蘇秦列傳
蘇秦者, 東周雒陽人也. 東事師於斉, 而習之於鬼谷先生.
出遊數歳, 大困而帰. 兄弟嫂妹妻妾竊皆笑之, 曰:「周人之俗, 治産業, 力工商, 逐什二以為務. 今子釈本而事口舌, 困, 不亦宜乎!」蘇秦聞之而慚, 自傷, 乃閉室不出, 出其書遍観之. 曰:「夫士業已屈首受書, 而不能以取尊栄, 雖多亦奚以為!」於是得周書陰符, 伏而読之. 期年, 以出揣摩, 曰:「此可以説當世之君矣.」求説周顕王. 顕王左右素習知蘇秦, 皆少之. 弗信.
乃西至秦. 秦孝公卒. 説恵王曰:「秦四塞之國, 被山帯渭, 東有関河, 西有漢中, 南有巴蜀, 北有代馬, 此天府也. 以秦士民之衆, 兵法之教, 可以呑天下, 稱帝而治.」秦王曰:「毛羽未成, 不可以高蜚;文理未明, 不可以並兼.」方誅商鞅, 疾辯士, 弗用.
乃東之趙. 趙粛侯令其弟成為相, 號奉陽君. 奉陽君弗説之.
去遊燕, 歳餘而後得見. 説燕文侯曰:「燕東有朝鮮、遼東, 北有林胡、樓煩, 西有雲中、九原, 南有嘑沱、易水, 地方二千餘里, 帯甲數十萬, 車六百乗, 騎六千匹, 粟支數年. 南有碣石、鴈門之饒, 北有棗栗之利, 民雖不佃作而足於棗栗矣. 此所謂天府者也.
夫安樂無事, 不見覆軍殺將, 無過燕者. 大王知其所以然乎? 夫燕之所以不犯冦被甲兵者, 以趙之為蔽其南也. 秦趙五戦, 秦再勝而趙三勝. 秦趙相斃, 而王以全燕制其後, 此燕之所以不犯冦也. 且夫秦之攻燕也, 踰雲中、九原, 過代、上谷, 彌地數千里, 雖得燕城, 秦計固不能守也. 秦之不能害燕亦明矣. 今趙之攻燕也, 発號出令, 不至十日而數十萬之軍軍於東垣矣. 渡嘑沱, 渉易水, 不至四五日而距國都矣. 故曰秦之攻燕也, 戦於千里之外;趙之攻燕也, 戦於百里之內. 夫不憂百里之患而重千里之外, 計無過於此者. 是故願大王與趙従親, 天下為一, 則燕國必無患矣.」
文侯曰:「子言則可, 然吾國小, 西迫彊趙, 南近斉, 斉、趙彊國也. 子必欲合従以安燕, 寡人請以國従.」
於是資蘇秦車馬金帛以至趙. 而奉陽君已死, 即因説趙粛侯曰:「天下卿相人臣及布衣之士, 皆高賢君之行義, 皆願奉教陳忠於前之日久矣. 雖然, 奉陽君妒而君不任事, 是以賓客遊士莫敢自盡於前者. 今奉陽君捐館舎, 君乃今複與士民相親也, 臣故敢進其愚慮.
竊為君計者, 莫若安民無事, 且無庸有事於民也. 安民之本, 在於択交, 択交而得則民安, 択交而不得則民終身不安. 請言外患:斉秦為両敵而民不得安, 倚秦攻斉而民不得安, 倚斉攻秦而民不得安. 故夫謀人之主, 伐人之國, 常苦出辭斷絶人之交也. 願君慎勿出於口. 請別白黒所以異, 陰陽而已矣. 君誠能聴臣, 燕必致旃裘狗馬之地, 斉必致魚塩之海, 楚必致橘柚之園, 韓、魏、中山皆可使致湯沐之奉, 而貴戚父兄皆可以受封侯. 夫割地包利, 五伯之所以覆軍禽將而求也;封侯貴戚, 湯武之所以放弑而爭也. 今君高拱而両有之, 此臣之所以為君願也.
今大王與秦, 則秦必弱韓、魏;與斉, 則斉必弱楚、魏. 魏弱則割河外, 韓弱則效宜陽, 宜陽效則上郡絶, 河外割則道不通, 楚弱則無援. 此三策者, 不可不孰計也.
夫秦下軹道, 則南陽危;劫韓包周, 則趙氏自操兵;拠衛取巻, 則斉必入朝秦. 秦欲已得乎山東, 則必挙兵而嚮趙矣. 秦甲渡河踰漳, 拠番吾, 則兵必戦於邯鄲之下矣. 此臣之所為君患也.
當今之時, 山東之建國莫彊於趙. 趙地方二千餘里, 帯甲數十萬, 車千乗, 騎萬匹, 粟支數年. 西有常山, 南有河漳, 東有清河, 北有燕國. 燕固弱國, 不足畏也. 秦之所害於天下者莫如趙, 然而秦不敢挙兵伐趙者, 何也? 畏韓、魏之議其後也. 然則韓、魏, 趙之南蔽也. 秦之攻韓、魏也, 無有名山大川之限, 稍蠶食之, 傅國都而止. 韓、魏不能支秦, 必入臣於秦. 秦無韓、魏之規, 則禍必中於趙矣. 此臣之所為君患也.
臣聞尭無三夫之分, 舜無咫尺之地, 以有天下;禹無百人之聚, 以王諸侯;湯武之士不過三千, 車不過三百乗, 卒不過三萬, 立為天子:誠得其道也. 是故明主外料其敵之彊弱, 內度其士卒賢不肖, 不待両軍相當而勝敗存亡之機固已形於胸中矣, 豈揜於衆人之言而以冥冥決事哉!
臣竊以天下之地図案之, 諸侯之地五倍於秦, 料度諸侯之卒十倍於秦, 六國為一, 並力西郷而攻秦, 秦必破矣. 今西面而事之, 見臣於秦. 夫破人之與破於人也, 臣人之與臣於人也, 豈可同日而論哉!
夫衡人者, 皆欲割諸侯之地以予秦. 秦成, 則高台榭, 美宮室, 聴竽瑟之音, 前有樓闕軒轅,後有長姣美人, 國被秦患而不與其憂. 是故夫衡人日夜務以秦権恐愒諸侯以求割地, 故願大王孰計之也.
臣聞明主絶疑去讒, 屏流言之跡, 塞朋黨之門, 故尊主広地彊兵之計臣得陳忠於前矣. 故竊為大王計, 莫如一韓、魏、斉、楚、燕、趙以従親, 以畔秦. 令天下之將相會於洹水之上, 通質, 刳白馬而盟. 要約曰:『秦攻楚, 斉、魏各出鋭師以佐之, 韓絶其糧道, 趙渉河漳, 燕守常山之北. 秦攻韓魏, 則楚絶其後, 斉出鋭師而佐之, 趙渉河漳, 燕守雲中. 秦攻斉, 則楚絶其後, 韓守城皐, 魏塞其道, 趙渉河漳、博関, 燕出鋭師以佐之. 秦攻燕, 則趙守常山, 楚軍武関, 斉渉勃海, 韓、魏皆出鋭師以佐之. 秦攻趙, 則韓軍宜陽, 楚軍武関, 魏軍河外, 斉渉清河, 燕出鋭師以佐之. 諸侯有不如約者, 以五國之兵共伐之.』六國従親以賓秦, 則秦甲必不敢出於函谷以害山東矣. 如此, 則霸王之業成矣.」
趙王曰:「寡人年少, 立國日淺, 未嘗得聞社稷之長計也. 今上客有意存天下, 安諸侯寡人敬以國従.」乃飾車百乗, 黃金千溢, 白璧百雙, 錦繍千純, 以約諸侯.
是時周天子致文武之胙於秦恵王. 恵王使犀首攻魏, 禽將竜賈, 取魏之雕陰, 且欲東兵. 蘇秦恐秦兵之至趙也, 乃激怒張儀, 入之於秦.
於是説韓宣王曰:「韓北有鞏、成皐之固, 西有宜陽、商阪之塞, 東有宛、穣、洧水, 南有陘山, 地方九百餘里, 帯甲數十萬, 天下之彊弓勁弩皆従韓出. 谿子、少府時力、距來者, 皆射六百歩之外. 韓卒超足而射, 百発不暇止, 遠者括蔽洞胸, 近者鏑弇心. 韓卒之剣戟皆出於冥山、棠谿、墨陽、合賻、鄧師、宛馮、竜淵、太阿,皆陸斷牛馬, 水截鵠鴈, 當敵則斬堅甲鉄幕, 革抉■芮, 無不畢具. 以韓卒之勇, 被堅甲, 蹠勁弩, 帯利剣, 一人當百, 不足言也. 夫以韓之勁與大王之賢, 乃西面事秦, 交臂而服, 羞社稷而為天下笑, 無大於此者矣. 是故願大王孰計之.
大王事秦, 秦必求宜陽、成皐. 今茲效之, 明年又複求割地. 與則無地以給之, 不與則棄前功而受後禍. 且大王之地有盡而秦之求無已, 以有盡之地而逆無已之求, 此所謂市怨結禍者也, 不戦而地已削矣. 臣聞鄙諺曰:『寧為雞口, 無為牛後.』今西面交臂而臣事秦, 何異於牛後乎? 夫以大王之賢, 挾彊韓之兵, 而有牛後之名, 臣竊為大王羞之.」
於是韓王勃然作色, 攘臂瞋目, 按剣仰天太息曰;「寡人雖不肖, 必不能事秦. 今主君詔以趙王之教, 敬奉社稷以従.」
又説魏襄王曰:「大王之地, 南有鴻溝、陳、汝南、許、郾、昆陽、召陵、舞陽、新都、新郪, 東有淮、潁、煮棗、無胥, 西有長城之界, 北有河外、巻、衍、酸棗, 地方千里. 地名雖小, 然而田舎廬廡之數, 曾無所芻牧. 人民之衆, 車馬之多, 日夜行不絶, 輷輷殷殷, 若有三軍之衆. 臣竊量大王之國不下楚. 然衡人怵王交彊虎狼之秦以侵天下, 卒有秦患, 不顧其禍. 夫挾彊秦之勢以內劫其主, 罪無過此者. 魏, 天下之彊國也;王, 天下之賢王也. 今乃有意西面而事秦, 稱東藩, 築帝宮, 受冠帯, 祠春秋, 臣竊為大王恥之.
臣聞越王句踐戦敝卒三千人, 禽夫差於幹遂;武王卒三千人, 革車三百乗, 制紂於牧野:豈其士卒衆哉, 誠能奮其威也. 今竊聞大王之卒, 武士二十萬, 蒼頭二十萬, 奮撃二十萬, 廝徒十萬, 車六百乗, 騎五千匹. 此其過越王句踐、武王遠矣, 今乃聴於群臣之説而欲臣事秦. 夫事秦必割地以效実, 故兵未用而國已虧矣. 凡群臣之言事秦者, 皆姦人, 非忠臣也. 夫為人臣, 割其主之地以求外交, 偸取一時之功而不顧其後, 破公家而成私門, 外挾彊秦之勢以內劫其主, 以求割地, 願大王孰察之.
周書曰:『綿綿不絶, 蔓蔓柰何? 豪氂不伐, 將用斧柯.』前慮不定, 後有大患, 將柰之何? 大王誠能聴臣, 六國従親, 専心並力壱意, 則必無彊秦之患. 故敝邑趙王使臣效愚計, 奉明約, 在大王之詔詔之.」
魏王曰:「寡人不肖, 未嘗得聞明教. 今主君以趙王之詔詔之, 敬以國従.」
因東説斉宣王曰:「斉南有泰山, 東有琅邪, 西有清河, 北有勃海, 北所謂四塞之國也. 斉地方二千餘里, 帯甲數十萬, 粟如丘山. 三軍之良, 五家之兵, 進如鋒矢, 戦如雷霆, 解如風雨. 即有軍役, 未嘗倍泰山, 絶清河, 渉勃海也. 臨菑之中七萬戸, 臣竊度之, 不下戸三男子, 三七二十一萬, 不待発於遠県, 而臨菑之卒固已二十一萬矣. 臨菑甚富而実, 其民無不吹竽鼓瑟, 弾琴撃築, 鬥雞走狗, 六博蹋鞠者. 臨菑之塗, 車轂撃, 人肩摩, 連衽成帷, 挙袂成幕, 揮汗成雨, 家殷人足, 志高気揚. 夫以大王之賢與斉之彊, 天下莫能當. 今乃西面而事秦, 臣竊為大王羞之.
且夫韓、魏之所以重畏秦者, 為與秦接境壌界也. 兵出而相當, 不出十日而戦勝存亡之機決矣. 韓、魏戦而勝秦, 則兵半折, 四境不守;戦而不勝, 則國已危亡隨其後. 是故韓、魏之所以重與秦戦, 而軽為之臣也. 今秦之攻斉則不然. 倍韓、魏之地, 過衛陽晉之道, 徑乎亢父之険, 車不得方軌, 騎不得比行, 百人守険, 千人不敢過也. 秦雖欲深入, 則狼顧, 恐韓、魏之議其後也. 是故恫疑虛猲, 驕矜而不敢進, 則秦之不能害斉亦明矣.
夫不深料秦之無柰斉何, 而欲西面而事之, 是群臣之計過也. 今無臣事秦之名而有彊國之実, 臣是故願大王少留意計之.」
斉王曰:「寡人不敏, 僻遠守海, 窮道東境之國也, 未嘗得聞餘教. 今足下以趙王詔詔之, 敬以國従.」
乃西南説楚威王曰:「楚, 天下之彊國也;王, 天下之賢王也. 西有黔中、巫郡, 東有夏州、海陽, 南有洞庭、蒼梧, 北有陘塞、郇陽, 地方五千餘里, 帯甲百萬, 車千乗, 騎萬匹, 粟支十年. 此霸王之資也. 夫以楚之彊與王之賢, 天下莫能當也. 今乃欲西面而事秦, 則諸侯莫不西面而朝於章台之下矣.
秦之所害莫如楚, 楚彊則秦弱, 秦彊則楚弱, 其勢不両立. 故為大王計, 莫如従親以孤秦. 大王不従[親], 秦必起両軍, 一軍出武関, 一軍下黔中, 則鄢郢動矣.臣聞治之其未亂也, 為之其未有也. 患至而後憂之, 則無及已. 故願大王蚤孰計之.
大王誠能聴臣, 臣請令山東之國奉四時之獻, 以承大王之明詔, 委社稷, 奉宗廟, 練士厲兵, 在大王之所用之. 大王誠能用臣之愚計, 則韓、魏、斉、燕、趙、衛之妙音美人必充後宮, 燕、代橐駝良馬必実外廄. 故従合則楚王, 衡成則秦帝. 今釈霸王之業, 而有事人之名, 臣竊為大王不取也.
夫秦, 虎狼之國也, 有呑天下之心. 秦, 天下之仇讎也. 衡人皆欲割諸侯之地以事秦, 此所謂養仇而奉讎者也. 夫為人臣, 割其主之地以外交彊虎狼之秦, 以侵天下, 卒有秦患, 不顧其禍. 夫外挾彊秦之威以內劫其主, 以求割地, 大逆不忠, 無過此者. 故従親則諸侯割地以事楚, 衡合則楚割地以事秦, 此両策者相去遠矣, 二者大王何居焉? 故敝邑趙王使臣效愚計, 奉明約, 在大王詔之.」
楚王曰:「寡人之國西與秦接境, 秦有挙巴蜀並漢中之心. 秦, 虎狼之國, 不可親也. 而韓、魏迫於秦患, 不可與深謀, 與深謀恐反人以入於秦, 故謀未発而國已危矣. 寡人自料以楚當秦, 不見勝也;內與群臣謀, 不足恃也. 寡人臥不安席, 食不甘味, 心揺揺然如県旌而無所終薄. 今主君欲一天下, 収諸侯, 存危國, 寡人謹奉社稷以従.」
於是六國従合而並力焉. 蘇秦為従約長, 並相六國.
北報趙王, 乃行過雒陽, 車騎輜重, 諸侯各発使送之甚衆, 疑於王者. 周顕王聞之恐懼, 除道, 使人郊勞. 蘇秦之昆弟妻嫂側目不敢仰視, 俯伏侍取食. 蘇秦笑謂其嫂曰:「何前倨而後恭也?」嫂委蛇蒲服, 以面掩地而謝曰:「見季子位高金多也.」蘇秦喟然歎曰:「此一人之身, 富貴則親戚畏懼之, 貧賎則軽易之, 況衆人乎! 且使我有雒陽負郭田二頃, 吾豈能佩六國相印乎!」於是散千金以賜宗族朋友. 初, 蘇秦之燕, 貸人百銭為資, 乃得富貴, 以百金償之. 遍報諸所嘗見徳者. 其従者有一人獨未得報, 乃前自言. 蘇秦曰:「我非忘子. 子之與我至燕, 再三欲去我易水之上, 方是時, 我困, 故望子深, 是以後子子今亦得矣.」
蘇秦既約六國従親, 帰趙, 趙粛侯封為武安君, 乃投従約書於秦. 秦兵不敢闚函谷関十五年.
其後秦使犀首欺斉、魏, 與共伐趙, 欲敗従約. 斉、魏伐趙, 趙王譲蘇秦. 蘇秦恐, 請使燕, 必報斉. 蘇秦去趙而従約皆解.
秦恵王以其女為燕太子婦. 是歳, 文侯卒, 太子立, 是為燕易王. 易王初立, 斉宣王因燕喪伐燕, 取十城. 易王謂蘇秦曰:「往日先生至燕, 而先王資先生見趙, 遂約六國従. 今斉先伐趙, 次至燕, 以先生之故為天下笑, 先生能為燕得侵地乎?」蘇秦大慚, 曰:「請為王取之.」
蘇秦見斉王, 再拝, 俯而慶, 仰而弔. 斉王曰:「是何慶弔相隨之速也?」蘇秦曰:「臣聞飢人所以飢而不食烏喙者, 為其愈充腹而與餓死同患也. 今燕雖弱小, 即秦王之少婿也. 大王利其十城而長與彊秦為仇. 今使弱燕為鴈行而彊秦敝其後, 以招天下之精兵, 是食烏喙之類也.」斉王愀然変色曰:「然則柰何?」蘇秦曰:「臣聞古之善制事者, 転禍為福, 因敗為功. 大王誠能聴臣計, 即帰燕之十城. 燕無故而得十城, 必喜;秦王知以己之故而帰燕之十城, 亦必喜. 此所謂棄仇讎而得石交者也. 夫燕、秦倶事斉, 則大王號令天下, 莫敢不聴. 是王以虛辭附秦, 以十城取天下. 此霸王之業也.」王曰:「善.」於是乃帰燕之十城.
人有毀蘇秦者曰:「左右売國反覆之臣也, 將作亂.」蘇秦恐得罪帰, 而燕王不複官也. 蘇秦見燕王曰:「臣, 東周之鄙人也, 無有分寸之功, 而王親拝之於廟而禮之於廷. 今臣為王卻斉之兵而(攻)得十城, 宜以益親. 今來而王不官臣者, 人必有以不信傷臣於王者. 臣之不信, 王之福也. 臣聞忠信者, 所以自為也;進取者, 所以為人也. 且臣之説斉王, 曾非欺之也. 臣棄老母於東周, 固去自為而行進取也. 今有孝如曾參, 廉如伯夷, 信如尾生. 得此三人者以事大王, 何若?」王曰:「足矣.」蘇秦曰:「孝如曾參, 義不離其親一宿於外, 王又安能使之歩行千里而事弱燕之危王哉? 廉如伯夷, 義不為孤竹君之嗣, 不肯為武王臣, 不受封侯而餓死首陽山下. 有廉如此, 王又安能使之歩行千里而行進取於斉哉? 信如尾生, 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柱而死. 有信如此, 王又安能使之歩行千里卻斉之彊兵哉? 臣所謂以忠信得罪於上者也.」燕王曰:「若不忠信耳, 豈有以忠信而得罪者乎?」蘇秦曰:「不然. 臣聞客有遠為吏而其妻私於人者, 其夫將來, 其私者憂之, 妻曰『勿憂, 吾已作薬酒待之矣』. 居三日, 其夫果至, 妻使妾挙薬酒進之. 妾欲言酒之有薬, 則恐其逐主母也, 欲勿言乎, 則恐其殺主父也. 於是乎詳僵而棄酒. 主父大怒, 笞之五十. 故妾一僵而覆酒, 上存主父, 下存主母, 然而不免於笞, 悪在乎忠信之無罪也? 夫臣之過, 不幸而類是乎!」燕王曰:「先生複就故官.」益厚遇之.
易王母, 文侯夫人也, 與蘇秦私通. 燕王知之, 而事之加厚. 蘇秦恐誅, 乃説燕王曰:「臣居燕不能使燕重, 而在斉則燕必重.」燕王曰:「唯先生之所為.」於是蘇秦詳為得罪於燕而亡走斉, 斉宣王以為客卿. 斉宣王卒, 湣王即位, 説湣王厚葬以明孝, 高宮室大苑囿以明得意, 欲破敝斉而為燕. 燕易王卒, 燕噲立為王. 其後斉大夫多與蘇秦爭寵者, 而使人刺蘇秦, 不死, 殊而走. 斉王使人求賊, 不得. 蘇秦且死, 乃謂斉王曰:「臣即死, 車裂臣以徇於市, 曰『蘇秦為燕作亂於斉』, 如此則臣之賊必得矣.」於是如其言, 而殺蘇秦者果自出, 斉王因而誅之. 燕聞之曰:「甚矣, 斉之為蘇生報仇也!」
소진(蘇秦)은 동주(東周)의 낙양(雒陽) 사람이다. 동쪽 제(齊)에서 스승을 모셨는데 귀곡(鬼谷)에게 배웠다.
여러 해를 떠돌았으나 큰 곤란만 겪고 (집으로) 돌아왔다. 형제, 형수, 누이, 아내, 첩이 모두 그를 비웃으며 “주나라 사람의 풍속은 농사를 짓든 상공업에 힘을 쓰든 2할의 이익을 올리는데 지금 너는 근본을 버리고 입과 혀를 놀리는 것을 일삼았으니 곤궁해진 것도 당연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소진이 이를 듣고는 부끄러워 스스로 상심하여 방을 잠그고 나오지 않으면서 읽었던 책들을 꺼내 훓어보더니 “내가 머리를 처박고 이 책들을 읽었지만 존중과 영예를 얻을 수 없다면 아무리 많이 읽었어도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라고 했다. 이에 주나라 책 「음부(陰符)」를 꺼내 엎드려 그것을 읽었다. 1년 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방법을 깨닫고는 “이것이면 지금 군주들에게 유세할 수 있겠다.”라 하고는 주나라 현왕(顯王)을 만나 유세하려고 했다. 평소를 그를 잘 알고 있던 현왕의 측근들은 그를 얕잡아보고 믿지 않았다.
진왕은 “새의 깃털이 다 자라지 않으면 높이 날 수 없고, 법령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천하를 아우를 수 없소.”라 했다. 당시는 상앙(商鞅)을 죽이고 변사(辯士)들을 미워하던 터라 (소진을) 기용하지 않았다.
이에 동쪽 조(趙)나라로 갔다. 조 숙후(肅侯)는 그 동생 성(成)을 상(相)으로 삼고 봉양군(奉陽君)이라고 불렀는데, 봉양군이 소진을 좋아하지 않았다.
<연나라 유세>
연(燕)나라로 가서 떠돌다 1년이 지나서야 만날 수 있었는데 연 문후(文侯)에게 이렇게 유세했다.
“연나라는 동쪽으로 조선(朝鮮)과 요동(遼東)이, 북쪽으로는 임호(林胡)와 누번(樓煩)이, 서쪽으로는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이, 남쪽으로는 호타하(嘑沱河)와 역수(易水)가 있습니다. 땅은 사방 2천여 리에 갑옷을 두른 병사가 수십 만, 전차가 600승, 전투마가 6,000필, 비축된 식량은 몇 년을 먹을 수 있습니다. 남으로 갈석(碣石)과 안문(雁門)의 풍요로움이 있고, 북으로는 대추와 밤이 풍족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하늘이 내려준 창고라는 것이지요.
편안하게 아무 일 없고, 군대가 엎어지거나 장수가 죽지 않는 걸로 보자면 연나라보다 나은 나라는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왜 그런 지 아십니까? 연나라가 침범을 당하지 않고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은 조나라가 남쪽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秦)과 조가 다섯 번 싸우면 진이 두 번, 조는 세 번을 이깁니다. 진과 조가 서로 피폐해지면 왕께서는 연나라를 온전하게 보존한 채 그 후방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연나라가 침범을 당하지 않는 까닭이 바로 이것입니다. 또 진이 연을 공격하려면 운중과 구원을 넘고 대군(代郡)과 상곡(上谷)을 지나는 수 천 리 땅을 뚫고 지나야 합니다. 연의 성을 얻는다 하더라도 진은 어떤 계책으로도 지킬 수 없습니다. 진이 연을 해칠 수 없음이 이렇게 분명합니다. 지금 조나라가 연을 공격한다면 출병의 호령이 떨어져 열흘이 안 되어 수십 만 대군이 동원(東垣)에 주둔하게 될 것입니다. 호타하를 건너고 역수를 건너면 4, 5일이 안에 도성에 이를 것입니다. 그래서 진이 연을 공격하면 천 리 밖에서 싸우고, 조가 연을 공격하면 백 리 안에서 싸운다고 하는 것입니다. 대저 백 리 안의 근심을 걱정하지 않고 천 리 밖을 중시한다면 계책으로 이보다 잘못된 계책은 없습니다. 따라서 대왕께서는 조나라와 연합하여 천하가 하나가 되면 연나라는 아무런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문후는 “그대의 말이 옳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작은데다가 서쪽의 강력한 조나라가 압박하고 남쪽은 제나라와 가깝소. 제와 조는 강한 나라요. 그대가 합종(合縱)으로 연나라를 안정시키겠다 하니 과인이 나라를 들어 따르겠소.”라 했다. 이에 소진에게 수레와 말, 돈과 비단 따위를 대주며 조나라로 가게 했다.
<조나라 유세>
한편 봉양군이 죽었으므로 바로 조 숙후에게 다음과 같이 유세했다.
“천하의 경상(卿相)과 신하 및 벼슬없는 인재들 모두 현명한 군주의 의로운 행동을우러러보고 가르침을 받들어 그 앞에서 충성을 다하겠다고 원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나 봉양군이 시기하고 군주께서 일을 맡지 못하셨기 때문에 빈객과 유세가들이 그 앞에서 자신의 힘을 감히 다 펼치지 못했습니다. 지금 봉양군께서 돌아가시고 군주께서는 이제 다시 사람들과 서로 친할 수 있게 되셨으므로 신이 감이 어리석으나마 생각한 바를 아뢰고자 합니다.
가만히 군주를 위해 생각해보니 일 없이 백성을 안정시키고 백성들에게 불필요한 일을 만들지 않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습니다. 백성을 안정시키는 근본은 외교를 선택하는, 즉 우방을 선택하는 일에 달려 있습니다. 우방을 잘 선택하면 백성은 평안하고 그렇지 못하면 백성은 끝까지 불안해 합니다. 밖으로부터 오는 근심에 대해 말씀드리게 해주십시오. 따라서 남의 군주를 도모하거나 남의 나라를 정벌하고자 할 때는 늘 그 나라와의 외교를 단절하자는 말을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니 군주께서도 신중하게 생각하시어 입밖에 내시지 않길 바라옵니다.
이제 흑백의 구별과 음양의 차이를 가지고 말씀드릴까 합니다. 군주께서 진실로 신의 말씀을 들으신다면 연나라는 틀림없이 모직물, 갖옷, 개, 말이 나는 땅을 바칠 것이고, 제나라는 틀림없이 물고기와 소금이 나는 바닷가 땅을 바칠 것이며, 초(楚)나라는 틀림없이 귤과 유자가 나는 땅을 바칠 것이고, 한(韓), 위(魏), 중산(中山) 은 탕목읍(湯沐邑)을 바칠 것이니 군주의 귀한 인척과 부형들이 모두 땅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땅을 떼어 이익을 취한 것은 오백(五伯, 춘추오패)들이 군을 엎고 장수를 잡기 위해 추구했던 것입니다. 인척을 제후로 봉한 것은 탕왕(湯王)이나 무왕(武王)이 군주를 내쫓거나 죽이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이제 군주께서 팔짱을 낀 채 두 가지를 다 얻을 수 있기에 신이 군주를 위해 그렇게 하려는 것입니다.
지금 대왕께서 진(秦)나라 편을 든다면 진은 틀림없이 한나라와 위나라를 약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제나라 편을 든다면 제나라는 틀림없이 초나라와 위나라를 쇠약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위나라가 약해지면 하외(河外)를 떼어 (진에) 줄 것이고, 한나라가 약해지면 의양(宜陽)을 (진에) 내놓을 것입니다. 의양을 내놓으면 상군(上郡)에 이르는 길이 끊어질 것이고, 하외를 떼어주면 (상군으로) 가는 길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 또 초나라가 약해지면 (조나라는) 지원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이 세 계책을 잘 따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또 진(秦)이 지도(軹道)를 취하면 남양(南陽)이 위험에 처하고, 한을 겁박하여 주(周)를 포위하면 조는 알아서 군대를 동원해야 할 것입니다. 위(衛)를 점거하여 권성(卷城)을 취하면 제나라는 틀림없이 진에 조회를 드리러 갈 것입니다. 진의 욕심은 산동을 얻고나면 틀림없이 군대를 일으켜 조를 향할 것입니다. 진의 군대가 황하를 건너고 장수(漳水)를 넘어 번오(番吾)를 점거하면 군대는 (조의 도성인) 한단(邯鄲) 아래에서 싸우게 될 것입니다. 군주를 위해 신이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산동에 세워진 나라로서 조나라보다 강한 나라는 없습니다. 조나라 땅이 사방 2천 여리에 무장한 군대가 수십 만이며, 전차는 1천 승에 전투마가 1만 필이고, 식량은 몇 년을 버틸 수 있을 정도입니다. 서쪽으로 상산(常山)이, 남쪽으로 장수가, 동쪽으로 청하(淸河)가, 북쪽으로 연나라가 있습니다. 연나라는 본디 약한 나라이므로 두려울 것 없습니다. 천하에서 진이 두려워할 존재로는 조나라만한 나라가 없습니. 그런데 진이 군을 일으켜 감히 조를 치지 못하는 것은 왜 그렇겠습니까? 한과 위가 배후에서 치지 않을까 겁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위는 조의 남쪽 방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이 한, 위를 공격할 경우 큰 산이나 강이라는 장애가 없기 때문에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듯 서서히 나라의 도성에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한, 위는 진에 버티지 못하고 틀림없이 진의 신하로 굴복할 것입니다. 진에게 한, 위의 제약이 없다면 그 화는 틀림없이 조에게 몰릴 것입니다. 군주를 위해 신이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신이 듣기에 요 임금이나 순 임금은 땅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했지만 천하를 가졌고, 우 임금은 100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 하나 없었지만 제후들의 왕이 되었으며, 탕 임금과 무왕은 병사는 3천을 넘지 못했고 전차는 300승에 불과했으며 군대는 3만을 넘지 못했지만 천자로 올라섰습니다. 참으로 그 방법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명은 군주는 밖으로 적의 강약을 헤아리고 안으로 자기 병사들의 소질을 가늠하여 두 군대가 서로 맞부딪치지 않고도 승패와 존망의 기미를 진작에 가슴 속에 그려둡니다. 그러니 어찌 여러 사람의 말에 좌우되어 어리석게 일을 결단하겠습니까?
신이 천하의 지도를 놓고 가만히 살펴보니, 제후들의 땅은 진의 다섯배이고, 병력을 헤아려 보니 진의 열 배입니다. 여섯 나라가 하나가 되어 힘을 합쳐 서쪽으로 진을 공격한다면 진은 틀림없이 격파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서쪽을 향해 진을 섬기며 진의 신하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무릇 상대를 격파하는 것과 상대에게 격파당하는 것, 상대를 신하로 삼는 것과 상대의 신하가 되는 것을 어찌 한 날 한 시에 놓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연횡(連橫)을 주장하는 자들은 죄다 제후들의 땅을 떼어서 진에게 주라고 합니다. 진과의 동맹이 성사되면 누대를 높이 짓고 궁실을 아름답게 꾸며서는 음악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앞에는 누각과 궁궐이, 뒤에는 늘씬하고 아름다운 미인들로 들어 찰 것입니다. 나라가 진에 의해 피해를 입어도 이 자들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연횡 주장자들은 낮밤으로 진의 권세를 가지고 제후들에게 공갈쳐서 땅 떼어낼 일에만 힘을 씁니다. 그러니 대왕께서는 이에 대해 깊게 생각하시길 바라옵니다. 신이 듣기에 현명한 군주는 의심을 끊고 헛소리를 없애며 유언비어의 길과 붕당의 문을 막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은 이 자리에서 군주를 높이고 땅을 넓히며 군대를 강하게 만들 계책을 충심으로 펼치려는 것입니다. 이에 가만히 대왕을 위해 계책을 내봅니다. 한, 위, 제, 초, 연, 조가 하나가 되어 합종하여 진에 맞서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습니다. 지금 천하의 장상들을 원수(洹水)로 모이게 하여 인질을 교환하고 백마를 죽여 맹서해야 합니다. 맹약은 이렇습니다.
‘진이 초를 공격하면 제와 위가 정예병을 내어 초를 돕고, 한은 진의 식량 보급로를 끊고, 조는 장수를 건너며, 연은 상산의 북쪽을 지킨다. 진이 한과 위를 공격하면 초는 그 후방을 끊고, 제는 정예병을 내어 이를 돕고, 조는 장수를 건너며, 연은 운중을 지킨다. 진이 제를 공격하면 초는 그 후방을 끊고, 한은 성고(城皐)를 지키고, 위는 그 공격로를 막으며, 조는 장하와 박관(博關)을 넘고, 연은 정예병을 내어 이를 돕는다. 진이 연을 공격하면 조는 상산을 지키고, 초는 무관(武關)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제는 발해(渤海)를 건너며, 한과 위는 모두 정예병을 내어 이를 돕는다. 진이 조를 공격하면 한과 초는 의양과 무관에 군을 주둔시키며, 위는 하외에 군을 주둔시키고, 제는 청하를 건너며, 연은 정예병을 내어 이를 돕는다.제후들 중 맹약에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5국의 군대가 함께 그를 토벌할 것이다!’
이렇게 6국이 합종하여 진을 물리치면 진의 군대는 감히 함곡관을 나와 산동을 해치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패왕의 업이 성취될 것입니다.”
조왕은 “과인은 나이가 어리고 나라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사직을 위한 장기 계책을 들어 보지 못했소이다. 지금 상객께서 천하를 보존하고 제후들을 안정시키는 뜻을 갖고 계시니 과인이 삼가 나라를 들어 따르겠소이다!”라고 했다. 이에 장식된 100승의 수레, 황금 1천일, 백옥 100쌍, 비단 1천 필을 가지고 제후들과 맹약하게 했다.
<한나라 유세>
이 때 주 천자가 문왕과 무왕에게 제사지낸 고기를 진(秦) 혜왕(惠王)에게 보냈다. 혜왕은 서수(犀首)에게 위(魏)나라를 공격하게 하여 장수 용고(龍賈)를 사로잡고, 위나라의 조음(雕陰)을 취하고는 동쪽으로 진군하려고 했다. 소진은 진의 군대가 조나라에 이를 것이 두려워 장의(張儀)를 자극하여 진으로 들어가게 했다.
이에 (소진은) 한(韓)나라 선왕(宣王)에게 이렇게 유세했다.
“한은 북쪽으로 공읍(鞏邑)과 성고의 견고함이 있고, 서쪽으로 의양과 상판(商阪) 같은 요새가 있으며, 동쪽으로 완읍(宛邑)과 양읍(穰邑)과 유수(洧水)가 있고, 남쪽으로 형산(陘山)이 있습니다. 땅은 사방 9백여 리에 무장 병력이 수십만 명이며, 천하의 강력한 활과 쇠뇌는 모두 한에서 나옵니다. 계자(谿子), 소부시력(少府時力), 거래(距來)는 모두 6백보 밖까지 쏠 수 있습니다.
한나라의 병사들이 발로 당겨 쏘면 100발이 쉴 새 없이 나갑니다. 멀리 있는 자는 화살 끝이 가슴에 가서 박히고, 가까이 있는 자는 화살 끝이 심장을 뚫습니다. 한나라 병사들의 칼과 창은 모두 명산(冥山), 당계(棠谿), 묵양(墨陽), 합부(合賻), 등사(鄧師), 원풍(宛馮), 용연(龍淵), 태아(太阿)에서 납니다. 모두 땅에서는 소나 말을 자르고, 물에서는 고니나 기러기를 베고, 적을 맞이해서 싸우면 단단한 갑옷, 쇠 방패, 가죽 덧옷을 뚫어내는데 이런 것들을 전부 갖추고 있습니다. 용감한 한나라 병사들이 단단한 갑옷을 입고 강한 쇠뇌를 밟고 날카로운 검을 차면 1당 100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대저 한의 강력함과 대왕의 현명함이 있는데도 서쪽으로 진을 받들어 손을 모아 복종한다면 사직의 수치와 천하의 웃음거리로 이보다 더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대왕께서는 깊이 헤아리시길 바라옵니다.
대왕께서 진을 섬긴다면 진은 틀림없이 의양과 성고를 요구할 것입니다. 지금 그렇게 한다면 다음 해에도 다시 땅을 떼어달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그렇게 줘버리면 줄 땅이 없을 것이고, 주지 않으면 이전의 공은 다 사라지고 바로 화가 닥칠 것입니다. 게다가 대왕의 땅은 그 끝이 있지만 진의 요구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는 땅으로 끝이 없는 요구에 맞서는 것, 이것이 이른바 원한을 사서 화근을 심는다는 것으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땅은 다 빼앗기지요. 신은 속담에 ‘닭의 주둥이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 서쪽으로 공손히 손을 모으고 신하가 되어 진을 섬긴다면 소의 꼬리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대왕의 현명함과 강력한 한의 군대를 끼고도 소 꼬리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면 신은 참으로 대왕을 대신하여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에 한왕은 바로 안색이 바뀌더니 팔을 휘두르며 눈을 부릅 뜨고 검을 꽉 눌러 잡고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과인이 못났지만 분명 진나라를 섬기지는 않을 것이오. 지금 그대가 조왕의 가르침을 전했으니 삼가 사직을 받들어 따르겠소이다.”라고 했다.
<위나라 유세>
또 위(魏) 양왕(襄王)에게 이렇게 유세했다.
“대왕의 땅은 남쪽으로 홍구(鴻溝), 진(陳), 여남(汝南), 허(許), 언(郾), 곤양(昆陽), 소릉(召陵), 무양(舞陽), 신도(新都), 신처(新郪)가 있고, 동쪽으로 회하(淮河), 영수(潁水), 자조(煮棗), 무서(無胥)가 있으며, 서쪽으로 장성(長城)을 경계로 하고, 북쪽으로 하외(河外), 권(卷), 연(衍), 산조(酸棗)가 있는 사방 천 리입니다. 땅은 보기에는 작지만 거주민과 집들이 빼곡이 들어 차있어 목축할 땅조차 없습니다. 인구가 많고, 수레와 말이 많아 낮밤으로 끊없이 오가는 소리가 마치 삼군의 무리가 지나다니는 것 같습니다.
신이 가만히 헤아려 보니 대왕의 나라는 초나라 못지 않습니다. 그러나 연횡을 내세우는 자들은 대왕을 위협하여 호랑이나 이리처럼 사나운 진(秦)나라와 함께 천하를 침범하라고 하는데, 일단 (위나라가) 진나라의 공격을 받으면 그 화는 돌아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대저 강한 진나라를 끼고 안으로 그 군주를 겁박하니 죄로 말하자면 이보다 더한 죄는 없을 것입니다.
위는 천하의 강국이고, 대왕은 천하의 현명한 왕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서쪽으로 진을 섬길 뜻을 가지고 동쪽의 울타리로 자청하며 제왕의 궁을 짓고 관과 허리띠를 받아들여 봄 가을로 제사를 드리려 하니 신은 가만히 대왕을 대신하여 부끄럽습니다.
신이 듣기에 월왕(越王) 구천(句踐)은 지친 병졸 3천으로 부차(夫差)를 간수(干遂)에서 사로잡았고, 무왕(武王)은 병졸 3천 명과 전차 3백 대로 목야(牧野)에서 주(紂)를 제압했습니다. 어찌 그 병사가 많아서였겠습니까? 참으로 그들의 위세를 다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듣자하니 대왕의 군대는 무사 20만, 창두(蒼頭) 20만, 분격(奮擊) 20만, 잡역부 l0만, 전차 6백대, 군마 5천 필이라 하더군요. 이는 월왕 구천과 무왕을 한참 뛰어넘습니다. 그런데 지금 신하들의 말을 들으시고는 진나라를 신하의 신분으로 섬기려 하신다더군요. 대저 진을 섬기려면 땅을 떼주면서 성의를 나타내야 할 것이니 군대를 사용하지 않고도 나라에 손실을 끼치는 것입니다.
무릇 진을 섬기자고 말하는 신하들은 모두 간사한 자들이지 충신이 아닙니다. 무릇 신하된 사람으로 그 군주의 땅을 떼어서 외교를 구걸하는 것은 한 때의 공을 훔치려고 그 뒷일은 돌아보지 않는 것으로, 공실을 깨서 자기 집을 키우고, 밖으로 강한 진의 위세를 끼고 안으로 그 군주를 겁박하여 땅을 떼어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원하옵건대 대왕께서는 깊게 살피십시오.
『주서(周書)』에 ‘싹을 날 때 자르지 않아 덩굴이 퍼지면 어찌 할까? 작을 때 자르지 않아 장차 도끼를 써야 하지.’라고 했습니다. 대왕께서 정말 신의 말씀을 들어 여섯 나라와 합종하여 한 마음으로 힘을 합친다면 강력한 진나라의 침략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희 조왕께서 신에게 어리석은 계책을 내어 분명하게 맹약하고자 하오니 모든 것을 대왕의 뜻에 따를 것이옵니다.”
위왕은 “과인이 불초하여 이런 좋은 가르침을 들어보질 못했소이다. 지금 그대는 조왕의 지시로 나에게 계시를 주었으니 삼가 거국적으로 따르겠소이다!”라고 했다.
<제나라 유세>
이어 동쪽 제(齊) 선왕(宣王)에게 이렇게 유세했다.
“제나라는 남쪽으로 태산(泰山)이, 동쪽으로 낭야산(琅琊山)이, 서쪽으로 청하(淸河)가, 북쪽으로 발해가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사방이 요새인 나라입니다. 제의 땅은 사방 2천 리가 넘고 갑옷을 입은 병사가 수십 만에 식량은 산더미입니다. 삼군(三軍)의 정예병과 오도(五都)의 병사는 진격할 때는 화살 같고, 전투에서는 우레가 치는 것 같고, 물러날 때는 비바람 같습니다. 전쟁이 터지더라도 (적이) 태산을 넘거나 청하를 끊어버리거나 발해를 건넌 적이 없습니다. 임치(臨菑)에 7만 호가 있는데, 제가 가만히 헤아려보니 한 집에 남자가 셋 정도이니 먼 현에서 징발하지 않아도 임치의 병사만 아마 21만입니다.
임치는 매우 부유하여 생황을 불고 비파와 거문고를 타며 축을 두드리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닭싸움과 개 경주를 즐기고, 육박과 축국을 즐깁니다. 임치의 도로는 수레바퀴가 서로 부딪치고 사람들의 어깨가 서로 부대끼며, 옷을 벗어 펼치거나 소매를 들어올리면 장막이 되고, 흘리는 땀이 비가 될 정도입니다. 집집마다 풍족하니 의지와 기세가 대단합니다.
무릇 대왕의 현명하심과 제나라의 강력함은 천하가 당해낼 수 없습니다. 지금 그런데 서쪽으로 진을 섬기려 하시니 신은 가만히 대왕을 대신하여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한과 위가 진을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은 진과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병하여 서로 맞부딪치면 열흘을 넘기지 않고 승패와 존망의 추세가 결정됩니다. 만일 한과 위가 싸워 진을 이긴다면 병력의 반은 잃게 되어 사방 변경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싸워 이기지 못하더라도 나라는 위기와 멸망이 뒤따를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한과 위가 진과의 싸움을 중시하는 반면 가볍게 진의 신하가 되려는 것입니다.
지금 진이 제를 공격한다면 상황은 이와 다를 것입니다. 한과 위의 땅을 등지고 위(衛)의 양진(陽晉) 길을 지나 항보(亢父)라는 험지를 지나야 하는데, 전차와 말이 서로 지나갈 수 없어 100명으로 험지를 지키면 1,000명이 지나갈 수 없는 곳입니다. 진이 깊숙이 들어오고 싶어도 이리가 뒤를 돌아보듯 한과 위가 뒤에서 어찌 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진은 두려움과 의심에 사로잡혀 허풍을 떨며 잘난 척하지만 감히 쳐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니 진이 제를 해칠 수 없음 또한 분명합니다. 대저 진이 제를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헤아리지 않고 서쪽의 진을 섬기려는 것은 신하들의 잘못된 계책입니다. 지금 신하로서 진을 섬긴다는 말을 듣지 않고도 나라를 강하게 만들 방법이 있으니, 신은 이 때문에 대왕께 이 점에 유의해서 일을 꾀하시길 바라옵니다.”
제왕은 “과인이 영민하지 못한데다 먼 바다가에 의지한 길이 없는 동쪽 끝에 위치한 나라인지라 가르침을 들을 기회가 없었소. 지금 그대가 조왕의 지시로 나를 깨우치니 삼가 나라를 들어 따르겠소이다.”
<초나라 유세>
이에 서남으로 가서 초(楚) 위왕(威王)에게 이렇게 유세했다.
“초는 천하의 강국이고, 왕은 천하의 현명한 왕이십니다. 서쪽으로 검중(黔中)과 무군(巫郡)이, 동쪽으로 하주(夏州)와 해양(海陽)이, 남쪽으로 동정호(洞庭湖)와 창오(蒼梧)가, 북쪽으로 형색(陘塞), 순양(郇陽)이 있고, 땅은 사방 5천리에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가 100만, 전차가 1천 량, 기마가 1만 필이며, 식량은 10년을 버팁니다. 이는 패왕의 밑천입니다. 대저 초의 강대함과 왕의 현명함은 천하가 당해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서쪽으로 진을 섬기려 하시니 서쪽 장대(章臺) 아래로 입조하지 않는 제후가 없을 것입니다.
진이 두려워하기로는 초만한 나라가 없습니다. 초가 강하면 진은 약해지고, 진이 강하면 초가 약해지므로 그 기세상 양립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대왕을 위한 계책으로는 합종으로 진을 고립시키는 것만한 것이 없습니다. 대왕께서 합종을 따르지 않으신다면 진은 틀림없이 양군을 일으켜 하나는 무관을 나올 것이고 하나는 검중으로 내려올 것이니 (도성) 언영(鄢郢)이 흔들릴 것입니다.
신이 듣기에 일이란 혼란스러워지기 전에 다스려야 한고 발생하기 전에 조치해야 한다고 합니다. 근심이 닥친 다음 걱정해봐야 늦습니다. 그러니 대왕께서는 일찌감치 잘 숙고하시길 원하옵니다.
대왕께서 참으로 신의 말씀을 들으신다면 신은 산동의 나라들로 하여금 사시사철 제물을 바치게 하고, 대왕의 영명하신 가르침을 잇게 하며, 종묘사직을 대왕께 맡기게 할 것이며, 병사를 훈련시키고 무기를 갈게 하여 대왕이 쓰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대왕께서 진실로 신의 어리석은 계책을 활용하시면 한, 위, 제, 연, 조, 위의 기막힌 음악과 미녀들이 틀림없이 후궁에 가득 찰 것이고, 연과 대(代)의 낙타와 좋은 말들이 틀림없이 마굿간을 채우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합종을 하면 초가 왕이 되고, 연횡을 하면 진이 제왕이 됩니다. 지금 패왕의 대업을 버리고 남을 섬긴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신이 가만히 생각건대 대왕을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릇 진은 호랑이와 이리 같은 나라로 천하를 삼킬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진은 천하의 원수입니다. 연횡을 주장하는 자들은 죄다 제후국의 땅을 떼어서 진을 섬기려 합니다. 이는 말하자면 원수를 받들어 공양하는 것입니다. 무릇 신하된 자가 자기 군주의 땅을 떼어 힘센 호랑이와 늑대 같은 진과 외교하여 천하를 침범하게 하니 언젠가 진 때문에 근심이 생겨도 (그 자들은) 그 화를 나몰라라 할 것입니다.
밖으로 강력한 진의 위세를 끼고 안으로 그 군주를 겁박하여 땅을 떼주라 하니 대역불충이 이보다 더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합종하면 제후들이 땅을 떼어 초를 섬길 것이고, 연회하면 초는 땅을 떼어 진을 섬겨야 할 것이니 이 두 계책이 이렇게 서로 거리가 멉니다. 이 둘 중에 대왕께서는 어느 쪽에 서시렵니까? 그러기에 저희 조왕께서 신을 시켜 어리석은 계책을 아뢰게 하셨으니 약속을 분명하게 받들어 대왕의 말씀을 따를 것입니다.”
초왕은 “과인의 나라는 서쪽으로 진과 접해 있고, 진은 파(巴), 촉(蜀)을 빼앗고 한중(漢中)을 집어삼킬 야심을 갖고 있소. 진은 호랑이와 이리 같은 나라라 친할 수 없소. 한, 위는 진의 위협을 직접 받는지라 그들과 깊은 논의를 함께 할 수 없소. 자칫 깊게 도모했다가 도리어 그들이 진에게 일을 누설하여 모의가 실행되기도 전에 나라가 위험해질까 두렵소. 과인이 생각해보건대 초가 진에 맞서 승리할 수 없고, 안으로 신하들과 모의하자니 믿음이 부족하오. 과인은 좌불안석이 되어 먹어도 맛을 모르고, 마음은 깃발을 장대에 매단 것처럼 흔들려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모르겠소. 지금 그대가 천하를 하나로 하여 제후들을 거두고 나라를 위기에서 보존하려 하니 과인이 삼가 사직을 받들어 따르도록 하겠소.”라고 했다.
이에 6국은 합종하여 힘을 합치게 되었고, 소진은 합종의 장이 되어 6국의 재상을 겸하게 되었다.
<소진의 출세와 합종의 와해>
(소진이) 북쪽으로 조왕에게 보고하러 가다가 낙양을 지나게 되었는데 따르는 마차와 각국의 호송 사신들이 얼마나 많은지 왕인가 의심할 정도였다. 주(周) 현왕(顯王)이 이를 듣고는 겁이 나서 도로를 청소하고 교외로 사람을 보내 위로했다.
소진의 형제, 처, 형수는 곁눈질만 할 뿐 감히 쳐다보지 못하고 엎드려 식사 시중을 들었다. 소진은 웃으며 그 형수에게 “전에는 오만하더니 지금은 어째서 이렇게 공손합니까?”라 했다. 형수는 몸을 굽혀 기면서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는 “시동생의 지위가 높고 돈이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지요.”라며 사죄했다. 소진은 길게 탄식하며 “이 한 사람의 몸이 부귀해지니 친척들이 두려워하고, 가난하고 천할 때는 경시하니 하물며 남들이야! 나한테 낙양 교외에 밭 두 이랑이라도 있었던들 내가 어찌 6국 재상의 도장을 찰 수 있었겠는가?”라고 했다.
그리고는 천금을 풀어 종족과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일찍이 소진이 연나라로 갈 때 어떤 사람에게 100전을 빌려 노자로 삼은 적이 있는데, 부귀해지자 100금으로 갚았다. 일찍이 덕을 본 사람 모두에게 두루 보답했는데, 그의 시종 중 오직 한 사람만 보상을 받지 못하자 소진에게로 와서 말했다. 소진은 “내가 너를 잊지 않았다. 네가 나와 함께 연나라로 갈 때 역수에서 나를 두 번 세 번 버리려 했다. 그 당시 내가 곤경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너를 아주 잘 기억한다. 그래서 너를 뒤로 미루어 두었는데 이제 너에게도 주마!”라고 했다.
소진은 여섯 나라와 합종을 맺고 조나라로 돌아오니 조 숙후는 그를 무안군(武安君)으로 삼고 바로 진나라에 맹약서를 보냈다. 진나라 군대가 함곡관을 15년 동안 감히 넘보지 못했다.
그 후 진은 서수(犀首)에게 제와 위를 속여 함께 조를 치게 하여 합종의 맹약을 깨려고 했다. 제와 위가 조를 공격하자 조왕은 소진을 꾸짖었다. 소진은 두려워 연에 사신으로 가서 반드시 제에 보복하길 청했다. 소진이 조를 떠나자 합종은 완전 와해되었다.
<소진의 재활약과 죽음>
진 혜왕(惠王)은 그 딸을 연 태자의 아내가 되게 했다. 이해에 연 문후(文侯)가 죽고 태자가 즉위했는데 이가 연 역왕(易王)이다. 역왕이 막 즉위했을 때 선왕(宣王)은 연의 국상을 틈타 연을 토벌하여 열 개 성을 취했다. 역왕은 소진에게 “지난 날 선생이 연에 오자 선왕께서는 선생에게 자금을 주어 조로 가게 하여 마침내 6국이 합종의 맹약을 맺었소. 지금 제가 먼저 조를 치고 이어 연에 이르렀으니 선생 때문에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소이다. 선생은 연을 위해 침탈당한 땅을 돌려받을 수 있겠소?”라고 했다. 소진이 크게 부끄러워하며 “왕을 위하여 되찾아오길 청합니다.”라고 했다.
소진은 제왕을 만나 두 번 절하고 고개를 숙여 축하하고 고개를 들며 조의를 나타냈다. 제왕이 “어째서 축하와 조의를 잇따라 급하게 표하는 것이오?”라고 했다. 소진은 “신이 듣기에 굶주린 사람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오훼(烏喙)는 먹지 않는 것은 잠시 배를 채울 수는 있어도 굶어죽는 것과 같은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랍니다. 지금 연이 비록 약소하긴 하지만 그래도 진왕의 작은 사위입니다. 대왕께서 그 성 열 개가 탐이 나서 강한 진과 오래도록 원수가 되려고 합니다. 이제 약한 연이 앞장을 서고 강한 진이 그 뒤를 따르면서 천하의 정예병들을 불러들이게 될 터이니 이는 오훼를 먹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했다.
제왕은 걱정에 얼굴색이 바뀌며 “그렇다면 어찌 하면 좋겠소?”라고 했다. 소진은 “신이 듣기에 예로부터 일을 잘 통제하는 사람은 화를 복으로 바꾸고, 실패를 성공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대왕께서 진정 신이 계책을 들으시고 연의 열 개 성을 돌려주신다면 연은 아무 일 없이 열 개 성을 얻으니 기뻐할 것이 틀림없고, 진왕은 자기 때문에 연의 열 개 성을 돌려주었다고 여기고 또한 기뻐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원수를 버리고 돌처럼 단단한 친구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연과 진이 모두 제를 섬기게 되면 대왕께서는 천하를 호령하게 되어 말을 듣지 않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왕께서는 빈말로 진에 붙고 성 열 개로 천하를 취하신다면 이것이야말로 패왕의 업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했다. 왕이 “좋소!”라 하고는 바로 연의 열 개 성을 돌려주었다.
누군가 소진을 헐뜰길 “이쪽 저쪽을 오가며 나라를 팔고 뒤집는 신하입니다. 장차 난을 일으킬 것입니다.”라고 했다. 소진은 죄를 얻을까 두려워 (제에서 연으로) 돌아왔으나 연왕은 복직시키지 않았다.
소진이 연왕을 만나서는 “신은 동주(東周)의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작은 공도 세우지 못했는데 대왕께서 몸소 종묘에서 접견하시고 조정에서는 예로 대해 주셨습니다. 지금 신이 왕을 위해 제의 군대를 물러가게 하고 열 개의 성을 얻었으니 더욱 가까이 하셔야 마땅할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왔지만 왕께서 신을 복직시키지 않으시는 것은 누군가 왕께 신을 믿을 수 없다고 헐뜯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에 대한 불신은 왕의 복입니다. 신이 듣기에 충성이니 믿음이니를 말하는 자는 자신을 위한 것이고, (나라를 위해) 나아가 무엇인가를 얻으내려는 자는 타인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왕에 대한 신의 유세는 (연을 위해) 속인 것 아니었던가요?
신이 늙으신 어머니를 동주에 남겨둔 것은 정말이지 저 자신을 위한 것을 버리고 타인을 위해 나아가 실행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효도하면 증삼(曾參), 청렴하면 백이(伯夷), 믿음하면 미생(尾生)이라 하는데 이 세 사람을 얻어 대왕을 섬기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했다.
왕이 “충분하지.”라고 했다. 소진은 “증삼 같은 효자는 효도 때문에 부모를 떠나 밖에서는 하루도 잘 수 없는 사람입니다. 왕께서는 어떻게 그런 사람을 천 리를 나가 약한 연과 위기에 처한 왕을 섬기게 하시렵니까? 청렴한 백이는 고죽군(孤竹君)의 후계자를 거부하고 무왕(武王)의 신하가 되는 것이 싫어 제후 책봉을 받지 않은 채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습니다. 이렇게 청렴한 사람을 왕께서는 어떻게 천 리를 나가 제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게 하시렵니까? 믿음하면 미생인데,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여자는 오지 않고 물이 찼지만 떠나지 않고 기둥을 끌어안은 채 죽었습니다. 이렇게 신의를 지키는 자를 왕께서는 어떻게 천 리 밖으로 나가 제의 강한 군대를 물러가게 만드시렵니까? 신은 이른바 그 충성과 신의 때문에 윗사람에게 죄를 지은 것입니다.”라고 했다.
연왕은 말하기를 “그대는 충성과 신의가 없다고 해놓고 어째서 충성과 신의 때문에 죄를 얻었다고 하는 것이오?”라고 했다. 소진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먼 곳으로 관리가 되어 나갔는데 그 처가 다른 사람과 간통을 했습니다. 그 남편이 돌아올 때가 되자 간통한 자가 걱정을 하자 아내는 ‘걱정말라. 내가 이미 술에다 약을 타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석 달 뒤 그 남편이 오자 아내는 첩을 시켜 약을 탄 술을 갖다 주게 했습니다. 첩은 술에 약이 들었다고 말하자니 주인의 아내에게 쫓겨날 것이 걱정되었고, 말하지 않자니 주인을 죽일까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넘어져서 술을 쏟아버렸습니다. 주인이 크게 노하여 50대나 매질을 했습니다. 첩은 한 번 넘어져서 술을 엎질러 버림으로써 위로는 주인을 살리고 아래로는 주인의 아내도 살렸지만 매질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니 충성과 신의를 지키고도 어찌 죄가 없다 하겠습니까? 무릇 신의 잘못도 불행하게도 이와 비슷하지요.”라고 했다. 연왕은 “선생은 다시 지난 번 관직으로 나가십시오.”라 하고는 더욱 더 잘 대해주었다.
(연나라) 역왕(易王)의 어머니는 문후의 부인으로 소진과 사사로이 간통을 저질렀다. 연왕이 이를 알고도 소진을 더 후하게 대우하자 소진은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바로 연왕에게 “신이 연에 남아 있어서는 연을 높일 수 없고, 제에 있으면 연은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연왕은 “선생이 원하는 대로 하시오.”라고 했다. 이에 소진은 연에서 죄를 얻은 것처럼 꾸며서 제로 도망가자 제 선왕은 그를 객경(客卿)으로 삼았다.
제 선왕이 죽고 민왕(湣王)이 즉위하자 (소진은) 민왕에게 후하게 장례를 지내는 것이 효도이며 궁실을 높이고 놀이터를 크게 하는 것이 뜻을 얻는 것이라고 유세하여 연을 위해 제를 피폐하게 만들고자 했다. 연 역왕이 죽고 쾌(噲)가 왕이 되었다. 그 후 제의 대부들 중 소진과 총애를 다투는 자가 많아져 사람을 시켜 소진을 찔렀으나 죽지 않고 부상을 입은 채 도망쳐 돌아왔다.
제왕이 사람을 시켜 적을 찾게 했으나 찾지 못했다. 소진이 죽음을 앞두고 제왕에게 “신은 죽으면 신을 거열형에 처해 저자거리에서 조리를 돌리며 ‘소진이 연을 위해 제에서 난리를 일으켰다’고 말하게 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신을 죽이려던 적을 틀림없이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그 말대로 했더니 소진을 죽인 자가 과연 제발로 나타났고, 제왕은 그 자를 잡아서 죽였다. 연이 이 소식을 듣고는 “심하구나, 제가 소진 선생을 위해 원수를 갚는 정도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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