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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歷史와文學/列女傳(劉向)

貞順傳/蔡人之妻, 黎莊夫人, 齊孝孟姬

by 柳川 2020. 7. 10.

蔡人之妻
  

蔡人之妻者,宋人之女也。旣嫁於蔡,而夫有惡疾。其母將改嫁之,女曰:「夫不幸,乃妾之不幸也,柰何去之?適人之道,壹與之醮,終身不改。不幸遇惡疾,不改其意。且夫采采芣之草,雖其臭惡,猶始於捋采之,終於懷擷之,浸以益親,況於夫婦之道乎!彼无大故,又不遣妾,何鎰去?」終不聽其母,乃作芣之詩。君子曰:「宋女之意甚貞而壹也。」
頌曰:宋女專慤,持心不願,夫有惡疾,意猶一精,母勸去歸,作詩不聽,後人美之,以爲順貞。
  

慤 : 삼갈 각. 삼가다. 행동을 조심함. 바르다. 성실함. 정성.순박하다. 질박함.

 

 

채(蔡)나라 사람의 아내는  송(宋)나라 사람의 딸이다.  채나라 사람에게 출가하였는데 남편에게 나쁜 병이 있었다.

그녀의 모친이 개가를 시키려 하자 그녀가 말했다.

"남편의 불행은 제 불행입니다. 어찌 그를 버리고 떠나겠습니까?  시집을 간 사람의 도리는 한번 초례를 치르고 나면 평생 개가하지 않는 법입니다. 불행히도 좋지 않은 병을 가진 사람을 만났지만 뜻을 바꿀 수 없습니다. 또한 질경이라는 풀을 뜯고 또 뜯어 그 냄새가 고약하지만 처음에 뜯고 따서 마침내 품고 옷섶에 담고 하면 점점 더욱 친숙해지는데, 하물며 부부의 도만큼이야 하겠습니까! 그에게 큰 사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저를 내친 것도 아닌데 어떻게 떠날 수 있겠습니까?" 하고는  끝까지 그 모친의 말을 듣지 않았고  부이(苢 : 질경이)라는 시(國風/周南/苢)를 지었다.

군자는, "宋나라 여인의 마음은 매우 정숙하고 한결같았다."고 하였다.

송에, "송나라 여인은 오로지 바르고,  뜻밖에 남편이 나쁜 병이 있음에도 마음을 지켜 한결같이 정성을 다하였고 모친이 개가할 것을 권하였어도 시를 지으며 듣지 않았다.  후세의 사람들이 그녀를 아름답게 여기고 도리를 따르고 정숙하다." 하였다.

 

 

 

黎莊夫人
  

黎莊夫人者,衛侯之女,黎莊公之夫人也。旣往而不同欲,所務者異,未嘗得見,甚不得意。其傅母閔夫人賢,公反不納,憐其失意,又恐其已見遣,而不以時去,謂夫人曰:「夫婦之道,有義則合,無義則去。今不得意,胡不去乎?」乃作詩曰:「式微式微,胡不歸?」夫人曰:「婦人之道,壹而已矣。彼雖不吾以,吾何可以離於婦道乎!」乃作詩曰:「微君之故,胡爲乎中路?」終執貞壹,不違婦道,以俟君命。

君子故序之以編詩。
頌曰:黎莊夫人,執行不衰,莊公不遇,行節反乖,傅母勸去,作詩式微,夫人守壹,終不肯歸。
  

 

여장(黎莊)부인은 위(衛)나라 제후의 딸이며  여(黎)나라 장공(莊公)의 부인이다. 출가는 하였으나 뜻이 다르고 하는 바도 달라 서로 보지도 않아  매우 우울하게 지냈다.  그녀의 부모(傅母)는 민망히 여겨 부인은 현명한데 장공이 오히려 받아들이지 않아 그녀가 실의에 빠진 것을 동정하고,  또 그녀가 이미 내침을 받아 돌아갈 기회를 얻지 못할가 두려워 부인을 보고 말했다.

"부부의 도리는 뜻이 있으면 합하고 뜻이 없으면 헤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뜻을 얻지 못했는데 어찌 친가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이에 시를 지어 말하였다. "쇠약해져 가는대 쇠약해져 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십니까?(國風/邶風/式微)"

부인은, "부인의 도리는 하나일뿐입니다. 그가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가 어찌 부인의 도리를 버릴 수 있겠습니까 !"라 답하고는 시를 지어 말했다."군주때문이 아니면 내가 어찌 이슬을 맞고 있겠습니까?(國風/邶風/式微)"

그리고는 끝까지 정숙함을 일관되게 지켜 부인의 도리를 거스르지 않고 군주의 명을 기다렸다.

군자가 그리하여 순서를 매겨 시를 엮었다.

송에, "여나라 장부인은 행실을 지켜 쇠락해지지 않았고 장공이 만나주지 않으며 행동에 예의 범절에 반하고 어그러져

부모가 떠나기를 권하면서 식미의 시를 지어 말했어도 부인의 도리를 한결같이 지켜 끝내 돌아가지 않았다."고 하였다.

 

 

 

 

齊孝孟姬
  

孟姬者,華氏之長女,齊孝公之夫人也。好禮貞壹,過時不嫁。齊中求之,禮不備,終不往。躡男席,語不及外。遠別避嫌,齊中莫能備禮求焉。齊國稱其貞。孝公聞之,乃脩禮親迎於華氏之室。父母送孟姬不下堂,母醮房之中,結其衿縭,誡之曰:「必敬必戒,無違宮事。」父誡之東階之上曰:「必夙興夜寐,無違命。其有大妨於王命者,亦勿從也。」諸母誡之兩階之間,曰:「敬之敬之,必終父母之命。夙夜無怠,示之衿縭。父母之言謂何。」姑姊妹誡之門內,曰:「夙夜無愆。示之衿鞶,無忘父母之言。」

 

躡 : 밟을 섭.  밟다. 오르다. 이르다. 다다름. 잇다. 뒤를 이어 계속함. 뒤쫒다. 따름. 빠르다.

縭 : 향주머니끈 리. 향주머니를 차는 끈. 실을 신발에 장식하다. 폐슬. 띠, 허리띠. 

鞶 : 큰 띠 반. 큰 띠. 말의 뱃대 끈. 작은 주머니.

 

맹희(孟姬)는 화씨(華氏)집안의 장녀이며 제(齊)나라  효공(孝公)의 부인이다.  예(禮)를 좋아하고 곧음을 한결같이 하였는데 혼기가 지나도록 출가하지 못했다.  제나라에서 그녀에게 구혼을 하여도 예를 갖추지 않으면 끝내 가지 않았다. 

남자가 앉았던 자리는 밟지 않았고, 말을 해도 밖에까지 미치지 않았다.  틀린 것을 멀리 하고 싫은 것은 피하여 제나라 안에서는 능히 예를 갖추어 구혼하는 자가 없었다.  제나라 사람들이 그녀의 올곧음을 칭찬하였는데, 효공(孝公)이 듣고  예를 갖추어 화씨의 집에 친영을 갔다.  부모는 맹희를 보내면서 당(堂)을 내려가지도 않고, 모친은 초례를 치르는 방안에서 옷고름과  향주머니 끈을 매주면서 훈계하여 말했다.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경계하여 궁궐안에서의 직분을 어기지 말아라."  

부친이 동쪽 계단 위에서 훈계하여 말했다.

"반드시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들며 명을 어기지 말아라. 왕명에 크게 방해되는 자가 있으면 역시 따르지 말아라."

서모(庶母)들이 두 계단 사이에서 경계하여 말했다. "공경하고 공경하여라. 반드시 부모님의 명을 지켜라. 밤낮으로 게으르지 말고 옷고름과 향주머니 끈에 표시하여 부모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확인해라."

고모와 자매들도 문안에서 훈계하였다. "밤낮으로 허물이 없게 하고 옷고름과 주머니 끈에 표시하여 부모님의 말씀을 잊지 말거라." 

 

 

 

孝公親迎孟姬於其父母,三顧而出。親迎之綏,自御輪三,曲顧姬輿。遂納於宮。三月廟見,而後行夫婦之道。旣居久之,公游於琅邪,華孟姬從,車奔,姬墮車碎,孝公使駟馬立車載姬以歸,姬使侍御者舒帷以自障蔽,而使傅母應使者曰:「妾聞妃后踰閾,必乘安車輜軿, 下堂必從傅母保阿, 進退則鳴玉環佩。內飾則結紐綢繆,野處則帷裳擁蔽。所以正心壹意,自斂制也。今立車無軿,非所敢受命也。野處無衛,非所敢久居也。三者失禮多矣。夫無禮而生,不如早死。」

 

閾 : 문지방 역. 문지방. 한정하다. 안팎을 구별지음. 

輜 : 짐수레 치. 수레의 총칭.

軿 : 거마소리 병. 거마의 소리.  가벼운 병거. 덮개를 덮어 적에게 보이지 않게한 전차. 부인용 수레. 사방에 휘장을 두른  달구지.

 

 

효공(孝公)은  맹희를 그 부모에게서 친히 맞이하여 세번을 돌아보아 군주의 예를 표하고 나왔다. 효공은 친히 맹희에게 수레의 손잡이를 쥐어주고 스스로 수레를 몰아 세 바퀴를 돈 다음 맹희가 탄 가마를 굽어보고 마침내 궁으로 맞아들였다.  3개월이 지나자 종묘에 참배하고 그 후에 부부의 도를 행하였다.  한동안 지내다가  효공이 낭야를 순시할 때, 화맹희도 따라갔는데 수레를 달리다가 맹희가 수레에서 떨어지고 수레가 부숴지자  효공이 사마(駟馬 : 말 네마리가 끄는 수레)가 끄는 서서 타는 수레를 세우고 맹희를 태워 돌아오는데  맹희는 시중드는 사람을 시켜 장막을 펴게 하여 스스로 자신을 가렸다.  그리고 부모(傅母)로 하여금 사자를 보내 효공에게 말을 전하도록 하였다.

"제가 듣건대  비(妃)나 후(后)가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앉아서 타는 수레여야 하고 사방에 휘장을 둘러 안이 보이지 않는 부인용 수레여야 합니다.  당(堂)을 내려갈 때에는 반드시 부모(傅母)와 시종들이 따라야 하고 진퇴(進退)시에는 몸에 찬 패옥소리가 울려야 합니다. 안에 있을 때에는 꾸미되 띠로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밖에 있을 때에는 휘장으로 가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한가지로 하여 스스로를 단속하고 절제하는데에 있습니다. 

지금 서서 타는 수레에 가릴 휘장도 없으니 감히 명을 받들 수 없습니다.  또 야외인데도 호위가 없어 감히 오래 있지도 못하겠습니다. 세가지 모두 예를 잃은 바가 심합니다.  예(禮)가 없이 사느니 일찍 죽는 것만 못합니다."

 

 

 

使者馳以告公,更取安車。比其反也,則自經矣,傅母救之不絶,傅母曰:「使者至,輜軿已具。」姬氏蘇,然後乘而歸。

君子謂孟姬好禮。禮,婦人出必輜軿,衣服綢繆。旣嫁,歸問女昆弟,不問男昆弟。所以遠別也。

詩曰:「彼君子女,綢直如髮。」此之謂也。
頌曰:孟姬好禮,執節甚公,避嫌遠別,終不冶容,載不並乘,非禮不從,君子嘉焉,自古寡同。

 

 

사자(使者)가 달려가 효공(孝公)에게 고하고 앉아서 타는 수레로 교체했다.  사자가 돌아와 보니 맹희는 그 사이에 스스로 목을 매었으나 부모(傅母)가 구하여 죽지는 않았다. 

부모가 말했다. "사자가 돌아왔는데 부인용 수레로 바꾸어 왔습니다."

맹희가 정신을 차린 후 그 수레를 타고 돌아왔다.

군자는, "맹희가 예를 좋아하였다.  예(禮)에 부인이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부인용 수레를 타야 하고, 의복은 단정해야 한다.  출가를 하였으면 근친을 가서 여형제(女兄弟)의 안부를 물어도 남자형제의 안부는 묻지 않는다. 그 까닭은 분별을 다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시에, "저 군자의 딸, 단정한 차림새가 머리 묶은 것 같도다.(小雅/都人士之什/都人士)라함은이를말한것이다.

송에, "맹희는 예를 좋아하여 법도를 지키는데 매우 공정하였고 싫은 것은 피하고 틀린 것은 멀리하였으며 끝내 얼굴을 단장하지 않았고 수레를 함께 서서 타지 않았고 예가 아니면 따르지 않아 군자가 아름답게 여겼으며 옛부터 이와 같은 일이 드물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