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 漢詩/丁若鏞

哀絶陽 - 丁若鏞

by 柳川 2020. 5. 8.

                                                      哀絶陽

 

 

                                                                                                          茶山   丁若鏞(1762 ~ 1836)

 

此嘉慶癸亥秋, 余在康津作也。時蘆田民, 有兒生三日入於軍保, 里正奪牛. 民拔刀自割其陽莖曰, 「我以此物之故, 受此困厄。」 其妻持其莖, 詣官門, 血猶淋淋, 且哭且訴, 閽者拒之。余聞而作此詩。

 

이것은 가경 계해년(1803) 가을에 내가 강진에 있으면서 지은 것이다. 그때 갈밭에 사는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만에 군적에 편입되고 이정이 소를 토색질해 가니, 그 백성이 칼을 뽑아 자신의 양경을 스스로 베면서 내가 이것 때문에 이러한 곤액을 받는다.’ 하였다. 그 아내가 양경을 가지고 관청에 나아가니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 울기도 하고 하소연하기도 했으나, 문지기가 막아 버렸다. 내가 듣고 이 시를 지었다.  <牧民心書 簽丁>

 

 

蘆田少婦哭聲長、(로전소부곡성장)                      노전(蘆田)에 젊은 부인의 곡(哭)소리 오래 가는데
哭向縣門號穹蒼。(곡향현문호궁창)                      관청 문을 향해 통곡하다 하늘 향해 부르짖네
夫征不復尙可有、(부정불복상가유)                      남편이 출정 나가 돌아오지 않는 건 오히려 있을 수 있지만
自古未聞男絶陽。(자고미문남절양)                      예로부터 남자가 스스로 생식기를 잘랐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네

舅喪已縞兒未澡、 (구상이호아미조)                     시아버지 죽어 상중이고 갓난 아이 아직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건만

三代名簽在軍保。 (삼대미첨재군보)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올랐다네

薄言往愬虎守閽、 (박언왕소호수혼)                     몇마디 하소연하러 갔더니 범같은 문지기 버티고 있고

里正咆哮牛去皁。 (리정포효우거조)                     이정(里正)이 호통치며 마굿간에서 소마저 끌고 갔다네

磨刀入房血滿席、 (마도입방혈만석)                     칼 갈아 방에 들어가자 피가 자리에 흥건한데
自恨生兒遭窘厄。 (자한생아조군액)                     아이 낳아 이런 재난을 당했다고 스스로 한탄했네
蠶室淫刑豈有辜、 (잠실음형기유고)                     누에치던 방에서의 음형이 어찌 그만한 허물이 있어서리오?

閩囝去勢良亦慽。 (민건거세량역척)                     민나라 자식의 거세도 진실로 또한 슬픈 것이거늘

 

生生之理天所予、 (생생지리천소여)                     자식 낳고 사는 이치는 하늘이 준 것이요

乾道成男坤道女。 (건도성남곤도녀)                     하늘의 도는 남자 되고 땅의 도는 여자 되는 것이라

豕猶云悲、 (선마분시유운비)                     거세한 말과 거세한 돼지도 오히려 슬퍼할 만한데

況乃生民思繼序。 (황내생민사계서)                     하물며 백성이 후손 이을 것을 생각함에 있어서랴!

 

豪家終歲奏管弦、 (호가종세주관현)                     세도가의 집에서는 일 년 내내 풍악을 즐기지만

粒米寸帛無所捐。 (립미촌백무소연)                     쌀 한 톨, 비단 한 조각 바치는 일 없도다

均吾赤子何厚薄、 (균오적자하후박)                     같아야 할 우리 백성들 어찌 이리 가난하고 부유한가?

客窓重誦鳩篇。 (객창중송시구편)                     객창에서 거듭하여 시구편을 읊조려본다.

 

 

蘆田 : 강진 땅의 마을 이름이다. 다산초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바닷가에 갈대밭이 형성되어 붙은 지명이다.

軍保 : 군역제도에 정병(正兵)과 보인(保人)의 구분을 두어, 보인(保人)은 병역을 면제받는 대신 정병(正兵)을 도와주도록 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역가(役價)의 명목으로 포나 미(米)를 받아들인 것이다. 일종의 일두세(人頭稅)였다. 보인(保人)을 군보(軍保) 혹은 인

        보(隣保)ㆍ보솔(保率)로 부르기도 한다.

簽 : 농 첨. 농. 죽롱(竹籠). 찌쪽찌. 제첨(題簽). 책의 표제(標題). 수결 두다서명함.

里正 : 이임(里任)이란 말로 유의어로, 지방 마을의 공공사무 및 연락을 맡아보는 사람을 말한다. 5호(戶)를 통(統)으로 하여 5통에 이

        정을 두는 것으로 되어 있다.

蠶室淫刑 : 남자는 거세(去勢)를 하고 여인은 음부를 봉함하는 형벌. 바람이 통하지 않는 밀실에 불을 계속 지펴 높은 온도를 유지시키는

         방이 잠실(蠶室)인데, 궁형(宮刑)에 처한 자는 그 잠실에 있게 하였음. 《漢書 武帝紀》

閩囝 : 민(閩)의 사람들은, 자식을 건(囝), 아버지는 낭파(郞罷)라고 불렀는데, 당(唐) 나라 때에 그곳 자식들을 환관(宦官)으로 썼기 때문에            형세가 부호한 자들이 많아 그곳 사람들은 자식을 낳으면 곧 거세를 하여 장획(臧獲)으로 만들었다고 함. 《靑箱雜記》

鳩 : 詩經 /國風/曹風 / 鳲鳩

 

鳩在桑,其子七兮。               뻐꾸기 뽕나무에 앉으니, 그 새끼가 일곱이라.

淑人君子,其儀一兮;               어진 군자, 그 위의가 한결 같네.

其儀一兮,心如結兮。               위의가 한결 같으니, 마음이 단단한 것 같도다.

 

鳩在桑,其子在梅。               뻐꾸기 뽕나무에 앉았는데, 그 새끼는 매화나무에 앉았네.

淑人君子,其帶伊絲;               어진 군자, 띠를 매었으되 그 띠는 흰 실로 쓰네.

其帶伊絲,其弁伊騏。               그 띠가 흰 실로 썼으나, 그 고깔은 검푸른 색이로다.

 

鳩在桑,其子在棘。               뻐꾸기 뽕나무에 앉았는데, 새끼는 가시나무에 앉았네.

淑人君子,其儀不忒;               어진 군자, 그 위의가 어긋나지 않네. 

其儀不忒,正是四國。               위의가 어긋나지 않으니, 사방(四方)을 바르게 하리라.

 

鳩在桑,其子在榛。               뻐꾸기 뽕나무에 앉았는데, 그 새끼는 개암나무에 앉았네.

淑人君子,正是國人;               어진 군자, 온 나라사람을 바르게 하네.

正是國人,胡不萬年!               온 나라사람을 바르게 하니, 어찌 만년을 가지 않으리.

 

                                                                                                                  <茶山詩文集 卷 4.>

 

 

茶山   丁若鏞

 

조선의 문신, 실학자. 본관은 나주(羅州). 소자는 귀농(歸農). 자는 미용(美庸)·송보(頌甫), 호는 사암(俟菴). 자호는 다산(茶山) · 탁옹 · 태수(苔叟) · 자하도인(紫霞道人) · 철마산인(鐵馬山人). 당호(堂號)는 여유(與猶)이다. 유형원(柳馨遠) · 이익(李瀷)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다. 실용지학(實用之學)·이용후생(利用厚生)을 주장하면서 주자 성리학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봉건제도의 각종 폐해를 개혁하려는 진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시했다. 수원 화성의 건축을 주도했으며, 거중기를 고안하여 근대적 건축기술을 선보이기도 한, 조선이 낳은 천재였다.

 

 

 

[작품해설]

 

「애절양」은 쓸데없는 전쟁을 일으켜 백성을 사지로 모는 당나라 지배층을 비판하고 군역을 면하기 위해 자신의 팔을 스스로 자른 비극을 「절비옹(折臂翁)」이란 작품을 통해 비판한 현실주의적 시세계를 보여준 백거이(白居易)의 시정신과 맥락이 닿아 있는 시이다.

조선 초기 관리들의 수탈에 못 이겨 매화나무를 쪼개 버리는 현실을 목도하고, 그 참담함 정경을 노래했던 어무적(魚無迹)의 「작매부(斫梅賦)」와 함께 극적인 상황을 포착하여 당시 피지배층이 당하던 질고와 탐학무도한 정치를 고발한 대표적 작품이다.

 

다산(茶山) 목민심서(牧民心書)』 「첨정(簽丁)에서, “요즘 피폐한 마을의 가난한 집에서는 아기를 낳기가 무섭게 홍첩이 이미 와 있다. 음양의 이치는 하늘이 품부한 것이니 정교(情交)하지 않을 수 없고, 정교하면 낳게 되어 있는데 낳기만 하면 반드시 병적에 올려서 이 땅의 부모 된 자로 하여금 천지의 생생(生生)하는 이치를 원망하게 하여 집집마다 탄식하고 울부짖게 하니, 나라의 무법함이 어찌 여기까지 이를 수 있겠는가? 심한 경우에는 배가 불룩한 것만 보고도 이름을 지으며 여자를 남자로 바꾸기도 하고, 그보다 더 심한 경우에는 강아지 이름을 혹 군안(軍案)에 올리기도 하는데, 이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니 가리키는 것은 진짜 개이며, 절굿공이의 이름이 관첩(官帖)에 나오기도 하는데, 이도 사람의 이름이 아니니 가리키는 것은 진짜 절굿공이이다.

 

今殘村下戶, 嬰孩落地, 呱聲一發, 紅帖已到。陰陽之理天之所賦, 不能無交, 交則有生, 生則必簽, 使域中之爲父母者, 怨天地生生之理. 家嗷而戶啜, 國之無法, 一何至此? 甚則指腹而造名, 換女而爲男, 又其甚者, 狗兒之名, 或載軍案, 非是人名, 所指者眞狗也, 杵臼之名, 或出官帖, 非是人名, 所指者眞杵也。

 

'우리 漢詩 > 丁若鏞' 카테고리의 다른 글

枘鑿行  (0) 2022.03.18
過全州  (0) 2022.03.15
嘆貧 - 丁若鏞  (0) 2022.03.09
醉歌行 - 丁若鏞  (0) 2022.03.09
肩輿歎 - 丁若鏞  (0) 2020.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