상서를 찾아가서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낙양성 중에서도 형조 상서네 집은 거리가 좀 먼 곳에 있었지만 집사는 달리다시피 하여 그 집에 당도했습니다. 형조 상서는 마침 아침을 먹고 의관을 차려 입고 입궐을 준비하던 참이었는데 하인이 와서 아뢰기를,

"소강절 선생의 유품을 가지고 와서 나으리를 뵙고자 청하는 사람이 왔습니다." 라고 하는게 아닌가.

 

형조 상서는 그 말을 듣고 비록 100여년 전에 작고했지만 워낙이 명망이 높은 대 정치가요 문장가이자, 큰 학자요 대 시인이고, 특히 동서고금을 통털어 주역(周易)에 완전 달통하여 천지가  돌아가는 운수와 사람의 길흉화복은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한 손바닥에 꿰고 있던 분의 선물을 방안에 앉아서 받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당까지 나아가 돗자리를 깔게 하고 한 쪽 무릎을 꿇고서, 그 유품을 받았습니다. 유품을 받는 순간, 자기가 방금 앉아 있던 사랑채가 통채로 폭삭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형조 상서는 급히 函을 열어 보았습니다. 函 속에는 아무 것도 없고 글자 열자가 씌어진 하얀 창호지 한장만 뎅그러니 들어 있었습니다. 상서는 재빨리 펼쳐 보았습니다.

그 창호지에 적힌 글은 놀랍게도 「活汝壓樑死, 救我五代孫。」이라 적혀 있었습니다. 즉, 당신이 대들보에 깔려 죽을 것을 살려주었으니,

당신은 즉시 나의 5대손을 구해 줘라 는 뜻 입니다.

 

형조 상서는 즉시 지시에 따라 재수사를 하여 5대 손의  무죄함이 밝혀졌으니, 이 얼마나 묘하고 묘한 일인가? 소강절은 평생 동안 자기 자손을 구하기 위해 5대 손자 대에 살아갈 모든 사람들의 점괘를 뽑아 보고 대들보에 깔려 죽을 형조 상서의 운수를 알아 냈던 셈입니다.

하늘과 땅이 함께 놀랄 일이 이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소강절 이야기는 이미 세상에 많이 알려진 이야기 입니다만, 몇번을 읽어도 도저히 믿기지 않을 소설 같은 소강절의 예지력에 절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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