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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書/論語

顔淵。第 6章. 子張問明 ~ 第 8章. 君子質而已矣,

by 柳川 2020. 1. 9.

第 6章

 

子張問明, 子曰, 「浸潤之譖, 膚受之愬, 不行焉, 可謂明也已矣。浸潤之譖, 膚受之愬, 不行焉, 可謂遠也已矣。」

 

 

자장이 현명함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물이 스며들 듯 은근하게 하는 참소와 피부에 와 닿을 듯 절박하게 하는 하소연이 먹혀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현명하다고 할 수 있다. 물이 스며들 듯 은근하게 하는 참소와 피부에 와 닿을 듯 절박하게 하는 하소연이 먹혀들지 않는다면 멀리 내다본다고 할 수 있다.”

 

 

[본문 해설]

 

어떤 자가 다른 사람을 참소하는데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듯이 자꾸 바람을 넣어주면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믿게 된다. 이것이 침윤의 참소로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지는 참소이고, 부수의 호소는 단시간내에 효과를 보게 하는 호소로 매우 애통해하거나 통곡을 하면서 바로 피부에 닿게 하는 참소를 말한다. 이런 것을 잘 가려 행해지지 못하도록 하면 이것이 밝은 것이며 또한 밝은 빛이 멀리까지 비쳐(멀리 볼 수 있어) 참소가 행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서서히 젖어드는 참소와 살갗에 닿는 절박한 하소연이 행해지지 않는다.’라는 말은 집안에 거처하는 데에 있어서 더욱 절실하다. ‘서서히 젖어드는 참소’는 부녀자의 말이고, ‘피부로 절박하게 느끼게 하는 하소연’은 자제(子弟)의 말이다. 부녀자의 참소와 자제의 하소연이 행해지지 않게 하면, 집안을 다스리는 도리에 있어서 반절은 넘었다고 할 수 있다.

멀다는 말은 밝음이 지극할 뿐만 아니라 역시나 멀리까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자(朱子)의 ‘불폐어근(不蔽於近)’이라는 네 글자는 명(明)과 원(遠) 두 가지를 극진히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대체로 밝음이 지극하면 멀리까지 생각할 수 있다.  <讀書箚義>

 

 

○浸潤 如水之浸灌滋潤, 漸漬而不驟也. 譖 毁人之行也. 膚受 謂肌膚所受, 利害切身, 如易所謂剝床以膚, 切近災者也. 愬 愬己之冤也. 毁人者漸漬而不驟, 則聽者不覺其入而信之深矣, 愬寃者急迫而切身, 則聽者不及致詳而發之暴矣. 二者難察而能察之 則可見其心之明而不蔽於近矣, 此亦必因子張之失而告之. 故 其辭繁而不殺, 以致丁寧之意云. 

○楊氏曰驟而語之, 與利害不切於身者不行焉, 有不待明者, 能之也. 故 浸潤之譖 膚受之愬 不行然後 謂之明而又謂之遠, 遠則明之至也, 書曰視遠惟明.

 

漬 : 담글 지. 담그다. 물에 담금. 스미다. 뱀. 물들이다. 옮다. 전염함. 앓다. 

 

○침윤은 물이 점차 들어와 불어나는 것과 같으니 점차 잠겨 갑자기 하지 않는 것이라. 참은 사람의 행동을 허무는 것이라. 부수는 살갗이 받는 바에 이롭고 해로움이 몸에 간절함이, 주역(박괘 육사효)의 이른바 박상이부(상을 깎는데 살로써 하니)와 같으니 심히 재앙에 가깝다는 것과 같음을 이름이라. 소는 몸의 원통함을 호소함이라. 남을 허무는 자가 점점 적시면서 갑자기 아니하면 듣는 자가 그 들어옴을 깨닫지 않고 믿음이 깊어지고, 원통함을 호소하는 자가 급박하게 몸에 간절하게 하면 자세함을 이루는데 미치지 못하고 발함을 갑자기 함이라(덩달아 흥분함이라). 두 가지는 살피기 어려운데 살필 수 있으면 곧 가히 그 마음의 밝음을 볼 수 있고 가까운데 가리워지지 않으니, 이것은 또한 반드시 자장의 실수로 인하여 가르쳐주심이라. 그러므로 그 말이 번거롭되(두 번을 거듭한 것) 덜지 아니하여서 써 정녕한(참으로 밝다는) 뜻을 이루느니라. 

○양씨 가로대 갑자기 말하는 것과 이해가 몸에 절실하지 않는 자가 행하지 못하면 밝음을 기다리지 않는 자라도 능할 것이라. 그러므로 침윤의 참소와 부수의 호소가 행하지 못한 연후에 밝다 이를 것이고 또 멀다 이를 것이니, 먼 것은 곧 밝음의 지극함이니 『서경』에 가로대 보는 것이 멀어서 오직 밝다 하니라.

 

 

 

 

 

第 7章

 

子貢問政,  子曰, 「足食足兵, 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 何先?」  曰, 「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 何先?」 曰,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자공이 정사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양식을 풍족하게 하고 군대를 충실하게 갖추고, 백성이 나라를 믿게 하는 것이다.”

자공이 물었다.

“부득이 꼭 버려야 한다면 이 셋 중에서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대를 버려야 한다.”

자공이 거듭 물었다.

“부득이해서 꼭 버려야 한다면 나머지 둘 중에서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양식을 버려야 한다. 자고로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지만, 백성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존립하지 못하게 된다.”

 

 

 

○言倉廩實而武備脩然後, 敎化行而民信於我, 不離叛也.

 

○창고가 차고 무기가 갖추어지고 수련된 연후에 교화가 행해지고 백성이 나를 믿어서 떠나고 배반하지 않음을 말함이라.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 何先?」  曰, 「去兵。」

 

자공이 물었다.

“부득이 꼭 버려야 한다면 이 셋 중에서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대를 버려야 한다.”

 

 

○言食足而信孚, 則無兵而守固矣.

 

○음식이 족하고 믿어주면 군사는 없어도 지킴이 견고하리라.

 

孚 : 미쁠 부. 미쁘다. 참됨. 껍질. 알을 까다. 부화함. 붙이다. 기르다. 자람. 빛나다. 옥이 빛나는 모양.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 何先?」 曰,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자공이 거듭 물었다.

“부득이해서 꼭 버려야 한다면 나머지 둘 중에서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양식을 버려야 한다. 자고로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지만, 백성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존립하지 못하게 된다.”

 

 

 

○民 無食必死. 然 死者 人之所必不免, 無信則雖生而無以自立, 不若死之爲安. 故 寧死而不失信於民, 使民亦寧死而不失信於我也. 

○程子曰, 孔門弟子善問, 直窮到底, 如此章者非子貢 不能問, 非聖人不能答也. 愚 謂以人情而言 則兵食足而後, 吾之信可以孚於民, 以民德而言 則信本人之所固有, 非兵食 所得而先也. 是以 爲政者當身率其民, 而以死守之, 不以危急而可棄也.

 

○백성은 먹는 것이 없으면 반드시 죽음이라. 그러나 죽는 것은 사람이 반드시 면치 못하는 것이고, 믿음이 없으면 비록 살아도 스스로 섬이 없으니 죽음이 편안함이 되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차라리 죽을지언정 백성에게 믿음을 잃지 않아야 백성으로 하여금 또한 차라리 죽을지언정 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음이라. 

○정자 가라사대 공자의 문인 제자가 묻기를 잘하여 곧바로 끝까지 밑바닥에 이르니, 이 장 같은 것은 자공이 아니면 능히 묻지 못하고 성인이 아니면 능히 답하지 못함이라. 우는 이르되 인정으로써 말하면 군사와 먹는 것이 족한 뒤에 나의 믿음이 가히 써 백성에게 믿음이고, 백성의 덕으로써 말한다면 신은 본래 사람이 굳게 두는 바이니 군사와 먹는 것이 얻어 먼저할 것이 아니니라. 이로써 정치를 하는 자가 마땅히 몸소 그 백성을 거느려 죽음으로써 지켜서 위급함으로써 가히 버리지 못하니라.

 

 

 

 

 

第 8章

 

棘子成曰, 「君子質而已矣, 何以文爲。」 子貢曰, 「惜乎 ! 夫子之說 君子也, 駟不及舌。文猶質也, 質猶文也, 虎豹之鞟, 猶犬羊之鞟。」

 

 

극자성(棘子成)이 말하였다.

“군자는 질박하면 되는 것이지 어디에 문채를 쓰겠는가.”

자공(子貢)이 말했다.

“애석하다. 그대의 말이 군자답기는 하나,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도 그대의 혀를 따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문채와 질박은 똑같이 중요하고 질박과 문채는 비중이 같다. 범이나 표범의 가죽도 털을 제거하면 개나 양의 털없는 가죽과 마찬가지이다.”

 

鞟 : = 鞹. 가죽 곽. 가죽. 털을 없앤 가죽. 생가죽, 털째 말린 가죽.

 

 

[해설]

 

개가죽이나 양가죽은 털이 있건 없건 간에 모두 호랑이나 표범 가죽보다 못하니, 결론적으로는 질(質)이 중요하다. 그러나 질박이 지나쳐 촌스러워지는 경우를 군자는 취하지 않으니 또한 어찌하겠는가. 단, 은(殷)나라 말기에 질이 지나친 폐단이 나타나긴 했지만, 주(周)나라 말기 문(文)이 지나친 폐단보다는 더 나았으니, 공자가 임방(林放)에게 답한 두 ‘영(寧)’ 자는 진실로 만세토록 변치 않을 말씀이다. 그렇기는 하나 주나라 말기부터 오늘날까지 끝내 질박함을 회복하지 못했으니 어찌하겠는가, 어찌하겠는가.

 

林放問禮之本, 子曰, 「大哉 ! 問 ! 禮與其奢也 寧儉, 喪與其易也 寧戚。」 <八佾 第4.>

 

 

○棘子成 衛大夫 疾, 時人 文勝故 爲此言.

 

○극자성은 위나라 대부 질이니, 당시 사람들이 문이 이긴(꾸미는 것을 우선시하는) 고로 이 말을 함이라.

 

 

子貢曰, 「惜乎 ! 夫子之說 君子也, 駟不及舌。

 

자공(子貢)이 말했다.

“애석하다. 그대의 말이 군자답기는 하나,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도 그대의 혀를 따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 여기서 夫子는 벼슬하는 사람을 높여서 부르는 말로 극자성을 가리킴.

 

 

 [본문 해설]

 

사람이 착하면 된다는 것은 군자다운 말이지만, 質이면 그만이지 文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은 함부로 내뱉을 말이 아니란 것이다. 말 한번 하기가 어려운데 그렇게 함부로 말을 내뱉어서는 안 됨을 경계한 말이다. 駟不及舌(사불급설), 곧 대부의 수레를 끄는 네 마리의 말이 혀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은 아무리 잘 달리는 말이라도 실수한 혀를 따라 잡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한 번 말을 내뱉으면 그것은 사마보다 더 급히 달려 다시는 주워담을 수 없으니 말함에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는 의미이다.

 

 

○言子成之言 乃君子之意, 然 言出於舌則駟馬不能追之, 又惜其失言也.

 

○자성의 말이 이에 군자의 뜻이나 그러나 말이 혀에서 나오면 사마가 능히 좇지 못하니 또한 그 실언을 애석히 여기는 말이라.

 

 

文猶質也, 質猶文也, 虎豹之鞟 猶犬羊之鞟.

 

문채와 질박은 똑같이 중요하고 질박과 문채는 비중이 같다. 범이나 표범의 가죽도 털을 제거하면 개나 양의 털없는 가죽과 마찬가지이다.”

 

 

[본문해설]

 

문과 질이 같다는 것은 마음씨도 아름다워야 하고 또 공부도 많이 하여야 하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같은 것이다. 극자성의 말대로라면 가죽을 벗겨놓은 범과 표범과 개와 양을 분간할 수 없다는 뜻인데 겉가죽인 무늬를 벗겨놓는다고 하여 군자와 소인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鞟 皮去毛者也. 言文質等耳, 不可相無 若必盡去其文, 而獨存其質, 則君子小人 無以辨矣. 夫棘子成 矯當時之弊 固失之過, 而子貢 矯子成之弊, 又無本末輕重之差, 胥失之矣.

 

○곽은 가죽의 털을 벗겨낸 것이라. 문과 질이 등수가 같아서 가히 서로 없지 아니하니 만약 반드시 그 무늬를 다 벗겨내고 홀로 그 질로 존하면 곧 군자 소인이 써 분별함이 없음이라. 무릇 극자성은 당시의 폐단을 교정했으나 진실로 지나친데서(아예 문이 없어야 한다는 것) 실수하고, 자공은 극자성의 폐단을 바로잡았으나 또한 본말 경중의 차이가 없으니, 서로가 잃음이라.

 

 

[앞주해설]

 

주자는 앞서 옹야편 제16장에서 공자가 표현한 "바탕이  겉모습보다 나으면 촌스럽고,  겉모습이 본바탕보다 나으면  화려하니,  겉모습과 본바탕이 잘 조화를 이룬 후에야 군자라 할 것이다."라고 한 대목에 비추어 극자성과 자공을 비판하였다. 극자성은 당시의 풍토가 내실을 중요시하지 않고 꾸미기만을 좋아하기에 거론한 말인데, 자공은 문과 질의 본과 말, 무겁고 가벼움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취급하였기에 둘 다 실수하였다고 하였다.

 

子曰,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然後君子。」<雍也 第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