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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書/孟子

滕文公 <上> 第 2章

by 柳川 2020. 5. 6.

第 2章

 

滕定公薨, 世子謂然友曰, 「昔者孟子嘗與我言於宋, 於心終不忘, 今也不幸至於大故, 吾欲使子問於孟子然後行事。」 然友之鄒問於孟子,  孟子曰, 「不亦善乎!  親喪固所自盡也,  曾子曰,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以禮, 可謂孝矣。』  諸侯之禮吾未之學也,  雖然吾嘗聞之矣。三年之喪,  齊疏之服,  飦粥之食,  自天子達於庶人,  三代共之。」 

然友反命, 定爲三年之喪, 父兄百官皆不欲曰, 「吾宗國魯先君莫之行, 吾先君亦莫之行也, 至於子之身而反之不可。且志曰, 『喪祭從先祖。』  曰, 『吾有所受之也。』」 謂然友曰, 「吾他日未嘗學問, 好馳馬試劒, 今也父兄百官 不我足也, 恐其不能盡於大事。子爲我問孟子。」 

然友復之鄒問孟子, 孟子曰, 「然。不可以他求者也。孔子曰, 『君薨聽於冡宰。歠粥面深墨, 卽位而哭, 百官有司莫敢不哀 先之也。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矣, 君子之德風也, 小人之德草也, 草尙之風必偃。』 是在世子。」 然友反命, 世子曰, 「然。是誠在我。」  五月居廬, 未有命戒, 百官族人可謂曰, 「知。」 及至葬四方來觀之, 顔色之戚, 哭泣之哀, 弔者大悅。

 

 

 

등나라 정공이 죽자 세자가 연우(然友)에게 말했다.

"지난 날 맹자가 송나라에서 나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마음속에 남아 끝까지 잊혀지지가 않았소. 지금 불행하게도 큰 일이 닥쳤는데 나는 그대를 맹자에게 보내 물어본 후에 장례를 치르고자 합니다." 

연우가 추나라에 가서 맹자에게 물으니 맹자가 말했다.

"이 또한 착하지 않은가 ! 부모상을 당하면 본래 스스로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증자는, '살아계실 때에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례를 치르며, 제사를 지낼 때 예로써 지낸다면 효성스럽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 하였습니다. 제후의 예는 내가 배우지 못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내 일찍이 들은 바 있습니다. 삼년상을 지내며 거친 옷을 입고 죽을 먹는 것은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하은주의 삼대에 걸쳐서 한 가지로 하였습니다."

연우가 돌아와 복명하여 삼년상으로 정하려고 하는데, 세자(문공)의 부형(친족)들과 백관들이 모두 원하지 않으며 말했다.

"우리 종주국인 노나라의 이전 군주도 행하지 않았고 우리 나라의 이전 군주도 행하지 않으셨는데 당신 자신의 대에 이르러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또한 『지』에는 '상례와 제례는 선조를 따른다.' 고  하였습니다."

세자(문공)는, "나는 그것을 받은 바가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세자(문공)가 연우에게 말했다.

"내가 지난 날 학문에 뜻을 두지 않고 말달리고 검술을 익히는 것을 좋아하였기 때문에, 지금 부형들과 백관이 내 뜻을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아 대사를 극진히 치루지 못할 까 두렵소. 그대가 나를 위해 맹자에게 물어 보시오."

연우가 다시 추나라에 가서 맹자에게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다른 일로는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공자는 '인군이 돌아가시면 관리들은 총재(영의정)의 명을 받는다. 상주가 죽을 마시며 씻지 못해 얼굴이 매우 검은 모습으로, 자리에 나가 곡하면 백관과 유사(실무자)들이 감히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솔선하여 행하기 때문이다. 윗 사람이 좋아하면 아랫사람은 반드시 심한 것이 있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며 소인의 덕은 풀이라 풀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쓰러진다.'고 하셨습니다. 이 일은 세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연우가 돌아가 복명하자 세자가 말했다. "그렇소. 이것은 진실로 나에게 달려있는 것이오."

그리고는 다섯 달 동안 여막에서 지내며 명령과 계고(戒告)가 없으니 백관들과 종친들이 "세자가 예를 아는구나."라 할만 하였다.  장례를 치르는데 사방에서 와 보고는, 안색이 슬픔에 잠겨 있고 곡하면서 우는 모습이 애통하는 모습이라 조문하는 사람들이 크게 기꺼워 하였다.

 

 

○定公 文公父也.  然友 世子之傅也. 大故 大喪也. 事 謂喪禮.

 

○정공은 문공의 아버지요, 연우는 세자의 스승이라. 대고는 큰 상이오, 사는 상례를 이름이라.

 

 

然友之鄒問於孟子,  孟子曰, 「不亦善乎!  親喪固所自盡也。曾子曰,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以禮, 可謂孝矣。』  諸侯之禮吾未之學也,  雖然吾嘗聞之矣。三年之喪,  齊疏之服,  飦粥之食,  自天子達於庶人,  三代共之。」

 

 

연우가 추나라에 가서 맹자에게 물으니 맹자가 말했다. 

"이 또한 착하지 않은가 ! 부모상을 당하면 본래 스스로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증자는, '살아계실 때에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례를 치르며, 제사를 지낼 때 예로써 지낸다면 효성스럽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 하였습니다. 제후의 예는 내가 배우지 못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내 일찍이 들은 바 있습니다. 삼년상을 지내며 거친 옷을 입고 죽을 먹는 것은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하은주의 삼대에 걸쳐서 한 가지로 하였습니다."

 

 

齊 : 옷자락(상복) 자.        飦 : 죽 전.     糜 : 죽 미. 

 

 

○當時諸侯莫能行古喪禮, 而文公獨能以此爲問. 故 孟子善之. 又言父母之喪 固人子之心, 所自盡者. 盖悲哀之情, 痛疾之意非自外至, 宜乎文公於此 有所不能自已也. 但所引曾子之言, 本孔子告樊遲者, 豈曾子嘗誦之, 以告其門人歟.  三年之喪者, 子生三年然後, 免於父母之懷. 故 父母之喪必以三年也. 齊衣下縫也. 不緝曰斬衰, 緝之曰齊衰. 疏 麤也, 麤布也. 飦 糜也. 喪禮 三日 始食粥, 旣葬乃疏食, 此 古今貴賤通行之禮也.

 

○당시 제후가 능히 옛 상례를 행하지 못하거늘 문공이 홀로 능히 이로써 물으니라. 그럼으로 맹자가 선하다 하시고 또 부모의 상은 진실로 남의 자식이 되어 스스로 다해야 할 바라 말씀하시니, 대개 슬퍼하는 정과 애통하고 아파하는 뜻이 밖으로부터 이름이 아니니 마땅히 문공이 이에 능히 스스로 말지 못하는 바가 있음이라. 다만 이끈 바 증자의 말씀은 본래 공자가 번지에게 고하신 바니 어찌 증자가 일찍이 외어서 써 그 문인에게 고한 것이 아니랴. 삼년의 상은 자식이 나서 삼년 연후에 부모의 품을 면하니라. 그러므로 부모의 상을 반드시 삼년으로써 하니라. 자는 옷 아래를 꿰맴이라. 잇지 않은 것을 가로대 참최라 하고 이은 것을 자최라. 소는 굵은 것이니 굵은 베라. 전은 미음이라. 상례에 (부모 돌아가신 뒤에는 미음만 마시다가) 삼일에 비로소 죽을 먹고, 이미 장사를 지낸 뒤에 이에 거친 밥(疏食, 소사)이라 하니 이는 예나 지금이나 귀한 이나 천한 이나 통하는 예이니라.

 

 

[해설]

 

예전에는 상을 당해 옷을 거칠게 입을수록 애통의 정이 큼을 나타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신데 어머니의 당을 당하면 父在母喪이라 하여 1년상을 하는데 이때는 옷 아랫단을 대강 꿰매기만 한 齊衰(자최)를 한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主喪이 되고 자식들은 그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데, 이때 자식들은 아버지가 살아 계시기에 대성통곡을 하며 겉으로 슬픔을 다 표현할 수 없기에 자최를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경우 다시 말해 父喪母在의 경우, 이때 主喪은 자식이 되기에 삼년상으로 애통의 표시를 다할 수 있기에 斬衰(참최)를 한다. 이와 관련지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경우에 새롭게 대를 이어야 하기 때문에 그 자식을 외롭다 하여 ‘孤子’(고자)라 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경우에 그 자식을 슬프다 하여 ‘哀子’(애자)라 한다. 부모가 다 돌아가셨을 경우에 그 자식을 孤哀子라 부른다.

 

 

 

然友反命, 定爲三年之喪, 父兄百官皆不欲曰, 「吾宗國魯先君莫之行, 吾先君亦莫之行也, 至於子之身而反之不可。且志曰, 『喪祭從先祖。』」  曰, 「吾有所受之也。」

 

 

연우가 돌아와 복명하여 삼년상으로 정하려고 하는데, 세자(문공)의 부형(친족)들과 백관들이 모두 원하지 않으며 말했다.

"우리 종주국인 노나라의 이전 군주도 행하지 않았고 우리 나라의 이전 군주도 행하지 않으셨는데 당신 자신의 대에 이르러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또한 『지』에는 '상례와 제례는 선조를 따른다.' 고  하였습니다."

세자(문공)는, "나는 그것을 받은 바가 있습니다."고 말했다. 

 

反命 : 임금의 명을 받고 갔다가 다시 돌아와 고함

 

 

○父兄 同姓老臣也. 滕與魯俱文王之後, 而魯祖周公爲長, 兄弟宗之故 滕謂魯爲宗國也. 然謂二國 不行三年之喪者, 乃其後世之失, 非周公之法 本然也. 志 記也. 引志之言而釋其意, 以爲所以如此者, 盖爲上世以來, 有所傳受, 雖或不同 不可改也. 然 志所言 本謂先王之世 舊俗所傳 禮文小異, 而可以通行者耳, 不謂後世失禮之甚者也.

 

○부형은 성이 같은 늙은 신하라. 등과 다못 노나라는 함께 문왕의 뒤이고 노나라가 주공을 할아버지로 하여 어른으로 삼으니 형제로 높인 고로 등나라가 노나라를 일러 종국이라 하니라. 그러나 이르되 두 나라가 삼년상을 행하지 아니한 것은 이에 그 후세의 잃음이오, 주공의 법이 본래 그러함이 아니니라. 『지』는 기록함이라. 『지』의 말을 이끌어서 그 뜻을 해석하여 써 이와 같이 하는 바는 대개 상세 이래로 전수한 바가 있으니 비록 혹 같지 아니하나 가히 고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지』의 말한 바는 본래 선왕의 대에 옛 풍속이 전한 바가 예문은 조금 다르되 가히 써 통행함을 이름이오, 후세에 실례함이 심함을 이름이 아니니라.

 

 

 

謂然友曰, 「吾他日未嘗學問, 好馳馬試劒, 今也父兄百官 不我足也, 恐其不能盡於大事。子爲我問孟子。」  然友復之鄒問孟子, 孟子曰, 「然。不可以他求者也。孔子曰, 『君薨聽於冡宰。歠粥面深墨, 卽位而哭, 百官有司莫敢不哀先之也。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矣, 君子之德風也, 小人之德草也, 草尙之風必偃。』 是在世子。」

 

 

세자(문공)가 연우에게 말했다.

"내가 지난 날 학문에 뜻을 두지 않고 말달리고 검술을 익히는 것을 좋아하였기 때문에, 지금 부형들과 백관이 내 뜻을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아 대사를 극진히 치루지 못할 까 두렵소. 그대가 나를 위해 맹자에게 물어 보시오." 

연우가 다시 추나라에 가서 맹자에게 물으니 맹자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다른 일로는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공자는 '인군이 돌아가시면 관리들은 총재(영의정)의 명을 받는다. 상주가 죽을 마시며 씻지 못해 얼굴이 매우 검은 모습으로, 자리에 나가 곡하면 백관과 유사(실무자)들이 감히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솔선하여 행하기 때문이다. 윗 사람이 좋아하면 아랫사람은 반드시 심한 것이 있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며 소인의 덕은 풀이라 풀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쓰러진다.'고 하셨습니다. 이 일은 세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冢 : 무덤 총. 무덤. 봉토. 산꼭대기. 크다. 맏.      歠 : 마실 철

 

 

○不我足 謂不以我滿足其意也. 然者 然其不我足之言. 不可他求者, 言當責之於己. 冢宰 六卿之長也. 歠 飮也. 深墨 深黑色也. 卽 就也. 尙 加也. 論語 作上 古字通也. 偃 伏也. 孟子言但在世子自盡其哀而已.

 

○‘不我足’은 나로써 그 뜻을 만족하게 여기지 아니함을 이름이라. 그러하다 한 것은 그 나를 족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 그렇다 함이라. 가히 달리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땅히 자기를 책함을 말함이라. 총재는 육경의 어른이라. 철은 마심이라. 심묵은 심히 검은 빛이라. 즉은 나아감이라. 상은 더함이니 『논어』에 上으로 지었으니 옛 글자가 통용됨이라. 언은 엎드림이라. 맹자 다만 세자가 스스로 그 슬픔을 다하는데 있을 뿐임을 말씀하심이니라.

 

 

 

然友反命, 世子曰, 「然。是誠在我。」  五月居廬, 未有命戒, 百官族人可謂曰, 「知。」 及至葬四方來觀之, 顔色之戚, 哭泣之哀, 弔者大悅。

 

 

연우가 돌아가 복명하자 세자가 말했다. "그렇소. 이것은 진실로 나에게 달려있는 것이오." 

그리고는 다섯 달 동안 여막에서 지내며 명령과 계고(戒告)가 없으니 백관들과 종친들이 "세자가 예를 아는구나."라 할만 하였다.  장례를 치르는데 사방에서 와 보고는, 안색이 슬픔에 잠겨 있고 곡하면서 우는 모습이 애통하는 모습이라 조문하는 사람들이 크게 기꺼워 하였다.

 

 

○諸侯 五月而葬, 未葬居倚廬於中門之外. 居喪不言. 故未有命令敎戒也. 可謂曰知, 疑有闕誤, 或曰皆謂世子之知禮也.

○林氏曰, 孟子之時 喪禮旣壞, 然 三年之喪, 惻隱之心, 痛疾之意 出於人心之所固有者, 初未嘗亡也, 惟其溺於流俗之弊, 是以喪其良心, 而不自知耳. 文公見孟子 而聞性善堯舜之說, 則固有以啓發其良心. 是以 至此而哀痛之誠心發焉, 及其父兄百官 皆不欲行, 則亦反躬自責, 悼其前行之不足以取信, 而不敢有非其父兄百官之心, 雖其資質有過人者, 而學問之力, 亦不可誣也. 及其斷然行之, 而遠近見聞 無不悅服, 則以人心之所同然者, 自我發之, 而彼之心悅誠服, 亦有所不期然而然者, 人性之善 豈不信哉.

 

○제후는 다섯 달 만에 장사지내니 장사 전에는 여막을 중문밖에 의지해서 거하니라. 거상하면 말을 하지 않음이라. 그러므로 명령과 교계를 두지 아니 하니라. 가히 일러 가로대 ‘지’는 아마도(의심컨데) 글자가 빠지거나 잘못 기록됨(闕文誤記)이 있다 하니 혹자는 가로대 다 세자가 예를 안다 이름이라 하니라.

○임씨 가로대 맹자의 때에 상례가 이미 무너졌으나 그러나 삼년의 상은 측은한 마음과 통질의 뜻이 인심의 진실로 둔 바에서 나오니 처음에는 일찍이 없지 않건마는 오직 그 유속의 폐단에 빠지니 이로써 그 양심을 잃고도 스스로 아지 못하느니라. 문공이 맹자를 보고 성선 요순의 말을 들으니 곧 진실로써 그 양심을 계발함이 있느니라. 이로써 이에 이르러 애통하는 정성스런 마음이 우러나더니 그 부형백관이 다 행하고자 아니하는데 미쳐서는 곧 또한 몸을 돌이켜 스스로 책망하여 그 전의 행실이 족히 써 신임을 받지 못하게 한 것을 슬퍼하고 감히 그 부형 백관의 마음을 그르다 아니하니 비록 그 자질이 사람의 지남이 있으나(다른 사람보다 나음이 있으나) 학문의 힘은 또한 가히 속이지 못하느니라. 그 단연코 행하는데 미쳐서는 먼 데서나 가까운 데서나 보는 이와 듣는 이가 기뻐하고 복종하지 아니함이 없으니 곧 인심의 한 가지 그러한 바로써 스스로 나로부터 발하여 저희들의 마음이 기뻐하고 성실하게 복종함이 또한 기약하지 아니했어도 그러한 바가 있으니 인성의 선함을 어찌 믿지 못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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