蘇秦列傳[蘇代 · 蘇厲]
蘇秦既死, 其事大泄. 斉後聞之, 乃恨怒燕. 燕甚恐. 蘇秦之弟曰代, 代弟蘇厲, 見兄遂, 亦皆學. 及蘇秦死, 代乃求見燕王, 欲襲故事. 曰:「臣, 東周之鄙人也. 竊聞大王義甚高, 鄙人不敏, 釈鉏耨而幹大王. 至於邯鄲, 所見者絀於所聞於東周, 臣竊負其志. 及至燕廷, 観王之群臣下吏, 王, 天下之明王也.」燕王曰:「子所謂明王者何如也?」対曰:「臣聞明王務聞其過, 不欲聞其善, 臣請謁王之過. 夫斉、趙者, 燕之仇讎也;楚、魏者, 燕之援國也. 今王奉仇讎以伐援國, 非所以利燕也. 王自慮之, 此則計過, 無以聞者, 非忠臣也.」王曰:「夫斉者固寡人之讎, 所欲伐也, 直患國敝力不足也. 子能以燕伐斉, 則寡人挙國委子.」対曰:「凡天下戦國七, 燕処弱焉. 獨戦則不能, 有所附則無不重. 南附楚, 楚重;西附秦, 秦重;中附韓、魏, 韓、魏重. 且苟所附之國重, 此必使王重矣. 今夫斉, 長主而自用也. 南攻楚五年, 畜聚竭;西困秦三年, 士卒罷敝;北與燕人戦, 覆三軍, 得二將. 然而以其餘兵南面挙五千乗之大宋, 而包十二諸侯. 此其君欲得, 其民力竭, 悪足取乎! 且臣聞之, 數戦則民勞, 久師則兵敝矣.」燕王曰:「吾聞斉有清済、濁河可以為固, 長城、钜防足以為塞, 誠有之乎?」対曰:「天時不與, 雖有清済、濁河, 悪足以為固! 民力罷敝, 雖有長城、钜防, 悪足以為塞! 且異日済西不師, 所以備趙也;河北不師, 所以備燕也. 今済西河北盡已役矣, 封內敝矣. 夫驕君必好利, 而亡國之臣必貪於財. 王誠能無羞従子母弟以為質, 寶珠玉帛以事左右, 彼將有徳燕而軽亡宋, 則斉可亡已.」燕王曰:「吾終以子受命於天矣.」燕乃使一子質於斉. 而蘇厲因燕質子而求見斉王. 斉王怨蘇秦, 欲囚蘇厲. 燕質子為謝, 已遂委質為斉臣.
燕相子之與蘇代婚, 而欲得燕権, 乃使蘇代侍質子於斉. 斉使代報燕, 燕王噲問曰:「斉王其霸乎?」曰:「不能.」曰:「何也?」曰:「不信其臣.」於是燕王専任子之, 已而譲位, 燕大亂. 斉伐燕, 殺王噲、子之. 燕立昭王, 而蘇代、蘇厲遂不敢入燕, 皆終帰斉, 斉善待之.
蘇代過魏, 魏為燕執代. 斉使人謂魏王曰:「斉請以宋地封涇陽君, 秦必不受. 秦非不利有斉而得宋地也, 不信斉王與蘇子也. 今斉魏不和如此其甚, 則斉不欺秦. 秦信斉, 斉秦合, 涇陽君有宋地, 非魏之利也. 故王不如東蘇子, 秦必疑斉而不信蘇子矣. 斉秦不合, 天下無変, 伐斉之形成矣.」於是出蘇代. 代之宋, 宋善待之.
斉伐宋, 宋急, 蘇代乃遺燕昭王書曰:
夫列在萬乗而寄質於斉, 名卑而権軽;奉萬乗助斉伐宋, 民勞而実費;夫破宋, 殘楚淮北, 肥大斉, 讎彊而國害:此三者皆國之大敗也. 然且王行之者, 將以取信於斉也. 斉加不信於王, 而忌燕愈甚, 是王之計過矣. 夫以宋加之淮北, 強萬乗之國也, 而斉並之, 是益一斉也. 北夷方七百里, 加之以魯、衛, 彊萬乗之國也, 而斉並之, 是益二斉也. 夫一斉之彊, 燕猶狼顧而不能支, 今以三斉臨燕, 其禍必大矣.
雖然, 智者挙事, 因禍為福, 転敗為功. 斉紫, 敗素也, 而賈十倍;越王句踐棲於會稽, 複殘彊呉而霸天下:此皆因禍為福, 転敗為功者也.
今王若欲因禍為福, 転敗為功, 則莫若挑霸斉而尊之, 使使盟於周室, 焚秦符, 曰「其大上計, 破秦;其次, 必長賓之」. 秦挾賓以待破, 秦王必患之. 秦五世伐諸侯, 今為斉下, 秦王之志苟得窮斉, 不憚以國為功. 然則王何不使辯士以此言説秦王曰:「燕、趙破宋肥斉, 尊之為之下者, 燕、趙非利之也. 燕、趙不利而勢為之者, 以不信秦王也. 然則王何不使可信者接収燕、趙, 令涇陽君、高陵君先於燕、趙? 秦有変, 因以為質, 則燕、趙信秦. 秦為西帝, 燕為北帝, 趙為中帝, 立三帝以令於天下. 韓、魏不聴則秦伐之, 斉不聴則燕、趙伐之, 天下孰敢不聴? 天下服聴, 因駆韓、魏以伐斉, 曰『必反宋地, 帰楚淮北』. 反宋地, 帰楚淮北, 燕、趙之所利也;並立三帝, 燕、趙之所願也. 夫実得所利, 尊得所願, 燕、趙棄斉如脫■矣. 今不収燕、趙, 斉霸必成. 諸侯賛斉而王不従, 是國伐也;諸侯賛斉而王従之, 是名卑也. 今収燕、趙, 國安而名尊;不収燕、趙, 國危而名卑. 夫去尊安而取危卑, 智者不為也.」秦王聞若説, 必若刺心然. 則王何不使辯士以此若言説秦? 秦必取, 斉必伐矣.
夫取秦, 厚交也;伐斉, 正利也. 尊厚交, 務正利, 聖王之事也.
燕昭王善其書, 曰:「先人嘗有徳蘇氏, 子之之亂而蘇氏去燕. 燕欲報仇於斉, 非蘇氏莫可.」乃召蘇代, 複善待之, 與謀伐斉. 竟破斉, 湣王出走.
久之, 秦召燕王, 燕王欲往, 蘇代約燕王曰:「楚得枳而國亡, 斉得宋而國亡, 斉、楚不得以有枳、宋而事秦者, 何也? 則有功者, 秦之深讎也. 秦取天下, 非行義也, 暴也. 秦之行暴, 正告天下.
告楚曰:『蜀地之甲, 乗船浮於汶, 乗夏水而下江, 五日而至郢. 漢中之甲, 乗船出於巴, 乗夏水而下漢, 四日而至五渚. 寡人積甲宛東下隨, 智者不及謀, 勇土不及怒, 寡人如射隼矣. 王乃欲待天下之攻函谷, 不亦遠乎!』楚王為是故, 十七年事秦.
秦正告韓曰:『我起乎少曲, 一日而斷大行. 我起乎宜陽而觸平陽, 二日而莫不盡繇.我離両周而觸鄭, 五日而國挙.』韓氏以為然, 故事秦.
秦正告魏曰:『我挙安邑, 塞女戟, 韓氏太原巻. 我下軹, 道南陽, 封冀, 包両周. 乗夏水, 浮軽舟, 彊弩在前, 錟戈在後, 決滎口, 魏無大梁;決白馬之口, 魏無外黃、済陽;決宿胥之口, 魏無虛、頓丘. 陸攻則撃河內, 水攻則滅大梁.』魏氏以為然, 故事秦.
秦欲攻安邑, 恐斉救之, 則以宋委於斉. 曰:『宋王無道, 為木人以(寫)[象]寡人, 射其面. 寡人地絶兵遠, 不能攻也. 王苟能破宋有之, 寡人如自得之.』已得安邑, 塞女戟, 因以破宋為斉罪.
秦欲攻韓, 恐天下救之, 則以斉委於天下. 曰:『斉王四與寡人約, 四欺寡人, 必率天下以攻寡人者三. 有斉無秦, 有秦無斉, 必伐之, 必亡之.』已得宜陽、少曲, 致藺、[離]石, 因以破斉為天下罪.
秦欲攻魏重楚, 則以南陽委於楚. 曰:『寡人固與韓且絶矣. 殘均陵, 塞鄳阨, 苟利於楚, 寡人如自有之.』魏棄與國而合於秦, 因以塞鄳阨為楚罪.
兵困於林中, 重燕、趙, 以膠東委於燕, 以済西委於趙. 已得講於魏, 至公子延, 因犀首屬行而攻趙.
兵傷於譙石, 而遇敗於陽馬, 而重魏, 則以葉、蔡委於魏. 已得講於趙, 則劫魏, [魏]不為割. 困則使太後弟穣侯為和, 嬴則兼欺舅與母.
適燕者曰『以膠東』, 適趙者曰『以済西』, 適魏者曰『以葉、蔡』, 適楚者曰『以塞鄳阨』, 適斉者曰『以宋』, 此必令言如循環, 用兵如刺蜚, 母不能制, 舅不能約.
竜賈之戦, 岸門之戦, 封陵之戦, 高商之戦, 趙荘之戦, 秦之所殺三晉之民數百萬, 今其生者皆死秦之孤也. 西河之外, 上雒之地, 三川晉國之禍, 三晉之半, 秦禍如此其大也. 而燕、趙之秦者, 皆以爭事秦説其主, 此臣之所大患也.」
燕昭王不行. 蘇代複重於燕.
燕使約諸侯従親如蘇秦時, 或従或不, 而天下由此宗蘇氏之従約. 代、厲皆以壽死, 名顕諸侯.
太史公曰:蘇秦兄弟三人, 皆遊説諸侯以顕名, 其術長於権変. 而蘇秦被反閒以死, 天下共笑之, 諱學其術. 然世言蘇秦多異, 異時事有類之者皆附之蘇秦. 夫蘇秦起閭閻, 連六國従親, 此其智有過人者. 吾故列其行事, 次其時序, 毋令獨蒙悪聲焉.
소진이 죽고 난 뒤 사건의 진상이 모두 드러났다. 제가 나중에 이를 듣고는 연에 한을 품었고 연은 몹시 두려워했다.
<소대와 소려의 활약>
소진의 동생은 대(代)라고 했고, 대의 동생은 려(厲)라고 했는데 형의 성취를 보고는 모두 따라 배웠다.
소진이 죽자 소대는 연왕을 만나서 지난 일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면서 “신은 동주의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가만히 듣자하니 대왕의 의리가 대단히 높다고 하기에 이 보잘 것 없는 자가 호미와 괭이를 내려놓고 대왕께 뵙고자 달려왔습니다. 한단(邯鄲)에 가보니 (대왕에 대한 평가가) 동주에서 듣던 것에 비해 낮은 것을 보고는 내심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연의 조정에 와서 왕의 신하들과 관리들을 보니 왕께서는 천하의 현명한 군주이십니다.”
연왕이 “그대가 말하는 현명한 왕이란 무엇이오?”라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신이 듣기에 현명한 왕은 자신의 잘못을 듣는데 힘을 쓰고 좋은 말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에 신은 왕의 잘못을 아뢰기를 원하옵니다. 대저 제와 조는 연의 원수이고, 초와 위는 연을 돕는 나라입니다. 지금 왕께서는 원수를 받들어 돕는 나라를 치려고 하시니 연에 이롭지 않습니다. 왕께서 스스로 생각해보셔도 이는 잘못된 계책인데 이를 말하는 자가 없으니 충신이 아닙니다.”
연왕이 “저 제나라는 참으로 과인의 원수로서 토벌하고 싶소이다만 나라가 피폐해져 힘이 부족한 것이 걱정일 뿐이오. 그대가 연으로 제를 토벌할 수만 있다면 과인은 나라를 들어 그대에게 맡길 것이오.”라고 했다.
소대는 “천하에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일곱인데 연은 약한 처지입니다. 혼자 전쟁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누군가와 함께 하면 그 쪽이 강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으로 초에 붙으면 초가 강해지고, 서쪽으로 진에 의지하면 진이 강해지며, 중간의 한과 위에 붙으면 한과 위가 강해집니다. 그리고 함께 하는 나라가 강해진다는 것은 왕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제는 군주가 나이가 많고 자기 멋대로 합니다. 남으로 초를 5년 동안이나 공격하여 비축했던 것을 다 소모했고, 서쪽으로 진을 3년 동안 괴롭혀서 병사들이 피로를 감당하기 힘들며, 북으로 연과 싸워 삼군을 쓰러뜨리고 장수 둘을 잡아갔습니다. 그런데도 그 남은 병력으로 남쪽 5천 승을 가진 큰 송(宋)을 공격하여 12제후를 끌어 안았습니다. 그 군주는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고, 그 백성은 힘이 다했으니 무엇을 더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신이 듣기에 거듭 싸워 백성은 피로하고 군대를 오래 부려 병사들이 지칠 대로 지쳐있다고 합니다.”
연왕이 “내가 듣기로는 제에는 제수(濟水)와 황하(黃河)가 있어 지키기 편리하고 장성(長城)과 거방(鉅防)은 요새로 삼기에 충분하다던데 정말 그렇소?”라고 했다.
대답하길 “천시가 불리한데 제수와 황하가 있다한들 어찌 지킬 수 있겠습니까? 백성의 힘은 피폐해졌는데 장성과 거방이 있다한들 어찌 요새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지난날 제수 이서에서 징병하지 않은 것은 조를 방비하기 위한 것이었고, 황하 이북에서 징병하지 않은 것은 연을 방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수 서쪽과 황하 북쪽에서 모조리 징병하여 나라가 이미 피폐해졌습니다. 무릇 교만한 군주는 이익을 좋아하고, 나라를 망치는 신하는 재물을 탐내기 마련입니다. 왕께서 정말 조카와 동생을 인질로 보내는 것을 겁내지 않으시고, 보석, 옥, 비단 따위로 (제왕의) 측근들을 섬길 수 있다면 저들은 연에 고마워하며 가볍게 송을 멸망시키려 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제도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라 했다.
연왕은 “내가 마침내 그대의 말을 듣고 하늘의 명에 따르게 되는구려!”라고 했다. 연은 바로 아들을 제에 인질로 보냈다. 소려(蘇厲)는 연의 인질을 이용하여 제왕을 만나려고 했다. 제왕은 소진을 원망하고 있던 차라 소려를 가두려 했다. 연의 인질이 사죄했고, (소려도) 신하가 되길 청하여 제이 신하가 되었다.
연의 재상 자지(子之)는 소대와 혼인 관계를 통해 연의 권력을 갖고 싶어 소대로 하여금 제에서 인질을 모시게 했다. 제는 소대에게 연에 보고하게 했고, 연왕 쾌는 “제왕이 패주가 될 수 있겠소?”라고 물었다. 이에 “될 수 없습니다.”라고 하자 “어째서?”라고 물었고, “그 신하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이에 연왕은 오로지 자지를 신임하여 그에게 자리를 양보하자 연에 큰 난리가 났다. 제가 연을 토벌하여 왕 쾌와 자지를 죽였다. 연이 소왕(昭王)을 옹립하자 소대와 소려는 감히 연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제로 돌아왔다. 제는 그들을 잘 대했다.
소대가 위(魏)를 지나자 위가 연을 위해 소대를 잡았다. 제가 사람을 보내 위왕에게 “제가 송의 땅에 경양군(涇陽君)을 봉하겠다고 해도 진은 분명 받지 않을 것입니다. 진은 제를 통해 송의 땅을 얻는 것이 불리해서가 아니라 제왕과 소대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와 위가 이렇듯 심하게 불화하면 제는 진을 속일 수 없습니다. 진이 제를 믿고 제와 진이 연합하여 경양군이 송의 땅을 얻게 되면 위에게 유리할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왕께서는 소대를 동쪽 (제로) 보내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면 진은 틀림없이 제를 의심하고 소대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제와 진이 연합하지 않으면 천하는 다른 변고가 없을 것이고, 제를 토벌하자는 형세가 만들어질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에 소대를 풀어주었다. 소대는 송으로 갔고, 송은 그를 잘 대해주었다.
제가 송을 치자 송은 다급해졌고, 소대는 바로 연 소왕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말했다.
[대저 만 승의 반열에 있는 나라가 제에 인질을 보냄으로써 명성은 낮아지고 권세는 가벼워졌습니다. 만 승의 나라로 제를 도와 송을 정벌함으로써 백성은 피곤해지고 재력은 소모되었습니다. 송을 격파하고 초의 회수 북쪽을 침공하면 원수(제나라)는 강해지고 나라는 피해를 입습니다. 이 셋은 모두 나라로서는 큰 실패입니다. 그런데도 왕께서 이렇게 하시려는 것은 제의 신임을 얻으시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제는 오히려 왕을 믿지 않고 연을 더욱 더 미워하니 이는 왕의 계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대개 송에 회수 이북 땅이 보태지면 강력한 만 승의 나라가 될 것이고, 이를 제가 합병하게 되면 제나라가 하나 더 생기는 꼴입니다. 북이(北夷)는 사방 700리인데 여기에 노(魯)와 위(衛)를 보태면 만 승의 나라보다 강해질 것이고, 제가 이를 합병하면 제나라가 두 개 생기는 꼴입니다. 강한 제나라가 하나만 있어도 연은 겁을 먹고 버티지 못하는데 지금 세 개의 제나라가 연 앞에 나타날 판이니 그 재앙이 이만저만 아닐 것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일을 할 때 화를 복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바꿉니다. 제의 붉은 비단은 흰 비단에 물을 들인 것이지만 값은 열 배입니다. 월왕 구천은 회계산에서 곤욕을 치렀지만 다시 강력한 오를 깨부수고 천하를 제패했습니다. 이는 모두 화를 복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 것들입니다.
지금 왕께서 화를 복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시려면 제를 패주로 밀어서 존중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신들을 주 왕실에 보내 진의 부절을 태우며 ‘가장 좋은 계책으로는 진을 격파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오래도록 (서쪽에) 묶어두는 것이다’라고 맹서하게 합니다. 진을 배척해서 격파당하길 기다리면 진왕은 틀림없이 걱정할 것입니다. 진은 5대에 이르도록 제후들을 정벌해왔습니다만 지금은 제나라 밑에 있으니 진왕은 제나라를 궁지에 몰 수만 있다면 국력을 거리낌없이 기울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왕께서는 어찌 변사(辯士)를 보내 이런 말로 진왕에게 유세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연과 조가 송을 깨서 제를 살찌우고 제를 받들어 그 밑으로 들어가는 것은 연과 조에 이익되지 않습니다. 연과 조가 불리한 데도 형세가 이렇게 된 것은 진왕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왕께서는 어째서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내 연과 조를 서로 연결하지 않고 경양군과 고릉군(高陵君)을 먼저 연과 조에 보내려 하시는 것입니까? 진의 마음이 변해 이들을 인질로 삼게 한다면 연과 조는 진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진을 서제(西帝)로, 연을 북제(北帝)로, 조를 중제(中帝)로 삼아 삼제가 천하를 호령하게 될 것입니다. 한, 위가 말을 듣지 않으면 진이 이들을 칠 것이고, 제가 말을 듣지 않으면 연과 조가 제를 칠 것이니 천하에 누가 감히 말을 듣지 않겠습니까? 천하가 복종하면 한, 위를 몰아 제를 치게 하면서 ‘반드시 송의 땅을 내놓고, 초의 회수 이북을 돌려달라’고 할 것입니다. 송의 땅을 되돌려주고 초의 회수 이북 땅을 돌려주면 연과 조에 이롭습니다. 그리고 삼제의 병립은 연, 조가 원하는 바입니다. (연과 조가) 실리를 얻고 바라던 대로 명성이 높아지면 연과 조는 헌 신발짝 버리듯이 제를 버릴 것입니다.
지금 연과 조를 거두지 않으면 틀림없이 제의 패권이 성사될 것입니다. 제후들은 제의 편을 들고 왕이 이에 따르지 않으면 나라가 공격당할 것입니다. 연과 조를 거두지 않으면 나라는 위기에 처하고 명성을 떨어질 것입니다. 대저 존중과 안정을 버리고 위기와 비천함을 취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할 바가 아닙니다.”
진왕이 이 말을 듣는다면 분명 심장을 찔린 것 같을 것입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어째서 변사를 시켜 이런 말로 진왕에게 유세하려 하시지 않으십니까? 진왕이 분명 이 말을 취할 것이고, 제는 틀림없이 정벌당할 것입니다.
진을 취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외교이고, 제를 치는 것은 정당한 이익입니다. 중요한 외교를 존중하고 정당한 이익을 위해 힘쓰는 것이야말로 성스러운 왕께서 할 일입니다.]
연 소왕이 그 편지를 칭찬하면서 “선왕께서는 일찍이 소씨의 도움을 받았으나 자지의 난리로 소씨가 연을 떠났다. 연이 제에 복수하려면 소씨가 아니면 안 되겠구나.”라 하고는 바로 소대를 불러 다시 잘 대우하면 함께 제에 대한 토벌을 모의하여 끝내 제를 격파하자 민왕은 도망쳤다.
한참 뒤 진이 연왕을 초빙하자 연왕이 가려고 했으나 소대가 연왕을 말리며 이렇게 말했다.
[초는 지(枳)를 차지하고 나라가 망할 뻔 했으며, 제는 송을 얻고 나라가 망할 뻔했습니다. 제와 초가 지와 송을 얻지도 못하고 진을 섬기게 된 것은 왜이겠습니까? 공을 세운 나라가 진의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진이 천하를 취한 것은 의로운 행동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진은 폭력으로 공공연히 천하에 선포한 것입니다.초에다가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촉 땅의 군대가 민강(泯江)에 배를 띄워 여름 물길을 타고 장강으로 내려오면 닷새면 영(郢)에 이른다. 한중의 군대가 파강(巴江)에 배를 띄워 여름 물길을 타고 한수(漢水)를 내려오면 나흘이면 오저(五渚)에 이른다. 과인이 완(宛) 동쪽에서 군대를 모아 수(隨)를 향해 진군하면 지혜로운 자의 계책도 미치지 못하고, 용사의 분노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과인이 이미 화살로 매를 쏘듯 했기 때문이다. 왕은 천하의 군대를 기다렸다가 함곡관을 공격하려고 하니 이 얼마나 늦은 것인가!”
초왕은 이 때문에 17년 동안 진을 섬겼습니다.
진이 한을 향해서는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우리가 소곡(少曲)에서 일어나면 하루만에 태행산(太行山)의 길을 끊는다. 우리가 의양(宜陽)에서 일어나 평양(平陽)을 건드리면 이틀 안에 흔들리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서주와 동주를 넘어 정(鄭)을 건드리면 닷새만에 나라 전체를 점령할 것이다.”
한왕은 이럴 수 있다고 여겨서 진을 섬겼습니다.
진이 위에 대해서는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우리가 안읍(安邑)을 공격하고 여극(女戟)을 막으면 한은 태원(太原)에 이르는 길이 끊어질 것이다. 우리는 지(軹)를 내려가 남양(南陽), 봉(封), 기(冀)를 지나 서주와 동주를 포위할 것이다. 여름의 물길을 이용하여 가벼운 배를 띄워서 강한 쇠뇌를 앞세우고 날카러운 창을 뒤에 배치한 다음 형구(滎口)를 터버리면 위의 대량은 없어질 것이다. 또 백마(白馬)의 입구를 터버리면 위의 외황(外黃)과 제양(濟陽)은 없을 것이다. 숙서(宿胥)의 하구를 터버리면 위의 허(虛)와 돈구(頓丘)는 없다. 육지로 공격하면 하내를 격파하고 수로로 공격하면 대량을 없앨 것이다.”
위왕은 이를 인정하여 진을 섬겼습니다.
진이 안읍을 공격하자니 제가 구원할 것이 두려워 송을 제에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송왕이 무도하여 과인과 같은 나무 인형을 만들어 그 얼굴에 화살을 쏘았다. 과인은 길도 끊어지고 멀어서 공격할 수가 없다. 그러니 왕이 송을 격파하고 그 땅을 가진다면 과인이 가진 것이나 같을 것이다.”
그 뒤 (진은) 안읍을 취하고 여극을 막고서는 도리어 송을 공격한 죄를 제에다 돌렸습니다.
진이 한을 공격하려는데 천하가 한을 구원하러 나설 것이 두려워 제를 천하에다 맡긴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왕은 과인과 네 번이나 약속해놓고 네 번 모두 과인을 속였고, 천하를 이끌고 기필코 과인을 공격하겠다고 한 것이 세 번이다. 제가 있으면 진이 없고, 진이 있으면 제가 없으니 반드시 토벌하여 멸망시켜야 한다.”
그 뒤 의양, 소곡을 얻고, 인(藺), 이석(離石)을 점령하자 그 참에 제를 격파한 죄를 천하에다 돌렸습니다.
진이 위를 공격하려면서 초를 치켜세우고 남양을 초에게 맡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인은 정말 한과 절교하려고 했다. 균릉(均陵)을 깨고 맹(鄳)을 막는 것이 초에 유리하다면 과인이 얻은 것과 같을 것이다.”
그 뒤 위는 동맹을 깨고 진과 연합하자 (진은) 맹을 막은 일을 초의 죄로 돌렸습니다.
(진의) 군대가 임중(林中)에서 곤경에 처하자 연과 조를 치켜세우며 교동(膠東)을 연에 맡기고 제수 서쪽을 조에 맡겼습니다. 그 뒤 위와 강화하고 공자 연(延)을 인질로 잡자 바로 (위의 장수) 서수(犀首)로 하여금 잇따라 조를 공격하게 했습니다.
(진의) 군대가 초석(譙石)에서 상처를 입고 양마(陽馬)에서 패배를 맞이하자 위를 치켜세우며 엽(葉)과 채(蔡)를 위에 맡겼습니다. 그 뒤 조와 강화하자 위를 겁박하여 위에게 (엽과 채를) 떼어주지 않았습니다. 곤경에 처하자 태후의 동생 양후(穰侯)를 시켜 강화하게 하고, 상황이 좋아지자 외삼촌과 어머니를 속였습니다.
이렇듯 (진은) 연을 나무라면서 교동을 내세웠고, 조를 나무라면서 제수 서쪽을 구실삼았고, 위를 나무라면서 엽과 채를 내세웠고, 초를 나무라면서 맹애를 막았다는 것을 구실삼았고, 제를 나무라면서는 송을 거론했습니다. 이렇게 견책은 끊임없이 구실을 찾았고, 용병을 수를 놓듯이 하니 어머니도 통제하지 못하고 외삼촌도 단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용고(龍賈)와의 전투, 안문(雁門)에서의 전투, 봉릉(封陵)에서의 전투, 고상(高商) 전투, 조장(趙莊)과의 전투 등 진이 죽인 삼진의 백성이 수백 만이고, 지금 살아 남은 사람들도 진에 죽은 사람들의 고아들입니다. 서하(西河) 밖, 상락(上雒)의 땅, 삼천(三川) 진(晉)나라가 당한 피해가 삼진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진으로 인한 피해가 이렇게 큽니다. 그러나 진에 붙은 연과 조의 사람들은 모두 다투어 자신들의 군주에게 진을 섬기라고 권하니 신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연 소왕은 (진에) 가지 않았고, 소대는 다시 연에서 중용되었다.
<사마천의 논평>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소진의 형제 세 사람은 모두 제후들에게 유세하여 이름을 드러냈는데, 그 유세술은 권력의 변화를 잘 파악했다. 그런데 소진은 반간(反間)의 오명을 쓰고 죽었기 때문에 천하가 모두 그를 비웃었고 그 유세술을 배우길 꺼렸다. 그러나 소진에 대한 세상의 말들은 다른 것이 많고, 훗날 소진과 비슷한 일들은 모두 소진에게 갖다 붙인 것들이다. 소진이 민간에서 일어나 6국을 합쳐 합종시킨 것은 그의 지혜가 남달랐다는 것이다. 나는 그가 행한 일들을 시간 순서에 따라 기록하여 악평을 혼자 뒤집어 쓰지 않게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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