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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歷史와文學/史記世家

史記 卷四五. 韓世家[獻子]

by 柳川 2019. 6. 23.

卷四五. 韓世家[獻子]

 

 

 

韓之先與周同姓,1) 姓姫氏. 其後苗裔事晉, 得封於韓原,2) 曰韓武子. 武子後三世3)有韓厥, 従封姓為韓氏.

 

 

한(韓)나라의 조상은 주(周) 왕조와 동성인 희씨(姬氏)이다. 후에 그 후예들이 진(晉)나라를 섬겨서, 한원(韓原)에서 봉토를 받아 한 무자(韓武子)라 했다. 한 무자의 3대 후손 중에 한궐(韓厥)이 있었는데, 그는 봉토의 이름을 좇아서 한씨(韓氏)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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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索隠按:左氏傳云「邗、晉、應、韓, 武之穆」, 是武王之子, 故詩称「韓侯出祖」, 是有韓而先滅. 今拠此文, 云「其後裔事晉, 封于韓原, 曰韓武子」, 則武子本是韓侯之後, 晉又封之於韓原, 即今之馮翊韓城是也. 然按系本及左傳旧説, 皆謂韓萬是曲沃桓叔之子, 即是晉之支庶. 又国語叔向謂韓宣子能修武子之徳, 起再拝謝曰「自桓叔已下, 嘉吾子之賜」, 亦言桓叔是韓之祖也. 今以韓侯之後別有桓叔, 非関曲沃之桓叔, 如此則與太史公之意亦有違.

2 正義括地志云:「韓原在同州韓城県西南八里. 又韓城在県南十八里, 故古韓国也. 古今地名云韓武子食菜於韓原故城也.」

3 索隠系本云:萬生賕伯, 賕伯生定伯簡, 簡生輿, 輿生献子厥.

 

 

 

韓厥, 晉景公之三年, 晉司冦屠岸賈将作亂, 誅霊公之賊趙盾. 趙盾已死矣, 欲誅其子趙朔. 韓厥止賈, 賈不聴. 厥告趙朔令亡. 朔曰:「子必能不絶趙祀, 死不恨矣.」韓厥許之. 及賈誅趙氏, 厥称疾不出. 程嬰、公孫杵臼之蔵趙孤趙武也, 厥知之.

 

 

진 경공(晉景公) 3년, 진나라의 사구(司寇) 도안고(屠岸賈)가 난을 일으켜서, 진 영공(晉靈公)의 적신(賊臣)인 조순(趙盾)을 죽이려고 했다. 조순이 이미 죽었으므로, 다시 그의 아들 조삭(趙朔)을 죽이려 했다. 한궐이 도안고를 멈추게 했으나, 도안고가 듣지 않았다.

 

 

한궐이 조삭에게 알리어 도망치도록 했다. 조삭이 말하기를 “그대는 분명 조(趙) 씨의 제사가 끊어지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니, 내가 죽어도 여한은 없겠지요?”라고 하니, 한궐이 이를 들어주었다. 도안고가 조삭을 죽일 때에 한궐은 아프다고 하고 나가지 않았다. 정영(程嬰), 공손저구(公孫杵臼)가 조씨 집안의 고아 조무(趙武)를 숨겨둔 것을 궐은 알고 있었다.

 

 

景公十一年, 厥與郤克将兵八百乗伐斉, 敗斉頃公于鞍,1) 獲逢丑父. 於是晉作六卿, 而韓厥在一卿之位, 号為献子.

 

 

경공 11년에는 한궐과 극극(郤克)이 8백 승(乘)의 전차를 이끌고 제나라를 공격해, 제 경공(齊頃公)을 안(鞍)에서 패배시키고 봉축보(逢丑父)를 생포했다. 이때 진(晉)나라는 육경(六卿)을 두었는데, 한궐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헌자(獻子)라고 불렸다.

 

 

晉景公十七年, 病, 卜大業之不遂者為祟. 韓厥称趙成季之功, 今後無祀, 以感景公. 景公問曰:「尚有世乎?」厥於是言趙武, 而复與故趙氏田邑, 続趙氏祀.

 

 

진 경공 17년에는 경공이 병에 걸려서 점을 쳐보니, 대업(大業)을 잇지 않아서 귀신이 들린 것이라고 나왔다. 한궐이 조성계(趙成季)의 공을 찬양하며, 지금 제사 지낼 후사가 없음을 말하면서 경공을 감동시켰다. 경공이 묻기를 “그에게도 아직 후손이 있는가?”라고 하니, 한궐이 이에 조무(趙武)를 말하자, 경공이 다시금 그에게 옛 조씨의 전읍(田邑)을 주어 계속 조씨의 제사를 이어가도록 했다.

 

 

각주

1 正義音安. 括地志云:「故鞍城今俗名馬鞍城, 在済州平陰県十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