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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漢詩/杜甫

自京赴奉先縣詠懷

by 柳川 2020. 11. 20.

                                              自京赴奉先縣詠懷五百字

                                                                                                       

 

 

杜陵有布衣、 老大意轉拙。 

許身一何愚、 竊比稷與契。

居然成濩落、 白首甘契闊。 

蓋棺事則已、 此志常覬豁。

 

窮年憂黎元、 歎息腸內熱。

取笑同學翁、 浩歌彌激烈。

非無江海志、 蕭灑送日月。 

生逢堯舜君、 不忍便永訣。

當今廊廟具、 構厦豈云缺。

葵藿傾太陽、 物性固難奪。 

 

顧惟螻蟻輩、 但自求其穴。 

胡爲慕大鯨、 輒擬偃溟渤。

以玆悟生理、 獨恥事干謁。 

兀兀遂至今、 忍爲塵埃沒。

終愧巢與由、 未能易其節。 

 

沈飮聊自遣、 放歌破愁絶。 

歲暮百草零、 疾風高岡裂。 

天衢陰崢嶸、 客子中夜發。 

霜嚴衣帶斷、 指直不能結。 

凌晨過驪山、 御榻在嵽嵲。 

 

蚩尤塞寒空、 蹴踏崖谷滑。 

瑤池氣鬱律、 羽林相摩戞。 

君臣留歡娛、 樂動殷膠葛。

賜浴皆長纓、 與宴非短褐。 

彤庭所分帛、 本自寒女出。 

鞭撻其夫家、 聚斂貢城闕。 

聖人筐篚恩、 實願邦國活。 

臣如忽至理、 君豈棄此物。

多士盈朝廷、 仁者宜戰慄。 

 

況聞內金盤、 盡在衛霍室。 

中堂有神仙、 煙霧蒙玉質。 

煖客貂鼠裘、 悲管逐淸瑟。 

勸客駝蹄羹、 霜橙壓香橘。 

朱門酒肉臭、 路有凍死骨。 

榮枯咫尺異、 惆悵難再述。 

 

北轅就涇渭、 官渡又改轍。 

群水從西下、 極目高崒兀。 

疑是崆峒來、 恐觸天柱折。 

河梁幸未坼、 枝撑聲窸窣。 

行旅相攀援、 川廣不可越。 

 

老妻寄異縣、 十口隔風雪。 

誰能久不顧、 庶往共饑渴。

入門聞號咷、 幼子餓已卒。

吾寧捨一哀、 里巷亦嗚咽。 

所愧爲人父、 無食致夭折。 

豈知秋禾登、 貧窶有倉卒。

 

生常免租稅、 名不隸征伐。 

撫跡猶酸辛、 平人固騷屑。 

默思失業徒、 因念遠戍卒。 

憂端齊終南、 澒洞不可掇。

 

 

 

 

봉선현으로 가는 길

 

두릉에 베옷입은 이 있어
늙어갈수록 그 뜻은 더욱 치졸해졌다.
어찌 그리 어리석은지
옛 명신(名臣) 직(稷)과 설(契)에 비하기도 한다.
어느덧 영락한 몸 되어
머리가 희어져도 애쓰기를 달갑게 여긴다.
관뚜껑이 닫힌 후에야 모든일이 끝나지만
그 뜻 한번 펴기를 항상 바라왔다.
평생 백성들을 근심하여
탄식하니 애가 타는 듯.
동학(同學)한 노인들이 비웃기라도 하면
그 노래소리 더욱 커진다.
강이나 바다에 은거하여
세월을 보내고 싶은 마음 없지 않으나
생전 요(堯)나 순(舜)같은 임금 만나
영영 이별하기도 차마 못하겠구나.
지금 조정에서는 인재들 많아
큰 집을 짓는데도 모자람이 없건만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하듯
그 본성을 빼앗을 수는 없어라.
땅강아지나 개미같은 미물들을 생각하면
단지 거처할 구멍만 구하면 될 것을
어쩌자고 큰 고래를 사모하여
항상 그를 흉내내어 넓은 바다로만 나가려 하는가.
이로써 사는 이치를 깨달았으나
청탁하는 일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겨
꼿꼿이 버티며 지금에까지 이르러
흙먼지 속에 묻혀 사는 것도 참아왔다.
옛 은사(隱士) 소부(巢父)와 허유(許由)에게는 끝내 부끄럽지만
그 뜻을 바꿀 수는 없어라.
괴롭게 술을 마셔 스스로를 달래기도 하고
큰 소리로 노래불러 시름을 잊기도 한다.
한 해는 저물어 풀들은 시들었는데
매서운 바람은 산언덕도 찢을 듯.
서울의 거리는 음산하기도 한데
나그네는 한밤중에 길을 떠난다.
서리는 차서 옷의 띠가 끊어져도
손가락이 곱아 매기도 어렵다.
이른 새벽 여산을 지나니
임금 계신 곳은 저 높은 곳이겠지.
치우(蚩尤)가 찬 허공을 가리고
벼랑과 계곡을 걸어가니 미끄럽기도 하네.
온천에서는 김이 모락모락나고
우림군(羽林軍)의 창소리는 쨍그랑거린다.
임금과 신하는 머물러 즐기니
음악소리 아득히 울려 퍼진다.
목욕하는 이는 모두 갓끈 긴 사람들이고
잔치에 참여한 이도 백성들은 아니구나.
궁궐에서 비단을 하사하는데
이는 본래 가난한 집 아낙에서 나왔을테지.
그 남편과 가족을 매질하여
모질게 거둔 것을 공물로 대궐에 바친 것이리.
임금이 이 물품들을 하사한 뜻은
원래 나라를 구하고자 한 것이었는데
신하가 이 뜻을 이루기를 소홀히 하여
임금이 하사하신 이 물건들의 뜻을 어찌 버리게 하나.
많은 선비들 조정에 넘친다지만
어진 이라면 마땅히 두려워 떨어야하리.
하물며 대궐 내 황금기물 모두
위씨와 곽씨 집으로 갔다더라.
집안에는 신선같은 여인들
안개같은 옷으로 옥같은 살결 감쌌다.
손들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담비가죽옷이고
구슬픈 피리소리는 맑은 거문고소리를 따른다.
손에게 낙타굽으로 만든 탕을 권하고
잘 익은 유자 아래 향기로운 귤이 놓여있다.
붉은 문 안에서는 술과 고기 냄새요,
길에는 얼어죽은 사람들의 뼈가 구른다.
영화로움과 괴로움이 지척간에 판이하니
슬픈 마음 이루 다시 표현할 수 없다.
북으로 수레를 돌리니 경수(涇渭)와 위수(涇渭)라,
관에서 운영하는 나루터에서 다시 수레를 갈아 탄다.
큰 물줄기 서쪽으로부터 내려 온다.
시야 끝까지 아득히 높으니
이것이 공동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싶고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에 부딪혀 부러질까 두려워라.
강의 다리는 다행히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교각이 지탱하고는 있으나 삐걱거리는 소리 불안하다.
길가는 나그네들 서로 끌어 도와주는데
강이 넓어 넘기가 매우 힘들다.
늙은 처는 딴 고을에 부쳐 사는데
열 식구가 바람과 눈 속에 떨어져 있다.
뉘라 오래 돌보지 않을 수 있으랴.
굶주림도 목마름도 같이 하자며 왔네.
문을 들어서니 부르며 우는 소리 들린다.
어린 아들이 굶주려 죽고야 말았구나.
내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으리.
마을 사람들도 역시 흐느껴 우는구나.
부끄럽다, 사람의 아비가 되어서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만들다니.
가을이라 벼도 거두었건만
가난한 집에는 이런 변고 당하는구나.
나야 나면서 조세도 면제되었고
이름도 병적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지난 날 돌아보면 아픔뿐인데
백성들의 괴로움은 얼마나 하리.
가만히 일자리 잃은 무리 생각하고
멀리 수자리 사는 병졸들 떠올리니
걱정은 종남산(終南山)만큼 높아
그 혼란스러움 종잡을 수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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