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夜宴桃李園序
夫天地者萬物之逆旅, 光陰者百代之過客。而浮生若夢, 爲歡幾何 ! 古人秉燭夜遊, 良有以也。況陽春召我以煙景, 大塊假我以文章 ! 會桃李之芳園, 序天倫之樂事, 群季俊秀, 皆爲惠連, 吾人詠歌, 獨慙康樂。
幽賞未已, 高談轉淸, 開瓊筵以坐花, 飛羽觴而醉月, 不有佳作, 何伸雅懷 ! 如詩不成, 罰依金谷酒數。
逆旅 : 나그네를 맞는 곳, 여관(旅館) 浮生 : 뜬 구름 같이 덧없은 인생.
秉燭夜遊 : 촛불을 들고 밤에 놀다. 경치가 좋은 곳에서 놀다가 낮에 놀던 흥이 미진해서 밤중까지 노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때 맞춰 즐기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젊고 건장할 때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니 세월 한번 가면 어떻게 붙잡을 것인가. 옛사람들이 촛불을 부여잡고 밤놀이를 했던 것이 진실로 까닭이 있었구나.(少壯眞當努力, 年一過往, 何可樊援. 古人思秉燭夜遊, 良有以也.)」 <曹丕 與吳質書>
大塊 : 대지, 천지, 대자연 天倫 : 하늘이 맺어준 질서, 즉 형제. 부자형제 등 가족간 변치 않는 떳떳한 도리.
惠連 : 남조 송(宋)의 사혜련(謝惠連, 397-433). 강락후(康樂侯) 사령운(謝靈雲, 397-433 남조 송)의 족제(族弟)로서 10세에 시를 잘 지어 그의 형 사령운은 그를 만나면 좋은 구를 얻었다고 전해짐.
康樂 : 사령운이 강락후(康樂侯에 봉해졌기 때문에 사강락(謝康樂)이라 함. 그는 산수시의 시조로 이태백이 그 의 詩品을 특히 좋아하여 은근히 자신에 비유함.
瓊筵 : 화려한 연석(宴席) 羽觴 : 새 깃 모양으로 된 술잔.
金谷酒數 : 진(晋)의 석숭(石崇)이 금곡원(金谷園)에서 손님들을 초빙하여 연회를 베풀고는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로 술 석 잔을 먹였다는 고사(古事)에서 유래. 금곡은 하남성 낙양현의 서쪽 금수(金水)가 흐르는 골짜기. 석숭은 동양을 대표하는 대부(大富)였으나 역설적으로 녹주(綠珠)라는 애첩 때문에 굶어죽었음(餓死).
천지는 만물의 쉼터요, 세월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백대의 나그네이다. 떠도는 인생 꿈같은 것이니, 환락을 누린들 그것이 얼마이겠는가?
옛사람이 촛불을 손에 잡고 밤에 노닌 것은 정말 까닭이 있는 것이다. 더욱이 따뜻한 봄날이 안개 낀 풍경으로 나를 부르고, 대지는 나에게 아름다운 문장을 빌려주는 데 있었으랴?
복사꽃, 오얏꽃 만발한 향기로운 정원에 모여 형제들끼리(天倫) 즐거운 놀이를 펼치니, 여러 아우들의 뛰어남은 사혜련과 같은데, 내가가 읊는 노래만이 [내가 존경하는 시인인] 사강락에 부끄러울 뿐이다.
그윽한 감상이 아직 끝나지 않고 고상한 담화는 더욱 맑은데, 옥(玉)의 자리 깔고 꽃 보고 앉아서 날개 달린 잔을 날리며(=주고받으며) 달빛 아래 취하노라.
아름다운 시를 짓지 못하고서 어떻게 고아한 감회를 펼칠 수 있겠는가? 만약 시를 짓지 못한다면 금곡의 예로써 벌 주 석 잔을 달게 마시겠노라.
☞ 序
≪이아 爾雅≫에는 “서(序)는 실마리(서 緖)이니, 글자를 서(敍)로도 쓴다.”고 하였는데, 즉 事理를 잘 서술하여 차례의 정연함이 마치 실의 오리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서에는 서서(書序)·후서(後序)·송서(送序)·증서(贈序)·수서(壽序)·명서(名序)·자서(字序) 등이 있다.
書序는 책의 머리에 붙는 책의 서문으로 그 책이 이루어진 시말을 기술한 것이다. ≪모시 毛詩≫의 大 序·小序와 ≪尙書≫의 서서가 그 원조이다.
後序는 책 뒤에 붙는 것이다. 발(跋) 또는 서후(書後)와 성질이 같은 것이다. 그러나 발·서후에 비해 비교적 길고 자세한 것이 특징이다.
송서는 남과 이별할 적에 이별의 아쉬움이나 풍자·교훈의 뜻을 붙여 적는 글이다.
증서는 당대(唐代)에 비롯된 것으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적어주는 글이다. 옛사람들은 친척이나 친구 또는 문인이 먼길을 떠나가면 시가(詩歌)를 지어 이별의 뜻을 나타내었다. 사연이 많아져서 별도의 문장으로 그 연유를 서술하였으므로 처음에는 서·발이나 다름이 없었다.
후대에 와서는 증시(贈詩)는 하지 않고 증언(贈言)만으로 짓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므로 오로지 남에게 주기 위해 지은 글을 증서라 하였다. 이 송서와 증서는 당나라의 문장가 한유(韓愈)의 글 중에 좋은 것이 많다. <송정상서서 送鄭尙書序>·<증최복주서 贈崔復州序> 등이 특히 유명하다.
수서는 남의 수명을 축복하는 글이다. 송말(宋末)에 발생하여 명대(明代) 중엽 이후 성행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도 많이 쓰고 있다. 명서와 자서는 이름이나 자가 지어진 배경을 적는 글이다. 대체로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송나라 진사도(陳師道)의 <진소유자서 秦少游字敍>가 유명하다. 위에 예로 든 것 이외도 건물이나 모임의 배경을 소재로 지은 것도 있다. 당나라 왕발(王勃)의 <滕王閣序>나 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 春夜宴桃李園序> 등이 유명하다.
묘지명·신도비명 등에도 서가 있다. 당사자의 경력·행적 등을 서술하고 뒤에 명(銘)을 붙이는 것이 통례이다. 이 때 문체의 이름은 아니지만 ‘서를 아울러 쓴다.’는 뜻으로 병서(幷序)라 적고 있다. [다음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