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四書/孟子

公孫丑 <下> 第 2章

by 柳川 2020. 5. 6.

第 2章

 

孟子將朝王, 王使人來曰, 「寡人如就見者也, 有寒疾不可以風。朝將視朝, 不識可使寡人得見乎?」  對曰, 「不幸而有疾, 不能造朝。」 明日出弔於東郭氏, 公孫丑曰, 「昔者辭以病, 今日弔,  或者不可乎。」  曰, 「昔者疾今日愈, 如之何不弔?」 王使人問疾醫來, 孟仲子對曰, 「昔者有王命有采薪之憂, 不能造朝, 今病少愈, 趨造於朝, 我不識能至否乎。」 使數人要於路曰, 『請必無歸而造於朝。』

不得已而之景丑氏宿焉, 景子曰, 「內則父子, 外則君臣, 人之大倫也。父子主恩, 君臣主敬, 丑見王之敬子也, 未見所以敬王也。」 曰, 「惡。是何言也? 齊人無以仁義與王言者, 豈以仁義爲不美也? 其心曰, 『是何足與言仁義也?』  云爾則不敬莫大乎是, 我非堯舜之道, 不敢以陳於王前, 故齊人莫如我敬王也。」 景子曰, 「否。 非此之謂也。禮曰, 『父召無諾, 君命召不使駕。』 固將朝也, 聞王命而遂不果, 宜與夫禮 若不相似然。」 曰, 「豈謂是與。曾子曰, 『晉楚之富不可及也, 彼以其富, 我以吾仁, 彼以其爵, 我以吾義, 吾何慊乎哉!』 夫豈不義而曾子言之。是或一道也。 天下有達尊三,  爵一齒一德一, 朝廷莫如爵, 鄕黨莫如齒, 輔世長民莫如德, 惡得有其一, 以慢其二哉!  故將大有爲之君, 必有所不召之臣, 欲有謀焉則就之。其尊德樂道不如是, 不足與有爲也。故湯之於伊尹, 學焉而後, 臣之故, 不勞而王, 桓公之於管仲, 學焉而後, 臣之故, 不勞而覇。今天下地醜德齊, 莫能相尙, 無他。好臣其所敎, 而不好臣其所受敎。湯之於伊尹, 桓公之於管仲, 則不敢召。管仲且猶不可召, 而況不爲管仲者乎!」

 

 

 

맹자가 왕을 뵈려 하였는데 왕이 사람을 보내와 말했다.

“과인이 마땅히 나아가 만나야 하지만 감기로 바람을 쐴 수 없습니다. 내일 아침 조회시에 보려하는데 과인이 만나 뵐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불행히도 병이 있어 조회에 나갈 수 없습니다."

이튿날 맹자가 동곽씨에게 조문을 나서자 공손추가 말했다.

“어제는 병으로써 사양하셨는데 오늘 조문하시는 것은 옳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어제 병이 오늘은 나았는데 어찌 조문하지 않겠는가?”

왕이 사람을 시켜 문병을 하고 의원을 보내오자 맹중자가 대답했다. “어제 왕명이 있었지만 채신(采薪)의 병이 있어 조회를 나갈 수 없었으나, 오늘은 병이 조금 나으셔서  조회에 서둘러 나가셨는데 도착하실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시켜 길에서 지키고 있다가 맹자를 만나면 ‘돌아오지 마시고 반드시 조정에 나가십시오.' 라고 전하게  하였다.

부득이해서 경추씨의 집에 가서 잤는데, 경자가 말했다.

“안에서는 부자간이며 밖에서는 군신간이라 이는 사람의 큰 윤리입니다. 부자간에는 은혜를 주로 하고 군신간에는 공경을 주로 하는데, 저는 왕께서 선생님을 공경하는 모습을 보았으나 선생님께서 왕을 공경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맹자가 말했다.

“오! 이 무슨 말인가? 제나라 사람으로 왕에게 인의(仁義)를 말하는 자가 없는데, 어찌 인의를 좋지 않다고 여겨서이겠는가?  그 마음에 ‘이 어찌 왕에게 인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라고 생각해서 그럴 것인데, 그렇다면 불경함이 이보다 더 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요순의 도가 아니면 감히 왕 앞에 진언을 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제나라 사람들이 내가 왕을 공경함만 같지 못할 것이다.”

경자가 말했다. “아닙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기』에 ‘아비가 부르시거든 대답할 겨를도 없이 달려가고, 인군이 명으로 부르시면 수레가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달려간다.’ 하였는데, 선생님께서 본래 조회에 나가시려고 하셨다가 임금의 명을 듣고서는 마침내 조회에 나가지 않으셨으니 마땅히 예에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맹자가 말했다.

"어찌 그것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증자는 ‘진나라와 초나라의 부(富)에는 미칠 수 없으나 저들이 부(富)로써 대하면 나는 나의 인(仁)으로 대하고, 저들이 벼슬로 대하면 나는 내 의(義)로 대할 것인데 내 어찌 부족하다고 여기겠는가.' 라고 하였는데,  도대체 어찌 의롭지 못한 것을 증자가 말했겠는가. 이 또한 하나의 도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천하에 존귀함에 통한 것이 셋이 있는데, 벼슬이 하나요, 나이가 하나요, 덕이 하나이니, 조정엔 벼슬만한 것이 없고, 향당엔 나이만한 것이 없고, 세상에 도움이 되고 백성을 기르는 데는 덕만한 것이 없으니, 어찌 그 중 하나를 얻었다 해서 그 둘을 태만히 할 것인가! 그러므로 큰 일을 하려고 하는 인군은 반드시 부르지 못하는 신하가 있으며, 의논할 일이 있으면 그에게 나아갔다.  덕을 존중하고 도를 즐거워하는 것이 이와 같지 않다면 함께 큰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탕임금은 이윤에게 가서 배운 후 그를 신하로 삼았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왕도를 세웠으며, 환공은 관중에게 나아가 배운 후 그를 신하로 삼았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패자가 되었다.

지금 천하에 토지가 비등하고 덕도 비슷하며 서로 뛰어날 수 없는 것은 다른 데에 있지 않다. 왕이 가르칠 사람을 신하로 삼는 것을 좋아하고 가르침을 받을 사람을 신하로 삼는 것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탕임금이 이윤에게 가고, 환공이 관중에게 간 것은 감히 부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관중조차도 오히려 부르지 못했는데, 하물며 관중을 본받으려 하지도 않는 사람임에랴!"

 

 

如 : 마땅히,  당연히 ~ 하여야 한다.

 

 

○王 齊王也. 孟子 本將朝王, 王不知而託疾, 以召孟子. 故 孟子 亦以疾辭也.

 

○왕은 제나라 임금이라. 맹자가 본래 장차 왕을 뵈려 하였으나 왕이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병을 핑계해서 (써) 맹자를 부르느니라. 이에 맹자 또한 병으로써 사양하시니라.

 

 

 

明日出弔於東郭氏, 公孫丑曰, 「昔者辭以病, 今日弔,  或者不可乎。」  曰, 「昔者疾今日愈, 如之何不弔?」

 

 

이튿날 맹자가 동곽씨에게 조문을 나서자 공손추가 말했다.

“어제는 병으로써 사양하셨는데 오늘 조문하시는 것은 옳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어제 병이 오늘은 나았는데 어찌 조문하지 않겠는가?” 

 

 

○東郭氏齊大夫家也. 昔者 昨日也. 或者 疑辭. 辭疾而出弔, 與孔子不見孺悲 取瑟而歌 同意.

 

○동곽씨는 제나라 대부집이라. 석(昔)은 어제이라. 혹(惑)은 의아해하는 말이라. 병을 핑계로 사양하고는 나가서 조문함은 공자가 유비를 보지 않으시되 거문고를 취해서 노래하심과 (더불어) 뜻이 같음이라.

 

 

[해설]

 

‘孔子不見孺悲하시고 取瑟而歌’는『논어』「陽貨 第20章」에 나오는 내용이다. “孺悲欲見孔子, 孔子辭以疾, 將命者出戶, 取瑟而歌, 使之聞之.(유비가 공자를 뵈려고 하였거늘 공자 병으로써 사양하시고 장차 명을 받든 자가 문밖으로 나가거늘 거문고를 취해서 노래하사 유비로 하여금 듣게 하시니라).”

孺悲는 공자에게 士喪禮를 한때 배운 제자이나 정치는 못하면서 개인적 야심이 강했던 노나라 哀公의 신하이다. 이에 공자는 그를 매우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런데 어느날 유비가 공자를 만나 뵈려 찾아왔으나 공자는 병이 있다는 핑계로 만나기를 거절하였다. 심부름하는 이가 그 말을 유비에게 전달하려 나가자 이때 공자가 유비가 들으라는 듯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 이는 공자가 실제로 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유비를 만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맹자 역시 공자를 본받아 병을 핑계로 제나라 왕을 만나지 않은 것이다.

 

 

 

王使人問疾醫來, 孟仲子對曰, 「昔者有王命有采薪之憂, 不能造朝, 今病少愈, 趨造於朝, 我不識能至否乎。」 使數人要於路曰, 『請必無歸而造於朝。』

 

 

왕이 사람을 시켜 문병을 하고 의원을 보내오자 맹중자가 대답했다. “어제 왕명이 있었지만 채신(采薪)의 병이 있어 조회를 나갈 수 없었으나, 오늘은 병이 조금 나으셔서  조회에 서둘러 나가셨는데 도착하실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시켜 길에서 지키고 있다가 맹자를 만나면 ‘돌아오지 마시고 반드시 조정에 나가십시오.' 라고 전하게  하였다.

 

 

[해설]

 

왕은 정말 맹자가 병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의원을 보냈으나 집안에 맹자는 없고 맹중자만 있었다. 맹중자는 맹자를 위해 采薪之憂란 말로 변명하였다. 采薪之憂란 겨우 나뭇가지 하나 꺾을 만한 근력도 없을 만큼의 근심으로 병자가 자신의 병을 겸손해하는 의미로 쓰인다.

맹중자는 采薪之憂란 말로 둘러대면서 맹자가 이제 겨우 조금 나아서 조회에 나가셨는데 조정에 도착하셨는지 아직 도착하지 못하셨는지는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는 입을 맞추기 위해 얼른 몰래 두어 사람을 시켜 맹자에게 보냈다. 맹자에게 집으로 오지 말고 조회에 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孟仲子 趙氏以爲孟子之從昆弟, 學於孟子者也. 采薪之憂 言病不能采薪, 謙辭也. 仲子 權辭以對, 又使人要孟子, 令勿歸而造朝, 以實己言.

 

○맹중자는 조씨가 이르기를 ‘맹자의 사촌형제간로 맹자에게서 배웠음이라’하니라. 채신지우(采薪之憂)는 병이 능히 나무를 꺾지 못할 정도임을 말함이니 겸손의 말이라. 맹중자가 임의의(편법) 말로 (써) 대답하고 또 사람을 시켜서 맹자에게 요청하되 돌아오지 말고 조회에 나가서 자기의 말을 실증하게 함이라.

 

 

 

不得已而之景丑氏宿焉, 景子曰, 「內則父子, 外則君臣, 人之大倫也。父子主恩, 君臣主敬, 丑見王之敬子也, 未見所以敬王也。」 曰, 「惡。是何言也? 齊人無以仁義與王言者, 豈以仁義爲不美也? 其心曰, 『是何足與言仁義也?』  云爾則不敬莫大乎是, 我非堯舜之道, 不敢以陳於王前, 故齊人莫如我敬王也。」

 

 

부득이해서 경추씨의 집에 가서 잤는데, 경자가 말했다.

“안에서는 부자간이며 밖에서는 군신간이라 이는 사람의 사람의 큰 윤리입니다. 부자간에는 은혜를 주로 하고 군신간에는 공경을 주로 하는데, 저는 왕께서 선생님을 공경하는 모습을 보았으나 선생님께서 왕을 공경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맹자가 말했다.

“오! 이 무슨 말인가? 제나라 사람으로 왕에게 인의(仁義)를 말하는 자가 없는데, 어찌 인의를 좋지 않다고 여겨서이겠는가?  그 마음에 ‘이 어찌 왕에게 인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라고 생각해서 그럴 것인데, 그렇다면 불경함이 이보다 더 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요순의 도가 아니면 감히 왕 앞에 진언을 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제나라 사람들이 내가 왕을 공경함만 같지 못할 것이다.” 

 

 

云爾 : 雲尔. (中) [문어] 문장 끝에 쓰여 앞의 말을 돕는 어조사. 이와 같다. 

 

[해설]

 

맹자가 경추씨 집에서 주무시고 난 다음날 경추씨가 임금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 맹자를 보고 “왕이 선생님을 존경하는 것을 보았지만 선생님은 왕을 공경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라며 은근히 맹자를 꼬집었다. 그러자 맹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왕이 맹자가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칭병을 핑계로 맹자가 먼저 오기를 바랬다. 이를 안 맹자 또한 칭병을 핑계로 왕을 알현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제나라 신하 누구 한 사람도 칭병을 한 왕에 대해 인의로써 정치를 하도록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는 제나라 신하들이 인의를 나쁘게 여겨서가 아니라, 왕에게 그러한 말을 해보았자 소용이 없다고 여기고는 아예 간언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맹자가 자신은 요순의 도로써만 왕에게 진언하는데 반해, 제나라 신하는 인의로써 간언하지 않으니 이것이 오히려 더 불경한 행위임을 말하고 있다.

 

 

○景丑氏齊大夫家也. 景子景丑也, 惡 歎辭也. 景丑所言 敬之小者也. 孟子所言 敬之大者也.

 

○경추씨는 제나라 대부집이라. 경자는 경추라. 오(惡)는 탄식하는 말이라. 경추가 말한 바는 공경의 적은 것이오, 맹자가 말한 바는 공경의 큰 것임이라.

 

 

 

景子曰, 「否。非此之謂也。禮曰, 『父召無諾, 君命召不使駕。』 固將朝也, 聞王命而遂不果, 宜與夫禮 若不相似然。」

 

 

경자가 말했다. “아닙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기』에 ‘아비가 부르시거든 대답할 겨를도 없이 달려가고, 인군이 명으로 부르시면 수레가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달려간다.’ 하였는데, 선생님께서 본래 조회에 나가시려고 하셨다가 임금의 명을 듣고서는 마침내 조회에 나가지 않으셨으니 마땅히 예에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禮曰, 父命呼唯而不諾, 又曰君命召在官不俟屨, 在外不俟車, 言孟子本欲朝王, 而聞命中止, 似與此禮之意 不同也.

 

○『예기』에 이르기를 ‘아비가 명하여 부르거시든 빨리 대답하고 머뭇거리지 아니하라’ 하고, 또 가로대 ‘인군이 명으로 부르거시든 관청(조정안)에 있을 시는 신발 신기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밖(궁궐밖)에 있어서는 수레를 기다리지 않는다’ 하니, ‘맹자가 본래 왕께 조회를 하고자 하셨다가 명을 듣고 중지하시니 흡사 이 예의 뜻과는 (더불어) 같지 않음’을 말함이라 하니라.

 

 

 

曰, 「豈謂是與。曾子曰, 『晉楚之富不可及也, 彼以其富, 我以吾仁, 彼以其爵, 我以吾義, 吾何慊乎哉!』 夫豈不義而曾子言之。是或一道也。 天下有達尊三,  爵一齒一德一, 朝廷莫如爵, 鄕黨莫如齒, 輔世長民莫如德, 惡得有其一, 以慢其二哉!」

 

 

맹자가 말했다.

"어찌 그것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증자는 ‘진나라와 초나라의 부(富)에는 미칠 수 없으나 저즐이 부(富)로써 대하면 나는 나의 인(仁)으로 대하고, 저들이 벼슬로 대하면 나는 내 의(義)로 대할 것인데 내 어찌 부족하다고 여기겠는가.' 라고 하였는데,  도대체 어찌 의롭지 못한 것을 증자가 말했겠는가. 이 또한 하나의 도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천하에 존귀함에 통한 것이 셋이 있는데, 벼슬이 하나요, 나이가 하나요, 덕이 하나이니, 조정엔 벼슬만한 것이 없고, 향당엔 나이만한 것이 없고, 세상에 도움이 되고 백성을 기르는 데는 덕만한 것이 없으니, 어찌 그 중 하나를 얻었다 해서 그 둘을 태만히 할 것인가!"

 

慊 : 찐덥지 않을 겸/족할 협/의심할 혐.   찐덥지 않다. 마음에 차지 아니함. 흡족하다. 좋다. 훌륭함. 성의. 정성. 한하다. 원망함.

      가난하다. 빈곤함. 족하다. 만족함. 의심하다. 싫어함.

嗛 : 겸손할 겸/머금을 함/족할 협. 겸손하다. 싫어하다. 모자라다. 흉년들다. 볼. 머금다. 원한을 품다. 족하다. 마음이 흐뭇함.  

 

 

○慊 恨也, 少也, 或作嗛, 字書 以爲口銜物也, 然則慊亦但爲心有所銜之義, 其爲快爲足爲恨爲少, 則因其事而所銜, 有不同耳. 孟子言 我之意 非如景子之所言者. 因引曾子之言而云, 夫此豈是不義 而曾子肯以爲言. 是或別有一種道理也. 達 通也, 蓋通天下之所尊有此三者, 曾子之說 蓋以德言之也. 今齊王但有爵耳, 安得以此慢於齒德乎!

 

○겸(慊)은 한(恨)스러워하는 것이며 적음이니 혹 嗛으로도 쓰니 자서(字典)에 ‘(써) 입에 재갈을 물림이라’ 하니 그런즉 겸(慊)은 (또한) (단지) 마음에 재갈을 먹인 바의 뜻이 있음이니 (그) 쾌(快)도 되고 족(足)도 되고 한(恨)도 되고 적음도 되는 것은 곧 그 일로 인하여 재갈 먹인 바가 같지 않음이 있음이라. 맹자가 “나의 뜻은 경자가 말한 바와 같지 않다” 말씀하시고, 증자의 말씀을 因하여 (이를) 인용하여 이르시되 “무릇 (이) 어찌 의롭지 않음을 증자가 즐기어 (써) 말씀하셨으리오, (이) 혹 별도로 일종의 도리가 있음이라” 하니라. 達은 통함이니 대개 천하에 통하는 존귀한 바가 (이) 셋이 있으나 증자의 말씀은 (대개) 덕으로써 말씀하심이라. 이제 제나라 왕에게는 다만 벼슬만 있으니 어찌 (얻어) 이(벼슬)로써만 연치와 덕을 거만하고 소홀하게 대하는가? 하시니라.

 

 

 

故將大有爲之君, 必有所不召之臣, 欲有謀焉則就之。其尊德樂道不如是, 不足與有爲也。

 

 

그러므로 큰 일을 하려고 하는 인군은 반드시 부르지 못하는 신하가 있으며, 의논할 일이 있으면 그에게 나아갔다.  덕을 존중하고 도를 즐거워하는 것이 이와 같지 않다면 함께 큰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大有爲之君 大有作爲 非常之君也.

○程子曰, 古之人 所以必待, 人君致敬盡禮而後 往者, 非欲自爲尊大也, 爲是故耳.

 

○큰 일을 하옴을 두는 인군은 크게 할 일을 만드는 비상한 인군이라.

○정자 가로대 “옛적의 사람이 (써한 바) 반드시 인군이 공경을 이루고 예를 다하기를 기다린 뒤에 감은 스스로 존대하고자 함이 아니오 다만 이 尊德樂道 때문이니라.” 하니라.

 

 

故湯之於伊尹, 學焉而後, 臣之故, 不勞而王, 桓公之於管仲, 學焉而後, 臣之故, 不勞而覇。

 

 

그러므로 탕임금은 이윤에게 가서 배운 후 그를 신하로 삼았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왕도를 세웠으며, 환공은 관중에게 나아가 배운 후 그를 신하로 삼았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패자가 되었다.

 

 

○先從受學 師之也. 後以爲臣 任之也.

 

○먼저 좇아서 배움을 받은 것은 그를 스승으로 받든 것이고, 뒤에 (써) 신하로 삼음은 책임(중책)을 맡김이라.

 

 

 

今天下地醜德齊, 莫能相尙, 無他。好臣其所敎, 而不好臣其所受敎。

 

 

지금 천하에 토지가 비등하고 덕도 비슷하며 서로 뛰어날 수 없는 것은 다른 데에 있지 않다. 왕이 가르칠 사람을 신하로 삼는 것을 좋아하고 가르침을 받을 사람을 신하로 삼는 것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醜 : 더러울 추. 동류(同類). 비등(比等)하다. 견주다. 무리, 여럿. 머무르다.

 

 

[해설]

 

지금 천하가 곧 맹자 당시의 전국시대의 나라들이 땅도 비슷하고 정치하는 것도 비슷하여 뛰어남이 없고 발전적인 나라가 없는 것은, 임금이 신하를 가르치려만 들고 신하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醜 類也. 尙 過也. 所敎 謂聽從於己, 可役使者也. 所受敎 謂己之所從學者也.

 

○추(醜)는 같음이라. 상(尙)은 넘어섬이라. 가르치는 바(所敎)는 자기 말을 듣고 쫒기에 사역시킬 수 있는 것을 이름이오, 가르침을 받는 바(所受敎)는 자기가 좇아서 배워야 할 바가 있는 것을 이름이라.

 

 

 

湯之於伊尹, 桓公之於管仲, 則不敢召。管仲且猶不可召, 而況不爲管仲者乎!

 

 

탕임금이 이윤에게 가고, 환공이 관중에게 간 것은 감히 부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관중조차도 오히려 부르지 못했는데, 하물며 관중을 본받으려 하지 않는 사람임에랴!"

 

 

[해설]

 

왕도정치를 폈던 탕임금에게 이윤은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신하였으며, 제환공이 패도정치를 이룩하도록 도운 관중 역시 제환공에게는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신하였다. 그런데 맹자는 패도정치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다며 패도정치를 주도한 관중을 의도적으로 경원시했다. 이에 자신이 경원시하는 관중같은 자도 부르지 못하는 신하였거늘, 하물며 왕도정치를 부르짖는 나(맹자)야말로 ‘부르지 못하는 신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라며 경추를 공박하고 있다.

 

 

○不爲管仲, 孟子自謂也. 范氏曰, 孟子之於齊, 處賓師之位, 非當仕有官職者. 故 其言如此.

○此章 見賓師不以趨走承順爲恭, 而以責難陳善爲敬, 人君不以崇高富貴爲重, 而以貴德尊士爲賢, 則上下交而德業成矣.

 

○‘관중을 삼지 않았다’는 맹자가 스스로를 이르심이라. 범씨 가로대 “맹자가 제나라에서 국빈과 스승의 지위에 처해서 벼슬을 담당하거나 관직에 있음이 아니기에 그 말씀이 이와 같으시니라.”하니라.

○이 장은 빈사(賓師)가 달려가 명을 잇고 순종하는 것으로써 공손함을 삼지 아니하고, 어려움을 책망하고 선을 베푸는 것으로써 공경을 삼으며, 인군은 숭고(崇高)와 富貴로써 중하게 여기지 않고 德을 귀히 여기고 선비를 높이는 것으로써 어짊으로 삼으니 그런즉 위 아래가 사귀고 덕업을 이룸을 봄이라.

'四書 > 孟子' 카테고리의 다른 글

公孫丑 <下> 第 4章  (0) 2020.05.06
公孫丑 <下> 第 3章  (0) 2020.05.06
公孫丑 <下> 第 1章  (0) 2020.05.06
公孫丑 <下> 本文  (0) 2020.05.06
公孫丑 <上> 第 9章  (0) 2020.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