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四五. 韓世家[宣子 · 宣恵王]
晉悼公之(十)[七]年, 韓献子老. 献子卒, 子宣子代. 宣字徙居州.1)
진 도공(晉悼公) 7년에는 한 헌자가 은퇴했다. 헌자가 죽고, 아들 선자(宣子)가 그의 직책을 이었다. 선자는 주(州)로 옮겨 살았다.
晉平公十四年, 呉季札使晉, 曰:「晉国之政卒帰於韓、魏、趙矣.」晉頃公十二年, 韓宣子與趙、魏共分祁氏、羊舌氏十県. 晉定公十五年, 宣子與趙簡子侵伐范、中行氏. 宣子卒, 子貞子代立. 貞子徙居平陽.2)
진 평공(晉平公) 14년에는 오(吳)나라의 계찰(季札)이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말하기를 “진나라의 정치가 결국에는 한(韓), 위(魏), 조(趙)에 돌아갔군요.”라 했다.
진 경공(晉頃公) 12년에는 한 선자(韓宣子)가 조, 위와 함께 기씨(祁氏), 양설씨(羊舌氏)의 10현을 나누어 가졌다. 진 정공(晉定公) 15년에는 선자와 조 간자(趙簡子)가 범씨(范氏), 중항씨(中行氏)를 공격했다. 선자가 죽고, 아들 정자(貞子)가 대를 이었다. 정자는 평양(平陽)으로 옮겨 살았다.
각주
1 索隠宣子名起. 州, 今在河内是也. 正義括地志云:「懐州武徳県本周司冦蘇忿生之州邑也.」
2 索隠系本作「平子」, 名須, 宣子子也. 又云「景子居平陽」. 平陽在山西. 宋忠曰「今河東平陽県」. 正義平陽, 晉州城是.
宣恵王五年, 張儀相秦. 八年, 魏敗我将韓挙.1) 十一年, 君号為王. 與趙会区鼠. 十四, 秦伐敗我鄢.2)
선혜왕 5년에는 장의(張儀)가 진(秦)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8년에는 위나라가 한나라의 장수 한거(韓擧)를 패배시켰다. 11년에는 군(君)의 호칭을 왕이라 했다. 조(趙)나라와 우서(區鼠)에서 회맹했다. 14년에는 진(秦)나라가 한나라의 언(鄢)을 함락시켰다.
十六年, 秦敗我脩魚,3) 虜得韓将獏、申差於濁沢.4) 韓氏急, 公仲5)謂韓王曰:「與国非可恃也. 今秦之欲伐楚久矣, 王不如因張儀為和於秦, 賂以一名都, 具甲, 與之南伐楚, 此以一易二之計也.」6)韓王曰:「善.」乃警公仲之行,7) 将西購於秦.8) 楚王聞之大恐, 召陳軫告之. 陳軫曰:「秦之欲伐楚久矣, 今又得韓之名都一而具甲, 秦韓并兵而伐楚, 此秦所祷祀而求也. 今已得之矣, 楚国必伐矣. 王聴臣為之警四境之内, 起師言救韓, 命戦車満道路, 発信臣, 多其車, 重其幣, 使信王之救己也. 縦韓不能聴我, 韓必徳王也,9) 必不為鴈行以來,10) 是秦韓不和也, 兵雖至, 楚不大病也. 為能聴我絶和於秦, 秦必大怒, 以厚怨韓. 韓之南交楚, 必軽秦;軽秦, 其應秦必不敬:是因秦、韓之兵而免楚国之患也.」楚王曰:「善.」 乃警四境之内, 興師言救韓. 命戦車満道路, 発信臣, 多其車, 重其幣. 謂韓王曰:「不谷国雖小, 已悉発之矣. 願大国遂肆志於秦, 不谷将以楚殉韓.」11)韓王聞之大説, 乃止公仲之行.12) 公仲曰:「不可. 夫以実伐我者秦也, 以虚名救我者楚也. 王恃楚之虚名, 而軽絶彊秦之敵, 王必為天下大笑. 且楚韓非兄弟之国也, 又非素約而謀伐秦也. 已有伐形, 因発兵言救韓, 此必陳軫之謀也. 且王已使人報於秦矣, 今不行, 是欺秦也. 夫軽欺彊秦而信楚之謀臣, 恐王必悔之.」韓王不聴, 遂絶於秦. 秦因大怒, 益甲伐韓, 大戦, 楚救不至韓. 十九年, 大破我岸門.13) 太子倉質於秦以和.
16년에는 진나라가 수어(脩魚)에서 한나라 군을 격퇴시키고, 탁택(濁澤)에서 한나라의 장수 수, 신치(申差)를 포로로 삼았다. 한나라가 다급해지자, 공중(公仲)이 한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동맹국을 믿을 수 없습니다. 지금 진(秦)나라가 초를 공격하고자 한 것이 오래인데, 왕께서는 장의로 하여금 진나라와 화친을 맺고, 진나라에 유명한 성 하나를 뇌물로 준 연후에 병력을 정비해, 진나라와 남쪽의 초 나라를 공격하시면, 이것이 바로 하나로서 둘을 얻는 계략입니다.”라고 하니, 한나라 왕이 말하기를 “좋소”라 했다. 공중치(公仲侈)에게 몰래 길을 떠나게 하고, 서쪽으로 진나라와 강화를 맺을 작정이었다. 초 나라 왕이 이를 듣고는 몹시 화가 나서, 진진(陳軫)을 불러 이 소식을 전했다.
진진이 말하기를 “진나라가 초 나라를 공격하고자 한 것이 오래되었는데, 지금 다시 한나라의 유명한 성 하나를 얻고, 군대를 준비한다면 진과 한 나라가 합동으로 초 나라를 공격할 것이고, 이는 진나라가 기구하던 바입니다. 지금 이미 그들은 이것을 얻었으니, 초 나라는 반드시 공격당할 것입니다. 왕께서는 진나라의 말을 들어서 국경 사방에 경계를 시키고, 군사를 일으켜 한나라를 구원한다고 말씀하시고, 전차를 길거리에 가득 채우도록 하시고, 사신을 한나라에 보내는데, 수레를 몇 대 더 보내고, 그 속에 재물을 많이 넣어, 왕께서 한나라를 구원하고자 하는 뜻을 믿도록 하십시오.
한나라가 우리 뜻을 따를 수는 없다고 해도, 한나라 왕이 왕께 대한 고마움을 가지고, 제나라와 합심해 공격해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는 진, 한 나라에게 서로 불화를 조장하는 것으로, 비록 공격을 받을지라도 크게 위태롭지 않을 것입니다. 저의 말을 듣고서 진나라와 우호를 끊는다면, 필경 진나라가 대노해, 한나라에게 크게 원한을 가질 것입니다. 한나라는 남쪽으로 초 나라와 친교를 맺고, 진나라를 가벼이 볼 것이며, 진나라를 가벼이 보면 진나라를 대하는 태도도 불경스러울 것인즉, 이것이 바로 진, 한 양국의 모순을 이용해 우리나라가 화를 면하는 길입니다.”라 했다.
초 나라 왕이 말하기를 “좋소”라고 하고, 이에 국경 사방을 경계하게 하고, 군사를 일으켜서 한나라를 구원한다고 말했다. 전차를 온 길가에 가득 채우고, 사신을 한나라에 보냈는데, 수레를 많이 추가해 재물을 많이 보냈다. 한나라 왕에게 이르기를 “저희 나라가 비록 작으나, 모든 군대를 출동시켰습니다. 원컨대 왕께서 진나라와의 전쟁에서 뜻대로 하시면 저희는 사력을 다해 지원하겠습니다.”라고 하니, 한나라 왕이 이를 듣고는 크게 기뻐해 공중치의 행차를 멈추게 했다.
공중치가 말하기를 “안 됩니다. 실제로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진나라이고, 명목상으로 우리를 돕겠다고 하는 것은 초 나라입니다. 왕께서는 초 나라의 헛소리에 강력한 진나라와 가벼이 절교하고 그들과 적이 된다면, 반드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황차 초 나라와 우리는 형제 나라도 아니고, 또한 평소에 진나라를 공격할 모의를 한 것도 아닙니다. 이미 진과 한 나라가 초 나라를 공격할 움직임이 있자, 군사를 출병해 한나라를 지원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필시 진진의 음모입니다. 더욱이 왕께서 이미 사람을 보내어 진나라에 알렸는데, 지금 가지 않는다면, 이는 진나라를 기만하는 것입니다. 대저 왕께서 강력한 진나라를 가벼이 속이고, 초 나라의 신하 말을 믿는다면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라 했다.
한나라 왕이 이를 듣지 않고, 이에 진나라와 절교했다. 진나라가 이 때문에 대노하여 군사를 보충해 한나라를 공격했다. 큰 전쟁이 벌어졌으나, 초 나라의 지원군은 오지 않았다. 19년에는 진나라 군이 안문(岸門)에서 한나라 군을 대파했다. 태자 창(倉)이 인질로 잡히고 강화를 맺었다.
二十一年,14) 與秦共攻楚,15) 敗楚将屈丐, 斬首八萬於丹陽.16) 是歳, 宣恵王卒, 太子倉立, 是為襄王.17)
21년에는 진나라와 함께 초 나라를 공격해, 초 나라의 장수 굴개(屈丐)를 격침시키고, 단양(丹陽)에서 초 나라 군 8만 명을 죽였다. 이해에 선혜왕이 죽고 태자 창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양왕(襄王)이다.
각주
1 索隠韓挙則是韓将不疑, 而紀年云韓挙, 趙将, 蓋挙先為趙将, 後入韓. 又紀年云其敗當韓威王八年, 是不同也.
2 集解徐広曰:「潁川鄢陵県. 音於乾反.」 正義今許州鄢陵県西北十五里有鄢陵故城是也.
3 索隠地名.
4 集解徐広曰:「一云鯁、申差. 長社有濁沢.」 索隠獏、申差, 二将. 獏音痩, 亦作「鯁」. 正義按:濁沢者蓋誤, 當作「観沢」. 年表云「秦恵文王更元八年, 與韓戦, 斬首八萬. 韓宣恵王十六年, 秦敗我脩魚, 得将軍申差. 魏哀王二年, 斉敗我観沢. 趙武霊王九年, 與韓、魏撃秦. 斉湣王七年, 敗魏、趙観沢」, 濁沢定誤矣. 徐広又云「濁沢在長社」, 不暁錯誤之甚. 括地志云「観沢在魏州頓丘県東十八里」.
5 索隠韓相国, 名侈.
6 索隠一, 謂名都也. 二, 謂使不伐韓而又與之伐楚也.
7 索隠警, 戒也. 戦国策作「衛」.
8 索隠戦国策作「講」. 講亦謀議, 與購求意通.
9 索隠言韓王信楚之救, 雖不能聴待楚救至, 折入於秦, 猶徳於楚也.
10 索隠言韓以楚必救己, 己雖随秦來戦, 猶徳於王, 故不為鴈行而來, 言不同心旅進也.
11 索隠殉, 従死也. 言以死助韓.
12 索隠止不令西之秦.
13 集解徐広曰:「潁陰有岸亭.」 正義括地志云:「岸門在許州長社県西北十八里, 今名西武亭矣.」
14 集解徐広曰:「周王赧之三年也.」
15 集解徐広曰:「囲景痤也.」
16 索隠故楚都, 在今均州. 正義左傳[釈]例云:「楚居丹陽, 今枝江県故城是也.」
17 集解徐広曰:「一云周赧王六年, 韓襄哀王三年, 張儀死. 赧王九年, 襄哀王六年, 秦昭王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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