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平廣記 卷第一百九十三 豪俠一
虬髥客
杜光庭
☞ 글 머리에
규염객은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선생이 쓴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연개소문의 출생과 소년시절의 西遊」라는 제하의 글에서 언급되었다. 규염객의 대의를 간단히 언급하고는 그 내용이 중국 소설가의 춘추필법및 권선징악적 필법에 치우친 것이라 하면서 중국에 전해내려오는 갓쉰동전의 내용과 비교해볼 때 의심할 바가 많으므로 규염객전을 버리고 갓쉰동전을 취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고대사에서 중국과의 크고 작은 마찰은 많았으나 고구려와 수나라와의 전쟁, 고구려와 당나라와의 전쟁은 피차가 국운을 걸고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겨루었던 드문 전쟁이었다. 그 두나라와의 전쟁에서 고구려가 모두 승리하여 수나라는 나라가 망하는 비극을 겪었고, 당나라는 소위 정관의 치(貞觀의 治)를 이루었다는 명군으로 일컬어지는 당태종이 눈에 독화살을 맞고 그 여독으로 사망하며 '향후 고구려와는 전쟁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처참한 결말을 맞이했다. 수나라와의 전쟁에서는 을지문덕이라는 걸출한 영웅이, 당나라와의 전쟁에서는 연개소문이라는 뛰어난 영웅이 있었다. 그런데 평민출신인 을지문덕과는 달리 연개소문은 귀족출신이면서도 그 성장과정이 베일에 가려져 있고 그에 대한 설화가 많으며, 또 중국의 무경칠서(武經七書)중 하나인 이위공문대(李衛工問對)의 모두(冒頭)에 당태종과 이정(李靖)의 대화에서 연개소문이 거명될 정도로 신비한 존재이다.(太宗曰, 高麗數侵新羅, 朕遣使諭, 不奉詔, 將討之, 如何? 靖曰, 探知蓋蘇文, 自恃知兵, 謂中國無能討,)
단재선생의 조선상고사를 읽고 갓쉰동전과 규염객전의 원문을 구해 읽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갓쉰동전은 도저히 찾을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우연히 규염객 원문을 접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랫동안 방치해두다가 東周列國志를 번역하며 열독하던 중, 블로그 전체를 정리할 필요를 느끼고 열국지는 일단 미뤄두고 그동안 읽고싶어 글 원문만 블로그에 옮겨 놓고 방치해 왔던 글들을 번역, 정독하는 과정에서 이 글을 접하게 되었다. 중국의 춘추필법에 의한 왜곡을 감안하고 의심할 바가 많다 할지라도 우리나라 고대의 뛰어난 영웅중 한 사람인 연개소문에 관한 설화가 중국에 전해져 내려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글을 읽는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隋煬帝之幸江都也, 命司空楊素守西京。素驕貴,又以時亂,天下之權重望崇者,莫我若也。奢貴自奉,禮異人臣。每公卿入言,賓客上謁,未嘗不踞床而見令美人捧出,侍婢羅列,頗僭於上。末年愈甚,無復知所負荷,有扶危持顚之心。
一日,衛公李靖以布衣上謁,獻奇策。素亦踞見。公前揖曰:「天下方亂,英雄競起。公以帝室重臣,須收羅豪傑爲心,不宜踞見賓客。」 素斂容而起,謝公,與語,大悅,收其策而退。
斂容 : 태도를 바로잡다. 정색하다.
수양제가 강도(江都)에 행차하면서 사공 양소에게 명하여 서경을 지키게 하였다. 양소는 교만한 벼슬아치로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천하의 권세가 크고 명망이 높은 자는 자신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치와 호화로움을 마음껏 누리며 예의범절도 다른 신하와는 달리 했다. 항상 공경들이 들어가 말하거나, 빈객이 찾아가도 의자에 걸터앉아 만나고 미인의 시중을 받았으며, 시비들을 열지어 세워 놓아 천자의 자리에 있는 것처럼 매우 분수에 넘치게 행동했다. 말년에는 더욱 심해져 자신의 임무를 깨닫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나라를 위기에서 지키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는 위공(衛公) 이정(李靖)이 평민의 신분으로 만나서 좋은 계책을 바치려고 하였는데 양소는 의자에 앉아서 만났다.
위공이 앞으로 나가 읍하고 말했다.
"천하가 바야흐로 어지러워 영웅들이 다투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께서는 황실의 중신으로 모름지기 호걸들을 모으는 일을 마음에 두어야지 의자에 걸터앉아 손님을 맞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양소가 옷깃을 바로잡고 일어나 공에게 사과하고 함께 이야기하는데 크게 기뻐하며 그의 계책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물러났다.
當公之騁辯也,一妓有殊色,執紅拂,立於前,獨目公。公旣去,而執拂者臨軒(門廊)指吏曰, 「問去者處士第幾?住何處?」 公具以對,妓誦而去。公歸逆旅,其夜五更初,忽聞叩門而聲低者,公起問焉,乃紫衣帶帽人,杖揭一囊。公問誰曰:「妾,楊家之紅拂妓也。」 公遽延入,脫去衣帽,乃十八九佳麗人也。素面畫衣而拜,公驚答拜。曰:「妾侍楊司空久,閱天下之人多矣,無如公者。絲蘿非獨生,願托喬木,故來奔耳。」
絲蘿 : 새삼. 매꽃과의 일년초로 나무에 붙어사는 기생 식물이다. 토사(免絲)와 송라(松蘿)를 말하는데, 고시(古詩)에 “그대와 새로 혼인
을 했으니, 토사가 송라에 부침이로다.[與君爲新婚 兎絲附松蘿]” 한 데서, 혼인의 뜻으로 쓰인다.
奔 : 奔은 '달려왔다'는 뜻 외에 '남녀가 혼인하지 않고 야합하는 의미'와 '몸을 의탁한다.'는 뜻이 있어 이를 함축적으로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
공이 말을 하고 있는 중에 용모가 아주 뛰어난 미녀 하나가 붉은 먼지떨이를 들고 앞에 서서 공을 주시하고 있었다. 공이 물러나자 미녀는 복도로 나가 관리에게 지시했다.
"방금 나간 처사가 누구인지 어디에 사시는지 물어보세요."
공이 모두 대답해 주었고 미녀는 외우며 나갔다.
공이 여각으로 돌아갔는데, 그날 밤 오경 초 홀연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낮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 공이 일어나 누군지 묻자 자주색 옷을 입고 모자를 쓴 사람이 지팡이에 자루 하나를 메고 서 있었다.
공이 누구냐고 묻자 대답했다. "저는 양씨 집에서 붉은 먼지떨이를 들고 있던 여인입니다."
공이 급히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겉옷과 모자를 벗자 이제 갓 18 ~ 9세의 미인이었다. 본래의 얼굴로 수놓은 옷을 입고 절을 올리자 공도 놀라 답례를 하였다.
그녀가 말했다. "저는 양사공을 오랫동안 모시면서 천하의 인재를 많이 봤읍니다만 공같은 훌륭한 분은 없었습니다. 새삼(絲蘿)은 홀로 사는 것이 아니니 높은 나무에 의탁하고자 찾아왔습니다."
公曰:「楊司空權重京師,如何?」 曰:「彼屍居餘氣,不足畏也。諸妓知其無成,去者眾矣,彼亦不甚逐也。計之詳矣,幸無疑焉。」 問其姓,曰:「張。」 問其伯仲之次。曰:「最長。」 觀其肌膚、儀狀、言詞、氣性,眞天人也。公不自意獲之,愈喜愈懼,瞬息萬慮不安,而窺戶者無停履。
공이 말했다. "양 사공은 경사에서 권세가 대단한 자인데 괜찮겠소?"
"그는 시체나 다름없으며 남은 기운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두려워할 바가 못됩니다. 그 집안의 미녀들은 그가 다스리지 못할 것을 알고 떠난 자가 많으며 그 또한 심하게 찾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것을 헤아려 세밀히 계획을 세웠으니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녀의 성을 물으니, "장(張)씨입니다."라 하였다.
그녀 형제를 물었더니 "첫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녀의 피부, 몸가짐, 언사, 기품등을 보니 참으로 하늘에서 온 사람같았다. 공은 뜻하지 않게 그녀를 얻게 되자 기쁨이 더할 수록 두려움도 더해지고 순식간에 수많은 생각으로 불안했는데 문을 엿보는 자가 그치지 않았다.
數日,亦聞追訪之聲,意亦非峻,乃雄服乘馬,排闥而去。將歸太原,行次靈石旅舍,旣設床,爐中烹肉且熟。張氏以髮長委地,立梳床前, 公方刷馬。忽有一人,中形,赤髯如虬,乘蹇驢而來,投革囊於爐前,取枕欹臥,看張梳頭。公怒甚,未決,猶親刷馬。張熟視其面,一手握髮,一手映身搖示公,令勿怒。急急梳頭畢,斂衽前問其姓。臥客答曰:「姓張。」對曰:「妾亦姓張,合是妹。」 遽拜之。問第幾,曰:「第三。」 問妹第幾,曰:「最長。」 遂喜曰:「今夕幸逢一妹。」
斂衽 : 옷깃을 여미다. (복장을 단정히 하여) 경의를 표하다.
며칠이 지나자 과연 그녀의 행방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지만 준엄하게 찾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남장을 하고 말에 올라 문을 열고 나갔다. 태원으로 가다가 영석의 여각에서 묵게 되었는데 이미 탁자가 펼쳐져 있었고 화로에는 고기를 삶고 있어 고기가 익고 있었다.
장씨는 머리가 길어 땅에 닿았는데 탁자 앞에 서서 빗질하고 있었고 공은 말을 손질하고 있었다.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체격은 보통이며 붉은 수염이 규룡의 수염같이 꾸불꾸불했는데, 둔한 당나귀를 타고 와서 화로 앞에 가죽으로 된 자루를 내던지고 베게에 기대어 비스듬히 누워 장씨가 머리를 빗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공은 매우 노했지만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듯이 여전히 말을 손질하고 있었다. 장씨는 유심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한 손으로는 머리카락을 쥐고 한 손으로는 등 뒤로 공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노하지 말도록 했다. 급히 머리손질을 마치고 앞 옷깃을 여미며 성씨를 물었다.
누워있던 나그네가 대답했다. "장(張)씨요."
장씨가 "저도 장씨이니 누이동생이 되겠네요."라고 하더니 급히 절을 하고는 그에게 형제중 몇째인지를 묻자,
그가 대답했다. "셋째요."
그리고 누이는 몇째이냐고 물었다. "첫째입니다."
그가 기뻐하며 말했다. "오늘 저녁 다행히도 첫째 누이동생을 만나게 되었구나."
張氏遙呼:「李郞且來見三兄!」 公驟拜之,遂環坐。曰:「煮者何肉?」曰:「羊肉,計已熟矣。」客曰:「饑。」 公出市胡餅。客抽腰間匕首,切肉共食。食竟,餘肉亂切送驢前食之,甚速。客曰:「觀李郎之行,貧士也。何以致斯異人?」 曰:「靖雖貧,亦有心者焉。他人見問,故不言,兄之問,則不隱耳。」 具言其由。曰:「然則將何之?」曰:「將避地太原。」曰:「然。吾故謂非君所致也。」
장씨는 멀리 있는 공을 불렀다. "이랑, 잠깐 오셔서 셋째 오라버니를 만나보세요."
공이 달려 와 인사를 나누고 둘러앉았다.
나그네가 물었다. "삶고 있는 것이 무슨 고기입니까?"
"양고기인데 이미 다 익었을 것입니다."
나그네가 , "배고프구나." 하고 말하자 공이 나가 저자거리에서 호떡을 사왔다. 나그네는 허리에서 비수를 뽑더니 고기를 잘라 함께 식사했다. 식사를 마치자 나그네는 남은 고기를 대충 잘라 당나귀 앞으로 가져가 먹였는데 그 동작이 매우 민첩했다.
나그네가 말했다. "이랑의 행색을 보니 가난한 선비인데 어떻게 이런 미인을 얻었습니까?"
"제가 비록 가난하지만 또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질문을 받으면 답하지 않는데 형님께서 물으시니 숨기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간의 일을 자세히 말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려고 하는 중입니까?"
"태원으로 가서 잠시 피해 있을 생각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그곳으로 가기 때문이 아닙니다."
曰:「有酒乎?」曰:「主人西,則酒肆也。」 公取酒一斗,旣巡,客曰:「吾有少下酒物,李郞能同之乎?」 曰:「不敢。」於是開革囊,取一人頭並心肝,卻頭囊中,以匕首切心肝,共食之。曰:「此人天下負心者,銜之十年,今始獲之。吾憾釋矣。」 又曰:「觀李郞儀形器宇,眞大丈夫也。亦聞太原有異人乎?」 曰:「嘗識一人,愚謂之眞人也,其餘,將師而己。」曰:「何姓?」 曰:「靖之同姓。」 曰:「年幾?」 曰:「僅二十。」 曰:「今何爲?」 曰:「州將之子。」 曰:「似矣,亦須見之。李郞能致吾一見乎?」 曰:「靖之友劉文靜者,與之狎;因文靜見之可也。然兄何爲?」 曰:「望氣者言太原有奇氣,使訪之。李郞明發,何日到太原?」 靖計之日,曰:「達之明日,日方曙,候我於汾陽橋。」 言訖,乘驢而去,其行若飛,迴顧己失。公與張氏且驚且喜,久之,曰:「烈士不欺人,固無畏。」 促鞭而行。
下酒物 : 술안주. 望氣者 : 고대 방사(方士)의 일종. 그들은 천상의 풍운조화를 해석해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측했다.
烈士 : 옛날, 공업(功業)을 세우는 데 뜻을 둔 사람. 나라를 위하여 절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하여 싸운 사람.
"술좀 있습니까?"
"이 집 서쪽이 바로 술집입니다." 공이 술 한 말을 사와서 술잔이 돌자 나그네가 말했다.
"나에게 약간의 술안주가 있는데 이랑이 같이 드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이리하여 나그네는 가죽 자루를 열고 한 사람의 머리와 심장과 간을 꺼내더니 머리는 다시 부대 속에 넣고 비수로 심장과 간을 잘라 함께 먹으며 말했다.
"이 자는 천하의 배신자로 10년동안이나 원한을 품어왔다가 이번에 비로소 잡게 되어 내 원한이 풀렸습니다."
이어서 또 말했다. "이랑의 풍채와 기도(氣度)를 보건대 참으로 대장부입니다. 태원에 이인(異人)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일찍이 한 사람을 알고 있는데 저는 그 사람을 진정한 인물이라 봅니다. 그 나머지는 장수가 될 정도일 뿐입니다."
"그의 성씨가 무었입니까?"
"저와 동성입니다."
"나이는 몇 살입니까?"
"겨우 스무살입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주장(州將 : 태원 유수 이연))의 아들입니다."
"그 사람 같은데 나도 반드시 만나고 싶습니다. 이랑이 한번 그와 만나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 벗으로 유문정(劉文靜)이라는 자가 있는데 그가 그 사람과 친합니다. 유문정을 통하면 그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형님께서는 그를 만나 무얼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망기자(望氣者)가 태원에 기이한 기운이 서려 있다고 하며 그를 찾아보게 하였습니다. 이랑이 내일 떠나면 어느 날 태원에 도착하겠습니까?"
이정이 날짜를 헤아리자 그가 말했다. "태원에 도착한 다음 날 날이 밝을 무렵 분양교(汾陽橋)에서 나를 기다려 주십시오."
말을 마치자 당나귀를 타고 나는 듯이 떠나 종적을 알 수 없었다. 공과 장씨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 한참 있다가
"열사는 남을 속이지 않는법, 두려워할 것 없다." 라고 하고는 채찍을 휘둘러 길을 재촉했다.
及期,入太原,果復相見。大喜,偕詣劉氏,詐謂文靜曰:「有善相者思見郞君,請迎之。」 文靜素奇其人,一旦聞有客善相,遽致使迎之。使迥而至,不衫不履,裼裘而來,神氣揚揚,貌與常異。虬髯默然居末坐,見之心死飮數杯,招靖曰:「眞天子也!」 公以告劉,劉益喜自負。旣出,而虬髯曰:「吾得十八九矣;然須道兄見之。李郞宜與一妹復入京。某日午時,訪我於馬行東酒樓,下有此驢及瘦驢,即我與道兄俱在其上矣。到即登焉。」 又別而去,公與張氏復應之。
迥 : 멀 형. 멀다. 아득함. 빛나다. 광휘. 迴의 誤字인 듯.
裼裘 : 갖옷에 겉옷을 입는 방법에는 裼裘와 襲裘가 있는데, 석구는 덧입은 홑옷 왼쪽 소매를 열어(벗어) 속에 입은 갖옷이 보이게 하는
것이고, 습구는 갖옷이 보이지 아니하게 하는 것. 여기서는 평상복으로 표시한다. <論語 鄕黨 第 6章>
心死 : 단념하다. 절망하다. 기죽다.
약속한 날이 되어 태원에 들어가자 과연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 크게 기뻐하며 함께 유문정의 집으로 갔는데 유문정에게 거짓으로 말했다. "관상을 잘 보는 사람이 있어 공자를 보았으면 합니다. 그를 만나게 해주시오."
유문정은 평소 그를 기인으로 알고 있었던 터라, 일단 나그네가 관상을 잘 본다는 소리를 듣고 황급히 그를 맞아오게 하였다. 심부름 간 사람이 돌아올 때 그도 함께 왔는데 겉옷도 입지 않고 관화(官靴)도 신지 않았으며 평상복(裼裘)차림으로 왔는데 기백이 넘치고 용모가 범상치 않았다. 규염객은 말없이 말석에 앉아 있다가 기가 죽어 술을 여러잔 마시고는 이정을 불러 말했다.
"진정한 천자의 상이요."
공이 그 말을 유문정에게 전하자 유문정은 더욱 기뻐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안목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다.
밖으로 나오자 규염객이 말했다.
"나는 열에 여덟 아홉은 맞출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도형(道兄)이 그를 봐야 합니다. 이랑은 마땅히 누이와 함께 경사로 다시 들어와야 합니다. 아무 날 오시에 마행(馬行)의 동쪽 주루로 나를 찾아 오되, 이 당나귀와 여윈 당나귀가 매어져 있으면 곧 나와 도형이 그 위에 있는 것이니 바로 올라오시오."
또 작별하고 떠났는데 공과 장씨는 다시 응하기로 했다.
及期訪焉,宛見二乘。攬衣登樓,虬髯與一道士方對飮,見公驚喜,召坐。圍飮十數巡,曰:「樓下櫃中有錢十萬,擇一深隱處駐一妹。某日,復會我於汾陽橋。」 如期至,即道士與虬髯 已到矣;俱謁文靜。時方弈棋,揖而話心焉。文靜飛書迎文皇看棋。道士對奕,虬髯與公傍侍焉。俄而文皇到來,精采驚人,長揖而坐。神氣淸朗,滿坐風生,顧盼煒如也。道士一見慘然,下棋子曰:「此局全輸矣。於此失卻局哉!救無路矣。復奚言!」 罷弈而請去。旣出,謂虬髯曰:「此世界非公世界,他方可也。勉之,勿以爲念。」 因共入京。
長揖 : 두 손을 마주잡고 눈높이만큼 높이 들어서 허리를 굽히는 예.
약속한 날이 되어서 약속장소에 가니 틀림없이 두 마리의 당나귀가 있었다. 옷을 부여잡고 누각에 오르니 규염객과 한 사람의 도사가 술을 대작하고 있다가 공을 보더니 기뻐하면서 자리를 권하여 앉았다. 술잔이 십여 차례 돌자 규염객이 말했다.
"누각 아래에 궤 속에 10만 전이 있으니 매우 은밀한 장소를 골라 누이를 머무르게 하십시오. 아무 날 분양교에서 다시 만납시다."
약속한 날이 되어 가보니 도사와 규염객이 이미 와 있어서 함께 유문정에게 갔다. 유문정은 그 때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인사를 하고 그들이 온 뜻을 말했다. 유문정은 지급으로 편지를 보내 문황(文皇 : 李世民 ?)을 바둑구경 하러 맞아오게 하였다.
도사는 바둑을 두고 규염객과 공은 곁에서 관전하고 있었다. 잠시 후 문황이 도착하자 뛰어난 풍채가 사람들을 놀라게 하여 정중히 예를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기도가 맑고 시원하며 보는 눈빛에 광채가 이는 것 같았다.
도사가 한번 보고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바둑알을 내려놓고 말했다.
"이 판은 완전히 졌습니다. 여기에서 판을 망쳤습니다. 살려낼 길이 없는데 또 뭐라 할 것인가!"
바둑을 마치고 작별하였는데 밖으로 나오자 규염객에게 말했다.
"이 세상은 공의 세상이 아닙니다. 다른 지방으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함께 경사로 들어갔다.
虬髯曰,「計李郞之程,某日方到。到之明日,可與一妹同詣某坊曲小宅相訪,李郞相從一妹, 懸然如磬。欲令新婦袛謁,兼議從容,無前卻也。」言畢,吁嗟而去。 公策馬而歸。即到京,遂與張氏同往。乃一小版門子,扣之,有應者,拜曰:「三郞令候李郞、一娘子久矣。」 延入重門,門愈壯。婢四十人,羅列庭前。奴二十人,引公入東廳。廳之陳設,窮極珍異,箱中粧奩冠鏡首飾之盛,非人間之物。巾櫛妝飾畢,請更衣,衣又珍異。
縣 : 멀다. 헛되다. 헛됨. 빚, 부채. 磬 : 비다. 다함. 懸然如磬 : 貧窮得什麽都沒有. 袛 : 속적삼 저.
규염객이 말했다.
"이랑의 여정을 헤아리건대 아무개 날이 되어서야 겨우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도착하면 다음 날 누이와 함께 아무 마을의 내 집을 찾아와 주십시오. 이랑은 누이가 따르고 있지만 가진 것이 없는 형편입니다. 우리 집사람을 인사시키고 아울러 조용히 의논할 것이 있으니 사양하지 마십시오."
말을 마치자 탄식하며 떠났다.
공도 말을 달려 돌아갔다. 경사에 도착하자 장씨와 함께 규염객의 집을 찾아갔다. 작은 판자문이 있어 두드리니 응답하는 자가 있어 인사를 하고 말했다.
"삼랑(三郞)께서 이랑(李郞)과 큰 낭자를 기다리신지 오래입니다."
안으로 안내해 들어가는데 문이 거듭 있고 문이 들어갈수록 더욱 웅장했다. 노비(奴婢) 20명이 뜰앞에 늘어서 있고 하인 20명이 공을 동쪽 집으로 인도했다. 그 대청 안에 진열된 것은 모두 진귀하고 기이하였으며 상자 속에는 화장품 상자, 관, 거울, 머리장식이 가득 담겨있는데 모두 인간세상의 물건이 아니었다. 세수하고 머리 빗어 단장을 마치자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는데 옷도 진귀하고 기이했다.
旣畢,傳云, 「三郞來!」 乃虬髯紗帽裼裘而來,亦有龍虎之狀,歡然相見。催其妻出拜,蓋亦天人耳。遂延中堂,陳設盤筵之盛,雖王公家不侔也。四人對饌訖,陳女樂二十人,列奏於前,若從天降,非人間之曲。食畢,行酒,家人自堂東舁出二十床,各以錦繡帕覆之。旣陳,盡去其帕,乃文簿鑰匙耳。
侔 : 가지런할 모. 가지런하다. 같은 크기로 가지런한 모양. 벼의 모를 갉아 먹는 벌레. 舁 : 마주들 여.
帕 : 머리띠 말/휘장 파. 머리띠. 머리동이. 싸다. 싸서 맴. [파] 휘장. 물건을 싸는 헝겊.
鑰 : 자물쇠 약. 자물쇠, 빗장. 匙 : 숟가락 시. 숟가락. 열쇠.
옷을 갈아입고 나자 누가 말했다. "삼랑께서 오십니다."
규염객이 사모를 쓰고 평상복(裼裘)차림으로 나왔는데 또한 용과 범같은 모습인데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그 처를 재촉하여 나와 인사를 하게 하였는데 그 또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았다. 중당으로 안내되어 들어가니 진열되어 있는 음식의 풍성함이란 왕공의 집이라 할지라도 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네 사람이 밥상앞에 자리잡고 앉자 늘어선 여악사 20명이 앞에서 연주하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음악같아 인간세상의 음악이 아닌 것 같았다.
식사가 끝나고 술잔이 돌자 가인(家人)들이 집 동쪽에서 20개의 상을 마주들고 나왔는데 각 수놓은 비단 보자기로 덮여 있었다. 늘어놓고 보자기를 모두 걷자 문서와 장부, 자물쇠와 열쇠뿐이었다.
虬髯曰:「此盡寶貨泉貝之數。吾之所有,悉以充贈。何者?欲於此世界求事,當或龍戰三二十載,建少功業。今旣有主,住亦何爲?太原李氏,眞英主也。三五年內,即當太平。李郞以奇特之才,輔淸平之主,竭心盡善,必極人臣。一妹以天人之姿,蘊不世之藝,從夫之貴,似盛軒裳。非妹不能識李郞,非李郞不能榮一妹。起陸之貴,際會如期,虎嘯風生,龍吟雲萃,固非偶然也。持余之贈,以佐眞主,贊功業也,勉之哉!此後十年,當東南數千里外有異事,是吾得事之秋也。一妹與李郞可瀝酒東南相賀。」
蘊 : 쌓을 온. 쌓다. 모으다. 모이다. 간직하다. 받아들이다. 맺히다. 우울해짐. 깊은 속, 깊은 속내. 덥다. 우거지다. 불쏘시개. 붕어마름.
起陸之貴 ~ : 帝王的興起,就會有一些輔佐他的人就像是約定好一樣如期而至,就像虎嘯生風,龍吟雲中一樣,本來就不是偶然的。
규염객이 말했다.
"이것은 모두 보물과 돈의 수량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내 소유물인데 모두 기증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을 구제하는데 쓰려고 20 ~ 30년동안 천하를 다투는 싸움을 해오면서 이룬 작은 공업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미 주인이 있는데 머문다 한들 무엇을 하겠습니까? 태원의 이씨는 진정한 영주(英主)입니다. 3 ~ 5년내에 천하는 바로 태평해질 것입니다. 이랑은 뛰어난 인재이므로 천하를 평정할 주인을 도와 전심전력한다면 반드시 신하로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누이는 하늘이 내린 자태로 세상에 없는 재능을 간직하고 있으니 부군을 따라 귀하게 되어 부귀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누이가 아니면 이랑의 인물됨을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며, 이랑이 아니면 누이에게 영화를 누리게 해줄 수 없을 것입니다. 제왕이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그를 돕는 자를 만나게 되는데, 범이 울부짖으면 바람이 일고 용이 으르렁거리면 구름이 구름이 모이는 것은 진실로 우연이 아닙니다.
이랑은 내가 기증한 것을 가지고 진정한 주인을 보좌해 그의 창업을 돕는데 힘을 다하십시오. 지금부터 10년 후에는 동남쪽 수천리 밖에서 기이한 일이 일어날 것이오. 그것은 내가 하는 일이 결실을 맺는 것이니 누이와 이랑은 동남쪽을 향해 술을 뿌리며 축하해주십시오."
因命家童列拜,曰:「李郞、一妹,是汝主也!」 言訖,與其妻從一奴,乘馬而去。數步,遂不復見。公據其宅,乃爲豪家,得以助文皇締構之資,遂匡天下。貞觀十年,公以左僕射平章事。適南蠻入奏曰:「有海船千艘,甲兵十萬,入扶餘國,殺其主自立,國已定矣。」 公心知虬髯得事也。歸告張氏,具衣拜賀,瀝酒東南祝拜之。乃知眞人之興也,非英雄所冀。況非英雄者乎?人臣之謬思亂者,乃螳臂之拒走輪耳。我皇家垂福萬葉,豈虛然哉!或曰:「衛公之兵法,半乃虬髯所傳耳。」
艘 : 배 소. 배. 배의 총칭. 척(隻). 배를 세는 단위.
그리고는 집안의 하인들이 늘어서서 절을 하게 하고 말했다. "이랑(李郞)과 큰 누이는 너희들의 주인이다."
말을 마치자 그 아내와 함께 하인 한 사람만을 따르게 하고 말에 올라 떠났다. 몇 걸음 가더니 마침내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공이 그 집에 자리잡고 살게 되자 호족가문이 되었고 그 재산으로 문황의 창업을 도울 수 있어 마침내 천하를 바로 잡게 되었다. 정관(貞觀) 10년 공은 좌복야평장사(左僕射平章事)가 되었다.
그때 남만(南蠻)으로부터 사람이 입국하여 아뢰었다. "어떤 사람이 배 천 척, 갑병 10만명을 거느리고 부여국에 들어가 그 왕을 살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는데 나라가 이미 평정되었습니다."
공은 마음 속으로 규염객이 일을 이루었음을 알게 되었다. 집에 돌아가 장씨에게 알려 예복을 갖추어 입고 동남쪽을 향해 술을 뿌리며 축하의 예를 올렸다.
이리하여 참된 주인이 일어나면 영웅이라도 천하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물며 영웅이 아닌 자에게 있어서랴? 신하가 되어 헛된 망상을 가지고 난을 일으키려고 하는 자아 말로 버마재비가 팔로 수레바퀴에 저항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 황실이 만세에 복을 드리우는 것이 어찌 공허한 일이리오?
어떤 자가 말했다. "위공의 병법은 그 반이 바로 규염객이 전한 것이다."
杜光庭 (850 ~ 933)
중국 당나라 말기 오대의 도사. 중국 당(唐)나라 말기 오대(五代)의 도사(道士). 저장성(浙江省) 진윈(縉雲) 출생, 또는 산시성(陝西省) 장안(長安) 사람이라고도 한다. 젊어서 많은 서적에 통달하여 과거에 응했으나 실패하자, 도교(道敎)의 중심지 톈타이산(天台山)에 들어가 도사가 되어 응이절(應夷節)에게 사사했다.
희종(僖宗)이 황소(黃巢)의 난을 피해 촉(蜀)나라로 갈 때 따라가 그대로 머물며 전촉 왕건(王建)의 존경을 받고 중용되었다. 후에 은퇴하여 성도(成都) 서북의 칭청산(靑城山)에 살며 도서(道書)의 수집ㆍ정리에 힘썼다. 당나라까지의 도교 교리학을 대성한 공로자이다.
[해설]
당나라 때의 통속고사에서 전한 이야기로 등장인물의 묘사와 대화가 뛰어나다. 규염객을 지은 작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두광정 (850~933)은 뛰어난 도사로서 많은 저서가 있다고 하는데, 본편은 태평광기(太平廣記)의 제 193편이다. 이야기에 첨가하여 쓰여진 장열(張說)의 작품도 있다고 한다. 단재 신채호선생은 장열이 쓴 작품으로 소개하였다. 소설에서는 곱슬곱슬하고 붉은 수염을 기르고 있는 호방하고 구애됨이 없는 무협형상을 소조하고 있다. 그는 수대 권신 양소(隋煬帝之幸江都也,命司空楊素守西京)의 집에서 길을 떠난 지사 이정(李靖)과 홍불녀(紅拂女)가 안전하게 위험에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또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배를 타고 나라 밖으로 나가 한 지역의 패권을 차지한 부여국왕이 되었다.
李靖官至僕射.東南蠻上奏皇帝說:“有一千多 船只,十萬多人馬進占了扶余國,殺其主而自立,現在國內 安定.”李靖知道,這是 虬髥客成功了.
개인적 소견을 덧붙인다면 이 글이 연개소문을 소재로 하여 쓰여진 글임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단재선생이 통렬하게 지적하신 바대로 중국인 특유의 춘추필법으로 당태종을 미화하여 쓴 글일 뿐이다.
규염객과 갓쉰동전의 공통적인 내용은 연개소문이 수나라 말기에 중국대륙에 있었고 당태종과 무경칠서중 하나인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의 저자인 이정(李靖)과 교류가 있었다는 점이다. 다만 단재선생의 지적대로 연개소문이 이세민의 영기에 기가 죽어 자신의 신념을 접고 떠났다는 점에 있어서는 참으로 허무맹랑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본 작품은 철저히 주관적인 춘추필법에 의하여 쓰여진 글임이 분명한 이상 우리나라 고대사에 있어서 위대한 영웅중의 한 분인 연개소문이 젊었을 때의 행적이 중국에서 나타났다는 점 외에는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