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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歷史와文學/史記世家

史記 卷四二. 鄭世家[釐公 · 簡公]

by 柳川 2019. 6. 23.

                                     卷四二. 鄭世家[公 · 簡公]

 

 

釐公五年, 鄭相子駟朝釐公, 釐公不礼. 子駟怒, 使厨人薬殺釐公,1) 赴諸侯曰「釐公暴病卒」. 立釐公子嘉, 嘉時年五歳, 是為簡公.

 

희공 5년, 정나라 재상 자사(子駟)가 희공을 조회했는데, 희공이 예로써 대우하지 않았다. 자사가 화가 나서 요리사를 시켜 독약으로 희공을 살해하고, 제후들에게 부고를 띄워 “희공께서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라 했다. 이어서 희공의 아들 희가(姬嘉)를 옹립하니, 이때 희가의 나이 겨우 5세였다. 그가 곧 간공(簡公)이다.

 

簡公元年, 諸公子謀欲誅相子駟, 子駟覚之, 反尽誅諸公子. 二年, 晉伐鄭, 鄭與盟, 晉去. 冬, 又與楚盟. 子駟畏誅, 故両親晉、楚. 三年, 相子駟欲自立為君, 公子子孔使尉止殺相子駟而代之. 子孔又欲自立. 子産曰:「子駟為不可, 誅之, 今又效之, 是亂無時息也.」於是子孔従之而相鄭簡公.

 

간공 원년, 여러 공자가 모의해 재상 자사를 죽이려고 했는데, 자사가 이 일을 미리 알고서 오히려 여러 공자들을 모두 살해했다.

 

2년, 진(晉)나라가 정나라를 공격했다. 이에 정나라가 진나라와 맹약을 맺자, 진나라 군대는 철수했다. 겨울에 정나라는 또 초 나라와 조약을 체결했다. 자사는 피살될까 두려워해, 진나라와 초 나라 양국과 서로 가깝게 지냈다.

 

3년, 승상 자사가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자, 공자 자공(子孔)이 위지(尉止)로 하여금 자사를 살해하게 하고 그를 승상에 임명했다. 자공이 또 왕의 자리에 오르려고 하자, 자산(子産)이 “자사가 이렇게 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당신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지금 당신은 또 그를 본받으려 하는데, 이렇게 되면 어지러움은 끝날 날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자공은 자산의 말을 듣고 정 간공의 재상이 되었다.

 

 

四年, 晉怒鄭與楚盟, 伐鄭, 鄭與盟. 楚共王救鄭, 敗晉兵. 簡公欲與晉平, 楚又囚鄭使者.

 

4년, 진(晉)나라는 정나라가 초 나라와 동맹을 맺은 것에 격노하여 정나라를 공격하자, 정나라는 또 진나라와 동맹을 맺었다. 초 공왕이 정나라에 구원병을 보내 진나라 병사들을 물리쳤다. 정 간공이 진나라와 조약을 맺으려 하자, 초 나라는 또 정나라의 사신을 구금했다.

 

十二年, 簡公怒相子孔専国権, 誅之, 而以子産為卿. 十九年, 簡公如晉請衛君還, 而封子産以六邑.2) 子産譲, 受其三邑. 二十二年, 呉使延陵季子於鄭, 見子産如旧交, 謂子産曰:「鄭之執政者侈, 難将至, 政将及子. 子為政, 必以礼;不然, 鄭将敗.」子産厚遇季子. 二十三年, 諸公子争寵相殺, 又欲殺子産. 公子或諫曰:「子産仁人, 鄭所以存者子産也, 勿殺!」乃止.

 

12년, 간공이 재상 자공이 국가의 전권을 휘두르는 데 분노해, 그를 죽이고 자산을 대신(大臣)에 임명했다.

 

 

19년, 간공은 진(晉)나라로 가서 위(衛)나라 왕을 돌려보내주도록 요청하고, 여섯 읍(邑)을 자산에게 봉지로 주었다. 자산은 사양하고, 세 읍만 받아들였다.

 

22년, 오(吳)나라는 연릉(延陵) 계자(季子)를 정나라에 파견했다. 계자는 자산을 만났는데, 마치 옛 친구를 만나는 것같이 하면서 자산에게 “정나라의 집정자는 방종 무례해, 곧 큰 난리가 닥칠 것이고, 정권은 장차 당신에게 넘어갈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정권을 잡는다면 반드시 예법에 따를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정나라는 장차 망할 것입니다.”라 했다. 자산은 계자를 극진히 대접했다.

 

23년, 여러 공자들이 총애를 얻으려고 서로 살해했고, 또 자산도 죽이려고 했다. 공자 중에 어떤 이가 “자산은 인덕이 있는 사람이고, 정나라가 생존하려면 자산이 있어야 하니 죽이지 말라.”라고 해, 그를 죽이지 않았다.

 

二十五年, 鄭使子産於晉, 問平公疾. 平公曰:「卜而曰実沈、台駘為祟, 史官莫知, 敢問?」対曰:「高辛氏有二子, 長曰閼伯, 季曰実沈, 居曠林,3) 不相能也, 日操干戈以相征伐. 后帝弗臧,4) 遷閼伯于商丘, 主辰,5) 商人是因, 故辰為商星.6) 遷実沈于大夏, 主參,7) 唐人是因, 服事夏、商,8) 其季世曰唐叔虞.9) 當武王邑姜方娠大叔, 夢帝謂己:10)『余命而子曰虞,11) 乃與之唐, 属之參而蕃育其子孫.』及生有文在其掌曰『虞』, 遂以命之. 及成王滅唐而国大叔焉. 故參為晉星.12) 由是観之, 則実沈, 參神也. 昔金天氏有裔子曰昧, 為玄冥師,13) 生允格、台駘.14) 台駘能業其官,15) 宣汾、洮,16) 障大沢,17) 以処太原.18) 帝用嘉之, 国之汾川.19) 沈、姒、蓐、黄実守其祀.20) 今晉主汾川而滅之.21) 由是観之, 則台駘, 汾、洮神也. 然是二者不害君身. 山川之神, 則水旱之菑禜之;22)日月星辰之神, 則雪霜風雨不時禜之;若君疾, 飲食哀樂女色所生也.」平公及叔嚮曰:「善, 博物君子也!」厚為之礼於子産.

 

25년, 정나라는 자산을 진(晉)나라에 보내어 진 평공(晉平公)의 병을 위문했다. 평공이 “점(占)에 실침(實沈), 대태(臺駘)가 이상하게 나왔는데, 사관(史官)도 그들의 내력을 알지 못하는데, 당신은 그들이 무슨 신(神)인지 아시오?”라고 물었다.

 

자산이 대답하기를 “고신씨(高辛氏)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이 알백(閼伯)이고 작은아들이 실침(實沈)이었습니다. 그들은 깊은 숲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서로 친하게 지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무기를 들고 서로 공격했습니다. 요(堯)임금은 그들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음을 알고, 알백을 상구(商丘)로 옮겨 신성(辰星)에 제사 지내도록 했습니다. 상나라 사람들은 이것을 계승해 왔기 때문에, 신성을 상성(商星)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또 실침을 대하(大夏)로 옮겨 삼성(參星)에 제사 지내도록 했습니다. 당(唐)나라 사람들은 이것을 계승하고, 하(夏)나라와 상(商)나라를 섬겨왔습니다. 그 말대(末代)에는 당숙우(唐叔虞)라고 불렀습니다.

 

주 무왕의 읍강(邑姜)이 대숙(大叔)을 임신했을 때, 꿈에 천제가 그녀에게 ‘내가 너에게 아들을 줄 테니 우(虞)라고 이름짓고, 그에게 당(唐)나라를 주어 삼성에 제사 지내도록 하면, 그의 자손은 번성하리라’라고 말했다 합니다. 대숙을 낳자, 손바닥에 무늬가 있었는데 ‘우(虞)’자와 같아 곧 우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이후에 주 성왕이 당나라를 멸하고, 대숙에게 그곳을 봉지로 주었기 때문에 삼성을 진성(晉星)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실침은 곧 삼성의 신(神)입니다.

 

또 옛날에 금천씨(金天氏)가 있었는데, 그 후예 중에 매(昧)가 있었습니다. 그는 현명(玄冥)의 우두머리였으며, 윤격(允格)과 대태(臺駘)를 낳았습니다. 대태는 부친의 관직을 이어받아 분수(汾水)와 조수(洮水)를 통하게 하고, 대택(大澤)의 제방을 개수하고 태원(太原)에서 살았습니다. 전욱(顓頊)이 그를 칭찬해 그에게 분수 유역에 봉지를 주고, 심(沈), 사(姒), 욕(蓐), 황(黃)의 네 국가에서 그의 제사를 관장하게 했습니다. 지금은 진(晉)나라가 분수 유역을 통치하면서 이러한 나라들을 없애버렸습니다.

 

이렇게 볼 때, 대태는 분수, 조수의 신입니다. 그러나 이 두 신은 국왕을 해칠 수 없습니다. 산천의 신령에게는 홍수나 가뭄의 재해를 만나면 그들에게 제사 지내 재해를 막아줄 것을 부탁하면 되고, 일월성수(日月星宿)의 신령에게는 풍우상설(風雨霜雪)이 제때에 내리지 않으면 그들에게 제사 지내 재난을 막아줄 것을 부탁하면 되는 것입니다. 국왕의 질병은 음식, 애악(哀樂), 여색(女色)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평공과 숙향(叔嚮)은 모두 “잘 들었소. 정말 지식이 풍부하신 군자이시구려.”라고 말하고, 풍부한 예물을 자산에게 선물했다.

 

二十七年夏, 鄭簡公朝晉. 冬, 畏楚霊王之彊, 又朝楚, 子産従. 二十八年, 鄭君病, 使子産会諸侯, 與楚霊王盟於申, 誅斉慶封.

 

27년 여름, 정 간공이 진(晉)나라 왕을 조회했다. 겨울에, 정 간공은 초 영왕(楚靈王)의 강대함을 두려워해, 또 초 나라 왕을 조회했다. 이때 자산도 수행했다.

 

28년, 정 간공이 병이 나자, 자산을 파견해 제후들과 회합하고, 초 영공과 신(申)에서 동맹을 맺었다. 초 나라 왕은 제나라의 대부 경봉(慶封)을 살해했다.

 

三十六年, 簡公卒, 子定公寧立. 秋, 定公朝晉昭公.

 

36년, 정 간공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정공(定公) 희녕(姬寧)이 왕위를 이었다. 가을에 정공이 진 소공(晉昭公)을 조회했다.

 

각주

1 集解徐広曰:「年表云子駟使賊夜弑僖公.」

2 集解服虔曰:「四井為邑.」

3 索隠賈逵曰:「曠, 大也.」

4 集解賈逵曰:「后帝, 尭也. 臧, 善也.」

5 集解賈逵曰:「商丘在漳南.」杜預曰:「商丘, 宋地.」服虔曰:「辰, 大火, 主祀也.」

6 集解服虔曰:「商人, 契之先, 湯之始祖相土封閼伯之故地, 因其故国而代之.」

7 集解服虔曰:「大夏在汾澮之閒, 主祀參星.」杜預曰「大夏, 今晉陽県.」

8 集解賈逵曰:「唐人謂陶唐氏之胤劉累事夏孔甲, 封於大夏, 因実沈之国, 子孫服事夏、商也.」 正義括地志云:「故唐城在絳州翼城県西二十里. 徐才宗国都城記云『唐国, 帝尭之裔子所封. 春秋云「夏孔甲時有尭苗冑劉累者, 以豢竜事孔甲, 夏后嘉之, 賜曰御竜氏, 以更豕韋之後. 竜一雌死, 潜醢之以食夏后. 既而使求之, 懼而遷于魯県」. 夏后蓋別封劉累之後于夏之墟, 為唐侯. 至周成王時, 唐人作亂, 成王滅之而封太叔, 遷唐人子孫于杜, 謂之杜伯, 范氏所云在周為唐杜氏也』. 地記云『唐氏在大夏之墟, 属河東安県. 今在絳城西北一百里有唐城者, 以為唐旧国』.」然則叔虞之封即此地也.

9 集解杜預曰:「唐人之季世, 其君曰叔虞.」

10 集解賈逵曰:「帝, 天也. 己, 武王也.」

11 集解杜預曰:「取唐君之名.」

12 集解賈逵曰:「晉主祀參, 參為晉星.」

13 集解服虔曰:「金天, 少皞也. 玄冥, 水官也. 師, 長也. 昧為水官之長.」

14 集解服虔曰:「允格、台駘, 兄弟也.」

15 集解服虔曰:「脩昧之職.」

16 集解賈逵曰:「宣猶通也. 汾、洮, 二水名.」

17 集解服虔曰:「陂障其水也.」

18 集解服虔曰:「太原, 汾水名.」杜預曰:「太原, 晉陽也, 台駘之所居者.」

19 集解服虔曰:「帝顓頊也.」

20 集解賈逵曰:「四国台駘之後也.」

21 集解賈逵曰:「滅四国.」

22 集解服虔曰:「禜為営, 攅用幣也. 若有水旱, 則禜祭山川之神以祈福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