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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漢詩/李白

昭君怨

by 柳川 2021. 4. 4.

                                              昭君怨

 

 

昭君拂玉鞍、                              왕소군 옥 안장을 떨치며
上馬涕紅頰。                              말에 오르니 붉은 뺨에 눈물이 흐른다.
今日漢宮人、                              오늘 한나라 궁녀가
明朝胡地妾。                              내일 아침엔 오랑캐의 첩이로다.

 

 

 

 

東方虬(동방규)도 같은 제목의 시를 썼다. 이백의 시가 왕소군이 떠나는 장면을 묘사했다면, 동방규는 왕소군이 흉노 땅에서의 荒凉한 풍토에서 맞는 傷心과 望鄕의 슬픔으로 나날이 瘦瘠해 가는 가련한 모습을 읊었다.

 

 

 

 

 

☞ 參考

 

昭君怨  -  東方虬  (당나라 武周 사람으로 측천무후 때 좌사를 지냄)

 

 

一.

漢道方全盛、                              한나라가 융성한 때라서,

朝廷足武臣。                              조정에는 무신들이 많은데,

何須薄命妾、                              하필 첩이 박명하여,

辛苦事和親。                              화친의 어려움 맡아야 하나요.

 

 

二.

揜淚辭丹鳳、                              눈물을 가리며 단봉을 하직하고,

銜悲向白龍。                              슬픈 마음으로 백제성으로 나서네.

單于浪驚喜、                              선우는 마구 떠들며 기뻐하는데,

無復舊時容。                              다시는 옛 모습 볼 수 없으리.

 

 

三.

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엔 화초가 없어
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                              저절로 옷 띠가 느슨해졌는데
非是爲腰身。                              이는 허리 몸매 위함이 아니었던가.

 

 

四. 

萬里邊城遠、                              만리 밖 변방의 성은 멀고,

千山行路難。                              첩첩 산이라 가는 길도 험하네.

擧頭惟見日、                              머리를 들면 보이는 것은 오직 해 뿐,

何處是長安。                              장안은 어디에 있는가.

 

 

 

 

☞ 王昭君

 

왕소군(王昭君)은 중국의 4대 미인의 한사람으로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녀의 이름은 장(嬙 ·檣 ·牆). 자는 소군. 일설에는 소군이 이름이고 장이 자라고도 한다. 남군(南郡)의 양가집 딸로 한나라 원제의 후궁으로 들어갔으나, 황제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비관하고 있었다. 당시 흉노(匈奴)의 침입에 고민하던 한나라는 그들과의 우호 수단으로 흔히 중국 여자를 보내어 결혼시키고 있었다. BC 33년 왕소군은 원제의 명으로 한나라를 떠나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에게 시집가 연지(閼氏)가 되었고, 아들 하나를 낳았다. 호한야가 죽은 뒤 호한야의 본처의 아들인 복주루 선우(復株累單于)에게 재가하여 두 딸을 낳았다. 이러한 소군의 설화는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윤색되고, 흉노와의 화친정책 때문에 희생된 비극적 여주인공으로 전하여 왔으나 대부분은 사실(史實)로 인정할 수 없다.

 

 

후한(後漢) 때의 《서경잡기(西京雜記)》에 의하면, 대부분의 후궁들이 화공(畵工)에게 뇌물을 바치고 아름다운 초상화를 그리게 하여 황제의 총애를 구하였다. 그러나 왕소군은 뇌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얼굴이 추하게 그려졌고, 그 때문에 오랑캐의 아내로 뽑히게 되어 버렸다. 소군이 말을 타고 떠날 즈음에 원제가 보니 절세의 미인이고 태도가 단아하였으므로 크게 후회하였으나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원제는 크게 노하여 소군을 추하게 그린 화공 모연수(毛延壽)를 참형(斬刑)에 처하였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진(晉)나라 때에는 문제(文帝) 사마 소(司馬昭)의 이름과 글자가 같은 것을 피하기 위하여 왕명군(王明君)이라 하였고, 명비(明妃)라고도 불렸다. 그 뒤 그녀의 슬픈 이야기는 중국문학에 허다한 소재를 제공하였다.

 

 

《소군사(昭君辭)》《명군탄(明君歎)》이라는 한나라의 악부(樂府)가 가장 오래 된 것이고, 그녀를 소재로 한 희곡으로는 원(元)나라 때의 마치원(馬致遠)이 지은 《파유몽고안한궁추잡극(破幽夢孤鴈漢宮秋雜劇:漢宮秋)》이 가장 유명하다. 진나라의 석계륜(石季倫)이 지은 《왕명군사병서(王明君辭幷序)》가 있고, 당(唐)나라 이후 이백(李白) ·백거이(白居易) 등 많은 시인들이 그녀를 소재로 시를 읊었다. 또 둔황[敦煌]에서 발굴된 《명비변문(明妃變文)》에 의하여, 당말 오대(五代)경부터 구전문학(口傳文學)의 소재가 되었음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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