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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歷史와文學/列國志

第二十回. 晉獻公違卜立驪姬, 楚成王平亂相子文.

by 柳川 2021. 3. 22.

第二十回. 晉獻公違卜立驪姬, 楚成王平亂相子文.

 

 

周惠王十年,徐戎俱已臣服於齊。鄭文公見齊勢愈大,恐其侵伐,遣使請盟。乃復會宋、魯、陳、鄭四國之君,同盟於幽,天下莫不歸心於齊。齊桓公歸國,大設宴以勞群臣。酒至半酣,鮑叔牙執巵至桓公之前,滿斟爲壽。桓公曰:「樂哉,今日之飮!」 鮑叔牙曰:「臣聞 『明主賢臣,雖樂不忘其憂。』 臣願君毋忘出奔,管仲毋忘檻囚,甯戚毋忘飯牛車下之日。」 桓公遽起離席再拜曰:「寡人與諸大夫,皆能毋忘,此齊國社稷無窮之福也!」 是日極歡而散。

 

 

주 혜왕 10년, 정문공은 제나라의 세력이 점점 커지는 것을 보고 제나라가 침입할까 두려워 마침내 사자를 보내 맹약을 청했다. 그리하여 송(宋)、노(魯)、진(陳)、정(鄭) 네 나라의 군주는 유(幽)에서 다시 회동하여 동맹을 맺으니 천하에 제나라를 따르지 않는 나라가 없었다.

제환공이 귀국하자 크게 연회를 베풀어 신하들을 위로했다. 술이 얼큰해지자 포숙아가 잔을 들고 환공 앞에 나아가 술을 가득 따라 장수를 축원했다. 

환공이 말했다. "즐겁구나! 오늘은 술을 마시리라!"

포숙아가 말했다. "신이 들은 바로, '현명한 군주와 어진 신하는 즐기더라도 근심을 잊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주군께서 망명했던 시절을 잊지 마시고, 관중은 함거에 갖힌 시절을 잊지 말며, 영척은 수레 아래에서 소를 먹였던 때를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환공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자리를 옮겨 두 번 절하고 말했다. "과인이 대부들과 더불어 모두 잊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제나라 사직의 무궁한 복이 되리라!"

이 날 모두 매우 즐겁게 마시다가 헤어졌다. 

 

 

 

 

忽一日,報:「周王遣召伯廖來到。」 桓公迎接入館。召伯廖宣惠王之命,賜齊候爲方伯,修太公之職,得專征伐。因言:「衛朔援立子頹,助逆犯順,朕懷之十年,迄今天討未彰。煩伯舅爲朕圖之。」 惠王十一年,齊桓公親率車徒伐衛。時衛惠公朔先薨,子赤立,已三年矣,是爲懿公。懿公不問來由,率兵接戰,大敗而歸。桓公乃直抵城下,宣揚王命,數其罪狀。懿公曰:「然則先君之過,與寡人無與也。」 乃使其長子開方,輦金帛五車,納於齊軍,求其講和免罪。桓公曰:「先王之制,罪不及子孫。苟遵王命,寡人何多求於衛耶?」 公子開方見齊國强盛,願仕於齊。齊侯曰:「子乃衛侯長子,論次序當爲國儲。奈何舍南面之尊,而北面於寡人乎?」 開方對曰:「明公乃天下之賢侯,倘得執鞭侍左右,榮幸已甚,豈不勝於爲君?」 桓公以開方爲愛己,拜爲大夫,寵之與豎貂易牙等。齊人謂之「三貴」。開方復言衛侯少女之美,(衛惠公先曾以女媵齊,此其妹也。) 桓公遣使納幣,求之爲妾。衛懿公不敢辭卻,即送衛姬至齊,齊侯納之。因以長衛姬,少衛姬別之,姊妹俱有寵。

 

髯翁有詩云:

衛侯罪案重如山,

奉命如何取賂還?

漫說尊王申大義,

到來功利在心間。

 

 

 

어느 날 갑자기 보고가 들어왔다. "주왕께서 소백 료를 보냈는데 그가 지금 도착했습니다."

환공이 영접하여 관사에 들였다.  소백 료가 혜왕의 칙명을 전했는데 제환공에게 방백(方伯)의 지위를 내리고, 태공(太公)의 직을 제수하여 정벌의 일을 전담하게 하였다. 

이에 따른 명을 전했다. "위나라 삭(朔)은 왕자 퇴를 지원하여 왕으로 옹립하고, 그 역적을 도와 왕실을 침범하는 일을 따랐었다.  짐은 10년동안이나 그 일에 한을 품고 지내왔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천자가 토벌하지 못해 그 죄상을 아직 드러내지 못했다.  번거롭지만 백구(伯舅)는 짐을 위해 그 일을 도모해 주기 바라노라."

혜왕 11년,  제환공은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위나라를 쳤다.  그 때 위 혜공 삭은 이미 죽고 그 아들 적(赤)이 즉위한지 3년이 지났는데 바로 의공(懿公)이었다.  의공은 제환공이 온 연유도 묻지 않고 군사를 이끌고 싸웠으나 대패하고 돌아갔다. 환공이 곧바로 도성 아래에까지 이르러 왕명을 전하면서 그 죄상을 하나씩 거명하며 꾸짖었다.

의공이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선군의 잘못이며, 과인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큰 아들 개방(開方)을 시켜 금과 비단 다섯 수레를 제군(齊軍) 진영으로 가지고 가서 제환공에게 바치고 강화를 청하게 하면서 선왕의 죄를 면해주기를 요청했다. 

환공이 말했다. "선왕이 저지른 죄는 자손에게 미치지 않는다.  왕명을 따른다 해도 과인이 어찌 위나라에 많은 것을 요구하겠는가?"

공자 개방은 제나라의 강성함을 보고 제나라에서 벼슬하기를 원했다. 

환공이 말했다. "그대는 위후의 큰아들이라 순서대로라면 마땅히 나라의 세자가 되어야 한다. 어찌 남면하는 군주의 자리를 버리고 과인에게 신하가 되어 북면하려고 하는 것인가?"

개방이 대답했다. "명공이야말로 천하의 현명한 제후이십니다. 곁에서 모시면서 말채찍이라도 잡을 수 있다면 더 없는 영광일 것인데 어찌 군주가 되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환공은 개방을 자신의 몸같이 사랑하여 대부를 삼고 그를 수초와 역아등과 함께 총애하였으며 제나라 사람들은 그들을 삼귀(三貴)라 하였다.  개방은 또 위후의 막내 여동생의 아름답다고 말하여 환공은 사자를 보내 예물을 보내고 첩으로 삼으려 했다. 위혜공은 앞서 그 딸을 제후의 첩으로 보냈으니 이 여인은 바로 그 동생이다. 

위 의공은 감히 물리치지 못하고 위희를 제나라로 보냈다. 이로 인하여 장위희(長衛姬)와 소위희(少衛姬)로 그들을 구별하였으며 두 사람 모두 총애를 받았다. 

 

염옹이 시를 지었다.

 

위혜공의 죄는 산처럼 무겁지만,

왕명을 받들면서 어찌 뇌물로 마음을 돌렸는가?

함부로 왕을 존중하고 의를 펼친다고 하면서,

마음속에는 공명과 이익을 탐했을 뿐이었도다. 

 

 

 

 

話分兩頭。卻說晉國姬姓,侯爵。自周成王時,剪桐葉爲珪,封其弟叔虞於此。傳九世至穆侯。穆侯生二子,長曰仇,次曰成師。穆侯薨,子仇立,是爲文侯。文侯薨,子昭侯立。畏其叔父桓叔之强,乃割曲沃以封之,謂之曲沃伯;改晉號曰翼,謂之二晉。昭侯立七年,大夫潘父弒之,而納曲沃伯。翼人不受,殺潘父而立昭侯之弟平,是爲孝侯。孝侯之八年,桓叔薨,子鱓立,是爲曲沃莊伯。孝侯立十五年,莊伯伐翼,孝侯逆戰大敗,爲莊伯所殺。翼人立其弟郄,是爲鄂侯。鄂侯立二年,率兵伐曲沃,戰敗,出奔隨國。子光嗣位,是爲哀侯。哀侯之二年,莊伯薨,子稱代立,是爲曲沃武公。哀侯九年,武公率其將韓萬梁宏伐翼,哀侯逆戰被殺。周桓王命卿士虢公林父立其弟緡,是爲小子侯。小子侯立四年,武公復誘而殺之,遂並其國,定都於絳,仍號曰晉。悉取晉庫藏寶器,輦入於周,獻於釐王。釐王貪其賂,遂命稱代以一軍爲晉侯。稱代凡立三十九年,薨,子佹諸立,是爲晉獻公。

 

☞ 剪桐葉爲珪

    晉나라는 진(秦)나라와 구별하여 唐晉이라 하고, 秦은 섬진(陝秦), 陳은 그대로 사용하였다. 주 성왕은 동생 숙우와 놀다가 오동잎을

    부절로 삼아 그를 당진에 봉하고 강(絳)에 도읍하도록 했다. 이 일을 동엽봉제(桐葉封弟)라고 한다.

桓叔 : 詩經. 國風/唐風/揚之水, 無衣 두편의 시는 환숙을 노래한 것이다.

鱓 : 드렁허리 선. 드렁허리(드렁허릿과의 민물고기). 악어.   郄 : 隙.    佹 : 괴이할 궤(괴). 괴이하다. 어긋나다. 겹치다. 의지하다. 우연히.

軍 : 周의 軍制에서는 1만 2천 500명을 軍이라 하고, 1만 명을 齊라 하였음.

 

 

 

한편 진(晉)나라는 희씨(姬氏)성으로 작위는 후(侯)였다. 주성왕(周成王)때 오동나무 잎을 잘라 홀(珪)을 만들어 동생인 숙우(叔虞)를 진나라에 봉했었다.  9대가 전해져 목후(穆侯)의 대에 이르렀는데 목후는 아들 둘을 낳아 큰 아들을 구(仇) 작은 이들을 성사(成師)라 했다. 

목공이 죽고 아들 구가 즉위하였는데 바로 문후(文侯)이다.  문후가 죽자 아들 소후(昭侯)가 즉위하였는데 그는 숙부인 환숙(桓叔 : 成師)의 강함을 두려워하여 곡옥(曲沃)의 땅을 그에게 할양하여 봉하고 곡옥백(曲沃伯)이라 불렀으며,  진(晉)의 나라 이름을 익(翼)으로 바꾸어 진나라가 둘로 나누어졌다.  소후가 즉위한지 7년이 되자 대부 반보(潘父)가 그를 시해하고 곡옥백을 옹립했다. 익(翼)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반보를 죽이고 소후의 동생 평(平)을 옹립하였으니 바로 효후(孝侯)이다.

효후 8년 환숙이 죽고 그 아들 선(鱓)이 즉위하였는데 바로 곡옥장백(曲沃莊伯)이다. 효후 15년이 되자 장백이 익을 쳐서 효후가 맞아 싸우다가 크게 패하여 장백에게 살해당했다.  익인(翼人)들이 효후의 동생 극(郄)을 옹립하였는데 그가 악후(鄂侯)이다. 

악후 2년 군사를 거느리고 곡옥을 쳤으나 싸움에서 패하고 수(隨)나라로 망명했다.  그 이들 광(光)이 후사를 이었는데 바로 애후(哀侯)이다.  애후 2년 곡옥장백이 죽고 그 아들 칭대(稱代)가 대를 이었으니, 그가 곡옥무공(曲沃武公)이다. 

애후 9년 무공은 장수 한만(韓萬)과 양굉(梁宏)을 거느리고 익을 쳤는데 애후가 그를 맞아 싸우다가 패하고 살해당했다. 

주환왕(周桓王)은 경사인 괵공(虢公) 임조에게 명하여 애후의 동생 민(緡)을 세우게 하니 그가 소자후(小子侯)이다. 소자후 4년 무공은 다시 소자후를 유인하여 죽이고 마침내 익(翼)나라를 병합하여 도읍을 강(絳)에 정하고 나라 이름을 도로 진(晉 : 이하 唐晉)으로 하였다. 

그는 당진의 부고에 있는 재물을 주나라로 실어가 주리왕(周釐왕)에게 헌납했다. 리왕은 그 뇌물을 탐하여 마침내 칭대를 명하여 그의 일군(一軍)을 당진후(唐晉侯)로 삼았다. 칭대는 모두 39년동안 재위하다가 죽고 그 아들 궤제(佹諸)가 즉위하였는데 그가 진헌공(晉憲公)이다.

 

 

 

  

獻公忌桓莊之族,慮其爲患。大夫士蔿獻計散其黨,因誘而盡殺之。獻公嘉其功,命爲大司空。因使大城絳邑,規模極其壯麗,比於大國之都。先獻公爲世子時,娶賈姬爲妃,久而無子。又娶犬戎主之姪女曰狐姬,生子曰重耳,小戎允姓之女,生子曰夷吾。當武公晚年,求妾於齊,齊桓公以宗女歸之,是爲齊姜。時武公已老,不能御女。齊姜年少而美,獻公悅而烝之,與生一子,私寄養於申氏,因名申生。獻公即位之年,賈姬已薨,遂立齊姜爲夫人。時重耳已二十一歲矣,夷吾年亦長於申生。因申生是夫人之子,論嫡庶不論長幼,乃立申生爲世子。以大夫杜原款爲太傅,大夫里克爲少傅,相與輔導世子。齊姜又生一女而卒。獻公復納賈姬之娣曰賈君,亦無子。因以齊姜所生之女,使賈君育之。獻公十五年,興兵伐驪戎。驪戎乃請和,納其二女於獻公,長曰驪姬,次曰少姬。那驪姬生得貌比息嬀,妖同妲已,智計千條,詭詐百出。在獻公前,小忠小信,貢媚取憐。又時常參與政事,十言九中。所以獻公寵愛無二,一飮一食,必與之俱。踰年,驪姬生一子,名曰奚齊。又踰年,少姬亦生一子,名曰卓子。獻公旣心惑驪姬,又喜其有子,遂忘齊姜一段恩情,欲立驪姬爲夫人。使太卜郭偃,以龜卜之。

郭偃獻兆,其繇曰:

專之渝,攘公之羭。

一薰一蕕,十年尙有臭!

 

繇 : 점괘 주/말미암을 유/부역요.   渝 : 달라질 투(유). 달라지다. 물이 흐려지다. 풀어지다. 넘치다. 그렇다. 발어사. 땅(물)이름.

羭 : 검은 암양 유. 검은 암양. 검은 양의 암컷. 아름답다.          蕕 ; 누린내풀 유. 

 

 

 

헌공은 환숙(桓叔)과 장백(莊伯)의 후손들을 꺼렸는데 그들이 난을 일으킬까 근심하여 병이 날 지경이었다.  대부 사위(士蔿)가 계책을 바쳐 그 무리들을 분산시킨 후 유인하여 모조리 살해했다. 헌공이 그의 공을 기려 대사공(大司公)을 삼았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강읍(絳邑)성을 대대적으로 확장시켜 그 규모의 장려함이 극에 달하여 대국의 도읍에 비견할만 하였다. 

앞서 헌공이 세자로 책봉되었을 때 가희(賈姬)를 비로 맞이하였으나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다. 또 견융주(犬戎主)의 질녀(姪女)를 맞이하여 호희(狐姬)라 하였는데 아들을 낳아 중이(重耳)라 하였고, 소융(小戎)의 윤성(允姓)씨의 딸을 취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오(夷吾)라 하였다.

당시 헌공의 부친인 무공은 만년(晩年)인데도 제나라에 첩을 요구하여 제환공이 종가집 딸을 시집보냈는데 이를 제강(齊姜)이라 하였다.

당시 무공은 너무 늙어 제강을 취하지 못했으나, 제강이 나이가 젊고 미색이 있어 헌공이 좋아하고 범하여 제강은 그와의 사이에 아들을 낳게 되었다.  은밀히 신씨(申氏)에게 맡겨 길렀는데  그때문에 이름을 신생(申生)이라고 했다. 

헌공이 즉위한 해에 가희는 이미 죽어 제강이 부인이 되었다. 그때 중이는 이미 21세였고 이오의 나이 역시 신생보다 많았다. 신생이 부인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적서(嫡庶)를 논하고 나이를 불문하여 신생을 세자로 세웠다.  대부 두원관(杜原款)을 태부(太傅), 대부 이극(里克)을 소부(少傅)로 삼아 함께 세자를 보필하고 가르치게 하였다.  제강은 또 딸을 낳고 죽었다.  

헌공은 다시 가희의 동생을 맞아들여 가군(賈君)이라 하였으나 역시 소생이 없었다.  제강의 딸을 가군에게 기르게 하였다. 

헌공 15년 군사를 일으켜 여융(驢戎)을 쳤는데 여융에서는 강화를 청하면서 그 두 딸을 헌공에게 바쳤다. 큰 딸은 여희(驪姬)라 하고, 작은 딸은 소희(少姬)라고 하였는데 여희는 용모가 아름다워 식규(息嬀)에 비견되고 요염하기가 달기(妲己)와  같았으며 재치가 있고 계략이 천가지가 넘고 거짓말이 백출(百出)하였다. 헌공 앞에서는 충성과 신의가 적다며 온갖 교태로 사랑을 독차지 했다.   

또 기회있을 때마다 항상 정사를 참견하여 열 마디를 말하면 아홉은 들어주었다. 헌공의 총애가 둘도 없을 만큼 대단하여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을 때에도 반드시 그녀와 함께 하였다.  몇년이 지나자 여희는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해제(奚齊)라고 하였다. 또 몇년이 지나자 소희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탁자(卓子)라고 하였다. 

헌공은 이미 여희에게 푹 빠져 있었고 또 그 아들도 좋아하여 마침내 제강에 대한 일단의 은정을 잊고 여희를 부인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태복(太卜)  곽언(郭偃)에게 점을 치도록 하여 거북으로 점을 쳤다. 곽언이 점상(占象)을 바쳤는데 점괘는 다음과 같았다.

 

마음대로 하면  어지러워지고,                       專之渝,

공의 아름다움을 빼앗기리라.                        攘公之羭。

한번은 향기, 한번은 악취.                            一薰一蕕,

10년이 지나도 냄새가 가시지 않으리라.          十年尙有臭!

 

 

 

 

獻公曰:「何謂也。」 郭偃曰:「渝者,變也。意所專, 尙心亦變亂,故曰 『專之渝』。攘,奪也。羭,美也。心變則美惡倒置,故曰 『攘公之羭』。草之香者曰薰,臭者日蕕。香不勝臭,穢氣久而未消,故曰 『十年尙有臭』也。」 獻公一心溺愛驪姬,不信其言,更命史蘇筮之。得《觀卦》之六二,爻詞曰:「闚觀利女貞。」 獻公曰:「居內觀外,女子之正。吉孰大焉?」卜偃曰:「開闢以來,先有象,後有數。龜,象也。筮,尊也。從筮不如從龜。」 史蘇曰:「禮無二嫡,諸侯不再娶,所謂觀也。繼稱夫人,何以爲正?不正,何利之有?以《易》言之,亦未見吉。」 獻公曰:「若卜筮有定,盡鬼謀矣。」 竟不聽史蘇卜偃之言。擇日告廟,立驪姬爲夫人,少姬封爲次妃。史蘇私謂大夫里克曰:「晉國將亡,奈何?」 里克大驚,問曰:「亡晉者何人?」 史蘇曰:「其驪戎乎?」 里克不解其說。史蘇曰:「昔夏桀伐有施,有施人以女妺喜歸之。桀寵妹喜,遂以亡夏。殷辛伐有蘇,有蘇氏以女妲己歸之。紂寵妲己,遂以亡殷。周幽王伐有褒,有褒人以女褒姒歸之。幽王寵褒姒,西周遂亡。今晉伐驪戎而獲其女,又加寵焉,不亡得乎?」 適太卜郭偃亦至,里克述史蘇之言。郭偃曰:「晉亂而已,亡則未也。昔唐叔之封,卜曰:『尹正諸夏,再造王國。』 晉業方大,何亡之患?」 里克曰:「若亂當在何時?」 郭偃曰:「善惡之報,不出十年。十者;數之盈也。」 里克識其言於簡。

 

觀卦 : 주역 64괘 중 20 번째인 풍지관(風地觀)의 곤하(坤下) 손상(巽上) 괘. 

        관괘에서 ‘관(觀)’은 ‘위에서 아래로 보여준다’는 뜻과 ‘아래에서 위를 본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六二爻 : <六二> 闚觀利貞女. 즉 엿보는 것이다. 여자에게 있어서 마음이 곧으면 이로우리라.

             <象曰> 闚觀女貞亦可醜也. 엿보는 것이니 여자에게 정조가 있어야 한다 함은 역시 추하게 여겨야 한다는 뜻이다.

筮 : 바로 산가지와 주역에 의해 치는 점을 말한다.50개의 산가지를 일정한 방식으로 조작하고 거기서 얻어진 점괘를 주역이라는 책에

     의지하여 해석해 내는 것이 바로 '서(筮)이다.  주역점(周易占)을 칠 때 산가지나 서죽을 사용하게 되니 이것이 시초점(蓍草占)이다.

 

☞ 筮,尊也.

    주역에 대한 지식이 없어 이에 대한 해석이 난해하다. 筮는 그런대로 이해가 가지만 이를 설명하는 尊에 대해서는 아무리 해도 알

    수가 없다. 글을 옮길 때의 誤記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문맥상 數로 연관지어 번역한다.

     

 

 

헌공이 물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곽언이 대답했다. "투(渝)라는 것은 변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마음대로 한다면 반드시 마음도 어지러워지니 그러므로 '마음대로 하면 마음도 어지러워진다.' 는 것입니다. 양(攘)은 빼앗는 것(奪)이며, 유(羭)는 아름다움입니다. 마음이 변하면 아름다움이 추한 것으로 뒤집힙니다. 

그러므로 '주공의 아름다움을 빼앗아간다.'고 한 것입니다. 풀이 향기로운 것을 훈(薰)이라 하고 악취가 나는 것을 유(蕕)라고 합니다. 향기는 악취를 이길 수 없으며, 더러운 기운은 오래가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10년이 지나도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헌공은 온통 여희에게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믿지 않고, 다시 태사(太史)  소(蘇)에게 명하여 점을 치게 하였다. 

관괘(觀卦)의 육이효(六二爻)를 얻었는데 효사(爻詞)는 다음과 같았다.

"엿보는 것은 여자의 정절을 이롭게 한다."

헌공이 물었다. "궁안에 살면서 밖의 세상을 보는 것은 여자로서 올바르다고 본다.  길하기로는 어느 것이 더 좋은가?"

태복 곽언이 말했다. "하늘과 땅이 열린 이래 먼저 형상(形象)이 생겼고 후에 수(數)가 생겼습니다. 거북은 형상이며 서(筮)는 수인데 서를 따르는 것은 거북점을 따르는 것만 못합니다." 

태사 소가 말했다. "예(禮)에 적실(嫡室 : 본처)는 둘을 두지 못하므로 제후는 두번 정실을 두지 못합니다. 이른 바 관괘(觀卦)는 엿본다는 것인데 이어서 부인을 취하는 것이 어찌 바르겠습니까? 바르지 않는데 무슨 이로움이 있겠습니까? 역에서도 말하기를 또한 '보지 못하니 길하다.' 고 했습니다."

헌공이 말했다. "거북점과 주역점이 정해진 것이라면 모두 귀신의 계책일 뿐이다."

마침내 소와 복언의 간언을 물리치고 길일을 택하여 종묘에 고하고 여희를 부인으로 삼고 소희를 차비로 삼았다.

태사 소가 은밀히 대부 이극(里克)에게 말했다. "당진이 망하게 되었는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극이 놀라 물었다. "당진을 망하게 하는 자가 누굽니까?"

태사 소가 대답했다. "바로 여융(驪戎)입니다."

이극이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니 태사 소가 말했다. "옛날 하나라 걸왕이 유시(有施)를 쳤을 때 유시 사람이 딸 말희(妺姬)를 걸왕에게 바쳤습니다. 걸왕은 말희를 총애하였다가 하나라가 망했습니다. 은나라 주왕(紂王) 신(辛)은 유소(有蘇)를 쳤고 유소씨는 그 딸 달기(妲己)를 바쳤으며, 주왕은 달기를 총애하여 마침내 은나라를 망하게 하였습니다.  주나라 유왕(幽王)은 유포(有褒)를 쳤고 유포 사람은 포사를 보냈으며, 유왕이 포사를 총애하다가 서주를 망하게 하였습니다. 지금 당진에서는 여융을 친 후 그 딸들을 취하여 매우 총애하고 있으니 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침 태복 곽언도 와서 이극이 태사 소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곽언이 말했다. "당진의 변란은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은 망하지 않습니다. 옛날 당숙(唐叔)이 봉해졌을 때 점괘가 '하나라를 바로잡아 왕국을 다시 일으키리라.'고 하였습니다.  당진의 패업(伯業)이 크게 일어날 것인데 어찌 망할 것이라고 걱정하십니까?"

이극이 물었다. "난이 일어난다면 언제 쯤입니까?"

곽언이 대답했다. "선악의 응보는 10년이면 나타나지 않는 법이 없습니다.  10이라는 숫자는 수가 가득 찬 것입니다."

이극은 그 말을 죽간에 기록했다.

 

 

 

  

再說獻公愛驪姬,欲立其子奚齊爲嗣。一日,與驪姬言之,  驪姬心中甚欲。只因申生已立做世子,無故更變,恐群臣不服,必然諫沮。又且重耳夷吾,與申生相與友愛,三公子俱在左右,若說而不行,反被提防,豈不誤事。乃跪而對曰:「太子之立,諸侯莫不聞。且賢而無罪,君必以妾母子之故,欲行廢立,妾寧自殺!」 獻公以爲眞心,遂置不言。獻公有嬖幸大夫二人:曰梁五東關五,並與獻公察聽外事,挾寵弄權,晉人謂之 「二五」。又有優人名施者,少年美姿,伶俐多智,能言快語,獻公尤嬖之,出入宮禁,不知防範。驪姬遂與施私通,情好甚密。因告以心腹之事,謀離間三公子,徐爲奪嗣之計。優施爲之畫策:「必須以封疆爲名,使三公子遠遠出鎮,然後可居中行事。然此事又必須外臣開口,方見忠謀。今『二五』用事,夫人誠以金幣結之,俾彼相與進言,則主公無不聽矣。」 驪姬乃出金帛付優施,使分送「二五」。優施先見梁五曰:「君夫人願交懽於大夫,使施致不腆之敬。」 梁五大驚曰:「君夫人何須於我?必有囑也。子不言,吾必不受。」 優施乃盡以驪姬之謀告之。梁五曰:「必得東關為助乃可。」 施曰:「夫人亦有饋,如大夫也。」 於是同詣東關五之門,三人做一處商議停當。

 

 

 

헌공은 여희를 총애하여 여희의 아들 해제로 후사를 삼으려고 하였다. 하루는 여희에게 그 말을 하였는데 여희는 매우 탐이 났으나, 다만 신생이 이미 세자로 책봉되어있고 잘못도 없는데 세자를 바꾸려고 하면 신하들이 따르지 않고 반드시 간하여 저지하려고 할까 두려웠다. 또 중이와 이오가 세자와 매우우애가 깊고 세 공자가 모두 좌우에 있으므로, 만약 말을 꺼내면 행하지 못하도록 오히려 그들이 막게 될 것이니 어찌 일을 그르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태자를 이미 세워 제후들이 알고 있습니다. 또 어질고 허물이 없는데 주군께서 꼭 첩의 모자때문에 세자를 폐하고 다시 세우려 하신다면 첩은 차라리 죽겠습니다!"

헌공은 진심으로 여기고 내버려 두고는 말하지 않았다. 

헌공은 대부 두 사람을 총애하였는데 양오(梁五)와 동관오(東關五)로 헌공에게 외부의 일을 살펴 일러바치며 총애를 믿고 정권을 농락하여 당진 사람들은 그들을 이오(二五)라 불렀다.  또 배우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름을 시(施)라고 하고 나이가 젊고 자태가 아름다웠고 영리하며 재치가 있었고 말을 시원시원하게 하여 헌공이 매우 총애하였다. 그는 궁을 출입하는데 법도상 출입을 금하는 것도 모르고 마음대로 다녔다.  여희가 마침내 시와 사통하여 그 정분이 매우 두터웠다. 여희는 그에게 마음 속에 두고 있는 일을 알리고 세 공자 사이를 이간할 것을 모의하고 서서히 세자의 자리를 빼앗을 계책을 행하기로 했다.    

배우 시가 그녀에게 계책을 냈다. "반드시 땅을 봉지를 주어 명분을 삼아야 합니다. 세 공자로 하여금 멀리 변방의 진영으로 나가게 하여 그 곳에서 지내게 한 후라야 일을 거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도 반드시 외신(外臣)의 입을 빌려야 하므로 믿고 함께 도모할 만한 자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오(二五), 즉 양오와 동관오를 그 일에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부인께서는 금과 예물을 써서 그들과 결탁한 다음 그들로 하여금 주군께 진언하게 한다면 주공께서 듣지 않으실 수 없을 것입니다."

여희는 금과 비단을 배우 시에게 내어주고 이오(二五)에게 나누어 보내게 했다. 

시는 먼저 양오를 만나 말했다. "군부인께서 대부와 교분을 나누시기를 원하시고 저로 하여금 변변치 않으나 경의를 표하게 하셨습니다."

양오가 크게 놀라 말했다. "군부인께서는 하필이면 나에게 선물을 보내신 것인가? 반드시 부탁이 있을 것이다. 그대가 말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네."

그러자 시는 여희가 도모하는 바를 모두 말해 주었다.

양오가 말했다. "반드시 동관오의 도움을 얻어야 할 것이네."

시가 말했다. "부인께서 또 선물을 준비하시고 대부에게 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함께 동관오의 집에 가서 세 사람이 함께 상의하여 추진하기로 하였다.

 

 

  

次日,梁五進言於獻公曰:「曲沃始封之地,先君宗廟之所在也。蒲與屈,地近戎狄,邊疆之要地也。此三邑者,不可無人以主之。宗邑無主,則民無畏威之心;邊疆無主,則戎狄有窺伺之意。若使太子主曲沃,重耳夷吾,分主蒲屈,君居中制馭,此磐石之安矣。」 獻公曰:「世子出外可乎?」 東關五曰:「太子,君之貳也。曲沃,國之貳也。非太子其誰居之?」 獻公曰:「曲沃則然矣。蒲屈乃荒野之地,如何可守?」 東關五又曰:「不城則爲荒野,城之即爲都邑。」 二人又齊聲贊美曰:「一朝而增二都,內可屛蔽封內,而外可開拓疆宇,晉自此益大矣!」 獻公信其言,使世子申生居曲沃,以主宗邑,太傅杜原款從行。使重耳居蒲,夷吾居屈,以主邊疆。狐毛從重耳於蒲,呂飴甥從夷吾於屈。又使趙夙爲太子城曲沃,比舊益加高廣,謂之新城。使士蒍監築蒲屈二城。士蔿聚薪築土,草草完事。或言:「恐不堅固。」 士蔿笑曰:「數年之後,此爲仇敵,何以固爲?」

 

因賦詩曰:

狐裘尨茸,

一國三公,

吾誰適從?

 

草草 : 간략하게, 대충대충. 적당히.

 

 

다음 날, 양오는 헌공에게 진언했다. "곡옥은 처음 봉지로 받은 땅이라 선군의 종묘가 있는 곳입니다.  또 포읍(蒲邑)과 굴읍(屈邑)은 융적(戎狄)에 가까워 변방의 요지입니다. 이 세 읍은 다스리는 사람이 없으면 안되는 곳입니다.  종읍(宗邑)을 다스리는 사람이 없으면 백성들이 나라의 위엄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되고, 변방을 다스리는 사람이 없다면 융적이 나라를 엿볼 뜻을 갖게 될 것입니다. 태자로 하여금 곡옥을 다스리게 하시고 중이와 이오로 하여금 포읍과 굴읍을 나누어 다스리게 하시어 주군께서 가운데에서 통제하신다면 이는 반석과 같이 안정될 것입니다."

헌공이 물었다. "세자가 외지에 나가도 되는가?" 

동관오가 대답했다. "태자께서는 군주의 다음가는 자리이며 곡옥은 도읍의 다음 가는 곳이니 태자가 아니면 누가 다스리겠습니까?" 

헌공이 다시 물었다. "곡옥은 그렇다 하고, 포읍과 굴읍은 황량한 곳인데 어떻게 지킬 수 있는가?"

동관오가 또 대답했다. "성이 없으면 황야이지만, 성을 쌓게 되면 도읍이 됩니다."

두 사람이 또 이구동성으로 칭찬하며 말했다. "하루아침에 도읍 둘이 늘고, 안으로 봉지 안을 막으며, 밖으로는 영토를 개척할 수 있다면 당진은 이로부터 더욱 커질 것입니다."

헌공이 그 말을 믿고 세자 신생을 곡옥에 머무르게 하여 종읍을 다스리게 하고 태부 두원관(杜原款)이 따라가게 하였다. 또 중이는 포읍에서 머물고 이오는 굴읍에서 머무르며 변방을 다스리게 하였다.  호모(狐毛)는 중이를 따라 포읍에 가고, 여이생(呂飴甥)은 이오를 따라 굴읍에 가도록 했다. 또 조숙으로 하여금 태자를 위해 곡옥에 성을 쌓고 전에 비해 더욱 높고 넓게 확장하여 신성(新城)이라 하였다. 

또 사위(士蔿)로 하여금 포읍과 굴읍의 두 곳에 성을 쌓는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  사위는 풀을 모아 흙을 쌓으며 대충 일을 마쳤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성이 견고하지 않아 두렵습니다."

사위가 웃으며 말햇다. "몇년 후에 이곳은 원수가 되어 적의 땅이 될 것인데 어찌 견고하게 만들겠소?"

그리고 시를 지었다.

 

여우가죽 옷이 어지러우니,

한 나라에 세 명의 공이 있어,

나는 누구를 따라야 하는가?

 

 

 

狐裘,貴者之服。尨茸,亂貌。言貴者之多,喻嫡庶長幼無分別也。士蔿預知驪姬必有奪嫡之謀,故爲此語。申生與二公子,俱遠居晉鄙。惟奚齊卓子,在君左右。驪姬益獻媚取寵,以蠱獻公之心。

 

髯翁有詩云:

女色從來是禍根,

驪姬寵愛獻公昏。

空勞畚築疆場遠,

不道干戈伏禁門。

 

時獻公新作二軍,自將上軍。使世子申生將下軍,率領大夫趙夙畢萬攻狄、霍、魏三國,滅之。以狄賜趙夙,魏賜畢萬爲采邑。太子功益高,驪姬忌之益甚,而謀愈深且毒矣。此事擱過一邊。

 

畚 : 삼태기 분. 

 

 

여우가죽 옷은 고귀한 사람이 입는 옷이다.  방용(尨茸)은 어지러운 모양이다.  고귀한 사람이 많으니 적서(嫡庶)와 장유(長幼)가 분별이 없음을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사위는 여희가 반드시 적자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도모할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말을 한 것이다.  신생과  두 공자는 모두 멀리 떨어진 진나라의 변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오직 해제와 탁자만 군주의 곁에 두었을 뿐이었다. 

여희는 더욱 헌공에게 교태를 부려 총애를 받고 헌공의 마음을 벌레가 갉아먹듯 이지러지게 하였다. 

 

염옹이 시를 지었다.

 

여색은 예로부터 화근인데,

헌공은 어리석어 여희를 총애하였네.

먼 변방에 부질없이 힘들여 성을 쌓았지만,

대궐 에 병화(兵禍)가 잠복해 있음을 말하지 않는구나.

 

그 때 헌공은 새롭게 군제를 2군으로 개편하여 스스로 상군(上軍)의 장수가 되고, 세자 신생으로 하여금 하군(下軍)의 장수가 되어 대부 조숙(趙夙), 필만(畢萬)을 거느리고 적(狄), 곽(霍), 위(魏) 세 나라를 쳐서 멸망시켰다.  적은 조숙에게 하사하고 위는 필만에게 하사하여 채읍으로 삼게 했다. 태자의 공은 더욱 높아져 여희의 시샘이 더욱 심해져 음모가 더욱 잔인해지고 독해졌다. 이 일은 잠시 멈추고 지나친다.

  

 

 

卻說楚熊囏熊惲兄弟,雖同是文夫人所生,熊惲才智勝於其兄,爲文夫人所愛,國人亦推服之。熊囏旣嗣位,心忌其弟,每欲因事誅之,以絶後患。左右多有爲熊惲周旋者,是以因循不決。熊囏怠於政事,專好遊獵,在位三年,無所施設。熊惲嫌隙己成,私畜死士,乘其兄出獵,襲而殺之,以病薨告於文夫人。文夫人雖則心疑,不欲明白其事,遂使諸大夫擁立熊惲爲君,是爲成王。以熊囏未嘗治國,不成爲君,號爲「堵敖」,不以王禮葬之。任其叔王子善爲令尹,即子元也。子元自其兄文王之死,便有篡立之意。兼慕其嫂息嬀,天下絶色,欲與私通。況熊囏熊惲二子,年齒俱幼,自恃尊行,全不在眼,只畏大夫鬥伯比正直無私,且多才智,故此不敢縱肆。至是,周惠王十一年,鬥伯比病卒。子元意無忌憚,遂於王宮之旁,大築館舍,每日歌舞奏樂,欲以蠱惑文夫人之意。文夫人聞之,問侍人曰:「宮外樂舞之聲何來?」 侍人曰:「此令尹之新館也。」 文夫人曰:「先君舞矛,以習武事,以征諸侯,是以朝貢不絶於庭。今楚兵不至中國者十年矣。令尹不圖雪恥,而樂舞於未亡人之側,不亦異乎?」 侍人述其言於子元。子元曰:「婦人尙不忘中原,我反忘之;不伐鄭,非丈夫也。」 遂發兵車六百乘,自爲中軍,鬥御疆鬥梧建大旆爲前隊,王孫游王孫嘉爲後隊。浩浩蕩蕩,殺奔鄭國而來。

 

囏 : 어려울 간. 외롭다. 가난하다. 괴롭다.     浩浩蕩蕩 : 끝없이 넓다. 기세있고 힘차다. 

 

 

한편 초나라 웅간, 웅운 형제는 비록 모두 문부인(文夫人)소생이라 해도 웅운은 재주와 지혜가 그 형보다 나아서 문부인의 사랑을 받았고 백성들도 또한 받들어 복종했다.  웅간은 이미 세자가 되었으나 그 동생을 시기하여 항상 트집을 잡아 동생을 죽이고 후환을 없애려고 하였다.  그러나 주위에 웅운을 위하여 힘을 써 주는 자가 많아서 결단 내리기를 주저했다.  웅간은 정사를 게을리하고 오로지 사냥나가는 것만을 좋아하여 재위 3년간 베푼 것이 없었다.  웅운은 이미 형제간의 사이가 나빠졌다고 생각하며 은밀히 결사대를 길렀는데 형이 사냥을 나간 틈을 타서 형을 습격하여 죽이고 문부인에게는 병으로 죽었다고 하였다. 문부인은 의혹이 있었으나 그 일을 밝히려고는 하지 않고 마침내 대부들로 하여금 웅운을 군주로 옹립하도록 하였는데 그가 바로 성왕(成王)이다.  웅간은 나라를 다스린 적이 없어서 군주가 되지 못하고 시호를 도오(堵敖)라고 하고 장례도 왕의 예로 하지 않았다. 

그 숙부(叔父)인 왕자 선(善)을 영윤으로 삼았는데 그가 곧 자원(子元)이다.  자원은 형인 문왕이 죽었을 때부터 찬역할 뜻을 품었었다. 아울러 형수인 식규(息嬀 : 文夫人)를 천하절색이라 여겨 사통하려고 하였다.  두 아들 웅간, 웅운이 모두 나이가 어려 자신이 높은 항렬임을 믿고 전혀 조카들을 안중에 두지 않았으나, 다만 대부 투백비(鬥伯比)가 바르고 곧아 사사로움이 없으며 또 재주가 많고 지혜가 많은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감히 마음대로 방자하게 굴지 못했다.

주 혜왕 11년, 투백비가 병으로 죽었다. 자원은 거리낌이 없어져 마침내 왕궁 옆에 관사를 크게 짓고 매일 가무와 음악을 연주하며 문부인의 마음을 미혹하려고 하였다. 

문부인이 듣고 시종에게 물었다. "궁밖에서 음악과 춤추는 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가?"

시종이 대답했다. "그것은 영윤의 신관에서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문부인이 말했다. "선군께서는 창을 들고 춤추며 무예를 익혀 제후들을 정벌하므로써 조정에 조공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었다. 지금 초나라 병사가 중원에 이르지 못한 것이 10년이나 되었다.  영윤은 치욕을 설욕할 생각은 하지 않고 미망인의 근처에서 음악과 춤을 즐기고 있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시종이 자원에게 그 말을 전하자 자원이 말했다. "부인께서 아직도 중원을 잊지 않고 계신데 나는 오히려 중원을 잊었구나. 정나라를 치지 않는다면 장부가 아니다."

마침내 병거 600승을 진발하여 스스로 중군이 되고 투어강(鬥御疆), 투오(鬥梧)로 하여금 대장으로 삼아 전대로 삼으며, 왕손 유(游), 왕손 가(嘉)를 후대로 삼았다. 기세도 당당하게 정나라를 향해 달려갔다. 

     

 

 

 

鄭文公聞楚師大至,急召百官商議。堵叔曰:「楚兵眾盛,未可敵也,不如請成。」 師叔曰:「吾新與齊盟,齊必來救,且宜堅壁以待之。」 世子華,年少方剛,請背城一戰。叔詹曰:「三人之言,吾取師叔。然以臣愚見,楚兵不久自退。」 鄭文公曰:「令尹自將,安肯退乎?」 叔詹曰:「自楚加兵人國,未有用六百乘者。公子元操必勝之心,欲以媚息夫人耳。夫求勝者,亦必畏敗。楚兵若來,臣自有計退之。」 正商議間,諜報「楚師斬桔柣關而進,已破外郭,入純門,將及逵市。」 堵叔曰:「楚兵偪矣,如行成不可,且奔桐邱以避之。」 叔詹曰:「無懼也!」 乃使甲士埋伏於城內,大開城門,街市百姓來往如常,並無懼色。鬥御疆等前隊先到,見如此模樣,城上絕無動靜,心中疑惑;謂鬥梧曰:「鄭閒暇如此,必有詭計,哄吾入城。不可輕進,且待令尹來議之。」 遂離城五里,扎住營寨。須臾子元大兵已到,鬥御疆等稟知城中如此。子元親自登高阜處以望鄭城。忽見旌旗整肅,甲士林立。看了一回,嘆曰:「鄭有『三良』在,其謀叵測!萬一失利,何面目見文夫人乎?更探聽虛實,方可攻城也。」 次日,後隊王孫游遣人來報說:「諜探得齊侯國宋魯二國諸侯,親率大軍,前來救鄭。鬥將軍等不敢前進,特候軍令,準備迎敵。」 子元大驚,謂諸將曰:「諸侯若截吾去路,吾腹背受敵,必致損折。吾侵鄭及於逵市,可謂全勝矣。」 乃暗傳號令,人銜枚,馬摘鈴,是夜拔寨都起。猶恐鄭兵追趕,命勿撤軍幕,仍建大旆,以疑鄭人。大軍潛出鄭界,乃始鳴鐘擊鼓。唱凱歌而還。先遣報文夫人曰:「令尹全勝而回矣!」 夫人謝曰:「令尹若能殲敵成功,宜宣示國人,以彰明罰,告諸太廟,以慰先王之靈。未亡人何與焉?」 子元大慚。楚王熊惲,聞子元不戰而還,自是有不悅之意。

 

叵 : 어려울 파. 어렵다. 불가함. 마침내. 

 

 

정문공은 초나라의 대군이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백관을 소집하여 상의했다. 

도숙(堵叔)이 말했다. "초나라 병사가 많고 기세가 성하여 대적할 수 없습니다. 화의를 청하는 것이 낫습니다."

사숙이 말했다. "우리나라는 새로이 제나라와 동맹을 맺어 제나라가 반드시 와서 구원할 것이니 마땅히 성을 견고히 지키며 기다려야 합니다."

세자 화(華)는 나이가 젊어 기세가 강했는데 성을 나가 싸우고자 했다.

숙첨(叔詹)이 말했다. "세 사람의 말 중에 나는 사숙의 의견에 동조합니다. 그러나 신의 어리석은 의견으로 보건대 초나라 군대가 오래지 않아 스스로 물러갈 것입니다."

정문공이 물었다. "영윤이 스스로 장수가 되어 침공했는데 어찌 물러갈 것이라고 하시오?"

숙첨이 대답했다. "초나라에서 국력을 키워온 이래 병거를 600승이나 동원한 적은 없었습니다. 영윤 자원이 반드시 이기려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식부인(息嬀)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일 뿐입니다. 무릇 승리하려는 자는 반드시 패배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초나라 군대가 온다면 신 스스로 물리칠 계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참 상의 중일 때 첩보가 들어왔다. "초나라군이 길질문(桔桎門)의 빗장을 부수고 진격하여 이미 외곽을 돌파하였으며 순문(純門)으로 들어와 큰 저자거리에 곧 도착할 것입니다." 

도숙이 말했다. "초나라 군대가 핍박하니 화의하는 것이 불가하다면  잠시 동구(桐邱)로 피하십시오."

숙첨이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무장한 병사들을 성내에 매복시킨 후 성문을 활짝열고 저자거리에 백성들이 평상시와 다름없이 오가게 하며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도록 하였다.  투어강들의 전대가 먼저 도착하여 이와같은 모습을 보았는데 성위에서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마음 속에 의혹이 일어 투오에게 말했다. "정나라에서 이와같이 한가로운 모습이니 반드시 술수를 꾸며 우리를 유인하는 것이오. 경솔하게 진격하지 말고 영윤이 오시기를 기다려 상의하는 것이 좋겠소."

마침내 성으로부터 5리를 물러나 영채를 세웠다.  얼마 후 자원의 대군이 도착하자 투어강등이 성안의 동태가 이러하다는 것을 알렸다.

자원이 친히 높은 언덕에 올라 정나라 도성을 살폈다. 문득 정기가 정돈되어 엄숙하게 늘어서 있고  무장한 병사들이 숲처럼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원은 한 번 살펴보고는 탄식하며 말했다. "정나라에 삼량(三良)이 있다더니 그 계책을 헤아리기 어렵구나! 만일 승리하지 못한다면 무슨 면목으로 문부인을 볼 것인가! 다시 허실을 탐지하여 성을 치는 것이 좋겠다." 

다음날 후대의 장수 왕손 유가 사람을 보내 보고했다. "첩자들이 탐지한 바에 의하면 제나라 환공이 송(宋), 노(魯) 두나라의 제후와 함께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오고 있습니다. 투장군등은 감히 전진을 하지 못하고 특별히 군령을 기다리며 적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자원이 크게 놀라 장수들에게 말했다. "제후들이 우리가 물러갈 길을 끊는다면 우리는 앞뒤로 적을 맞이하게 되어 반드시 패배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정나라를 쳐서 도읍의 저자거리에까지 이르렀으니 완전한 승리라고 할만하다."

그리하여 은밀히 영을 내려 사람마다 재갈을 물리고 말에서 방울을 떼어내게 하고 그날 밤으로 영채를 뽑아 모두 철수했다. 행여 정나라 병사들이 추격해 올까 두려워 군막을 철거하지 말도록 하고 대패기(大將旗)도 세워둔 채 떠나 정나라 병사들이 의혹에 빠지게 했다.

초나라 대군이 은밀히 정나라 경계를 벗어나자 비로소 종을 울리고 북을 치며 개선가를 부르며 돌아갔다. 

먼저 문부인에게 사람을 보내 보고했다. "영윤께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 회군하십니다."

부인이 사례했다. "영윤께서 적을 섬멸하여 공을 세웠다면 마땅히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고 죄를 밝혀 태묘에 고하여 선왕의 영령을 위로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미망인에게 먼저 알리십니까?"

지원은 크게 부끄러웠다.  초왕 웅운은 자원이 싸우지도 않고 돌아왔다는 보고를 받고 이때부터 좋지 않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卻說鄭叔詹親督軍士巡城,徹夜不睡。至曉,望見楚幕,指曰:「此空營也,楚師遁矣。」 眾猶未信,問:「何以知之?」 叔詹曰:「幕乃大將所居,鳴鉦設儆,軍聲震動。今見群鳥棲噪於上,故知其爲空幕也。吾度諸侯救兵必至,楚先聞信,是以遁耳!」 未幾,諜報:「諸侯救兵果到,未及鄭境,聞楚師已去,各散回本國去了。」 眾始服叔詹之智。鄭遣使致謝齊侯救援之勞。自此感服齊國,不敢懷貳。

 

鉦 : 징 정.        儆 : 경계할 경. 경계하다. 위급한 일.     噪 : 시끄러울 조(소). 시끄러울 조, 새가 시끄럽게 지저귀다.

 

 

 

한편, 정나라 숙첨은 친히 군사들을 독려하며 성을 순시하고 밤에도 눈을 붙이지 않았다.

새벽이 되자 초군 막사를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은 빈 영채다. 초나라 군사들이 떠났구나."

군사들이 믿지 않고 물었다. "어떻게 그것을 아십니까?"

숙첨이 말했다. "막사는 대장이 머무는 곳이라 징을 설치하고 징을 울려 경계하기도 하고 군의 함성이 진동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 보니 막사 위에 새들이 노닐며 지저귀고 있는데, 그 때문에 그 막사가 비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헤아리건대 제후들의 구원병이 반드시 도착하였을 것이고 초군에서 먼저 그 소식을 듣고 떠난 것일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첩보가 들어왔다. "제후들의 구원병이 과연 이르렀는데 정나라 국경에 도착하기도 전에 초나라 군대에서 듣고 이미 떠났으며 제후들은 그 사실을 알고 해산하여 각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군사들이 비로소 숙첨의 지혜에 감복했다. 정나라에서는 사자를 보내 제환공이 구원하러 왔던 노고에 대하여 사례하고 이로부터 제나라의 후의에 감복하고 감히 딴 마음을 품지 않게 되었다.

  

 

 

 

再說楚子元自伐鄭無功,內不自安,篡謀益急。欲先通文夫人,然後行事。適文夫人有小恙,子元假稱問安,來至王宮。遂移臥具寢處宮中,三日不出 , 家甲數百,環列宮外。大夫鬥廉聞之,闖入宮門,直至臥榻。見子元方對鏡整鬢,讓之曰:「此豈人臣櫛沐之所耶?令尹宜速退!」 子元曰:「此吾家宮室,與射師何與?」 鬥廉曰:「王侯之貴,弟兄不得通屬。令尹雖介弟,亦人臣也。人臣過闕則下,過廟則趨,咳唾其地,猶爲不敬,況寢處乎?且寡夫人密邇於此,男女別嫌,令尹豈未聞耶?」子元大怒曰:「楚國之政,在吾掌握,汝何敢多言!」命左右梏其手,拘於廡下,不放出宮。文夫人使侍人告急於鬥伯比之子鬥穀於菟,使其入宮靖難。鬥穀於菟密奏楚王,約會鬥梧鬥御疆及其子鬥班,半夜率甲以圍王宮,將家甲亂砍,眾俱驚散。子元方擁宮人醉寢,夢中驚起,仗劍而出。恰遇鬥班,亦仗劍而入。子元喝曰:「作亂乃孺子耶!」 鬥班曰:「我非作亂,特來誅亂者耳。」兩下就在宮中爭戰。不數合,鬥御疆鬥梧齊到。子元度不能勝,奪門欲走,被鬥班一劍砍下頭來。鬥穀於菟將鬥廉開梏放出,一齊至文夫人寢室之外,稽首問安而退。次早,楚成王熊惲御殿,百官朝見已畢,楚王命滅子元之家,榜其罪狀於通衢。

 

髯翁論公子元欲蠱文夫人之事,有詩曰:

堪嗟色膽大於身,

不論尊兮不論親。

莫怪狂且輕動念,

楚夫人是息夫人。

 

闖 : 엿볼 틈(츰). 엿보다. 말이 문을 나오는 모양. 머리를 내미는 모양. 갑자기 들어가다불쑥 들어감.

射師 : 활에 관련된 일을 하는 관리

 

 

 

초나라 자원은 정나라를 쳤으나 공을 세우지 못해 마음이 편치 않아 찬역의 음모를 더욱 서둘렀다.  먼저 문부인에게 연통한 후 대사를 거행하려고 하였다.  때마침 문부인이 대수롭지 않은 병을 앓았는데 자원은 병문안을 핑계대고 왕궁으로 들어가서는 침구를 궁중 침실로 옮기고 3일동안 나오지 않으며 가병 수 백명을 무장시켜 궁밖을 둘러싸게 하였다. 대부 투렴(鬥廉)이 그 사실을 듣고 궁문 안으로 들어가 

바로 침상으로 갔는데 자원이 막 거울을 보며 머리를 정돈하는 모습을 보고 꾸짖으며 말했다. 

"어찌 신하된 자로서 이곳에서 머리를 감고 빗질을 하고 계십니까? 영윤께서는 빨리 나가십시오." 

자원이 말했다. "이곳은 우리집안 궁실이다. 사사(射師)같은 자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투렴이 말했다. "왕과 제후의 고귀함은 형제라도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영윤께서 비록 선왕의 동생이시지만 또한 신하입니다. 신하된 자는 궁궐 앞을 지나게 되면 반드시 말에서 내리며, 종묘를 지나갈 때 달려가거나 기침하거나 침을 뱉는 행위는 불경죄나 마찬가지인데 하물며 침소가 아닙니까?  더구나 선왕의 부인의 거처가 이곳에서 매우 가깝습니다. 남녀가 유별한데도 영윤께서는 어찌 모르실 수 있습니까?"

자원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초나라의 국정이 내 손안에 있는데 네가 어찌 말이 많으냐!"

그리고 좌우에 명하여 그의 손을 묶어 궁안에 가두고 내보내지 않았다.

문부인은 시종으로 하여금 투백비의 아들 투누오토(鬥穀於菟)급히 알리게 하여 그로 하여금 궁으로 들어와 어려움을 평정하게 했다. 

투누어토는 은밀히 초왕에게 아뢰고 투오, 투어강과 그 아들 투반(鬥班)과 만나 약속한 후, 한밤중에 갑사들을 거느리고 궁궐을 포위하고 자원의 가병들을 난도질하여 죽이니 모두 놀라 흩어져 버렸다.  자원은 그때 취하여 궁녀를 안고 자다가 꿈결에 놀라 일어나 검을 들고 뛰쳐나갔다. 마침 검을 들고 들어오던 투반을 만났다.

자원이 큰 소리로 말했다. "난을 일으킨 자가 바로 어린아이로구나!"

그러자 투반이 말했다. "내가 난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특별히 난을 일으킨 자를 죽이러 온 것일 뿐이다."

두 사람이 궁안에서 싸우게 되었다. 몇 합 싸우지도 않았는데 투어강과 투오가 함께 도착했다. 자원이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문을 찾아 도망치려고 하다가 투반의 일검을 맞고 머리가 떨어졌다. 투누오토는 투렴에게 가서 밧줄을 풀어 내보냈고 일제히 문부인의 침실밖에 이르러 머리를 조아려 문안인사를 한 후 물러갔다.  

다음날 아침 조성왕 웅운은 어전에서 백관의 조현이 끝나자 초왕의 명으로 자원의 집안을 멸족시키고 그 죄상을 적은 방을 큰 거리에 붙였다.

 

염옹은 자원이 문부인의 환심을 사려고 하였던 일을 논하여 시를 지었다.

 

오오! 미색에 빠져 간이 몸보다 커져

존귀함도 형수라는 신분도 가리지 않았구나.  

미쳐서 경거망동했다고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초부인이야말로  바로 절색인 식부인이 아닌가.

 

 

 

 

卻說鬥穀於菟之祖曰鬥若敖,娶鄖子之女,生鬥伯比。若敖卒,伯比尙幼,隨母居於鄖國,往來宮中,鄖夫人愛之如子。鄖夫人有女與伯比爲表兄妹之親,自小宮中作伴遊耍,長亦不禁,遂成私情。鄖女有孕,鄖夫人方纔知覺,乃禁絕伯比,不許入宮。使其女詐稱有病,屏居一室。及誕期已滿,產下一子,鄖夫人潛使侍人用衣服包裹,將出宮外,棄於夢澤之中。意欲瞞過鄖子,且不欲揚其女之醜名也。伯比羞慚,與其母歸於楚國去訖。其時鄖子適往夢澤田獵,見澤中有猛虎蹲踞,使左右放箭,箭從旁落,一矢不中,其虎全不動撣。鄖子心疑,使人至澤察之。回報:「虎方抱一嬰兒,喂之以乳,見人亦不畏避。」 鄖子曰:「是神物,不可驚之。」 獵畢而歸,謂夫人曰:「適至夢澤,見一奇事。」 夫人問曰:「何事?」 鄖子遂將猛虎乳兒之事,述了一遍。夫人曰:「夫君不知,此兒乃妾所棄也!」 鄖子駭然曰:「夫人安得此兒而棄之?」 夫人曰:「夫君勿罪。此兒實吾女與鬥甥所生。妾恐污吾女之名,故命侍者棄於夢澤。妾聞姜嫄履巨人跡而生子,棄之冰上,飛鳥以翼覆之,姜嫄以爲神,收養成人,名之曰棄,官爲后稷,遂爲周代之祖。此兒旣有虎乳之異,必是大貴人也。」 鄖子從之,使人收回,命其女撫養。

 

耍 : 희롱할 사. 희롱하다. 재빠르다. 짓궂게 굴다. 만지다. 노름하다.    撣 : 들 탄/당길 선. 들다. 닿다. 공경하는 모양. 당기다. 물려주다.

喂 : 餵 . 餧. 두려울 위(외). 두렵다. 두려워하다. 겁내다. 먹이를 먹여 기르다. 부르는 소리. 

姜嫄 : 帝嚳의 元妃이며 周나라의 시조인 후직의 모친. <史記 周本記> <詩經 大雅/生民之什/生民> 

 

 

한편 투누오토의 조부는 투약오(鬥若敖)인데 운자(鄖子)의 딸과 결혼하여 투백비를 낳았다. 투약오가 죽었을 때 투백비는 아직 어려서, 모친을 따라가 운나라에서 살았다. 투백비는 운나라의 궁을 오가면서 지냈는데 운부인이 자식처럼 사랑했다.  운부인에게는 딸이 있어 백비와는 외사촌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짝이 되어 놀면서 서로 짓궂게 굴었는데, 장성해서도 거리낌이 없이 지내다가 마침내 정을 통하게 되었다. 운녀가 임신하고 나서야 운부인이 겨우 알게 되어 백비와 단절하게 하고 백비의 궁출입을 금했다. 그리고 딸이 병이 들었다고 사칭하고 방에서 숨어지내게 했다.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게 되자 운부인은 은밀히 시녀를 시켜 의복으로 감싼 다음 궁밖으로 나가 몽택(夢澤) 가운데에 버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남편인 운자를 속여넘기고 또 그 딸의 부정한 행실이 소문나지 않게 하려고 하였다. 백비는 부끄럽고 창피해 모친과 함께 초나라로 돌아갔다.   

그때 운자가 때마침 몽택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못 안에서 범이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좌우에 활을 쏘게 하였는데 한 발도 명중되지 않았고 그 범도 전혀 움직이거나 막지도 않았다. 운자가 심중에 의혹이 일어 사람을 시켜 못에 가서 살펴보도록 했다. 

못에 다녀온 자가 보고했다. "범이 한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고 있는데 사람을 보고도 두려워하지도 피하지도 않습니다."

운자가 말했다. "범은 신령스러운 동물이라 놀라게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사냥을 마치도 돌아가 부인에게 말했다. "몽택에 갔다가 이상한 일을 보았소."

부인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운자가 마침내 범이 아이에게 젖을 먹인 일을 모두 말해 주었다.

부인이 말했다. "부군께서는 모르시는 일이지만 그 아이는 바로 제가 버린 아이입니다."

운자가 깜짝 놀라 물었다. "부인이 어찌 그 아이를 버렸단 말이오?"

부인이 말했다. "부군께서는 탓하지 마십시오. 그 아이는 사실 우리 딸과 생질인 투백비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입니다. 저는 딸의 명예가 더럽혀지는 것이 두려워 시녀에게 명하여 몽택에 버린 것입니다. 첩이 듣기로 강원(姜嫄)이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아들을 낳아 얼음 위에 버렸더니 새들이 날개로 덮어주자 강원이 신비하게 여겨 그 아이를 거두어 키웠는데 이름을 기(棄)라 하였고 관직은 후직(后稷)이 되었으며 마침내 주나라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에게도 이미 범이 젖을 먹인 기이한 일이 있으니 반드시 대단히 존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운자가 그 말에 따라 사람을 시켜 거두어 오게 하여 딸에게 키우게 하였다.

 

 

 

 

踰年,送其女於楚,與鬥伯比成親。楚人鄉談,呼乳曰「穀」,呼虎曰「於菟」。取乳虎爲義,名其子曰穀於菟,表字子文。今云夢縣有於菟鄕,即子文生處也。穀於菟旣長,有安民治國之才,經文緯武之略。父伯比,仕楚爲大夫。伯比死,穀於菟嗣爲大夫。及子元之死,令尹官缺。楚王欲用鬥廉,鬥廉辭曰:「方今與楚爲敵者,齊也。齊用管仲甯戚,國富兵强。臣才非管寧之流明矣。王欲改紀楚政,與中原抗衡,非鬥穀於菟不可。」 百官齊聲保奏:「必須此人,方稱其職。」 楚王准奏,遂拜鬥穀於菟爲令尹。楚王曰:「齊用管仲,號爲仲父。今穀於菟尊顯於楚,亦當宇之。」 乃呼爲子文而不名。周惠王之十三年也。子文旣爲令尹,倡言曰:「國家之禍,皆由君弱臣强所致。凡百官采邑,皆以半納還公家。」 子文先於鬥氏行之,諸人不敢不從。又以郢城南極湘潭,北據漢江,形勝之地,自丹陽徙都之,號曰郢都。治兵訓武,進賢任能。以公族屈完爲賢,使爲大夫,族人鬥章才而有智,使與諸鬥同治軍旅。以其子鬥班爲申公。楚國大治。

 

經文緯武 : 武를 씨로 하고 文을 날로 하여 문무를 겸비하였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形勝之地 : 지세나 경치가 매우 뛰어나고 아름다운 땅.

 

 

 

몇년 후 그 딸을 초나라에 보내 투백비와 결혼시켰다. 초나라의 사투리에 젖(乳)을 누(穀)라 하고, 범(虎)을 오토(於菟)라 하였다. 범이 젖을 먹였다는 뜻을 취하여 그 아들의 이름을 누오토(穀於菟)라고 짓고 자를 자문(子文)이라 하였다. 지금의 운몽현(云夢縣)에 오토향(於菟鄉)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바로 자문이 태어난 곳이다. 누오토는 성장하여 백성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다스릴만한 인재로 성장하여 문무를 아울러 갖추게 되었다. 부친 백비는 초나라에서 벼슬을 하여 대부가 되었고, 백비가 죽자 누오토가 대부의 직을 이어받아 대부가 되었다. 

자원이 난으로 죽임을 당하여 영윤의 자리가 비었다. 

초왕이 투렴을 영윤으로 기용하려고 하자 투렴이 사양하며 말했다. "지금 초나라와 대적할만한 나라는 제나라입니다. 제나라에서는 관중과 영척을 기용하여 나라는 부유해지고 군사는 강해졌습니다. 신의 재주는 관중, 영척과 같이 현명한 부류가 아닙니다. 왕께서 나라의 기강과 초나라의 정사를 바로잡아 중원과 맞서려고 하신다면 투누오토가 아니면 불가합니다."

백관이 일제히 투렴을 도와 아뢰었다. "반드시 이 사람이라야 그 직무를 담당할 수 있습니다."

초왕이 허락하여 마침내 투누오토를 영윤으로 삼았다.

초왕이 말했다. "제나라에서는 관중을 기용하고 그를 중부(仲父)라고 부르게 하였다. 지금 누오토에게 초나라에서 존경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자로 불러야 할 것이다."

이에따라 자문으로 부르게 하고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 

주혜왕 13년, 자문이 초나라의 영윤이 되자  공언(公言)하여 말했다. "나라의 재앙은 모두 군주가 약하고 신하가 강성한 데에서 오는 것이다.  무릇 백관의 채읍은 모두 그 절반을 나라에 바쳐야 한다."

자문이 투씨에게 먼저 행하도록 하니 모든 사람들이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초나라의 영성(郢城)은 남으로 상담(湘潭)에 이르고 북으로는 한강(漢江)에 의지하여 형세가 뛰어난 곳으로 단양(丹陽)으로부터 도읍을 옮겨 영도(郢都)라고 하였다. 그리고 군대를 훈련시키고 무예를 닦게하며 현자를 추천하고 능력에 따라 기용했다. 또 공족(公族) 굴완(屈完)이 어질다 하여 대부로 삼았다. 그리고 투씨 가문의 투장(鬥章)이 재주가 있고 지혜가 있어 투씨들과 함께 군사 일을 보도록 하였다.  또 그 아들 투반을 신공(申公)으로 삼아 신읍을 다스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초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齊桓公聞楚王任賢圖治,恐其爭勝中原,欲起諸侯之兵伐楚。問管仲,管仲對曰:「楚稱王南海,地大兵强,周天子不能制。今又任子文爲政,四境安堵,非可以兵威得志也。且君新得諸侯,非有存亡興滅之德,深入人心,恐諸侯之兵,不爲我用。今當益廣威德,待時而動,方保萬全。」 桓公曰:「自我先君報九世之仇,剪滅紀國,奄有其地。鄣爲紀附庸,至今未服,寡人欲並滅之,何如?」 管仲曰:「鄣雖小國,其先乃太公之支孫,爲齊同姓。滅同姓,非義也。君可命王子成父率大軍巡視紀城,示以欲伐之狀。鄣必畏而來降。是無滅親之名,而有得地之實矣。」 桓公用其策,鄣君果畏懼求降。桓公曰:「仲父之謀,百不失一!」 君臣正計議國事,忽近臣來報:「燕國被山戎用兵侵伐,特遣人求救。」 管仲曰:「君欲伐楚,必先定戎。戎患既熄,乃可專事於南方矣。」

 

 

제환공은 초나라 왕이 현사를 기용하여 나라를 잘 다스리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중원진출을 다투지 않을까 걱정하여 제후들과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를 치려고 관중에게 물었다.

관중이 대답했다. "초나라가 남해에서 왕을 칭하였으나 땅이 크고 군대가 강하여 주 천자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지금 또 자문을 기용하여 정사를 맡기니 사방이 편안하게 되어 군대의 위력으로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또 주군께서는 새로이 제후들의 마음을 얻으셨지만 나라의 존망이나 흥멸과 같은 은혜가 아니라면 제후들의 마음 속에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여 제후들의 군대를 동원하려 했을 때 우리를 위해 쓸 수 없게 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지금은 마땅히 위엄과 덕을 넓히고 때를 기다려 움직이는 것이 만전을 기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우리 선군이신 양공께서 9대에 걸친 원수를 갚아 기(紀)나라를 멸망시키고 마침내 그 땅을 소유하게 되었소. 그런데 장(鄣)나라는 기나라의 부용국으로 지금까지 복종하지 않고 있소. 과인이 장나라를 멸망시키고 아우르고자 하는데 어떻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장나라는 비록 작은 나라이지만 그 선대(先代)는 바로 태공의 지손으로 제나라와 동성(同姓)입니다. 동성을 멸망시키면 의롭지 못합니다. 주군께서 왕자 성보(成父)에게 명하시어 대군을 이끌고 기성(紀城)을 순시하도록 하시고 장나라를 치려는 모습을 보이신다면 장나라에서는 반드시 두려워 항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친족을 멸하지 않는다는 명분을 얻고 또 그 땅을 얻게 되는 실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환공이 그 계책을 쓰니 장나라 군주가 마침내 두려워하여 항복을 청했다. 

환공이 말햇다. "중주의 계책은 백가지 중에서 하나도 실책이 없구나!"

군신이 국사를 논의하는 중에 갑자기 근신이 와서 보고했다. "연(燕)나라에서 산융(山戎)으로부터 침략을 당하여 특별히 사자를 보내 구원을 청합니다."

관중이 말했다. "군주께서 초나라를 치려고 하신다면 반드시 먼저 융을 평정하셔야 합니다. 융에 대한 근심을 없게 한다면 남방을 공략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畢竟桓公如何服戎,且聽下回分解。

 

 

결국 환공은 어떻게 융을 복종시킬 것인지 다음 회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