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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書/孟子

萬章 <下> 第 9章

by 柳川 2020. 5. 6.

第 9章

 

齊宣王問卿,  孟子曰, 「王何卿之問也?」  王曰, 「卿不同乎?」  曰, 「不同, 有貴戚之卿,  有異姓之卿。」  王曰, 「請問貴戚之卿。」 曰, 「君有大過則諫,  反覆之而不聽,  則易位。」  王勃然變乎色,  曰, 「王勿異也。王問臣,  臣不敢不以正對。」 

王色定然後,  請問異姓之卿,  曰, 「君有過則諫, 反覆之而不聽則去。」

 

 

제나라 선왕이 경에 대해서 묻자 맹자가 물었다. "왕께서는 어느 경을 물으십니까?"

왕이 반문하였다. "경은 같은 것이 아닙니까?"

"같지 않습니다. 귀한 친척의 경이 있고, 성이 다른 경이 있습니다."

왕이 말했다. "귀한 친척의 경에 대해서 듣고자 합니다."

"군왕이 큰 잘못이 있으면 간하고 반복해서 간해도 듣지 않으면 지위를 바꿉니다."

왕이 갑자기 얼굴빛이 변하자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달리 여기지 마십시오. 왕께서 신에게 물으시니 신은 감히 바르게 대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왕이 얼굴빛이 안정된 후 성이 다른 경에 대해 묻자 맹자가 말했다. "군왕이 잘못이 있으면 간하고 반복해서 간해도 듣지 않으면 떠납니다."

 

 

[해설]

 

맹자는 귀척의 경과 이성의 경이 인군을 대함에 차등을 두고 있다. 귀척의 경은 大過로 설명하고 이성의 경은 小過로 설명하고 있는데 모두 역의 이치에 근거하고 있다.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것은 過不及이 되어 중을 잃었기 때문에 좋지 않은 것인데 더욱이 크게 지나친 대과는 기둥이 흔들리는 지경이니까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때에는 모든 일을 반성하고 자제하여 원위치를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

 

주역 상경의 28번째 괘가 바로 이러한 내용을 담은 택풍대과(澤風大過)괘이다.

 

“大過棟橈, 利有攸往亨. 彖曰, 大過大者過也, 棟橈本末弱也. 剛過而中, 巽而說行, 利有攸往乃亨,  大過之時大矣哉.

대과는 기둥이 흔들리니, 갈 바를 둠이 이로워서 형통하니라. 단전에 이르길 대과는 큰 것이 지나침이요, 동요는 본과 말이 약한 것이라. 강한 것이 지나치되 중을 하고, 겸손하고 기쁨으로 행함이라. 가는 바를 둠이 이로워서 이에 형통하니 대과의 때가 크도다.

 

이러한 대과, 큰 허물을 짓고 있는 왕이 있다면 가까운 신하로서 간언해야 하고 누차 간언해도 듣지 아니한다면, 대과의 때가 크다고 한 것처럼 어진 왕으로 바꿔 나라의 기틀을 단단하게 바꿔야 한다는 뜻으로 맹자는 설명하고 있다. 한편으로 오늘날 우리 사회를 대과의 시대로 보는 견해도 있다. 대과는 곧 澤滅木의 象으로 못물이 범람해 나무가 물 속에서 뿌리가 썩고 있는 형상이다. 다시 말해 金克木의 상으로 서양풍조에 의해서 동양의 모든 기본이 흔들리는 것이다. 이때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과의 상을 본받아서 언제 어디서나 홀로 바른 일을 행하고 두려워하지 않은 것이고(獨立不懼 ), 민망할 것 없이 떳떳하게 자기가 할 일을 하고 살면 되는 것이다(遯世無悶).

 

아래 문장에서 맹자는 또한 이성의 경이라면 왕이 적은 허물을 지으면 간하고 그래도 듣지 아니하면 다시 간하다가 영 듣지 아니하면 그 왕을 떠난다고 하였다. 주역 하경 62번째 괘가 雷山小過괘로 이러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小過亨利貞, 可小事不可大事,  飛鳥遺之音, 不宜上, 宜下大吉. 彖曰 小過小者過而亨也, 過以利貞, 與時行也. 柔得中. 是以小事吉也, 剛失位而不中. 是以不可大事也. 有飛鳥之上焉. 飛鳥遺之音不宜上宜下大吉, 上逆而下順也. 象曰 山上有雷小過, 君子以行過乎恭, 喪過乎哀, 用過乎儉.

소과는 형통하니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 작은 일은 가능하고 큰 일은 가능하지 못하니, 나는 새가 소리를 남김에 올라가는 것은 마땅하지 않고 마땅히 아래로 내려오면 크게 길하리라. 단전에 이르길 소과는 작은 것이 지나쳐서 형통한 것이니 지나치되 바름이 이로운 것은 때와 더불어 행함이라. 유가 중을 얻음이라. 이로서 작은 일은 길함이요, 강이 위를 잃고 가운데 하지 않음이라. 이로써 큰 일은 가능하지 아니하니라. 나는 새의 상이 있느니라. ‘飛鳥遺之音不宜上宜下大吉’은 올라가는 것은 거스르고 내려오는 것은 순하기 때문이라. 상전에 이르길 산 위에 우레가 있는 것이 소과니, 군자가 이로써 행실은 공손한데 지나치며, 초상은 슬퍼하는데 지나치며, 쓰는 것은 검소한 데 지나치느니라.

 

참고로 대과나 소과나 과불급은 곧 중용을 이탈하는 것이기에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다고 하였다. 다만 조금 지나쳐도 괜찮은 것은 ‘行過乎恭’ ‘喪過乎哀’ ‘用過乎儉’이다. 하지만 역시 소과가 거듭되면 대과가 되는 것이기에 뇌산소과의 상에서 상육과 초육을 가리고 보면 역시 택풍대과의 상이 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대과는 기제(旣濟)와 같은 終이고, 소과는 미제(未濟)와 같은 始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인군된 자로서 대과를 저지르면 왕위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 왕가가 절딴나기에 귀척의 신하가 간해야 할 일이고, 이성의 신하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랬다고 당시 춘추전국시대에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며 벼슬한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앞서도 나왔지만 가난을 위하여 낮은 벼슬자리에 나아가는 것과는 달리 높은 벼슬자리에 나아간 자라면 반드시 그 나라에 도가 행해지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 맹자의 지론이다.

 

 

○大過謂足以亡其國者. 易位 易君之位, 更立親戚之賢者. 蓋與君 有親親之恩, 無可去之義, 以宗廟爲重, 不忍坐視其亡故, 不得已而至於此也.

 

○대과는 족히 써 그 나라를 망하게 함을 이름이라. 역위는 인군의 자리를 바꾸고 다시 천척의 어진 자를 세움이라. 대개 인군과 더불어 친친의 은혜가 있고 가히 떠나는 의가 없으니, 종묘로써 중하게 여겨 차마 그 망함을 앉아서 볼 수 없는 고로 부득이하여 이에 이름이니라.

 

 

 

王勃然變乎色,  曰, 「王勿異也。王問臣,  臣不敢不以正對。」

 

 

왕이 갑자기 얼굴빛이 변하자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달리 여기지 마십시오. 왕께서 신에게 물으시니 신은 감히 바르게 대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勃然 變色貌.  孟子言也.

 

○발연은 얼굴빛이 변하는 모양이라. 맹자의 말씀이라.

 

 

 

王色定然後,  請問異姓之卿,  曰, 「君有過則諫, 反覆之而不聽則去。」

 

 

왕이 얼굴빛이 안정된 후 성이 다른 경에 대해 묻자 맹자가 말했다. "군왕이 잘못이 있으면 간하고 반복해서 간해도 듣지 않으면 떠납니다."

 

 

○君臣義合 不合則去.

○此章言, 大臣之義, 親疎不同, 守經行權, 各有其分, 貴戚之卿, 小過非不諫也, 但必大過而不聽, 乃可易位, 異姓之卿, 大過非不諫也, 雖小過而不聽, 去可去矣.  然 三仁貴戚, 不能行之於紂, 而霍光異姓乃能行於昌邑, 此又委任權力之不同, 不可以執一論也.

 

○군신은 의로 합하니 아니한즉 떠나니라.

○이 장은 말하건대 대신의 의는 친소가 같지 아니하여 경도(正道)를 지키고 권도를 행함이 각각 그 분수가 있으니, 귀척의 경은 소과를 간하지 않는 것은 아니로되 다만 반드시 대과인대 듣지 아니하면 이에 가히 자리를 바꾸고, 이성의 경은 대과를 간하지 않는 것은 아니로되 비록 소과라도 듣지 아니하면 떠남에 가히 떠남이라. 그러나 세 어진 이(比干 箕子 微子)는 귀척이로대 능히 주에게 행하지 못하였고, 곽광은 이성이로되 이에 능히 창읍에 행하니 이 또한 위임한 권력이 같지 아니함이니 가히 한 가지만을 집어서 써 논하지 못함이라.

 

 

[참조]

 

守經行權이라 함은 경도(經度)를 지키고 권도(權度)를 행한다는 뜻이다. 신안진씨(新安陳氏)는 貴戚之卿과 異姓之卿을 친소(親疎)관계로 나누어 임금과 가까운 척신, 곧 親者는 가히 권도로써 행하고, 천거하여 등용한 異姓의 신하, 곧 疏者는 오직 경도를 지켜야 마땅하다(親者可以行權, 疏者惟當守經)고 하였다. 경원보씨(慶源輔氏)의 말을 빌려 좀더 부연 설명한다면, 대개 행권은 매우 부득이한 경우에 가히 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 하였고, 수경은 일상적으로 행하는 권한으로 모름지기 고쳐서 달라지게 할 수 없는 것(蓋行權者非至於甚不得已則不可爲, 守經者則日用常行 而須更不可離者也.)이라 하였다.

 

☞霍光 :

전한 때의 ,장군으로 무제(武帝)의 고명(顧命)을 받고 소제(昭帝)를 보필하였다. 소제가 아들이 없이 죽자 무제의 손자인 창읍왕 유하(劉賀)를 후계자로 맞이하였으나 늘 음란함에 빠져 지냈으므로 축출하고 선제(宣帝)를 옹립하여 기틀을 다졌다. 麒麟閣에 11명의 공신들이 용모와 함께 관작과 이름이 올랐는데, 살아생전의 그의 공로를 생각하여 선제는‘대사마, 대장군, 박육후(博陸侯)이며, 성은 곽씨이다’라고 쓰게 하였다. 당시에 이름을 쓰지 않는 것은 존경의 뜻이다.

반고(班固)는 곽광에 대해 “주공(周公)이나 아형(阿衡 : 李尹)이라 한들 어찌 이보다 더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곽광은 배우지도 못하고 기술도 없어서 커다란 이치에는 어두웠다. 그러다 처가 몰래 사악한 꾀를 내어 딸을 황후로 삼은 뒤, 넘치는 욕심에 빠져버려 집안이 망하는 화를 늘려갔다. 그리하여 그가 죽은 지 겨우 3년 만에 종족이 모조리 다 죽게 되었으니 슬픈 일이다”라 하고, 사마광(司馬光) 또한 비슷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사마광의 『자치통감』권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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