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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古文學/朴趾源

許生傳Ⅳ

by 柳川 2019. 6. 1.

                                     許生傳 Ⅳ

 

卞氏本與李政丞浣善。李公時爲御營大將, 嘗與言委巷閭閻之中, 亦有奇才可與共大事者乎,卞氏爲言許生, 

李公大驚曰, "奇哉! 眞有是否, 其名云何?" 

卞氏曰, "小人與居三年, 竟不識其名。" 

李公曰, "此異人。與君俱往。" 

夜公屛徒, 獨與卞氏俱步至許生。卞氏止公立門外, 獨先入 見許生, 具道李公所以來者, 許生若不聞

曰, "輒解君所佩壺。" 

相與歡飮。卞氏閔公久露立數言之, 許生不應。

旣夜深, 許生曰, "可召客。" 

李公入, 許生安坐不起。李公無所措躬, 乃叙述國家所以求賢之意。 

許生揮手曰, "夜短語長, 聽之太遲, 汝今何官?" 

曰, "大將。" 

許生曰, "然則汝乃國之信臣。 我當薦臥龍先生, 汝能請于朝三顧草廬乎?" 

公低頭良久曰, "難矣, 願得其次。" 

許生曰, "我未學第二義。" 

固問之, 許生曰, "明將士以朝鮮有舊恩, 其子孫多脫身東來, 流離惸鰥。汝能請于朝, 出宗室女遍嫁之, 奪

勳戚權貴, 家以處之乎?" 

公低頭良久曰, "難矣。" 

許生曰, "此亦難彼亦難, 何事可能? 有最易者, 汝能之乎?" 

李公曰, "願聞之。" 

許生曰, "夫欲聲大義於天下, 而不先交結天下之豪傑者, 未之有也。欲伐人之國, 而不先用諜, 未有能成

也。 今滿洲遽主天下, 自以不親於中國。 而朝鮮率先他國而服, 彼所信也。誠能請遣子弟入學遊宦, 

如唐元故事, 商賈出入禁, 彼必喜其見親而許之。 妙選國中之子弟,  薙髮胡服, 其君子往赴賓擧, 其小

人遠商江南, 覘其虛實,  結其豪傑, 天下可圖而國恥可雪。 若求朱氏而不得, 率天下諸侯,  薦人於天, 進

可爲大國師, 退不失伯舅之國矣。" 

李公憮然曰, "士大夫皆謹守禮法, 誰肯薙髮胡服乎?" 

許生大叱曰, "所謂士大夫, 是何等也。産於彛貊之地, 自稱曰士大夫, 豈非騃乎? 衣袴純素, 是有喪之服, 

會撮如錐, 是南蠻之椎結也, 何謂禮法? 樊於期欲報私怨而不惜其頭, 武靈王 欲强其國而不恥胡服。乃今

欲爲大明復讎, 而猶惜其一髮。乃今將馳馬擊釖刺鎗弓飛石, 而不變其廣袖, 自以爲禮法乎。吾始三言, 

汝無一可得而能者, 自謂信臣, 信臣固如是乎? 是可斬也!" 

左右顧索釖欲刺之。 公大驚而起, 躍出後牖疾走歸。 明日復往, 已空室而去矣。 

 

 : 근심할 경, 독신지 경. 근심하다. 근심하는 모양. 독신자. 외로운 몸. 형제가 없는 사람.

鰥 : 환어 환, 홀아버지 환, 곤이 곤. 환어(전설상의 큰 물고기), 홀아비, 근심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양, 앓다. 병들다. 

遽 : 급히 거. 급히, 분주히, 갑자기, 어찌, 역말, 곳, 거처, 군색하다. 절박하다. 갑작스럽다. 황급하다. 재빠르다. 두려워하다.

薙 : 목련 치, 깎을 체. 깎다. 머리깎다. 풀 깎다. 覘 : 엿볼 첨, 엿볼 점. 엿보다, 몰래보다. 살펴보다. 관찰하다.

憮 : 어루만질 무, 아리따울 후, 클 호. 어루만지다. 애무하다. 멍하다. 놀라다. 커지다. 멍한 모양, 실의한 모양,

      아리땁다(후),예쁘다. 크다(호) 거칠다. 오만하다.뽐내다. 업신여기다.

彛 : 떳떳할 이. 떳떳하다. 변하지 아니하다. 평탄하다. 常道, 술그릇, 제기(祭器)이름

騃 : 어리석을 애, 달릴 사. 어리석다. (말이)달리다. (말이)나가다. (짐승이)가는모양    袴 ; 바지 고, 사타구니 과

撮 : 모을 촬, 찍을 촬.       모으다. 취합하다. (사진을) 찌다. 빼내다. 골라내다. 취하다. 수레이름(찬), 상투(최) 

      거머쥐다(채), (손에) 넣다(채)

椎 : 쇠뭉치 추, 등골 추. 쇠뭉치, 등공, 등뼈, 모밀잣밤나무, 순박하다. 어리석다. 치다.

 

 

변씨는 본래 이정승 완과 친했다. 이공은 그때 어영대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일찌기 대화중에 서민이나 일반 백성들이 많이 사는 마을에 대사를 더불어 함께할만한 기인이 있는가를 물은적이 있었는데  변씨는 허생이야기를 하였다. 

이공이 크게 놀라,

"기이하도다. 그것이 진실인가? 그 이름이 무엇이라 하는가?" 하고 물었다.

변씨가 대답하였다.

"소인이 3년을 더불어 지내왔지만 결국 그 이름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공이,

"이 사람은 이인이네. 그대와 같이 가 보리라."하고는 밤이 되자  주위를 모두 물리치고 홀로 변씨와 함께 걸어서 허생의 집에 이르렀다. 변씨는 멈춰 공을 문밖에 세워두고 홀로 먼저 들어가 허생을 만나 이공과 함께 온 까닭을 세세히 말하였는데, 허생은 못들은 척하며 말했다.

"그대가 차고온 술병이나 풀어 주시오." 하고는 서로 권하며 즐겁게 술을 마셨다. 

변씨가 민망하여 이공이 이슬을 맞으며 오랫동안 서있다고 수차 말했으나 허생은 응하지 않다가 밤이 깊어진 후에야,

"손님을 불러와도 좋소."하여 이공이 들어왔다.

허생은 편안히 앉아 일어나지도 않으니 이공은 몸둘바를 몰라 하다가 나라에서 현명한 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허생은 손을 휘저으며,

"밤은 짧고 말이 기니 듣기에 매우 지루하구나. 너는 지금 무슨 벼슬을 하고 있는가?"

"대장입니다."이르니,

허생은,"그렇다면 너는 나라에서 신임하는 신하이구나. 내가 지금 와룡선생을 천거할터인데 너는조정에 청하여 삼고초려를 할 수 있겠느냐?"하고 물으니,

이공은 머리를 숙이고 한참 있다가,"어렵습니다. 그 다음계책을 듣고자 합니다."대답하니, 

허생은, "나는 두번째는 배우지 않았다."하고 외면하였으나 거듭 청하자,

"명나라 장수와 선비들이 조선에 옛날 도운 은혜가 있어 그 자손들이 많이 몸을 빼어 동쪽으로 왔는데, 외롭고 쓸쓸하게 방황하고 있다. 너는 조정에 청하여 종실의 딸을 두루 뽑아그들에게 시집을 보내고 공훈이 있는 집안이나 권세있는 가문의 집을 빼앗아 그들이 살도록 할 수 있겠느냐?"하니,

공이 머리를 숙이고 한참 있다가,"어렵습니다."하였다.

허생이,"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하니 어떤일이 가능하냐?매우 쉬운 일이 있는데 네가 할 수있겠느냐?"하고 물었다.이공이,"듣고자 합니다."하여 허생이 말했다.

"대저 천하에 대의를 외치고자 하면 먼저 천하의 호걸들과 교분을 맺지 않고는 있을 수 없고,남의 나라를 정벌하려면 먼저 간첩을 쓰지 않고는 이룰 수가 없는데 지금 만주가 갑자기 천하의 주인이 되자 이로부터 중국과 친하지 못한 터이다. 그러나 조선이 솔선하여 다른 나라에 앞서 복종하여 저들이 믿고 있는 바이다. 당나라와 원나라때와 같이 우리의 자제들이 들어가유학하고 벼슬을 할수 있고, 상인들의 출입을 금하지 말것을 청할수 있다면 저들은 반드시친근함을 보이는 것에 기뻐하고 허락할 것이다. 나라안의 뛰어난 자들을 선발하여 머리를 깎고 호복을 입혀 선비는 가서 빈공과를 응시하게 하고 소인은 멀리 강남으로 장사를 나가그 허실을 엿보고 호걸들과 교분을 맺게 되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어 나라의 치욕을 설욕할 수 있을 것이다.만약에 주씨(명나라의 황족)를 구하였으나 구하지 못하더라도  천하의 제후를 통솔하게 되어재를 하늘에 추천하면 나아가 대국의 스승이 될 수있고, 물러서더라도 백구지국의 지위는 지 않을 것이다."

이공이 멍한 모습으로 말하였다.

"사대부는 모두 예법을 지키려 하는데 누가 머리를 깎고 호복을 입으려 하겠습니까?"

허생이 크게 질책하며 말했다.

"이른바 사대부라 하는 이것들이 무엇이냐. 이맥의 땅에서 태어나 스스로 사대부라 칭하니 어찌 어리석지 않은가. 의복은 모두 흰 색이니 이것은 상을 당했을 때 입는 옷이며 뾰족하게 상투를 트는데 이것은 남만의 머리모습이라 할것인데 어찌 예법을 말하는가. 번어기는 사사로이 원수를 갚으려고 머리를 아끼지 않았으며, 무령왕은 그 나라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호복입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지 않았다. 지금 명나라를 위해 복수를 한다면서 오히려 그 머리카락 하나를 아낀단 말이냐. 지금 말을 달리며 칼을 휘두르고  창과 활로과녁을 뚫면서 돌을 날려야 함에도 넓은 소매는 변함이 없으면서 스스로 예법을 말하는 것인가.내가 처음에 세가지를 말하였음에도 너는 하나도 할 수 없다면서 유능하여 스스로 신임받는신하라 하느냐. 신임을 받는 신하가 참으로 이와 같단 말이냐.이런 자는 참하는 것이 옳다."하고는  좌우를 둘러보며 칼을 찾아 치려 하니  공이 크게 놀라 일어나 뒷창을  뛰어 넘어도주하여 돌아갔다.  

 

다음 날 다시 갔더니 이미 집을 비우고 떠났었다.

 

☞ 樊於期(번어기)

중국 전국 시대 연나라의 무장.  원래 진(秦)나라에 있었는데 성품이 곧고 강직하였다. 당시 진왕(후의 진시황제)의 폭정이 심해지자 「진왕 영정은 진나라 왕의 씨가 아니고 여불위의 사생아이다.」라고 공표하고 영정의 동생 장안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가 부하의 밀고로 가족들이 모두 몰살당하고 사형수였던 번어기는 호송중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 연나라로 도망쳤다. 

당시 연나라 태자 丹이 진나라에 볼모로 가 있던중 진왕으로부터 냉대를 받고 진나라를 탈출하여 진왕에 자객을 보내 보복하려고 하였는데 전광은 형가를 추천하고 비밀을 지키기 위하여 자결하였다.

형가는 진왕에게 접근을 할 방법을 모색하던 중, 번어기를 찾아가 그 계획을 말하고 상의하니 번어기는 스스로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목을 내어주었다.

 

☞ 武靈

전국시대 말기 趙의 군주, 당시 조나라는 晋이 나뉘어진 세 나라 중 하나로 가장 북쪽에 위치하여 동쪽의 燕, 서쪽의 秦과 함께 西戎, 北狄 등의 기마민족들에게 위협당하고 있었다. 무령왕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대책에 부심하던 중 대담한 개혁을 하기로 하고 추진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기마술의 도입이었다. 그러나 그를 위해서는 그때까지의 옷자락이 길고 폭이 넓은 의상에서 서융이나 북적과 마찬가지로 짧은 웃옷에 바지를 입어야만 한다. 원래 중화인과 서융ㆍ북적, 혹은 東夷ㆍ南蠻을 구별하는 것은 문화이며, 긴 머리칼을 묶고 넉넉하고 긴 옷을 두르는 풍습이었으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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