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回. 楚熊通僭號稱王, 鄭祭足被脅立庶.
話說陳桓公之庶子名躍,係蔡姬所出,蔡侯封人之甥也。因陳蔡之兵,一同伐鄭,陳國是大夫伯爰諸爲將,蔡國是蔡侯之弟蔡季爲將。蔡季向伯爰諸私問陳事。伯爰諸曰:「新君佗雖然簒立,然人心不服,又性好田獵,每每微服從禽於郊外,不恤國政。將來國中必然有變。」 蔡季曰:「何不討其罪而戮之?」 伯爰諸曰:「心非不欲,恨力不逮耳!」 及周王兵敗,三國之師各回本國。蔡季將伯爰諸所言,奏聞蔡侯。蔡侯曰:「太子免旣死,次當吾甥即位。佗乃簒弑之賊,豈容久竊富貴耶?」 蔡季奏曰:「佗好獵,俟其出,可襲而弑也。」 蔡侯以爲然。乃密遣蔡季率兵車百乘,待於界口,只等逆佗出獵,便往襲之。蔡季遣諜打探,回報:「陳君三日前出獵,見屯界口。」 蔡季曰:「吾計成矣。」 乃將車馬分爲十隊,都扮作獵人模樣,一路打圍前去。
正遇陳君隊中射倒一鹿,蔡季馳車奪之。陳君怒,輕身來擒蔡季。季回車便走,陳君招引車徒趕來。只聽得金鑼一聲響喨,十隊獵人,一齊上前,將陳君拿住。蔡季大叫道:「吾非別人,乃蔡侯親弟蔡季是也。因汝國逆佗弒君,奉吾兄之命,來此討賊。止誅一人,餘俱不問。」 眾人俱拜伏於地,蔡季一一撫慰。言:「故君之子躍,是我蔡侯外甥,今扶立爲君,何如?」 眾人齊聲答曰:「如此甚合公心,某等情願前導。」 蔡季將逆佗即時梟首,懸頭於車上,長驅入陳。在先跟隨陳君出獵的一班人眾,爲之開路,表明蔡人討賊立君之意。於是市井不驚,百姓歡呼載道。蔡季至陳,命以逆佗之首,祭於陳桓公之廟,擁立公子躍爲君,是爲厲公。此周桓王十四年之事也。公子佗篡位,纔一年零六個月,爲此須臾富貴,甘受萬載惡名,豈不愚哉!
喨 : 소리맑을 량. 載道 : 거리에 넘치다. 가득차다.
진(陳)나라 환공(桓公)의 서자(庶子)는 이름을 약(躍)이라 했는데, 채(蔡)나라 제후의 여동생 채희(蔡姬)가 낳아 채나라 제후에게는 생질이 된다. 진(陳), 채(蔡)의 군대가 함께 정나라를 칠 때, 진나라에서는 대부 백원제(伯爰諸)를 장수로 삼고, 채나라에서는 채후의 동생 채계(蔡季)를 장수로 삼았었다. 채계가 백원제에게 은밀히 진나라 사정을 물었다.
백원제가 말했다. "새로운 군주 타(佗)는 군주의 지위를 찬탈하여 인심이 복종하지 않고 있는데, 또 성향이 사냥을 좋아하여 항상 미복차림으로 교외에서 사냥만 하고 국정을 돌보지 않습니다. 장래에 반드시 나라에 변고가 있을 것입니다."
채계가 물었다. "어찌 그의 죄를 물어 그를 죽이지 않습니까?"
백원제가 대답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힘이 미치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주나라 왕의 군대가 패하게 되자 진(陳), 채(蔡), 위(衛) 세 나라의 군대가 각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채계는 백원제가 말한 내용을 채후에게 아뢰자 채후가 말했다. "태자 면이 죽었으면 다음에 우리 조카 약(躍)이 즉위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타는 세자를 죽여 군주의 지위를 빼앗은 도적인데 어찌 오랫동안 부귀를 훔치도록 용납하겠는가?"
채계가 아뢰었다. "타는 사냥을 좋아하니 사냥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기습하여 죽이면 될 것입니다."
채후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라하여 은밀히 채계를 보내 수레 100대를 거느리고 경계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타가 사냥을 나가기를 기다려 바로 습격하기로 하였다.
채계가 정탐꾼을 보내 사정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바로 보고가 들어왔다.
"진나라 군주가 삼일 전에 사냥을 나가 경계 입구에 진을 쳤습니다."
체계는, "내 계책이 이루어지겠구나."
하고는 거마를 열 대(隊)로 나누어 모두 사냥꾼 모습으로 분장하게 하고 한꺼번에 포위하기 위해 나아갔다.
바로 그때 진나라 군주의 진영 안에서 쏜 화살이 한 마리의 사슴에 명중되어 사슴이 쓰러지자, 채계가 수레를 달려 사슴을 빼앗았다. 진군(陳君 : 佗)이 노하여 재빠르게 가서 채계를 사로 잡으려고 했다. 채계가 바로 수레를 돌려 도망치자 진군이 수레를 불러 그 부대를 이끌고 추격해 왔다. 갑자기 징소리가 한 번 울리더니, 열 대(隊)의 사냥꾼이 일제히 앞으로 몰려나와 진군을 사로잡았다.
채계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채후(蔡侯)의 친동생 채계이다. 너희 나라 역적 타(佗)가 군주를 시해하여 나는 형님이신 채나라 군주의 명을 받들어 여기에 와서 도적을 친 것이다. 다만 한 사람만 죽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불문에 부치겠다."
진나라 사람들이 모두 땅에 엎드려 절하자 채계가 일일이 위무했다.
그리고 말했다. "고인이 된 군주의 아들 약(躍)은 우리 채후의 생질이다. 지금 그를 도와 군주로 옹립시키려고 하는데 어떠한가?"
진나라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내어 답했다. "그렇다면 진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매우 합당하며 저희들이 앞장서서 인도하기를 원합니다."
채계는 역적 타를 즉시 효수하여 수레 위에 수급을 걸고 먼 길을 달려 진나라 도성에 들어갔다. 앞에는 진군을 따라 사냥을 나갔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길을 열고 채나라 사람들이 역적을 토벌하여 새 군주를 세운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하여 저자거리에서도 놀라지 않고 백성들이 기뻐하며 도로를 메웠다. 채계는 진나라에 이르자 역적 타의 수급을 진 환공의 사당에 바쳐 제사지내도록 명하고 공자 약을 군주로 옹립하였으니 바로 여공(厲公)이다.
이 일은 주 환왕 14년 때의 일이다. 공자 타가 군주의 지위를 찬탈하여 겨우 1년 6개월이 지났으니 이와 같은 잠깐의 부귀를 위하여 만년의 오명을 감수하였으니 어찌 어리석지 않은가!
有詩爲證:
弒君指望千年貴,
淫獵誰知一旦誅!
若是凶人無顯戮,
亂臣賊子定紛如。
陳自公子躍即位,與蔡甚睦,數年無事。
이를 입증해주는 시가 있다.
군주를 시해한 것은 천년의 부귀를 바란 것이었는데,
사냥에 탐닉하여 하루 아침에 죽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렇게 흉악한 사람은 죽는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난신적자들이 반드시 세상을 어지럽힐 것이다.
진나라는 공자 약이 즉위하고부터 채나라와 매우 화목하게 지냈으며 몇년간은 아무 일이 없었다.
這段話繳過不提。且說南方之國曰楚,羋姓,子爵。出自顓頊帝孫重黎,爲高辛氏火正之官,能光融天下,命曰祝融。重黎死,其弟吳回嗣爲祝融。生子陸終,娶鬼方國君之女,得孕懷十一年。開左脅,生下三子,又開右脅,復生下三子。長曰樊,己姓,封於衛墟,爲夏伯,湯伐桀滅之。次曰參胡,董姓,封於韓墟,周時爲胡國,後滅於楚。三曰彭祖,彭姓,封於韓墟,爲商伯,商末始亡。四曰會人,妐姓,封於鄭墟。五曰安,曹姓,封於邾墟。六曰季連, 羋姓,乃季連之苗裔, 有名鬻熊者,博學有道,周文王武王俱師之。後世以熊爲氏。成王時,擧文武勤勞之後,得鬻熊之曾孫熊繹,封於荊蠻,胙以子男之田,都於丹陽。五傳至熊渠,甚得江漢間民和,僭號稱王。周厲王暴虐,熊渠畏其侵伐,去王號不敢稱。又八傳至於熊儀,是爲若敖。又再傳至熊眴,是爲蚡冒。蚡冒卒,其弟熊通,弒蚡冒之子而自立。熊通强暴好戰,有僭號稱王之志;見諸侯戴周,朝聘不絶,以此猶懷觀望。及周桓王兵敗於鄭,熊通益無忌憚,僭謀遂決。令尹鬥伯比進曰:「楚去王號已久,今欲復稱,恐駭觀聽。必先以威力制服諸侯方可。」 熊通曰:「其道如何?」 伯比對曰:「漢東之國,惟隨爲大。君姑以兵臨隨,而遣使求成焉。隨服,則漢淮諸國,無不順矣。」 熊通從之,乃親率大軍,屯於瑕。遣大夫薳章,求成於隨。隨有一賢臣,名曰季梁,又有一諛臣,名曰少師。隨侯喜諛而疏賢,所以少師有寵。及楚使至隨,隨侯召二臣問之。
羋 : 양울 미. 양이 울다. 양의 울음 소리. 妐 : 아주버니 종. 蚡 : 두더지 분. 薳 : 애기풀 원(위).
眴 : 깜짝일 현/눈짓할 순. 깜짝이다. 현기증이 나다. 눈짓하다. 놀라다. 아찔하다. 눈을 움직이다.
한편 남방의 나라는 초(楚)라고 하는데 미(羋)씨 성(姓)이고 작위는 자작(子爵)이었다. 오제(五帝)중 전욱(顓頊)의 자손인 중려(重黎)로부터 나왔는데, 고신씨(高辛氏)가 불을 다루는 관리가 되어 능히 천하를 밝혀 축융(祝融)이라 불리었다. 중려가 죽자 그 동생 오회(吳回)가 후사를 이어 축융이 되었다. 오회는 아들 육종(陸終)을 낳았고 육종은 귀방국(鬼方國) 군주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였는데, 그 부인이 회임한지 11년이 지났다. 좌측 옆구리를 열자 세 아들이 태어났으며, 또 우측 옆구리를 열자 다시 세 아들을 낳았다.
큰 아들은 번(樊)이라 했는데 기(己)씨 성이었으며 위허(衛墟)에 봉해져 하백(夏伯)이 되었다가 탕왕(湯王)이 걸(桀)을 쳤을 때 죽었다.
다음은 참호(參胡)라고 했으며 동씨(董氏) 성으로 한허(韓墟)에 봉해졌는데 주나라 때 호국(胡國)이 되었다가 후에 초나라에 멸망당했다.
셋째 아들은 팽조(彭祖)라 하였고 팽성(彭姓)으로 한허(韓墟)에 봉해져 상백(商伯)이 되었다가 상(商)나라 말기에 비로소 망했다.
넷째는 회인(會人)이라 했으며 종성(妐姓)으로 정허(鄭墟)에 봉해졌다. 다섯째는 안(安)이라 했은데 조성(曹姓)으로 주허(邾墟)에 봉해졌다. 여섯째는 계련(季連)이라 하였으며 미성(羋姓)이었다. 계련의 후예에 죽융(鬻熊)이라고 하는 자가 있었는데 박학다식하고 도가 있어 주(周) 왕조의 문왕(文王), 무왕(武王)이 모두 스승으로 섬겼다. 후세에 웅씨(熊氏)가 되었다.
성왕(成王)때 문왕(文王), 무왕(武王)때 힘쓴 공로자의 후예로 천거되어 죽웅의 증손자 웅역(熊繹)이 형만(荊蠻)에 봉해졌으며 자작(子爵)의 작위와 남작(男爵)의 영지를 받아 단양(丹陽)에 도읍하였다.5대째 전해져 웅거(熊渠)에 이르자 강수(江水)와 한수(漢水)사이의 백성들이 매우 화합하게 됨에 따라 왕을 참칭하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나라 여왕(厲王)이 포학하여 웅거는 여왕의 토벌을 두려워하여 감히 왕호를 참칭하지 못했다. 또 8대가 전해져 웅의(熊儀)에 이르자 약오(若敖)라 하였으며 웅의의 손자 웅현(熊眴)에 이르러 분모(蚡冒)라고 하였다. 분모가 죽자 그의 동생 웅통(熊通)이 분모의 아들을 죽이소 스스로 군주의 지위에 올랐다. 웅통은 사납고 전쟁을 좋아하며 왕호를 참칭하려는 뜻을 가졌으나 제후들이 주나라 조정을 받들어 조회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생각을 가슴에 품은채 관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주 환왕의 군대가 정나라에 패하게 되자 웅통은 더욱 거리낌이 없어져 참칭하기로 결정했다.
영윤 투백비(鬥伯比)가 진언했다. "초나라가 왕호를 칭하려한지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이제 다시 왕호를 칭하려고 하신다면 보고 듣는 사람들이 놀랄까 두렵습니다. 반드시 먼저 위력으로 제후들을 제압하여 복종시킨 후에야 가능할 것입니다."
웅통이 물었다. "그 방도가 무엇이오?"
백비가 대답했다. "한수의 동쪽에는 오직 수(隨)나라가 큰 나라입니다. 군주께서는 일단 수나라에 군대를 보내시고, 사신을 보내어 동맹을 권하시어 수나라가 복종한다면 한수와 회수(淮水)주변의 모든 나라들중 따르지 않는 나라가 없을 것입니다."
웅통이 그 말을 좇아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하(瑕)에 주둔하고 대부 원장(薳章)을 보내 수나라에 동맹을 요구했다.
수나라에는 한 사람의 현명한 신하가 있어 이름을 계량(季梁)이라 하였으며, 또 한 사람의 간신이 있어 이름을 소사(少師)라 했다. 수나라 제후는 간신을 좋아하고 현명한 신하를 멀리 했기 때문에 소사를 총애했다. 초나라 사자가 수나라에 이르자 수나라 제후는 두 사람을 불러 물었다.
季梁奏曰:「楚强隨弱,今來求成,其心不可測也。姑外爲應承,而內修備禦,方保無虞。」 少師曰:「臣請奉成約,往探楚軍。」 隨侯乃使少師至瑕,與楚結盟。鬥伯比聞少師將至,奏熊通曰:「臣聞少師乃淺近之徒,以諛得寵。今奉使來此探吾虛實,宜藏其壯銳,以老弱示之。彼將輕我,其氣必驕。驕必怠,然後我可以得志。」 大夫熊率比曰:「季梁在彼,何益於事?」 伯比曰:「非爲今日,吾以圖其後也。」 熊通從其計。少師入楚營,左右瞻視,見戈甲朽敝,人或老或弱,不堪戰鬥,遂有矜高之色。謂熊通曰:「吾兩國各守疆宇,不識上國之求成何意?」 熊通謬應曰:「敝邑連年荒歉,百姓疲羸。誠恐小國合黨爲梗,故欲與上國約爲兄弟,為唇齒之援耳。」 少師對曰:「漢東小國,皆敝邑號令所及,君不必慮也。」 熊通遂與少師結盟。少師行後,熊通傳令班師。少師還見隨侯,述楚軍羸弱之狀:「幸而得盟,即刻班師,其懼我甚矣!願假臣偏師追襲之,縱不能悉俘以歸,亦可掠取其半,使楚今後不敢正眼視隨。」隨侯以為然。方欲起師,季梁聞之,趨入諫曰:「不可!不可!楚自若敖蚡冒以來,世修其政,馮陵江漢,積有歲年。熊通弒姪而自立,兇暴更甚。無故請成,包藏禍心。今以老弱示我,蓋誘我耳。若追之,必墮其計。」隨侯卜之,不吉,遂不追楚師。熊通聞季梁諫止追兵,復召鬥伯比問計。伯比獻策曰:「請合諸侯於沈鹿。若隨人來會,服從必矣。如其不至,則以叛盟伐之。」熊通遂遣使遍告漢東諸國,以孟夏之朔,於沈鹿取齊。
疆宇 : 국경 안에 있는 한 나라의 땅. 宇 : 경계, 국경. 국토, 지역. 羸 : 여윌 리. 여위다. 고달프다. 약하다. 휘감기다. 엎다. 앓다. 알몸.
梗 : 대개 경. 대개, 대강. 가시나무, 느릅나무. 도라지. 굳세다. 강함. 곧다. 정직함. 막다. 방지함. 막히다. 근심, 괴로워 함. 인형.
계량이 아뢰었다. "초나라는 강하고 수나라는 약한데 지금 와서 동맹을 요구하는 것은 그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잠시 겉으로는 승락하고 안으로는 방어를 준비한다면 나라를 보전하는데 염려할 바 없을 것입니다."
소사가 말했다. "신은 동맹을 받들고자 초나라 군영에 가서 허실을 탐지하고자 합니다."
수후(隨侯)가 소사를 사자로 하(瑕)에 보내 초나라와 동맹을 맺도록 하였다.
투백비는 소사가 왔다는 말을 듣고 웅통에게 아뢰었다. "신이 듣기에 소사는 천박하고 속된 무리(淺近之徒)라 아첨에 능하여 군주의 총애를 받는 자입니다. 지금 사신의 임무를 받들어 우리 진영의 허실을 탐지하고자 이 곳에 온 것이니 강하고 날카로운 모습을 숨기고 노약자를 전면에 내세워 보여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가 우리를 가볍게 본다면 반드시 교만해질 것입니다. 교만하면 반드시 태만해질 것이며 그런 후에라야 우리의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 웅솔비(熊率比)가 말했다. "저쪽에는 계량이 있는데 일에 무슨 도움이 되겠소?"
백비가 말했다. "오늘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나는 그 후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오."
웅통은 그 계책을 따랐다. 소사가 초나라 군영에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니 병기가 녹슬고 부서졌으며 병사들은 늙고 허약하여 전투를 감당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마침내 우쭐한 기색을 띄며 웅통에게 말했다. "우리 두 나라가 각자 영토를 지키고 있는데 상국에서 동맹을 요구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웅통이 거짓으로 응답했다. "폐읍은 여러 해동안 흉년으로 백성들이 피폐해졌습니다. 진실로 작은 나라들이 동맹을 맺고 쳐들어 오는 것을 두려워 하여 상국과 동맹을 맺어 형제가 되므로써 입술과 이처럼 서로 돕는 관계(脣齒之援)를 이루고자 할 뿐입니다."
소사가 대답했다. "한수 동쪽의 작은 나라들은 모두 폐읍의 호령이 미치는 바이니 군주께서는 염려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웅통은 마침내 소사와 동맹을 체결했다. 소사가 돌아간 후 웅통은 명을 내려 반사했다.
소사는 귀국하여 수후를 보고 초나라 병사들의 파리하고 노약한 모습을 설명했다. "다행히 동맹을 체결하자 즉각 반사하였는데 우리를 매우 두려워하였습니다. 신에게 군사를 주시어 그들을 추격하게 하신다면, 설령 모두 사로잡아 올 수는 없어도 그 반은 빼앗 올 수 있고 초나라로 하여금 오늘 이후 수나라를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수후도 그렇게 여겼다. 막 군사를 일으키려고 하는데 계량이 그 소식을 듣고 달려 들어와 간했다.
"안됩니다! 안됩니다! 초나라는 약오와 분모때부터 지금까지 대대로 정치를 쇄신하여 강수와 한수지역을 평정하고 수년동안 양식을 비축해왔습니다. 웅통은 조카를 죽이고 스스로 군주위에 오른 자로 흉포함이 매우 심한 자입니다. 아무 까닭없이 동맹을 맺자고 한 것은 우리를 해치려는 마음을 숨기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늙고 허약한 군사를 우리 측에 보여준 것은 모두 우리를 유인하는 것일 뿐입니다. 만약 그들을 추격한다면 반드시 계책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수후가 점을 쳐보니 불길하다고 하여 마침내 초나라 군대를 추격하지 않았다. 웅통은 계량이 간하여 초나라 군대를 추격하는 일을 그쳤다는 말을 듣고 다시 투백비를 불러 계책을 물었다.
백비가 대답했다. "제후들에게 침록에서 회합을 갖자고 청하십시오. 수나라 사람이 회합에 참석하러 온다면 반드시 복종하게 하고, 참석하러 오지 않는다면 동맹을 배반한 일을 들어 그들을 치시면 됩니다."
웅통이 한수 동쪽 여러나라에 두루 사자를 파견하여 맹하(孟夏 : 음력 4월) 초하룻날에 침록에서 모이자고 하였다.
至期,巴、庸、濮、鄧、鄾、絞、羅、鄖、貳、軫、申、江諸國畢集,惟黃,隨二國不至。楚仔,使薳章責黃。黃子遣使告罪。又使屈瑕責隨,隨侯不服。熊通乃率師伐隨,軍於漢淮二水之間。隨侯集群臣問拒楚之策。季梁進曰:「楚初合諸侯,以兵臨我,其鋒方銳,未可輕敵。不如卑辭以請成。楚苟聽我,復修舊好足矣。其或不聽,曲在於楚。楚欺我之辭卑,士有怠心。我見楚之拒請,士有怒氣。我怒彼怠,庶可一戰,以圖僥幸乎?」 少師從旁攘臂言曰:「爾何怯之甚也!楚人遠來,乃自送死耳!若不速戰,恐楚人復如前番遁逃,豈不可惜。」 隨侯惑其言,乃以少師爲戎右,以季梁爲御,親自出師楚,布陣於青林山之下。季梁升車以望楚師,謂隨侯曰:「楚兵分左右二軍。楚俗以左爲上,其君必在左,君之所在,精兵聚焉。請專攻其右軍,若右敗,則左亦喪氣矣。」 少師曰:「避楚君而不攻,寧不貽笑於楚人乎?」 隨侯從其言,先攻楚左軍。楚開陣以納隨師。隨侯殺入陣中,楚四面伏兵皆起,人人勇猛,個個精强。少師與楚將鬥丹交鋒,不十合,被鬥丹斬於車下。季梁保著隨侯死戰,楚兵不退。隨侯棄了戎車,微服混於小軍之中;季梁殺條血路,方脫重圍。點視軍卒,十分不存三四。隨侯謂季梁曰:「孤不聽汝言,以至於此!」 問:「少師何在?」 有軍人見其被殺,奏知隨侯,隨侯嘆息不已。季梁曰:「此誤國之人,君何惜焉?爲今之計,作速請成爲上。」 隨侯曰:「孤今以國聽子。」 季梁乃入楚軍求成。
卑辭 : 자기가 하는 말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 例) 卑辭敬禮; 卑辭厚禮.
약속한 날이 되자 파(巴)、용(庸)、복(濮)、등(鄧)、우(鄾)、교(絞)、라(羅)、운(鄖)、이(貳)、진(軫)、신(申)、강(江)등늬 나라들이 모두 모였으나 오로지 황(黃), 수(隨)의 두 나라만 도착하지 않았다. 웅통은 원장을 사자로 보내 황나라를 꾸짖자 황나라 군주는 사자를 보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또 굴하(屈瑕)를 사자로 보내 수나라를 꾸짖었는데 수후는 굴복하지 않았다. 웅통은 이리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수나라를 치게 되었는데 한수(漢水)와 회수(淮水)의 사이에 진을 쳤다. 수후는 신하들을 모아 초를 막을 계책을 물었다.
계량이 진언했다. "초나라는 애초에 제후들에게 회합을 갖자고 하였다가, 군대를 이끌고 우리를 공격하는데 그 예봉이 날카로워 가볍게 대적할 수가 없습니다. 정중하게 화해를 청하는 것만 못합니다. 초나라에서 우리의 청을 들어준다면, 옛 우호관계를 복구하는 것으로 족하며, 초나라에서 우리의 청을 듣지 않는다면 초나라에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초나라에서 우리나라의 말을 업신여긴다면 군사들에게 해이한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저는 초나라에서 우리의 청을 거절한다면 우리 병사들이 분노할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군사의 분노로 초나라 군사들의 해이한 마음과 일전을 치른다면 요행을 꾀하는 것이겠습니까?"
소사가 옆에서 팔을 걷어며 말했다. "그대는 어찌 겁이 그렇게 많은가! 초나라 군대가 멀리서 온 것은 스스로 죽음을 바치러 온 것일 뿐이오!. 만약 속히 싸우지 않는다면 아마도 초나라 군대는 지난번 처럼 도망쳐 버릴 것인데 어찌 애석하지 않겠는가!"
수후는 그 말에 혹하여 소사를 융거(戎車)의 우측에서 호위하게 하고 계량으로 하여금 수레를 몰게 하여 친히 부대를 이끌고 초나라를 향해서 출진하여 청림산 아래에 포진하였다.
계량이 수레에 올라 초군을 바라보며 수후에게 말했다. "초나라 군대는 좌우 2군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초나라 풍속에 좌측을 위로 여기니 초나라 군주는 반드시 좌군에 있을 것이며 군주가 있는 곳에 정예 병사들이 몰려있을 것입니다. 오로지 그 우군을 공격하여야 하고 우군이 패하게 되면 좌군도 예기를 잃게 될 것입니다."
소사가 말했다. "초나라 군주를 피하여 공격을 하지 않으면 어찌 초나라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소?"
수후가 그 말을 좇아 먼저 초나라 좌군을 공격했다. 초나라에서는 진을 열어 수나라 군을 받아들였다. 수후가 초나라 진속으로 짓쳐들어가자 사방에서 복병이 일어나는데 사람마다 용맹스럽고 개개인이 정예군이라 강했다. 소사는 초나라 장수 투단(鬥丹)과 싸워 10합도 되기 전에 투단에 의해 참해져 수레에서 떨어졌다. 계량은 수후에게 바짝 붙어 보호하며 죽기로 싸우는데 초병은 물러가지 않았다.
수후는 융거를 버리고 미복차림으로 몇몇 병사 속에 섞였는데 계량이 죽기로 싸우며 한줄기 혈로를 뚫어 가까스로 겹겹의 포위망을 벗어났다. 군졸을 점검해보니 열에 삼사명이 돌아오지 않았다.
수후가 계량에게 말했다. "고가 그대의 말을 듣지 않아서 이에 이르게 되었소,"
그리고 물었다. "소사는 어디에 있는가?" 한 병사가 소사가 죽는 모습을 본대로 수후에게 아뢰니 수후는 탄식을 금치 못했다.
계량이 말했다. "그 사람은 나라를 그르친 자인데 군주께서는 어찌 애석해 하십니까? 지금의 계책으로는 속히 화해를 청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수후가 말했다. "고는 이제 나랏일은 그대의 말을 듣겠소."
계량은 이리하여 초나라 군영으로 들어가 화해를 청했다.
熊通大怒曰:「汝主叛盟拒會,以兵相抗。今兵敗求成,非誠心也。」 季梁面不改色,從容進曰:「昔者奸臣少師,恃寵貪功,强寡君於行陣,實非出寡君之意。今少師已死,寡君自知其罪,遣下臣稽首於麾下。君若赦宥,當倡率漢東君長,朝夕在庭,永爲南服。惟君裁之!」 鬥伯比曰:「天意不欲亡隨,故去其諛佞。隨未可滅也。不若許成,使倡率漢東君長,頌楚功績於周,因假位號,以鎭服蠻夷,於楚無不利焉。」 熊通曰:「善。」 乃使薳章私謂季梁曰:「寡君奄有江漢,欲假位號,以鎭服蠻夷。若徼惠上國,率群蠻以請於周室,幸而得請,寡君之榮,實惟上國之賜。寡君戢兵以待命。」 季梁歸言於隨侯,隨侯不敢不從。乃自以漢東諸侯之意,頌楚功績,請王室以王號假楚,彈壓蠻夷。桓王不許。熊通聞之,怒曰:「吾先人熊鬻,有輔導二王之勞,僅封微國,遠在荊山。今地闢民眾,蠻夷莫不臣服,而王不加位,是無賞也,鄭人射王肩,而王不能討,是無罰也。無賞無罰,何以爲王!且王號,我先君熊渠之所自稱也。孤亦光復舊號,安用周爲?」 遂即中軍自立爲楚武王,與隨人結盟而去。漢東諸國,各遣使稱賀。桓王雖怒楚,無如之何。自此周室愈弱,而楚益無厭。熊通卒,傳子熊貲,遷都於郢。役屬群蠻,駸駸乎有侵犯中國之勢。後來若非召陵之師,城濮之戰,則其勢不可遏矣。
徼 : 구할 요. 구하다. 훔치다. 빼앗음. 순찰하다. 순라꾼. 막다. 차단함. 변방의 경계. 샛길. 교외의 길. 미묘. 시원한 경지.
駸 : 말달릴 침. 달리다. 말이 질주하는 모양. 빨리 지나는 모양. 말이 모이는 모양.
웅통이 크게 노해 말했다. "너희 주인은 동맹을 배반하고 제후의 모임에도 참석을 거부하였으며 군대를 일으켜 과인에게 저항했었다. 이제 군대가 패하자 화해를 추구하려고 하는 것은 진실된 마음이 아닐 것이다."
계량이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조용한 어조로 진언했다. "예전에는 간신 소사가 군주의 총애를 믿고 공을 탐하여 저희 군주를 부추겨 전쟁에 나서게 한 것이며, 실제로는 저희 군주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지금 소사는 이미 죽었으며 저희 군주께서는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신을 보내 휘하에 머리숙여 사죄하게 한 것입니다. 군주께서 용서하신다면 마땅히 한수 동쪽에 있는 제후국들의 군장(君長)들을 인솔하여 조석으로 문안드리며 길이 복종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직 군주께서는 헤아려 주소서!"
투백비가 말했다. "하늘의 뜻은 수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으려고 간신인 수하를 제거하였습니다. 수나라는 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화해를 허락하시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수나라로 하여금 한수 동쪽에 있는 제후국의 군장들을 이끌고 주나라에 초나라의 공적을 칭송하게 하여 왕호를 수여하게 하고 만이(蠻夷)를 진압하여 복속시키게 한다면 초나라에 이로움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웅통이 말했다. "좋소."
그리하여 원장으로 하여금 계량에게 말하게 했다. "우리 군주께서 갑자기 강수와 한수지방을 가지려고 하신 것은 왕의 칭호를 받고 만이를 진압하여 복속시키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국에서 만이를 이끌고 주나라 왕실에 우리 군주에게 왕의 칭호를 내려주시기를 청하여 다행히도 받아들여지게 되면 저희 나라 군주의 영광이며 이는 진실로 상국의 은덕이라고 할 것입니다. 저희 군주께서는 군사를 거두고 명을 기다릴 것입니다."
계량은 돌아가 수후에게 보고하였는데 수후는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수나라에서는 스스로 한수 동쪽 제후들의 뜻이라 하여 초나라의 공적을 칭송하며 주왕실에 초나라에 왕호를 내리고 만이(蠻夷)를 지배하게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환왕이 불허하자 웅통이 그 소식을 듣고 노하여 말했다. "우리 조상 웅죽께서는 문왕과 무왕의 두 임금을 보필하고 지도한 공로가 있는데도 겨우 멀리 떨어진 형산에 조그만 나라를 봉했었다. 이제 땅을 개간하여 백성이 많아지자, 만이가 신하가 되어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는데도 왕으로 지위를 높여주지 않는데 이것은 상이 없는 것이며, 정나라 사람이 왕의 어깨에 활을 쏘았는데도 왕은 토벌하지 못했으며 이것은 벌이 없는 것이었다. 상도 없고 벌도 없는데 어찌 왕이라 할 수 있는가! 게다가 왕호는 우리 조상이신 웅거(熊渠)께서 스스로 칭하신 것이었다. 고가 또한 옛 왕호를 다시 찾는데 어찌 주나라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
마침내 중군(中軍)에 나아가 스스로 즉위하여 초나라 무왕(武王)이 되었으며 수나라 사람과 동맹을 맺고 떠났다. 한수 동쪽에 있는 제후국들은 각 사신을 보내 축하하였다. 주(周) 환왕(桓王)은 초나라 웅통이 왕을 칭한 행위에 화가 났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이때부터 주나라 왕실은 더욱 약해졌고 초나라는 더욱 거리낌이 없어졌다.
응통이 죽자 아들 웅자(熊貲)에게 전위하였으며 웅자는 영(郢)으로 도읍을 옮겼다. 만이(蠻夷)들을 복속시키고 빠르게 중원의 세력을 침범했다. 후에 소릉(召陵)의 군대가 아니었다면 성복의 싸움에서 초나라의 기세를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話分兩頭。再說鄭莊公自勝王師,深嘉公子元之功,大城櫟邑,使之居守,比於附庸。諸大夫各有封賞;惟祝聃之功不錄。祝聃自言於莊公。公曰:「射王而錄其功,人將議我。」 祝聃忿恨,疽發於背而死。莊公私給其家,命厚葬之。
한편 정장공은 주(周) 환왕의 군대에 승리한 이후, 공자 원의 공을 매우 아름답게 여겨 큰 성인 역읍(櫟邑)에서 지내면서 지키게 하고 속국(屬國)으로 삼았다. 대부들에게도 각 봉토와 상을 내렸으나 오직 축담(祝聃)의 공은 기록하지 않았다.
축담이 스스로 장공에게 말하자 장공이 말했다. "왕에게 화살을 쏜 것을 공으로 기록하면 사람들이 나를 문책하게 될 것이다."
축담이 분노하여 한을 품었는데 등창이 나서 죽었다. 장공이 은밀히 축담의 집에 재물을 보내고 후히 장례를 치르도록 명했다.
周桓王十九年夏,莊公有疾,召祭足至牀頭,謂曰:「寡人有子十一人。自世子忽之外,子突、子亹、子儀,皆有貴徵。子突才智福祿,似又出三子之上。三子皆非令終之相也。寡人意欲傳位於突,何如?」 祭足曰:「鄧曼,元妃也。子忽嫡長,久居儲位,且屢建大功,國人信從。廢嫡立庶,臣不敢奉命!」 莊公曰:「突志非安於下位者,若立忽,惟有出突於外家耳。」 祭足曰:「知子莫如父,惟君命之。」 莊公歎曰:「鄭國自此多事矣!」 乃使公子突出居於宋。五月,莊公薨。世子忽即位,是爲昭公。使諸大夫分聘各國,祭足聘宋,因便察子突之變。
儲 : 쌓을 저. 쌓다. 저축함. 버금. 예비로서 대기하고 있는 것. 태자. 세자. 동궁. 마련하다.
주 환왕 19년 여름에 장공이 병이 들자 제족을 침상 머리에 불러 말했다. "과인에게는 아들이 열 한 명이 있소, 세자 홀 외에도 자돌(子突), 자미(子亹), 자의(子儀)는 모두 왕재의 풍모가 있소. 자돌은 재능과 지혜, 복록이 세 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듯 하오. 세 아들 모두 타고난 수명을 누릴 상은 아니오. 과인은 돌에게 군주의 지위를 전하려고 하는데 어떻소?"
제족이 말했다. "등만(鄧曼)은 원비(元妃)입니다. 세자 홀은 적장자이며 오랫동안 세자의 지위에 있었고 또 누차에 걸쳐 큰 공을 세워 백성들이 믿고 따릅니다.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세우는 일은 신은 감히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장공이 말했다. "돌은 성향상 다른 사람의 아래에 있는 것을 편안히 여기지 않을 것이니, 만약 홀을 세우려 한다면, 오로지 돌을 외가(外家)로 내보내야 할 것이오."
제족이 말했다. "아들을 아는 것은 아버지만한 사람이 없으니 오직 군주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장공이 탄식했다. "정나라에는 지금부터 변고가 많겠구나!"
이리하여 공자 돌은 송(宋)나라로 나가서 지내게 하였다. 5월에 장공이 죽고 세자 홀이 즉위하였는데 바로 소공(昭公)이다.
대부들을 각 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소공의 즉위 사실을 알렸는데, 제족은 송나라에 가서 곧 공자 돌(突)의 동정을 살피게 되었다.
卻說公子突之母,乃宋雍氏之女,名曰雍姞。雍氏宗族,多仕於宋,宋莊公甚寵任之。公子突被出在宋,思念其母雍姞,與雍氏商議歸鄭之策。雍氏告於宋公,宋公許爲之計。適祭足行聘至宋,宋公喜曰:「子突之歸,只在祭仲身上也。」 乃使南宮長萬伏甲士於朝,以待祭足入朝。致聘行禮畢,甲士趨出,將祭足拘執。祭足大呼:「外臣何罪?」 宋公曰:「姑至軍府言之。」 是日,祭足被囚於軍府,甲士周圍把守,水洩不通。祭足疑懼,坐不安席。至晚,太宰華督攜酒親至軍府,與祭足壓驚。祭足曰:「寡君使足修好上國,未有開罪,不知何以觸怒?將寡君之禮,或有所缺,抑使臣之不職乎?」 華督曰:「皆非也。公子突之出於雍,誰不知之。今子突竄伏在宋,寡君憫焉!且子忽柔懦,不堪爲君。吾子若能行廢立之事,寡君願與吾子世修姻好。惟吾子圖之!」 祭足曰:「寡君之立,先君所命也。以臣廢君,諸侯將討吾罪矣。」 華督曰:「雍姞有寵於鄭先君,母寵子貴,不亦可乎?且弒逆之事,何國蔑有?惟力是視,誰加罪焉!」 因附祭足之耳曰:「吾寡君之立,亦有廢而後興。子必行之,寡君當任其無咎。」 祭足皺眉不答。華督又曰:「子必不從,寡君將命南宮長萬為將,發車六百乘,納公子突於鄭。出軍之日,斬吾子以殉於軍,吾見子止於今日矣!」 祭足大懼,只得應諾。華督復要之立誓。祭足曰:「所不立公子突者,神明殛之!」
壓驚 :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다. 皺 : 주름 추. 주름. 주름잡히다. 오그라들다. 마른 대추. 밤송이.
공자 돌의 모친은 바로 송(宋)나라 옹(雍)씨의 딸인데 이름은 옹길(雍姞)이라고 하였다. 옹씨 종족은 송나라에서 벼슬을 많이 했는데 송(宋)나라 장공(莊公)은 그들을 매우 총애하고 신임했다. 공자 돌(突)이 축출되어 송나라에서 지내자 그 모친인 옹길의 처지를 생각하여 옹씨들과 공자 돌을 정나라로 돌려보낼 계책을 상의했다. 옹씨 사람들은 송공에게 그 계책을 세워 실행하는 일을 그들에게 맡겨주기를 청했다.
마침 제족이 송나라에 사신으로 도착하자 송공이 기뻐하며 말했다. "공자 돌의 귀환은 오직 제중(祭仲 : 祭足)의 신상에 달렸소."
이리하여 남궁장만(南宮長萬)을 시켜 무장한 군사를 조정에 잠복시키게 하고 제족이 조정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제족이 예물을 바치고 예를 마치자 무장한 군사들이 달려나와 제족을 묶었다.
제족이 크게 외쳤다. "외국의 신하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송공이 말했다. "잠시후 군부에 가서 말해 주겠소."
이 날 제족은 군부(軍府)에 갖혔는데 무장한 병사들이 주위를 지키는데 물샐 틈이 없었다. 제족은 의심스럽고 두려워 좌불안석이었다.
밤이 되자 태재 화독(華督)이 술을 들고 직접 군부에 찾아 와서 제족의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제족이 물었다. "저희 군주께서는 저로 하여금 상국과 좋은 관계를 맺도록 하여 잘못을 범한 일이 없는데 어찌 노여워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군주께서 예를 표하심에 있어서 혹 부족함이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신이 맡은 일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까?"
화독이 대답했다. "모두 아닙니다. 공자 돌이 옹으로 나온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지금 공자 돌이 송나라에서 은둔(隱遁)하고 있는데 저희 군주께서는 불쌍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또 세자 홀(忽)은 나약하여 군주의 지위를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대가 만약 홀을 폐위시키고 공자 돌을 군주로 옹립하는 일을 행할 수 있다면, 저희 군주께서는 그대와 대대로 혼인을 맺어 우호관계를 맺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오직 그대가 그 일을 해주셔야 합니다!"
제족이 대답했다. "저희 군주가 즉위한 것은 선군이신 장공께서 명하신 일입니다. 신하가 되어 군주를 폐한다면 제후들이 저에게 죄를 묻게 될 것입니다."
화독이 말했다. "옹길은 정나라 선군으로부터 총애를 받았으니 모친이 총애를 받았으면 자식이 귀한 것이 또한 옳지 않습니까? 또 군주를 시해하고 내치는 일이 어느 나라라고 없겠습니까? 오직 힘있는 것을 볼 뿐인데 누가 죄를 묻겠습니까?"
이에 제족의 귀에 대고 말했다. "저희 군주께서 즉위한 것도 또한 선군을 폐하고나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대가 반드시 행한다면 저희 군주께서는 마땅히 그대의 허물이 없도록 해낼 것입니다."
제족이 미간을 찌푸리고 대답을 하지 않자 화독이 또 말했다. "그대가 반드시 따르지 않겠다면 저희 군주께서는 남궁장만을 장수로 삼고 병거 600대를 발진시켜 정나라에서 공자 돌을 받아들이게 할 것입니다. 부대를 출진 시키는 날에는 그대를 참하여 부대에 돌릴 것이니 내가 그대를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오."
제족은 매우 두려워 다만 응락할 수밖에 없었다. 화독은 다시 제족에게 맹세하기를 요구하니 제족이 말했다. "공자 돌을 군주로 옹립하지 않는다면 천지신명이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史官有詩譏祭足云:
丈夫寵辱不能驚,
國相如何受脅陵!
若是忠臣拚一死,
宋人未必敢相輕。
사관이 시를 지어 제족을 꾸짖었다.
장부는 총애를 받거나 욕을 당해도 놀라지 않는 법인데,
나라의 재상이 되어서 어찌 협박을 받고 두려워했던가!
만일 결연하게 한 목숨 죽어 충신이 되려고 했다면,
송나라 사람이 감히 가볍게 대하지 못했으리라.
華督連夜還報宋公,說:「祭足已聽命了。」
次日,宋公使人召公子突至於密室,謂曰:「寡人與雍氏有言,許歸吾子。今鄭國告立新君,有密書及寡人曰:『必殺之,願割三城爲謝。』 寡人不忍,故私告子。」 公子突拜曰:「突不幸,越在上國。突之死生,已屬於君。若以君之靈,使得重見先人之宗廟,惟君所命,豈惟三城!」 宋公曰:「寡人囚祭仲於軍府,正惟公子之故。此大事非仲不成,寡人將盟之。」乃並召祭足使與子突相見,亦召雍氏,將廢忽立突之事說明。三人歃血定盟,宋公自爲司盟,太宰華督蒞事。宋公使子突立下誓約,三城之外,定要白璧百雙,黃金萬鎰,每歲輸穀三萬鍾,以爲酬謝之禮。祭足書名爲證。公子突急於得國,無不應承。宋公又要公子突將國政盡委祭足,突亦允之。又聞祭足有女,使許配雍氏之子雍糾,就敎帶雍糾歸國成親,仕以大夫之職。祭足亦不敢不從。
司盟 : 맹재(盟載)의 법을 담당하는 자. 鄭玄의 주석에 의하면, "載는 맹세한다는 것이다. 맹세한 사람이 그 내용을 策에 쓰고, 짐승을
죽여 피를 취한 후, 짐승을 구덩이에 묻고, 맹서를 그 위에 올려놓고 묻는 것을 재서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화독이 밤새워 돌아가 송공에게 보고했다. "제족이 이미 명을 받들기로 하였습니다."
다음 날 송공은 사람을 시켜 공자 돌을 밀실로 불러 말했다. "과인이 옹씨와 논의한 끝에 그대를 정나라로 돌려보내기로 허락했다. 지금 정나라에서 새로운 군주가 즉위하였다고 알려 왔고, 또 밀서가 과인에게 보내져 왔는데 '반드시 그대를 죽인다면 성(城) 세곳을 할양(割讓)하여 사례하겠다.' 고 하였으나 과인은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은밀히 그대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공자 돌이 절하고 말했다. "제가 불행하게도 상국에 와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제가 죽고 사는 것은 이미 군주께 달려 있습니다. 만약 군주의 은혜로 조상의 종묘를 다시 볼 수 있게 된다면 오직 군주의 명에 따를 것인데 어찌 세 곳의 성뿐이겠습니까?"
송공이 말했다. "과인이 제중을 군부에 가둔 것은 바로 공자 때문이다. 이 일은 큰 일로 제중이 아니면 이룰 수 없다. 과인이 그에게 맹세하도록 하리라."
이리하여 제족을 불러 공자 돌과 만나게 하고, 또 옹씨를 불러 장차 정나라 군주인 홀을 폐하고 돌을 군주로 세우는 일을 설명했다. 세사람은 삽혈의식을 치르며 맹세하였고 송공이 스스로 사맹(司盟)이 되어 그 의식을 주관하였으머 화독이 입회했다.
송공은 공자 돌로 하여금 서약을 하도록 하였는데, 세 곳의 성 외에도 백벽(白壁) 100쌍, 황금 1만 일(鎰), 해마다 곡식 3만 종(鍾)을 감사의 예물로 꼭 바치게 하였다. 제족이 서명하여 증거로 삼았고, 공자 돌은 나라를 얻는데 급급하여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송공은 또 공자 돌에게 국정을 모두 제족에게 맡기기를 요구하였고 공자 돌은 승락했다. 또 제족에게 딸이 있다고 듣고 옹씨의 아들 옹규(雍糾)에게 짝지워 주도록 허락하게 하고 옹규를 대동하고 귀국하여 혼인시키고 대부의 직에 출사시키게 하였다. 제족은 또한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公子突與雍糾皆微服,詐爲商賈,駕車跟隨祭足,以九月朔日至鄭,藏於祭足之家。祭足僞稱有疾,不能趨朝。諸大夫俱至祭府問安。祭足伏死士百人於壁衣之中,請諸大夫至內室相見。諸大夫見祭足面色充盈,衣冠齊整,大驚曰:「相君無恙,何不入朝?」 祭足曰:「足非身病,乃國病也。先君寵愛子突,囑諸宋公,今宋將遣南宮長萬爲將,率車六百乘,輔突代鄭。鄭國未寧,何以當之?」 諸大夫面面相覷,不敢置對。祭足曰:「今日欲解宋兵,惟有廢立可免耳。公子突見在,諸君從否,願一言而決!」 高渠彌因世子忽諫止上卿之位,素與子忽有隙,挺身撫劍而言曰:「相君此言,社稷之福。吾等願見新君!」 眾人聞高渠彌之言,疑與祭足有約,又窺見壁衣有人,各懷悚懼,齊聲唯唯。祭足乃呼公子突至,納之上坐。祭足與高渠彌先下拜。諸大夫沒奈何,只得同拜伏於地。祭足預先寫就連名表章,使人上之,言:「宋人以重兵納突,臣等不能事君矣。」 又自作密啟,啟中言:「主君之立,實非先君之意,乃臣足主之。今宋囚臣而納突,要臣以盟,臣恐身死無益於君,已口許之。今兵將及郊,群臣畏宋之強,協謀往迎。主公不若從權,暫時避位,容臣乘間再圖迎復。」 末寫一誓云:「違此言者,有如日!」 鄭昭公接了表文及密啟,自知孤立無助,與嬀妃泣別,出奔衛國去了。
有如日 : 春秋左傳 壤公23年에 이 표현이 있다. 해석은 대개 다음과 같다. "태양이 증인이 될 것이다." "태양을 두고 맹세 하리라."
공자 돌과 옹규는 모두 미복차림으로 장사꾼을 가장하고 수레에 올라 제족을 따라 9월 초 하룻날 정나라에 도착하여 제족의 집에 숨었다. 제족은 병이 들었다고 핑계대어 조정에 나갈 수가 없었다. 대부들이 모두 제족의 부중에 이르러 문안하고자 하였다. 제족은 결사대 100명을 벽 휘장 안에 잠복시키고 대부들에게 내실로 들어와 만나자고 하였다. 대부들이 들어가 제족을 보니 얼굴에 윤기가 충만했다.
대부들이 놀라 물었다. "상군께서는 별 탈이 없으신데 어째서 입조하지 않으셨습니까?"
제족이 대답했다. "나는 몸에 병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에 병이 있는 것이오. 선군께서는 공자 돌을 총애하시고 송공(宋公)에게 부탁하셨었는데, 지금 송나라에서는 남궁장만을 장수로 삼아 군대를 파견하여 병거 600대를 거느리고 공자 돌을 도와 정나라 군주의 지위를 잇게 하였습니다. 정나라가 안녕치 못한데 어떻게 송나라를 당해내겠습니까?"
대부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감히 대꾸를 하지 못했다.
제족이 말했다. "오늘 송나라의 군대를 물리치려면, 오직 현 군주를 폐하고 공자 돌을 옹립하는 일일 뿐입니다. 공자 돌이 여기에 계시니 여러분들은 따를 것인가의 여부를 한마디로 결정해 주기 바랍니다."
고거미는 세자 홀이 간하여 상경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일로 평소 세자 홀과 틈이 있었기 때문에 몸을 앞으로 내밀고 검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상군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사직의 복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군주를 원합니다."
좌중의 사람들은 고거미의 말을 듣고 제족과 약속이 있었던 것으로 의심하였고, 또 벽 휘장안에 사람들이 잡복해 있는 모습이 보여 각자가 두려움을 느끼고 일제히 예예하였다. 이에 제족은 공자 돌을 불러내 상좌에 오르게 하고는, 제족과 고거미가 먼저 아래로 내려가 절했다.
대부들은 어쩔 수 없이 땅에 엎드려 함께 절할 수밖에 없었다.
제족은 미리 작성해 둔 표장에 연명하게 하고는 사람을 시켜 현 군주인 소공(昭公)에게 올렸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송나라 사람들이 대군을 앞세워 군자 돌을 새로운 군주로 세우기를 요구하니 신들은 더이상 군주를 모실 수 없습니다."
제족은 또 스스로 은밀히 상주문(密啓)을 작성해 올렸다. "주군을 세운 것은 진실로 선군의 뜻이 아니라 신 제족이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송나라에서는 사신으로 갔던 신을 가두어 공자 돌을 새로운 군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신에게 맹세하라고까지 요구하였습니다. 신은 몸이 죽는다 해도 주군께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두려워 이미 허락하였습니다. 지금 송나라의 군대가 교외에 이르자 신하들이 송나라의 강함을 두려워 하여 함께 상의하고 가서 공자 돌을 맞이해 왔습니다. 주공께서는 잠시 형세를 따르니만 못하니 잠시 군주의 지위에서 물러나셨다가 신이 다시 도모하여 맞이하기를 틈타 복귀하소서." 그리고 끝에 한마디 맹세가 써있었다.
"이 말을 어긴다면 태양이 증인이 될 것입니다."
정 소공은 표문과 밀계를 읽고 자신은 고립되어 도움조차 받을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깨닫고 규비(嬀妃)와 눈물로 작별한 후 위(衛)나라로 달아났다.
九月己亥日,祭足奉公子突即位,是爲厲公。大小政事,皆決於祭足。以女妻雍糾,謂之雍姬。言於厲公,官雍糾以大夫之職。雍氏原是厲公外家,厲公在宋時,與雍氏親密往來,所以厲公寵信雍糾,亞於祭足。自厲公即位,國人俱已安服。惟公子亹、公子儀二人,心懷不平。又恐厲公加害,是月,公子亹奔蔡,公子儀奔陳。宋公聞子突定位,遣人致書來賀。因此一番使命,挑起兩國干戈。
9월 기해일에 제족은 공자 돌을 받들어 즉위시켰는데 바로 여공(厲公)이다. 대소 정사는 모두 제족이 결정했다. 제족은 딸을 옹규에게 시집보냈는데 옹희(雍姬)라고 했다. 제족은 여공에게 말해 옹규에게 대부의 직을 제수했다. 옹씨는 원래 여공의 외가이며 여공이 송나라에 있을 때 옹씨와 친밀하게 왕래하였기 때문에 여공이 옹규를 총애하고 믿는 것이 제족에 버금갔다.
여공이 즉위한 때부터 나라 사람들이 모두 이미 복종했다. 다만 공자 미(亹)와 공자 의(儀) 두 사람이 마음에 불만을 품었는데 여공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 그 달에 공자 미는 채나라로, 공자 의는 진(陳)나라로 도망갔다.
송공은 자돌이 즉위한 것을 알고 사람을 보내 즉위를 치하하는 서찰을 보냈다. 이 한 번의 사자의 임무로 인하여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且聽下回分解。
다음회를 기다리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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