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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歷史와文學/列國志

第三回. 犬戎主大鬧鎬京, 周平王東遷洛邑.

by 柳川 2021. 3. 22.

第三回. 犬戎主大鬧鎬京, 周平王東遷洛邑.

 

 

話說申侯進表之後,有人在鎬京探信,聞知幽王命虢公爲將,不日領兵伐申,星夜奔回,報知申侯。申侯大驚曰:「國小兵微,安能抵敵王師?」 大夫呂章進曰:「天子無道,廢嫡立庶,忠良去位,萬民皆怨,此孤立之勢也。今西戎兵力方强,與申國接壤,主公速致書戎主,借兵向鎬。以救王后,必要天子傳位於故太子,此伊周之業也。語云:「先發制人,機不可失。」 申侯曰:「此言甚當。」 遂備下金繒一車,遣人賷書與犬戎借兵,許以破鎬之日,府庫金帛,任憑搬取。戎主曰:「中國天子失政,申侯國舅,召我以誅無道,扶立東宮,此我志也。」 遂發戎兵一萬五千,分爲三隊,右先鋒孛丁,左先鋒滿也速,戎主自將中軍。槍刀塞路,旌旆蔽空,申侯亦起本國之兵相助。浩浩蕩蕩,殺奔鎬京而來,出其不意,將王城圍繞三匝,水息不通。幽王聞變,大驚曰:「機不密,禍先發。我兵未起,戎兵先動,此事如何?」 虢石父奏曰:「吾王速遣人於驪山擧起烽煙,諸侯救兵必至,內外夾攻,可取必勝。」 幽王從其言,遣人舉烽。諸侯之兵,無片甲來者。蓋因前被烽火所戲,是時又以爲詐,所以皆不起兵也。幽王見救兵不至,犬戎日夜攻城,即謂石父曰:「賊勢未知强弱,卿可試之。朕當簡閱壯勇,以繼其後。」 虢公本非能戰之將,只得勉强應命,率領兵車二百乘,開門殺出。申侯在陣上望見石父出城,指謂戎主曰:「此欺君誤國之賊,不可走了。」 戎主聞之曰:「誰爲我擒之?」 孛丁曰:「小將願往。」 舞刀拍馬,直取石父。鬥不上十合,石父被孛丁一刀斬於車下。戎主與滿也速一齊殺將前進,喊聲大擧,亂殺入城。逢屋放火,逢人舉刀,連申侯也阻當他不住,只得任其所為,城中大亂。

 

賷 : 齎. 가져올 재. 가져오다. 주다. 보내다. 선사함. 가지다. 지님. 갖추다. 권하다. [자]휴대용 물건.   

任憑 : 마음대로 하게 하다. 자유에 맡기다.  ~ 일지라도, ~ 하더라도,  孛 : 살별 패. 살별. 혜성. 광채가 나는 모양. 안색이 변하다. 어둡다.

出其不意 : 攻其無備, 出其不意.   뜻하지 않은 시간(곳)에 출격하라. <孫子兵法 始計>  圍繞三匝 : 겹겹으로 둘러쌈. 

 

 

신후(申侯)가 표를 올린 후 호경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소식이 전해져 왔는데,  유왕이 괵공을 명하여 장수로 삼고 며칠 내에 군사를 이끌고 신나라를 정벌하러 출전한다고 밤새워 달려와 신후에게 보고했다. 

신후가 크게 놀라 말했다. "나라가 적어 군대도 보잘 것 없는데 어떻게 왕의 군대에 저항할 수 있단 말인가?"

대부 여장이 진언하였다. "천자가 무도하여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세워 충성스럽고 뛰어난 신하들이 벼슬을 버리고 떠나 모든 백성이 원망하고 있으니, 이것은 고립된 형세입니다. 지금 서융의 군사력이 바야흐로 강성해졌는데 신나라와 이웃하여 국토를 접하고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속히 융 나라 군주에게 서신을 보내 병력을 빌어 호경을 향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왕후를 구하면 반드시 천자는 옛 태자에게 전위하려고 할 것이니, 이것은 이윤과 주공의 업적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먼저 손을 써서 남을 제압하여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한다.'"

신후가 말했다. "이 말은 참으로 당연한 말이로다."   

이에 금과 비단 한 수레를 마련하고, 사람을 파견하여 견융의 군주에게 서신을 바쳐 병력을 빌리도록 하고, 호경을 깨뜨릴 날을 약속하게 되면 부고의 금과 비단을 마음대로 가지고 가서 쓰도록 하였다.  

견융의 군주가 말했다. "중국 천자가 실정을 하여 신후가 왕의 장인인데도 나를 불러 무도한 왕을 치고 동궁을 세우는 일을 돕도록 부탁하니 이것은 나의 뜻이로다."

마침내 융나라 병사 일만 오천명을 일으키고 세 부대로 나눠서 우선봉은 패정, 좌선봉은 만야속, 융의 군주 스스로 장수가 되어 중군이 되었다. 창검이 길을 가리고 정기가 하늘을 가렸는데 신후도 또한 본국의 병력을 일으켜 도왔다.  호호 탕탕 호경으로 짓 쳐들어가, 허를 찌르고 왕성을 겹겹으로 둘러싸니 물도 소식도 통하지 않게 되었다.     

유왕은 변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말했다. "계책이 은밀하지 못해 화가 먼저 닥쳤구나. 우리 병력은 일으키지도 않았는데 융의 병력이 먼저 움직였으니 이 일을 어찌 하나?"

괵석보가 아뢴다. "폐하께서는 속히 사람을 여산에 보내 봉화를 올리게 하면 제후들의 구원병이 반드시 달려올 것이니 내외에서 협공한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왕이 그 말에 따라 사람을 보내 봉화를 올리게 하였다. 제후의 군대는 갑옷 한조각도 오지 않았다. 모두 전에 봉화로 희롱당한 일로 인하여 이때도 거짓으로 여기고 모두 군대를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왕은 구원병이 오지 않은 것을 보고 견융의 군대가 밤낮으로 성을 치자 곧 석보에게 말했다. "적 세력의 강약을 모르니 경이 시험해 보는 것이 좋겠소. 짐은 건장한 병졸을 뽑아 뒤를 잇겠소."

괵공은 본래 싸움에 능한 장수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명에 응하여 병거 200대를 이끌고 성문을 열고 재빠르게 나갔다. 

신후가 진의 지휘대 위에서 석보가 성을 나오는 것을 바라보고 융의 군주에게 가리키며 말했다.

"이 자는 임금을 속여 나라를 그르친 도둑입니다. 도망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융 주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누가 우리를 위해 그를 잡아오겠는가?"

패정이 대답했다. "소장이 가겠습니다." 그리고는 칼을 춤추며 말을 박차고 나가 바로 석보를 취했다.  싸움이 채 10합이 넘지도 않았는데 석보는 패정의 한 칼에 참해져 수레 아래로 떨어졌다. 융주와 만야속은 일제히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 함성을 크게 지르며 어지러이 성안으로 짓쳐들어갔다.  보는 집마다 불을 지르고 만나는 사람마다 칼을 휘둘렀으나 같이 나아가는 신후조차 그들을 막지 못해 하는 대로 맡겨두니 성안은 크게 어지러워졌다. 

 

 

 

幽王未及閱軍,見勢頭不好,以小車載褒姒和伯服,開後宰門出走。司徒鄭伯友自後趕上,大叫:「吾王勿驚,臣當保駕。」 出了北門,迤邐望驪山而去。途中又遇尹球來到,言:「犬戎焚燒宮室,搶掠庫藏,祭公已死於亂軍之中矣。」 幽王心膽俱裂。鄭伯友再令擧烽,烽煙透入九霄,救兵依舊不到。犬戎兵追至驪山之下,將驪宮團團圍住,口中只叫:「休走了昏君!」 幽王與褒姒唬做一堆,相對而泣。鄭伯友進曰:「事急矣!臣拚微命保駕,殺出重圍,竟投臣國,以圖後擧。」 幽王曰:「朕不聽叔父之言,以至於此。朕今日夫妻父子之命,俱付之叔父矣。」 當下鄭伯敎人至驪宮前,放起一把火來,以惑戎兵。自引幽王從宮後衝出。鄭伯手持長矛,當先開路。尹球保著褒后母子,緊隨幽王之後。行不多步,早有犬戎兵攔住,(乃是小將古里赤。)鄭伯咬牙大怒,便接住交戰。戰不數合,一矛刺古里赤於馬下。戎兵見鄭伯驍勇,一時驚散。約行半里,背後喊聲又起,先鋒孛丁引大兵追來。鄭伯叫尹球保駕先行,親自斷後,且戰且走。卻被犬戎鐵騎橫衝,分爲兩截。鄭伯困在垓心,全無懼怯,這根矛神出鬼沒,但當先者無不著手。犬戎主敎四面放箭,箭如雨點,不分玉石,可憐一國賢侯,今日死於萬鏃之下。左先鋒滿也速,早把幽王車仗擄住。犬戎主看見袞袍玉帶,知是幽王,就車中一刀砍死,並殺伯服。褒姒美貌饒死,以輕車載之,帶歸氈帳取樂。尹球躲在車箱之內,亦被戎兵牽出斬之。

 

勢頭 : 형세, 위세, 기세, 정세.      宰門 : 관리들이 드나드는 문.     迤邐 : 구불구불 이어진 모양

搶 : 닿을 창. 닿다. 부딪침. 이르다. 도달함. 빼앗다. 거절하다. 어지럽다. 어지러운 모양. 돛을 올리다. 돛이 바람을 받음.

唬 : 범울 호/으를 하. 범이 울다. 외치다. 큰 소리로 부르다. 웅얼거리다. 놀라다.  [하]으르다. 위협하다.

拚 : 칠 변. 치다. 날다. 나는 모양. 쓸다. 청소함.     躲 : 감출 타. 감추다. 피하다. 숨다. 

 

 

유왕이 미처 군대를 점검하기도 전에 형세가 좋지 않음을 보고 작은 수레에 포사와 백복을 싣고 뒷쪽 재문을 열고 달아났다.

사도 정백 우가 뒤에서 쫒아오며 크게 외쳤다. "폐하께서는 놀라지 마십시오. 신이 어가를 보호하겠습니다."

북문을 나가자 여산을 바라보며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달렸다. 도중에 윤구를 만났는데 와서 말했다.

"견융의 군대가 궁실에 불을 지르고 창고를 마구 약탈하고 있습니다. 채공은 난군 속에서 죽었습니다."

유왕은 마음이 찢어지는 듯 했다. 정백우가 다시 봉화를 올리도록 하여 봉화가 하늘 높이 올랐으나 구원군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견융의 군대가 여산 밑까지 추격해서 여궁을 겹겹이 둘러쌌는데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어리석은 왕은 도망하지 말라."는 소리뿐이었다. 

유왕과 포사는 부둥켜안고 한 덩어리가 되어 마주 보며 울었다.

정백우가 진언했다. "일이 급합니다! 신이 미미하나마 생명을 바쳐 어가를 보호할 것이니 포위망을 빨리 빠져나가십시오, 신은 나라에 목숨을 바쳐 후일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유왕이 말했다. "짐이 숙부의 말을 듣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소. 짐은 오늘 부부와 부자의 성명을 모두 숙부에게 부탁하겠소."

정백 우는 선왕의 이복동생으로 유왕에게는 숙부가 된다. 즉각 정백은 장병들을 여궁 앞으로 오도록 지시하였는데 한 줄기 불이 일더니 다가오는데 융병이 아닌가 했다.  스스로 유왕을 인도하여 궁 뒤로 짓쳐나갔다. 정백은 손에 긴 창을 들고 앞장서서 길을 열었다.

윤구는 포후 모자를 밀착 보호하며 긴장하여 유왕의 뒤를 따라갔다.  몇 발자국 가지도 못했는데 재빠르게 견융의 군사들이 가로막았다. 이 작은 무리의 장수는 고리적(古里赤)이었다. 정백은 이를 악물고 대로하여 바로 붙어 싸웠다. 몇합도 되지 않아 한 창에 고리적을 찔러 말 아래로 떨어뜨렸다. 융병이 정백의 용맹함을 보고 한 순간에 놀라 흩어졌다. 대략 반 리쯤 갔을까 뒤에서 함성이 또 일더니 선봉 패정이 대병을 이끌고 쫒아왔다. 정백은 큰 소리로 윤구에게 어가를 보호하고 먼저 가라고 외치고 스스로 뒤를 끊으며 한편으로 싸우며 도망갔다. 

그러나 견융의 철갑 기마대가 가로지르며 부딛쳐가서 둘로 나뉘어졌다.  정백은 적군의 한 가운데에 빠져 곤경에 처했으나 전혀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않고 창끝을 잡고 신출귀몰하는데 앞에 나선 자는 손 쓸 수가 없었다. 견융주가 사방에서 활을 쏘게 하자 화살이 빗발처럼 쏟아져 옥석을 가릴 틈도 없어, 가련하게도 일국의 어진 제후가 수만개의 화살촉 아래 죽고 말았다. 좌선봉 만야속은 재빠르게 유왕의 수레를 잡았는데 견융주는 곤룡포와 옥대가 보이자 유왕임을 알아 보고 수레를 달려 한 칼에 베어 백복과 함께 죽여 버렸다.  포사는 미모로 죽음을 면했는데, 견융주는 가벼운 수레에 태워 데리고 가면서 장막속에서 즐겼다. 윤구는 수레에 실려있던 상자안에 몸을 숨기고 있었으나 또한 융병에 끌려나와 참해지고 말았다. 

 

 

 

統計幽王在位共一十一年。因賣桑木弓箕草袋的男子,拾取清水河邊妖女,逃於褒國,(此女即褒姒也。)蠱惑君心,欺凌嫡母,害得幽王 , 今日身亡國破。昔童謠所云:「月將升,日將沒;檿孤箕箙,實亡周國。」 正應其兆,天數已定於宣王之時矣。

 

東屛先生有詩曰:

 

多方圖笑掖庭中,

烽火光搖粉黛紅。

自絶諸侯猶似可,

忍敎國祚喪羌戎。

 

 

유왕의 재위 기간은 모두 11년이었다. 뽕나무 활과 기초전대를 파는 남자가, 청수하 가에서 요녀를 구해 포나라로 도망하였었는데, 훗날 그 여인이 바로 포사가 되어, 군왕의 마음을 미혹하고 왕의 본처인 왕후를 능멸하였으며, 유왕을 해쳐 금일에 와서 몸을 망치고 나라를 무너지게 하였다.  옛날 동요에, '달은 떠오르고 해는 질것이다. 산뽕나무 활과 기초전대가 진실로 주나라를 망하게 하리라.' 고 했는데 바로 그 조짐에 응한 것이며 하늘의 운수가 이미 선왕 때 정해진 것이었다.    

 

동병선생이 시를 지은 것이 있다.

 

갖은 방법으로 궁안의 여인을 웃기려 하다가,

봉화 빛이 요염한 얼굴에 어른거렸도다.

스스로 제후를 속여 봉화에 할 일을 막았으니,

강융을 멸하는 일이 나라의 복임을 차마 일깨우지 못했는가.

 

 

 

又隴西居士詠史詩曰:

 

驪山一笑犬戎嗔,

弧矢童謠已驗眞。

十八年來猶報應,

挽回造化是何人?

 

 

또 농서거사가 이 사실을 주제로 읊은 시가 있다.

 

여산에서 한번 웃어 견융을 움직이게 하였으니,

활과 화살을 노래한 동요가 이미 진실로 증험되었도다. 

십 팔년이 지나 보복을 당했으니, 

하늘의 조화를 되돌릴 자는 누구인가?

 

 

 

又有一絶,單道尹球等無一善終,可爲奸臣之戒。詩云: 

 

巧話讒言媚暗君,

滿圖富貴百年身。

一朝駢首同誅戮,

落得千秋罵佞臣。

 

 

또 하나의 절귀로, 단지 윤구등 선행을 한번도 행하지 않은 자들의 말로를 말하여 간신에게 경계하였으니, 그 시는 다음과 같다.

 

간교한 말로 어리석은 왕에게 참소하고 아첨하여,

평생 부귀를 누리려고 온갖 계책을 다 썼도다. 

하루 아침에 머리를 나란히 하여 주륙을 당하고,

천추에 간신으로 매도당하는 신세로 떨어졌도다.

 

 

 

又有一絶,詠鄭伯友之忠。詩曰:

    

石父捐軀尹氏亡,

鄭桓今日死勤王。

三人總爲周家死,

白骨風前那個香?

 

 

또 절귀 하나가 있어 정백 우의 충절을 기렸으니, 그 시는 다음과 같다.

 

석보는 몸을 던졌고 윤구는 몸을 망쳤다.

정나라 환은 금일 죽음으로 왕에게 충성을 다했도다.

세 사람은 모두 주 왕실을 위해 죽었는데,

백골에 바람이 스치면 어느 것에서 향기가 날까?

 

 

 

且說申侯在城內,見宮中火起,忙引本國之兵入宮,一路撲滅。先將申后放出冷宮。巡到瓊臺,不見幽王褒姒蹤跡。有人指說:「已出北門去矣。」 料走驪山,慌忙追趕。於路上正迎著戎主,車馬相湊,各問勞苦。說及昏君已殺,申侯大驚曰:「孤初心止欲糾正王慝,不意遂及於此。後世不忠於君者,必以孤爲口實矣!」 亟令從人收殮其屍,備禮葬之。戎主笑曰:「國舅所謂婦人之仁也!」

卻說申侯回到京師,安排筵席,款待戎主。庫中寶玉,搬取一空,又斂聚金繒十車爲贈,指望他滿欲而歸。誰想戎主把殺幽王一件,自以爲不世之功,人馬盤踞京城,終日飮酒作樂,絶無還軍歸國之意。百姓皆歸怨申侯。申侯無可奈何,乃寫密書三封,發人往三路諸侯處,約會勤王。那三路諸侯,北路晉侯姬仇,東路衛侯姬和,西路秦君嬴開。又遣人到鄭國,將鄭伯死難之事,報知世子掘突,教他起兵復仇。不在話下。

 

 

한편, 신후는 성안에 있었는데 궁안에 불이 난 것을 보고 급히 본국 병사들을 이끌고 궁에 들어가 불을 모두 껐다.  앞서 신왕후는 냉궁에서 방면되었었다.  경대에 가서 돌아 보았으나 유왕과 포사의 자취가 보이지 않았는데 어떤 자가 가리키며 말했다.

"이미 북문을 나가 떠났습니다."

여산으로 달려 간것으로 생각하고 급히 뒤쫒아 가다가 길에서 융주와 마주쳐 거마가 모이자 서로 노고를 위로하고, 대화를 나누다가, 말이 혼군이 이미 죽었다는데까지 미치자 신왕후가 크게 놀라 말했다.

"고가 애초에 마음 먹기를 다만 왕의 그릇됨을 바로 잡으려고 했을 뿐인데 뜻하지 않게 결국 이에 이르게 되었구나. 후세에 왕에게 불충한 자가 될 것이니 반드시 내가 변명거리로 삼아야 겠구나." 

급히 따르는 자들에게 명하여 시신을 거두어 염하고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도록 하였다.  

융주가 웃으며 말했다. "국구께서 말씀하신대로 부인은 어질구나!"

한편, 신후는 경사로 돌아가자 연석을 마련하고 융주를 융숭히 대접하였다. 창고의 보옥을 모두 꺼내어 창고가 텅 비자, 또 금과 비단을 거두어 모은 후 수레 열대에 실어 보내 그가 만족하여 돌아 가기를 바랬다. 그러나 누가 상상하였으랴.  융주는 유왕을 죽인 일을 보기 드문 큰 공으로 여기고 인마를 도읍에 웅거시켜 하루종일 술을 마시며 즐기게 하고, 전혀 군 병력을 돌려 귀국할 뜻을 보이지 않았다.  백성들이 모두 신후를 원망하였으나 신후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은밀하게 서신 세 통을 써서 세 경로로 제후들에게 사람을 보내 왕실을 위해 회맹하고자 했다.  그 삼로 제후는 북로는 진(晉)나라 제후 희구(姬仇)이며, 동로는 위(衛)나라 제후 희화(姬和)이고, 서로는 진(秦)나라 영개(嬴開)였다.  또 정(鄭)나라에도 사람을 보내 정백이 죽게 된 어려운 사정을 세자 굴돌(掘突)에게 알려 그에게 군대를 일으켜 원수를 갚게 하였다. 그 다음은 말할 것도 없다.     

 

  

 

單說世子掘突,年方二十三歲,生得身長八尺,英毅非常。一聞父親戰死,不勝哀憤,遂素袍縞帶,帥車三百乘,星夜奔馳而來。早有探馬報知犬戎主,預作準備。掘突一到,便欲進兵。公子成諫曰:「我兵兼程而進,疲勞未息,宜深溝固壘,待諸侯兵集,然後合攻。此萬全之策也。」 掘突曰:「君父之仇,禮不反兵。況犬戎志驕意滿,我以銳擊惰,往無不克。若待諸侯兵集,豈不慢了軍心?」 遂麾軍直逼城下。城上偃旗息鼓,全無動靜。掘突大罵:「犬羊之賊,何不出城決一死戰?」城上並不答應。掘突喝敎左右打點攻城。忽聞叢林深處,巨鑼聲響,一枝軍從後殺來。乃犬戎主定計,預先埋伏在外者。掘突大驚,慌忙挺槍來戰。城上巨鑼聲又起,城門大開,又有一枝軍殺出。掘突前有孛丁,後有滿也速,兩下夾攻,抵當不住,大敗而走。戎兵追趕三十餘里方回。掘突收拾殘兵,謂公子成曰:「孤不聽卿言,以至失利。今計將何出?」公子成曰:「此去濮陽不遠,衛侯老誠經事,何不投之?鄭衛合兵,可以得志。」掘突依言,吩咐望濮陽一路而進。

 

單說 : 却說.

 

 

세자 굴돌은 방년 23세로 신장이 팔 척이며, 범상치 않은 자였다. 부친이 전사하였다고 듣자 슬픔과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흰 옷에 흰 명주 띠를 두르고 수레 삼백 승을 거느리고 밤새워 달려 왔다. 미리 탐마를 보내 견융주에 대해 조사해 보고 하도록 하고 미리 준비를 하였다. 굴돌이 도착하여 바로 진병하려 하자 공자 성이 간하였다.

"우리 군대가 행군하여 피로한데도 휴식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해자를 깊이 파고 진을 견고하게 하여 제후들의 군대가 이르기를 기다렸다가 그 후에 합공하는 것이 확실한 계책입니다."

굴돌이 말했다. "부왕의 원수를 갚는데 군사를 돌이키지 않는 것이 예입니다.  하물며 견융은 교만하고 뽐내는 기색이 역력한데 내가 날카로움으로 업신여기는 것을 공격하니, 가면 반드시 이길 것인데, 만일 제후들의 군대가 모이기를 기다린다면 군심이 해이해지지 않겠소?"

마침내 병력을 지휘하여 성 아래로 짓쳐갔다. 성 위에서는 기를 내리고 북소리도 멈춰 움직임이 전혀 없다. 

굴돌이 큰 소리로 꾸짖었다. "개와 양같은 도적아, 어찌 성을 나와 싸우려 하지 않느냐?"

성위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이 조용했다. 굴돌은 좌우에 큰 소리로 성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갑자기 숲속에서 바라소리가 울리며 한 떼의 병사들이 뒤에서 짓쳐왔다. 견융주가 계책을 세워 미리 밖에 매복시켰던 것이다. 굴돌이 크게 놀라 황망히 창을 내밀며 나와 싸우는데 성위에서 또 바라소리가 울리며 성문이 크게 열리고 한 떼의 병사들이 짓쳐 나온다. 굴돌의 앞에는 패정이 있고 뒤에는 만야속이 있어 양쪽에서 끼고 치니 저항하지 못하고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융병은 삼십 여리를 추격하다가 돌아갔다.

굴돌이 남은 병사들을 수습하고 공자 성에게 말했다. "고가 경의 말을 듣지 않아 예기가 꺾였는데 지금 계책을 어떻게 세워야 하겠소?"

공자 성이 말했다. "여기에서 복양까지 거리가 멀지 않고, 위나라 제후는 노련하고 일을 경영함에 정성스러운데 어찌 그에게 가지 않습니까? 정나라와 위나라가 군사를 합치면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굴돌은 그 말에 따라 분부를 내려 복양을 향하여 떠났다. 

 

 

 

約行二日,塵頭起處,望見無數兵車,如牆而至。中間坐著一位諸侯,錦袍金帶,蒼顔白發,飄飄然有神仙之態。那位諸侯,正是衛武公姬和,時已八十餘歲矣。掘突停車高叫曰:「我鄭世子掘突也。犬戎兵犯京師,吾父死於戰場;我兵又敗,特來求救。」 武公拱手答曰:「世子放心。孤傾國勤王,聞秦晉之兵,不久亦當至矣。何懮犬羊哉?」 掘突讓衛侯先行,撥轉車轅,重回鎬京,離二十里,分兩處下寨。敎人打聽秦晉二國起兵消息。探子報道:「西角上金鼓大鳴,車聲轟地,繡旗上大書『秦』字。」 武公曰:「秦爵雖附庸,然習於戎俗,其兵勇悍善戰,犬戎之所畏也。」 言未畢,北路探子又報:「晉兵亦至,已於北門立寨。」 武公大喜曰:「二國兵來,大事濟矣!」 即遣人與秦晉二君相聞。須臾之間,二君皆到武公營中,互相勞苦。二君見掘突渾身素縞,問:「此位何人?」 武公曰:「此鄭世子也。」 遂將鄭伯死難,與幽王被殺之事,述了一遍。二君歎息不已。武公曰:「老夫年邁無識,止為臣子,義不容辭,勉力來此。掃蕩腥羶,全仗上國。今計將安出?」 秦襄公曰:「犬戎之志,在於剽掠子女金帛而已。彼謂我兵初至,必不堤防。今夜三更,宜分兵東南北三路攻打。獨缺西門,放他一條走路。卻教鄭世子伏兵彼處,候其出奔,從後掩擊,必獲全勝。」 武公曰:「此計甚善!」

 

蒼顔白發 = 老顔白髮.      撥轉 : 방향을 돌리다. 방향을 바꾸다.   

腥 : 비리 성. 비리다. 비린내, 비린내 나는 물건. 날고기, 생고기, 더럽다. 추함.    羶 : 누린내 전. 누린내. 누린내 나는 물건, 수육. 

剽 : 빠를 표. 빠르다. 재빠름. 사납다. 거칢. 표독함. 위협하다. 협박함. 깎다. 자름. 찌르다. 침. 훔치다. 벗김. 끝, 첨단, 표, 표를 함.

 

 

대략 이틀을 행군하자 먼지가 이는 곳에 무수한 병거가 보이더니, 마치 담장을 두른 듯 이르렀다.  중간에 한 사람의 제후가 앉아 있는데 금포를 입고 금띠를 둘렀으며 노안(老顔)에 백발로 당당하여 신선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 제후가 바로 위(衛)나라 무공(武公) 희화(姬和)로, 그때 이미 팔십 여 세였다. 

굴돌은 수레를 멈추고 큰 소리로 외쳤다. "저는 정나라 세자 굴돌입니다. 견융의 군대가 경사를 범했을 때 제 아버지가 전장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제 군사가 또 패하여 특별히 와서 구원을 청합니다."

무공이 공수하고 대답했다. "세자는 마음을 놓으시오. 고는 나라를 바쳐 왕실에 충성을 다하려 하고 있소. 듣건대 진(秦)나라와 진(晉)나라의 군대도 오래지 않아 당도하게 될 것이오. 어찌 개나 양 따위를 걱정하겠소?"

굴돌은 위나라 제후에게 양보하여 앞에 가게 하고 수레를 돌려 또다시 호경으로 돌아가는데 이십리 떨어진 곳에 두곳으로 나누어 하채하였다. 그리고 사람을 시켜 진(秦)나라와 진(晉)나라 두 나라의 군대를 일으킨 소식을 알아보게 하였다.  

정탐한 자가 알려 왔다. "서쪽 방향에서 금고 소리가 크게 울리고 수레 소리가 땅을 울리며 수 놓은 기에 진(秦)자가 크게 써 있습니다."

무공이 말했다. "진나라는 작위가 비록 속국이지만 융족의 풍속에 익숙하며 그 군대가 용맹스럽고 사나워 싸움을 잘하니 견융이 두려워합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탐자가 또 보고한다. "진(晉)나라 군대도 또한 도착하여 이미 북문쪽에 영채를 세웠습니다."

무공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두 나라의 군대가 왔으니 대사가 이루어졌도다!" 

즉각 사람을 보내 진(秦)나라와 진(晉)나라 군주에게 방문을 요청했다. 잠시 후 두 군주가 무공의 군영에 이르러 서로 노고를 위로했다."

두 군주가 굴돌이 온 몸에 흰 옷에 흰 명주띠를 두른 것을 보고 물었다. "이 분은 누구입니까?"  

무공이 대답했다. "이 분은 정나라 세자입니다."

그리고 정백이 국난에 목숨을 바친 일과 유왕이 살해당한 일을 쭈욱 설명했다. 두 군주는 탄식을 그치지 않았다. 

무공이 말했다. "노부는 늙어서 무식하지만 다만 신하된 자로서 의로운 일을 사양하지 못하고 힘써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고약한 냄새나는 것들을 깨끗이 쓸어 버리고 상국인 주나라를 온전히 지켜야 하는데 지금 계책으로 어떻게 써야 합니까?"

진(秦)양공이 말했다. "견융의 뜻은 여자와 금백을 약탈하는 것일 뿐입니다. 저들은 우리의 군대가 처음 도착하여 반드시 방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밤 삼경에 군대를 나누어 동, 남, 북의 삼로에서 공격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오로지 서쪽만 비워두어 그들의 한가닥 도망갈 길을 놔두는 것입니다.  정나라 세자를 그곳에 잠복하게 하며 그들이 달려나가기를 기다려 그 뒤를 쫒아 습격하면 반드시 완벽한 승리를 획득할 것입니다."

무공이 말했다. "그 계책이 매우 좋습니다!"

 

 

 

話分兩頭。再說申侯在城中聞知四國兵到,心中大喜。遂與小周公咺密議:「只等攻城,這裏開門接應。」 卻勸戎主先將寶貨金繒,差右先鋒孛丁分兵押送回國,以削其勢;又教左先鋒滿也速盡數領兵出城迎敵。犬戎主認作好話,一一聽從。卻說滿也速營於東門之外,正與衛兵對壘,約會明日交戰。不期三更之後,被衛兵劫入大寨。滿也速提刀上馬,急來迎敵。其奈戎兵四散亂竄,雙拳兩臂,撐持不住,只得一同奔走。三路諸候,吶喊攻城。忽然城門大開,三路軍馬一擁而入,毫無撐禦。此乃申侯之計也。戎主在夢中驚覺,跨著劃馬,逕出西城,隨身不數百人。又遇鄭世子掘突攔住廝戰。正在危急,卻得滿也速收拾敗兵來到,混戰一場,方得脫身。掘突不敢窮追,入城與諸侯相見,恰好天色大明。褒姒不及隨行,自縊而亡。

 

咺 : 의젓할 훤. 점잖다. 의젓하다. 두려워 하다. 드러나다.  섧게 울다. 울어 시끄러운 모양.   撐 : 撑. 버틸 탱. 버티다. 버팀대. 

吶 : 말 더듬을 눌/고함지를 납.   擁 : 안을 옹. 안다. 끌어안음. 잡다. 지키다. 거느리다. 복종시킴. 싸다. 막음. 차지하다. 혼잡하다. 

 

 

한편, 신후는 성안에서 네 나라의 군대가 도착했음을 알고 마음이 매우 기뻤다. 

마침내 소주공과 은밀하게 논의했다. "그들이 성을 공격하면  성안에서 문을 열어 접응합시다."

그러고 나서 융주에게 권하여 먼저 보화와 금, 비단을 우선봉 패정에게 군대를 나누어 호송하게 하여 본국으로 돌려보내 그 세를 삭감하고,  또 좌선봉 만야속에게 속히 병사들을 모두 인솔하여 성을 나가 적을 맞게 하였다. 견융주는 좋은 말을 하는 것으로 알고  일일이 따랐다.  만야속은 동문 밖에 진영을 설치하여  위나라 군대와 진을 마주 보게 되었는데 다음 날 교전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뜻밖에 삼경이 지나자 위나라 군사들이 영채를 겁채하러 몰려 들어갔다. 만야속은 칼을 들고 말에 올라 급히 달려오는 적을 맞았다.  융병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어지러이 달아나니 두 주먹과 두 팔로 어찌 할 것인가? 지탱하지 못하고 다만 함께 도망칠 뿐이었다. 삼로 제후는 고함을 지르며 성을 치게 하였다. 갑자기 성문이 활짝 열려 삼로군마가 일제히 진입하니 조금도 지탱하여 막지 못하였다. 이것은 바로 신후의 계책이었다. 융주는 잠을 자다가 놀라 깨어 말에 올라타고 바로 서쪽 성문을 달려 나갔는데 따르는 병사가 몇백명도 되지 않았다. 또 정나라 세자 굴돌이 길을 막아 서로 싸웠다. 바로 위급한 순간인데 만야속이 패잔병을 수습하여 달려와 한바탕 뒤섞여 어지럽게 싸우는 틈에 겨우 빠져 나갔다. 굴돌은 감히 끝까지 쫒지 못하고 성에 들어가 제후들을 만났는데 마침 날이 밝았다. 포사는 따라가지 못하고 스스로 목매어 생을 마쳤다.

 

 

胡曾先生有詩歎云:

    

錦繡圍中稱國母,

腥羶隊裏作番婆,

到頭不免投繯苦,

爭似爲妃快樂多!

 

番 : 오랑캐. 미개한 번족(蕃族). 뜻이 바뀌어, 외국에서 수입한 물건에 붙이는 접두어.     番婆 : 외국에서 들여온 할멈(어머니)? 

繯 : 맬 현/누에시렁 기둥끈 환. 매다. 연계함. 얽히다. 두르다. 고리, 올가미.  

爭似 : 어찌 ~만 하겠는가? 한시의 둘째 줄에 많이 쓰인다.  例) 東塗西抹任千般, 爭似天眞本來樣。

 

 

호증선생이 시를 지어 탄식했다.

 

화려한 비단옷에 궐안에서 국모라 불리웠는데,

비린내 나는 부대 안에서 번파가 되었구나.

머리는 올가미 매는 고통을 면치 못하였을지라도

어찌 왕비가 되어 쾌락을 많이 누린 것만 같겠는가! 

 

 

 

申侯大排筵席,管待四路諸侯。只見首席衛武公推箸而起,謂諸侯曰:「今日君亡國破,豈臣子飮酒之時耶?」 眾人齊聲拱立曰:「某等願受敎訓。」 武公曰:「國不可一日無君,今故太子在申,宜奉之以即王位。諸君以爲何如?」 襄公曰:「君侯此言,文、武、成、康之靈也。」 世子掘突曰:「小子身無寸功,迎立一事,願效微勞,以成先司徒之志。」 武公大喜,擧爵勞之。遂於席上草成表章,備下法駕。各國皆欲以兵相助。掘突曰:「原非赴敵,安用多徒?只用本兵足矣。」 申侯曰:「下國有車三百乘,願爲引導。」 次日,掘突遂往申國,迎太子宜臼爲王。卻說宜臼在申,終日納悶,不知國舅此去,凶吉如何。忽報鄭世子賷著國舅申侯同諸侯連名表章,奉迎還京,心下倒吃了一驚。展開看時,乃知幽王已被犬戎所殺,父子之情,不覺放聲大哭。掘突奏曰:「太子當以社稷爲重,望早正大位,以安人心。」 宜臼曰:「孤今負不孝之名於天下矣!事已如此,只索起程。」 不一日,到了鎬京。周公先驅入城,掃除宮殿。國舅申侯引著衛、晉、秦三國諸侯,同鄭世子及一班在朝文武,出郭三十里迎接,卜定吉日進城。宜臼見宮室殘毀,淒然淚下。當下先見了申侯,稟命過了。然後服袞冕告廟,即王位,是爲平王。

 

 

 

신후는 크게 주연을 베풀어 사로의 제후들을 대접하였다.  이때 상석에 있던 위 무공이 젓가락을 밀어놓고 일어나 제후들에게 말했다.

"오늘 군주가 죽고 나라는 무너졌는데 어찌 신하가 되어 술을 마실 때입니까?"

그러자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공수하며 일어서서 말했다. "우리는 가르침 받기를 원합니다."

무공이 말했다. "나라에는 하루라도 군왕이 없을 수 없습니다. 지금 옛 태자가 신나라에 계시는데 마땅히 그를 받들어 즉시 왕으로 세워야 합니다. 제군들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진(秦) 양공이 말했다. "군후께서 하신 이 말씀은 문왕, 무왕, 성왕, 강왕의 영험입니다."

정나라 세자 굴돌이 말했다. "소자는 공이 조그마한 공도 없는데 태자를 모셔와 왕으로 세우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바치기를 원하며 이로써 돌아가신 부친의 사도의 뜻을 이루고자 합니다."

무공이 크게 기뻐하고 술잔을 들어 그를 위로했다. 마침내 연회에 모인 자리에서 바로 표장을 작성하고 태자를 모셔 올 어가를 준비하게 했다.  각 나라가 모두 군사를 내어 도우려고 하였다.

그러자 굴돌이 말했다. "본시 적을 맞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어찌 많은 병력을 쓰겠습니까? 저희 정나라의 병력만으로 충분합니다."

신후가 말했다. "저희 나라에서 온 수레가 삼백승이 있으니 길 안내를 맡겠습니다."

다음 날 굴돌이 마침내 신나라로 가서 태자 의구를 맞이해 와 왕으로 삼게 되었다.

한편 의구는 신나라에서 하루종일 답답해 했는데 외조부가 이번에 나라를 떠난 후, 길흉이 어떤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보고하기를 정나라 세자가 외조부 신후와 함께 제후들이 연명한 표장을 받들고 경사로 모셔가려고 한다고 하여, 마음이 뒤집혀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놀랐다.  일이 전개된 과정을 보았을 때 유왕이 이미 견융에게 살해당한 것을 알고 부자간의 정으로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통곡했다. 

굴돌이 아뢰었다. "태자께서는 마땅히 사직을 중히 여기시고 바라건대 빨리 대위에 오르시어 인심을 안정시키셔야 합니다."

태자 의구가 말했다. "고가 지금 불효자의 이름으로 천하를 짊어지겠는가! 하지만 일이 이미 이에 이르렀으니 다만 길을 떠날 수밖에 없도다."

하루도 못되어 호경에 도착하였다. 주공은 먼저 말을 달려 성안에 들어가 궁전을 청소하였다. 국구 신후가 위, 진(晉), 진(秦) 세 나라의 제후들을 인도하고 정나라 세자와 조정에 있는 일반 문무 신하들과 함께 성밖 삼십리까지 나가서 영접하고 점을 쳐서 길일을 택해 성으로 들어갔다.  태자 의구는 궁실이 잔혹하게 훼손된 모습을 보고 비참해져 눈물을 흘렸다. 당하에서 먼저 신후가 나타나 명을 받았다. 

그 후 곤룡포를 입은 후 면류관을 쓰고 태묘에 고하고 왕위에 오르니 이 사람이 평왕이다.

 

 

 

平王升殿,眾諸侯百官朝賀已畢。平王宣申伯上殿,謂曰:「朕以廢棄之人,獲承宗祧,皆舅氏之力也。」 進爵爲申公。申伯辭曰:「賞罰不明,國政不淸,鎬京亡而復存,乃眾諸侯勤王之功。臣不能禁戢犬戎,獲罪先王,臣當萬死!敢領賞乎?」 堅辭三次。平王令復侯爵。衛武公又奏曰:「褒姒母子恃寵亂倫,虢石父尹球等欺君誤國,雖則身死,均當追貶。」平王一一准奏。衛侯和進爵爲公。晉侯仇加封河內附庸之地。鄭伯友死於王事,賜諡爲桓。世子掘突襲爵為伯,加封祊田千頃。秦君原是附庸,加封秦伯,列於諸侯。小周公咺拜太宰之職。申后號為太后。褒姒與伯服,俱廢為庶人。虢石父、尹球、祭公,姑念其先世有功,兼死於王事,止削其本身爵號,仍許子孫襲位。又出安民榜,撫慰京師被害百姓。大宴群臣,盡歡而散。

 

戢 : 거둘 집(즙). 거두다. 무기를 거둠. 그치다. 그만 둠, 움츠리다.    祊 : 제사이름 팽. 

 

 

평왕이 궁에 오르고 뭇 제후와 백관들이 왕의 즉위를 축하하는 하례의식을 마쳤다. 

평왕은 외조부 신백을 전각 위로 오르게 하여 말했다. "짐은 태자 위에서 내침을 당해 버려진 사람이었는데,  종묘를 받들게 된 것은 모두 국구의 힘이었도다." 

그리고 신백을 신공으로 승진시켰다.

신백은 사양하며 말했다. "상벌이 분명하지 않으면 국정이 맑지 못합니다. 호경이 망하였으나 다시 존재하는 것은 이야 말로 뭇 제후들이 왕실을 위해 충성을 바친 공 때문입니다. 신은 견융을 막지 못해 선왕에게 죄를 지었으니 신은 만번 죽어야 마땅합니다. 감히 상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굳게 사양하기를 세번이나 했다. 평왕은 영을 내려 다시 후의 작위를 부여했다. 

위 무공이 또 아뢰었다. "포사의 모자는 왕의 총애를 믿고 인륜을 어지럽혔으며 괵석보와 윤구등은 왕을 속여 나라를 그르치게 하였으니 비록 몸은 죽었지만 모두 소급해서 벼슬에서 내치는 것이 마땅합니다."

평왕은 일일이 아뢰는 내용을 허락하였다.  위후는 승진하여 공(公)의 작위를 받았다.  진후(晉侯) 구는 하내에 속한 땅을 봉지에 더했다. 정백 우는 죽음으로 왕의 일에 충성했으므로 시호를 내려 '환(桓)'이라고 했다.  정나라의 세자 굴돌은 부친의 작위를 이어 받아 백(伯)이 되었으며 팽전으로 천 경을 더했다.  진(秦)의 군주는 본래 속국이었으나 진백(秦伯)으로 봉하고 제후의 반열에 올랐다. 소주공 훤은 태재의 직을 제수받았다.  신후는 태후가 되었다. 포사와 백복은 모두 폐하여 서인이 되게 하였다. 괵석보, 윤구, 채공은 그동안 선왕 때 공이 있고, 아울러 왕실의 일로 죽었음을 감안하여 다만 본인에게 내려진 작호(爵號)만을 삭감하고 여전히 자손들이 그 직위를 이어 받는 것을 허락했다. 또 백성을 안심시키는 방을 내걸어 경사의 피해입은 백성을 어루만져 위로했다. 

신하들에게 크게 연회를 베풀어 모두 기뻐하였으며 연회가 끝나자 기쁘게 흩어졌다. 

 

 

有詩爲證:

 

百官此日逢恩主,

萬姓今朝喜太平。

自是累朝功德厚,

山河再整望中興。

 

 

그 일을 증명하는 시가 있다. 

 

이 날 백관은 은혜로운 군주를 만났고,

모든 백성은 오늘 아침 기쁘고 태평하였도다.

이로부터 조정의 공덕이 두터워지고,

천하가 다시 정비되어 중흥하기를 바라노라.

 

 

 

次日,諸侯謝恩,平王再封衛侯爲司徒,鄭伯掘突爲卿士,留朝與太宰咺一同輔政。惟申晉二君,以本國迫近戎狄,拜辭而歸。申侯見鄭世子掘突英毅非常,以女妻之,是爲武姜。此話擱過不提。

 

擱 : 놓을 각. 놓다. 잡고 있던 것을 놓음. 멈추다. 좌초함.

 

 

다음 날 제후들이 은혜를 사례하자 평왕은 다시 위후를 봉하여 사도로 삼고, 정백 굴돌을 경사로 삼았으며, 태재 훤과 함께 조정에 남아 정사를 돕게 했다.  오직 신나라와 진(晉)나라의 두 군주는 본국에 근접한 융적을 압박하기 위하여 절하여 사례하고 귀국했다. 

신후는 정나라 세자 굴돌이 영용하고 굳센 모습이 범상치 않은 것을 보고 딸을 시집 보냈는데 이 사람이 바로 무강이다. 

이 이야기는 놓아두고 지나가 다루지 않는다.

 

  

 

卻說犬戎自到鎬京擾亂一番,識熟了中國的道路,雖則被諸侯驅逐出城,其鋒未曾挫折,又自謂勞而無功,心懷怨恨。遂大起戎兵,侵占周疆,岐豐之地,半爲戎有。漸漸逼近鎬京,連月烽火不絕。又宮闕自焚燒之後,十不存五,頹牆敗棟,光景甚是淒涼。平王一來府庫空虛,無力建造宮室,二來怕犬戎早晚入寇,遂萌遷都洛邑之念。一日,朝罷,謂群臣曰:「昔王祖成王,旣定鎬京,又營洛邑,此何意也?」 群臣齊聲奏曰:「洛邑爲天下之中,四方入貢,道里適均,所以成王命召公相宅,周公興築,號曰東都,宮室制度,與鎬京同。每朝會之年,天子行幸東都,接見諸侯,此乃便民之政也。」 平王曰:「今犬戎逼近鎬京,禍且不測,朕欲遷都於洛何如?」 太宰咺奏曰:「今宮闕焚毀,營建不易,勞民傷財,百姓嗟怨。西戎乘釁而起,何以禦之?遷都於洛,實為至便。」兩班文武,俱以犬戎為慮,齊聲曰:「太宰之言是也。」惟司徒衛武公低頭長歎。

 

 

한편, 견융은 호경에 이르러 한바탕 어지럽힌 이후, 중국의 도로에 익숙해졌음을 깨닫고, 비록 제후들에게 쫒겨 성을 나갔지만 그 예봉이 아직 꺾이지 않았고, 또 스스로 힘들이고도 공을 이루지 못했다고 여겨 마음속에 원한을 품었다. 마침내 융병을 크게 일으켜 주나라의 강토인 기(岐)와 풍(豐)의 땅을 침략하여 차지하고 그 절반을 융의 소유로 하였다.  점점 핍박하면서 호경에 근접하자 여러 달을 계속하여 봉화가 끊이지 않았다.  또 궁궐이 불타버린 이후 열에 다섯도 남지 않았고 무너진 담장과 부서진 용마루등의 광경이 몹시 처량하였다. 

평왕이 한차례 와서 부고가 텅 비어 궁실을 세울 힘이 없음을 보고, 두번째 와서는 견융이 조만간 침입해 들어올 것을 두려워 하여 마침내 도읍을 낙읍으로 천도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조회를 마치자 신하들에게 물었다. "옛 왕조의 성왕 때 이미 호경을 도읍으로 정했으면서 또 낙읍을 운영했는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군신들이 일제히 이뢰었다. "낙읍은 천하의 가운데라 사방에서 공물을 바치는데 있어서도 거리가 비슷하여, 성왕이 명하여 소공이 집터를 보고, 주공이 건설하여 동도라 불렀으며 궁실의 제도가 호경과 같습니다.  조회가 있는 해에는 항상 천자께서 동도에 행차하시어 제후들을 접견하셨는데 이것은 바로 백성을 편하게 하는 정사였습니다."

평왕이 말했다. "지금 견융이 호경을 핍박하며 접근해 오고 있는데도 재앙이 언제 닥칠지 예측하지도 못하고 있어 짐은 낙읍으로 천도하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태재 훤이 아뢰었다. "지금 궁궐이 타버려 다시 짓기가 쉽지 않은데다 백성을 힘들게 하고 재물을 낭비하면 백성들이 탄식하며 원망할 것입니다. 서융이 균열을 틈타 일어난다면 무엇으로 막을 것입니까? 낙양으로 천도하면 실제로 지극히 편리할 것입니다." 

문무 양쪽이 모두 견융을 염려하여 일제히 말했다. "태재의 말이 옳습니다."

그러나 오직 사도 위 무공만이 고개를 숙이고 길게 탄식할 뿐이었다. 

 

 

 

平王曰:「老司徒何獨無言?」 武公乃奏曰:「老臣年逾九十,蒙君王不棄老耄,備位六卿。若知而不言,是不忠於君也;若違眾而言,是不和於友也。然寧得罪於友,不敢得罪於君。夫鎬京左有殽函,右有隴蜀,披山帶河,沃野千里,天下形勝,莫過於此。洛邑雖天下之中,其勢平衍,四面受敵之地。所以先王雖並建兩都,然宅西京,以振天下之要,留東都以備一時之巡。吾王若棄鎬京而遷洛,恐王室自是衰弱矣!」 平王曰:「犬戎侵奪岐豐,勢甚猖獗。且宮闕殘毁,無以壯觀。朕之東遷,實非得已。」 武公奏曰:「犬戎豺狼之性,不當引入臥闥。申公借兵失策,開門揖盜,使其焚燒宮闕,戮及先王,此不共之仇也。王今勵志自強,節用愛民,練兵訓武,效先王之北伐南征,俘彼戎主,以獻七廟,尙可湔雪前恥。若隱忍避仇,棄此適彼,我退一尺,敵進一尺,恐蠶食之憂,不止於岐豐而已。昔堯舜在位,茅茨土階,禹居卑宮,不以爲陋。京師壯觀,豈在宮室?惟吾王熟思之!」太宰咺又奏曰:「老司徒乃安常之論,非通變之言也。先王怠政滅倫,自招寇賊,其事已不足深咎。今王掃除煨燼,僅正名號,而府庫空虛,兵力單弱。百姓畏懼犬戎,如畏豺虎。一旦戎騎長驅,民心瓦解,誤國之罪,誰能任之?」武公又奏曰:「申公旣能召戎,定能退戎。王遣人問之,必有良策。」

 

披 : 해칠 피. 나누다. 쪼갬. 열다. 입다. 옷을 걸침. 쓰러지다. 펴다.    臥闥 : 궁궐?  紫闥 : 궁궐의 안.   禁闥 : 대궐의 문.

闥 : 문 달/빗장 건.  문. 문의 총칭. 문안. 문과 담 사이. 문병. 외부의 시선을 막는 작은 담. 관청, 침실.   

俘 : 사로잡을 부, 사로잡다. 포로. 빼앗다. 탈취함. 가지다. 취함. 벌.    湔 : 씻을 전. 씻다. 빨다. 누명을 벗다. 물이 번지다. 더럽히다. 

茅茨 : 茅茨不剪, 억새풀로 지붕을 이고 끝을 베어 가지런히 하지 않았다는 고사.   土階 : 土階三等 흙으로 계단을 3층만 쌓았다는 고사. 

煨 : 불씨 외. 불씨. 굽다. 재에 묻어서 구움.    燼 : 깜부기 불 신. 깜부기 불. 타다 남은 것. 나머지. 재난을 겪고 살아남은 백성. 亡國의 遺民

 

 

평왕이 물었다. "노 사도께서는 어찌 말이 없으십니까?"

무공이 이에 아뢰었다. "노신은 나이가 구십이 넘어가는데 군왕께서 늙은이를 버리지 않으시는 은혜를 입어 지위가 육공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도 말을 하지 않으면 이것은 임금에 대한 불충이며, 많은 사람의 뜻을 거스르고 말을 한다면 이것은 벗들과의 불화입니다. 그러나 벗들에게 죄를 지을지언정 감히 군왕께 죄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호경은 좌측에 효산과 함곡관이 있으며, 우측에는 농서와 촉이 있고 산을 한 줄기 황하가 가르고 있어 기름진 들이 천리이며 천하에 뛰어난 풍광이 이보다 뛰어난 곳은 없습니다.  낙읍은 비록 천하의 중심이라 하지만 그 형세가 평평하고 넓어 사면이 적을 받아들이는 지형입니다.  선왕께서 두 도읍을 모두 건설하시고도 서경에 도읍을 정하신 까닭은 천하를 진동시킬 요충지였기 때문이며 동도를 남겨두신 것은 한 때의 순시에 대비한 것입니다. 폐하께서 호경을 버리고 낙양으로 천도하신다면 왕실이 이로부터 쇠약해질까 두렵습니다."

평왕이 말했다. "견융이 기와 풍 땅을 침탈하여 그 기세가 더욱 사나워지고 있습니다. 또 궁궐이 잔혹하게 훼손되어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짐이 동천하고자 하는 뜻은 진실로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무공이 아뢰었다. "견융은 승냥이나 늑대와 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는데 부당하게 궁궐에 끌어들였습니다.  신공이 견융에게 군대를 빌린 것은 실책으로, 문을 열고 들어 오는 도둑에게 읍한 격이었으며, 그들이 궁궐을 불태우게 하고 선왕을 죽이는데에 미치게 하였으니 이것은 함께 지낼 수 없는 원수입니다.  폐하께서 지금 스스로 힘을 키우고 비용을 절감하며 백성을 아끼며,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무예를 가르켜 선왕의 북을 정벌하고 남을 치는 치적을 본받는데 힘써 뜻을 키우신다면, 융주를 사로잡아 칠묘에 바쳐 오히려 전의 치욕을 씻을 수 있습니다. 만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참으며 원수를 피한다면 치욕을 씻는 일을 피하고 융적을 끌어들이는 격입니다. 우리가 한 자를 물러나면 적은 한 자를 진격할 것이고, 누에가 뽕 잎을 먹어 들어가는 것 같은 환난을 두려워 한다면 기와 풍 땅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옛날 요임금과 순임금 재임시절에는 억새로 지붕을 이고 흙으로 계단을 쌓되 세 계단만 쌓았고, 우임금은 낮은 궁실에서 지냈어도 좁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경사에서 볼만한 것이 어찌 궁실에 있겠습니까? 오직 폐하께서는 깊이 생각하십시오!" 

태재 훤이 아뢰었다. "노 사도께서 하신 말씀은 현상태에 만족하는 말씀이며 변화에 적응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선왕께서는 정사를 태만히 하고 윤리를 훼손하시어 적의 침입을 자초하셨으니 그 일은 깊이 책망하여도 매우 부족합니다. 이제 폐하께서는 남은 불씨를 제거하여 겨우 명호를 바르게 하셨으나, 부고는 텅 비었고 군대의 힘은 허약하여 백성들은 견융을 승냥이나 법처럼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하루 아침에 융의 기병이 먼 길을 달려오면 민심은 와해되고 나라를 그르친 죄를 짓게 될 것인데 누가 그것을 책임질 수 있습니까?"

무공이 다시 아뢰었다. "신공이 이미 융병을 불러들일 수 있었다면  융병을 물리칠 계책도 정했을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사람을 보내 물으신다면 반드시 좋은 계책이 있을 것입니다."

     

 

  

正商議間,國舅申公遣人賷告急表文來到。平王展開看之,大意謂:犬戎侵擾不已,將有亡國之禍。伏乞我王憐念瓜葛,發兵救援。平王曰:「舅氏自顧不暇,安能顧朕?東遷之事,朕今決矣。」 乃命太史擇日東行。衛武公曰:「臣職在司徒,若主上一行,民生離散,臣之咎難辭矣。」 遂先期出榜示諭百姓:如願隨駕東遷者,作速準備,一齊起程。祝史作文,先將遷都緣由,祭告宗廟。至期,大宗伯抱著七廟神主,登車先導。秦伯嬴開聞平王東遷,親自領兵護駕。百姓攜老扶幼,相從者不計其數。當時宣王大祭之夜,夢見美貌女子,大笑三聲,大哭三聲,不慌不忙,將七廟神主,捆著一束,冉冉望東而去。大笑三聲,應褒姒驪山烽火戲諸侯事。大哭三聲者,幽王、褒姒、伯服三命俱絕。神主捆束往東,正應今日東遷,此夢無一不驗。又太史伯陽父辭云:「哭又笑,笑又哭,羊被鬼吞,馬逢犬逐。慎之慎之!檿弧箕箙。」羊被鬼吞者,宣王四十六年遇鬼而亡,乃己未年。馬逢犬逐,犬戎入寇,幽王十一年庚午也。自此西周遂亡,天數有定如此,亦見伯陽父之神占矣。

 

瓜葛 : 오이와 칡은 둘 다 덩굴로 자라는 풀이라는 뜻으로, ‘일가친척’을 이르는 말.

大宗伯 : 周代에 제사 · 전례(典禮) 맡아 보던 벼슬. 후대의 예부 상서(禮部尙書) 해당함.

 

 

한참 상의하고 있는데 국구 신공이 보낸 사람이 급히 고하는 표문을 가지고 도착했다. 평왕이 열어보니 대강의 뜻은 다음과 같다.

"견융이 침입하여 어지럽히기를 그치지 않아, 장차 나라가 망하는 재앙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엎드려 빌건대 폐하께서는 친척을 불쌍히 여기시고 군대를 일으켜 구원해 주십시오."

평왕이 말했다. "국구께서는 자신도 돌아볼 틈이 없는데 어찌 짐을 돌볼 수 있겠소? 동천하는 일은 짐이 결정하였소,"

이리하여 태사에게 명하여 좋은 날을 택해 동쪽으로 가도록 했다.   

위 무공이 아뢰었다. "신의 직책은 사도이지만, 만일 폐하께서 한번 떠나시면, 민심이 흩어질 것인데 신의 허물이라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마침내 먼저 날을 정하고 방을 내어 백성을 설득했다.  "어가를 따라 동쪽으로 가기를 원하면 속히 준비를 하여 일제히 떠나도록 하라."

축사(祭官)가 글을 지어 먼저 천도의 연유를 밝히고 종묘에 제사를 지내 고했다.

동쪽으로 떠날 날이 되자 대종백이 칠묘신주를 안고 수레에 올라 앞에서 길을 인도했다. 진백(秦伯) 영개는 평왕을 찾아 인사하고 동천하는데 친히 군병을 인솔하여 어가를 호위하였다. 백성들은 노인의 손을 잡고 아이를 부축하며 따라가는 자들이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당시 선왕이 큰 제사를 지내던 날 밤, 꿈에 미모의 여인이 나타나 큰 소리로 세 번 웃고, 큰 소리로 세 번 울고는 서두르지도 않고 칠묘의 신주를 한 다발로 묶어 유유히 동쪽을 향해 떠났었다. 큰 소리로 세번 웃은 것은 포사가 여산에서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희롱한 일에 응한 것이고, 큰 소리로 세번 곡한 것은 유왕, 포사, 백복 세사람의 생명이 함께 끊어진 것이다.  신주를 묶어 동쪽으로 간 것은 바로 금일 동천하는 일에 응한 것이다. 이 꿈은 하나도 증험되지 않은 것이 없다. 

또 태사 백양보가 말했었다. "울다가 웃었고, 웃다가 운 것은 양이 귀신에게 삼켜지고, 말이 개를 만나 쫒긴다. 삼가하라! 삼가하라! 산뽕나무 활과 기초로 만든 전대를."  양이 귀신에게 삼켜진다는 것은 선왕 46년 귀신을 만나 죽었는데 그때가 바로 기미년이었으며, 말이 개를 만나 쫒긴다는 것은 견융이 참입해 들어간 것이 유왕 11년 경오년이었다. 이로부터 서주가 망하였으니 천수가 와 같이 정해진 것이다. 

또 백양보의 신비한 점괘가 드러난 것이다

 

 

 

東遷後事如何,且看下回分解。

 

동천 후의 일은 어떨까? 다음 회를 보면 분명하게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