魯漆室女
漆室女者,魯漆室邑之女也。過時未適人。當穆公時,君老,太子幼。女倚柱而嘯,旁人聞之,莫不爲之慘者。其鄰人婦從之遊,謂曰:「何嘯之悲也?子欲嫁耶?吾爲子求偶。」漆室女曰:「嗟乎!始吾以子爲有知,今無識也。吾豈爲不嫁不樂而悲哉!吾憂魯君老,太子幼。」鄰婦笑曰:「此乃魯大夫之憂,婦人何與焉!」漆室女曰:「不然,非子所知也。昔晉客舍吾家,繫馬園中。馬佚馳走,踐吾葵,使我終歲不食葵。鄰人女奔隨人亡,其家倩吾兄行追之。逢霖水出,溺流而死。令吾終身無兄。
葵 : 해바라기 규. 해바라기, 채소이름. 아욱. 접시꽃. 헤아리다. 망치.
칠실(漆室)의 여인(女人)은 노(魯)나라 칠실읍(漆室邑)에 살았던 여인이다. 시집갈 나이가 지나도록 혼인을 하지 못했다.
노나라 목공(穆公) 때, 군주는 늙고 태자는 어렸다. 어느 날, 여인이 기둥에 기대어 휘파람을 불었는데 주위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그녀를 위해 애처롭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웃집 부인이 놀러와서 하는 말이,
"어찌 휘파람소리가 그리 슬픈가? 그대는 시집을 가고 싶은가? 내가 짝을 찾아 주리라."하였다.
칠실녀가, "아아 ! 나는 댁(宅)이 알고 있는가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모르고 계셨군요. 내가 어찌 시집을 가지 못해 즐겁지 않아 슬퍼하겠습니까 ! 내가 근심하는 것은 군주께서는 연로하시고 태자는 어려서랍니다."라고 답하니,
이웃집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노나라 대부가 걱정할 일이지 어찌 아녀자가 간여할 일이란 말인가 !"
칠실녀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댁이 모르시는 것입니다. 지난 날, 진나라에서 온 손님이 우리 집에서 묵었는데
말을 정원에 매어 놓았습니다. 말이 고삐가 풀려 뛰어다니다가 아욱밭을 짓밟아 내가 그 해에 아욱을 먹지 못했습니다.
또, 이웃잡 여자가 정분이 나서 어떤 사람을 따라 도망을 쳤는데 그 집의 청으로 우리 오빠가 쫒아가다가 장마를 만나 물이 불어나 흐르는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우리는 결국 오빠의 시신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吾聞河潤九里,漸洳三百步。今魯君老悖,太子少愚,愚僞日起。夫魯國有患者,君臣父子皆被其辱,禍及衆庶,婦人獨安所避乎!吾甚憂之。子乃曰婦人無與者,何哉!」鄰婦謝曰:「子之所慮,非妾所及。」三年,魯果亂,齊楚攻之,魯連有寇。男子戰鬥,婦人轉輸不得休息。
君子曰:「遠矣漆室女之思也!」
詩云:「知我者,謂我心憂,不知我者,謂我何求。」此之謂也。
頌曰:漆室之女,計慮甚妙,維魯且亂,倚柱而嘯,君老嗣幼,愚悖姦生,魯果擾亂,齊伐其城。
내가 듣기로 하수(河水)는 아홉 고을을 적시지만, 진창이 300보(步)라 합니다. 지금 노나라 군주는 늙어 망령이 들었고 태자는 어려 사리분별을 못하니 어리석은 자와 속이는 자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노나라에 환난이 있으면 군신(君臣)과 부자(父子)가 모두 욕을 당하고 화(禍)가 서민 대중에 미칠터인데 여인네라 해서 어찌 벗어날 수 있으리오 ! 나는 매우 걱정됩니다. 댁은 아녀자가 간여할 바 아니라 했는데 어찌 그렇단 말입니까 !"
이웃집 부인이 사과하여 말했다. "그대의 염려하는 바에 내가 미치지 못했소."
3년이 지나자 노나라가 과연 어지러워지니, 제나라와 초나라가 공격하여 노나라는 연달아 화를 입었다. 남자는 전쟁에 나가고 여자는 물자를 옮기느라 쉴 틈이 없었다.
군자는, "칠실녀의 생각하는 바는 멀기도 하구나."라 하였다.
시에, "나를 아는 자는 내 마음 울적하다 할것이고, 나를 모르는 사람 내가 무언가 찾는다 하리라.(國風/王風/黍離)"함은이를말하는것이다.
송에, "칠실의 여인은 헤아림이 매우 오묘하여 노나라가 장차 어지러워질 것을 내다보고 기둥에 기대어 휘파람을 불었는데, 군주는 늙고 태자는 어려 어리석고 간사한 자들이 생겨나 노나라는 결국 어지러워져 제나라에 성을 빼앗겼다."고 하였다.
魏曲沃負
曲沃負者,魏大夫如耳母也。秦立魏公子政爲魏太子,魏哀王使使者爲太子納妃而美,王將自納焉。曲沃負謂其子如耳曰:「王亂於無別,汝胡不匡之?方今戰國强者爲雄,義者顯焉。今魏不能强,王又無義,何以持國乎!王中人也,不知其爲禍耳。汝不言,則魏必有禍矣。有禍,必及吾家。汝言以盡忠,忠以除禍,不可失也。」如耳未遇閒,會使於齊,負因款王門而上書曰:「曲沃之老婦也,心有所懷,願以聞於王。」王召入。
곡옥부(曲沃負)는 위(魏)나라 대부 여이(如耳)의 모친이다. 진(秦)나라에서 위나라 공자 정(政)을 위나라의 태자로 세우자 위나라 애왕(哀王)은 사자(使者)를 시켜 태자비를 맞이해 오게 하였는데 그 여인이 아름다워, 왕이 스스로 취하려고 하였다. 이에 곡옥부는 그 아들 여이(如耳)에게 말했다.
"왕이 함부로 분별없는 짓을 하려 하는데 너는 어찌 바로잡으려 하지 않느냐? 지금과 같은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강한자가 우두머리가 되고 의로운 자는 드러나게 된다. 지금 위나라는 강하지도 못하고 왕에게는 의롭지도 못하니 무엇으로 나라를 지탱하겠느냐 ! 왕은 평범한 사람으로 그 하는 짓이 화를 불러 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모를 뿐이다. 네가 간하지 않으면 위나라는 반드시 화를 입게 될 것이고 화를 입게 되면 우리집안에도 그 화가 미칠 것이다. 너는 충성을 다하여 간하여 충성으로 화를 방지하도록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여이는 틈을 잡지 못하다가 마침내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곡옥부는 궐문에 이르러 상소를 올렸다.
"곡옥의 늙은 여인입니다. 마음 속에 생각한 바가 있는데 부디 왕께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왕이 불러 들였다.
負曰:「妾聞男女之別,國之大節也。婦人脆於志,窳於心,不可以邪開也。是故必十五而笄,二十而嫁,早成其號諡,所以就之也。聘則爲妻,奔則爲妾,所以開善遏淫也。節成,然後許嫁,親迎,然後隨從,貞女之義也。今大王爲太子求妃,而自納之於後宮,此毁貞女之行而亂男女之別也。自古聖王必正妃匹妃。匹正則興,不正則亂。夏之興也以塗山,亡也以末喜。殷之興也以有莘,亡也以妲己。周之興也以太姒,亡也以褒姒。周之康王夫人,晏出朝關雎預見,思得淑女以配君子。夫雎鳩之鳥,猶未嘗見乘居而匹處也。
窳 : 이지러질 유. 이지러지다. 약해지다. 게으르다. 나태하다. 거칠다. 무너지다. 문란해지다. 우묵하다. 움푹 들어가다.
乘居而匹處 : 乘은 넷이며, 匹은 하나. 여럿이 모여 있거나 홀로 있음을 말함.
곡옥부가 왕에게 아뢰었다.
"제가 듣건대 남녀의 유별(有別)함은 나라의 큰 법도입니다. 여인이 뜻이 무르고 마음이 무너져 어긋난 길로 들어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기때문에 반드시 열다섯이 되면 비녀를 꽂고 이십세가 되면 혼인을 하는데 일찌기 그 도리를 이루고 죽어서는 시호를 를 받는데 여인이 나아갈 바라 할 것입니다. 빙례로 맞아들이면 아내가 되고 예를 갖추지 아니하고 맞이하면 첩이 되는데 이는 선(善)으로 나아가게 하고 음란한 풍조를 막기 위한 것입니다. 법도를 갖추어 혼인이 허락되면 육례(六禮)를 거친 연후에 남편을 따르는 것이 올바른 여자의 도리입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태자비를 구하고서 그 여인을 스스로 후궁으로 들이려 하시는데 이는 올바른 여자의 길을 망치고 남녀의 유별(有別)함을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옛부터 훌륭한 왕은 반드시 올바르게 배필(配匹)을 맞이하셨습니다. 바르게 배필을 맞으면 흥하고 바르지 않게 배필을 맞으면 어지러워졌습니다. 하(夏)나라는 도산(塗山)씨의 장녀로부터 일어났고 망한 것은 말희(末姬)때문이었습니다. 은(殷)나라가 일어난 것은 유신(有莘)씨로부터 일어났고 달기때문에 망했습니다.
주(周)나라는 태사(太楂)로부터 일어났고 포사(褒姒)때문에 망했습니다. 주나라 강왕(康王)의 부인은 왕이 조회에 늦게 나오니 관저(關雎[國風/周南)라는 시(詩)로 미리 나오게 했으며, 숙녀를 얻으려 생각하는 것은 군자와 짝지워 주기 위해서입니다. 물수리(雎鳩)라는 새는 무리지어 지내거나 홀로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夫男女之盛,合之以禮,則父子生焉,君臣成焉,故爲萬物始。君臣、父子、夫婦三者,天下之大綱紀也。三者治則治,亂則亂。今大王亂人道之始,棄綱紀之務。敵國五六,南有從楚,西有橫秦,而魏國居其間,可謂僅存矣。王不憂此而從亂無別,父子同女妾,恐大王之國政危矣。」王曰:「然,寡人不知也。」遂與太子妃,而賜負粟三十鍾,如耳還而爵之。王勤行自脩,勞來國家,而齊楚强秦不敢加兵焉。君子謂魏負知禮。詩云:「敬之敬之,天維顯思。」此之謂也。
頌曰:魏負聰達,非刺哀王,王子納妃,禮別不明,負款王門,陳列紀綱,王改自脩,卒無敵兵。
무릇 남녀가 한창인 나이에 예로써 결합하면 부자이 인연이 생기고, 군신관계가 이루어지니, 그러므로 모든 일이 시작됩니다. 군신(君臣), 부자(父子), 부부(夫婦), 이 세가지는 천하의 큰 강기(綱紀 : 나라를 다스리는 바탕이 되는 질서, 또는 국가의 대법)입니다. 이 세가지를 다스리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면 나라가 어지러워집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사람의 도리의 시작을 어지럽게 하시고, 강기를 바로 하는 직무를 버리려 하십니다. 적(敵)이 되는 나라가 대여섯으로 남쪽에는 방자한 초(楚)나라가 있고 서쪽에는 포학한 진(秦)나라가 있는데 우리 위(魏)나라는 그 사이에서 가까스로 존속해 나가고 있다 하겠습니다. 왕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걱정하지 않으시고 함부로 분별없는 행동을 하시려 하여 부자간에 한가지로 여인을 탐하고 있으니, 대왕의 국정이 위태해질가 두렵습니다."
다 듣고난 왕은, "그렇소. 과인이 알지 못했소."라 대답하고는 마침내 그 여인을 태자비로 삼고 곡옥부에게 곡식 삼십종을 내리고 그 아들 여이(如耳)가 돌아오자 벼슬을 돋우었다. 왕은 삼가 행동하고 스스로 닦아 힘써 국민을 위로하니 재(齊)나라, 초(楚)나라와 강한 진(秦)나라도 감히 전쟁을 일으키지 못했다.
군자는, "위나라의 곡옥부는 예(禮)를 알았다."고 했다.
시에, "공경하고 공경할지어다. 하늘은 밝도다.(周頌/閔予小子之什/敬之)"라 함은 이를 말한 것이다.
송에, "위나라의 곡옥부는 총명하고 사리에 통달하여 애왕(哀王)의 잘못을 간하였는데 왕이 태자비가 될 여자를 취하려 하여, 예의와 분별에 밝지 못한 행위를 하려 하자, 곡옥부가 궁궐로 달려가 기강을 열거해 말하여 왕이 마음을 고치고 스스로 행실을 닦으니 마침내 적이 침입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趙將括母
趙將馬服君趙奢之妻,趙括之母也。秦攻趙,孝成王使括代廉頗爲將。將行,括母上書言於王曰:「括不可使將。」王曰:「何以?」曰:「始妾事其父,父時爲將,身所奉飯者以十數,所友者以百數。大王及宗室所賜幣者,盡以與軍吏士大夫。受命之日,不問家事。今括一旦爲將,東向而朝軍吏,吏無敢仰視之者。王所賜金帛,歸盡臧之。乃日視便利田宅可買者。王以爲若其父乎?父子不同,執心各異。願勿遣。」
[참고]
효성왕 7년, 진과 조나라의 군대가 장평(長平)을 두고 대치했다. 이때 조사는 이미 죽었고, 인상여는 병이 중했다. 조나라는 염파를 장수로 삼아 진나라를 대항케 했다. 진나라가 몇 차례 조나라의 군대를 격파했지만 조나라 군은 보루를 단단히 쌓고 싸우지 않았다. 진나라가 계속 도전했지만 염파는 응하지 않았다.
진나라의 첩자는 “진나라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오로지 마복군 조사의 아들 조괄(趙括)이 장수가 되는 것뿐이다.”라는 말을 퍼뜨렸다. 이에 조왕은 조괄을 장수로 삼아 염파를 대신하게 하려고 했다. 인상여가 말했다.
“왕께서 명성만으로 조괄을 쓰려고 하시는데 이는 아교로 거문고 발을 붙이고 거문고를 연주하려는 것(膠柱鼓瑟)과 같습니다. 조괄은 그저 그 아버지가 전한 책만 읽었을 뿐 임기응변을 모릅니다.” 조왕은 듣지 않고 기어이 그를 장수로 삼았다.
조괄은 어려서부터 병법을 배워 군대의 일을 말하자면 천하에 당할 자가 없었다. 일찍이 아버지 조사와 병법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조사도 당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잘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史記/廉頗藺相與列傳>
조(趙)나라 장군 마복군(馬服君) 조사(趙奢)의 아내는 조괄(趙括)의 모친이다.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침공하자 조나라 효성왕(孝成王)은 염파(廉頗)를 대신하여 조괄(趙括)을 장수로 삼았다.
군대가 떠나려 하는데 조괄의 모친이 왕에게 글을 올렸다.
"괄(括)을 장수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왕이, "무슨 까닭입니까?"하고 물으니 그 모친이 답했다.
"처음에 제가 조괄의 부친을 섬기게 되었을 때 그 부친은 장수였으며 그가 몸소 먹이는 자가 수십명이었고 벗하는 자가 수백명이었습니다. 대왕과 종실에서 재물을 내리면 모두 군리와 사대부에게 나눠 주었고 명을 받은 날에는 집안일을 묻지 않았습니다. 지금 조괄은 하루아침에 장수가 되자 동쪽을 향해 군리(軍吏)들로부터 조회를 받는데 군리들이 감히 올려다 보지도 못합니다. 왕이 내리시는 재물은 집에 가져와 저장합니다. 이에 매일 편리한 땅과 집을 보고 좋으면 사들입니다. 왕께서는 어찌 조괄을 그 부친과 같다고 여기십니까? 아비와 아들이 같지 않고 마음 쓰는 것도 다릅니다. 부디 보내지 마십시오."
王曰:「母置之,吾計已決矣。」括母曰:「王終遣之,卽有不稱,妾得無隨乎?」王曰:「不也。」括旣行,代廉頗。三十餘日,趙兵果敗,括死軍覆。王以括母先言,故卒不加誅。君子謂括母爲仁智。詩曰:「老夫灌灌,小子蹻蹻,匪我言耄,爾用憂謔。」此之謂也。
頌曰:孝成用括,代頗距秦,括母獻書,知其覆軍,願止不得,請罪止身,括死長平,妻子得存。
[참고]
조괄이 염파를 대신하자 규정을 모두 바꾸고 군리들까지 교체했다. 진나라의 장수 백기가 이를 듣고는 기병(奇兵)을 풀어 패하여 달아나는 척하게 했다. 그러면서 조나라 군대의 식량 보급로를 차단하여 조나라 군대를 둘로 나눔으로써 군사들의 마음을 조괄로부터 떠나게 했다. 40일 넘어 지나자 조나라의 군대는 굶주리기 시작했다. 조괄은 정예 부대를 내세워 직접 전투에 나섰으나 진나라의 군사가 조괄을 쏘아 죽였다. 조괄의 군대는 패하여 수십 만이 드디어 진나라에 항복했고, 진나라는 그들을 모두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다.
조나라는 전후 전투에서 45만이 넘는 군사를 잃었다. <史記/廉頗藺相與列傳>
왕이 대답했다. "모친은 그만 두시오. 나는 이미 결정했소."
조괄의 모친이, "왕께서 기어이 보내신다면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 있더라도 제가 연루되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왕이 허락했다. 조괄은 염파를 대신하여 군대를 인솔하여 갔다.
삼십여일이 지나자 조나라 군대가 과연 패배하고 조괄은 죽고 군은 무너졌다. 왕은 조괄의 모친이 앞서 말한 바 있었기 때문에 그 집안에 주살(誅殺)을 가하지 않았다.
군자는, "조괄의 모친은 어질고 지혜로웠다."고 하였다.
시에, "노부가 간곡하게 하는데도 이 녀석은 교만방자하구나. 내 말이 망녕된 말이 아닌데도 너는 근심을 희롱으로 삼도다. (大雅/生民之什/板)"라 한 것은 이를 말한 것이다.
송에, "조(趙)나라 효성왕이 염파를 대신하여 조괄을 장수로 기용, 진(秦)나라에 대항하게 하려 하자 그 모친이 글을 올려 그 군대가 망할 것을 알고 조괄을 보내지 말라 하였으나 뜻을 이룰 수 없어 조괄의 죄가 자신에게 연루되지 않도록 청하므로써 조괄이 장평전투에서 패한 후 처자가 보존될 수 있었다." 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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