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中國歷史와文學/列女傳(劉向)

貞順傳/楚昭貞姜, 楚白貞姬, 衛宗二順

by 柳川 2020. 7. 14.

楚昭貞姜
  

貞姜者,齊侯之女,楚昭王之夫人也。王出遊,留夫人漸臺之上而去。王聞江水大至,使使者迎夫人,忘持符,使者至,請夫人出,夫人曰:「王與宮人約令,召宮人必以符。今使者不持符,妾不敢從使者行。」使者曰:「今水方大至,還而取符,則恐後矣。」夫人曰:「妾聞之:貞女之義不犯約,勇者不畏死,守一節而已。妾知從使者必生,留必死。然棄約越義而求生,不若留而死耳。」
  

 

정강(貞姜)은  제(齊)나라 제후의 딸이며 초(楚)나라 소왕(昭王)의 부인이다.  왕이 순시를 나갔을 때 부인을 점대(漸臺)위에 머무르게 하고 떠났다.  왕이 강물이 크게 불어 밀려오리라는 말을 듣고 사자를 보내 부인을 맞아오게 하였는데 부절(符節)을 가지고 갈 것을 깜빡 잊고 사자가 도착하여 부인에게 점대에서 나오라 청하자 부인이 말했다.

"왕이 궁안 사람이 약조하기를 왕이 궁인을 부를 때에는 반드시 부절로써 한다고 하였소. 지금 사자가 부절을 지침하지 않고 청하지만 나는 감히 사자를 따라갈 수 없소."

사자가, "지금 물이 크게 불어 밀려오고 있는데  돌아가 부절을 가져온다면 늦을까 두렵습니다."라 하자 부인이 말했다.

"내가 들건대, 올바른 여자의 도리는 약조를 어기지 않으며, 용감한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결같이 법도를 지키는 것이오. 나는 사자를 따라가면 살고 머무르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러나 약조를 버리고 도리를 어기면서 삶을 구하는 것은 머물다가 죽는 것만 같지 못할 뿐이오."

 

 

 

於是使者反取符,還則水大至,臺崩,夫人流而死。王曰:「嗟夫!守義死節,不爲苟生,處約持信,以成其貞。」乃號之曰貞姜。

君子謂貞姜有婦節。詩云:「淑人君子,其儀不忒。」此之謂也。
頌曰:楚昭出遊,留姜漸臺,江水大至,無符不來,夫人守節,流死不疑,君子序焉,上配伯姬。

 

 

그리하여 사자가 돌아가 부절을 가지고 돌아오니, 이미 물이 크게 밀려와 점대는 무너지고 부인은 물에 휩쓸려 죽었다. 

소왕이 탄식하여 말했다. "아아 ! 의를 지키고 죽음으로 법도를 지켰도다. 구차하게 살지 않고 약조를 마음에 새겨 신의를 지키므로써 올바름을 이루었도다." 그리고 시호(諡號)를 정강(貞姜)이라 했다.

군자는, "정강에게는 부녀자의 법도가 있었다."고 했다.

시에, "어진 군자, 그 위의가 어긋나지 않네.(國風/曹風/鳲鳩)"라 함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송에, "초나라 소왕이 순시를 나가 점대위에 부인이 머물도록 하였는데 강물이 크게 밀려 왔으나 부절이 없다 하여 점대를 나오지 않으므로써 부인이 법도를 지켰는데 물에 휩쓸려 죽을 것을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이에 군자가 차례를 정하면서 백희(伯姬)와 짝하여 올렸다."고 하였다.

 

 

 

 

 

楚白貞姬
  

貞姬者,楚白公勝之妻也。白公死,其妻紡績不嫁。吳王聞其美且有行,使大夫持金百鎰、白璧一雙以聘焉,以輜軿三十乘迎之,將以爲夫人。大夫致幣,白妻辭之曰:「白公生之時,妾幸得充後宮,執箕帚,掌衣履,拂枕席,託爲妃匹。白公不幸而死,妾願守其墳墓,以終天年。今王賜金璧之聘。夫人之位,非愚妾之所聞也。且夫棄義從欲者,汙也。見利忘死者,貪也。夫貪汙之人,王何以爲哉!妾聞之:『忠臣不借人以力,貞女不假人以色。』豈獨事生若此哉,於死者亦然。妾旣不仁,不能從死,今又去而嫁,不亦太甚乎!」遂辭聘而不行。吳王賢其守節有義,號曰楚貞姬。

君子謂貞姬廉潔而誠信。夫任重而道遠,仁以爲己任,不亦重乎!死而後已,不亦遠乎!

詩云:「彼美孟姜,德音不忘。」此之謂也。
頌曰:白公之妻,守寡紡績,吳王美之,聘以金璧,妻操固行,雖死不易,君子大之,美其嘉績。
  

 

정희(貞姬)는  초(楚)나라 백공승(白公勝)의 아내이다. 백공이 죽자 그 아내는 길쌈을 하며 살면서 개가를 하지 않았다. 

오(吳)나라 왕이 그녀가 아름답고 행실이 좋다는 소리를 듣고, 대부(大夫)를 시켜 황금 100일(鎰 : 20냥, 24냥), 백벽(白璧 : 흰 옥으로 된 둥근  보석) 1쌍(雙)을 빙례(聘禮)로 하여 부인용 수레 30승(乘)보내 맞아오도록 하여 부인을 삼고자 하였다. 대부가 예물을 가지고 도착하여 청하니 백공승의 아내가 사양하고 말했다.

"백공이 살아 계실 때 저는 사랑을 받아 후궁이 되어 청소를 하고 의복을 수발하며 침전을 모시어 배필이 되었습니다. 백공이 불행하게도 죽었으니 저는 그 묘지를 지키며 천수(天壽)를 다하고 싶습니다. 지금 왕께서 금벽(金璧)을 내려 저를 맞아들이고 부인을 삼으려 하시는데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또 의(義)를 저버리고 욕망을 따르는 것은 더러운 것이며, 이로움을 보고 죽음을 잊는 것은 탐욕입니다. 탐욕스럽고 더러운 사람을 왕께서는 어찌 부인을 삼으시겠습니까 !

제가 듣기로, '충신은 힘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며  곧은 여인은 미색으로 남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합니다.

어찌 이와 같은 일이 살아 있는 사람만의 일이겠습니까. 죽은 사람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미 덕(德)이 없어 남편을 따라 죽지 못했는데 지금 제가 가서 재가를 하게 된다면 또한 너무 심하지 않겠습니까 !"

그리고 초빙을 사양하고 가지 않았다.  오나라 왕은 그녀가 수절하겠다는 뜻을 가상히 여겨, 초(楚)나라의 정희(貞姬)라

불렀다.

군자는, "정희가 청렴(淸廉)하고 순결(純潔)하고 정성스럽고 신의가 있었다.  임무는 중하고 길은 먼데  인(仁)으로 자신의 임무로 삼았으니 또한 중하지 아니한가 ! 죽어서야 그치니 또한 멀지 아니한가 !"라고 했다. 

시에, "아름다운 맹강, 덕음 잊지못하리라.(國風/鄭風/有女同車)"라 함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송에, "백공의 아내는 남편이 죽자 수절하며 길쌈을 하며 살았는데 오나라 왕이 그 것을 아름답게 여겨 금벽으로 예물삼아 아내로 맞으려 하였으나 백공의 아내는 행실을 굳게 지켜 죽더라도 마음을 바꾸지 않겠다 하니 군자가 고귀하게 여기고 그 행적이 가상하다고 아름답게 여겼다."고 하였다.

 

 

 

 

衛宗二順
  

衛宗二順者,衛宗室靈王之夫人及其傅妾也。秦滅衛君角,封靈王世家,使奉其祀。靈王死,夫人無子而守寡,傅妾有子。傅妾事夫人八年不衰,供養愈謹。夫人謂傅妾曰:「孺子養我甚謹。子奉祭祀而妾事我,我不聊也。且吾聞主君之母不妾事人。今我無子,於禮,斥絀之人也,而得留以盡其節,是我幸也。今又煩孺子不改故節,我甚內慚。吾願出居外,以時相見,我甚便之。」

 

 

위(衛)나라  종실(宗室)의 두 여인은 우나라 종실의 영왕(靈王)의 부인과 그 시첩(侍妾)이다.  진(秦)나라가  위나라 군주인 각(角)을 멸망시킨 후, 영왕을 세워 가문을 이어 조상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영왕이 죽은 후 부인은 자식도 없이 수절하여 과부로 지냈는데 그 시접은 아들이 있었다.  시첩은 부인을 8년동안 섬기면서 변함이 없었고, 부인을 부양하는데 더욱 정중히 하였다. 부인이 시첩에게 말하였다.

"그대(孺子: 자식을 낳은 妾)가 나를 부양함에 있어 심히 공경스럽게 하고 있소. 그대의 아들이 군주가 되어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데, 그대가 나를 섬기니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오. 또 내가 듣기로 군주를 낳은 모친은 첩이라도 다른 사람을 섬기지 않는다 하오. 지금 내게 자식이 없어  예로써는 궁중에서 나가야 할 사람이지만  그동안 궁에 머물러 부인으로서의 법도로 대접받아 왔음은 내가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오.  이제 또 번거롭게도 그대가 옛 법도를 고치지 않으니 내가 매우 부끄럽소. 나는 궁밖으로 나가 따로 지내고  때때로 만난다면 내가 매우 편하겠소." 

 

 

 

傅妾泣而對曰:「夫人欲使靈氏受三不祥耶!公不幸早終,是一不祥也。夫人無子而婢妾有子,是二不祥也。夫人欲出居外,使婢子居內,是三不祥也。妾聞忠臣事君無怠倦時,孝子養親患無日也。妾豈敢以小貴之故變妾之節哉!供養固妾之職也。夫人又何勤乎!」夫人曰:「無子之人而辱主君之母,雖子欲爾,衆人謂我不知禮也。吾終願居外而已。」

 

 

시첩이 울면서 대답하였다.

"부인께서는 영씨(靈氏)집안에 세가지 상스럽지 못한 일을 받게 하시려는지요!  영공께서 불행히도 일찍 돌아가시니 이 것이 첫째 상스럽지 않은 일이오, 부인께서는 자식이 없는데 저는 아들이 있음이 두번째 불상사요, 부인은 궁밖에 나가 사시려 하고  저로 하여금 궁안에서 살게 하려 하시니  세번째 불상사입니다.  제가 듣기로 충신은 군주를 섬김에 있어 게으름을 피울 시간이 없고, 효자는 부모를 섬김에 있어 하루라도 소홀할까 근심한다 했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조금 귀해졌다 해서 저의 법도를 바꾸겠습니까!  부인을 부양하는 일은 진실로 제 직분입니다. 부인이 또 어찌 마음 쓰실 일이겠습니까!"

부인이 다시 말했다.

"자식도 없는 사람이 군주의 모친을 욕보이는 것이니 그대가 그리 하고 싶어 해도 사람들이 내가 예를 모른다 할 것이오.  나는 결국 궁 밖으로 나가 살고 싶을 뿐이오."

 

 

 

傅妾退而謂其子曰:「吾聞君子處順,奉上下之儀,脩先古之禮,此順道也。今夫人難我,將欲居外,使我居內,此逆也。處逆而生,豈若守順而死哉!」遂欲自殺。其子泣而止之,不聽。夫人聞之懼,遂許傅妾留,終年供養不衰。

君子曰:「二女相讓,亦誠君子。可謂行成於內,而名立於後世矣。」

詩云:「我心匪石,不可轉也。」此之謂也。
頌曰:衛宗二順,執行咸固,妾子雖代,供養如故,主婦慚讓,請求出舍,終不肯聽,禮甚閒暇。

 

 

시첩은 물러나 아들에게 가서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군자는 순리에 따라 처신하여 상하의 의를 받들고 옛 사람의 예를 익히는데 이것이 도를 따르는 것이다. 지금 부인이 나를 어려워하여, 부인이 궁 밖에 나가 살고 내가 궐안에 살기를 바라니 이것은 도를 거스르는 것이다. 도를 거스르며 사는 것이 어찌 순리를 지키며 죽는 것만 같겠는가!"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였다.

아들이 울면서 저지하고 듣지 않았다.

부인이 그 일을 듣고 송구히 여겨 마침내 시첩에게 궁 안에 머무르겠다고  허락하니 생을 마칠 때까지 부인을 부양함을 한결같이 하였다. 

군자는, "두 여인이 서로 사양하니 또한 참으로 군자의 일이로다. 행실이 안에서 이루어지니 그 명성이 후세에 이루어졌다."고 했다.

시에, "내 마음이 돌이 아니라 구를 수가 없다.(國風/邶風/柏舟)"라 함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송에, "위나라 종실에 두 여인이 있어 행실이 모두 굳세고 첩의 아들이 대를 이었어도 부인에 대한 봉양이 전과 똑같아 부인이 부끄러워 하고 사양하여 궁 밖에 나가 살기를 청했으나 끝까지 듣지 않았으니 예를 지킴에 어찌 한가하였겠는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